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달 1 (일러스트 특별판) - 세 명의 소녀 고양이달 (일러스트 특별판) 1
박영주 지음, 김다혜 그림 / 아띠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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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에도 수많은 노랑이 있어. 파랑에도 수많은 파랑이 있고. 검정이 틀렸다는 게 아냐. 단지 네가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표현할 줄 아는 예술가였으면 좋겠어. p.26

소녀가 달을 그려달라는 꿈을 꾸었을 때 그 이야기를 들은 그는 상상이 안되니 달을 그려달라고 한다. 하지만 소녀는 검정으로만 색을 칠했고 그는 그럴 때마다 실망한 얼굴을 한다. 그리고 실망할수록 더욱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던 그는 결국 은율과 소녀만 남겨둔 채 떠나간다.

검은색 하나에도 얼마나 많은 검음이 존재하는지 그는 모를 것이다. p.28

이 소녀는 왜 다른 색은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일까? 검정에도 수많은 검정이 존재한다는 그 소녀의 말에도 더 많은 것을 보고 느꼈으면 좋겠다는 그의 마음도 다 이해가 되는 상황이지만 결국 혼자 남게 된 소녀가 안타깝다.

그가 떠난 뒤 은율마저 소녀의 곁을 떠나게 되었고 장례 절차를 치르던 중 꿈에선 본 소년, 노아가 그녀 앞에 나타나 달을 그려달라고 이야기한다.

"달을 그려 줘." p.32

우리는 모두 우주 어딘가에 자신의 별을 가지고 있어. 글로리아처럼 자신의 별에 태어나 살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떠도는 이들도 많아.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을 알고 거기에 있기란, 완벽한 상대를 찾아 그 옆에 있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니까. p.70

노아는 달을 그려달라며 매일 아침 카페에 찾아와 소녀에게 말을 건넸고, 소녀는 어느덧 동화 같은 이야기에 조금씩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렇게 고양이달을 찾아 떠나게 된 이야기부터 시작해 노아의 우주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함께 하는 동안 자신의 별을 찾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오직 한 사람만을 찾아 온 우주를 헤매는 노아의 마음을 그래서 더 가지려고 했던 글로리아와 샤벳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외로우니까. 누가 더 아닌 척하느냐의 문제. p.71

자신만의 별을 찾아 아주 오래 여행을 하다 포기하고 어딘가에 안착하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내가 찾던 별이 맞다며 믿었다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다 지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아는 아직 자신의 소녀, 고양이달을 찾아 포기하지 않고  우주여행을 계속한다. 

크리스털별에서 다음으로 가게 된 아리별, 그곳에서 소녀의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될까? 그리고 검은색만을 사용하는 이 소녀에게 노아가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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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달 1 (일러스트 특별판) - 세 명의 소녀 고양이달 (일러스트 특별판) 1
박영주 지음, 김다혜 그림 / 아띠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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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원하는 걸 벽면에 그리기만 하면 다 얻을 수 있는 바라별.

표현이 서툰 이들은 그림을 대신 그려줄 화가를 찾아갔으나 아무리 뛰어난 화가라도 설명만 듣고 다른 이의 마음속에 있는 형상을 그대로 표현해 내는 건 불가능했고 그래서 소망 통역사 노아가 그들의 마음을 전해준다.

그러나 정작 노아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p.40




그런 그에게 고양이달을 보며 언덕에 앉아있던 그 소녀는 어쩌면 위로였고 친구였으며 사랑하는 이었을지 모른다. 모든 이를 비추어야 했던 고양이달이 정작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지 않냐며 안타까워하던 소녀. 그 소녀가 고양이달이었을까?

자신에게 단 하나의 마음이 허락된다면 노아였으면 했다던 소녀, 노아를 만나 행복하다는 얘기를 하던 소녀.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노아는 사랑했던 그 소녀와 사라진 고양이달을 찾을 수 있을까? 찾아가는 그 과정 속에서 어떤 인물을 만나며 성장해나갈지 궁금해진다.





살면서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적 있어? 혹은 누군가로 인해 네 삶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그런 적은? '그 누군가를 만나지 않았다면' 하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고 절대적인 인연이 있었는지를 묻는 거야, 지금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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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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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프란츠 카프카 |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세계문학 / p.126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침대에서

흉측한 모습의 한 마리 갑충으로 변한 것을

알아차렸다.

