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목가구의 멋 보림한국미술관 6
김미라 지음 / 보림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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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 미술관 시리즈는 도판이 많고 짧지만 수준있는 텍스트가 곁들어져 짧은 시간에 재밌게 읽을 수 있어서 좋다.
박물관에서 전시된 사랑방을 본 다음부터 목가구의 맛을 알게 됐다.
조선의 미학이 담백함과 은근함임을 알겠다.
나뭇결로 아름다움을 살린 목공예는 선비들의 사랑방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
그러면서도 화려하게 장식한 부녀자들의 칠기나 자수 제품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근대화에 실패하여 식민지가 되는 바람에 면면히 이어 온 전통의 미학마저 내팽개져진 것 같아 안타깝다.
이제 우리 것을 돌아볼 만큼 여유가 생겼으니 잊고 지냈던 아름다운 옛 것들에도 좀 더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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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대왕과 친인척
지두환 지음 / 역사문화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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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가계도 나열일까 봐 몇 년 전부터 도서관에서 눈으로만 보다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왕의 후궁이나 공주, 왕자들의 삶은 어땠을까 궁금증이 생겨 빌리게 됐다.
여러 왕이 있었는데 숙종이나 영조처럼 너무 알려진 왕은 흥미가 좀 떨어지고, 요즘 한창 열심히 보고 있는 추노의 배경이 되는 인조 시대가 궁금하기도 해서 그 아들인 효종을 골랐다.
효종은 소현세자의 동생이기도 하니 관련 내용이 한 둘은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인조는 반란으로 왕이 됐으면서도 두 번이나 호란을 맞는 와중에 아버지 추숭 사업이나 하면서 세월을 보낸 게 도무지 정이 안 가는 인물이라 싫었다.
나에게도 정통성을 갖지 않고 왕위를 잇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갖는 정서가 있는 것 같다.
마치 추노에서 봉림대군 대신 끝까지 소현세자의 갓난쟁이 어린 아들을 왕으로 받드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내용은 생각보다 훨씬 재밌었다.
역사에 관심이 많아 어느 정도 시대적 배경을 알고 있으니 더욱 흥미롭게 읽히는 것 같다.
조선 후반기로 올수록 적장자가 왕위를 잇는 경우가 드물어 어쩐지 조선 시대 왕들은 정실 부인과는 공식적인 관계만 갖기 때문에 자식이 없었을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따져 보면 대체적으로는 다들 중전과도 사이가 원만했던 것 같다.
숙종이나 영조, 정조 등이 좀 특이한 경우였지 자식을 많이 낳은 중전들도 많았다.
여기 나온 효종의 부인 인선왕후 장씨도 1남 6녀의 많은 자식을 둔 다복한 여인이었다.
열 여덟에 낳은 가엾은 큰딸 숙신공주는 심양에 볼모로 끌려갈 당시 세 살의 어린 나이로 궁녀의 등 위에서 사망하고 만다.
한 나라의 왕자로 태어나 (나중에는 왕이 될 존귀한 몸이) 오랑캐라고 얕보던 야만인의 나라에 끌려가는 것도 기가 막힐 노릇인데 그 여정에서 큰딸까지 잃었으니 효종 부부의 당시 심정이 얼마나 비통했을지 짐작이 간다. 
이 두 부부는 볼모로 끌려가서 동지적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타국 땅에 볼모 생활을 하고 있으니 의지할 곳은 부부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효종은 심양 땅에서 현종을 비롯 1남 3녀를 얻는다.
그러니 조선 역사에서는 전무후무 하게 현종은 남의 나라 땅에서 태어난 왕인 셈이다.
(하긴 몽골 여자와 결혼하고 몽골 어머니를 둔 고려 후반기 왕들도 있으니 놀랄 일은 아니구나)
다섯째 숙정공주는 세자로 책봉된 직후 아직 궁으로 들어오기 전 사가에서 낳았고 막내 숙녕옹주는 안빈 이씨가 낳았다.
이 여인은 효종 시대가 좀 더 조명되고 나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도 좋을 것 같다.
<이산>의 성송연처럼 말이다.
