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한번은 꼭 만나야 할 곳 100 : 2. 아시아.아메리카.오세아니아 편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
이태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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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도 재밌게 읽었고 2권도 흥미진진하다.
1권에서 우리에게 낯선 아프리카를 돌아 봤다면 2권에서는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등을 둘러 보는데 뜻밖에도 아시아 역시 별로 가 본 곳이 없었다.
그만큼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고 할까?
처음에 소개된 우즈베키스탄이라든가, 몽골, 티벳, 투루판 등을 꼭 가 보고 싶다.
아시아 하면 막연히 한중일, 이런 식으로만 생각했는데 중앙아시아 문화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태국이나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등의 동남 아시아에 대해서도 정말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확실히 세계사 하면 유럽사만, 그것도 특히 중서부 유럽에 국한되서 생각했던 것 같다.
두 페이지 정도의 설명과 몇 장의 사진으로 구성된 깔끔한 편집이 마음에 든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1000, 이러면 너무 거창해 마음으로부터 짐짓 포기하게 되는데 그래도 100 곳이라고 하니까 조금은 용기가 생긴다.
당장 가 보고 싶은 곳으로는,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 지역인 우루무치나 투루판 분지와 인도의 타지마할, 네팔의 히말라야 트래킹 등이다.
히말라야의 경우 등반가나 가는 곳인줄 알았는데 트래킹 코스가 잘 개발됐다고 한다.
카트만두 역시 불탑 등 볼 것이 많았다.
얼마 전에 본 MBC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네팔은 여전히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에 온 사회가 묶여 있어 차별이 심한 곳인데 여행기 어디에도 그런 언급은 없다.
보는 관점이 다르니 당연한 거겠지만, 돈 쓰고 놀러 오는 여행객의 눈으로 그 사회를 알았다고 감히 말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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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 시간이 멈춘 곳
이재규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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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 반도하면 그저 막연히 코소보 사태, 인종 청소 이런 이미지 밖에 없었는데 알고 보니 역사가 유구한 곳이다.
잘 모르기 때문에 나쁜 쪽으로만 이미지가 굳어졌던 것 같다.
여행기이면서도 발칸의 역사에 대해 정말 성실하게 잘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사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아쉽긴 하지만 발칸 소개서로 훌륭하다.
특히 발칸 반도에 오랫동안 영향력을 행사했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한 지식을 덤으로 얻게 되서 더 유익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막연히 분쟁 많은 곳, 유럽의 골칫거리 이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 곳의 복잡다단한 역사를 접해 보니 유고 연방으로 출발한 것부터가 억지 조합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순히 이해 관계가 얽혀서가 아니라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갈등이 오랫동안 존재해 왔고 열강들에 의해 억지로 붙였다 떼었다를 반복했으니 단일 국가로 모여 지내기가 난해한 문제다.
지금은 여섯 국가로 분리됐는데 빨리 안정을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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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유혹 - 이태원의 고대문명 탐사
이태원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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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재밌게 읽은 여행기.
남의 여행기를 읽는다는 건 솔직히 어려운 일이다.
일단 내가 그 곳에 가 보지 않아서 실제 어떤 느낌인지 공감하기가 어렵고, 여행 작가들이 의외로 문장력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그럴듯한 사진 몇 장 실어 놓고 잡다한 감상 찌거기를 배설한 글을 읽다 보면 괜히 화가 나기도 한다.
오히려 사진 한 장 없어도 이문열이 쓴 바이칼 호수 여행기를 훨씬 감동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소설가와 보통 사람의 차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이 책은 전문 여행가도 아닌 직장인이 퇴직 후 다녀 온 이집트에 대해 꽤 성실하게 글을 썼다.
사진도 볼 만 하고 무엇보다 이집트 역사에 대한 알찬 정보를 담고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가 보지 않은 곳이라 사실 구체적인 설명은 자세히 읽지 못하고 대충 넘겼지만 이집트의 문화 유산에 대한 어느 정도의 느낌은 갖게 됐다. 

