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서서 가만히 - 유물 앞에 오래 서 있는 사람은 뭐가 좋을까
정명희 지음 / 어크로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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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서서 가만히

정명희 | 어크로스

에세이 / p.284

역사 과목은 나에게 있어 암기과목이었고, 날 힘들게 했던 과목이었다. 그래서 둥이들은 조금이나마 재미있게 역사를 접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생각하는 박물관’ 수업을 초1 때 등록했었다. 그렇게 세시풍속 수업부터 시작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직접 유물을 보며 시대별 역사를 배우기도, 문화유산을 직접 만들며 역사를 배웠었다.(왠지 덩달아 나도 재미있는 수업에 참여한 느낌!😌)

때로는 아이들이 만든 문화유산을 보며, 때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의 유물을 보며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었던 시간, ‘생각하는 박물관’을 통해 알게 된 ‘키즈아틀리에’ 베르나르 뷔페展을 관람하며 도슨트 해설의 재미를 제대로 알게 되었던 그때 그 시간을 떠올리게 했던 신간 에세이 「멈춰서서 가만히」였다.

정말 마지막으로 멈춰서서 가만히 본 유물(혹은 전시회)이 뭐였더라?! 코로나 이후 거의 끊어져 버린 문화생활 ㅠㅠ




그림에는 그것을 아는 자가 있고,

사랑하는 자가 있고,

보는 자가 있고,

모으는 자가 있다.

(……)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이 아니다. p.17~18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나에게 있어 이 말은 유물 혹은 전시회, 공연을 볼 때면 특히 더 절감하게 되는 말이었고, 아는 만큼 재미도 배가 되어 돌아오게 했다. 그래서 「멈춰서서 가만히」의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 정명희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소개해 주던 유물 하나하나가 더 재미있게 다가왔다. 그리고 귀엽게까지 느껴지던 유물이라니!😆




높이 11센티미터라는 한 뼘도 되지 않는 작은 크기의 반전에 실물을 본 관람객들이 놀란다던 '은으로 만든 표주박 모양병과 고리'. 크기도 놀랍지만 정말 정교함에 입이 떡 벌어진다. 이 유물을 보며 저자는 어떤 소중한 것을 담아볼지 생각하고 덩달아 나도 생각해 봤던 시간.




'책가도'를 보며 저자가 어릴 적 아버지가 매주 한 권씩 사주던 책으로 채워지던 책장을 떠올릴 땐 현재 나의 책장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700년 전의 고려 불상에서 사람들이 남긴 바람을 적은 '발원문'을 보고 나온 사람들이 자신의 바람을 남길 수 있도록 기획한 저자를 따라 나의 바람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기도 했으며,






저자의 눈에 퇴근하는 이의 뒷모습처럼 보였다는 함윤독의 '기려도'를 보고 빵 터지기도, 누군가에게 드래곤볼로 보였다는 작고 반짝이던 물건을 보며 신기해하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멈춰서서 가만히」 를 통해 다양한 유물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던 유물은 사후의 삶이 현재와 같기를 바라는 이들의 마음과 함께 묻히는, 주로 무덤에 부장용으로 넣은 것으로 떠나는 이가 덜 외롭기를 바란 마음이 담겨있다는 사실에 마음마저 따뜻하게 만들었던 '신라 토우'와 바라보면 같은 표정을 짓게 하는 신기하면서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짓게 하던 '얼굴무늬 토기'였다. (뭔가 행복함이❤)

유물과 함께 더해진 저자의 이야기가 시적으로 표현될 때가 있었는데, 그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많아 직접 박물관을 관람한 느낌마저 들었던. 정말 눈 호강한 시간이었다.😍

조만간 국립중앙박물관 나들이를 계획해 봐야겠다. 그땐, 어떤 유물 앞에 멈춰서서 가만히 보게 될까?

▶ 유물은 아무 연결고리가 없는 이들을 일순간 우리로 묶기도 하고, 항상 수족냉증에 시달리는 이의 마음 한구석에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기도 한다. p.45

▶ 긴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 전해진 유물은 자신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과 우리를 이어준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전체의 일부라는 느낌이 위로가 되는 날이 있다. p.50

▶ 한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타임슬립 영화처럼 어떤 공간은 다른 시간을 살았던 사람을 연결하고 만난 적 없는 이의 삶을 바꾸기도 한다. …… 당신에게도 영감을 주는 장소가 있을까? 누구와 함께이며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p.80






+ 어크로스 북클럽 A.B.C 참여자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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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자리
고민실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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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자리

