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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
에릭 재거 지음, 김상훈 옮김 / 오렌지디 / 2021년 10월
평점 :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에릭 제거 | 김상훈 옮김 | 오렌지디
역사소설 / p.344
(역사소설에 속하나 개인적으론 역사서로 생각)
1386년 크리스마스에서 며칠 지난 추운 아침, 한 강간 의혹 사건을 두고 ‘결투 재판’이 열렸고 결투 재판을 구경하기 위해 몇천 명이나 되는 군중이 모여들었으며 열여덟 살의 프랑스 국왕 샤를 6세와 신하들은 결투장 한쪽에 설치된 호화로운 관람대에 앉아있다.
어느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워 자신이 한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그들 사이의 다툼에 신이 어떤 판결을 내렸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결투 재판.
남편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르그리에게 잔인하게 강간당했다고 주장하는 마르그리트와 아내의 말에 분개해 결투 재판을 신청한 장 드 카루주 그리고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마르그리트가 거짓 증언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크 르그리. 과연 진실은? 그리고 오랜 끝에 임신을 하게 된 마르그리트의 뱃속의 아이 아빠는 누구였을까? 또한 이 결투의 승자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은 상복을 두르고 위병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검은 천으로 뒤덮인 높다란 처형대에 홀로 앉아 결투장을 내려다보고 있던 젊고 아름다운 마르그리트. 그녀는 결투 재판에서 카루주가 르그리를 죽여 승리를 거둔다면 자유의 몸이, 반대로 그가 죽임을 당해 결투에 진다면 위증을 하고 거짓 선서를 한 죄로 산 채로 화형에 처해질 운명에 놓인다.
곧 자기 운명이 결정되려고 하는 결투를 바라보며 그녀는 이번 사건을 고발함에 따라 자신과 남편을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게 했다는 사실에 뒤늦게 후회를 했을까?
그녀는 알고 있었다. 다수가 이 목숨을 건 처절한 결투에서 한 사내가 죽는 것뿐만 아니라 한 여자가 처형당하는 광경을 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p.12

프랑스 전역뿐만 아니라 해외로까지 확산되었을 정도로 큰 이슈가 되었던 이 실제 사건은 중세 문학 연구자 에릭 재거 저자가 10년에 걸쳐 노르망디와 파리를 샅샅이 누비며 모은 자료를 기반으로 재현한 14세기 말 카루주와 르그리의 최후의 결투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의 공동 각본을 바탕으로 영화화가 되어 현재 상영 중인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의 원작 소설이기도 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장소, 날짜 및 그 밖의 상세한 정보-서로에게 지불하거나 수령한 금액, 심지어 날씨까지도-들은 모두 실존하는 사료에서 인용했고, 혹 사료들의 기록이 서로 어긋나는 경우는 가장 개연성이 높아 보이는 기술을 채택했다고 한다.
중세 시대의 누아르라니! 실화라니! 혹하지 않을 수 없는 소재로 책 소개를 보고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기대감이 컸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결투 재판의 시대적 배경을 이루는 14세기 말의 프랑스의 모습만 주구장창 설명이 나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주인공들에 대한 설명.
아.. 배경부터 설명하나 보다 하고 읽는데, 설명이 끝이 없다. 그래서 뒷부분을 흩어보았다. 대사 부분이 간혹 눈에 들어오나 그 부분들 또한 그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한 발언의 발췌본일뿐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아니었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는 소설 영역으로 들어가 있지만 개인적으론 역사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인물들의 심리와 주고받는 대화와 상황들이 그려진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는다면 실망을 할 수 있다.(그 사람 여기 있어요.)
하지만 그 당시 중세의 갑주와 무기, 패션과 관습, 법 제도와 성적인 통념, 궁정 정치와 종교 등 폭넓은 지식과 14세기 말의 프랑스가 겪은 백년전쟁부터 십자군 운동까지... 그 당시의 지도와 저택 등 그림까지 더해져있는 이야기로 중세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다.

중세의 법전과 실제로 열린 재판 기록들을 보면 강간은 중죄이며 사죄(死罪)로 간주되었다고 한다. 단지 강간을 둘러싼 정황이 증인이 아예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법정에서 강간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극히 힘들었고, 중세 프랑스의 경우 남성 보호자의 동의 없이 피해 여성은 범인을 고소할 수조차 없었으니 피해자가 사실을 밝혀도 얻는 것은 수치와 불명예밖에 없어 범인들의 협박에 굴복해 침묵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르그리 또한 마르그리트에게 침묵을 요구했다. 하지만 마르그리트는 그러지 않았다.
사실 국왕을 배신한 대역 죄인 가문 출신이었던 마르그리트는 자신이 당한 치욕을 드러낸다면 죽음보다 더한 최악의 불명예가 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에게 이야기했고 최고법원까지 가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진술이 사실임을 거듭 맹세까지 했다.
나중에 다른 버전의 연대기에서는 그녀를 강간한 사람은 자신이었다고 자백한 사람이 나타났다며 그녀가 다른 인물을 르그리로 착각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고 아직 르그리가 결백하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파리 왕궁에서 인기 있고 국왕 직속 종기사중 한 명이면서 하급 성직자인 르그리와 대역 죄인 딸이자 백작의 가장 골치 아프고 반항적인 봉신 중 한 명인 카루주의 아내. 누가 봐도 불리한 상황 속에서 그녀의 증언이 그토록 단호하고 일관적이며 한결같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는 자신의 명예와 목숨을 건 결투가 누구에게는 희귀한 이벤트로 다가왔다니 씁쓸하다. 그리고 이론상으로 중죄에 속한 강간이 현실 세계에서는 처벌을 받지도 않고 고소도 당하지 않으며 보고조차 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는 중세와 심시 미약 자라서 동종 전과가 없고 반성하고 있다고 감행되고 있는 지금과 무엇이 다른가?! 제발, 제대로 된 죗값을 받길 바란다.
ps. 탄탄한 원작 소설로 만들어진 영화 너무 기대된다. 재미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이제 세 인물을 만나러 가볼까나~~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