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들 로드 보급판 (2Disc 영어자막편)
KBS 영상사업단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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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전에는 대체 이 다큐가 왜 인기인지 몰랐다.
일단 나는 국수를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에 흥미가 없었고 국수가 무슨 세계적인 음식이라고 다큐까지 만드나 싶었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가 미국의 무슨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고 호기심이 생겨 보게 됐다.
아, 역시 명불허전이라고 했던가.
<아마존의 눈물> 처럼 정말 재밌고 흥미진진했다.
이렇게 훌륭한 다큐를 한국 방송국에서 만들었다는 사실이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편견인지 몰라도 지금까지 한국 다큐는 BBC나 NHK 에 비해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너무 흥미진진하고 내용도 꼼꼼해서 세계의 음식사 이해에 큰 도움이 됐다.
고대와 현대를 넘나들고 국수가 퍼진 지구 곳곳을 돌면서 흥미롭고 성실하게 기획된 정말 좋은 작품이다. 

인간의 최초 음식인 국수.
이것은 밀을 처음 심었던 중동 지방에서 오늘날 위구르 지역으로 건너왔고, 무덤에서 국수가락이 출토되므로써 그 기원이 확인됐다.
따지고 보면 쌀보다도 밀은 더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고 있다.
재료 면에서 보면 국수는 빵과 같은 음식인 셈이다.
밀의 특성상 가루로 제분을 하여 재료에 이용했는데 물을 묻히면 강해지는 점성 때문에 길게 빚어서 국수 형태로 조리해 먹었다.
나는 국수 하면, 항상 국물이 있는 음식으로만 생각했는데 중동 지역에서는 국물 없이 고명만 얹어 먹기도 하고 심지어 얼려서 아이스크림 형태로 먹기도 했다.
파스타의 기원으로 알려진 이탈리아에 국수가 도착한 것은, 뜻밖에도 시칠리아 섬을 아랍인들이 지배하면서부터다.
서양에서는 오직 이탈리아에서만 파스타를 먹고 오늘날 가장 대중적으로 국수를 퍼트린 곳이기도 한데 그 기원이 아시아였다는 점이 신기하다.
파스타를 좋아하면서도 그게 국수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우리가 먹는 칼국수와 같은 종족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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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17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다큐멘터리의 음악을 깐깐하고 꼼꼼한 윤 상이 했다죠. 음악이 참 좋았던 다큐멘터리로 기억합니다. 다큐멘터리 자체도 좋았지요.

marine 2010-06-19 11:50   좋아요 0 | URL
아, 정말요? 저도 음악 아주 맘에 들었어요. 음, 역시 윤상 실력있는 뮤지션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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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 교수의 성서고고학 이야기
김성 지음 / 동방미디어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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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가면 우연히 좋은 책을 집어 들 때가 있다.
항상 읽어야 할 책은 많고 시간은 없기 때문에 우연히 발견하는 책은 그 때가 아니면 기억 속에 잊혀지기 마련이니, 어쩔 수 없이 먼저 선택을 하게 된다.
영 아니다 싶은 책도 있지만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나는 행운이 찾아 오기도 한다.
이런 게 도서관의 묘미가 아닐까? 

일단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전체가 컬러 사진으로 거의 한 면이 다 사진이다.
그래서 책이 무척 예쁘다.
아쉬운 점은, 이게 90년대 출판된 책이라 업데이트가 안 됐다는 점이다.
고고학도 끊임없는 발굴을 통해 계속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이런 걸 들 수 있다.
재작년엔가, 성서 속의 미스레리 뭐 이런 취지의 DVD를 도서관에서 빌렸던 적이 있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보게 됐는데 중동의 골동품 시장에서 발견된 석류 모양의 토기에 야훼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곧 야훼의 존재를 최초로 알려 주는 증거물이 되어 여러 중개상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이스라엘 박물관에 전시됐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가짜였다는 판명이 나 결국 이스라엘 박물관에서는 전시를 철회했다는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사기극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버젓히 그 토기의 명문이 고대로부터 야훼 신앙이 존재했다는 증거로 실려 있다.
개정판이 나왔다면 이 부분은 분명히 삭제됐을 것이다. 

