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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주경철 지음 / 사계절 / 2009년 12월
평점 :
이 분이 쓰신 다른 책들을 퍽 재밌게 읽었던지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소재가 워낙 단순해서 그런지 제목도 밋밋하고 내용도 크게 흥미롭지는 않다.
역시 글쓰는 내공 뿐 아니라 주제 자체도 책의 흥미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가 보다.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제목이 너무 하품나와 저자가 주경철씨가 아니었다면 아마 안 읽었을 것이다.
좀 더 매력적인 제목을 찾았다면 좋았을텐데 너무 지루하다.
책의 내용 역시 익히 알려진 소설 등에서 당시 사회배경과 사건들을 찾겠다고 하는데 이솝 우화에서 노예와 그리스 민주정, 이런 식으로 평면적이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기술하는 정도라 깊이가 상당히 얕다.
본격적인 저술이라기 보다는 서문에 쓰인대로 학생들과 문학 공부를 하면서 가볍게 당시 배경도 살펴 본 일련의 시간들을 정리하는 그런 에세이 같다는 느낌도 든다.
<분노의 포도> 라든가 <파리대왕> 같은 유명 작품들의 시대 배경을 살펴 보는 건 재밌었다.
내가 원하는 깊이의 설명이 아니라 기대치에 못 미쳐 실망한 것 같다.
차라리 평론가가 본격적으로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파고 들면서 소설의 사회적 맥락을 설명하면 어떨까 싶다.
몇 가지 인상적인 부분들.
신밧드의 모험 같은 아랍 세계의 구전을 보면 확실히 이슬람 세계가 상업을 굉장히 중시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전 세계를 누빈 이슬람 상인들의 모험담은, 상업이라고 하면 허생전 밖에 생각이 안 나는 우리 전통과 매우 달라 보인다.
이렇게 일찍 상업에 눈 뜬 이슬람 세계는 유럽에 몰락하고 말았을까?
종교의 망령이 지금도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는 되지 않을까?
오히려 본격적인 산업화와 세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종교의 도그마가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아닐까?
일본의 무사도에 대한 편견.
한국 사람이면 일본 문화를 우월하게 본다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식민 지배의 역사가 여전히 당대의 일이고 보면 말이다.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쳐 충성하는 것은, 조선 시대 충효 논리와 전혀 다를 게 없고 자신을 희생하여 대의를 지킨다는 점에서 칭송받아야 마땅한 전근대 사회의 미덕일진대 비단 일본의 무사도만 가지고 제국주의의 원형이네 어쩌네 하는 건 불편해 보인다.
어떤 사회의 가치관을 타 문화권 사람이 옳다 그르다 재단하는 건, 넓게 보면 결국 이것도 자민족 우월논리, 문명과 야만 이런 것의 일종이 아닐까?
18세기 말의 프랑스 대혁명은 생각할수록 놀랍고 대단하다.
프랑스 대혁명을 계기로 시대가 구분됨은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1789년이면 조선으로 따지면 정조 시대가 아닌가.
왕을 몰아내고 다른 왕을 세우는 역성혁명은 가능했을지라도 왕 자체를 없앤다는 발상은 참으로 놀랍고 급진적이다.
시민 사회의 성장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발상의 전환이다.
지리상의 발견으로 원거리 무역을 통해 이미 부르주아 계층이 귀족을 능가하는 경제력을 갖게 됐고, 계몽주의 등으로 시민사회가 의식적으로 성숙했기 때문에 비로소 왕을 처형하고 공화정이라는 놀라운 제도를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혁명 이후 공화정의 혼란과 10년 만에 다시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한 것은 시대적 한계를 생각한다면 너무도 당연한 혼란이고 제정 복귀였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프랑스가 공화국의 전통에 자부심을 갖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책에서는 당시 여류작가였던 스탈 부인의 작품, <코리나> 를 통해 프랑스 혁명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그리고 있다.
처음 듣는 인물과 작품이라 인터넷에 검색해 봤더니 2002년에 처음으로 번역됐다고 한다.
보물섬이 제국주의의 팽창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보물이 있는 섬을 찾아 떠나는 낭만적인 모험담!
이것도 결국은 지리상의 발견으로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가능해진 이야기일 것이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는 전부터 꼭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여기 소개된 걸 보니 정말로 흥미가 생긴다.
대공황 시대의 노동 계층의 비극을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낸 매력적인 작품이다.
땅을 은행에 뺏기고 캘리포니아 농장으로 품팔이를 떠나는 미국의 노동자들.
캘리포니아 농장은 수확물이 넘쳐 나지만 가격 경쟁력을 위해 농장주들은 땅에 썩힌다.
썩어가는 수확물의 냄새를 맡으면서 굶어 죽어가는 노동자들.
자본주의란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먹고 성장하는 시스템임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제일 인상깊었던 부분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애매모호한 비판이었다.
아예 홀로코스트 자체가 없었다, 날조된 유대인의 쇼다, 이런 주장도 들어본 만큼 상당히 경계하면서 읽게 됐는데 적어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바다.
여기 소개된 만화 <쥐>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나치 독일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이 미국으로 건너가 이번에는 흑인을 차별하는 것이다.
아들과 며느리가 나치에게 박해받은 아버지가 어떻게 그런 편견을 가질 수 있냐고 하자 아버지는 화를 내며 응수한다.
유대인과 흑인이 어떻게 같냐!
유대인은 특별하다는 이런 인식, 혹은 흑인은 열등하다는 인종적 편견이야 말로 홀로코스트의 진정한 의의를 더럽히는 가장 나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저자의 말마따나 점령지의 주둔군은 늘 잔인했고 수백 년간 계속된 흑인 차별과 노예제도를 생각하면 홀로코스트만이 인류 최대의 비극이고 재앙이라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어쩌면 같은 백인을, 유럽인을, 함께 살아오던 똑같은 우월한 백인이자 유럽인을 하루 아침에 수용소로 보내버렸다는 사실이 서구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준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홀로코스트에 인류의 양심이 어쩌고 지상 최대의 범죄이고 분노하려면 노예제도나 인디언 말살 정책이야말로 정말 통분을 금치 못할 엄청난 재앙이 아니겠는가.
나치의 인종청소가 히틀러가 아니라면 생각하기도 힘든 놀랍도록 잔인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임이 분명하지만, 홀로코스트 역시 인간이 저질러온 끔찍한 범죄 중 하나라는, 말하자면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특별히 신성시 될 수는 없음을 분명히 하고 싶다.
300 페이지가 채 안 되는 가벼운 분량의 책으로 내용도 부담없이 쭉 읽을 수 있다.
군데군데 관련 명화들이 등장해 반가웠다.
이 정도라면 서점에서 서서 읽어도 될 것 같다.
주경철 교수의 본격적인 저술인 <대항해 시대>를 읽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