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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 ㅣ 금강인문총서 2
석길암 지음 / 불광출판사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요즘 부쩍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한 때 기독교 신자라고 믿었을 때, 불교는 유일신을 숭배하는 진정한 교회가 아니라 석가모니라는 인간을 추종하는 한 단계 낮은 종교라는 생각마저 했었고 더 낫게 생각하는 것이 기껏해야 철학적인 자기 성찰의 종교, 이 정도였다.
따지고 보면 불교는 2천 년의 세월을 한국인과 함께 해 온, 어찌 보면 한국인의 원형과도 같은 깊은 역사를 가진 종교인데 오늘날 기독교에 밀려 세력을 잃고 있는 것은, 일정 부분은 기독교로 대표되는 서구화, 더 정확히는 해방 이후 개신교의 나라 미국 추종과도 깊은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 내내 불교는 중앙의 집권자들 뿐 아니라 서민들에게까지 강력한 문화적 코드로 자리잡았고, 숭유억불 정책을 쓰던 조선 시대에도 여전히 민간에서는 신앙적 대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일본이나 중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근대화를 맞은 한국 불교가 일본의 색채를 걷어 낸다는 명목하에 그동안의 전통마저 일소에 지워 버리려는 시도들을 안타까워 하는 마지막 장의 저자의 한탄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조계종으로 통일된 후 특히 출가자의 수행을 중시했는데 나도 대처승이라고 하면 어쩐지 세속적인 느낌이 들었었는데 그 역시 재가자 위주의 불교, 더 넓게는 중생구제라는 동아시아 불교의 특징임을 알게 됐다.
저자는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불교 뿐 아니라, 한중일 동아시아를 관통하고 있는 문화적 코드로서의 불교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불교의 세계라고 할까?
불교 문화가 이렇게도 깊이 역사와 일상 생활에 들어와 있는 줄 미처 몰랐다.
300 페이지가 채 안 되는 작은 분량이지만 덕분에 불교에 대해 약간의 지식과 이해가 생겼고, 무엇보다 역사와 문화 속에 현재까지도 녹아 있는 불교의 저력에 대해 확인했다는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또 중생 구제를 목표로 하는 대승불교가, 개인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소승불교 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 것도 일종의 착각이었음을 알게 됐다.
기본적으로 불교는 수행을 중시하는 인도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정각에 이르러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가장 중요시 했다.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요가도 그런 수행의 일종일 것이다.
그래서 인도에서 절의 기원은 동아시아처럼 신앙의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우기 때 스님들이 모여 수행에 정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됐다고 한다.
이런 절을 사원이라고 부른다.
수행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 당연히 전문적인 교육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대당서역기>에 나온 바대로 현장이 유식학을 배운 곳도 바로 인도의 유명한 교육 현장인 나란다 사원이다.
또 수행공간을 현지어로 상가람마로 부르는데 이것을 줄여 가람이라 하고 정사로 번역하기도 한다.
부처님이 입멸하고 아쇼카 왕이 불사리탑을 인도 각지에 세우면서 신앙 공간으로 기능이 확장됐고, 이 탑과 불상들이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오면서 동아시아의 절은 수행이나 교육보다는 신앙 공간으로 작용하게 된다.
한 가지 특기할 점은, 인도의 범어를 한어로 번역하는 작업들이 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역경장으로서의 기능을 매우 중시한다.
불교가 안세고나 구마라집 등에 의해 처음 번역이 시도된 이래 보지류지나 불타선다, 전제, 현장 등 유명한 고승들의 경전 번역이 절에서 이루어졌고, 이 경전 편찬 사업이야 말로 동아시아 불교를 특징짓는 매우 중요한 행위였다고 한다.
문화나 사상적 토양이 전혀 다른 불교를 중국식으로 자기화 하는 과정, 유교에서 강조하는 효를 대입하고 노장 사상을 통해 이해하려고 했던 이런 일련의 시도들을 저자는 격의불교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문화적 변용 내지는 수용이라고 할까?
