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기행 -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지식기행 3
허우범 지음 / 책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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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은 책. 
삼국지에 나오는 중국의 유적지를 찾아 기행문 형식으로 쓴 책이다.
신문에 연재했던 모양이다.
책을 읽으니, 어린 시절 민음사에서 나온 세 권짜리 삼국지를 밤새워 읽었던 기억이 생생했다.
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관련 이야기가 나오니까 전체 줄거리가 정말 생생하게 떠오르는 거다.
저자 역시 삼국지에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사진으로 보면 별 볼 거 없는 장소이고 만들어 놓은 소상들도 조잡한 느낌이 들어 유적지 자체만으로는 큰 감흥이 없겠으나 삼국지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직접 소설 속의 장소를 방문했을 때 느끼는 감회가 상당할 것 같다.
역시 중국은 전통과 역사가 빛나는 곳임을 실감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저자가 중화주의적 역사사관에 대해 지나치게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 유비를 조잡한 사람으로 치부하고 조조를 너무 추켜 세워 자극적인 서술들이 종종 눈에 띈다는 것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고 평가는 제각각인 법이니 왈가왈부 할 문제는 아닐 수도 있으나 결국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역시 소설인 만큼 지나치게 비판적인 시선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정사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연의를 비교하는 서술은 좋았다.
역시 사람들이 이상화 시키는 천재와 영웅은 소설 속에나 존재하는 모양이다. 
특히 공명에 대한 평가는 워낙 소설에서 이상화 시켰기 때문인지 상당히 아쉽고 서운했다.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큰 업적을 이루지 못한 어찌 보면 패배자들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그들이 못다 이룬 꿈과 이상을 섬세하게 묘사해 준 점이 고맙기도 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삼국지연의를 역사로 오해하는 분위기이고 중국의 자민족우월주의 사관에 이용된다는 점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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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산수화 테마 한국문화사 6
고연희 지음 / 돌베개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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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밌게 읽은 책.
간만에 독서하면서 희열을 느꼈다고 하면 과장일까?
요즘 새학기가 시작되서 바쁘고 정신없어서 책도 거의 읽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 집중도 잘 되고 좋은 책을 골라,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산수화라고 장르를 한정시켜 놔서 더 밀도있는 기술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그동안 산수화는 다소 고리타분 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찬찬히 해설을 듣고 읽어 보니 산수화의 매력을 새롭게 느끼는 기분이다.
미술에 처음 관심을 가지면서 들었던 의문은, 왜 동양화는 서양화에 비해 정교하지도 않고 실제적인 느낌도 없고 맨날 뜬구름 잡는 얘기나 하고 단조로울까였다.
루벤스 풍의 열정적이고 화려한 색감을 좋아하고, 다비드의 정교한 묘사에 감탄하는 내 성향 때문에 먹으로 그려진 동양화에 큰 매력을 못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은연 중에 동양화는 서양화에 비해 발전이 더디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박물관에 가서 우리 그림들을 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가치관과 세계관의 차이이고, 조선에서 청자보다는 단아한 백자와 목가구가 유행했던 것처럼 선비 정신의 구현에는 화려한 채색화 보다 먹으로 정신 세계를 표현한 수묵화, 특히 산수화가 훨씬 더 잘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아마도 조선 선비들에게 르네상스 시대 그림을 보여줬으면 속기가 강해서 점잖지 못하다고 평했을 것이다.
화원풍의 그림이라고 낮춰 생각했을 것 같다.
마치 김정희가 조희룡의 그림을 속기 있다고 평했던 것처럼 말이다.
또 먹과 붓, 화선지라는 매질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동양과 서양은 미적 감각이 전혀 달랐던 것이다. 

조선의 산수화는 똑같이 그리는 대신, 선비들의 정신 세계를 표현하려고 애썼다.
그러므로 사서오경에 나오는 글귀나 옛 성인들의 일화를 아는 것이 필수다.
유교적 교양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어야 그림이 표현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한시에 대한 이해도 필수다.
한시는 커녕 한자에도 무지했기 때문에 산수화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산수화가 전문적인 화원들 보다 선비들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리라.
