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구르와 중국 이슬람 - 이슬람으로 가는 징검다리 비교문화론적통찰 1
신태수 지음 / 종려나무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분량이 250 페이지로 적고 사진이 많이 실려 읽기 편하고, 위구르라는 덜 알려진 민족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흥미가 생겼다.
중국 하면 막연히 불교 국가라 생각하기 쉬운데 내륙 아시아 쪽은 대부분이 이슬람교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중국은 엄청난 영토를 자랑하는 다민족 국가다.
티벳 사태는 말할 것도 없고, 얼마 전에 위구르인과 한인의 유혈 충돌이 생겼는데 과연 소련처럼 중국의 소수민족들도 독립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만주족과 청제국>에서도 읽은 바대로 오늘날의 광대한 영토와 수많은 민족들은 역시 청의 유산임이 분명하다. 

위구르 하면 투르판의 분지에서 나는 포도가 기막히다고 알고 있다.
사막 지역인데도 이렇게 비옥한 농토가 있다는 게 신기하다.
이들은 이슬람 중에서도 소수파인 이스마엘파라고 한다.
아라비아 문화 보다는 페르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위구르인들은 신강에서 자치구를 형성하고 사는데 지하자원이 워낙 많아 중국이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이제 한국인도 유럽 중심주의 시각에서 벗어나 아시아의 여러 민족과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아 이 책의 출간이 특히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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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의 역사와 문화 - 동서문화 교류의 십자로, 실크로드의 요충, 돈황의 역사지리학적 통사
나가사와 카즈토시 지음, 민병훈 옮김 / 사계절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책표지가 너무 예쁘다.
디자인이 무척 잘 된 책 같다.
분량도 260여 페이지도 짧아서 부담이 없고 내용 역시 평이하다.
본격적인 학술서라기 보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 수준으로 나 같은 독자들에게 딱이다.
학자들이 이런 교양서를 좀 많이 출간해 줬음 좋겠다.
역자인 민병훈씨는 중앙박물관의 학예사로써, <큐레이터와의 대화>에서 몇 번 뵌 적이 있다.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 했더니, 고향이 전주셨다.
설명을 들으면서 역시 학예사들은 전문가구나 감탄했는데 번역도 무척 매끄럽게 잘 하신 것 같다.
뒷쪽에 한국의 돈황학에 대해 보론을 첨가해서 더 도움이 됐다. 

사실 돈황은 막연히 석굴이 있는 중앙 아시아 지역이라는 것 밖에는 몰랐다.
유럽이나 미국, 중국, 동남아시아 다 다녀오고 나면 이제는 좀 특이한 곳에 가 보자, 싶을 때 여행지로 떠오르는 곳이라고 할까?
그만큼 이국적이고 멀게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이 돈황은 실크로드의 시작점으로 중국의 서역 경영에 시초지가 됐다고 한다.
기원전 5세기에는 월지가 점령하고 있다가 기원전 3세기 무렵 묵특 선우에 의해 통일된 (아버지 두만 선우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유명한 인물) 흉노족에게 넘어 갔고 한무제의 흉노 정벌 후 비로소 중국의 군으로 편입됐다.
한무제가 기존의 주인인 월지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보냈던 사신단이 바로 장건이다.
돈황의 중요성은 페르시아, 심지어 로마 등에서부터 시작된 무역상 행렬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관문지였다는 것 외에도 (즉 실크로드로서의 의의) 인도의 불교가 동아시아로 전해진 중요한 루트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곳은 석굴들이 많고 남북조 시대의 혼란기에도 북위 왕조들은 끊임없이 석굴을 짓고 경전을 편찬했다.
중국을 통일한 수와 당 역시 불교를 지지했기 때문에 불교 문화는 돈황에서 꽃을 피웠으나 혼란기가 지나가고 11세기에 송이 지배력을 상실하면서 탕구트 족의 서하가 정복하면서 불교는 사라졌다.
서하 침략시에 석굴 속에 봉인된 문서가 바로 그 유명한 돈황 문서인 것이다. 