그 외의 여러 부분들은 굉장히 유익했다.
핑컬스타인의 <성경: 고고학인가, 전설인가>를 읽을 때 복잡하고 어려웠던 개념들이 쉽게 설명되어 성서시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저자는 기독교인인 것 같은데 성경문자주의에 함몰되지 않고 학자라는 본분을 잊지 않고 근거에 입각해 매우 합리적인 주장을 펼친다. 
흥미로운 사실들을 몇 가지 써 보면, 

1. 모세가 결혼한 미디아 여인은 오늘날의 사우디아라비아를 뜻한다고 한다. 

2. 이집트의 힉소스 지배기를 저자는 이스라엘의 족장들로 본다.
즉 요셉이 이집트로 건너와 재상을 하던 그 시절이 바로 이민족 지배기인 힉소스 왕조라는 것이다.
이들이 물러가면서 자연히 이스라엘인들은 노예 신세로 떨어지고 출애굽을 감행한다.
이 부분은 선뜻 동의할 수 없는 게 단순히 스케럽 등에 기록된 왕의 이름이 야곱이었다는 식의 비슷한 발음으로 추정한 거라 근거가 약하다.
힉소스인들은 말을 탄 전사들로 알고 있는데 과연 이스라엘 민족과 얼마나 연관성이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다.
출애굽 자체가 넌센스고 오히려 이스라엘 민족은 팔레스타인의 정착민이었다는 핑컬스타인의 이론을 지지하는 나로써는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
하지만 흥미로운 가설이었다. 

3. 40년 간 광야에서 방황하면서 숭배했던 금송아지는 바로 이집트의 전통이라고 한다.
암소의 형상으로 대변되는 하토르 여신이 터키옥 산지에서 숭배되었는데 이들이 방랑했던 광야가 이런 금광석 채굴 지역과 유사하다고 한다.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여보로암도 황소를 숭배했다.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의 문화 교류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들이 괜히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게 아니다.
저자는 재밌는 지적을 하는데, 당시 기술로 금송아지는 어림도 없고 (주조 기술 부족) 아마 얇게 금박을 입혔을 거라고 한다.
(어쩐지 신성모독의 냄새가 난다^^) 

4. 소돔과 고모라는 아마도 초기 청동기 시대인 기원전 3000년 경으로 추정된다.
가장 유력한 지역이 밥 에-드라인데 이 곳은 기원전 3000년 이후의 주거지가 전혀 발굴되지 않아 그 후 버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 곳을 사해 문명지로 보는데 롯의 딸들이 아버지와 근친상간해 낳은 자손이 바로 이스라엘의 적인 모압과 압몬족이니 이 설화는 요단 건너편에 사는 이민족에 대한 악의적인 해석으로 본다. 

5.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의 전설은 테라 섬의 화산 폭발은 아니었을까?
기원전 2000년 전부터 1500년 경에 이 섬의 화산이 폭발해 지중해로 가라앉았고 그 여파로 크레타 섬의 미노아 문명은 멸망하고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문명으로 이주한다.
이 전설은 이집트인에게서 솔론이 전해 들은 이야기를 플라톤이 책에서 보고 기록한 것이니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테라 섬의 폭발로 인해 하늘이 어두워지고 화산재로 햇빛이 차단되어 흉년이 들고 강물이 말라 개구리와 메뚜기떼들이 날뛰었던 재앙에 대한 기억이, 성경에 묘사된 출애굽 당시의 이집트의 열가지 재앙으로 표현된 것은 아닌가 추론한다.
흥미로운 해석이다. 

6. 왜 아브라함은 갈데아의 우르 사람이라고 설정됐을까?
그것은 성경이  쓰여질 무렵인 기원전 6세기 경에 가장 발달된 문명이 바로 바빌로니아였고 그 근원이 바로 갈데아의 우르였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말하자면 우리 조상은 최고의 문명지에서 왔다는 자부심의 표현인 셈이다.
아브라함은 기원전 2000년 경의 중기 청동기 사람으로 이해된다. 

7. 텔 단 석비에 최초로 다윗 왕조가 아람어로 기록됐다.
아람의 벤하닷 왕이 유대의 아사 왕의 부탁을 받고 원정하여 북 이스라엘의 단 지역을 정복한 것을 기념한 석비인데 여기서 다윗이 최초로 언급됐다고 한다.
이것은 핑컬스타인의 저서에서도 다윗을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라고 언급했었다. 

