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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변상도의 세계
국립중앙박물관 엮음 / 지앤에이커뮤니케이션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책이 두껍고 표지가 고급스럽게 장정되어 꽤 비싼 책인 줄 알았는데 4만원 정도 한다.
이런 도록들은 도서관에 비치된 경우가 별로 없고 있더라도 대출불가기 때문에 사서 보는 수 밖에 없는데 사기에는 또 부담이 되서 서점에서 들춰 보기만 하고 아쉽게 포기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중앙 박물관의 도서관에 가면 이런 비싼 도록들을 열람할 수 있다.
서가에 꽂혀 있는 걸 보고 반가운 마음에 얼른 꺼내 와 읽었는데 내용도 상당히 두툼하다.
2007년도에 일본에 있는 고려의 사경변상도와 전국 각지의 미술관에 산재한 유물들을 모아 전시했던 모양이다.
실제로 봤다면 감지에 금선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변상도들을 한 곳에 모아 놨으니 대단했을 것 같다.
직접 보지 못해 아쉽다.
사경은 말 그대로 경전을 베껴 쓴다는 뜻이고, 변상도는 경전의 내용을 이미지로 간단하게 압축하여 그린 그림이다.
이 외에도 왜 이 경전을 쓰게 됐는지에 관한 발원문이 붙는다.
백지에 먹으로 쓰는 백지묵서도 있지만 대부분 귀족불교였던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들이므로 엄청난 돈과 노력을 들인 감지금니경이나 상지은니경이 다수다.
감지는 쪽으로 염색한 종이고, 상지는 도토리 열매로 염색하여 갈색빛이 난다.
이런 염색 종이라야 금과 은으로 그림을 그리면 선명하게 잘 드러난다.
종이 제조 과정에서부터 향을 입힌 닥나무를 재배하였다고 하니 사경에 쓰인 그 정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이 간다.
특히 몽골의 지배를 받던 충렬왕 이후 시대부터는 국왕 발원의 사경 제작이 활발하여 전문 사경원을 설치하고 엄청난 정성과 경제력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사경 풍조가 나라를 망친다는 말까지 나오고 숭유억불 정책의 조선이 등장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변상도라는 말이 그림인 줄은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했더니, 승려가 경전을 강의할 때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일화 등을 삽입해 이야기 하는 것을 變文 이라고 하고, 그림으로 나타낸 것을 變相 이라 한다고 한다.
쉽게 풀어 쓴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대승불교의 영향을 받은 만큼 한국 불교는 전통적으로 선종의 색깔이 강했다.
제일 많이 사경이 이루어진 경전은 묘법연화경, 즉 법화경과 대방광불화엄경, 즉 화엄경이다.
이 중에서도 선재동자가 53인의 선지식들을 찾아 보살행에 대해 질문하는 구도여행을 그린 그림이 가장 많았다.
수월관음도에 등장하는 그 선재동자인데 변상도에서는 관음보다는 맨 마지막에 찾아간 보현보살, 즉 보현행원도가 가장 많이 그려진 것 같다.
사실 이 변상도들은 어찌 보면 천편일률적으로 거의 똑같은 도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감별이 잘 안 되는데 조그만 꼬마가 등장하는 선재 동자 그림은 금방 알겠다.
불교에 대해 워낙 무지하기 때문에 그 그림이 그 그림인 것 같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불화의 도상은 너무 비슷해 작품 하나하나의 개성이 금방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가느다란 선묘로 그려진 변상도는 더욱 그렇다.
중국의 변상도를 보니 선 외에도 공간감과 입체감을 주는 채색 등이 들어가 있어 고려의 변상도와는 구분이 갔다.
일본의 경우는 고려 보다 더 단순하고 변상도가 그려진 폭도 작은 편이다.
고려의 변상도는 후기로 갈수록 공간을 빽빽히 선으로 채우는 바람에 후대 것은 더욱 그림을 정확히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조선 시대는 숭유억불 정책을 편 만큼 초기 변상도 외에는 남아 있는 게 없다.
사경을 만드는데 엄청난 돈과 인력이 소비되기 때문에 고려 시대처럼 쉽게 만들지 못했을 것이고, 인쇄 문화가 활발해지면서 더욱 줄어들지 않았나 싶다.
물론 고려 역시 인쇄술이 발달했으나, 당시에는 경전을 베끼는 것이 공덕의 일종으로 숭앙됐다고 한다.
고려 시대에 가장 오래된 사경은 목종의 어머니 천추태후가 총신인 김치양과 함께 발원한 <대보적경>이다.
일본 교토 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그 외에도 고려에서 제작된 다수의 사경들이 일본으로 건너 갔는데 이런 문화재 반출이 식민지 시대에 이뤄진 게 아닌가 싶어 많이 아쉬웠다.
한 가지 새로 안 사실이 원각사탑의 유래다.
효령대군의 회암사 원각법회를 기념하여 세조가 세운 탑인데, 이 원각이라는 말이 석가가 열 두 보살과 원각을 얻는 방법에 대해 논한 원각경에서 나온 말이고, 이 경전은 선문의 3대 소의경전 중 하나라고 한다.
원이름은 <대방원각수다라료의경>이라고 하는데 대방은 대승불교의 대승기신론을 뜻하고, 원각수다라는 화엄경에 나오는 원각수다라을 뜻하는데 수다라는 sutra의 음역이다.
산스크리트어로 sutra가 곧 경전이다.
요의경은 불법의 도리를 말한 진짜 경전이라는 뜻이다.
원각경을 사경한 것도 꽤 된다.
불교에 대한 이해가 일천하여 뒷쪽으로 갈수록 흥미가 감소했으나 사경변상도라는 독특한 예술 분야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됐고, 결국 발원하는 이들의 깊은 신앙심이 바탕이 됐기 때문에 문화예술적 접근보다는 종교적 접근이 이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지 않을까 싶다.
기독교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큰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불교 문화에 대해 대부분 관심이 적은 편인데 전통문화의 이해 측면에서라도 불교는 좀 더 깊이 이해되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