이 고문서는 사해 문서와 비견될 만큼 중요성이 크다고 한다.
저자가 일본인이라 그런지 청말 스타인과 펠리오, 오타니 등에 의한 문서나 벽화 약탈을 비교적 호의적인 관점에서 써 놔서 읽기가 좀 불편했다.
명백한 문화재 약탈인데 이들로 인해 돈황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오늘날 돈황학이 꽃피게 됐다는 식으로 미화시킨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이후 프랑스에서 이집트학이 유행했고, 인도차이나 점령 이후 극동학이 꽃을 피운 것처럼 돈황 고문서의 발굴로 돈황학이 성립된 것은 사실이라 할지라도, 제국주의의 무차별적인 문화재 침탈에 대해서는 분명히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교적 쉽게 잘 써진 책이고 돈황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개략적인 지식을 갖게 됐다.
관광객들로 인해 벽화가 손실되고 있다니 안타깝긴 하지만 기회가 되면 꼭 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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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지처참 - 중국의 잔혹성과 서구의 시선 동아시아와 그 너머 1
티모시 브룩 지음, 박소현 옮김 / 너머북스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서점에서 발견하고 무척 기대를 많이 했었다. 
근대 이전의 형벌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학문적으로 분석한 책 보다는 대부분이 흥미 위주의 가벼운 서술들이라 본격적인 학술서를 보니 살짝 흥분되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능지처참이라니, 사람을 조각조각 베어 가면서 천천히 고통 속에 죽게 한다는 전설적인 살인방법이 아닌가?
나는 사지를 찢어 죽이는 거열형이 능지처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떤 책을 보니 이 사형법은 언덕을 오르듯 천천히 사람을 죽이는 극형으로써 청나라 때 시행됐다고 한다.
역시 중국인들은 한 수 위다, 뭐 이런 대략적인 느낌을 갖게 됐다.
이 책에서는 서구인들의 편견이 같은 동양권 사람인 나 보다 훨씬 더 강렬했음을 보여 준다.
중국인의 잔혹성, 동아시아인들의 야만성 뭐 이런 식의 감상주의적, 관음적 접근법으로 말이다.
정확히 말해 이 책은 능지처참이라는 중국의 형벌 제도에 대해 논한다기 보다는, 에드워드 사이드 식의 오리엔탈리즘을 파헤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아쉽다.
저자와 역자가 모두 안타까워 하는 것처럼, 중국이나 한국에서 형벌 혹은 고문, 사형 등은 일종의 문화적 금기로 작용하여 언제나 음침하고 어두운 곳에서 이루어졌고, 프랑스 대혁명 시대 기요틴에서 목 자르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회고집을 낸다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환경이다.
그래서 형벌의 역사는 제대로 기록되거나 보고된 적이 없다.
서구인들의 제국주의적 시각과는 별개로, 여전히 동아시아에서 사형제도가 존속하는 것은 과거의 법적 전통에 근거한 게 아닌가 싶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도 사형 제도는 극한 범죄를 막기 위한, 혹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일종의 복수법 내지는 질서 유지법 정도로 인식된다.
유아 성범죄나 연쇄살인범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가장 최근에는 강호순) 사형은 당연히 존속해야 한다는 여론이 무성하다.
그러나 저자들의 지적처럼 근대로 넘어오면서 형벌의 의미는 복수나 육체의 처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화와 교정에 있고 신체를 감금하여 자유를 제한하는 쪽으로 바뀌어 왔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고문이나 체형이 허용되지 않는다.
아무리 흉악범이라 할지라도 자백을 받기 위해 고문을 하거나 혹은 범죄의 댓가로 신체에 폭력을 가한다면 인권 논란이 일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사형 역시 국가 권력이 육체에 폭력을 가한다는 점에서 전근대 사회의 육형과 전혀 다를 게 없다.
저자들의 예리한 지적처럼 과연 혹형은 (오늘날에는 사형) 대중에게 공포감을 심어줘 범죄를 예방하고 선량한 시민들을 보호하는 목적에서 시행된다고 할 수 있을까?
극형과 범죄 예방에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 증명되어 왔다.
오히려 국가는 국민들의 통제 수단으로써 여전히 사형 제도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미셀 푸코 식의 <감시와 처벌> 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불만이었던 게 지나치게 이론에 몰두한 나머지 (능지처참의 잔혹성은 서구인의 제국주의적 관음증을 만족시키기 위한 수사학에 불과했다는 식으로) 명백한 현실을 자꾸 외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청 제국이 1905년을 기점으로 능지처참을 형법에서 삭제했다고 해도 그 이전에는 분명히 중국의 오랜 역사 속에서 그러한 극형이 시행되어 왔음은 사실이고, 국민들에게 끔찍한 공포와 고통을 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 않은가?
물론 서양 역시 18세기까지 마녀 사냥을 비롯한 끔찍한 고문과 혹형이 가해졌고 어찌 보면 동아시아에서는 흔하지 않은 화형 역시 능지처참 못지 않은 잔인한 처방 방식이다.
그러나 계몽주의가 유행하면서 점차 혹형은 사라져 갔고 20세기 세계 정복에 나섰을 때는 이미 본국에서 능지처참 식의 극형을 보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이것이 서구인들에게 일종의 관음증처럼 작용하여 엽서나 판화 등으로 수없이 복제됐다는 사실이 바로 저자들의 비판의 핵심이다.
기왕이면 중국의 고대 형벌 제도가 사회에 미친 영향과 대중에게 심어 준 공포감 등에 대해 좀 더 분석해 주길 바랬는데 역시 서구인의 입장이다 보니 잔혹한 중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게 서구 사회에서 난립하게 됐는지에 주목하다 보니 내가 원하던 방향에서 많이 멀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한국인 역시 이러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우리 역시 중국인은 인육을 먹는다느니, 손님이 오면 아내를 죽여 만두로 빚어서 대접을 했다느니, 공자가 사람으로 담은 젓갈을 즐겨 먹었다느니 하는 자극적인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중국인의 인육 먹는 풍속이 과연 사실인가에 대한 책도 읽은 기억이 난다.
결론은 전쟁의 극한 상황에서 일부 벌어졌을 가능성이 있고 이러한 극단적 행동은 전세계 어디에서나 가능한 보편적인 것임을 강조하는 선에서 끝났다.
한 문화권의 독특한 관습을 편견없이 바라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 

