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왜 바흐를 좋아할까?
차윤정 지음 / 지오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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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원하는 방향의 책은 아니었다.
먼저 읽은 <식물의 역사>와는 전문성 면에서 상당히 떨어지고 식물을 주제로 한 일종의 인문 에세이 같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많이 들었다.
저자의 어설픈 사회 비판이나 감수성에 동조하기가 힘들었다.
식물의 생활사에 인간상을 대입하는 것은, 흥미를 유발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관점으로 자연을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거부감이 들었던 문장은, 출산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무통분만 등을 시도하는 것을 두고 엄마로서 자격이 있네 없네 따지는 부분이었다.
아마도 저자는 본인이 두 명의 아이를 출산했기 때문에 더 당당하게 그런 말을 할 수도 있겠으나, 역시 임산부인 나로서는 극한의 고통을 느낀다고 해서 여성이 겪는 출산의 신비로움과 가치가 훼손되는 것도 아니고, 무통분만이라는 시술이 말처럼  통증을 완전히 없애 주는 것도 아니다.
약간 다른 맥락이지만, 에이즈가 동성애에 대한 신의 징벌이라는 일부 보수주의자의 주장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하여튼 저자의 감수성과 생각에 쉽게 젖어들지가 않아 처음에는 읽는데 힘들었으나 뒤로 갈수록 예쁜 꽃 사진과 식물의 다양한 생활상을 읽으면서 그런대로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움직이지 않는 식물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고 특별히 예쁘다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다.
그저 장미 정도나 이름을 알까, 구분할 수 있는 식물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안면도에서 열린 꽃박람회를 다녀온 후 식물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온갖 자태를 뽐내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원예작물들을 보면서,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에 완전히 빠져 들었다.
그 뒤로 식물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됐고 기회가 되면 직접 키워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왜 사람들이 화분을 가꾸고 수목원에 가고 식물도감을 보는지 알 것 같다.
그저 들꽃이라고만 불리는 야생화들도 정말 아름답다.
이런 꽃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을 수분시켜 줄 새와 곤충들을 유혹하기 위해 존재한다.
새는 그렇다 쳐도 곤충이 시각적 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보통 새는 붉은색에 민감하기 때문에 조매화는 붉은 계열의 꽃을 피우고, 곤충은 푸른색에 반응하므로 충매화는 푸른 계열의 꽃을 피운다.
향기로운 냄새도 다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서인데, 파리가 매개하는 일부 꽃은 역한 냄새가 난다고 한다.
열매도 종자를 퍼뜨려 번식하기 위한 전략의 하나다.
특히 새가 열매를 따 먹을 수 있게 탐스럽고 맛있는 과육을 만들어 내는 덕에 인간이 달고 맛좋은 과일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나무의 생활사 중 가장 신기하는 것은 수십 미터의 높이까지 지하의 물을 펌핑해 올라가는 시스템이다.
햇빛을 독차지 하기 위해 나무는 끝없이 몸을 위로 뻗는데 이 엄청난 몸통을 유지하려면 뿌리도 그만큼 지표면에 넓고 안정적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동력도 없이 어떻게 중력을 거스르고 그 엄청난 높이까지 물과 영양분을 공급하는지,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놀랍다.
식물에는 동물에 없는 세포벽이라는 게 있는데, 세포가 죽고 나면 세포막과 벽 사이가 목질 섬유로 채워져 나무의 줄기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키 큰 나무들의 대부분은 실은 죽은 세포인 셈이다.
실제 세포분열을 하는 층은 매우 얇다고 한다.
재밌는 것은, 바나나 나무나 야자 나무 같은 경우는 나무라기 보다는 오히려 풀에 가까운데, 그 까닭은 이들의 줄기가 목질섬유로 채워지지 않고 잎자루로 몸통을 감싸는 풀과 같다는 것이다.
억새풀 같은 경우 잎자루로 줄기를 감싸기 때문에 바람에 잘 흔들리고 안은 텅 비어있다. 