어찌 보면 직업 화가도 아니면서 교양 수준으로 그 정도 그려낸 것이니 조선 선비들의 그림 솜씨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방증이 된다.
제일 인상깊었던 구절은, 조희룡에 대한 평가였다.
선비들은 붓글씨에 대한 애착이 컸기 때문에 그림도 서예의 미감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글씨를 쓰는 것처럼 그림도 먹과 붓으로 화선지에 그리니 당연한 일이다.
더군다나 회화의 분야로 독립했다기 보다는 사대부들의 점잖은 교양으로 그림이 자리잡은 만큼, 서예의 일부로 생각하고자 하는 욕구가 컸을 것이다.
書券氣 나 文子香 이라는 말로 표현된 김정희의 회화론이 이를 증명한다.
저자는 세한도를 회화의 관점에서 보면 아마추어적이다고 평가한다.
세한도가 갖는 가치는 글씨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조희룡은 서예의 미적 감각을 회화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섰다고 평가한다.
조희룡 역시 19세기 화단에 화두였던 문자향을 그림 속에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조선 선비들이 그렸던 산수화는, 추상화의 개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봤다.
대상을 똑같이 모사하는 대신, 정신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던 욕구,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리는 사람의 주관을 중시했던 것은 오늘날 추상화의 정신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아쉬운 점은 보다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유교 경전에 갇혀 정형화 됐다는 점이다.
정선에 대한 평가도 일견 동의하는 바다.
18세기 진경산수화의 등장은,  유람이라는 당시 풍속과 그것을 그림으로 남기고자 하는 사대부층의 욕구에 잘 부응했던 것이고 청에서 들어온 남종화의 화풍을 정선이 자기 나름대로 잘 변형 수용했던 것이다.
천재의 업적을 평가할 때 시대상이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데, 진경산수화가 마치 조선만의 독립된 화풍이었던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지극히 표면적이라고 본다.
저자는 이 점에 대해 분명히 지적했고, 유홍준의 책에서도 김정희로 대표되는 당시 지식인들의 북학 열풍을 읽었던 바 있다.
당시로서는 청의 학풍을 받아들이는 게 세계화였던 셈이다. 

조선의 산수화를 시기별로 나눠서 각 시대의 특성을 잘 설명했고 책의 깊이나 문장의 기술력이 훌륭하다.
도판도 빠짐없이 잘 실려 있다.
부록으로 소개된 책들도 아주 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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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10-06-13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셔요? 이현우님의 책 리뷰를 칼칼하게 쓰신 게 인상적이어서 방문해 보았습니다. 조선의 산수화를 읽어야지 하다 빠트리고 지나갔는데(읽어야 할 책이 많다 보니요^^) 리뷰 쓰신 걸 보니 꼭 읽어야겠다 싶네요. 미술사 쪽으로 좋은 안내를 받을 수 있는 서재 같아 반갑습니다. 종종 들르겠습니다.
 
건국의 정치 - 여말선초 혁명과 문명 전환 나루를 묻다 4
김영수 지음 / 이학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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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열심히 읽고 있는 책.
너무 두꺼워 처음 접했을 때는 살짝 긴장하기도 했는데 스토리가 있는 소설처럼 공민왕 시대로부터 조선 건국에 이르기까지 흥미진진하게 기술하고 있다.
마치 임용한씨 책을 보는 것 같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압축성이 부족하다는 게 흠일까?
조금만 더 핵심적인 부분으로 압축하면 밀도있고 좋은 책이 될 것 같다.
저자의 욕심이 조금 과한 게 아닌가 싶다. 

공민왕이라면 드라마 신돈에서 처음 주목했던 인물이다.
그 전에는 노국공주와의 애절한 로맨스, 환관에게 살해당한 불행한 왕, 이 정도가 전부였는데 정보석이 분한 공민왕을 보면서 그가 연경에 있을 당시 상황과 즉위 과정 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드라마가 흥행에 성공했다면 좀 더 많은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었을텐데 아쉬운 부분이다.
