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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밖의 경제학 - 이제 상식에 기초한 경제학은 버려라!
댄 애리얼리 지음, 장석훈 옮김 / 청림출판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거창한 경제학 이론서는 아니고, 제목은 경제학이라 붙였지만 인간의 심리 상태나 행동 패턴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경제학에서 미리 전제하고 있는 것, 즉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주변의 영향을 무시하고 가장 경제적인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전제가 잘못됐다는 게 주제이기도 하다.
전혀 얼토당토 않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편견과 주변 환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므로 저자의 논의를 조금 더 발전시키자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 두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고, 어느 정도의 국가 개입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상깊은 대목들이 많았다. 우선 앵커라는 개념에 대하여.
내가 좋아하는 스타벅스 커피가 예로 제시됐다. 스타벅스 커피가 나오기 전, 미국인들은 그보다 싼 던킨 도너츠의 커피로 만족했다. (한국에서는 둘 다 커피 가격이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갑자기 비싼 커피가 나오면서 미국인들은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자신의 취향이고 커피에 대한 개성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비싼 커피는 앵커가 되어 커피를 선택할 때 가격이나 맛이 아닌, 분위기나 이미지가 기준이 되버렸다. 이것은 스타벅스의 창립자가 내세운, 스타벅스를 둘러싼 제반의 이미지가 큰 역할을 했다. 소비자의 심리는 마치 이 광고 문구 같다. "난 로에알을 써요, 난 소중하니까요" 자신의 취향을 지키려면 이 정도 가격의 커피, 화장품, 구두, 가방 등은 써 줘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생각하기에 스타벅스 커피 가격이 내 경제력으로 지불하지 못할 만큼 엄청나게 비싼 것은 아니다. 그런데 스타벅스 커피는 어쩐지 세련되게 느껴지고 커피숖에 들어가면 활기를 얻게 된다. 그래서 나는 스타벅스 커피를 내 취향, 즉 앵커로 인지하게 됐고 그 다음부터, 난 스타벅스 커피를 좋아해, 이렇게 스스로에게 인식을 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건 대한민국 어디를 가나 커피 가격은 이 정도 된다. 서울 시내에서 5천원 이하 커피를 마신다는 게 쉬운 일일까? 자판기 커피를 마시지 않는 이상 말이다.)
저자는 어떤 제품이 앵커로 작용하면 재화를 선택했을 때의 기쁨을 정확한 가격으로 환산하기 어렵다고 충고한다. 그러므로 물건을 구입하거나 돈을 소비할 때는 반드시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 마음 속의 앵커가 자리잡은 건 아닌지 이성적으로 숙고해 보고 결정해야 한다. 반대로 기업의 입장에서는 우리 제품은 단지 물건 그 자체가 아니라 당신의 자존심이고 사회적 지위다는 느낌을 심어 줘야 할 것이다. 이른바 명품이라는 마케팅이 바로 그런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미루기에 대한 관찰도 무조건 미루고 보는 나에게 유용한 부분이었다. 나 뿐 아니라 모든 학생들은 미루기의 천재라고 하니 다행스럽긴 하다. 사람들은 심리적 부담감 때문에 누구나 과제를 미루곤 한다. 그러므로 강제적인 기한이 반드시 정해져 있어야 한다. 외부의 목소리가 있어야 비로소 정해진 시간 안에 과제를 끝낼 수 있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스스로 마감 시한을 정하고 그것을 지키는 훈련을 하라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현실적인 방법으로, 자기절제 도구를 제안했다. 이를테면 월급의 일부를 미리 떼서 저축한다든지, 신용카드에서 일정 부분 이상 지출할 경우 자신에게 안내 메일이 오게 만든다거나 일정 금액을 기부하게 하는 것처럼 미리 한계선을 설정해 주는 것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라는 개념도 비슷한데, 충동을 조절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런 상황을 안 만드는 게 가장 좋다고 한다. 그 감정 상태를 겪어 보지 않고서 이렇게 해야지, 결심하는 것은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결심할 때도 그렇다. 막상 음식의 유혹이 눈 앞에 펼쳐지고, 배고픔이 밀려오면 원하는 칼로리만 섭취하겠다는 다짐이 얼마나 허망한지 실감할 것이다. 그러므로 충동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하려면, 유혹의 순간을 아예 만들지 않는 게 최선이다.
직업윤리의식도 인상깊게 읽었다. 십계명이 세상을 정직하게 만들 수는 없어도, 십계명 즉 도덕적 원칙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된다. 제도를 통한 도덕성 유지는 한계가 있기 떄문에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개인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 즉 윤리의식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방법이 그저 말뿐인 추상적 구호에 불과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아무리 제도를 정교하게 만들어도 피해갈 구멍이 생기는 만큼 직업윤리나 도덕의식 등을 상기시키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정직을 유지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사회를 안정시켜 우리 모두에게 더 큰 이익을 주는 만큼, 윤리의식 강화는 깊이 생각해 볼 문제 같다.
그 외에도 실생활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많았다. 정말 내 생활에 응용할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 모르겠으나 한 번쯤 관심을 가져 볼 문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