식물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니 무척 재밌다.
식물도감을 한 번 볼 생각이다.
이제 밖에 나가면 한 번쯤은 저 식물의 이름이 뭘까 생각해 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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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패러독스 - 기발한 상상력과 통쾌한 해법으로 완성한 경제학 사용설명서!
타일러 코웬 지음, 김정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도서관에서 우연히 고른 책인데 읽다 보니 예전에 읽었던 책이다.
그런데도 일부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전혀 새로웠다.
제대로 읽지 않아서인가, 원래 시간이 지나면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건가?
하여튼 지루하지 않게 재독했다.
앞서 읽은 <상식 밖의 경제학>과 비슷한 포맷인데 좀 더 자세하다.
경제학 하면 딱딱한 원론만 생각하기 쉬운데 이런 일상적인 접근법은 항상 반갑다. 

저자의 주장은, <상식 밖의 경제학>에서처럼 인간은 경제학에서 전제하는 완벽하게 합리적인 존재가 절대로 아니며, 단순히 보상과 처벌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센티브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반드시 돈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저자는 내적 동기, 즉 자부심이나 책임감, 사회적 인정 같은 보이지 않는 요소들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이를테면 딸에게 설거지를 시킬 때 돈을 주면 딸은 푼돈을 받기 위해 부모 말에 복종한다는 느낌이 들어 자발적으로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또래 집단에서도 용돈받고 설거지 했다는 것은 그다지 자랑스러울 게 없고 오히려 부모에게 순종하는 어리숙한 범생이 이미지로 비치기 쉽다.
그 돈은 사실 딸에게 아주 큰 가치를 갖는 것도 아니다.
하기 싫으면 돈 필요없어, 이렇게 말하면 끝이다.
돈 몇 푼으로 자신을 조정하려고 한다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얼마 안 되는 푼돈으로 딸을 구슬리기 보다는 차라리 그녀의 내적 동기에 호소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가족에 대한 봉사, 가족 내에서 딸이 갖는 위치나 존재감 등을 강조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딸은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인식한 설거지를 열심히 하게 될 것이다.
내 경험에 비춰 봐도 이건 매우 일리있는 지적이다.
돈 줄테니까 이걸 해라, 부모가 이렇게 시키면 벌써 나에게 명령을 내렸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나쁘다.
어린 마음에도 그까짓 돈 안 받으면 그만이지 이런 반발심이 먼저 든다.
그것은 얼마 안 되는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자리를 열심히 구하는 것과는 또다른 문제다.
왜냐하면 남은 일을 해야 돈을 주지만, 부모는 나에게 무조건적인 사람이라고 다르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돈으로 자식을 구슬른다는 건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리고 자녀의 내적 동기를 이용하려면 자녀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자아상을 가지고 싶은지 어떤 사람으로 비치고 싶은지를 잘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그러니 돈 몇 푼으로 간단히 자녀의 행동을 교정하려는 (설거지를 시킨다거나 성적을 올리는 것과 같은) 시도는 애초부터 너무 성의가 없는 태도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통제감을 갖길 원한다.
나 역시 간절히 바라는 게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자기 절제다.
내가 나를 완벽하게 컨트롤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싶다.
그래서 보상과 처벌이 반발심을 살 수 있다.
누군가에게 강요당한다는 느낌, 자발적이 못한 분위기를 사람들은 혐오한다.
실제로 그 일을 통해 얻게 되는 소득이 확실할 때도 말이다.
내적 동기에 호소하라는 저자의 충고에 일리가 있고, 남들은 몰라도 일단 나 자신에게 써먹어 보려고 한다.
나 역시 내 마음을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길고 지루하기만 하는 회의를 자주 갖는 이유도 반드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바래서가 아니다.
일방적으로 회사의 지침을 전달받는 게 아니라, 내가 참여한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을 실행하는 것이므로 회사에 소속감을 느끼고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느낌을 준다.
또 회의는 누가 내 편이고 누구와 연합해야 하는지를 탐색하는 권력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단순히 효율성만 따져서는 길고 지루한 회의가 대체 왜 계속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인간사에는 숨겨진 이면이 참 많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은밀한 것들이 말이다. 

