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비밀편지 - 국왕의 고뇌와 통치의 기술 키워드 한국문화 2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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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은 좋으나 컨텐츠는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
워낙 흥미진진했던 주제라 기대가 너무 커서인가?
아니면 150여 페이지의 짧은 분량으로 담아 내기에는 너무 큰 주제였을까?
언론에 처음 정조의 어찰이 공개됐을 때 굉장히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이덕일 등에 의해 정조 독살설이 역사인양 유포됐던 상태라, 그 배후로 지목됐던 심환지에게 정조가 보낸 300여 통의 어찰이 공개됐으니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이덕일씨는 이 어찰 공개로 인해 더더욱 정조 독살설이 사실로 확인됐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펴고 있는데, 아쉽게도 이 책의 반증 논리 역시 썩 훌륭하지는 못하다.
너무 당연한 것이라 따로 증명하기가 오히려 어려운 탓이었을까?
정조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학자들의 책이 출간되길 기대해 본다. 

역사적으로는 정치 상황과 관련된 내용들이 조명을 받겠지만,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정조의 개인적인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더 흥미롭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닮았는지 꽤나 격정적이고 다혈질의 성격이었던 것 같다.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외숙모에게 보낸 안부 편지를 보면 꼬마 아이의 붓글씨 솜씨에 미소가 지어진다.
글씨쓰기와 편지쓰기를 꽤나 즐겨했던 모양으로 이번에 공개된 것 외에도 혜경궁의 집안에서 첩으로 묶은 어찰도 다수 존재한다고 한다.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는 정치 사안에 대한 긴박한 문제들이였기 때문인지 급하게 속필로 써 내려갔고 한문이 아닌 우리말 어순으로 쓴 문장도 많았다.
심지어 "뒤죽박죽" 이라는 한글 단어도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편지를 주고 받았다고 하니, 오늘날로 보면 심환지와의 사이에 핫라인이 형성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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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 - [할인행사]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 로베르토 베니니 외 출연 / 브에나비스타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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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본 DVD 
봐야지, 하면서 벼르고만 있다가 드디어 봤다.
첫 시작이 어쩐지 지루하고 클라쎄처럼 느껴져 예전에도 보려다 말았었는데 코메디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탓이었다.
로베르토 베니니, 매우 독특하고 개성있는 감독이자 배우인 것 같다.
이탈리아 영화는 그 유명한 젤소미나의 "길" 이후 처음인데 확실히 헐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느낌이다.
이래서 다양성이 중요한 건가 싶다.
귀도의 아름다운 연인 도라는 실제 베니니 감독의 아내였다.
우아하고 단아한 이탈리아 고전적인 미인 같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유대인 남편과 아들이 수용소로 가는 기차에 강제로 태워진 걸 알고 역으로 달려가 독일군에게 도라가 자기도 태워달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결과적으로 귀도는 수용소까지 따라온 도라를 구하기 위해 여자수용소로 잠입했다가 발각되어 죽고 말았으니 도라가 집에서 기다린 것만 못하게 됐지만, 남편과 아들을 따라 기꺼이 수용소까지 함께 가고자 한 이 여인의 신실하고 깊은 사랑에 감동했다.
자기 힘으로는 남편과 아들을 이 끔찍한 현실에서 구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고난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그 결연하고 담대한 도라의 태도에 마음 한켠이 서늘해졌다.
진실한 사랑이란 바로 저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나 역시 곧 결혼을 하고 지금 남자친구를 평생의 반려자로 받아들이고자 하지만,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지, 과연 그녀처럼 삶의 가장 밑바닥에 떨어진 남편을 기꺼이 따라 나설만큼 사랑하는지 다시 한 번 반문해 봤다. 

도라는 기차에 올라탔지만 남자 여자가 갈라져 수용소에서도 남편과 아들을 만나지 못한다.
수용소 내에 있지만 만날 수 없는 아내를 위해 귀도는 장교 클럽의 축음기를 마이크에 대고 그들이 처음 만났던 오페라 극장에서 들었던 아리아를 들려준다.
마치 <쇼생크 탈출>에서 팀 로빈스를 보는 것 같았다.
귀도가 한 줄기 희망을 걸었던 독일인 군의관은 어처구니 없게도 수수께끼 때문에 그를 찾은 것이었다.
한 사람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구원의 빛을 애타게 찾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단지 궁금한 수수께끼를 해결하기 위해 귀도에게 접근했다니 인생의 아이러니를 그대로 보여주는 느낌이다. 

