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새는 울지 않는다 푸른도서관 46
박윤규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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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는 말한다. 차마 설명할 수 없는 역사를 위하여 이 책을 썼노라고.
서불진언 언불진의(書不盡言 言不盡意, 글은 말을 다할 수 없고, 말은 마음을 다할 수 없다)고 오월의 정신을 어떻게든 써내고 싶지만 그날을 정면으로 다루기엔 많은 심적 고통을 동반해야 했다. 한 마리 방울새가 되어 바위에 머리를 부딪치는 기분으로 쓰고 지우고 했다는 말이 진정성있게 다가온다.
책을 읽는 우리들조차 편치 않고 죄스런 마음이 드는데....
누군가를 그랬다. 우리 모두는 광주에 일정부분 빚을 지고 있다고. 그 말이 새삼 가슴을 울린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 일부의 사람들이 런 생각을 가졌더랬다. 그랬기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 난 게지.
어쨌거나 시간은 흐르고 어린책에서도 5.18을 소재로 한 책들이 간간히 나오고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최근에도 할머니의 기억 속 여행을 통해 광주를 보았다.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광주의 오월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혼마저도.
방울새의 몸뚱이에 깃든 영혼이 된 방울이가 보고 듣고 생각한 끔찍했던 광주를 이야기 한다.
방울이는 전국 어린이 명창대회에서 대상을 탄, 이제 막 초경을 시작하는 여리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였다. 어리다는 것도 통하지 않았다. 무자비한 폭력성은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군인이었더라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고민이 없었을까?
"안 됩니다. 시위 진압 훈련 받을 때도 시위대는 불순분자이고 빨갱이와 같다고 했지만, 실제 빨갱이가 아니라는 건 다 알지 않습니까? 아니, 설사 저 가운데 빨갱이가 몇 명 있다고 칩시다. 그렇다고 해도 벼룩이 몇 마리 잡자고 초가삼간을 다 태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지금 광주 시민이 거의 다 나온 거 안 보이십니까? 처음엔 대학생만 시위를 했는데 지금은 전 심니 시위대라고요!"

책의 곳곳엔 판소리의 용어는 물론 맛보기 식 밖에 되지 않더라도 짤막하게나마 소개되고 있으며 그 지방 사투리와 우리말 표현이 눈에 띄었다. 
제목의 방울새가 울지 않는 것이 방울새가 눈물샘이 없어서라고 했지만 울다지쳐 말라 버린 것은 아닐까?, 싶지만 우리는 속울음 조차 듣지 못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들의 핏빛 울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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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려요? 나이지리아
베벌리 나이두 지음, 정미영 옮김 / 검둥소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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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베벌리 나히두. 작가 소개를 보면,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정권 치하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나고 자랐다. 그 당시의 경험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백인 아이로서 저는 이 나라에서 자행되는 끔찍한 불평등에 대해 아무런 의문을 갖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비로소 이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저항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저 또한 그 문제의 일부분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

<들려요? 나이지리아>뿐 아니라 오늘 배송되어 온 다른 책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야기>또한 작가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동안 변방에 머룰렀던 나이지리아나 케냐와 같은 나라들의 민주화 투쟁은 잘 모르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매우 흥미로웠다. 책을 덮는 순간 표지에 적힌 '검둥소'란 출판사 명이 그제야 눈이 들어온다. 이어 '역시~'라고 속엣말을 한다. 대체적으로 검둥소의 책들은 인권이나 평화에 대한 주제를 다룬다. 새삼 검둥소 브랜드에 고마움이 왈칵 든다.^^  모체라 할 '우리교육'의 책들도 그렇지만 주제들이 무겁긴 하다.
첫 페이지부터 엄마의 죽음에 대한 서사가 펼쳐진다.
국민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기자인 아버지에 대한 보복 테러가 시작된다. 황동 단추로 일컫는 소위 권력을 쥔 자들은 부정과 부패를 일삼은 자신들을 까발리는 기사를 작성하는 폴라린을 곱게 볼리 없다.  갑작스레 엄마가 살해되자 위기를 느껴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두 아이를 런던으로 밀입국시킨다. 반콜부인이 안전하게 아이들을 델레 삼촌에게 인계 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나 변수는 있는 법. 그뿐인가 약삭빠르고 잇속만 챙기는 사람들은 늘 주인공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하지. 샤데이와 페미는 삼촌을 찾아가지만 실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들 남매는 춥고 배고프고 낯선 땅에서 고아와 다름 없는 신세가 된다. 우여곡절 끝에 사회복지사는 임시 보호인의 집을 거쳐 맘씨 좋은 그라시 아줌마와 로이 아저씨 댁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지만 텃세를 부리는 아이들 꼭 있다. 약한자에 한 없이 강하고 강한자에 약한, 비겁한 무리들.
미처 나이지리아를 빠져 나오지 못한 아빠에게 해가 될까 싶어 자신들의 정확한 이름 등을 차마 말할 수 없는 아이들의 심리나 자신을 믿고 가족의 얘기를 들려준 친구 마리암이 소말리아 내전으로 피난을 온 같은 처지의 마리암을 배신한 것에 대한 괴로움 등을 과장되지 않게 잘 그렸다. (난민)
기적처럼 아버지가 밀입국하여 같은 영국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 남매. 그러나 망명신청을 하지 않아 본국 소환을 요구하는 나이지라에 맞서 샤데이와 페미는 7시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 일이 방송으로 보도되고  아버지가 석방된다. 또한 행방불명된 삼촌이 방송을 보고 찾아온다. 삼촌 역시 나이지라아 군사정권의 부패를 알리는 언론에 협조하고 있었던 이유로 살해 협박을 피해 몸을 피해 있었던 이유를 전해 듣는 등  나이지리아나 소말리아 내전 등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 깊이있는 무게감을 준다. 그중 몇몇 인물은 실명이라 사실적으로 전달된다.
책에서도 잠깐 스치듯 언급된 바 있듯 어떤 이들은 아프리카가 하나의 나라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아프리카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얘기다. 왜? 주류가 아니니까.