환관에게 살해당했다는 점, 고려의 마지막 시대 왕이라는 점 등으로 어쩐지 나약하고 예술에나 빠져 있었을 것 같은 (금나라에 끌려간 송의 휘종처럼) 이미지였는데 영화 <쌍화점>에서 보여준 것처럼 상당히 냉정하고 잔혹한 부분도 많았던 전형적인 의미의 절대자다는 생각이 든다.
따지고 보면 연경에서 온갖 고생을 다하고 극적으로 왕위에 오른 만큼 또 무너져 가는 원에 대항하여 고려의 관제를 개편하고 기철 일파를 살해하여 정권을 장악했으며 국토를 수복했던 만큼, 상당히 힘있는 왕이었을 것이다.
신하들에 의해 옹립되어 평생 제대로 권력을 펼쳐보지 못한 철종이나 헌종 같은 나약한 이미지의 군왕은 아니었던 것이다.
연경에서부터 왕을 수행해 온 공신들이 차례차례 제거되어 가는 과정이 자못 극적이다.
책에서 마키아벨리를 자주 인용하는데 과연 공민왕은 단지 도덕적이고 착하기만 한 좋은 왕은 아니었다.
적절하게 권력을 행사하고 신하에게 잔혹한 일면도 보여주고 배신도 서슴치 않는 매우 현실적인 왕이었다.
저자의 한탄처럼 그는 불운한 왕이었고, 고려라는 무너져 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울 만큼 역량이 출중하지는 못했다.
난세의 영웅이 되기에는 능력의 한계가 뚜렷했던 것이다. 

뻔한 말, 당위적인 말이라고 생각했던 유교 경전들이 실제 정치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점이 역사 이해에 큰 도움이 됐다.
하늘의 명을 받아 백성을 사랑하고 부지런히 정사를 돌봐야 한다는 뭐 그렇고 그런 뻔한 얘기들이라 생각했는데 유교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던 시대인 만큼 당연해 보이는 구절들이 현실에 적용되니 하나의 정치 사상이 된다.
제일 흥미로웠던 대목은 풍수도참 사상과 성리학의 대립이다.
지기가 쇠했으니 도읍을 옮겨야 한다는 말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게 무슨 귀신 신나락 까먹는 소리냐, 이런 식으로 우습게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당대인들에게는 꽤나 중요한 사상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명분으로 내세워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실제로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고 사회를 이해하는 기본틀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진짜로 중요성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지금 생각하면 땅은 그냥 땅일 뿐이지 무슨 땅에 기운이 있어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논하나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지만 과학이 발달하기 전이니 자연의 변화를 이해하는 것을 나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일종의 틀이었던 셈이다.
지금도 수맥이 어쩌네 저쩌네 하고 있고 여전히 종교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고 있으니 전근대 사회에서 풍수 도참이 얼마나 큰 인식의 틀이었는지 짐자깅 간다.
성리학은 이러한 풍수도참 사상에 도전장을 내고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에 의존하지 말고 인간의 성실한 노력이 길흉화복을 결정한다고 가르쳤다.
정도에 맞게 살면 하늘이 알아서 복을 준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진일보한 사상이라 하겠다.
조선을 세운 유학자들이 불교를 배척하고 성리학을 새로운 정치사상으로 도입한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상당히 진보적인 시도였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패도를 중시한 <정관정요> 대신 성리학의 인간상에 초점을 맞춘 <대학연의>가 제왕학의 교과서로 바뀌었다는 부분은 꽤 의의가 있어 보인다.
따지고 보면 임금도 절대자가 아닌, 교양을 갖춘 사대부의 일인이기 때문에 여론을 존중해 신하들과 상의해 가면서 국정을 논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한걸음 나아간 것이 아닌가?
저자는 묘청의 서경 천도에 대한 김부식의 반론을 이러한 성리학적 자세의 일원으로 본다.
그러므로 삼국사기는 사대주의, 자주권 훼손 같은 오늘날의 원초적인 논쟁과는 별개로 당대의 관점으로 본다면 풍수도참설 보다 인간의 노력을 강조한 성리학적 관점에서 기술한 발전된 정치사상의 표현이라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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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국왕의 일생 규장각 교양총서 1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 글항아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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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이런 쪽에 관심이 많다 보니 이제 어느 정도 기본적인 내용은 대충 알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자세히 파고들면 금방 얕은 지식이 바닥을 보이긴 하지만...
