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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스 - 인상주의를 예고한 귀족화가 ㅣ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92
자닌 바티클 지음 / 시공사 / 1999년 5월
평점 :
품절
드디어 스페인에 간다.
너무 흥분되고 기쁘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0여 년 전, 파릇파릇한 대학생 때 유럽 여행을 갔었다.
그 때만 해도 우리 과는 여름방학이 겨우 3주에 불과했다.
그것도 기말고사 재시에 걸리지 않는 학생의 경우만 3주를 다 누릴 수 있었고 심지어 재시, 삼시 보다가 여름방학 없이 2학기 개강하는 불운한 학우들도 있었으니, 나로서는 큰 결심을 하고 3주간의 배낭여행을 떠난 셈이다.
재시 발표가 나기도 전에 마지막 과목을 치루고 바로 인천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탄 까닭에 혹시나 재시 걸리지 않았나 유럽에서도 가끔 조마조마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무사히 진급을 했다...
하여튼 당시 트렌드는 3주 일정의 호텔팩은 이베리아 반도는 못 가는 스케쥴이었다.
이베리아 반도까지 내려가려면 25일 일정이 많았다.
그래서 아쉽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못 가고 말았는데 미술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프라도 미술관이 눈에 아른거려 늘 아쉬웠다.
그런데 드디어 신혼여행으로 스페인을 가게 된 것이다.
사실 신랑은 나보다 더 빡빡한 결혼 휴가 스케쥴 때문에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많이 미안하기도 하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가까운 동남아 휴양지로 갔으면 얼마나 편했겠는가.
그러나 active 한 wife를 둔 죄로 피곤한 신랑을 이끌고 스페인까지 날아가게 됐으나 분명히 다녀오면 신랑도 만족하리라 믿어 의심지 않는다^^
하여튼 내가 스페인에 가는 가장 큰 목적은 바로 프라도 미술관을 관람하기 위해서인지라 적어도 하루는 온전히 미술관에서 보낼 생각이다.
아쉽게도 월요일은 프라도 미술관이 휴관일이고 화요일은 소피아 미술관이 휴관일이라 월, 화를 마드리드에서 머물 예정인 우리는 일단 프라도 미술관에 투자하기로 했다.
스페인 미술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벨라스케스와 고야일 것이다.
엘 그레코나 수르바란, 무리요 등도 있고 현대 화가로는 피카소와 달리, 미로 등도 있겠으나 스페인의 대표 화가라면 당연히 앞의 두 사람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벨라스케스에 대한 관심은 사실 화가 자신보다는 그를 몹시도 존경했던 마네를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역으로 관심이 생긴 경우다.
언젠가 화가들이 뽑은 최고의 그림으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뽑혔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지나친 유명세 때문인지 오히려 무덤덤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네의 책에서 언급된 벨라스케스의 그림들을 감상하면서 17세기의 바로크 스타일과는 다른 쓱쓱 문지르는 듯한 거친 필체나 빛과 어둠의 선명한 대비, 특히 인물의 얼굴 위에 떨어지는 밝은 빛의 선명한 명암 대비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화가가 사랑했던 펠리페 4세의 공주 마르가리타의 초상화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가문의 특성인 긴 주걱턱을 잘 포착한 화가의 주군 펠리페 4세의 초상화는 또 얼마나 독창적인지!
저자의 말대로 그 유명했던 후원인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으나, 화가의 그림 속에 남아 겨우 20대의 젊은 나이에 사망한 마르가리타 공주를 우리는 영원히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명언이 왜 나오게 됐는지를 피부로 느끼는 바다.
그가 그린 <브레다 성의 함락>도 매우 인상적인 그림이다.
저자는 이 그림에서 눈여겨 봐야 할 포인트를 잘 짚어 준다.
사실 얼핏 봤을 때는 그냥 그런 승전 기념식인가 보다 했는데 인물들의 표정을 클로즈업 해보니, 네덜란드 반란군에게 승리한 에스파냐의 장군 스피놀라의 자비로운 표정이 잘 잡혀 있다.
반란군 대장은 적군 에스파냐의 승리를 깨끗히 인정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성의 열쇠를 바친다.
그 열쇠를 받아든 스피놀라 장군은 기사로서 예의를 지키며 관대한 표정으로 적의 사령관을 어루만져 준다.
피비린내 나는 잔인한 살육전이 아니라 기사들의 명예를 건 정의로운 귀족들의 대결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도 매우 인상적인 그림이다.
어쩐지 잔혹하고 동정심이라곤 조금도 없어 보이는 강팍한 느낌의 인물이지만, 벨라스케스의 붓질에서 그 남자만이 지닌 매력이 느껴진다.
적어도 사람의 개성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사진은 초상화의 적수가 못된다고 생각한다.
대가들이 그린 초상화를 보면 단순히 인물의 얼굴을 정확히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물이 가지고 있는 성격적 특성을 날카롭게 캐치한 것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이 그림은 20세기에 와서 베이컨이 변형시켜 더욱 유명해졌다.
이 책은 벨라스케스의 작품 세계 보다는 일종의 짧은 전기처럼 구성되어 그의 일생을 잘 보여준다.
이렇게 위대한 화가가 당시 화단에서는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게 좀 의외다.
펠리페 4세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아 말년에는 기사 작위까기 받았으나, 당시만 해도 인상파의 선구자 격인 벨라스케스의 화법 보다는 티치아노 식의 깔끔하고 선명한 화풍이 더 선호됐다고 한다.
그러나 스페인 왕실을 외교관 입장으로 방문한 루벤스는 천재의 솜씨를 대번에 알아 보고 칭찬에 마지 않았음을 루벤스 전기에서 읽은 바 있다.
벨라스케스 역시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티치아노와 틴토레토 등 베네치아 거장들의 작품들을 모사하고 많이 구입했다고 한다.
벨라스케스는 스승이자 장인인 파체코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아 겨우 스물 네 살의 어린 나이에 벌써 펠리페 4세의 궁정에 입성한다.
그 후로 그는 승승장구해 기사 작위까지 수여받게 된다.
그러나 당시 스페인 왕실의 재정은 바닥이 나서 말년에는 끊임없이 정부에게 밀린 연금을 지불해 달라는 청원을 하곤 했다.
2주 만에 제자와 아내, 그리고 벨라스케스 자신이 연달아 숨을 거둔 것으로 보아 저자는 전염병을 의심하고 있다.
1599년에 출생해 1660년에 사망했으니 우리나라로 치면 광해군과 인조 시대 인물이고 정선보다 더 앞세대 사람이다.
이번에 프라도 미술관에 가면 벨라스케스 그림을 마음껏 감상하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