여자들이 왜 별 쓸데도 없는 스포츠카나 다이아먼드 같은 선물에 열광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이것은 일종의 신호 보내기인데, 마치 공작새 수컷의 화려한 꼬리가 포식자에게 잡아 먹힐 위험이 크고 꼬리를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 에너지 소모가 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감수할 만큼 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을 광고하는 것처럼, 여자들 역시 불필요한 위세품에 투자할 여력이 있는 남자를 능력있게 평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별로 필요하지 않는 선물이라 해도 값이 비싼 것에는 환호하게 되고 남자가 타고 다니는 차나 입고 다니는 옷 등으로 능력을 가늠하는 것이다.
이것은 직원을 채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실무에 필요한 지식들을 학습시키지 않더라도 높은 학력은 이 사람이 성실하고 회사일에 잘 적응할 것이라는 가능성의 확인으로 받아들인다.
회사가 높은 학벌에 연연하는 것은 학교에서 실무를 잘 가르쳐서가 아니라 그 정도 학업을 견뎌낸 사람이면 틀림없이 회사일도 잘 해낼 거라는 기대감에서라고 하니 뽑는 사람 입장에서는 일리가 있는 얘기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신호 보내기의 의미를 잘 파악해야 한다.
한 가지 재밌는 예가, 저자는 종신 재직권이 있기 때문에 교수 회의에 나갈 때 넥타이를 매지 않고 자유로운 복장으로 참석한다.
이것은 내가 어떤 복장을 하든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든 나는 그런 평가에 전혀 내 위상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일종의 신호 보내기다.
그런데 위치가 불안한 사람이 이런 전략을 쓴다면 즉 시간강사가 넥타이도 안 매고 공식석상에 나타난다면 당장 입방아에 오를 것이고 그 사람의 평가에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러므로 아무나 자유로운 복장을 입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부자가 허름한 옷을 입고도 당당할 뿐더러 오히려 저 사람은 부자인데도 겸손하고 소박하다는 좋은 평가마저 끌어 낼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재산이 많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이 허름한 복장을 하면 자원이 없어서 저렇게 하고 다닐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광고하는 꼴이 된다.
그러니 함부로 일반적인 정서에 반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내가 과연 관습을 무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 잘 따져볼 일이다. 

제일 흥미를 끈 것은 역시 문화적 경제학이다.
예전에 책을 읽을 때도 이 부분을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문화 생활을 하는데 돈이 많이 들지는 않는다.
진품을 갖고 싶다는 소유욕이 강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도서관에 책은 널려 있고 명화는 미술관에 가서 관람하면 된다.
클래식도 몇 백원만 내면 당장 다운받아 들을 수 있다.
오히려 문화생활에서 중요한 자원은 주의와 시간이다.
이 attention이라는 단어가 참 중요한데, 사람이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의외로 크지 않다.
당장 미술관에 가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처음 한 두 시간은 열심히 관람을 하지만, 두 시간이 넘어가면 다리가 아프고 그 그림이 그 그림 같고 나중에는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다.
책도 마찬가지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아무리 재밌는 책도 지루해지고 집중도가 현격하게 떨어진다.
더군다나 이런 문화생활은 먹고 사는데 꼭 필요한 경제 활동도 아니기 때문에 투자할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니다.
또 이런 문화적 영역은 일반 대중에게 눈높이를 맞추지도 않는다.
미술관은 일반 관람객의 티켓 수입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의 기부금에 의존한다.
작가들 역시 대중 소설이 아닌 이상, 그들을 타켓으로 삼지 않는다.
그러니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저자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예술 지상주의 따위는 버려 두고 나 요인에 초점을 맞추라고 충고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관심있는 것에만 주의를 기울이자는 것이다.
미술관에 가면 아무리 평론가가 격찬을 해도 내가 별 느낌이 없으면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지루한 책을 읽는다면 과감히 포기해도 된다.
그거 말고도 읽을 책이 널려 있다.
내가 문화를 즐기고자 하는 것은 그것의 예술적 가치를 인식하는 것도 있지만 교양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은 욕구도 강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관심을 아예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흥미있는 것에 집중하는 쪽이 훨씬 경제적이다.
나 역시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관심있는 것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이것은 매우 경제적인 태도라 관심의 영역이 조금씩 넓어지면서 예술에 대한 지식과 깊이도 시나브로 커 간다는 느낌이 든다. 