서구인들이 능지처참 형에 대해 더 분개했던 것은, 처형시 죄인의 구원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가끔씩 나는 기독교의 성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매저키스트들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는데, 고통 속에서 일종의 황홀경을 느낀다는 것이다.
중국에서의 처형은 단지 범죄 행위에 대한 국가의 처벌에 불과할 뿐, 죄인의 회개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러므로 신부가 와서 영혼을 구원한다든지 하는 참회와 용서의 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서구인들은 이처럼 무감각한 중국인들의 처형을 지켜 보면서 마치 가축이 도살되는 것 같다고까지 했다.
따지고 보면 죄를 씻기 위해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는 수도사들이나, 고통 속에 일그러진 사형수의 조각상을 간직하고 다니는 기독교 신자들의 행위는, 비기독교 문명권에서는 매우 잔혹한 취향으로 보일 것이다.
서구인들은 중국 죄수들이 죽을 때 표정을, 마치 성인들이 처형당할 때 하늘로 올라간다는 희열을 느끼는 것처럼 변형시켜 그리기도 했다.
이런 훔쳐 보기, 관음증적 시선이야 말로 가장 제국적이고 기독교적이며 오해의 극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의 제국주의자들은 동양인은 원래 야만적인 민족이라 고대로부터 그들이 했던 것처럼 폭력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논리를 발전시킨다.
인도인과 아프리카인, 인디오 등이 최근까지 일명 진보한 문화인이라는 서구의 제국주의자들에게 체벌과 폭행에 시달려 온 것은 이러한 자가당착적 논리가 숨어 있다.
당장 일본만 해도 식민지 시절, 이미 금지된 태형 제도를 조선인에게만 부과하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면 인간의 속성이 얼마나 잔인하고 야비한가.
문명인이라고 자부하질 말던가. 

처음에는 두께가 상당해서 걱정을 좀 했는데 이야기 형식으로 쉽게 쓰여졌고 각주와 출처가 워낙 많아 분량이 아주 많지는 않았다.
잘 쓰여진 책은 하나의 주제에 명료하게 수렴하고 문장력이 좋기 때문에 읽는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번역도 비교적 매끄러운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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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떠나는 테마여행 Vol.28 - 스페인Ⅰ( 마드리드 / 바르셀로나 / 세고비아 ) - 세계로 떠나는 테마여행 시리즈
월드디지털엔터테인먼트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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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떻게 2006년도에 나온 다큐인가? 
혹시 90년대에 나왔는데 이제서야 수입된 건 아닐까?
화질이 너무 구리고 구성도 촌스럽다.
릭인가 하는 여행 저술가가 기자들 데리고 스페인 이 곳 저 곳을 안내하는 식인데 진짜 수박 겉핥기다.
서구인들에게도 스페인은 상당히 이국적인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얼마 전 다녀온 곳이라 반갑긴 했다.
바게뜨에 이런 저런 먹거리를 얹어 먹는 타파스가 나와서 반갑기도 했다.
시간이 되면 모로코까지 갔다 오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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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읽는 조선 왕비 열전
유승환 엮어 옮김 / 글로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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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런 책 그만 읽어야겠다.
왕에 비해 왕비들에 대한 기록이 적기 때문에 항상 갈증이 있었는데 쓰여진 자료는 한계가 있으니 결국은 새로 출간된 책들도 재탕 삼탕이 될 수 밖에 없다.
더군다단 이 책의 단점은 야사나 드라마를 너무 많이 집어 넣어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실록을 꼼꼼히 분석하는 것 같으면서도 느닷없이 "네 이 년!" 이런 식의 어설픈 각본을 집어 넣는 바람에 이도 저도 아닌 책이 되어 버렸다.
독자층을 넓에 잡은 탓일까?
아니면 아마추어 사학자의 한계?
너무 많이 알려진 에피소드들의 반복이라 읽는 속도는 빨랐지만 상당히 지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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