8.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모압 왕 메샤의 석비에서는 야훼라는 이름이 최로로 등장했다.
이스라엘을 물리치고 야훼의 성물을 탈취하여 모압의 신 그모스에게 바쳤다는 내용이다. 
이것 역시 핑컬스타인의 책에서 읽은 바가 있다.
같은 내용을 다른 책에서 보니 확실하게 인지가 된다. 

9. 흥미로운 아라랏 산과 노아의 방주 이야기.
저자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라랏이 단순히 지금의 터키에 있는 산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아라랏 지역 즉 우라르투 왕국의 히브리어식 표기라고 설명한다.
이 곳은 반 호수 중심의 고원지대인데 기원전 900년부터 590년까지 우라르투 즉 아라랏 왕국이 존재했다고 한다.
기원전 6세기 무렵 바빌론 유배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최종 편집된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는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 널리 퍼진 수메르의 홍수 신화에 영향을 받아 (그리스 신화에도 등장한다) 기록됐고, 기원전 3세기 무렵, 베로소스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아라랏은 아르메니아의 주디산이나 아르 산, 즉 현재의 아라랏 산을 가르킨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창세기 집필 당시에는 현재의 아라랏 산과 별 관련이 없었던 셈이다.
그러니 아무리 아라랏 산 꼭대기를 뒤져도 뾰족한 증거가 안 나올 수 밖에. 

10. 북이스라엘이 망한 뒤 사라진 열 지파의 후예가 바로 사마리아인이라고 알려졌는데 의외로 이들이 유대교에서 분리되어 나간 것은 기원전 2세기 무렵, 즉 이스라엘 멸망 후 한참 지나서라고 한다.
이들은 이제 겨우 600여 명이 남은 소수 민족으로 보호를 받고 있고, 모세 5경만 믿는다고 한다.
유다인들이 성전이 파괴되고 성궤를 잃어 버린 후 희생제사 자체가 사라져 버린 반면, 이들은 여전히 성전이 있던 그리심 산에서 희생제의를 지낸다고 한다. 

11. 여리고의 성벽 이야기도 빼 놓을 수 없다.
세계 최초의 도시라고 일컫어지는 여리고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만 여년 전에 이미 성벽을 세우고 도시를 건설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기원전 16세기 무렵, 중기 청동기 시대에 파괴되어 다시는 재건되지 않고 주거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 여호수아가 팔레스타인으로 건너 온 기원전 13 세기 무렵에는 나팔을 불어 성벽을 허물고 싶어도 성벽 자체가 없었으니 허구라는 얘기다.
이 설화의 맹점도 역시 핑컬스타인의 책에서 읽은 바 있다.
일각에서는 출애굽 시기를 기원전 15세기까지 끌어 올려 생각하기고 한다는데 그러면 또 고센 지역에 신전 공사를 시킨 이집트의 람세스 2세 때와 맞지를 않는다. 

저자가 기독교인이면서도 이렇게 학문적으로 분석적인 책을 썼다는 게 참 흥미롭다.
그러니 성경문자주의자들만 진정한 기독교인은 아니라는 얘기다.
저자의 말대로 성경은 고대인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쓰여졌다. 
그러므로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이해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지 단어 하나하나가 모두 과학적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성경의 가치를 깍아 먹는 일이리라.
고고학이 좀 더 발전하여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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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귀신 죽이기
박홍규 지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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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박홍규씨 정말 왜 이러나 싶다.
그리스 신화 다시 보기, 다른 관점에서 보기 뭐 이 정도까지는 좋은데 그리스 신화는 막장 드라마 보다 더 하다, 이건 아니잖아.
어쩐지 자꾸 천박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 신화 열풍에 대한 반발심으로 삐딱하게 돌아보는 그리스 신화, 이 정도까지는 좋은데 왜 자꾸 신화 자체가 갖는 가치를 훼손시키는지 모르겠다.
그리스 신화는 경쟁적이고 전투적인 상업 민족의 제국주의적, 가부장적, 남녀차별적 시선이고, 단군 신화는 평화를 사랑하는 농경 민족의 평등한 이야기라는 식의 억지 대입, 도저희 공감할 수가 없다.
이 분의 다른 책, 이를테면 루쉰이나 카프카 평전을 꽤 재밌게 읽은 독자로써 이런 자극적 서술은 안타깝다.
흥미롭게도 나는 사실 그리스 신화에 대해 무지한 편인데 이 책을 통해 관심을 갖게 됐다.
교수라는 신분 때문인지 꼼꼼하게 신화 자체를 리뷰하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비판하려면 제대로 알아야 하기 때문인가?
군데군데 억지스런 해석들이 눈에 많이 거슬렸지만 얻게 된 지식들도 많았다.
본격적으로 신화를 좀 읽어 보고 싶어졌다. 