지루한 고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충고도 매우 유용했다.
어려운 책은 일단 가볍게 일독을 하고 다시 돌아가서 재독한다.
지루하면 결말부터 읽어라.
등장인물 중 한 명을 중심으로 따라가라.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직업, 주변 상황 등을 메모하면서 읽는다.
뛰어넘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첫 50페이지는 반복해서 읽어 확실히 이해한다.
정 어려우면 비평을 먼저 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안 가면 과감히 포기하라!
실제로 내가 독서에서 써먹는 방법들이다. 
특히 가볍게 읽고 다시 읽는 방법이라든가, 첫 50페이지에 집중하라는 방법은 매우 유용하다.
일단 도입부를 정확히 이해하고 나면 속도감이 붙어 집중하기 쉬워진다.
어렵고 지루한 책은 한 두 번 건너 뛰고 일독 후 다시 읽으면 쉽게 와 닿는다.
그런데도 안 되는 책이라면 던져 버리는 수 밖에. 

뒷 장에 나온 기부 문제도 의미있게 다가 왔지만 아직은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미국 사회에서 일반인의 기부 문화가 꽤나 확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단지 공정무역커피라는 광고문구 때문에 비싼 돈을 주고 커피를 마시는 게 기부의 진정한 태도는 아님을 확인했다.
이 문제는 내가 어떤 분야에 내 주의와 시간, 경제적 여력을 투자할지 좀 더 고민해 볼 일이다.
나 역시 세상의 모든 불공평한 문제들에 대해 전혀 무심한 사람은 아니지만 또 모든 문제에 다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니, 진정으로 관심이 있는 쟁점에 대해 좀 더 고민한 후 내 자원을 투자할 생각이다.
비교적 재밌게 읽은 책이고 어찌 보면 실용서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실생활에 응용하여 삶에 작은 변화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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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그린 그림
배병우 글.사진 / 컬처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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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대했던 것만큼 만족했던 책은 아니다.
일단 도판 크기가 작아서 약간 실망했다.
나는 아마도 양쪽 페이지를 꽉 채우는 큰 사진을 원했던 것 같다.
덕수궁에서 열린 전시회를 못 간 게 아쉬워 서점에서 신간으로 나온 걸 보고 얼른 신청한 책인데, 도판만으로는 소나무의 매력을 제대로 알기 어려웠다.
창덕궁이나 알람브라 궁전의 정원 등은 무척 아름다웠다.
사실 사진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어떤 전시회에서 유네스코 지정 유적지를 찍은 걸 보고 건물 사진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아마 어떤 일본 작가였던 것 같다.
저렇게 큰 건물을 어쩜 저렇게도 완벽한 구도에서 건축 미학 포인트를 콕 짚어 내게 찍을 수 있을까 감탄했었다.
이번 사진집에서도 불타 오르는 듯한 붉은 단풍과 어우러진 창덕궁이 너무 좋았다.
신록이 우거진 선명한 녹색의 나뭇잎들도 얼마나 신선하고 가슴을 설레게 하는지!
눈덮힌 겨울은 어쩐지 스산해 보여 마음이 가질 않는다.
알람브라 궁전의 헤네랄리페 같은 선명한 채도의 초록과 연두빛으로 빛나는 여름의 풍경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진다.
스페인과 터키를 갔을 때 제일 좋았던 게 바로 올리브의 그 연두색 잎들이다.
실제 올리브 열매도 무척 맛있게 먹었고, 버스나 기차를 타다 보면 창밖 어디에서나 보이는 그 선명한 연두색의 올리브 나무들이 마음을 빼앗았다.
나무나 꽃 구분을 잘 못하는 편인데도 올리브 나무는 금방 눈에 띄었다.
저자 역시 올리브 밭의 아름다움에 대해 언급했다. 