생각해 보면 이집트야 말로 진정한 반 만년의 역사를 가진 곳이 아닐까 싶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5천년 전의 왕조 계보도까지 정확하게 갖고 있는 나라가 흔할까?
우리나라 같은 경우 막연히 단군 왕검이 기원전 2333년에 나라를 세워 1500년 간 다스리다 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됐다는 식의 신화에 불과한 반면, 이집트는 그 먼 초기왕조 시절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정확한 연대 계산을 할 수 있고 왕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니 진정한 역사의 시작이 이루어진 곳이라 하겠다.
이집트 문화의 위대함에 대해서는 아무리 감탄을 하고 찬사를 늘어 놓아도 인류 문명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런 이집트가 고대 왕국의 화려함을 뒤로 하고 그리스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다시 이슬람의 지배를 거쳐 오스만 투르크의 속국으로 20세기를 맞기까지 역사가 안타깝다.
현재는 아랍인과의 혼혈이 대부분이고 아랍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고대 이집트 문화와는 꽤 단절이 있는 셈이다.
그래서 샹폴리옹이 해독하기 전에는 누구도 상형문자에 대해 알지 못하고 그 위대한 역사도 묻혀 버렸던 모양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수천년 전부터 오늘날까지 중앙집권체제를 통해 단일한 문명을 유지해 온 중국이 대단해 보이기도 하다. 

다음 여행은 무조건 이집트로 가야겠다.
이번 터키 갈 때도 시간만 되면 이집트까지 둘러 보고 싶었는데 일주일 이상 휴가를 내지 못해 포기했다.
직접 가서 눈으로 피라미드와 신전과 상형문자들을 봐야 그 문명의 위대함이 더 생생하게 다가올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오탈자가 꽤 된다.
기파랑이라고 출판사 이름을 지은 것에 대해서는 꽤 거창하게 설명하면서 교정은 무성의한 것 같다.
새 판이 나올  때는 꼼꼼하게 교정을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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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 금강인문총서 2
석길암 지음 / 불광출판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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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한 때 기독교 신자라고 믿었을 때, 불교는 유일신을 숭배하는 진정한 교회가 아니라 석가모니라는 인간을 추종하는 한 단계 낮은 종교라는 생각마저 했었고 더 낫게 생각하는 것이 기껏해야 철학적인 자기 성찰의 종교, 이 정도였다.
따지고 보면 불교는 2천 년의 세월을 한국인과 함께 해 온, 어찌 보면 한국인의 원형과도 같은 깊은 역사를 가진 종교인데 오늘날 기독교에 밀려 세력을 잃고 있는 것은, 일정 부분은 기독교로 대표되는 서구화, 더 정확히는 해방 이후 개신교의 나라 미국 추종과도 깊은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 내내 불교는 중앙의 집권자들 뿐 아니라 서민들에게까지 강력한 문화적 코드로 자리잡았고, 숭유억불 정책을 쓰던 조선 시대에도 여전히 민간에서는 신앙적 대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일본이나 중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근대화를 맞은 한국 불교가 일본의 색채를 걷어 낸다는 명목하에 그동안의 전통마저 일소에 지워 버리려는 시도들을 안타까워 하는 마지막 장의 저자의 한탄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조계종으로 통일된 후 특히 출가자의 수행을 중시했는데 나도 대처승이라고 하면 어쩐지 세속적인 느낌이 들었었는데 그 역시 재가자 위주의 불교, 더 넓게는 중생구제라는 동아시아 불교의 특징임을 알게 됐다.
저자는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불교 뿐 아니라, 한중일 동아시아를 관통하고 있는 문화적 코드로서의 불교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불교의 세계라고 할까?
불교 문화가 이렇게도 깊이 역사와 일상 생활에 들어와 있는 줄 미처 몰랐다.
300 페이지가 채 안 되는 작은 분량이지만 덕분에 불교에 대해 약간의 지식과 이해가 생겼고, 무엇보다 역사와 문화 속에 현재까지도 녹아 있는 불교의 저력에 대해 확인했다는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또 중생 구제를 목표로 하는 대승불교가, 개인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소승불교 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 것도 일종의 착각이었음을 알게 됐다. 

