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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즐거움
수잔 와이즈 바우어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임신도 하고 시험 준비도 하고 논문도 쓰느라 정말로 바쁜 요즘에 그래도 틈틈히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 기특하다.
도서관에서 신간 신청한 책으로, 막상 받아 보니 꽤 두꺼워 선뜻 읽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대출 기한이 촉박해 급하게 읽게 됐는데 막상 읽어 보니 의외로 술술 넘어 갔다.
빌린 책의 장점은 바로 이런 것, 기한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읽어야 하는 강제성에 있는 것 같다.
전부 꼼꼼하게 읽은 것은 아니고 관심있는 부분만 발췌독을 했다.
요즘은 너무 바빠서 예전처럼 완독을 못한다.
나중에 역자 후기에서 알게 된 건데, 저자는 본인도 홈 스쿨링 교육을 받았고 지금 네 자녀들도 직접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홈 스쿨링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는데 이런 식의 독서 교육을 받는다면 얼마든지 교양있는 지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책을 좋아하고 읽고 느낀 것에 대해 기록하길 좋아하는 성격 때문에 어떻게 하면 잘 읽을 수 있을지는 언제나 나의 관심사다.
그래서 독서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실망한다.
너무나 피상적이고 뻔한 얘기들이라고 할까?
실제적으로 독서에 도움이 되는 책을 몇 권 못 본 것 같다.
그래도 나에게 유용한 독서 방향을 제시한 책으로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지식의 단련법>, 모티머 애들리의 <생각을 넓혀 주는 독서법>,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 등이 있었다.
그 외의 독서법에 관한 책들은 그저 잡다한 생각의 편린들을 짜 맞췄다는 느낌 밖에 들지 않았다.
내공의 차이를 확연히 느꼈다고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독서에 대한 방향이 서는 느낌이 든다.
간단히 요약하면, 고대의 공부법을 이용하여 문법, 논리, 수사로 나눌 수 있는데 일단 문법 단계에서는 전체를 쭉 읽어 간다.
초벌 독서라고 할까?
일단 한 번 다 보는 것이 중요하니까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표시를 해 두고, 의문점은 여백에 쓰면서 빠른 속도로 읽는다.
각 챕터를 끝낼 때마다 간단하게 한 줄로 요약을 한다.
재독할 부분도 표시를 한다.
이 단계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사실과 개념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남의 얘기를 안 듣는지는, 라디오의 시청자 의견 코너를 들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는 말이 뜨금하게 느껴졌다.
TV 토론회의 시청자 의견 제시 때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패널이 주장하는 것들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근거를 들어 반박하거나 의문을 표시하기 보다는 자신의 격한 감정을 쏟아 내고 패널 자신을 공격하기 일쑤다.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 역시 내가 별로 맘에 안 드는 내용의 책을 만나면 대충 스킵하면서 읽고 저자를 비판하기에 바쁘다.
정말로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떤 개념을 설명하고자 했는지에 대해서는 지나쳐 버리기 일쑤다.
두 번째 재독 단계가 바로 논리 부분이다.
문법 단계가 사실 확인이나 지식 습득이라면 논리 단계에서는 저자의 주장이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개연성은 있는지 과장되진 않았는지를 살핀다.
이 때는 세부 사항에도 집중해서 1단계에서 의문시 됐던 질문들에 대해 답하는데, 자기 말로 하기 보다는 가능하면 책의 문장을 인용해서 답한다.
나는 이 방법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저자의 입으로 답을 하게 만든다면 그 독자는 제대로 책을 읽은 셈이리라.
요약문을 가지고 자기만의 제목과 목차를 만들어 본다.
이 두 번째 독서로 책의 내용은 완전히 파악이 됐을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수사 단계에서 비로소 평가를 내린다.
내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의 선행 조건은 먼저 저자가 제시하는 개념과 주장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꼼꼼하게 책을 읽지 않는다면 함부로 비판해서도 안 된다고 할까?
소설에서도 이런 방법을 적용시켜 볼 수 있다.
사실 나는 소설에 흥미가 적은 편이라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늘 의문이었다.