고민실 | 한겨레출판

한국장편소설 / p.248

어릴 때, 확고한 꿈을 가지고 나아가는 친구들을 볼 때면 나도 빨리 꿈을 가져야 한다는 조급함이 생기곤 했다. 아마도 거침없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앞서 나가는 그 친구들은 자신의 자리를 만들면서 살아가고 있고, 나는 그렇지 않다는 아직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에 뭐라도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더 아등바등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영의 자리」를 읽고 보니 그 시절부터 1이 되기 위해 노력하던 0이었지 않았나 싶다. 곧 1이 되겠지만 아직은 아닌 0에 가까웠던 시절. 0에서 1로 변모하는 과정으로 설레면서도 우울한 과정 말이다.

‘나’ 또한 무엇이 되려고 한 적이 없었던, 수험생이어야 하니까 수험생으로 살았고 취준생이어야 하니까 취준생으로 살았던 아직 ‘1’이 되지 못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런 그녀가 한때의 나를, 그리고 지금 어쩌면 그 과정 속에 있을지도 모를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던 시간이었다.




👨‍⚕️유령이 또 왔네.

🙎‍♀️네?

👨‍⚕️유령이라고.

🙎‍♀️유, 뭐요?

👨‍⚕️몇 번을 말해. 약사가 나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유령이라니까. 19

20대에 정리해고된 ‘나’는 급하게 이직을 해보지만 그 회사마저 경영 악화로 1년을 겨우 넘기고 폐업을 한다. 결국은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구직활동을 시작하면서 취준생 대신 백수라 불리는 사람이 되었고 무엇이든 되어야 한다는 위기감에 알바를 알아본다.

그렇게 나이 무관, 성별 무관, 학력 무관, 경력 무관이라는 누구나 일할 수 있는 일이면서도 누구라도 대체할 수 있는 일을 플라워 약국에서 일하게 된 ‘나’.

그녀가 면접을 보러 온 자신을 보자마자 ‘유령’이라 부르던 약국의 김 약사와 또 한 명의 유령 조부장과 함께 일하며 기꺼이 유령이 되고자 한 이야기이자 오고 가는 손님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전환점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 「영의 자리」.





'나'가 조금씩 자신만의 존재를 찾아가던 그 과정에 나도 모르게 응원을 했고 저자의 응원을 받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어쩌면 그녀와 조부장에게 유령이라고 말했던 김 약사조차도 유령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가 한때 혹은 지금 유령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도 저자의 말처럼 1이 되지 못한 0의 존재가 희미해지고 희미해져가는 유령의 존재이기만 한건 아니지 않을까?

영에 어떤 숫자를 더하든 영은 사라지고 그 숫자만 남지만 영에 어떤 숫자를 곱하면 그 숫자를 영으로 바꿀 뿐만 아니라 아무리 많이 늘어놓아도 영은 영 외에 될 수 없고, 다른 숫자에 기댈 때 영은 우주의 단위가 될 수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0도 하나의 수이자 하나의 자리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왠지 모르게 우리 아이들에게 조금은 끊임없는 경쟁과 불평등 속에서 여유를 가지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수 있길 영의 자리를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지만 어떤 관계를 맺을지는 선택이 가능하다는 '나'의 생각처럼 때론 그 관계에 너무 얽매이질 않길 바라본다.

나는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사람들은 계속 모여들었다. 0은 다른 숫자 뒤에 채워 넣기만 하면 얼마든지 큰 수를 표기할 수 있다. 어쩌면 인도에서는 신의 무한한 능력을 표현하기 위해 0을 발명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선창을 시작했다. 나도 피켓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함성에 묻히는 것 같아도 분명히 제대로 하나의 소리를 더하고 있었다.

p.233

고민실의 한국장편소설, 「영의 자리」인상 깊은 글귀

유령이 되기로 했다. 유령이라고 하니까. 믿음 앞에서 논리는 무용했다. 사람들은 사실을 근거로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은 이야기를 선택할 뿐이다. p.32

바다에 가자. 죽지 않기 위해서는 나쁜 기억이 중요할지 몰라도 살기 위해서는 좋은 기억이 필요해. p.56

조제약은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지만 일반약은 누구나 쉽게 쇼핑한다. 열이 나면 해열제, 속이 거북하면 소화제, 설사가 나면 지사제, 염증에는 진통소염제. 스스로 판단하여 복용 여부를 결정한다. 부작용은 오롯이 내가 감당할 몫이다. p.167