기본적으로 불교는 수행을 중시하는 인도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정각에 이르러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가장 중요시 했다.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요가도 그런 수행의 일종일 것이다.
그래서 인도에서 절의 기원은 동아시아처럼 신앙의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우기 때 스님들이 모여 수행에 정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됐다고 한다.
이런 절을 사원이라고 부른다.
수행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 당연히 전문적인 교육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대당서역기>에 나온 바대로 현장이 유식학을 배운 곳도 바로 인도의 유명한 교육 현장인 나란다 사원이다.
또 수행공간을 현지어로 상가람마로 부르는데 이것을 줄여 가람이라 하고 정사로 번역하기도 한다.
부처님이 입멸하고 아쇼카 왕이 불사리탑을 인도 각지에 세우면서 신앙 공간으로 기능이 확장됐고, 이 탑과 불상들이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오면서 동아시아의 절은 수행이나 교육보다는 신앙 공간으로 작용하게 된다.
한 가지 특기할 점은, 인도의 범어를 한어로 번역하는 작업들이 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역경장으로서의 기능을 매우 중시한다.
불교가 안세고나 구마라집 등에 의해 처음 번역이 시도된 이래 보지류지나 불타선다, 전제, 현장 등 유명한 고승들의 경전 번역이 절에서 이루어졌고, 이 경전 편찬 사업이야 말로 동아시아 불교를 특징짓는 매우 중요한 행위였다고 한다.
문화나 사상적 토양이 전혀 다른 불교를 중국식으로 자기화 하는 과정, 유교에서 강조하는 효를 대입하고 노장 사상을 통해 이해하려고 했던 이런 일련의 시도들을 저자는 격의불교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문화적 변용 내지는 수용이라고 할까?
이를테면 대승불교에서 중요시 하는 <부모은중경> 이라는 경전은 유교의 효 사상을 강조한 명백한 위경이라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성경 이외의 경전에 대해서는 이단시 하고 매우 엄격하게 통제를 가하는데 이런 점에서 불교는 확실히 유일신 숭배와는 그 배경이 전혀 다른 느낌이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 불교가 적응하고 발전하기 위해 이 격의 전통이 보다 활성화 되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요즘은 불화에 핸드폰도 등장한다고 하니 확실히 불교는 유일신 숭배의 기독교보다는 좀 더 열려 있는 느낌이 든다. 

동아시아 불교의 특징을 말하자면 아미타 신앙이나 화엄 사상, 선종 등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나무아미타불이란 말은 너무나 유명해 뜻도 모르면서 스님을 만나면 의례껏 하는 인사인 줄 알았다.
저자는 아미타 신앙을 일컫어 자력구원의 불교가 타력구원을 추구하는 특별한 사례라고 본다.
아미타불에게 의존하여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아미타불이 쌓은 공덕에 힘입어 극락왕토로 갈 수 있다는 뜻이다.
대승불교의 기원이 되는 북전불교가 탄생한 곳은 인도의 북부 간다라 지방이다.
여기서 불상 등의 미술과 함께 불교가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으로 건너오는 동안, 상인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 상인들의 후원으로 실크로드가 형성된 중앙아시아에는 수많은 석굴들이 세워졌고 불탑과 불상들이 조성됐다.
온갖 험난한 과정을 겪으면서 무역길에 나선 상인들을 보호하고 위안을 줄 수 있는 매달릴 수 있는 신앙의 대상이 바로 아미타불이고 그가 온 세상의 중생을 다 구제할 때까지 수행을 멈추지 않겠다고 서원한 곳에 세워진 곳이 바로 극락정토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혼란기 때 민중이 매달린 것도 바로 이 아미타 신앙이다.
아미타 신앙에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었는지 미처 몰랐다.
화엄이나 선종 역시 동아시아 불교의 특징적 형태다.
저자는 마음의 수련을 중시하는 불교의 이런 특징이 유학의 자기 혁신과 만나 성리학을 탄생시키고 북송 이후에는 정치적 사상적 주도권을 잡게 됐다고 설명한다.
한반도에서는 귀족불교를 몰아내고 조선이 건국됐고,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부터 하야시 라잔이라는 관승에 의해 성리학이 주도권을 잡았다고 본다.
성리학과 선종의 결합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이다.
북송 이후 불교가 결정적으로 주도권을 뺏긴데는 9세기 중반에 벌어진 회창의 법난에도 큰 영향이 있다고 한다.
이 때 수많은 경전이 소실됐다는 것이다.
유학 중심의 조선이 건국된 것도 다 시대적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제일 인상깊었던 부분은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 건축 배경이었다.
보통 두 탑이 같이 세워진 이유로, 법화경에 나온 일화를 인용하는데 석가여래가 영취산에서 설법을 할 때 땅이 열리면서 다보여래가 나타나 그 말이 다 옳다고 소리친 후, 두 부처가 한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는 이른바 二佛竝坐 를 든다.
그런데 저자는 다보탑이 매우 화려하고 석가탑이 단순한 것에 주목하여 다른 해석을 한다.
석가탑의 다른 이름이 무영탑인데 이것은 그림자조차 없는 광명, 즉 진리의 세계를 뜻한다.
화엄에서 말하는 부처가 정각에 들어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므로 모든 장식을 배격하고 간결하고 심플하게 조성했다.
반면 다보탑은 부처가 정각에 이른 후 그 진리가 온 세상에 비춰지는 환희의 순간을 묘사한 것이므로 매우 화려하게 형상화 됐다.
청운교 백운교를 지나 안양문에 들어서면 안양세계 즉 화엄에서 말하는 연화장세계에 이른다는 불국사의 조성 배경을 생각해 보면, 저자의 이런 해석이 더 일리가 있지 않나 싶다.
어쨌든 그저 미학적으로만 봤던 불국사 두 탑에 이런 사상적 배경이 숨어 있었는지 미처 몰랐는데 신라인들의 깊은 종교적 철학적 성찰이 담긴 건축물이었음을 새삼 확인했다. 