소나무 사진은 흑백이 많아 밋밋한 느낌이 들었다.
빛이 들어오는 소나무 숲 사진이 뭔가 철학적으로 보이긴 한데 도판만 가지고는 충분히 매력을 느끼기 어려웠다.
경주 왕릉을 지키는 소나무, 이런 테마는 참 좋다.
왕릉 옆에 서 있는 무인상들과의 조화가 아름답다.
지천에 널려 있는 소나무는 저자의 표현대로 한국의 전통적인 미학적 대상이 아닐까 싶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새벽이 밝아올 때부터 시작되는 작업 태도였다.
저자는 빛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데, 나도 그 기분을 조금은 알고 있다.
여름날 해가 뜨기 직전, 주변이 파랗게 물들면서 공기가 청명해지고 어스름하게 밝아 오는 그 신선하고 상쾌한 대기의 느낌.
만약 내가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바로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
저자는 또 해가 질 무렵의 석양도 카메라에 자주 담는다.
빛이 번져가는 혹은 사라져 가는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작업 정신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뒷쪽에 보니 종묘 사진이나 창덕궁 사진, 알람브라 궁전 사진첩이 모두 따로 나와 있었다.
기회가 되면 이런 본격적인 사진집을 구경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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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꼭 만나야 할 곳 100 : 1. 유럽.아프리카편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
이태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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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 예쁘게 되어 있고 사진이 볼 만 하다.
여행지에 대한 소개는 한 장 분량으로 짧게 그치고 있어 아쉬운 점도 없지 않으나, 100 여 군데에 달하는 많은 여행지를 소개하면서 설명을 길게 늘어 놓으면 그것도 지루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서유럽 쪽은 대학교 배낭 여행 때 가 본 곳들이라 아는 곳이 나와 반가웠고, 동유럽 쪽은 처음 들어 보는 곳이 많았다.
특히 새로 독립한 슬로베니아라든가 크로아티아 같은 발칸 반도 쪽 국가들의 중세 도시들, 이를테면 두브로브니크, 스플릿, 피란, 코토르처럼 아드리아 해를 끼고 있으면서 중세 유적지가 잘 보존되어 있고 휴양지로도 각광받는 곳들은 처음 알게 됐다.
아마 유럽 현지인들에게 더 유명하지 않을까 싶다.
많은 여행객들을 끌어 모으는 관광대국 스페인은 이번 신혼여행 때 다녀온 곳이라 더 반가웠다.
짧은 일정 때문에 안달루시아 지방은 그라나다 밖에 못 가 봐서 로마 유적지가 많이 남아 있는 세비야 등을 못 가 봐 너무 아쉽다.
과연 내가 다시 그 먼 곳을 가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폴란드의 크라쿠프라든가, 그단스크, 체코의 체르키크롬포르, 보스니아의 모스타르 등은 수도가 아니라 처음 들어 본 곳이었다.
동유럽의 관광지 하면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체코의 프라하, 폴란드의 바르샤바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책에서 소개를 많이 받았다.
터키의 이스탄불이나 카파도키아 등은 이번 여름 휴가 때 다녀온 곳들이다.
신혼여행지로 각광받는 그리스의 산토리니 섬과 미코노스 섬은 하얀 벽돌에 파란색 지붕과 지중해의 사진만으로도 여행객을 흥분시키니다.
체코로부터 분리된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는 음악도시로도 유명하다고 하고, 작은 공국은 리히텐슈타인의 수도 파두츠도 알프스 자락을 끼고 있어 휴양지로 명성이 높다고 한다.
그 외에 유럽 여행 때 하루 코스로 잠깐 들른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이나 벨기에의 브뤼셀은 모두 중세도시의 향기를 간직한 곳들인데 제대로 못 본 것 같아 너무 아쉽다.
특별한 곳으로는 한민족의 시원으로 알려진 세상에서 가장 큰 담수호 바이칼 호수가 있다.
30여개의 바위섬이 있는데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이문열의 기행문에서 이 바이칼 호수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난다.
시간이 되면 러시아도 꼭 한 번 가 보고 싶은 나라다. 

전체적으로 유럽은 자연환경 그 자체보다는,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관광지 같다.
저자의 말대로 테마를 가지고 여행한다면 보다 잘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유명 미술관만 따라 다녀도 될 것 같고, 건축물 기행이나 역사 유적지 찾기도 좋은 테마 같다.
중세 도시의 원형을 잘 보존한 곳이 많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지정 지역인 경우도 많았다.
그러고 보니 유럽에 갔을 때 제일 놀랬던 게, 서울처럼 빌딩숲이 우거진 게 아니라 어디를 둘러 봐도 죄다 책에서나 볼듯한 전통적인 건축물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또 그런 고전 양식의 건물들이 실제 시청 같은 관사로 여전히 쓰이고 있다는 점도 신기했다.
확실히 한국은 급격한 근대화로 인한 전통과의 단절이 심한 국가다. 

