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교수 - [초특가판]
조지 바우어스 감독, 케빈 맥카시 외 출연 / 리스비젼 엔터테인먼트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미국 영화를 보면서 항상 느끼는 바지만, 확실히 우리 보다 성개방적인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 파티에서 남녀가 서로 부비는 모습은, 다소 충격이었다.
뭐, 요즘 세대들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일지 모르지만, 하여튼.
개인교수라는 제목은 아마도 고등학교 남학생인 주인공에게 성을 가르친다는 뜻?
priviate lessons 이라니, 성에 대한 은밀한 개인 교습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
첨에는 좀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더니, 후반부에 반전이 있다.
얼핏 보면 <스팅> 느낌도 나고.
고등학생이라고 보기엔 주인공 남자애가 너무 어려 보인다.
키가 작아서 그런가?
남자들은 사춘기 소년 때부터 성에 이렇게 관심이 많나?
결혼을 했지만 난 아직까지도 남자들의 성적 욕구가 상당히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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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1 2011-02-16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미국영화예요? 유럽에서 옛날옛날에 비슷한 소재의 영화가 나왔던 것 같아서요. 당시 에로틱어쩌느니 했던 기억이 나는데 본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이 영화랑 제목이 비슷한듯 한데...
미국영화가 성에 개방적이란 말을 하셔서 말인데요. 더스틴 호프만 나오는 '졸업'있잖아요. 그 영화보고 충격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어렸을때, 사이먼앤 가펑클의 '스카~~의 추억'의 음악이 너무 좋았어요.보통 그 음악이 나오면 졸업의 마지막장면..결혼하는 여자랑 도망치는..부분이 많이 나와서 로맨틱한 영화인가 보네..라고 생각했었죠. 음악+그 이미지만을 생각하고 영화보고 충격~~내용이 참....

marine 2011-02-17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졸업 보고 충격 먹었어요. 친구 엄마랑 쇼파에서~~
이 영화, 미국 영화구요,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제목 갖다가 많이 쓴 것 같아요.
야한 쪽으로다~~
 
궁궐의 장식그림
국립고궁박물관 엮음 / 국립고궁박물관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굉장히 인상깊게 본 책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발견한 책인데 이 곳이 아니었다면 아마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박물관에서 발간되는 도록들은 수준이 상당하다.
그저 학자들의 학설에 그치지 않고 실제 유물들을 보여 주면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이론을 전개하기 때문에 더욱 신뢰할 수 있고 훌륭한 책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2009년도에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진행된 전시의 도록이다.
도판이 매우 섬세하고 확대된 그림들이 아주 선명해서 직접 전시를 보는 것보다 더 좋을 만큼 훌륭하다. 

