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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 톨스토이와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인생
석영중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도서관에 신간 신청을 해 놓고 계속 못 읽다가 해가 바뀌고서야 겨우 읽게 됐다.
의외로 작은 판형에다가 내용이 가벼워 좀 놀랬다.
저자인 석영중씨라면 <러시아 정교>를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다.
좀 어려울 줄 알았는데 굉장히 쉽게 쓰였고 저자가 상당히 글솜씨가 있어 문장이 한 번에 쉽게 읽힌다.
마치 주경철씨 저서를 읽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내용이나 주제의 전문성 못지 않게 저자의 문장력도 가독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이상하게 도스토예프스키는 아직 제대로 접하질 못했고, 톨스토이 작품들은 그런대로 읽었다.
그래서 톨스토이가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진다.
특히 러시아의 대화가인 레핀의 초상화가 너무나 인상적이라 톨스토이 하면 어쩐지 성자 같은 느낌이 든다.
실제로 그는 50대 이후 자신의 인세를 포기하고 영지를 소작농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들을 해방시키려고 애썼다.
아내 소피야와의 갈등 때문에 다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책에 나온대로 노동의 신성함을 실천에 옮기고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살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래서 말년에는 성자로 추앙받기도 했다.
비록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파문당했지만.
사실 어린 시절에는 이렇게 성자 같은 삶을 산 (즉 청빈의 삶) 톨스토이가 왜 교회에서 파문을 당하고 약간은 이상한 쪽으로 묘사됐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책을 보면서 비로소 이 문호의 극단적인 사상에 대해 조금은 이해를 하게 됐다.
그가 주장했던 것들은 따지고 보면 오늘날 현대인이 추구하는 웰빙의 삶이다.
환락과 사치가 만연한 도시를 떠나 맑은 공기와 자연이 있는 시골로 돌아가 땀흘려 일하고 소박한 음식을 먹고 가족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단순한 삶!
현대인들에게 각광받고 있는 헨리 소로우의 삶이 아닌가.
술과 담배와 마약과 도박, 섹스 등을 멀리해라.
더 좋은 건 육식을 포기하고 채식만 해라.
현대인들이 얼마나 좋아할 소리인가.
채식주의가 무슨 유행처럼 대단한 이념과 사상인 양 포장되고 있는 요즘 시류에 정말 딱 들어맞는 주장들이다.
톨스토이가 육식을 금하라는 것은, 정욕의 억제와 관련이 있다.
도살 자체가 비인도적이라는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음식에 대한 원초적인 욕구를 자제함으로써 섹스에 대한 욕구를 억제하고 노동을 통해 기쁨을 얻는 소박한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톨스토이는 섹스에 대한 욕구가 매우 강했다고 한다.
소작농의 아내와 바람을 피워 소피야를 미치게 만들기도 했다.
욕구가 강했기 때문에 더욱 금욕적이 되라고 설파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강한 통제라고 할까?
따지고 보면 그가 섹스에 강렬한 욕구를 느끼지 않았다면 그렇게도 섹스를 혐오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확실히 섹스를 혐오하는 사람은, 무의식 중에 끝없이 섹스를 동경하고 그 욕구에 괴로워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마치 내가 먹는 것에 집착하면서도 많이 먹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을 끊임없이 억누르듯 말이다.
심지어 톨스토이는 소박한 삶을 위해 예술도 다 쓰레기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한다.
사실 이 부분에서는 너무 놀라 정말 이랬을까 싶기까지 했다.
그 자신이 위대한 소설가이면서도 귀족 계층을 위해 봉사하는 예술의 퇴폐적 기능을 비판하고 오직 착한 감정을 전파시키는 교훈적인 이야기만 예술로써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작품 역시 다 쓰레기고 그것으로 인세를 번다는 사실에 대해 늘 괴로워 했다.
톨스토이에 따르면 정부에서 귀족들을 위한 예술, 즉 오페라나 클래식, 발레 등 고상한 척 하는 공연 예술에 보조금을 쏟아 붓고 정작 민중의 대다수는 그것을 이해하지도 못하는데 민중이 즐기는 것에는 전혀 투자를 하지 않는다.
그는 심지어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작가라고 일컫어지는 푸슈킨의 동상 건립마저도 대체 저게 무슨 의미가 있는 짓이냐고 비판한다.
대다수의 민중들은 그가 누군지도 모르고, 자존심 때문에 결투 벌이다가 죽은 천박한 시인의 동상 건립이 왜 이슈가 되냐고 비난한다.
고급 예술로부터 소외된 민중을 위한 톨스토이의 관점에 일견 동의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이야 말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지극히 불평등한 장르이고 보면, 고급예술에 대한 특혜는 어쩔 수 없는 부분 같다.
오히려 예술의 궁극적 목적이 감각적 만족, 아름다움의 추구, 정신적 쾌락에 있는 게 아니라 감정이입, 상호간의 감정 교류에 있기 때문에 선, 즉 착한 감정을 전파시키기 위해 교훈적인 것들, 즉 우화 같은 것만 진짜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그 교조주의적인 톨스토이 사상이 놀랍다.
이건 공산주의의 인민 예술과 비슷하지 않은가?
사실 톨스토이가 진정한 사상가이자 도덕주의자로 추앙받지 못한 가장 큰 이유도 이러한 지나친 교조주의에 있지 않나 싶다.
어떻게 보면 말만 번지르하게 내뱉고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 위선가들 보다는 훨씬 위대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사상에 지나치게 철저한 나머지 거기에 너무 집착해 외골수로 빠진 것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열 세 명의 아이를 낳으면서 남편의 작품들을 정서하느라 평생을 보낸, 지극히 평범한 욕망의 소유자였던 아내 소피야로서는, 이러한 "위대한 사상가" 톨스토이를 이해한다는 게 너무너무 어려웠을 것이다.
피아니스트와 플라토닉 러브를 갈구했던 소피야의 외로움과 고단함이 애처롭게 느껴진다.
책은 <안나 카레리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당시에도 재밌게 읽었지만 이 소설이 톨스토이의 이런 심오한 뜻을 전하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행복한 결혼 생활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톨스토이의 대답이 바로 이 책일 것이다.
그의 디테일한 묘사를 읽다 보면, 저자의 찬사대로 정말 타고난 작가이고 위대한 문호임이 분명하다.
어쩜 이렇게 세세하게 캐릭터와 상황을 묘사한단 말인가.
도덕주의자로 빠지면 맥빠진 성인군자처럼 변하기 일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들의 캐릭터는 놀랍도록 정교하다.
다시 읽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