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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의 방 ㅣ 푸른도서관 41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 소개엔 늘 '이 시대의 가장 진솔한 이야기꾼'이란 애칭이 붙었다. 그녀의 작품을 많이 접하지 않은 독자에겐, '정말?' 하는 의심의 눈초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도 하늘말나리야>나 <유진과 유진>을 접한 독자라면 그런 의구심에서 무장해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나와 다를 뿐이야>를 읽고 너무 많이 울고 아파서 제일로 꼽는 작품이긴하다. 많은 책을 나눠주고 정리하면서도 그 책은 꼭 다시 읽어보리다, 하며 손이 잘 닿지 않는 높은 시렁에 얹어 두고 몰래 아껴두고 먹는 꿀단지 같은 책이라고나 할까? 그런 두 번째 책이 바로 <너도 하늘말나리야>였다. 미르가 주인공 같지만 일찍 철들어 안쓰러웠던 소희가 더 가슴 속에 들어와 마음을 아리게 했던 아이였다. 이후 소희가 궁금했던 것은 여느 독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랬던 소희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고 해서 얼마나 궁금하던지.
하늘말나리야를 읽은지 오래되었는데도 소희가 살던 그곳 풍경을 아직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묘사가 남달랐던 때문이라 생각된다. 책을 읽을 당시에도 심리묘사 못지 않게 배경묘사를 상세하군,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 하늘말나리야가 처음 나온지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 그런 느낌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되었다. 또 한가지는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성장소설들이 임신이나 가출 등을 다룬 것에 비해 하늘말나리는 그런 것이 없이도 대단히 큰 감동과 재미, 건강하게 그렸는데 소희의 방에서는 얼마나 그 틀을 유지할까 하는....1권의 벽을 깰 수 있을까...하는 뭐 그런거.
<소희의 방>은 달밭마을에서 살던 소희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느티나무 아래서 바우와 미르의 배웅을 받으며 작은엄마네로 떠나던 모습을 소개해 나처럼 오래전에 하늘말라리를 읽은 독자가 혹여라도 그 내용을 잊었을까 친절히 알려준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풍경화 같은 달밭마을을 떠나 도시로(서울) 온 소희를 만나는 일은 설렘과 벅참이 교차했다. 작은엄마네서 구박당하고 주눅들어 살까? 새 엄마를 만날까? 그도 아님 사춘기 일탈로 엇나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책을 넘기기도 전에 슉슉 지나간다.ㅎㅎ
처음 소희는 작은 엄마네서 미용실 일을 도우며 살다 재혼한 엄마와 만나 함께 살게 된다. 이쯤이면 예측 가능하지 않은가? 엄마와의 갈등이나 새학교에서 겪을 그런 이야기들. 영화에서는 그런 걸 '클리셰'라고 한단다. 뻔하고 진부한, 전형적인 수법 같은 거. 설마 내용까지 클리셰는 아니겠지!!
떨어져 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의 어색함. 또 그동안 엄마의 사랑에 굶주렸기에 엄마의 사랑을 한꺼번에 보상 받으려는 기대 심리가 작용해 엄마와 있으면서도 행복함을 느끼기보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상처 받기만 한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소희 엄마의 태도이다. 어떻게든 남편이나 다른 자식을 피해서라도 사랑을 표현 할 법도 한데 엄마는 냉정하단 느낌이 들 만큼 덤덤하다. 표현에 서툰 건지 성격인지 값 비싼 명품 옷이나 학용품으로 그 사랑을 대신하는 것이라 생각한 소희가 무리는 아니다.
'할머니가 그랬다. 빚에는 돈으로 갚을 것과 마음으로 갚아야 할 게 따라고 있다고. 돈으로 갚아야 하는 빚을 돈으로 해결해서도 안 되는 법이라고. 엄마가 소희에게 진 빚이야말로 돈으로 갚을 수도 없고, 갚아서도 안 되는 것이다.' (64쪽)
실제 자신의 모습과 남들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과의 거리감으로 베프가 있기는 해도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는 소희는 영화감상부 선생님이 알려준 카페에서 디졸브란 닉네임을 가진 이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과 마음을 드러낸다.
엄마에게 느끼지 못했던 감정인 자신을 귀히 여기고 사랑해 주는 느낌을 남자 친구로부터 받으며 위로가 된다. 그러나 이전까지와 다른 소희의 낯선 모습이 생경하기만하다. (1권에서 느끼던 잔잔한 감동은 어디로-.-;;)
작가도 밝혔듯, 소희가 남들보다 일찍 철들고 자신이 처한 환경에 비해 비현실적일 만큼 내면이 충만한 아이였다. 그러나 동경이나 욕망 자체를 느끼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 일찌감치 포기하면서 무관심으로 가장했음을 밝히고 있다.
엄마와 소희는 가까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아빠가 폭력을 행사한다는 사실, 또 엄마가 말한 족쇄란 말로 혼란스럽다. 그 말이 비참함과 절망감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족쇄란 의미가 한편으론 한시도 잊을 수 없고 떨쳐낼 수 없는 존재였음을 자각하면서 엄마에 대한 마음이 조금은 말랑해진다.
그리고 새아빠의 친딸인 리나가 한국에 다니러 온다. 함께 있을 때는 그렇게 못되게 굴던 리나가 엄마하고 잘 지내다 가고 싶다며 소희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뿐 아니라 모든 가족이 관계를 회복시키며 떠난다. 무엇보다 소희에게 리나로 인해 더 멋진 스무 살을 꿈꾸고자 하는 희망을 씨앗을 심어 놓고.
나는 믿는다. 소희의 스무 살이 예쁘게 피어 날 것을. 소희는 하늘말나리가 아니었던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꽃이니까. 분명 더 멋진 스무 살이 될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