문학이 동시대의 삶, 자체에서 자양을 습득하고 그 뒤에서 시대의 현실을 조망한다면, 나아가 다양한 세계관을 균형있게 심어 주는 역할까지 한다면야 작품 뿐 아니라 작가의 위상이 한층 높아지리라 생각한다.
아직도 많은 나라들이 내전을 겪고 있으며 엄청난 수의 난민이 생기고 있다.
그렇기에 이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괜찮은 책인데 쏟아져 나오는 새 책들에 밀려 주목받지 못하거나 묻히는 걸 보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로서 참 많이 안타깝다. 시류에 편승하거나 거지 발싸개 같은 책들이 그저 홍보에만 열을 올려 팔아 먹는 꼴도 눈꼴 시리고....에고고...뾰족한 성격 나온다고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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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 높새바람 25
한박순우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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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하는 말이 절로 나오는 때가 있다. 물론 지금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내 안에 어떤 괴물이 불쑥 나타나 그런 모습을 보일지 몰라 장담은 못하겠지만 늘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데에 대단히 우쭐대거나 혹은 도움를 받는 사람이 내 앞에서 비굴한 모습을 해야 마땅하다는 오만한 생각을 한 적은 없던가. 돈 몇푼이나 물직적인 어떤 것에 자존심 같은 것은 어떻게 되든 수혜자를 살펴보는 일을 가벼이 생각한 적은 없나 기억의 저 밑바닥을 훑는다.
정말 그랬다면 내 마음이 거지인게야. 자신의 꼴이 거지인줄도 모르고 누가 누굴 도우려 하는가. 그건 만용이며 오만인데.
움켜진 손을 펴야 또 다른 것을 쥘 수 있는데 우린 내가 가진 것을 내 놓지도 못하고, 가진 것에 대한 만족을 모르니 감사 할 줄 모른다.  

<거지 소녀>는 100쪽이 채 되지 않는 얇은 책이지만 묵직한 울림을 준다.
학원을 다니는 것조차 사치인, 아니 매일 광고지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아이들도 있다.
모두는 아니지만 가난은 아이들을 자신감이 없고 모든 일에 움츠러들고 위축하게 된다.
해민이는 부끄럼을 많이 탄다. 무료 공부방에서조차 옷걸이 밑에 아지트를 만들 정도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보통의 아이가 되는 것이 꿈이다. 무료 공부방이 아니라 당당히 돈을 지불하고 전과목 학원을 다니고 싶고 치마 안에 입을 레깅스를 입을 수 있는. 보통이라하기엔 너무도 소박한.
어느날 갑자기 방송국에서 공부방에 취재를 온다. 그리고 가난한 중3짜리 소녀 해주에게 인터뷰를 한다.
"미술학원도 가고 개인레슨도 받고 그러고 싶겠네요"
"그럼, 대학에 갈 건가요"
"왜요? 가고 싶을 텐데...."
"어려움을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죠?"