지금까지 조선의 건축물은 단청이나 좀 화려할까 그 외의 구조는 밋밋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의 기능을 하는 창호지에도 그림을 붙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사극에서도 문에 장식을 한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요즘 사극을 보면 한복이나 병풍 등이 매우 화려하게 나오던데 문 장식도 섬세하게 고려해 주면 시각적으로 보기 좋을 것 같다.
온돌 구조다 보니 아무래도 바람을 막기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바람을 막기 위해 병풍을 치고 문에도 여러 창을 덧대서 방풍 기능을 했다.
밋밋한 흰색 창호지가 아니라 매우 화려하게 그림이 그려진 창호지가 왕실의 문을 장식하고 있으니 격조가 높아 보이고 시각적 즐거움이 상당하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소박하고 절제된 건축미는 사대부의 건축에나 적용되는 것 같고 왕실은 그 시대 최고의 부를 소유한 만큼 정말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을 했던 것 같다.
같이 실린 운현궁의 벽 그림을 보면 왕의 아버지로 10년 동안이나 최고의 권세를 휘둘렀는데도 상당히 소박하고 은은한 느낌을 풍긴다.
반면 대궐을 장식한 벽화나 문짝 그림을 보면 진채화로 사대부가와는 전혀 다른 매우 화려한 느낌을 준다.
특히 창덕궁의 희정당을 장식한 해강 김규진의 부벽화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지난 번 창덕궁에 갔을 때 얼핏 본 것 같기도 한데 벽 윗쪽에 설치된 그림이라 자세히 보질 못했는데 도록으로 하나하나 꼼꼼하게 짚어 보니 정말 뛰어난 그림 같다.
<금강산만물초승경도>로 직접 3개월 간이나 금강산에 답사를 다녀온 후 그렸다고 한다.
겸재 정선의 점잖은 담채화만 보다가 왕실의 화려한 진채화를 보니 느낌이 사뭇 다르다.
확실히 화원들의 화풍은 선비들의 문인화와는 상당히 달랐던 것 같다.
장엄하다고 표현을 해야 하나?
김은호의 <백학도> 나 경훈각에 그려진 이상범의 <삼선관파도> 등도 모두 궁궐 전통의 화려한 진채화로 그려져 왜 순종이 서양식으로 궁을 꾸미면서도 장식화는 화원들의 그림을 원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청록산수화라는 명칭답게 초록색 계열을 많이 써서 자연의 푸른 느낌을 잘 표현했다.
조선 화원들의 품격이 느껴지는 그림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화려한 궁궐 문화를 생각하면 근대화에 실패해 결국은 식민지로 끝이 나고 만 조선 왕조의 운명이 참으로 안타깝다.
왕실 부활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에는 반대지만서도 이런 궁궐 문화가 사라져 가는 걸 보면 가끔 왕조의 몰락이 안타깝고 현대에까지 잘 전수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다.
특히 급속한 근대화를 거치면서 우리 옛 것들이 대부분 파괴되다 보니 남아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아 이제 좀 살만해서 우리 것을 돌아 보려고 해도 한계가 너무 분명해 안타깝기 그지없다.
문화란 부유함과 강대함 속에서 나온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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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화 속 현대 미술 읽기
존 톰슨 지음, 박누리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작년에 서점에서 보고 신청한 책인데 바빠서 미루다가 드디어 읽게 됐다.
도판이 훌륭하고 현대미술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그렇긴 한데 솔직히 말해서 뒷쪽의 20세기 후반 미술들은 제대로 이해를 못했다.
그림을 보면 뭔가 가슴 뭉클하고 마음 한 구석이 짠해 오는 그런 감동이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현대 미술은 나에게 너무 어렵고 이론적으로 보인다.
저자의 해설이 어쩐지 말장난 같고 도저히 감동이 없는데 어떻게 감상하라는 것인지 늘 난감하기 그지없다.
어떤 면에서 현대 미술은 아이디어고 상상력이 아닌가 싶다.
여전히 그림 하면 화가의 정교한 손기술과 뛰어난 감식안이 우선이라고 믿는 입장에서 보면, 도저히 마르셸 뒤샹 식의 상식 뒤집기를 진정한 예술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문제 같다.
데미안 허스트의 죽은 상어 박제품을 보면 그 크기와 재료적 특성 때문에 순간 압도하는 느낌이 들면서도, 인체 해부 모형도를 예술이라고 전시해 놓고 재료 공구사와 싸우는 것을 보고 있자면, 정말 예술이란 대체 뭔가에 대해 깊은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다.
그저 내가 예술이야 주장하면 그만이다 싶기도 하고...
이 책에 현대 미술의 시초로 등장하는 인상파들 역시 19세기 초에는 아카데미즘에 의해 천박한 예술로 비난받았던 걸 생각해 보면 오늘날 나의 이런 미학적 견해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촌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현대 미술은 너무 어렵다. 

서문에 따르면 저자는 현대 미술의 시작을 1848년으로 잡는다.
이때부터 시각성을 최우선으로 삼아 텍스트가 부재하고 그림 자체를 감상하게 된 것이다.
특별히 그림의 뜻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예술을 위한 예술의 시대가 된 게 아닐까 싶다.
첫 장은 쿠르베에게 할애했다.
그림 양식은 고전주의지만, 주제가 파격적이다.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쿠르베를 고전주의와 인상주의를 잇는 가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훗날 모네의 작품을 보면 과연 인상파의 대가다운 노련함과 창의성이 돋보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최초의 인상파라는 명칭을 만들어낸 첫 전시회 작품을 보면 기자들이 그저 스케치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퍼부은 걸 이해가 되기도 한다.
너무 성의가 없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
모네가 빛의 효과를 중시해 직접 밖에 나가 작업했던 것에 비해, 같은 인상파로 분류되지만 마네나 드가 등은 야외에서 모티프만 땄을 뿐 실제 작업은 화실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내용은 인상파인데 실제 그림 양식은 모네와는 상당히 달랐던 것이다.
그래서 마네나 드가의 그림을 보면 매우 정교하고 인물의 캐릭터를 잘 잡아 냈다는 생각이 든다. 

