우리는 간단한 서장에서 사상과 경험의 역사가라면 추구하지 않을 수 없을 연구 테마들을 개괄했다. 이제 우리는 이미지, 그러니까 몽상을 고정시킬 만큼 매력적인 이미지의 연구자로서의 우리의 단순한 직무로 되돌아가겠다. 촛불의 불꽃은 기억의 몽상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우리에게 고독하게 밤샘했던 상황들을 아득한 추억으로 되돌려 준다. - P49

나의 책이 내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다면, 내가 시인들을 읽으면서 충분한 몽상의 위업을 달성해 시인의 왕국 앞에서 우리를 멈추게 하는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나는 모든 단락의 마지막에, 기나긴 일련의 이미지들의 끝에, 진정으로 마지막이 되는 이미지, 즉 합리적 사고의 판단에서 보면 과도한 이미지라고 지칭되는 이미지를 발견하고 싶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상상력에 도움을 받아 나의 몽상은 내 자신의 꿈들을 넘어서 나아가게 될 수 있을 것이다. - P56

촛불 앞에서 고독하고 한가하게 몽상을 하고 있으면 우리가 곧바로 알 수 있는 것은 빛을 발하는 이 생명이 또한 이야기하는 생명이라는 점이다. 여기서도 시인들은 귀를 기울이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게 된다.
불꽃은 소리를 내고 신음한다. 불꽃은 괴로워하는 존재이다. 어두운 중얼거림이 이 극심한 고통에서 나온다. 모든 작은 고통은 세계의 고통을 나타내는 기호이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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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악마가 돼버렸어."
그러자 아예샤가 대답했다.
"난 아무것도 아니야. 다만 신의 심부름꾼일 뿐이야."
오스만은 분개했다.
"그렇다면 너의 신은 왜 하필 죄없는 것들만 열심히 죽이는지 말 좀해봐. 도대체 뭐가 무서워서 그러는 거야? 자신감이 부족해서 우리가 죽음으로 사랑을 증명해주길 바라는 거야?"
이 불경스러운 발언에 대답이라도 하려는 듯, 아예샤는 더욱 엄격한 규율을 요구했다. - P284

참차는 눈을 감고 생각을 아버지에게 집중했다. 무엇보다 슬픈 것은 평생에 단 하루라도 아버지 창게즈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날을 기억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쁜 것은 한 사람의 아버지라는 용서할 수 없는 죄도 막판에 가서는 결국 용서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 P323

그러나 비록 감추고 있었지만 살라딘은 시간이 갈수록 일찍 거부했던 예전의 자기 모습으로, 즉 수많은 살라딘 — 아니, 살라후딘 — 으로 점점 돌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자아들은 그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선택을 할 때마다 하나둘씩 떨어져나갔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 P339

죽음은 사람들에게서 가장 훌륭한 부분들을 이끌어냈다. 인간에게 그런 일면도 있음을 목격하는 것은 — 살라후딘은 느꼈다 — 참으로 멋진 일이었다: 사려깊고 다정하고 고귀하기까지 한 모습들. 우리는 아직도 숭고해질 수 있는 존재다, 하고 생각하면서 그는 축제 기분에 빠져들었다. 온갖 잘못을 저질러도 우리는 아직도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 존재다. - P345

누군가 이렇게 썼다: 이 세상은 우리가 죽을 때 비로소 현실임을 알 수 있는 곳이라고. - P354

그렇다,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국면의 시작인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세상도 확고 부동한 현실일 테고, 이제는 자신과 저 피할 수 없는 무덤 사이에 우뚝 서 있는 든든한 아버지도 없었다. 고아의 삶, 무하마드가 그랬듯이, 누구나 그렇듯이 기이하게 찬란한 죽음에 의해 비로소 훤히 밝혀진 삶이었다. 이 죽음은 그의 마음속에서 마술 램프처럼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 P356