그녀는 효종의 유일한 후궁이었는데 볼모로 효종이 끌려갈 때 남장을 하고서 따라 나설 만큼 충성스러웠다고 한다.
살아 생전 작위는 숙원에 불과하여 아들 현종이 민망해 품계를 올려 주라 청했으나 나중에 네가 베풀어 줄 은혜를 아껴 둔 것이라고 했다.
북벌을 이루기 위해 금욕적인 삶을 산다고까지 한 왕이니 확실히 효종은 기개가 굳고 점잖은 사람이었을 것 같다.
실록이나 행장에 좋은 말만 써 있는 게 당연하겠지만서도, 효종과 인선왕후 모두 심양에서 세자 내외를 받들어 모시고 세자가 된 후에는 아버지 인조에게 효도하였으며 어머니 사망 후 계비로 들어 온 어린 장렬왕후에게도 효성을 다하였다고 하니 부부가 정말 모범적이다.
현종은 아버지의 후궁 숙원 이씨를, 임금이 된 후 숙의에 봉하고, 손자 숙종은 마침내 안빈이라는 작호를 내린다.
숙종 때까지 살았던 걸 보면 출생 연도는 모르나 꽤나 장수했던 것 같고 현종이 庶妹 에게 매우 자상했으며 남편의 사후에 아들과 손자에게 빈의 칭호까지 받았으니 정말 복된 삶을 살았을 것 같다.
이런 일이 순탄하게 이뤄진 걸 보면 정비 인선왕후와도 사이가 좋았을 것 같다. 
사위인 금평위 박필성에 관해서는 특별히 언급을 해야겠다.
유일한 혈육인 숙녕옹주는 불행히도 마마에 걸려 20세에 사망하고 만다.
그런데 사위 박필성은 무려 96세까지 장수해 효종의 현손인 영조에게 궤장을 하사받기까지 한다!
96세라니, 의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드문 나이인데 그 옛날 조선 시대에 이런 장수 노인이 있었다는 게 참 신기하다.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수명이 아닐 수 없다.
안타까운 것은 11세에 네 살 위의 숙녕옹주와 혼인하였는데 그녀가 결혼 5년 만에 천연두로 사망하는 바람에 16세에 혼자 되어 무려 80여 년을 혼자 살았다는 점이다.
비공식적인 소실은 있었겠지만 재혼 삼혼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조선 시대에 공식적인 부인 없이 홀로 지내야 했던 이 분의 삶이 안타깝다.
둘 사이에는 딸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역시 24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한 다섯째 딸 숙정공주의 남편 동평위 정재륜은 외아들마저 사망하자 대를 잇기 위해 숙종에게 재혼을 허락받는다. 
그러나 대간들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아예 의빈은 재혼할 수 없다는 법규가 생겼다.
정재륜은 76세까지 혼자 산다.
공주와 결혼하면 얻는 것도 많으나 그만큼 감내해야 할 고통도 있었던 것 같다. 

한 가지 의아한 점은,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소현세자가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 인조의 미움을 사 죽은 게 아니라 친청파인 김자점의 모함으로 급서하고 아들 대신 봉림대군이 왕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소현세자가 정말로 인조가 던진 벼루에 맞아 시름시름 앓다가 침 잘못 맞고 죽은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그가 죽고 난 후 당연히 세자위는 원손 이석철에게 가야 할텐데 종법을 어기면서까지 (그래서 예송논쟁의 발단이 되면서까지) 동생 봉림대군이 세자위에 오른 것이다.
원손의 나이가 이미 10세였으니 왕세자가 되고도 남을 나이다.
예종이 일찍 죽었을 때 원손인 제안대군이 너무 어려 조카 성종에게 왕위가 넘어 간 것과도 다른 일이다.
이 책에 따르면 역시 저주 사건에 휘말려 시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한 강빈의 아버지 강석기는 반청파였다.
그러므로 세자 내외는 반청파로 분류되어 귀국 후 친청파인 김자점의 음모로, 원손 대신 친청파 장인을 둔 봉림대군이 세자가 됐다는 것이다.
봉림대군의 장인은 장유다.
