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친정엄마와 2박 3일 ㅣ 나남산문선 39
고혜정 지음 / 나남출판 / 2007년 3월
평점 :
결혼한 여자에게 친정엄마란 단어는 눈물 주머니의 원천이라 해도 좋을 만큼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 어렵다.
전작 고혜정의 <친정엄마>란 책을 읽으면서 한바가지의 눈물을 쏟았더랬다. 그럼에도 이 책을 보곤 반가웠다. 당연히 눈물이 반가울리는 없지만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 내지는 현재의 불효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라 하겠다.
아이들의 그림책을 읽어주거나 공부해야 하는 책이 아니고는 같은 책을 두 번 읽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친정엄마는 두 번씩이나 읽게 만들었다. 울고 싶다면 책을 핑계로 펑펑 울게 만드는 책이다. 그런데 이런 정서는 남자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감정이 아닐까...
친정엄마의 걸죽한 전라도 사투리가 정겹고 자식에 대한 사랑이 넘친다 싶을 만큼 자식에 대한 사랑을 보았기에 이 책은 전작에 비해 무덤덤했다. 딸이 엄마를 찾아가 보내는 2박 3일의 시간...늘 그렇듯 딸은 엄마에게 여느 딸들과 다를 바 없이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궁색하게 사는 모습이 속상해 마음과 달리 말은 엇나간다. 하지만 속절없이 시간은 흐르고 정작 엄마에게 자신의 상태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가운데 큰오빠가 형제들에게 연락해 소집을 한다. 그리곤 어릴적 추억을 꺼내 하하호호 즐겁다. 그런 가운데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풀어 놓는다. 그렇게 4남매는 행복했다. 그러나 결국은 큰형이 오열하며 온몸으로 통곡하며 동생 미란이 불쌍해서 어떡하냐며 꺼이꺼이 울어버린다. 간암 말기. 3개월. 그랬다. 엄마보다 자식이 먼저 죽는 기막힌 예외에 엄마는 엄마대로 딸을 딸대로 그 슬픔을 '와앙~'하고 터트리기보다 조용히 삭이듯 각각의 입장에서 뭉클하게 풀어냈다.
이거였어....덤덤하게 읽을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가서 엄마와 딸은 자신들의 감정을 조용히 쏟아낸다.
'....결혼헌 여자가 속상헐 때 갈 곳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 내가 알기에 엄마는 여그서 이렇게 상처입고 갈데없어 찾아올 우리 딸을 기다린 것이여. 분명히 살다보믄 속상헌 일도 있고, 남한테 말 못 허고 혼자 속끓일 일이 있겄지야. 남자들이야 술 마시고 담배 피고 소리지름서라도 풀것지만 여자들은 그 썩는 속을 어디다 풀고, 누가 들어주고 위로혀주겄냐. 그때 엄마 찾어오라고, 살면서 그런 일이 없으면야 좋것지만 살다보믄 어째 없겄어. 한 번이든 두 번이든 세 번이든...힘들고 속상헐 때 엄마 있는 친정 와서 풀고 가라고 하너 번이 될지 두 번이 될지 열 번이 될지 모르는 그날을 대배해서 엄마느 여그서 기다리고 있는 거여. 여자가 가고 싶어도 갈 친정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 엄마가 알기에 우리 딸한테만큼은 그런 설움 안 주고 싶어서, 그리서 여그서 우리 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엄마가 서울 아들네로 가지 않는 이유. 기막히다.
'....엄마, 너무 슬퍼하지 말고 우리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려요. 나 없다고 만날 울지 말고, 자식 먼저 보낸 어미가 먹는 것도 죄스럽다며 끼니 거르거나 소홀히 하지 말고, 죽은 자식 생각하며 '어서 죽어야지 어서 죽어야지' 청승 떨지도 마요. 그리고 내 물건들, 다 태워버려. 내 냄새 난다는 옷도. 내 생각이 날 만한 건 다 태워줘요. 엄마가 그런 걸 보며 울고 있을 생각을 하면 내가 가슴이 답답하고 간이 썩어들어가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워요. 그리고 엄마, 용서해줘. 나, 호장시켜달라고 했어요. 어딘가에 묻어놓으면 엄마가 맨날 찾아올까 뵈. 비가 오면 비 온다고 걱정하고, 눙이 오면 내 새끼 언 땅에 눠워 있다고 방안 보일러도 안 켜고 앉아서 울까보, 나 화장해서 흔적도 없이 해달라고 했어요. 엄마가 낳고 엄마가 키워준 몸. 저 이렇게 관리 못하고 허망하게 날려버렸네요. 엄마 나 가요. 엄마딸 엄마보다 먼저 딴 세상으로 가요. 엄마 없이, 엄마 떠나서 살 생각에 겁이 나. 지금까지 내가 잘나서 사는 건 줄 알았는데 이제야 알았어. 엄마가 있어서 내가 그렇게 살 수 있었다는 거. 엄마, 다시 만나면 나 엄마의 좋은 딸 될게.....
아~~ 엄마! 엄마! 엄마! 나의 사랑하는 엄마!
작년 내 생일에 엄마에게 말로는 쑥쓰러워 전하지 못하고 문자로,
'엄마가 내 엄마여서 고맙고 사랑한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었다. 엄마보다 아빠가 그 문자를 먼저 보고 문자를 보내왔다. '사랑하는 딸, 생일 축하한다'...하면서. 그렇게 몇번의 문자가 왔다갔다 했다. 이렇게 좋아하시는 걸, 하며 표현하며 살아야지 했는데 이후로 한번도 표현 못했다.
매번 후회만 한다. 이러면 안되는데.
'....죽어서 너 있는 저승길은 제대로 찾어갈 수 있을랑가. 이 에미는 그것이 걱정이다. 아가, 내 새끼야. 혹여라도 이 에미 늦게 왔다 원망 말어라. 내 맘이야 어서 빨리 니 옆으로 가고 싶다만 하는님이 기다리라고 허신다. 때 되믄 모내 주시겄지. 지루허드래도 조금만 참어라. 이 에미는 매일 아침 눈뜨면 '아, 이제 우리 딸한테 갈 날이 하루 더 앞당겨졌네'허는 기쁨에 산다. 이 에미 죽거든 니가 저승문 밖에 나와서 기다려도라. 이 에미 죽어서도 너 못찾어서 애타게 허지 말고 한시라도 빨리 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