신병주씨가 쓴 의궤나 테마 한국사 시리즈에서 소개된 내용들과 대동소이 하다.
화려한 도판들과 함께 여러 저자들이 다양한 측면에서 조선 국왕의 일생을 조명한 점은 전문적이면서도 쉽고 재미있게 풀어 썼다는 장점이 있으나 한편으로는 기존에 익히 알려진 내용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좀 밋밋하다는 게 단점이겠다.
하여튼 재밌다.
기록문화의 산실인 조선왕조의 전통 때문에 또 바로 앞세대라는 점 때문에 우리는 조선 시대에 대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알 수 있고 끊임없는 흥미거리를 제공한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조선이 근대화에 성공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았다면, 혹은 프랑스 대혁명처럼 역성혁명이 아닌 진정한 시민계층의 혁명이 가능했다면 수 천 년을 이어온 우리의 전통이 보다 세련된 형태로 한국인들에게 전해지지 않았을까?
정조 시대까지만 긍정적인 서술이 보이고 순조 때부터는 세도정치, 민란, 근대화 실패 같은 부정적인 서술들이 지속되어 항상 안타깝다.
효명세자의 짧은 대리청정에 큰 아쉬움을 보이는 것도 (혹은 정조 독살설이 여전히 힘을 갖고 있는 것도) 조선 왕조의 몰락에 대한 후대인의 안타까움 때문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조선이라는 나라는 확실히 유학을 숭상하는 문치의 나라임이 분명하다.
국왕부터 유학을 몸으로 습득하고 실천하는 당대 최고의 교양인이자 학자이고 시인이었으니 말이다.
숙종이나 영조, 정조 등의 글씨와 시집, 문집 등을 보면 국왕의 유교적 교양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왕이라 할지라도 놀고 먹는 편한 위치가 아니라 신하의 모범이 되고 학문과 교양을 연마하는 매우 엄격하고 힘든 자리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조선 왕조의 역량은 놀랍고 매우 학문적이며 생산적이어야 마땅할텐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국난도 잘 이겨낼 만큼 기반이 튼튼했지 않은가) 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성리학 교조주의가 문제였던가?
절대 군주의 위치가 절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제멋대로의 자리가 아니고 신하들 못지 않는 학문과 교양과 자기절제를 통해 국정을 장악하는 타의 모범이 되는 자리였음을 확인했다.
심지어 반정으로 쫓겨난 연산군마저도 시를 좋아하는 문인이지 않았던가.
한문을 좀 할 줄 알면 역대왕들이 지은 한시들을 공부해 보고 싶다.
겨우 생활한자나 더듬더듬 아는 수준이라 서예나 한시의 깊은 맛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들여다 보고 있어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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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황제와 친인척 조선의 왕실 27
지두환 지음 / 역사문화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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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은 후궁이 없고 정비만 두 명이다.
한 분은 민태호의 따님 순명효황후인데 세자빈에 책봉된 후 황후가 되기 전 30대에 사망한다.
드라마 <명성황후>에서 이유리가 맡았었다.
자식이 없었고 경종처럼 남자 쪽이 불임이었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순종은 즉위하자마자 동생 영친왕을 황태자로 결정한다.
세자빈이 죽은 후 열 세 살의 순정효황후가 빈으로 책봉된다.
윤택영의 딸이다.
역시 후사가 없다.
영친왕은 이방자 여사와 결혼 후 아들 둘을 낳는데 큰 아들은 일찍 사망하고 둘째 이구가 후사를 잇는다. 

순종 부분은 분량도 작고 겨우 3년 재위에 있었서였는지 한일합방 되는 과정만 간략하게 나와 있다.
그래도 황제로서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전국 순행도 하고 나름대로 애를 썼던 것 같다.
순종의 장례식 장면 영상물을 봤던 기억이 난다.
망국의 왕은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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