청나라 문명을 받아들이려고 한 소현세자는 장인 때문에 반청파로 분류되고, 반대로 즉위 후 북벌론을 주장한 효종은 역시 장인 때문에 친청파로 분류되어 선택을 받았다는 게 참 아이러니 하다.
소현세자가 왜 갑자기 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젊은 나이에 느닷없이 죽은 옛날 사람들은 하도 많아 음모론적 시각으로 보면 한도 끝도 없다) 여하튼 그의 사후 원손이 유배되고 아내가 사형을 당했던 것은 확실히 소현세자를 위험하게 봤던 친청파 김자점이 한 몫 했던 것 같다.
김자점은 인조의 딸 효명옹주의 시아버지인데 여전히 명나라를 받다는 사대부들 사이에서 강빈의 옥사 이후 비난을 받게 되고 결국 효종 즉위 후 사형당한다.
당시 정황에 대해 좀 더 알야봐야겠다.
효종은 인조와 다섯 살이나 어린 계모 장렬왕후에게 매우 효성스러워 칭찬을 많이 받았다는데 그래서 더욱 아버지의 선택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손자들과 며느리까지 죽이는 아버지를 보면서 봉림대군 내외가 세자 시절 얼마나 몸을 낮추고 두려웠을지 짐작이 간다.
그러고 보니 인조도 영조 못지 않게 괴팍한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재미없는 제목과는 달리 무척 재밌게 읽었다.
실록이 이렇게 흥미진진한지 새삼 느낀다.
앞으로 이 시리즈를 다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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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스캔들 (2DISC) - 통쾌한 그림복제 사기활극 [본편+스폐셜피쳐]
박희곤 감독, 김래원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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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IPTV 볼 때 광고를 어찌나 많이 때리던지 볼까 말까 했던 영화다.
예고편이 별 재미가 없어 보이고 특히 안 좋아하는 엄정화가 나오길래 제껴 뒀었다.
오션스 일레븐이랑 비슷한 컨셉 같아서 어쩐지 아류작 느낌도 들었고...
그러나, 막상 보니 상당히 재밌다.
영화 상영 당시는 크게 주목을 끌지는 못했던 것 같은데 별 기대없이 봐서 그런지 그런대로 재밌게 봤다.
한국 영화의 맛은,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상황에 딱 맞아 떨어지는 대사에 있다고 생각한다.
번역물에서는 아무래도 줄거리 정도나 이해할까, 배우들의 대사가 주는 맛은 기대를 접게 된다.
확실히 영화는 제약이 적어서 그런가?
드라마 보다 훨씬 실감나고 맛깔스러우며 현실적이다.
이 영화에서도 미술계 사람들의 걸쭉한 입담이 관전 포인트다.
복원이라는 덜 알려진 세계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었고 배우들의 연기도 나름 괜찮았다.
드라마에서는 김래원이 그냥 저냥 별 느낌이 없는 배우였는데, 영화에서 보니 키도 크고 스타일도 괜찮고 연기도 곧잘 한다.
마이크 잡고 노래 부르는 것도 그럴 듯 해 보이고.
엄정화도 생각보다는 잘 했다.
배포 크고 악착같은 미술계 검은 손의 이미지를 잘 구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약간 슬픈 생각도 들었다.
나름 당대의 스타였는데 나이가 드니 저런 완전한 조연 역할도 출연을 하는구나.
보통 주연까지는 안 되더라도 비중있는 배우가 조연을 맡을 때는 악역도 어느 정도는 매력적으로 그려지는데, 이건 뭐 어쩌고 저쩌고 할 것도 없이 완벽하게 악녀라 동정의 여지가 없다.
같은 악인도 사연 있는 악인, 고뇌하는 악인, 카리스마 있는 악인이라야 배우가 사는데 엄정화라는 이름값의 배우가 맡기에는 너무 전형적인 악녀였다.
그래도 섹시한 화장이나 몸매도 멋지고 미술계를 쥐고 흔드는 배포도 보여준다. 

다른 분의 리뷰에서 읽었는데 <타짜> 나 <범죄의 재구성> 과 비교가 많이 된다.
조승우의 연기를 김래원과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을 것 같지만 하여튼 둘 다 실력은 최고지만 세상은 거칠게 살아가는 매력적인 캐릭터고, 정마담의 김혜수가 엄정화와 매치되고, 유해진은 임하룡 정도?