그는 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다. 지브릴은 자기 내면의 악마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이제 보니 살라딘 자신이 생각했던 것들은 모두 순진한 착각이었다: 그는 지브릴이 자기 목숨을 구해주었던 브릭홀 화재 당시의 일로 두 사람이 깨끗이 정화되었다고 믿었고, 그렇게 쫓겨난 악마들은 불길에 휩싸여 타버렸다고 믿었고, 그리하여 사랑도 증오 못지않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큰 힘을 가졌으며 미덕도 악덕 못지않게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믿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 완벽한 치유는 불가능한 모양이다. - P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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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담론에는 계속 되돌아오는 주제들이 있다. 단순 반복보다는 라이트모티프에 가까운 이 주제들은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부단한 관심을 기울여 왔음을 보여 준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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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명과 불꽃을 결합하는 이미지들의 양분을 통해 불꽃에 대한 하나의 ‘심리학‘ 과 생명의 불꽃에 대한 하나의 물리학’을 동시에 쓰고자 한다면, 참으로 대단한 은유 영역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은유라고? 불꽃이 현자들을 사색하게 했던 그 아득한 지식의 시대에 은유는 사유를 나타냈던 것이다. - P32

우리가 이 작은 책에서 시도하려는 것은 철학자들한테서 오든 시인들한테서 오든 모든 자료들을 근본적인 몽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꿈속에서, 혹은 다른 사람들이 지닌 꿈의 소통에서 단순성의 뿌리와 다시 만날 때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고, 우리를 위한 것이다. 하나의 불꽃 앞에서 우리는 세계와 정신적으로 소통한다. - P33

"당신은 평온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침착하게 빛의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가벼운 불꽃 앞에서 조용히 숨을 쉬어 보라. - P34

이 작은 에세이에서 다만 몇 페이지로 우리가 상기시키게 될 것은 친근한 이미지들이 세계의 비밀들을 겨누어 말하게 될 때까지 확장되는 텍스트들이다. 세계에 대한 몽상가는 자신의 희미한 등불로부터 하늘의 거대한 별들까지 얼마나 손쉽게 이동하는가!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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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꿈 속의 아이를 사랑했지만 인생은 그에게 무자식의 운명을 선사했고, 그는 한 여자를 사랑했지만 인생은 그녀를 멀어지게 하고 그의 대학 동창의 아이까지 임신하게 만들었고, 그는 한 도시를 사랑했지만 인생은 그를 히말라야 산맥의 높이에서 그 도시를 향해 내팽개쳤고, 그는 한 문명을 사랑했지만 인생은 그가 악마로 변하고 모욕당하고 그 문명의 수레바퀴에 짓밟혀 망가지게 했다. - P165

"아니, 괜찮네. 난 하늘에서 떨어졌고, 친구에게 버림받았고, 경찰에게 폭행당했고, 염소로 둔갑했고, 일자리도 잃고 마누라도 잃었고, 증오의 힘을 배웠고, 인간의 모습을 되찾았어. 그런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뭐겠나? 자네도 잘 쓰는 말이겠지만, 이젠 내 권리를 요구해야지." - P166

"밖으로 드러난 상처나 구멍의 크기만으로 내면의 상처를 판단할 수는 없는 법이야." - P171

그가 거부하고 있는 것은 자신과 지브릴을 괴물로 보는 생각이었다. 괴물 좋아하네: 정말 터무니없는 발상이다. 진짜 괴물들은 저 바깥 세상에 있다 — 대량 학살을 자행하는 독재자들, 아동 강간범들, 할머니 살인마. - P175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이게 옳은지 저게 옳은지 밝혀달라고 요구하지 말아라. 계시의 시대는 오래 전에 끝났다. 창조의 규칙은 상당히 명확한 편이다. 이것저것 만들어 차려놓은 다음에는 그냥 내버려둬야 한다는 것이다. 만들어놓은 뒤에도 넌지시 힌트를 주거나 규칙을 바꾸거나 결과를 조작하거나 하면서 일일이 간섭한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지금까지 제법 자제력을 발휘해 왔는데 이제 와서 일을 망칠 생각은 없다. 물론 나도 참견하고 싶을 때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니, 꽤 많았다. 그리고 한 번은 참견했던 것도 사실이다. 알렐루야 콘의 침대에 걸터앉아 슈퍼스타 지브릴에게 말을 걸었으니까. 우파르발라냐, 니차이발라냐: 녀석은 그걸 알고 싶어했지만 나는 확실히 가르쳐주지 않았다. 지금 저렇게 알쏭달쏭해 하는 참차에게 수다를 떨 생각도 물론 없다.
난 이제 떠나겠다. 저 녀석은 곧 잠들 것이다. - P176

그래도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중요하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악의 본질, 악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어째서 점점 자라나는가, 어떻게 인간의 다원적인 영혼을 일관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가. - P199

참차는 지브릴의 처지를 부러워하는데 지브릴은 참차의 처지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것.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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