DVD의 장점인 셔플에서 다시 한 번 이 영화가 추구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우리에게 단지 홀로코스트의 끔찍함을 전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귀도는, 인생은 의지와 약간의 상상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약간의 상상력, 삶을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는 의지!
인간의 존엄성이 짖밟히는 수용소에서조차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간다는 이런 주제의 영화를 보면, 인간이야 말로 매우 정신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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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보는 삼국지
김성남 지음, 이용규 그림 / 수막새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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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삼국지를 다시 한 번 읽어야 하려나 봐.
해설서를 읽는데 보면 볼수록 재밌다.
삼국지가 갖는 소설적 매력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낀다.
진정한 명작이란 바로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닐까?
시간을 초월해 끊임없이 컨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힘, 그리고 독자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스토리 텔링!
삼국지는 정말 재밌는 것 같다.
지나치게 촉한 정통론에 입각해 썼다는 점이 다소 문제가 되긴 하지만, 역사서가 아닌 하나의 소설로 읽는다면 오히려 패자에게서 이루지 못한 꿈과 그들의 노력을 찾는다는 점이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소설이 아니었다면 유비와 그 형제들, 제갈공명, 조자룡 등은 영원히 역사 속의 실패자로 머물지 않았겠는가.
소설과 역사는 다르다는 인식이 확실해서인지, 나는 오히려 실패자에 대한 나관중과 민중들의 지극한 애정이 느껴져 애틋한 느낌마저 든다.
삼국지의 진정한 주인공은 인물이 아니라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저자의 관점이 신선하다.
특히 환관의 아들인 조조가 삼대에 걸쳐 높은 벼슬을 지낸 원소를 이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청주에서 황건적을 토벌하면서 항복하는 반란군을 기병으로 키운 까닭이라는 해석이 돋보였다.
또 촉한을 정벌한 위나라가 결국 사마의에게 망한 이유도, 위나라 역시 무리해서 서정을 나섰던 까닭에 원정대장이었던 사마의 집안에게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제갈공명 역시 마찬가지로, 형주와 익주를 방어하고만 있기에는 위의 압박이 너무 컸기 때문에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 생각하고 진격했으나 결국은 무리한 정벌로 망하고 만다.
제갈공명이 죽고 나서는 간단하게 소략해서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강유가 마지막까지도 북벌을 위해 온 몸을 던진 점은 감동적이다.
삼국지에서는 제갈공명의 술책에 놀아나는 것으로 나오는 노숙이 사실은 촉오 동맹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고 그 덕분에 그가 살았을 때는 세력이 강한 위나라에 대항해 세력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됐다.
약간 희화화 된 느낌의 주유 역시 매우 영리하고 용맹한 장수로 나온다.
<적벽대전>에서 소교와 사랑을 나누는 점잖은 양조위의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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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10-03-18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책을 읽었는데 책의 내용에 하나 의문을 제기하면, 청주병이 황건군 기반인 것 맞는데. 이들은 농부들이 많습니다.당시 승마술은 아직 덜 발달해서 나이들어 배우기는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그렇다면 청주병을 기변으로 키웠다고 이해하기 보다는. 오히려 공손찬 처럼 이민족 기마민족을 군대에 포함시켰다고 이해함이 낫지 않을까요?
서강병의 경우를 보면 가장 뛰어난 장수 여포가 바로 이민족 출신입니다. 이들을 포함시켰던 동탁 및 이각 등 군세가 무척 강했죠. 그리고 여포가 그만큼 배신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대접받은 이유도 그만큼 기병이 귀했다는 증거 아닐까요?

marine 2010-03-22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럴 수도 있겠네요.
농부들을 기병으로 키웠다기 보다는 이민족을 받아들였다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네요.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
허셜 섕크스 외 지음, 강승일 옮김 / 한국신학연구소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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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컬스타인의 책, <성경: 고고학인가 전설인가> 를 인상깊게 읽은 나로서는 그와 대립되는 관점도 궁금했었던 차에 너무나 간결하고 매혹적인 제목에 반해 읽게 됐다.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은 과연 어디인가?
한국신학연구소라는 기독교적인 출판사 이름 때문에 약간 망설이기도 했지만, 최소주의자인 핑컬스타인의 반론이 실릴 만큼 공정성을 유지하려고 애썼고 무엇보다 성경 무오류설을 신봉하면서 성경에 맞춰 역사를 해석하려는 얼치기 아마추어 학자들이 아니라 (진화론을 부정하는 책을 읽어 보면 그 논의 수준의 얕음에 진짜 한숨이 나올 정도다) 성서 고고학을 전공한 이들의 전문성이 돋보여 신뢰가 간다.
미국에 있는 박물관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주최한 강연회 내용이라 쉽게 설명됐다.
역시 진짜 실력있는 전문가란 어렵게 설명하는 게 아니라 어려운 내용을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같다.  