성경도 그렇지만 특히 신화는 그 당시를 살던 고대인들의 가치관이고 세계관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사유하는 방식에 대해 현대의 관점으로 비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다면 고대의 모든 저술들은 페미니즘 관점에서 죄다 쓰레기고 다 제국주의적이지 않겠는가?
오히려 신화나 고전이 현대에까지 살아 남아 끊임없이 현대인들에게 깊은 감명과 자극을 주고 이차적인 생산물, 이를테면 소설이나 영화, 회화, 음악이 모티브가 된다는 것이 더 위대하고 가치있는 일 아닐까?
서구식으로 세계화가 되어 극동의 조그만 나라에서도 자국의 건국 신화 대신 낯설고 이질적인 왠 지중해 반도의 민족 신화를 열심히 외우고 아는 척 해야 교양인입네 행세하는 풍토가 못마땅 할지라도 어쩌겠는가, 그것이 우리가 지금 향유하고 있는 현대 문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왜 평화롭고 평등한 농경민의 단군 신화는 관심도 없고 근친상간에 아버지 살해나 일삼는 특히 여성과 외국인을 야만시 하는 그런 비도덕적인 신화에 열광하냐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서구 사회에서 끊임없이 재해석 되고 서구 문화의 근간을 이루어 서구식으로 세계화된 오늘날에도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으나, 단군 신화는 문화적 컨텐츠가 너무나 부족하지 않은가.
오히려 우리 것이 소중하다면서 고대의 기억을 살려내는 억지스런 행위가 민족주의에 이용되고 치우 천황이 우리 민족의 시조였고 중원 대륙은 우리 것이었네, 이런 식으로 막 나가게 되버린다.
문화는 자연스럽고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는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의 관점으로 고대를 평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또 있을까?
문화를 우리 것과 남의 것으로 구분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정신 세계에 이로울까?
고종석이 에세이에서 인용했던 말, 우리 모두는 그리스인이다, 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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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즐거움
수잔 와이즈 바우어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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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임신도 하고 시험 준비도 하고 논문도  쓰느라 정말로 바쁜 요즘에 그래도 틈틈히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 기특하다.
도서관에서 신간 신청한 책으로, 막상 받아 보니 꽤 두꺼워 선뜻 읽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대출 기한이 촉박해 급하게 읽게 됐는데 막상 읽어 보니 의외로 술술 넘어 갔다.
빌린 책의 장점은 바로 이런 것, 기한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읽어야 하는 강제성에 있는 것 같다.
전부 꼼꼼하게 읽은 것은 아니고 관심있는 부분만 발췌독을 했다.
요즘은 너무 바빠서 예전처럼 완독을 못한다.
나중에 역자 후기에서 알게 된 건데, 저자는 본인도 홈 스쿨링 교육을 받았고 지금 네 자녀들도 직접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홈 스쿨링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는데 이런 식의 독서 교육을 받는다면 얼마든지 교양있는 지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책을 좋아하고 읽고 느낀 것에 대해 기록하길 좋아하는 성격 때문에 어떻게 하면 잘 읽을 수 있을지는 언제나 나의 관심사다.
그래서 독서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실망한다.
너무나 피상적이고 뻔한 얘기들이라고 할까?
실제적으로 독서에 도움이 되는 책을 몇 권 못 본 것 같다.
그래도 나에게 유용한 독서 방향을 제시한 책으로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지식의 단련법>, 모티머 애들리의 <생각을 넓혀 주는 독서법>,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 등이 있었다.
그 외의 독서법에 관한 책들은 그저 잡다한 생각의 편린들을 짜 맞췄다는 느낌 밖에 들지 않았다.
내공의 차이를 확연히 느꼈다고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독서에 대한 방향이 서는 느낌이 든다.
간단히 요약하면, 고대의 공부법을 이용하여 문법, 논리, 수사로 나눌 수 있는데 일단 문법 단계에서는 전체를 쭉 읽어 간다.
초벌 독서라고 할까?
일단 한 번 다 보는 것이 중요하니까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표시를 해 두고, 의문점은 여백에 쓰면서 빠른 속도로 읽는다.
각 챕터를 끝낼 때마다 간단하게 한 줄로 요약을 한다.
재독할 부분도 표시를 한다.
이 단계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사실과 개념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남의 얘기를 안 듣는지는, 라디오의 시청자 의견 코너를 들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는 말이 뜨금하게 느껴졌다.
TV  토론회의 시청자 의견 제시 때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패널이 주장하는 것들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근거를 들어 반박하거나 의문을 표시하기 보다는 자신의 격한 감정을 쏟아 내고 패널 자신을 공격하기 일쑤다.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 역시 내가 별로 맘에 안 드는 내용의 책을 만나면 대충 스킵하면서 읽고 저자를 비판하기에 바쁘다.
정말로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떤 개념을 설명하고자 했는지에 대해서는 지나쳐 버리기 일쑤다. 