에이, 그건 너무 약하다.
임하룡 배역이 좀 될 줄 알았는데 너무 비중이 없어 살짝 실망스러웠다.
이 분, 코메디언에서 배우로 변신해 나름 감초 역할 잘 하시는데.
배짱 좋은 여형사 역의 홍수현은 너무 악을 많이 써서 다들 최고의 미스 캐스팅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확실히 안정적이지 못하고 튄다.
영화계에서 극을 이끌어 가는 주연으로 자리 잡기는 확실히 어려운 모양이다.
<영화는 영화다>에서도 비중 전혀 없는 여배우로 나오더니만, 그래도 이 영화에서는 소리는 목청껏 지른 것 같다.
아마도 여형사라는 캐릭터가 전형화 되서 자리를 잡기에는 너무 드물기 때문에 연기하기도 어려웠을 것 같다.
긴박감은 좀 떨어지지만 스토리가 늘어지지 않고 나처럼 집중 잘 못하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많이 안 꼬고 단순하게 가서 괜찮게 봤다. 

에피소드로 하나 더 첨부하자면, 자화상이나 누드화 한 점이 수 억을 호가하는데 서로 사겠다고 난리를 치는 걸 보면서 다른 세계의 일 같기도 하고 과연 예술의 가치는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영화 속의 벽안도가 400억을 부르는 건 세월의 흐름, 안평대군과 안견이라는 역사적 중요성, 희귀함 등의 가치가 고려됐으리라 이해하지만 현대 미술 작품의 수 억이라는 가격은, 워낙 서민이라 그런지 전혀 공감이 안 갔다.
과연 그런 그림들은 수 억이라는 경제적 가치가 있을까?
어떤 작품이 시간의 흐름을 이겨내고 세월이 흘러 모든 세상 사람들의 존경과 추앙을 받는 위대한 명화로 남을 것인가?
하나의 유명 작품이나 유물들을 소장하게 되면 그것을 보기 위해 매년 수많은 관람객들이 미술관을 방문하게 되고, 소장처나 소장자는 끊임없이 인구에 회자될테니 확실히 매력적인 투자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술 작품들의 놀라운 가격들은 마음에 와 닿지가 않는다.
미술도 결국은 시장을 통해 거래되는 재화인가?
그러므로 사고 파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인가?
아무래도 나는 자본주의라는 것에 너무 무지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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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의 유혹
김치호 지음 / 한길아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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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신간을 살펴 보다가 눈에 띈 책.
코엑스몰에 있는 반디 앤 루니스에서 작년 12월에 발견했고 1월에 도서관에 신간 신청을 해서 드디어 2월에 받아 봤다.
북디자인이 고급스럽고 사진이나 제목이 고상한 게 마음에 쏙 들어 살까 말까 망설였던 책이다.
결과적으로는 안 사길 잘 했다 싶다.
제목만 보고 고미술 길라잡이 정도로 생각했는데 읽어 보니 고미술 컬렉터의 에세이다.
북디자인은 참 마음에 든다.
요즘 물가가 올랐다는 걸 실감하는 것이, 이 책값도 아무리 양장이지만 무려 22000원이나 한다.
절대 싼 가격 아니다.
나처럼 책 좋아하는 사람은 서점에서 제 돈 주고 샀다가는 파산할 게 틀림없다.
이럴수록 도서관이 고맙고, e-book이 활성화 되면 전자 리더기로 읽어야 하나 고민스럽다.
아직은 콘텐츠가 너무 부족해 (베스트셀러나 소설 위주) 생각을 안 하고 있지만 가격 부담 때문에 저렴한 e-book에 마음이 간다.
그래도 이런 훌륭한 북디자인을 보면 또 책이라는 물질이 주는 아름다움을 포기하기 힘들다. 

이 책과 비슷한 컨셉의 책을 작년에 봤었다.
이 책의 저자처럼 경제학자인데 미국 유학 갔다가 미술에 눈을 떠 그림 컬렉터가 된 것이다.