아프리카 편은 아쉽게도 얼마 소개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유럽과 오랜 인연을 맺어 본 북아프리카 지역이었다.
로마의 지배력이 미친 곳인만큼 의외로 2~3세기 로마 유적지들이 꽤 많이 남아 있었다.
특히 리비아의 렙티스마그나는 이 곳 출생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가 공을 들여 건축한 목용탕이나 개선문, 포럼, 원형극장 등이 발굴되어 눈길을 끈다.
리비아 하면 막연하게 사하라 사막 같은 황무지가 떠오르고, 실제로 사막 투어도 관광상품으로 개발되었다고 하는데 무려 2천 여년 전의 로마 유적지라니, 무척 신기하게 들린다.
튀니지에도 두가나 엘젬 같은 곳에 로마 유적지가 남아 있어 관광지로 유명하다.
이 곳은 카이로우완이라는 아랍인들의 도시도 유명하다고 한다.
카뮈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알제리는 제밀라에 로마 유적지가 남아 있다.
북아프리카는 예로부터 마그립 지방으로 알려져 지중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던 곳이니 어찌 보면 유럽사의 일부 같기도 하다.
스페인 여행을 하게 되면 포르투갈과 모로코 등도 같이 방문하다고 하는데 짧은 일정 때문에 못 가 본 게 너무 아쉽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츠와나에는 사파리로 유명한 초베 국립공원이 있다.
이 곳의 강 이름이 초베강이라고 한다.
4륜 구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사자나 코끼리, 하마, 누, 톰슨가젤, 얼룩말 같은 사바나의 야생동물들을 본다는 건 일생에 흔치 않은 엄청난 경험일 것 같다.
어쩐지 사라져 가는 야생동물들의 서식지를 돈을 주고 구경하러 간다는 게 마음에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은근히 설레고 흥분되는 것도 사실이다.
잠비아에는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빅토리아 폭포가 있는 리빙스턴이라는 관광지가 유명하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이과수 폭포와 함께 죽기 전에 꼭 한 번 보고 싶은 관광 명소다.
그 엄청난 물살이 수백미터 높이에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지는 장관은 직접 보지 않아도 가슴이 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조만간 꼭 봐야 할 목록에 올라와 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기 보다는, 볼 곳은 많다. 
평생 여행해도 다 못 가 볼 곳들이지만 살면서 한 번쯤은 다들 가 보고 싶은 곳들이다.
저자는 80여개 국, 500여 군데 관광명소들을 다녀왔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전문적으로는 못 다니더라도 1년에 한 두 번쯤은 지구 곳곳을 다녀보고 싶다.
한가롭게 은퇴하여 세계일주를 떠나는 유럽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떠오른다.
좀 더 시간의 여유를 갖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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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행이 가고 싶어진다.
    from 뿌리아름역사도서관 2010-08-22 11:49 
    얼마전에 문득 죽기 전에 '세계문화유산은 죽기 전에 다 봐야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자친구한테 얘기했더니, "오빠, 그게 얼마나 많은데, 다 볼 수 있겠어!?"라는게 아닌가. 그래도 많아봤자 얼마나 많겠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인터넷에서 검색해봤다.  2009년 7월 현재 문화유산 689건, 자연유산 176건, 복합유산 25건 등 148개 국의 890건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고, 이밖에 위험에 처한
 
 
 