'넌 가난하잖아, 그러니까 불쌍한 거야!'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내용은 그랬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온정주의 내지 휴머니즘을 부각하려는. 결국 해주의 슬픈 얼굴을 클로즈업하여 방송을 내 보낸다. 해주의 우는 모습을 방송에 내보내지 말아 달란 안경 샘의 말을 무시하고.
안경 샘은, 가난한 사람과 돈 있는 사람들이 서로 대등한 관계 속에서 사이좋게 살도록 하는게 목적 아닙니냐고, 가난한 아이들한테서 자긍심을 빼앗아가냐고 정말 가난한 사람 편에 섰는지 생각해 보라며 따지지만 이미 방송이 나간 후인걸.
그랬다. 많은 TV프로그램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방송을 통해 고스란히 내보낸다. 가난한 아이들을 돕는 것이 목적임을 부각시켜 이 아이들이 받을 상처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은 채, 동정심을 사게 하여 자신들의 프로그램이 인간애를 발휘한 것이며 도움이면 그런 것 쯤은 괜찮은 거며 덮을 수 있다는 식의 위험한 발상. TV를 보면서 가끔은 그 아이들이 고마움과 다치는 자존심의 무게 중 어느 쪽이 더 클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이후 이들에게 후원자가 생기고 매달 후원금이 들어온다. 이것을 기회로 생각하여 한 푼이라도 더 챙기려 쇼를 불사하고 의존적이 되는 엄마, 상처 받은 언니 해주는 가출을 불사한다.
술 마시고 위장 입원했던 엄마 일이 들통나 더 이상의 후원을 할 수 없다는 말을 엿듣게 된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후원하려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진저리를 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 번의 후원으로 자립이 이뤄진다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우리 사회는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에 대한 평등 관계가 절대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가난하면 자존심 같은 것은 개나 줘도 좋다는 식의 생각이 의식 저 밑바닥에 깔려 있는 사람들이 많다. 가난하다고 자존심을 내팽개쳐야 할까? 당당하게 자신의 꿈과 자존심을 지키며 사는 일을 그리도 어려운 일일까?
언니의 가출을 이해할 수 없었던 해미가 차츰 언니를 이해하게 된다. 
거지 소녀가 누더기를 걸치고 있더라도 품위 있고 당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건방지다거나 하는 식으로 매도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마음이 거지인 나를 채찍질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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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스이카
하야시 미키 지음, 김은희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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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적만 해도 '왕따'란 말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친구들끼리 약간의 따돌림이야 있었지만 그것이 크게 문제 되진 않았다. 왕따란 말 대신 이지매가 일본에서는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은 뉴스를 통해 들은 적은 있었다. 그것이 우니라나로 넘어와 지금은 아이들을 자살에 이르게 만들었다.
그런 일로 자살까지 하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왕따는 어른들도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자살만이 해결 방법이란 것도 절대 아니다. 그러나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된 아이들의 마음과 괴로움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나약하다거나 왕따를 당할만 하다는 식의 말을 하는 것은 결국 가해자와 다를바 없다.
왕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왕따를 당하지 않더라도 직.간접적으로 얽혀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이와 무관심하는 이, 되려 자신이 왕따를 당할까 두려와 방조하는 이 등 대체적으로는 방조함으로써 가해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청소년문학에서 '자살'은 금기시 되어 온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어떤 책은 죽음이란 단어를 제목에 드러냈고 그 책이 내용상으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잠깐 이슈가 된 적이 있기는 했다. 그렇더라도 어떤 이류로든 청소년들의 자살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기에 불편하더라도 공론화하여 드러낼 필요는 있다.
그런데 왕따를 당하는 누구도 그것을 부모나 학교에 알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아이들은 혼자서 참는데까지 참아보고자 한다. 자기 때문에 부모가 속상해 하는 것을 원치 않을 뿐 아니라 실제로 부모나 교사가 도움이 되기는 커녕 더 가혹하게 가해자들이 압박해 올 거라는 두려움을 가지기 때문이다. 왕따를 당하면 자존감도 낮아지고 무력해지지만 스스로 왕따라고 말해야 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어 했다.
괴롭지 않아서 참은 게 아니라 그것밖에 할 수 없어서 참았다는 아이들.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이란 구도 속에 놓인 아이들은 왕따를 게임으로 여기며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하는 사악한 괴물로 만들어버린다.
'학교에서도 공부만 강조하잖아. 우리는 다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공부가 제일 중요해, 좋은 학교에 가야 해. 좋은 직장을 잡아야 해. 하는 식으로 모두들 한 가지만 강요하잖아.' 81쪽