「변신」을 처음 알게 되었던 건 작년 둥이들과 함께 읽었던 청소년 소설 「변신 인 서울」을 통해서였다. ‘변신’에서는 직장인 그레고르가 갑충으로 변했다면 ‘변신 인 서울’에서는 학생인 반희가 토끼로 변하며 일어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엔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고 시험도 보지 않는다며 그 순간을 즐기던 반희를 보며 덩달아 나도 좋겠다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설상가상 자신의 휴대폰으로 자신도 모르는 내용의 메시지가 오면서 이야기에 긴장감도 주기도 했던 이야기.

변신의 결말을 모른 채 읽었기도 했고 책 소개만 보고 신청해서 읽었던 책이었기에 ‘당연히’ 토끼로 변한 반희가 사람으로 돌아와 희망의 메시지와 함께 이야기가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가 결말에 큰 충격을 받았던 이야기였기도 하다.

그때 충격이 너무나 컸던 걸까?! 정작 원작 「변신」을 읽을 땐 충격보단 ‘왜?’라는 의문만이 가득했다.



눈을 떠보니 갑충으로 변한 그레고르. 왜 그는 변한 자신의 모습에 놀라지 않는 걸까? 그 상황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사람으로 돌아가고자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왜?

오히려 그는 변한 모습으로 어떻게 해서든 일어나 회사에 가려 한다. 그리고 자신의 현재 상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게 될 불편한 일들을 견뎌내고 가족을 최대한 배려함으로써 참아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까지 한다. 급기야 부모님과 여동생이 이런 멋진 집에서 이런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준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며 자부심까지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 갑충으로 변한 걸 모르나 싶다가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 상황들이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5년 동안 착실하게 회사를 다녔음에도 일정대로 새벽기차를 타지 않았다고 집으로 찾아온 지배인은 또 어떠한가?! 집으로 찾아와 차분하고 분별 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직무 태만 일 줄 몰랐다며 오늘 아침 사장님이 그에게 맡긴 수금에 관해 들었을 때도 그럴 일이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문을 걸어 잠그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냐며 최근 영업실적이 형편없었다는 사실까지 부모 앞에서 언급한다.

지배인이 이상한 건가?! 아니면 그레고르의 평소 행실의 문제인가!? 착실하게 다닌 회사에서 보일 행동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가족들은 갑충으로 변한 그를 보고 놀라며 그를 방에 가두기에 급급하다.

처음엔 그레고르를 여동생이 보살펴주는듯했다. 아들이 갑충이 되었으니 자신들의 앞날을 걱정하며 아버지는 자신이 모아둔 돈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고 그 사실을 안 그레고르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였으면 빚 갚는데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지 왜?!라고 따졌을 거 같은데... 너무 당연시된 것인가?!

처음엔 고마워하던 것도 그 행동이 계속된다면 익숙해져 당연하게 여기기 마련이다. 그들 또한 그레고르가 벌어다 준 돈을 받으며 처음엔 고마워했다. 그 또한 돈을 흔쾌히 내놓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에 익숙해져 버려 이렇다 할 따스한 정 같은 것이 더 이상 오가지 않게 된 상황.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집에서 아무 일자리 없이 지내는 상황에서 그레고르가 집의 살림을 책임지는 입장이었음에도 결국 그레고르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상처가 악화되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레고르의 비참하고 역겨운 모습에 익숙해져가던 가족들은 그가 가족의 일원이라는 사실도 잊어간다. 오히려 그가 죽기를 바랬고 그는 그렇게 혼자 어둠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무엇을 독자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소통과 이해에 대한 단절?? 개인의 소외? 변신과 함께 수록된 「시골 의사」는 더 어렵게 다가왔다. 작품 해설에서 환자가 의사와 동일인임을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아 보인다라고 적힌 문구를 보고 오마이갓을 외쳤던! 전.. 몰랐습니다만...ㅠㅠ

ps. 신기한 건 갑충을 보고 그레고르로 바로 인식하던 가족들, 어떻게 딱 보고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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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2021-10-21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작품을 카프카가 당시 놓여있던 현실적 삶(아버지의 장식업, 매부의 공장, 자신의 보험업을 오가느라 고된 일상이었다고 해요)에서 오는 고통으로 읽었어요. 유머리스한 리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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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농장

조지 오웰 | 박경서 옮김 | 열린책들

세계문학 / p.157

항상 재독했다는 다른 분들 피드를 보며 ‘난 언제 재독해보나, 재독하면 처음 읽었을 때랑 다른 느낌일까?’ 궁금해했었다. 그래서 열린책들 35주년 기념판에서 동물농장을 봤을 때 ‘나에게도 재독의 기회가!’라며 좋아했다. 그런데 분명 재독인데, 왜 난 처음 읽는 느낌이 드는 걸까?