조선 여성의 일생 규장각 교양총서 3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 글항아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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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의왕 도서관에 신간을 신청했는데, 의외로 굉장히 빨리 읽게 됐다.
거의 2주만에 받아본 것 같다.
제목과 주제는 무척 흥미로운데 내용이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조선 시대 여성이 갖는 사회적 담론보다는, 사료 조사와 분석을 통해 덜 알려진 역사적 사실들을 발굴하게 되길 기대했었는데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서술됐다.
주제의 특이성 때문인가?
일종의 인문학적 담론 느낌이 강하다.
남성 지배 계층에게 가려져 왔던 조선 여성들을 재조명 하는 것은 분명 의의있는 일이나, 지나친 의미 부여로 인해 어쩐지 현대의 인식으로 당대의 여성들이 왜곡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여러 명의 필자가 쓴 책이라 그 점을 경계하는 관점도 분명히 있었다.
조선 시대 여인들이 단지 겉으로만 유교적 질서에 순응하고 내적으로는 그것에 반발하고 저항했다기 보다는, 실제로 유교적 여인상을 내면화 했을 것이라는 인식이다.
너무 당연한 말인 것이, 어느 시대를 살든 당대의 지배 관념을 근본적으로 거스르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므로 조선 시대 여성들의 학문적, 문화적 성과들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페미니즘적인 시각에 입각해 마치 그녀들을 시대에 저항한 투사처럼 이미지화 시키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 나온 예를 들자면, 16세기에는 신사임당이 화가로서 평가받았으나 18세기에 들어 유교가 교조화 되면서 노론 학맥의 뿌리인 율곡 이이를 추앙하는 분위기 때문에 어머니인 신사임당도 자식을 잘 키운 유교적 여성상으로 재평가된 것과 똑같은 맥락이다.
18세기는 유교의 교조화가 심화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여성은 더욱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자신을 함몰시키는 것이 미덕으로 자리잡았고, 신사임당 역시 본인의 재능인 그림 보다는 현모양처로서의 가치가 강조된 것이다.
이것을 저자는 비판하지만, 좀 더 폭넓게 보자면 저자들의 조선 여성 평가도 현대의 여성주의 시각일 수 있다는 위험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재조명이나 다시 보기는 조심스러운 것이다. 

책을 읽은 후의 수확이라면 덜 알려진 조선 시대 여성들을 많이 접하게 됐다는 점이다.
이문열의 소설로 유명해진 안동 장씨의 음식디미방은 얼마 전 TV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자세히 알게 됐다.
비슷하게 음식 조리서를 쓴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도 새롭게 알게 됐는데, 그의 시아버지가 해동농서를 지은 서호수이고 시동생이 임원경제지를 지은 서유구라고 한다.
시댁이 실학자 집안이었으니 며느리의 학문적 재능도 꽃피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성리학자로 추앙받은 윤지당 윤씨나 정일당 강씨, 삼의당 김씨 등을 알게 됐고, 관북유랍일기를 남긴 의유당 남씨가 정조의 비인 효의왕후의 이모 된다는 사실도 책을 통해 알게 됐다.
또 스무 살의 이른 나이에 요절한 효명세자가 그의 누이 명온공주와 한글시를 주고 받았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이처럼 덜 알려진 인물들에 대한 재조명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재밌는 것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여성들 역시 교육이 중시되고 민간층에까지 한시 문화가 퍼지게 됐는데 여전히 여성은 남성만큼 많이 배우면 안 된다는 일종의 사회적 금기가 있어 한글음만 따서 한시를 향유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시를 한문으로 익히는 것이 아니라 독음을 따라 읽고 뒤에 한글 번역을 덧붙이는 식이다.
그런 까닭에 한문이 상당히 부정확하게 기록됐다고 한다.
이는 상대적으로 교육을 많이 받기 어려운 민간층에서도 한시를 향유하는 방법이었다.
명온공주가 오빠인 효명세자에게 보낸 한시도 한자 대신 이러한 한글 독음이 실려 있다.
요컨대 한글은 규방문화의 글자로 확실하게 자리매김 하여 여성은 한문이 아닌 한글을 익혀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한자를 이용한 놀이 문화가 발달하여 마치 퍼즐판처럼 거기에 쓰여진 한자를 가지고 시를 짓는 놀이가 유행했고 자상한 효명세자는 누이를 위해 직접 한글로 번역하여 귀문도라는 이런 글자판을 선물하기도 했다.
내 한자 실력으로는 즐길 수가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신사임당의 그림이라든가, 여성 교육서들에 수록된 판화, 여성들의 문집, 편지글 등이 다채롭게 실려 있어 보는 즐거움이 크다.
편집이 무척 잘 된 책이다.
일부 당위적 주장들에 대해서는 거부감도 있었으나 비교적 재밌게 읽었고 역사가 단지 정치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고 생활상이나 문화적인 부분까지 넓게 확대되어 가는 것 같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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麗輝 2010-08-21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도 개인적으로 읽고 싶었던 책인데, 이렇게 설명을 써 주셔서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날씨 더운데 건강 조심하세요. ^^

marine 2010-08-22 0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서재에 들려 좋은 책 소개 잘 받고 있습니다. 언제나 리뷰의 정확성과 방대함에 놀라고 책을 고르는 안목에 감탄한답니다. 저야 말로 늘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