이를테면 대승불교에서 중요시 하는 <부모은중경> 이라는 경전은 유교의 효 사상을 강조한 명백한 위경이라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성경 이외의 경전에 대해서는 이단시 하고 매우 엄격하게 통제를 가하는데 이런 점에서 불교는 확실히 유일신 숭배와는 그 배경이 전혀 다른 느낌이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 불교가 적응하고 발전하기 위해 이 격의 전통이 보다 활성화 되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요즘은 불화에 핸드폰도 등장한다고 하니 확실히 불교는 유일신 숭배의 기독교보다는 좀 더 열려 있는 느낌이 든다.
동아시아 불교의 특징을 말하자면 아미타 신앙이나 화엄 사상, 선종 등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나무아미타불이란 말은 너무나 유명해 뜻도 모르면서 스님을 만나면 의례껏 하는 인사인 줄 알았다.
저자는 아미타 신앙을 일컫어 자력구원의 불교가 타력구원을 추구하는 특별한 사례라고 본다.
아미타불에게 의존하여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아미타불이 쌓은 공덕에 힘입어 극락왕토로 갈 수 있다는 뜻이다.
대승불교의 기원이 되는 북전불교가 탄생한 곳은 인도의 북부 간다라 지방이다.
여기서 불상 등의 미술과 함께 불교가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으로 건너오는 동안, 상인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 상인들의 후원으로 실크로드가 형성된 중앙아시아에는 수많은 석굴들이 세워졌고 불탑과 불상들이 조성됐다.
온갖 험난한 과정을 겪으면서 무역길에 나선 상인들을 보호하고 위안을 줄 수 있는 매달릴 수 있는 신앙의 대상이 바로 아미타불이고 그가 온 세상의 중생을 다 구제할 때까지 수행을 멈추지 않겠다고 서원한 곳에 세워진 곳이 바로 극락정토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혼란기 때 민중이 매달린 것도 바로 이 아미타 신앙이다.
아미타 신앙에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었는지 미처 몰랐다.
화엄이나 선종 역시 동아시아 불교의 특징적 형태다.
저자는 마음의 수련을 중시하는 불교의 이런 특징이 유학의 자기 혁신과 만나 성리학을 탄생시키고 북송 이후에는 정치적 사상적 주도권을 잡게 됐다고 설명한다.
한반도에서는 귀족불교를 몰아내고 조선이 건국됐고,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부터 하야시 라잔이라는 관승에 의해 성리학이 주도권을 잡았다고 본다.
성리학과 선종의 결합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이다.
북송 이후 불교가 결정적으로 주도권을 뺏긴데는 9세기 중반에 벌어진 회창의 법난에도 큰 영향이 있다고 한다.
이 때 수많은 경전이 소실됐다는 것이다.
유학 중심의 조선이 건국된 것도 다 시대적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제일 인상깊었던 부분은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 건축 배경이었다.
보통 두 탑이 같이 세워진 이유로, 법화경에 나온 일화를 인용하는데 석가여래가 영취산에서 설법을 할 때 땅이 열리면서 다보여래가 나타나 그 말이 다 옳다고 소리친 후, 두 부처가 한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는 이른바 二佛竝坐 를 든다.
그런데 저자는 다보탑이 매우 화려하고 석가탑이 단순한 것에 주목하여 다른 해석을 한다.
석가탑의 다른 이름이 무영탑인데 이것은 그림자조차 없는 광명, 즉 진리의 세계를 뜻한다.
화엄에서 말하는 부처가 정각에 들어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므로 모든 장식을 배격하고 간결하고 심플하게 조성했다.
반면 다보탑은 부처가 정각에 이른 후 그 진리가 온 세상에 비춰지는 환희의 순간을 묘사한 것이므로 매우 화려하게 형상화 됐다.
청운교 백운교를 지나 안양문에 들어서면 안양세계 즉 화엄에서 말하는 연화장세계에 이른다는 불국사의 조성 배경을 생각해 보면, 저자의 이런 해석이 더 일리가 있지 않나 싶다.
어쨌든 그저 미학적으로만 봤던 불국사 두 탑에 이런 사상적 배경이 숨어 있었는지 미처 몰랐는데 신라인들의 깊은 종교적 철학적 성찰이 담긴 건축물이었음을 새삼 확인했다.
불교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이미지가 잡힌 느낌이 들고,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불교에 대한 기본적인 교리를 이해하고 싶다.
나에게는 문화나 역사적 관점으로서의 불교가 한국사를 이해하는데 무척 중요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