앞부분의 인상파는 흥미롭게 읽었는데 뒤로 갈수록 너무 난해해 이해가 어려웠다.
번역의 문제인지 내 수준의 문제인지 하여튼 100% 이해가 안 됐다.
현대 미술에 대해 좀 더 공부를 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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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만든 사람들 - 나라를 위한 선비들의 맞대결
이성무 지음 / 청아출판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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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도서관에 신청해 놓고 못 읽었던 책이다.
두 사람씩 비교하는 포맷은 다소 식상한 면이 없지 않으나 서점에서 얼핏 보기로는 비교적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것 같아 신간 신청을 했다.
열 네 명의 사람들을 비교했는데, 정도전과 이방원은 신권정치와 왕권정치로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었고, 조광조와 남곤, 최명길과 김상헌 등도 흔히 비교되는 인물들이라 별 감흥은 없었다.
새로운 인물 비교로는 류성룡과 이이, 송시열과 윤휴 정도?
사실 이이는 이기이원론 때문에 이황과 비교될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 이이를 류성룡과 비교해서 관점이 신선했다.
아마도 동인과 서인의 영수라는 측면에서 비교한 것 같은데 나이대도 다르고 특히 이이는 임진왜란 이전에 사망해 전쟁 당시 조정을 이끈 류성룡과 크게 비교될 만한 정쟁 같은 건 없는 편이다. 

최명길이 인조에게 총애를 받았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최명길을 위시한 인조 반정 공신들이 후에 소론이 됐다고 한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최명길을 비롯한 주화파는 소론, 김상헌을 비롯한 척화파는 노론으로 가게 된다.
현실을 중시했던 주화파였던 만큼 주자학 보다는 양명학을 받아들였다.
예송논쟁이 현종 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인조 때도 사친인 계운궁 사망시 인조의 상복 문제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웠다.
인조는 선조의 손자인데 왕통으로는 선조를 이었기 때문에 친어머니인 계운궁의 상을 당해도 3년복 대신 1년복만 입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예론의 대가인 김장생이다.
당연히 인조로서는 자신의 부모를 사친으로 대접하는 신하들의 이런 태도가 못마땅 했을 것이고, 아버지를 추존하고 싶어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성종 역시 즉위 후 아버지 의경세자를 덕종으로 추존했다.
그런데 선조도 방계로 왕위를 계승했으니, 선조의 생모가 죽었을 때는 상복 문제를 어떻게 했을까?
선조 즉위 당시 아버지 덕흥군은 사망한 상태였으니 상관이 없겠으나, 어머니 하성대부인의 경우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선조 즉위 해에 사망한 걸로 되어 있는데 과연 어떤 식으로 상복 문제를 해결했을까?
따지고 보면 성종의 아버지는 세자의 신분으로 죽은 만큼 추존하는데 큰 무리가 없겠으나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은 왕통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으나 원종으로 추존할 때 얼마나 무리가 따랐을지 짐작이 간다.
더군다가 호란이 발생하여 나라의 존망이 걸린 때가 아닌가.
신하들과의 대립은 차치하고서라도 추존하는데 따르는 온갖 복잡한 절차와 비용 등은 또 어떻게 감당을 했을까?
최명길은 인조의 마음을 십분 헤아려 추숭 사업에 동조하는 입장이라 신임이 각벽했다고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가장 적극적인 주화파였던 최명길은 명나라와 내통한다는 무고를 받고 삼전도비를 훼손시켰다는 죄목으로 끌려간 김상헌과 함께 무려 4년의 시간을 심양의 감옥에서 보낸다.
김상헌은 최명길 보다 나이가 10여 세 윗세대다.
함께 갇혀 있으면서 김상헌이 단지 이름을 얻기 위해 척화를 주장한 게 아니라 진심으로 춘추의리를 따르고 있음을 깨닫고 그의 인품을 존경했다고 한다.
김종성의 책 <한국 인물사 통찰> 에서 김상헌의 척화 주장을 두고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해 실은 죽고 싶은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고 청의 심문에도 교묘하게 빠져 나왔다고 비아냥 거렸는데 후대 사람의 이런 가벼운 시선 보다는 당대인인 최명길의 평가가 훨씬 더 신뢰가 간다.
항상 궁금했던 게 왜 대표적인 척화파인 김상헌 대신 젊은 오달제 등이 잡혀 가서 죽었으냐, 이런 걸 보면 김상헌은 말 뿐인 척화파 아니었냐 싶었는데 책을 보니 최명길이 나이가 많은 김상헌을 배려해 가장 많이 알려진 젊은 세 사람을 보낸 것이라고 한다.
결국 김상헌도 노구를 이끌고 청나라로 끌려가 4년 간의 감옥 생활을 하다가 청이 북경에 입성하면서 소현세자와 함께 귀국한다.
최명길이 인조의 총애를 받아 정치 일선에서 활약했던 것에 비해 의외로 김상헌의 정치 활동은 많지 않았고 인조 반정 때도 1등 공신이 된 최명길과는 달리 참여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권력욕의 화신처럼 그려진 김종성의 책과는 달리 자신의 신념대로 살았던 당시 기준으로는 완고하지만 의리를 지킨 꼿꼿한 분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점들이 평가를 받아 후에 김상헌의 후손들이 가문 대대로 크게 이름을 날렸을 것이다.