이제 의학은 마음이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약까지 만들어냈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미신을 믿는다. 건강에 해로운 줄 알면서 단 거를 먹고 담배를 피운다. 치료하기 어려운 병을 그저 견디기 위해서는 진통제라도 필요했다. 어쩌면 신이 사라진 공백을 메우기 위한 대체물을 찾고 있는지도 몰랐다. p.179~180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관계를 맺는다. 관계와 관계 속에 사람이 있다. 246



+ 하니포터 3기 참여자로 한겨레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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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쓰레기는 재활용되지 않았다 - 재활용 시스템의 모순과 불평등, 그리고 친환경이라는 거짓말
미카엘라 르 뫼르 지음, 구영옥 옮김 / 풀빛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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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쓰레기는 재활용되지 않았다

미카엘라 르 뫼르 | 구영옥 옮김 | 풀빛

환경문제 / p.144

베트남 하노이 외곽의 민 카이 마을. 전 세계에서 실려온 플라스틱 쓰레기가 모이는 곳이다. 주민 대다수는 쓰레기들을 해체하고 분류하고 재가공하는 일에 종사한다. 생계를 잇기 위해서다. 작업의 명분은 재활용이다. 하지만 이 마을을 뒤덮고 있는 것은 극심한 환경오염이다. 주민들의 건강이 온전할 리 없다. 쓰레기를 재활용한다는 마을에서 사람이 쓰레기로 전락하고 있다. p.4

한때 동 대표일 때, 우리 아파트의 분리수거 쓰레기를 수거해가던 업체에서 비용을 인상해달라는 안건이 올라와 회의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중국이 더 이상 세계의 쓰레기통이 되기 싫다며 쓰레기 수입을 중단을 선언하면서 생긴 여파라는 걸 알게 되면서 아마 그때 처음으로 쓰레기에 대한 걱정을 온몸으로 체함 해본 게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저 일회용과 비닐봉지 대신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사용하고, 100% Recycled polyester 가 표시된 상품을 사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제대로 분리수거를 하고 있으니 나는 어느 정도 지구 환경을 개선하고 기후 변화 속도를 늦추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어쩌면 그 작은 위안으로 하루하루를 내가 할 일은 다 했다며 보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각양각색의 플라스틱에 의해 점령당한 마을을 상상할 수 있는가? 주택의 문 앞뿐만 아니라 수로를 따라, 강 주변, 밭, 지붕 위, 나무 아래, 건물 앞마당 등 모든 곳에 쓰레기가 차지하고 있는 마을.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 마을은 현재 현실에 존재하는 곳이었고, 그 쓰레기들이 그 마을에서 생겨난 것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수입되어 온 것이 사실이 더 마음 아프게 한다.

저자가 현장을 누비며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은 실증적인 현실 탐사 보고서 「당신의 쓰레기는 재활용되지 않았다」.

'정말 매주 버리는데도 매주 분리수거 현장에 새롭게 쌓이는 수많은 쓰레기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어떤 과정을 거쳐 재활용되고 있는지 제대로 생각을 해본 적이 있던가?!'라는 질문조차도 부끄럽게 만들며 그 이면에 숨은 사실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던 이야기들. 정말 내 눈앞에 사라진 쓰레기는 어쩌면 '재활용'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출발점에 서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친환경'과 재활용 로고에 가려진 자본주의와 베트남 농민의 가난과 불평등을 보지 못하는 가면 아래 속에서 말이다.



정말 쓰레기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점점 더 큰 적을 만나는 기분으로, 이번 책을 읽으며 마주하게 된 재활용 시스템의 모순은 친환경과 재활용이라는 환상 속에서 살아가다 최종 보스를 만난 격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힘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저 손놓고 있을 수만도 없다. 하지만 개인이 무엇인가 바꾸기엔 큰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조금씩 변해갈 수 있도록 다 함께 재활용이 좋은 해결책이 맞는지 의문을 가지고 생각하고 고민하며 해답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더 나아가 기업들도 제발 동참할 수 있길 바라본다.

ps. 온라인 서점 책 소개에 나와있던 사진들이 책에도 포함되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베트남 민 카이 마을의 쓰레기의 끝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도 알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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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쓰레기는 재활용되지 않았다 - 재활용 시스템의 모순과 불평등, 그리고 친환경이라는 거짓말
미카엘라 르 뫼르 지음, 구영옥 옮김 / 풀빛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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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서 2018년 넘어갈 무렵 중국이 더이상 세계의 쓰레기통이 되기 싫다며 쓰레기 수입을 중단을 선언하자 당장 쓰레기 업체에서 쓰레기 비용 처리에 대한 비용을 인상을 했었다. 그때서야 덜컥 겁이 났었다. 만약 이 쓰레기들을 업체에서 가져가지 못한다고 하면, 이 쓰레기들은 어떻게 처리가 되는 것일까?

