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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비밀과 거짓말 ㅣ 푸른도서관 37
김진영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6월
평점 :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무겁다. 처음 읽는 내용도 아닌데 그렇다. 이보다 더 아프고 더 가슴을 짓누르는 청소년 소설은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다.
다시 읽게 된 <열네 살, 비밀과 거짓말>은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요즘 나오는 청소년 소설을 보면 아이들의 생활과 동떨어져 있지 않아 독자의 대상인 청소년들 뿐 아니라 청소년을 자녀로 둔 부모에게도 흥미롭다. 툭툭거리며 까칠함을 보이며 좀처럼 대화다운 대화를 하지 않은 자식들의 마음을 그렇게라도 읽어보려는 부모가 비단 나뿐일까...
얼마 전 고딩 딸아이가 말하길, 학교에 전문 상담선생님이 배치된다는 말을 전했다. 중학교 때와는 달리 가정문제나 진학, 이성 문제가 너무 진지하고 버거워서 전담 선생님을 모셨다고 했다. 그리고 상담을 하는 아이들이 많은가봐~ 하며 놀라워한다. 실제로 이혼율이 높다는 통계를 자주 접하지만 이러한 가정의 아이들이 툭 터놓고 상담하거나 힘겨움을 토로할 수 있는 기회나 기관을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에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문제 있는 부모 밑에 문제아가 있다’는 말을 나는 굉장히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아니라고도 못하겠다. 적어도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이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지 않더라도 눈빛이나 말로 얼마나 예리하게 찔러대는지 어른들은 알까? 내게 하는 말이다. 엄마 말을 귓등으로 듣고 뾰족하게 구는 아들놈에게 직접적으로 뭐라고도 못하고 뒤에서만 나쁜 놈, 나쁜 놈, 나쁜 놈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어찌 모르겠는가. 그 말로 인해 아파할지도 모르는데 나는 오늘도 아침부터 아들 놈 등 뒤에 나쁜 놈이란 말을 입 안으로 삼키고 말았으니...
열네 살. 참으로 모호한 나이다. 초등학생이란 신분을 벗어나면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과 더불어 사춘기의 심리적 변화와 함께 삐딱선 내지는 감정의 급작스런 움직임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해 지켜보는 사람이나 겪는 이도 함께 꼬인 실타래라도 있으면 풀어보련만 역시 시간이 약이라 했던가. 지나고 나면 별 일 아닐 수도 있는데 사춘기라는 그 터널 가운데쯤에 서 있으면 매우 혼란스럽다.
이 책에서는 그런 아이들 곁에 미숙하고 불완전한 어른들, 더 심하게 말하면 개념 없는 어른들이 등장해 부끄럽게 하고 아이들을 더 힘들게 한다. 도벽을 주체하지 못하는 하리 엄마와 술에 취한 모습만 보이는 아빠, 이혼까지는 가지는 않았어도 배우자가 외에 각각 애인을 두고 있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예주의 부모, 공부로만 학생을 평가하고 최소한 선생으로서 해야 할 것 마저 외면해버리는 담임 등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어른으로 비춰지고 있다. 이는 결국 대화나 소통의 상대가 어른, 즉 부모나 선생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렇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니 제 자리를 지키는 일조차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생각의 울타리를 넓게 쳤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나 역시 아이들에게 일방적인 잔소리뿐이지 제대로 소통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걸 알기에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우리의 아이들이 부모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출구를 찾고자 한다는 것이다. 하리처럼 내 딸과 아들도 혼돈의 청소년기를 잘 겪고 제자리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예주는 나한테 비밀을 털어놓고 싶었던 거다. 엄마가 나한테 다 털어놓았듯이 예주도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거다. 전에 텔레비전에서 사람들이 정신과를 찾는 이유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서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사람들은 자기만이 알고 있는 비밀을 털어놓음으로써 벌써 반은 치유된다는 것이다. 그럼 나는 누구에게 내 비밀을 털어놓아야 하는 걸까?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줄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을까?’ (100쪽)
"엄마는 그 아이 때문도 아니고, 병도 아니야. 엄만 버릇이고 중독이야. 아빠가 술을 안 먹으면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엄마도 그런 거야. 아빠는 술로 인정하지 못하는 자신을 감추고 있는 거고 엄마는 훔치는 걸로 엄마를 감추고 있어. 그 순간은 편하겠지. 하지만 그 다음은 어떤데?” (1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