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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산수화 ㅣ 테마 한국문화사 6
고연희 지음 / 돌베개 / 2007년 3월
평점 :
정말 재밌게 읽은 책.
간만에 독서하면서 희열을 느꼈다고 하면 과장일까?
요즘 새학기가 시작되서 바쁘고 정신없어서 책도 거의 읽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 집중도 잘 되고 좋은 책을 골라,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산수화라고 장르를 한정시켜 놔서 더 밀도있는 기술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그동안 산수화는 다소 고리타분 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찬찬히 해설을 듣고 읽어 보니 산수화의 매력을 새롭게 느끼는 기분이다.
미술에 처음 관심을 가지면서 들었던 의문은, 왜 동양화는 서양화에 비해 정교하지도 않고 실제적인 느낌도 없고 맨날 뜬구름 잡는 얘기나 하고 단조로울까였다.
루벤스 풍의 열정적이고 화려한 색감을 좋아하고, 다비드의 정교한 묘사에 감탄하는 내 성향 때문에 먹으로 그려진 동양화에 큰 매력을 못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은연 중에 동양화는 서양화에 비해 발전이 더디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박물관에 가서 우리 그림들을 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가치관과 세계관의 차이이고, 조선에서 청자보다는 단아한 백자와 목가구가 유행했던 것처럼 선비 정신의 구현에는 화려한 채색화 보다 먹으로 정신 세계를 표현한 수묵화, 특히 산수화가 훨씬 더 잘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아마도 조선 선비들에게 르네상스 시대 그림을 보여줬으면 속기가 강해서 점잖지 못하다고 평했을 것이다.
화원풍의 그림이라고 낮춰 생각했을 것 같다.
마치 김정희가 조희룡의 그림을 속기 있다고 평했던 것처럼 말이다.
또 먹과 붓, 화선지라는 매질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동양과 서양은 미적 감각이 전혀 달랐던 것이다.
조선의 산수화는 똑같이 그리는 대신, 선비들의 정신 세계를 표현하려고 애썼다.
그러므로 사서오경에 나오는 글귀나 옛 성인들의 일화를 아는 것이 필수다.
유교적 교양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어야 그림이 표현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한시에 대한 이해도 필수다.
한시는 커녕 한자에도 무지했기 때문에 산수화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산수화가 전문적인 화원들 보다 선비들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리라.
어찌 보면 직업 화가도 아니면서 교양 수준으로 그 정도 그려낸 것이니 조선 선비들의 그림 솜씨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방증이 된다.
제일 인상깊었던 구절은, 조희룡에 대한 평가였다.
선비들은 붓글씨에 대한 애착이 컸기 때문에 그림도 서예의 미감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글씨를 쓰는 것처럼 그림도 먹과 붓으로 화선지에 그리니 당연한 일이다.
더군다나 회화의 분야로 독립했다기 보다는 사대부들의 점잖은 교양으로 그림이 자리잡은 만큼, 서예의 일부로 생각하고자 하는 욕구가 컸을 것이다.
書券氣 나 文子香 이라는 말로 표현된 김정희의 회화론이 이를 증명한다.
저자는 세한도를 회화의 관점에서 보면 아마추어적이다고 평가한다.
세한도가 갖는 가치는 글씨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조희룡은 서예의 미적 감각을 회화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섰다고 평가한다.
조희룡 역시 19세기 화단에 화두였던 문자향을 그림 속에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조선 선비들이 그렸던 산수화는, 추상화의 개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봤다.
대상을 똑같이 모사하는 대신, 정신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던 욕구,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리는 사람의 주관을 중시했던 것은 오늘날 추상화의 정신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아쉬운 점은 보다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유교 경전에 갇혀 정형화 됐다는 점이다.
정선에 대한 평가도 일견 동의하는 바다.
18세기 진경산수화의 등장은, 유람이라는 당시 풍속과 그것을 그림으로 남기고자 하는 사대부층의 욕구에 잘 부응했던 것이고 청에서 들어온 남종화의 화풍을 정선이 자기 나름대로 잘 변형 수용했던 것이다.
천재의 업적을 평가할 때 시대상이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데, 진경산수화가 마치 조선만의 독립된 화풍이었던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지극히 표면적이라고 본다.
저자는 이 점에 대해 분명히 지적했고, 유홍준의 책에서도 김정희로 대표되는 당시 지식인들의 북학 열풍을 읽었던 바 있다.
당시로서는 청의 학풍을 받아들이는 게 세계화였던 셈이다.
조선의 산수화를 시기별로 나눠서 각 시대의 특성을 잘 설명했고 책의 깊이나 문장의 기술력이 훌륭하다.
도판도 빠짐없이 잘 실려 있다.
부록으로 소개된 책들도 아주 유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