동의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심환지와 정약용을 비교한 부분이다.
저자에 따르면 정조가 심환지로 대표되는 노론 벽파와 심하게 대립했고 정약용으로 대표되는 남인 세력을 친위 세력으로 키우려고 했으나 이른 죽음으로 물거품이 됐다는 식으로 설명하는데, 심환지에게 보낸 정조의 밀찰에서 드러난 것처럼 정조는 결코 심환지와 대립하지 않았고 오히려 국정 운영의 중요한 파트너로 생각했다.
이 부분이야 말로 지금까지 잘못 알려져 왔던 만큼 보다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조가 규장각을 통해 소외된 남인 계층이나 서얼층을 양성하려고 했던 것은 분명하겠지만, 과연 드라마나 소설에서 처럼 이들을 친위 세력으로 삼아 노력 벽파와 일전을 벌이려고 했는지는 매우 의문스럽다.
사도세자의 죽음이라는 지나치기 힘든 문제가 분명히 존재했겠으나, 24년 동안 정국을 주도했던 노련한 정치가였던 정조는 밀찰에서 보여준 것처럼 노론 벽파 역시 정권의 파트너로 함께 데리고 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보다 많은 학술적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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麗輝 2011-01-20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뵙습니다. ^^
이 책 개인적으로 보고 싶었는데...좋은 책 소개 감사드려요

marine 2011-01-26 15:32   좋아요 0 | URL
저도 너무 반갑습니다.
요즘 바빠서 책을 전혀 못 읽었네요...
 
식품 진단서 - 요리책에는 절대로 나오지 않는 식품의 모든 것
조 슈워츠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게 잘못, 결국은 상식 수준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낌.
과학저술가답게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 식단에 관한 충고를 한다.
평소 내 생각과 다르지 않아 기분좋게 읽었다.
가공 식품 많이 먹지 말고 종합 비타민 너무 좋아하지 말고, 가능하면 채소와 과일 같은 신선한 식품 섭취하고, 육류는 조금만, 대신 생선과 가금류로, 콩과 통곡물은 많이, 우유는 저지방으로, 올리브유 사용하고, 튀김은 조금만.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그 외에 약간의 이슈가 될만한 것으로는, 농약 잔존물에 너무 민감할 필요 없다, 유기농이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아라, 유전자 변형 작물도 편익 대비 위험 면에서 나쁘지 않다 등등.
방사선 노출도 마찬가지지만, 농약 역시 양이 얼마나 되냐가 문제이기 때문에 식품에 남아 있는 잔존량에 너무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마음이 좀 편해졌다.
유기농 과일이나 채소 역시 약간의 영양적 이득은 있을 수 있으나 워낙 미미한 차이이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고 본다.
유기농이 마치 고가 브랜드처럼 되어 버린 현실에 매우 적절한 비판이 아닐 수 없다.
유전자 번형 작물이야 말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인데 DNA 조작은 안 되면서 왜 이종 교배는 거부감 없이 받아 들이냐는 저자의 질문을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저자의 말대로 새로운 기술은 항상 논란을 가져 왔고 과학자들에게 모든 권한을 일임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편익 대비 위험을 따져 볼 때, 영양학적 측면에서 개선된 쪽으로 과학 기술을 도입시키는 것은 어쨌든 유익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육류 섭취가 많은 유럽의 경우 철결핍 빈혈이 적지만, 쌀을 주식으로 하는 동양인은 쌀에 철이 부족하기 때문에 매우 흔한 편이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철분을 강화한 쌀이나, 시력에 필수적인 베타 카로틴을 함유한 품종을 개발해 영양학적 측면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인공적으로 추출을 했던지, 자연에서 얻어진 것이든지 성분은 변함이 없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식품에 대한 수많은 논란들은 과학적 토대를 근거로 했다기 보다는 사람들에게 받아 들여지는 거부감과 편견이 중요한 인자가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제일 중요한 얘기는, 식품에 들어 있는 성분들은 굉장히 많기 때문에 특정 성분이 좋다고 해서 그 음식만 먹는다고 질병을 예방하거나 건강에 큰 도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균형잡힌 식단이다.
정말 핵심적인 성분이 있다면 정제되어 질병의 치료제로 개발할 것이다.
몸에 들어가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 다른 인자들과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등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수많은 논란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알려져 있는 상식 선에서 가능하면 다양한 음식을 섭취하고, 과식을 피하고, 가공 식품 보다는 신선한 제철 음식을 먹는 것, 이 정도만 지켜도 건강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논란이 되는 이야기들을 적절한 과학적 증거들과 함께 어렵지 않은 선에서 기술하고 있어 이해하기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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