두 번째 재독 단계가 바로 논리 부분이다.
문법 단계가 사실 확인이나 지식 습득이라면 논리 단계에서는 저자의 주장이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개연성은 있는지 과장되진 않았는지를 살핀다.
이 때는 세부 사항에도 집중해서 1단계에서 의문시 됐던 질문들에 대해 답하는데, 자기 말로 하기 보다는 가능하면 책의 문장을 인용해서 답한다.
나는 이 방법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저자의 입으로 답을 하게 만든다면 그 독자는 제대로 책을 읽은 셈이리라.
요약문을 가지고 자기만의 제목과 목차를 만들어 본다.
이 두 번째 독서로 책의 내용은 완전히 파악이 됐을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수사 단계에서 비로소 평가를 내린다.
내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의 선행 조건은 먼저 저자가 제시하는 개념과 주장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꼼꼼하게 책을 읽지 않는다면 함부로 비판해서도 안 된다고 할까? 

소설에서도 이런 방법을 적용시켜 볼 수 있다.
사실 나는 소설에 흥미가 적은 편이라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늘 의문이었다.
작가와 코드가 맞아 떨어져 한번에 몰입해서 읽으면 좋지만 대부분의 고전은 인내력을 요하기 때문에 억지로 읽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최근에 기억나는 소설로는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이  있는데 영화를 보고 감명받아 원작을 집어 들었지만 너무 어렵고 지루해 정말 간신히 간신히 읽었다.
저자가 제안하는 바에 따르면 먼저 첫번째 문법 단계에서는 흔히 얘기하는 소설의 3요소, 인물, 사건, 배경 등에 대해 집중한다.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어디에 사는가? 그들에게 어떤 일이 발생했는가? 그 일이 생긴 후 등장인물들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마치 건축물을 지을 때 뼈대를 세우는 느낌이라고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중심 사건을 분명하게 표시하고 인지하는 것이다.  

두 번째 논리 단계에서 분석을 한다.
도입부와 결말의 관계는 적절한가? 주인공의 동기와 야망, 고민거리 등은 위기를 낳고 상황을 만드는가?  
주인공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를 방해하는 것은? 왜 그것이 주인공을 방해하는가? 시대적 상황 때문에? 내적 욕망 때문에?
그것을 차지하기 위한 주인공의 전략은?
인물은 배경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특정 이미지가 반복되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을 은유하는가?  

그리고 마지막 수사 단계에서 최종 평가를 내린다.
저자의 주제 의식에 동의하는가?
감정 이입을 했던 부분은 어디인가? 
나는 주인공의 최종 선택에 공감할 수 있는가?
악인의 몰락에 논거가 있는가?
주인공이 겪은 사건에는 개연성이 있는가?
주인공이 주장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나는 거기에 동의하는가?