치카가 왕따를 당하는 것에 대해 그만하라는 한 마디 말 때문에 스이카는 왕따를 당한다. 이전에 치카가 당했던 것보다 훨씬 강도 높게. 그래서 우리들은 친구가 왕따를 당하더라도 침묵으로 동조하는 것이다. 치카까지도.
스이카는 죽음을 생각할 만큼 힘들었던 상황에서 눈 먼 유리에를 만나면서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계속되는 요우꼬 패거리의 괴롭힘을 견딜 수 없었던 스이카는 학교에서 떨어진다.
다시 살아날 것을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혼수상태에 빠진 스이카의 혼은 학교를 찾아가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들과 왕따의 징후를 알면서도 모른척 했던 교사, 또 자신 때문에 슬퍼하는 부모님과 유리에, 또 치카를 본다. 기자들이 학교에 진을 치지만 학교는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 커튼을 치고 접촉을 거부하고 아이들도 스이카가 떨어진 이유를 모른다고 한다. 그 와중에 요우꼬는 차라리 빨리 죽어버리지 하는 말을 서슴지 않고 뱉어낸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도대채 이 아이 속에 들어있는 괴물의 크기를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또다른 괴로움에 힘들었던 치카는 스이카가 왕따를 당했고 자신이 괴롭혔다고 용기내어 진실을 밝힌다.
야마이 씨의 기사로 인해 또다시 외톨이가 된 치카는 무조건 당하던 예전과는 달라진다.

그동안 자신은 쓸모없는 존재이며 자살시도를 후회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하는 이들을 보고 살고 싶다는 간절함을 보인다.
'너는 내게 정말 필요한 사람이야'라는 말이 신호탄이 된 듯 그 말이 듣고 싶어 죽지도 못하고 헤매고 다닌 것이 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스이카는 현대의학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떠난다.

<미안해, 스이카>는 왕따의 괴롭힘을 상세히 서술하여 집단 따돌림이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도 직접 읽어보길 간곡히 부탁하고 있다.
정말 그랬다. 왕따는 학교라는 집단에서만 존재하는 걸로 인식했는데 직장에서의 집단 따돌림에 대한 뉴스를 방송을 통해 접했다. 병들어 가는 사회에 대한 경고에 너무 무덤덤한 것은 아닌지.
작고 소중한 변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왕따의 현장에서사실상 앞으로 나가 용기를 내기는 무척 어렵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같은 편이 있다면 어렵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힘을 얻지 않을까. 그 한 사람이 바로 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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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会する時にも気をつけろ! 2011-06-14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여기서 굳이 마케팅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라고 표현한것은 범법행위와는 구별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취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이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하여 결국에는 소비자를 우리 사이트로 연결하여 상품을 파는 것, 그것이 바로 마케팅의 목적입니다.
 
안네의 일기 올 에이지 클래식
안네 프랑크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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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적이 없더라도 <안네의 일기>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만큼 많이 알려진 책.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에 번역되어 전쟁이나 평화에 관한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 하지 않을까.
독일의 반유대정책으로 많은 유대인들의 학살을 다룬 책이나 영화가 있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이 바로 안네의 일기가 아닌가 싶다.
안네의 최후를 알기에 책을 넘길 수록, 남아 있는 쪽수가 적을수록 마음이 가라앉는다.
'죽은 후에도 기억되는 사람이고 싶어!' 라고 했던 안네의 말처럼 그녀가 죽은 후에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은 안네를 기억하고 있다.
최근 읽은 책에서 이원복 교수는 <안네의 일기>가 독일에 대한 반감을 의도적으로 포장하려는 네덜란드의 상술이 들어가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하더라도 안네의 일기 자체가 허구가 아닌이상 그 감동은 줄어 들지 않을 것이다.
차분한 느낌의 표지 가운데 박힌 안네의 사진은 여느 아이들과 다를바 없다. 그래서 더 가슴 시리다.
그 나이의 소녀가 겪는 사춘기의 감성과 좁은 공간인 은신처에 숨어 살며 한정된 사람들과의 부딪힘 등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상대는 일기장 속 키티라는 가상의 존재였다. 감성이 풍부했던 안네는 '나만의 개성적인 안네'로서의 대접을 받고 싶어 했으나 은신처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그녀의 개성은 무시되기 일쑤였지만 이러한 갈등 속에서도 조금씩이나마 성장하는 안네의 모습을 본다.
꾸미지 않은 솔직함과 톡톡튀는 발랄함이 전쟁과 은신이라는 어둡고 답답한 현실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안네. 안네의 일기를 통해 청소년들이 그리고 우리 어들들이 전쟁의 참혹함과 왜 평화를 바라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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