조지 오웰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정치적 견해를 형성시켜 준 경험을 적은 우크라이나판 서문으로 시작하는 책을 보며 순간적으로 ‘응?’을 외쳤고, 결국 그전에 읽었던 책을 찾아 펼쳐놓고 비교까지 했다. 번역자가 틀리니 문체가 조금 틀릴 뿐 같은 내용이 맞다.

가볍게 재독하려던 마음은 같은 책이지만 문체에서 주는 느낌에 따라 또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싶으면서 제대로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재독이지만 처음 읽는 자세로 정독을 한 동물농장, 여전히 복서의 결말에 마음이 아프고, 무지한 민중들이 선동되어가는 과정들이 지금의 세상을 돌아보게 만든다.




7계명

두 발로 걷는 자는 누구나 적이다.

네 발로 걷거나 날개가 있는 자는 누구나 친구다.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p.39

존스 씨와 일꾼들에게 봉기를 일으켜 '매너 농장'을 '동물 농장'으로 만드는데 성공한 동물들, 처음엔 성공적인 봉기 같아 보였다. 하지만 다른 동물들보다 똑똑했던 돼지들이 다른 동물들을 가르치고 조직하는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했고 자신들을 위한 사병까지 만들었으며 풍차 건설을 주장한 이상주의자 스노볼마저 내쫓는다.

이 과정에서 동물들이 지켜야 할 불변의 규율이 되었어야 했던 '7계명'이 조금씩 바뀌어 간다. 돼지들이 침대에서 잠을 자기 시작하자 '침대에서 자서는 안된다.'가 '시트를 깔고 침대에서 자서는 안된다.'로, 술을 마시자 '술을 마시면 안 된다.'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안 된다.'로, 자백에 따른 처형이 일어나자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가 '이유 없이 죽여서는 안 된다.'로....

그렇게 7계명은 온데간데없고 단 하나의 계명만 남아 있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p.142

처음의 7계명을 기억하며 의문을 표하는 동물들이 있을 때마다 중간에서 그들의 기억이 잘못되었다며 설마 존스 씨가 돌아오길 원하는 거냐고 말하던 스퀼러, 그런 그의 옆에서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라고 외쳐 되는 양들,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더 열심히 일하자', '나폴레옹 동지는 언제나 옳다'라는 좌우명으로 자신을 몰아붙이던 복서.

무엇인가 잘못되어 간다는 걸 은연중에 알았지만 정확하게 무엇이 변화해가는지 모르던 그들, 좋지 않은 일이 생길 때마다 스노볼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워도 그가 존스와의 한패라는 사실이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고 말해도 글을 모르던 동물들이었기에 결국 자신의 지도자들이 하는 말만 믿었고 자신의 기억이 잘못되었을 거라며 나중엔 의문조차 가지지 않는다.

지도자가 말한 대로 정말 더 나아진 세상이 맞긴 한 걸까? 예전과 달라진 게 없는 삶을 살게 된 그들을 보고 있자니 지금 세상 또한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예전과 같은 세상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지 오웰은 어느 꼬마가 굽은 길을 돌 때마다 말에게 채찍을 하는 것을 보고 만약 저 동물이 자기들의 힘을 인식한다면 우리 인간들은 동물을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없을 것이고 인간들이 동물들을 부려먹는 것은 부자들이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마르크스의 이론을 동물들의 관점에서 분석해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전체주의’ 선전이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문명인들의 의견을 얼마나 손쉽게 통제할 수 있는지 깨달았던 저자가 이에 대해 경각심을 높이고자 집필했다는 동물농장.

지금 우리는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바보들! 바보들 같으니라고! 바보들! 마차 옆에 뭐라고 쓰였는지 보이지 않아?