작가와 코드가 맞아 떨어져 한번에 몰입해서 읽으면 좋지만 대부분의 고전은 인내력을 요하기 때문에 억지로 읽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최근에 기억나는 소설로는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이 있는데 영화를 보고 감명받아 원작을 집어 들었지만 너무 어렵고 지루해 정말 간신히 간신히 읽었다.
저자가 제안하는 바에 따르면 먼저 첫번째 문법 단계에서는 흔히 얘기하는 소설의 3요소, 인물, 사건, 배경 등에 대해 집중한다.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어디에 사는가? 그들에게 어떤 일이 발생했는가? 그 일이 생긴 후 등장인물들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마치 건축물을 지을 때 뼈대를 세우는 느낌이라고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중심 사건을 분명하게 표시하고 인지하는 것이다.
두 번째 논리 단계에서 분석을 한다.
도입부와 결말의 관계는 적절한가? 주인공의 동기와 야망, 고민거리 등은 위기를 낳고 상황을 만드는가?
주인공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를 방해하는 것은? 왜 그것이 주인공을 방해하는가? 시대적 상황 때문에? 내적 욕망 때문에?
그것을 차지하기 위한 주인공의 전략은?
인물은 배경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특정 이미지가 반복되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을 은유하는가?
그리고 마지막 수사 단계에서 최종 평가를 내린다.
저자의 주제 의식에 동의하는가?
감정 이입을 했던 부분은 어디인가?
나는 주인공의 최종 선택에 공감할 수 있는가?
악인의 몰락에 논거가 있는가?
주인공이 겪은 사건에는 개연성이 있는가?
주인공이 주장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나는 거기에 동의하는가?
이런 식으로 분석하면서 고전을 읽는다면 꽤 공부가 될 것 같다.
필수 독서 목록을 제시했는데 그 중 관심가는 몇 편을 옮겨 적었다.
적어도 세 번은 읽으라고 하니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 봐야겠다.
역사서에서도 이런 방법을 적용할 수 있다.
한 가지 얻게 된 통찰은, 역사서가 단순히 지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사건이 생겼는지 이론을 제시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역사가들은 역사적 사건에 대해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고 나만의 해석을 내리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누가 무엇을 언제 왜 어디서 어떻게 했냐는 육하원칙에 맞춰 사건을 분석하고 그 일이 일어난 배경과 원인, 그리고 그 사건이 미친 영향과 결과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이 맞는지를 독자는 평가해야 한다.
그러므로 저자의 말대로 역사가의 자질도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자격있는 역사가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에 적극 동의한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가가 제시하는 주장의 근거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리라.
내가 관심있는 분야가 소설과 역사서라 그 외의 시나 희곡, 자서전 부분은 뛰어 넘었다.
독서법에 대해 이렇게 실제적인 도움을 준 책은 일찌기 없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자투리 시간 45분을 확보하라는 충고도 유용했다.
물론 일찍 일어나면 곧 졸릴 가능성이 많긴 하지만.
인터넷이나 신문 등에서 얻는 정보는 그저 사실의 습득일 뿐이지만, 독서를 통해 얻는 정보는 개념을 파악하는 것이고 그러므로 매우 능동적인 행위이며 내 가치관과 생각의 방향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그런 이유로 여전히 독서는 영상 매체에 밀리지 않는 파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식의 지평을 넓힐 뿐더러, 내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우리 삶에 실제적인 힘을 미칠 수 있는 매우 능동적인 행위다.
나의 가장 문제점은 시간은 없고 관심 분야는 많아 속독한다는 것이다.
깊이 읽고 천천히 생각하기, 올해 실천해 보고 싶은 것 중 하나다.
요즘에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정말로 관심있는 것은 인문학 그 자체라기 보다는 호기심 많은 소녀가 알고 싶은 욕구 때문에 지식들을 막 섭렵하는 그런 것 같다.
철학이나 어떤 주장, 정치적 교의 같은 것은 인문학적 지식이나 역사적 사실, 과학 등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진다.
나는 인문학적 교양 보다는 잡다한 지식을 얻고 싶어하는 건 아닐까?
어쨌든 독서의 가장 큰 동기는 바로 호기심이고 독서를 통해 삶의 지평을 넓힌다는 것은 내가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다.
이 책의 방법을 내 독서법에 적용시켜 보겠다.
오래만에 좋은 책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