하지만 그때만 잠깐 고민하고 걱정하다 다시 무뎌져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텀블러를 사용하고 분리수거를 제대로 한다며 나름 지구 환경을 개선하고 있는데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어떤 과정을 거쳐 재활용이 되고 있는지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는 걸 이번 책을 통해 제대로 알게 되었다.

정말 재활용은 좋은 해결책이 맞는 것일까? 계속 질문을 던지게 하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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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 이야기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4
엘리자베스 개스켈 지음, 박찬원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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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이야기

엘리자베스 개스켈 | 박찬원 옮김 | 은행나무

세계문학 / p.363

당신은 살아가면서 당신이 가장 사랑하고, 당신을 유일하게 사랑하는 생명체가, 차라리 죽음이 행복한 것일 정도로 모두에게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을 보게 되리라. 바로 이 피의 이름으로!

p.114

말에는 힘이 있다. 그래서 가끔 좋지 않은 말을 할 때면 말이 씨가 될 수 있으니 말조심하라고 주의를 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힘이 있는 말에 저주가 더해진다면 어떠할까? 그것도 하는 입장이 아닌 받는 입장이 된다면? 생각만으로도 불안감이 생기고 ‘혹시나’하는 공포에 잠식되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여기에 그 무서운 저주를 받은 자가 있었으니, 바로 브리짓의 개를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다는 이유로 총질을 해 죽인 기즈번 씨이다.




그가 유일하게 가장 사랑하는 생명체가 차라리 죽음이 행복한 것일 정도로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을 보게 되리라는 저주를 받은 그. 브리짓의 축복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모습을 본 나였기에 그의 저주의 실현 여부에 집중을 하며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저주받기 전으로 되돌릴 수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으로 끝나던 이야기!

아, 정말 이 저자님 또 나한테 개인 면담 신청하게 만든다며 아쉬워하며 다음 장으로 넘겼는데! 떡하니 있던 ‘2장’ ㅋㅋㅋ 순간적으로 ‘앗싸’를 외치며 빠르게 3장까지 읽어내려간 네 번째 이야기 ‘빈자 클리라 수녀회’였다.

이 이야기를 포함해 「고딕 이야기」를 통해 만난 총 일곱 편의 이야기 중

둥이들이 어릴 때 혹여나 잃어버릴까 두려워 두 손 꼬옥 잡게 했던, 누구나 한 번쯤 가졌을 가까운 사람이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원초적인 두려움을 일깨우던 첫 번째 이야기 '실종', 나름의 반전과 함께 미스터리 벽장의 존재 유무에 대해 확인해 보고 싶게 했고 희망자가 있다면 정확한 주소를 제공해 주겠다는 저자의 말에 혹 손을 든 사람이 있을지 궁금하게 한 세 번째 이야기 '대지주 이야기', 한없이 타락하는 아들에게 희생하며 결국 마지막 부모의 모습에 나를 울컥하게 했던 여섯 번째 이야기 '굽은 나뭇가지', 여러 구전 이야기와 동화를 변주한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의 마지막 이야기 '궁금하다, 사실인지'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고딕 소설이란 명칭은 중세의 건축물이 주는 폐허스러운 분위기에서 소설적 상상력을 이끌어 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으로 중세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공포와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유럽 낭만주의 소설 양식의 하나이다.

꿈을 잘 꾸는 나로서는 무서운 것을 보면 꿈에 나타날까 무서워 잘 보지 못 보지만 고딕은 그 특유의 기이한 현상에서 오는 묘한 분위기가 주는 공포감이 매력적인 장르라 곧잘 읽는 편이다. 그래서 무서우니 한밤중에 읽지 말라던 멘트까지 더해지고 제목조차도 「고딕 이야기」였던 책에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책에선 그 오싹함을 느끼지 못해 아쉬웠다.

그럼에도 이야기가 진행되며 조금씩 밝혀지고 이어지던 연결고리에 빠져들게 했던 이야기였고, 완전하게 이야기가 완성되고 나서 모든 것이 맞추어져 '와~'하게 만들기도 했던 이야기였다. 확실히 저자만의 매력이 있는 필력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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