폐마 도살업 및 아교 제조업

복서! 뛰어내려! 어서 뛰어내려! 저들이 너를 데려가 죽이려고 한단 말이야! p.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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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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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똘스또이 | 석영중·정지원 옮김 | 열린책들

세계문학/p.127

카이사르는 사람이다, 사람은 죽는다,

그러므로 카이사르도 죽는다.

p.73

성공한 판사이자 세련된 교양인, 한 집안의 가장이었던 이반 일리치는 어느 날 새로 이사하는 집에 커튼을 달다 의자에서 떨어지며 옆구리를 부딪힌다. 큰 사고도 아니었고 통증도 사라졌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긴 이 사건이 그에게 죽음으로 다가오게 할 사건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처럼 준비되지 아니 영영 준비 못 할지도 모를 죽음이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면 난 어떤 행동을 보이게 될까?! 이반 일리치가 죽음을 부정하다 깨달음을 얻고 죽기까지의 과정을 세세히 보여주며 만약 당신이 이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온다.




죽음, 그래, 죽음, 저들은 아무도 몰라.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아. 날 불쌍하게 여기지도 않아. 그냥 놀 따름이야. 저들도 똑같아. 똑같이 죽게 될 거라고. 멍청이들. 내가 조금 먼저 가고, 저들은 조금 늦게 갈 뿐, 결국엔 다 마찬가지야.

p.70

이반 일리치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모두 그를 좋아했다는 설명과 함께 뒤이어 바로 나오던 그의 죽음의 소식. 그런데 그의 부고를 전해 듣자마자 동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 그의 죽음이 가져다줄 자신과 지인들의 인사이동이나 승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따지기 바쁘다. 그리고 죽은 것이 자신이 아닌 그 사람이라는 데에서 모종의 기쁨마저 느낀다.

어쩌겠어, 죽은걸. 어쨌든 나는 아니잖아. p.10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분명 그를 좋아한다던 동료들이지 않았나? 그런데 더 놀라웠던 건 이반 일리치의 아내의 행동이었다. 남편의 사망 시 국가에서 받아 낼 수 있는 모든 지원금의 종류를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추도식에 온 동료에게 혹여나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 이외에 돈을 더 긁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추도식에 온 남편 동료에게 슬쩍 물어본다.

죽음이라는 상황에서 가족과 동료들이 보여주던 모습들이 왠지 모르게 거북함을 느끼게 만든다. 가족과 동료 모두 그의 죽음 앞에 거짓의 가면을 쓰고서 행동해왔다면 오히려 하인 게라심만이 제대로 죽음을 바라본다. 결국은 이반 일리치의 마지막 날까지 유일하게 위로가 되던 사람이 되기도 했던 게라심.

하느님의 뜻이지요. 우리도 결국은 모두 그곳에 갈 텐데요. p.22




살고 싶어, 정말 살고 싶어.

p. 115

편안하고 유쾌하며 품위 있게라는 신조를 가지고 생활하던 이반 일리치.

그가 아내를 맞이함에 따라 자기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과 자신이 속한 상류 사회가 인정해 주었기 때문에 결혼했다고 할 만큼 '위선' 속에 살고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특히 권력이 있음에도 오히려 함부로 휘두르지 않으며 약자를 존중한다. 그런 그의 모습에 그들이 자신을 존경한다는 것을 알고 더 위선 속에서 우월감을 느꼈던 그.

그런 그가 정작 자신의 죽음 앞에서 사람들이 보이던 위선적인 행동에 분노한다. 하지만 죽음으로 가는 과정을 통해 그 또한 자신의 삶 역시 올바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처음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죽음을 부정했다. 그리고 죽어가는 자신과 달리 멀쩡히 가족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으며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억울해하며 절망 속에서 빠지기도 했다. 결국엔 죽음을 수용하며 자신의 지나간 삶 모든 것을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되짚어 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끝내 '용서해 줘'라는 말은 하지 못했던 이반 일리치.

한 사람에게 죽음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가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죽음에 대한 자세를 생각해 보게 한다. '내가 그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도 저러했을까?!' 그를 통해 죽음에 대해 간접 체험을 해본다. 그리고 어릴 때 멀고도 먼 죽음이 나이가 들면서 축하하는 일보다 죽음을 애도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몸소 깨닫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조금은 함께 하는 이들과 더 오래오래 하고 싶다. 분명 나이가 많아질수록 더 가까워질 죽음이지만, 언제 찾아올지 모를 죽음을 떠올리며 막연히 불안해하는 것보다 죽음을 인식하되 내일을, 미래를 계획하며 삶의 행복을 누려봄이 좋지 않을까? 하루하루 행복으로 채워나가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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