이런 식으로 분석하면서 고전을 읽는다면 꽤 공부가 될 것 같다.
필수 독서 목록을 제시했는데 그 중 관심가는 몇 편을 옮겨 적었다.
적어도 세 번은 읽으라고 하니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 봐야겠다. 

역사서에서도 이런 방법을 적용할 수 있다.
한 가지 얻게 된 통찰은, 역사서가 단순히 지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사건이 생겼는지 이론을 제시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역사가들은 역사적 사건에 대해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고 나만의 해석을 내리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누가 무엇을 언제 왜 어디서 어떻게 했냐는 육하원칙에 맞춰 사건을 분석하고 그 일이 일어난 배경과 원인, 그리고 그 사건이 미친 영향과 결과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이 맞는지를 독자는 평가해야 한다.
그러므로 저자의 말대로 역사가의 자질도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자격있는 역사가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에 적극 동의한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가가 제시하는 주장의 근거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리라. 

내가 관심있는 분야가 소설과 역사서라 그 외의 시나 희곡, 자서전 부분은 뛰어 넘었다.
독서법에 대해 이렇게 실제적인 도움을 준 책은 일찌기 없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자투리 시간 45분을 확보하라는 충고도 유용했다.
물론 일찍 일어나면 곧 졸릴 가능성이 많긴 하지만.
인터넷이나 신문 등에서 얻는 정보는 그저 사실의 습득일 뿐이지만, 독서를 통해 얻는 정보는 개념을 파악하는 것이고 그러므로 매우 능동적인 행위이며 내 가치관과 생각의 방향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그런 이유로 여전히 독서는 영상 매체에 밀리지 않는 파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식의 지평을 넓힐 뿐더러, 내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우리 삶에 실제적인 힘을 미칠 수 있는 매우 능동적인 행위다. 

나의 가장 문제점은 시간은 없고 관심 분야는 많아 속독한다는 것이다.
깊이 읽고 천천히 생각하기, 올해 실천해 보고 싶은 것 중 하나다.
요즘에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정말로 관심있는 것은 인문학 그 자체라기 보다는 호기심 많은 소녀가 알고 싶은 욕구 때문에 지식들을 막 섭렵하는 그런 것 같다.
철학이나 어떤 주장, 정치적 교의 같은 것은 인문학적 지식이나 역사적 사실, 과학 등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진다.
나는 인문학적 교양 보다는 잡다한 지식을 얻고 싶어하는 건 아닐까?
어쨌든 독서의 가장 큰 동기는 바로 호기심이고 독서를 통해 삶의 지평을 넓힌다는 것은 내가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다.
이 책의 방법을 내 독서법에 적용시켜 보겠다.
오래만에 좋은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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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코비 - 성공하는 사람들의 8번째 습관: 효율성에서 위대함으로(1disc) - 세계의 대가 영상메세지 1편
BLM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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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요즘에는 별 게 다 DVD로 나온다.
도서관에서 뭘 빌릴까 살펴 보다가 친숙한 아저씨가 있길래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서 빌리게 됐다.
내용은 뭐, 늘 아는 얘기라 신선할 건 없었고 저 많은 사람들이 이 아저씨의 강연을 듣기 위해 모였나 싶으니 참 놀랍다 싶기도 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이 개인에 관한 내용이라면 8번째 습관은 리더쉽에 관한 내용이다.
누구나 공감하는 보편적인 원칙, 양심에 따라 행동하라는 말이 인상적이긴 했다. 

어떤 조직이 목표를 세웠을 때 과연 그 목표가 조직원들에게 얼마나 알려질까?
목표를 실천하는 건 둘째치고라도 과연 얼마나 많은 조직원이 알고는 있을지 궁금하다.
대부분의 조직원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면, 그 조직은 성공한 조직임에 틀림없으나 과연 어떤 방법으로?
우리 회사에서도 맨날 회의하고 무슨 선언 어쩌고 하지만 다들 시큰둥 하고 월급 제 때 나오고 직원 복지에나 더 신경쓰지 이런 분위기다.
주도적으로 리더쉽을 가지고 회사일을 할 수 있다면?
간부가 아닌데도 말이다. 

이 아저씨도 많이 늙었다는 생각이 든다.
단편으로 실린 아이들의 축구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코치의 지시는 귀에도 안 들리고 우리는 그저 흥미있는 것에만 우르르 몰려 간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것이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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