오히려 놀랐던 점은, 핑컬스타인의 책에서 읽은 최소주의자의 입장이 최근에는 거의 다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세세한 부분에서는 논란이 여전히 존재하나, 상당히 많은 부분이 학자들 사이에서 정설로 정립이 되어 있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외부인이 아니라 가나안 정착민이라는 사실이다.
뜬금없이 이집트에서 나타나 가나안 주민들을 죄다 몰아내고 (여호수아의 정복) 약속의 땅을 차지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정착민들이 약간의 외부인과 합쳐져 혼인과 종교를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의식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기원은 철기 1기 시대인 기원전 1200년 전으로 잡고 있다.
그 전 시대, 청동기 4기 때는 가나안에 사람이 전혀 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아무리 성벽을 정복하고 선주민을 몰아 내고 싶어도, 깨부술 성벽도 없고 몰아낼 주민도 없었으므로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야지,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없다는 게 이 책의 핵심이다.
여호수아가 손을 들어 태양아, 멈춰라 하니까 정말로 하루 동안 태양이 고정되어 낮이 계속됐다는 성경의 문장을 가지고 고대의 천문학 운동에 하루의 시간차가 생겼다는 걸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얼치기 학자연 하는 종교인들이 생각나 웃음이 난다.
역사적 사실과 유물이 성경과 부합하나를 따져 보는 대신, 역사적 사실과 유물을 성경의 문장에 끼워 맞추기 위해 이상한 조합을 하는 기독교인들.
차라리 이런 사람들이 그냥 종교인이라고 하면 덜 미울텐데, 전문가나 학자 행세를 하니 화가 난다. 

어떻게 해서 해안가 대신 가나안 산간 지역에 갑자기 사람들이 모여 들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게 됐는지에 대한 가설은 다양하다.
마르크스적인 입장에서, 기존의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산간 지대로 몰려 든 후 공동체를 이뤘다는 농민봉기설은 이제 거의 힘을 잃는 것 같다.
핑컬스타인 책에서는 외부 유입이 전혀 없었다고 (이집트의 노예 생활은 완전히 허구로 본다) 주장했는데 이 책에서는 약간의 이주민과 산간 지대의 원주민들이 결합했다고 본다.
이들을 매개한 것이 바로 야훼라는 종교였다는 것이다.
민족이란 어떻게 구분돼냐고 했을 때 자기들이 남과 다르다고 느끼면 즉, 다름을 인식하면 벌써 하나의 민족이라는 범주가 생긴 것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이다.
이스라엘의 적으로 등장하는 블레셋 사람들은 에게해 인근에서 건너 와 가나안 해안가에 정착한 sea people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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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루트를 찾아서 - 동이가 열었던 위대한 문명의 길 지식기행 1
이형구.이기환 지음 / 성안당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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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단은 재밌게 읽었다. 
경기도 사이버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이다.
신간이라 인기가 많아서인지 두 군데 도서관에서 대출 거부가 되고 용인시 도서관에서 빌려 읽게 됐다.
도판도 많고 직접 중국의 유적지를 찾아가 세밀하게 답사한 노력도 돋보인다. 

책의 결론은, 중국 문명의 시작은 중원에서 일어난 한족의 황하문명이 아니라 동북쪽의 동이가 세운 훙산문화라는 것이다.
동이족이란 당시 만리장성 너머에서 랴오둥 반도, 한반도 북부 지역까지 넓게 퍼져 살던 한국인을 비롯한 말갈인, 여진인 등등이고 이들이 중원을 쳐들어가 세운 나라가 바로 상나라라고 한다.
기자가 단군과 같은 민족이라는 것.
한 발 더 나아가 상나라가 갑골문을 만들었으니 결국 동이족인 우리 민족이 갑골문을 발명했다는 좀 이상한 결론을 낸다.
저자들은 동이를 반드시 한국인으로만 규정하는 건 아니다.
한족과 구분되는 만리장성 이북의 여러 민족을 아우르는데 그러나 역시 중심 민족은 한국인으로 보고 있다.
몽골이나 티벳에서도 단군신화와 유사한 전설이 전해 오는데 단군신화 기록이 앞서니 우리가 원류다, 뭐 이런 논리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심각한 수준이고 수당의 침략을 막아낸 고구려를 지방정권으로 치부하는 것을 비난하는 이 상황에서 갑골문이 동이족의 작품이고 동이가 곧 한국인이다, 이런 식의 비약은 어쩐지 불편해 보인다.
민족이라는 개념이 근대의 창작물이고, 그러므로 오늘날의 국경을 근거로 고대인을 논할 수 없다는 취지는 이해가 가면서도 막상 결론이 동이족이 세운 나라가 상나라고, 중국 문명의 근원은 황하 문명이 아니라 랴오둥 반도 근처의 홍산 문화이며, 고조선과 상나라는 한 민족이었다는 식의 결론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탈민족주의인 것 같으면서도 자꾸 중화주의와 겹쳐 보이는 건 왜일까?
<고조선은 천자의 나라였다> 는 이덕일의 책이 생각난다. 