불교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이미지가 잡힌 느낌이 들고,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불교에 대한 기본적인 교리를 이해하고 싶다.
나에게는 문화나 역사적 관점으로서의 불교가 한국사를 이해하는데 무척 중요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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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0-09-10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안그래도 이런 책 없나 찾고 있었는데, 덕분에 좋은 길잡이를 하나 만날 것 같습니다.

marine 2010-09-11 10:09   좋아요 0 | URL
불교의 기본적인 교리에 대해 문화적으로 접근한 비교적 쉬운 책입니다. 종교보다 문화와 역사에 집중해 읽기 편했어요.
 
요시노가리 - 일본 속의 고대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엮음 / 그라픽네트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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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말 의외의 소득이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도록들을 찾던 중 그냥 무심코 제목에 눈길이 가서 고른 책인데, 청동기 시대의 발전상과 일본과의 교류에 대해 굉장한 지식을 얻게 됐다.
도록을 보면 유물 자체 보다는 뒷쪽에 실린 논고가 굉장한 도움이 된다.
막연히 청동기 하면 벼농사 시작, 이렇게만 생각했고 일본에 청동기와 벼농사를 전해 줬겠지 이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요시노가리라는 마을 유적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청동기 시대에 대한 엄청난 정보들을 얻게 됐다.
깊이가 있는 도록이다.
아쉽게도 이 전시회 역시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도록으로라도 접할 수 있게 되서 기쁘다. 

솔직히 말하면 부여 송국리 유적지가 청동기 유적인줄도 몰랐다.
그냥 막연히 유명한 마을 유적이다라고만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끝난 중앙박물관의 청동기 시대 마을 재현 전시회에서 비로소 그 존재를 알게 됐다.
부여의 송국리 유적은 청동기 중기를 구분짓는 매우 중요한 유적이고 이 문화가 비로소 일본에 전해져 일본의 청동기 시대인 야요이 문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송국리식 토기라면 청동기 중기를 뜻한다.
알려진 것처럼 빗살무늬 토기하면 신석기 시대이고, 공렬토기와 각문돌대문토기로 대표되는 역삼동 토기와 가락동 토기는 청동기 초기이며, 송국리 토기가 중기, 점토대토기가 후기를 대표한다.
청동기에도 초기, 중기, 후기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막연히 빗살무늬는 신석기, 무문토기는 청동기 이렇게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토기의 변화나 벼농사의 도입을 외부 이주민들의 한반도 전래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큐레이터와의 대화에서도 학예사들의 설명으로 이해했었던 부분이다.
결국 어떤 지역에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화가 시작되려면 외부 유입이라는 필수적인 과정을 겪는 것 같다.
일본 역시 한반도에서 건너 온 이 도래인들에 의해 벼농사가 시작되고 청동기가 제작됐다. 

