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후의 황제들 - 청 황실의 사회사
이블린 S. 로스키 지음, 구범진 옮김 / 까치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정말 쉽게 잘 쓰여진 책.
두께 보고 놀라서 약간 긴장했는데 주석이 100 페이지나 되서 실제로는 400 페이지가 약간 못 되는 분량이다.
무엇보다 어렵지 않아서 좋다.
아마 전에 청나라와 팔기군, 즉 기인들의 관계에 대해 다룬 책을 읽었기 때문에 더욱 이해가 쉬웠던 것 같다.
저자의 빼어난 글솜씨와 매끄러운 번역도 한 몫 한다.
오랜만에 정말 즐거운 독서를 한 것 같다.
예전에는 팔기군의 문란으로 청나라의 지배계급이 무너졌고 만주족 자체가 한족에 동화되어 사라져 버렸다고 알고 있었는데 요즘 학계의 추세는 여전히 팔기군은 청 제국의 중요한 원동력이었고 만주족의 문화 역시 현재의 중국에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서양 열강에 의해 물어 뜯기고 만, 근대화에 실패한 비운의 제국이라기 보다는 현대화 직전의 청 제국이 가졌던 역사성과 시의성, 의미를 강조하는 느낌이 든다.
이래서 역사는 시대에 따라 다른 기준으로 평가되는 것 같다.
다원주의, 다민족 국가로서의 통합성을 강조하는 (얼핏보면 제국주의 같기도 한) 요즘 중국이 추구하는 바와도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
어쨌든 한족화 되어 역사 속에 사라져 버렸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에 비해, 중국 최대의 영토를 자랑하고 300 여년 가까이 제국을 유지한 청나라가 제대로 평가받고 있는 것 같아 바람직한 변화라 생각한다.
역자가 서문에서 밝힌 바대로 한국인처럼 중국 역사를 친숙하게 잘 아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중국 역사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을 맺어 왔으나 세부적인 면에서는 중국과 상당한 차이가 있고 무엇보다 청이라는 현대 이전의 마지막 왕조는 여진족이라는, 한 수 아래의 민족이 이룩한 정복왕조였기 때문에 그 질투심에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면이 많다.
제일 의아했던 게 장자 계승 대신 황제가 죽기 전에 후계자를 결정하는 방식이나, 황후가 아닌 후궁도 아들이 왕이 되면 태후로 승격되는 시스템이었다.
광해군이나 인조 모두 후궁이나 군부인이었던 어머니를 왕후로 추숭하기 위해 신하들과 지리한 싸움을 지속해야 했던 것에 비해 서태후의 경우처럼 청나라에서는 아들이 왕이 되면 자연스레 황태후가 되는 것 같아 속사정이 무척 궁금했다.
책에 그 과정이 자세히 나오는데, 만주족 역시 황후는 한 명이지만 대신 황후든 후궁이든 그 자손은 똑같은 황위계승권을 갖는다.
오히려 비빈으로 들어오고 나면 친정집과 완전히 단절시켜 태후가 되서 섭정을 하더라도 친정 가문이 아닌, 남편의 측근들, 즉 시동생과 연합하도록 했다.
이를테면 서태후 역시 처음에는 함풍제의 6등급 (8등급까지 있다) 후궁으로 들어왔는데 그 아들이 동치제가 되자 태후로 격상됐고, 친정 가문 대신 함풍제의 동생인 공친왕과 연계하여 정권을 휘둘렀다.
모후의 친정이 황제 가문을 압도할 수 있는 시스템을 철저히 차단한 것이다.
이 점은 흔히 간과되기 쉬운 부분인데 책을 통해 청나라 황실의 특징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외척 가문이 전권을 휘두를 가능성을 철저하게 차단한 것이다.
명나라가 황제의 형제들을 변방으로 보내 정치적으로 고립시킨 것에 비해 (자연히 황제는 황후의 남자 형제들이나 환관과 연합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청나라는 황자들을 정치에 참여시켰다.
대신 이들을 종친부에서 관리해 자율성을 빼앗았다.
황제의 수많은 아들들은 동등한 황위계승권자였기 때문에 자금성 안에 살면서 능력을 평가받았고 황제는 죽기 직전 후계자를 발표했다.
장자 계승이 원칙인 한족에 비해 아들들간의 후계자 다툼이 치열하다는 단점이 있겠으나 대신 능력있는 사람이 왕이 된다는 점에서는 장점이지 않았나 싶다.
그러고 보니 서얼을 차별하는 것은 조선만의 악법이라고 한탄했던 글을 읽었다.
새롭게 안 사실은, 청나라가 몽골과의 연대를 통해 제국을 안정시켰고 라마교를 이용해 티벳의 신정정치를 지지해 제국 안에 묶어 뒀다는 사실이다.
원나라 때부터 티벳 불교를 받아들인 몽골은, 14세기 이후 겔룩파를 지지하면서 라마교의 후원자 역할을 자임했다.
몽골의 칸은 달라이 라마에 의해 권위를 인정받고 반대로 티벳에서는 몽골의 지배자가 달라이 라마의 신정 정치를 보호했다.
이것은 후에 문수보살로 상징화 된 건륭제가 대신한다.
청 황제들은 준가르 원정 이후 몽골을 기인에 포함시키고 혼인동맹을 통해 연대를 다졌으며 라마교의 의례를 적극 지지하여 티벳과 몽골을 다스렸다.
또 위구르 정복 이후 이슬람까지 포용하였다.
넓은 의미로 보면 서양 선교사들이 황실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도 다민족 국가 운영이라는 틀에서 황제의 권력이 서양에도 미친다는 맥락이었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 중국의 영토와 문화는 전 왕조였던 청의 공로에 기인한 것이니 확실히 청나라는 좀 더 가치있게 평가받아야 할 것 같다.
저자는 그러나, 청의 다원주의 문화가 결코 오늘날의 국민국가 개념와는 다름을 강조하고, 어디까지나 황제 개인의 권력을 공고히 할 목적으로 다양한 민족과 정치체를 아울렀음을 분명히 한다.
제국의 속성을 현대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우를 범하지 않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