기자조선의 실체를 인정한 점은 긍정적으로 생각된다.
지금까지는 기자가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기자조선이 부정되거나 무시되기 일쑤였는데 저자는 동이족이라는 큰 범주로 볼 때 상나라나 고조선이나 다 우리 민족의 나라다는 결론을 내린다.
강하게 드는 의문점은, 상나라가 중원으로 쳐들어가 세운 상나라는 역대 왕의 이름까지 낱낱이 밝혀질 정도로 갑골문이나 기타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왜 고조선의 문헌 정보는 기껏해야 팔조법이 전부일까?
갑골문의 발명자인 상나라 후예들이 세운 나라가 고조선이라면 상나라 보다 훨씬 발달된 문명을 건설했을텐데 왜 고조선의 실체는 모호한 것일까?
그저 단군이 1500년 간 다스렸다는 전설 같은 얘기만 전해져 올까?
저자는 중국이 하나라의 연대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에 대해 전설을 역사 속으로 끌어들인 중화주의의 표상이라고 비난하지만, 박물관의 학예사에게 하나라가 역사적으로 인정됐다는 말을 분명히 들었고 (유물들이 쏟아져 나와 이미 세계 학회에서 인정했다고 했다) 산해경이나 삼국유사에 나온 단군의 건국 연도를 다른 고고학적 증거 없이 사실로 받아들이는 저자의 태도는 모순적으로 보인다.
중화주의나 동북공정 같은 중국의 민족주의적 시도는 경계돼야 마땅하지만, 우리 역시 자민족중심주의에 빠진 것은 아닌지, 같은 잣대로 재야 할 것이다. 

인류의 기원, 민족의 시작을 밝히는 작업은 남아 있는 유물이 극히 적기 때문에 어렵지만 그만큼 가치있고 흥미로운 일 같다.
유럽인들이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동북아의 문명 시작점도 한중일이라는 국가를 넘어서 유대감을 가지고 연구되길 바란다.
다른 관점의 책을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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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 2010-10-16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상나라(은허) 유적과 국내 유적들의 일치점이 상당하죠..
청동기 이전에 국가의 기틀이 잡혔다고 본다면..
비파형동검과 빗살무늬토기등이 출토되는 영역이 동이족의 영역으로 볼수있다고 생각합니다.
홍산문명 이전에 요하문명부터 따져야 맞을것 같고.. 저책의 내용만 본다면 오류가 좀 있기도 합니다.
여튼.. 분명한건.. 내몽골지역까진 동이의 영역이었다고 보면될듯.
그리고 고구려 정복루트를 살펴보자면.. 과거 우리 강역을 모두 아우르는 지역이라는점을 보면.
고구려 시절엔 자료가 많았겠죠..
그리고 조선시대 대한제국시대까지는 자료가 존재했을듯.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상고시대 서적을 압수해서 불태운게 20만권이 넘어간다고하니
자료가없을수밖에요.. 여튼 많은걸 생각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marine 2010-10-17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들어진 한국사>를 보면 일제가 20만원 태웠다고 한 것도 근거없는 얘기로 나오더군요. 저 동이족 논리도 중국의 동북공정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시도로 나오고요.

ㅇㅇㅇ 2014-11-15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기 이책은 우리나라가 원류다 그런게 아니라 동이족이 그랬다는건데요? 그러니까 국경이 없었던 시대 몽골 티벳을 비롯한 우리들의 동이계 조상들이 그랬다는겁니다 마지막에 보면 저자는 우리나라의 관점이 아닌 그런 관점에서 보자고 했고 상나라의 후예들이 고조선을 세운게 아니라 그 반대입니다 동이가 뻗어나가 고조선을 세우고 그 중에 몆몆이 빠져나가 상나라를 세우고 상나라가 멸망하자 상나라의 기자가 본향이 조선에 와서 단군에게 왕위를 물려받았다는 겁니다 그것이 기자조선이고 실제로 중국학계에서는 상나라 동이족의 후예라는 주장도 계속 나오고 있고요

그리고 홍산문화가 중국문명의 시작이 아니라 서로 황하문명과 영향을 받으며 발전해왔다는건데 말이죠 홍산문화 자체가 문명이 시작이었다는 말은 아니였던 것 같네요 그 이전에 문명이 있었다는 얘기는 했지만요


저도 물론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는건 아닙니다 좀 의아스러운것도 있고요 저도 갑골문을 동이가 만들었다는 소리에 뭔소리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게다가 좀 오버다 라고 생각한것도 있고


하지만 좀 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이건 아니다 라고 하는건 아닌것 같네요

에.. 물론 제 생각이 그렇다는거니 님 생각이 맞을 수도 있겠네요 애초에 역사를 이건 이렇다 저렇다 단정지을 수 있는것도 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