벼농사, 그 중에서도 밭이 아닌 논에 물을 대로 심는 수도작의 중요성은, 청동기 시대 마을을 탄생시킨 매우 중요한 변화이다.
신석기 시대에 농사가 시작된 이래 밭에 벼를 심기도 했지만 벼농사로 인한 본격적인 농경 사회의 시작은 신석기의 수렵 이주민들이 아닌 청동기 시대의 정착민들부터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알려진 것처럼 논농사를 지으려면 관개가 필수이고 노동집약적 과정이기 때문에 모여 살아야 한다.
또 목제 농기구를 만들기 위한 석제 도구들의 발달도 필수적이다.
농촌에서 흔히 보는 낫이나 호미 같은 철기 농기구가 나오기까지 정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소모됐던 것이다.
돌칼은 이삭을 따고 돌낫으로는 벼를 베고, 따비로 땅을 일구었다.
마제석기가 이런 농기구를 만들었다.
벼농사를 지으면서 식량의 잉여 생산과 저장이 가능했기 때문에 송국리 주거지에는 저장 시설이 따로 존재했고 토기도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이런 잉여 생산물 덕분에 계급이 생기고 취락과 분묘에 위계질서가 생기며, 생산물을 지키기 위해 주거지에 도랑을 파는 환호형 마을이 생겼다.
목책과 망루를 설치하여 공동 수비를 했고, 지배 계층의 위세품을 만들기 위한 전문 장인 집단도 생겨나 공방이 운영되기도 했다.
농경사회의 시작은 말하자면 현재 인류 문화의 기본을 다진 셈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 같다. 

기원전 9세기 무렵부터 본격적인 벼농사라고 할 수 있는 송국리형 문화가 시작됐고 기원전 5세기 무렵 낙동강에서 일본 북부 규슈 지방의 사가현으로 한반도인들이 이주해 가서 일본의 청동기 시대인 야요이 문화가 시작됐다.
일명 도래인의 이주를 증명하는 유물로는 세형동검, 중국 동경을 본뜬 소형방제경, 마제석기, 무문토기, 다뉴세문경 등을 들고 있고 이런 유물들이 한 취락에서 한꺼번에 발견됐다는 점을 들어 도래인이 청동기 문화를 이식했다고 보고 있다.
또 일본에서는 중국제 동경이나 소환두철도 같은 위세품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봐서 중국 한나라와도 직접적으로 교역했다고 보고 있다. 
재밌는 것은 중국에서는 동경이 진짜로 거울로 쓰인 반면, 그것을 받아들인 한국과 일본에서는 위세품으로 사용됐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동경은 꼭 청동방울 등의 무속품과 같이 발견된다고 한다.
일본 북부의 규슈는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지역으로 문화 전파에 매우 유리했다.
또 사가 평야등의 넓은 농지가 있고 배가 드나들기 좋은 하구가 있어 고대로부터 대륙의 문화가 들어와 내륙 지방으로 전파되는 관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일본과 활발하게 교류한 곳이 바로 낙동강 근처의 남서부 지역이다.
김해평야를 중심으로 한 변한 지역의 문화가 일본과 직접적으로 교류했다고 본다.
그 먼 옛날에도 배를 띄워 바다 건너 미지의 땅으로 갔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하다.
인간의 이주 욕구는 본능적인 것 같다.
중국 장강 유역에서 시작된 벼농사는 天鳥舟 신앙을 갖는데 이것이 한반도와 일본에도 전해져 공유한다고 한다.
하늘을 숭배하고 새를 인간과 하늘을 잇는 신령한 동물로 보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새모양 토기나 솟대 등을 통해) 배에 대한 신앙은 처음 들었다.
일본의 요시노가리 유적에서는 이 배 모양 의례품들이 다수 등장한다고 한다.
지난 번 큐레이터와의 대화에서 벼농사가 어디서 유래했느냐는 걸로 설왕설래가 있었는데 이 책에 따르면 세가지 신앙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벼농사는 강남 지방에서 이식된 걸로 보는 것 같다.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청동기 시대와 일본과의 교역에 대해 많은 지식을 얻게 된 유익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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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시노가리 특별전에 대해서...
    from 뿌리아름역사도서관 2010-09-07 03:13 
    일본에서는 이 요시노가리 유적이 굉장히 특별하게 취급받고 있죠.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부여 송국리 유적이나 울산 검단리 유적이 그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고요.  실제 요시노가리 유적을 가 보면 취락 전체를 복원해놨는데,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복원과정에서 고증의 문제가 걸리겠지만, 그렇게 꾸며놓았다는 것이 일단 대단하거든요.  실제 요시노가리 유적을 가 보지 못한 분들에게 그 특별전은 큰 의미가 있었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