경제학자와 예술 애호가는 어쩐지 안 맞는 조합 같은데, 다들 먹고 살만 하면 다음 순서로 예술에 대한 욕구가 생기는 것 같다.
고미술이라는 용어가 참 마음에 든다.
그림도 좋아하지만, 내가 더 좋아하는 분야가 바로 이 고미술이다.
그래서 화랑도 좋지만 박물관이 더 좋다.
책도 그렇지만 이상하게 나는 수집욕이 별로 없어 뭘 꼭 소장해야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아예 욕구 자체가 없어진 건가?
아니면 원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 금방 질려서인가?
가끔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들을 접하기도 하는데 돈이 많으면 집에 걸어 놔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을 하긴 한다. 
그러나 늘 돈이 없으니... 

목가구의 아름다움은 박물관에 가서 처음으로 느꼈다.
조선시대 사랑방을 재현해 놓은 전시실에서 단아한 선비문화와 어울어진 우리 목공예품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말았다.
도자기도 마찬가지다.
책에서 아무리 아름답다고 찬사를 늘어놔도 시큰둥 했는데 직접 박물관에서 백자와 청자들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을 홀렸다.
그러고 보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이야 말로 돈없는 서민들의 문화 생활을 위한 필수적인 장소가 아닐까 싶다.
대중사회가 도래하면서 19세기 이래로 박물관의 역사가 시작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나도 저자처럼 토기를 좋아한다.
백자나 청자도 너무 아름답지만 민예풍의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분청사기가 좋고 저자의 말마따나 자유로움과 호방스런 필선이 돋보이는 추상화 같은 현대적 느낌이 마음에 든다.
토기도 그렇다.
가야나 신라 무덤에서 출토되는 상형토기도 좋지만, 그냥 평범한 질그릇도 마음에 든다.
겨우 20~30만원 선에서 거래된다고 하니 확실히 자기에 비하면 찬밥 신세이고 혹시나 나도 한 번? 하고 구매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목가구의 경우는 심플한 인테리어를 추구하기에 딱 좋을 것 같다.
화려한 세공이 돋보이는 유럽풍도 좋지만, 공간을 점잖게 차지하는 간결한 우리 목가구도 무척 잘 어울릴 것 같다. 

위작과 도굴 문제는 재밌게 읽었다.
일단 위작.
위작이 문제가 되는 건 진실이 아닌 것이 역사로 기록된다는 점에서 정직성과 신뢰의 문제이지 진품이 위작에 비해 엄청난 가치를 지녀서는 아닌 것 같다.
똑같이 복사된 그림은 물리적으로는 똑같을 뿐이다.
결국 우리가 엽서나 도판에서 보는 것도 진품은 아니지 않는가.
문제가 되는 건 원작자의 창의성이 훼손되고 역사적 오류가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진품이 중요한 게 아닐까?
유물 같은 경우는 역사가 달라지기 때문에 이 점은 더욱 엄정히 단속해야 할 것이다.
도굴 문제는 참 심각해 보인다.
결국 박물관이나 개인 컬렉터들에게 소장된 토기나 도자기들도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누군가의 무덤에서 나온 것이리라.
멀쩡한 무덤을 어떻게 파나 했더니, 후손에게 관리되지 않고 수십년만 지나도 봉분이 무너지면서 금방 평평해져 무덤이란 것도 알기 어렵다고 한다.
이런 곳에 도굴꾼이 탐침을 이용해 작게 구멍을 뚫은 후 유물만 빼내기 때문에 밤에 시작하면 해뜨기 전에 깜쪽같이 끝낼 수 있다고 한다.
도굴이 되면 고분과 관련된 역사적 연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안타깝다.
무령왕릉처럼 하루 만에 끝나 버린 졸작 발굴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수많은 학자들이 동원되어 당시의 시대상을 밝히기 위해 애쓴다.
도굴이 문화적으로 금기시 됐다면 지금보다 역사는 훨씬 더 풍부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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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주경철 지음 / 사계절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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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이 쓰신 다른 책들을 퍽 재밌게 읽었던지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소재가 워낙 단순해서 그런지 제목도 밋밋하고 내용도 크게 흥미롭지는 않다.
역시 글쓰는 내공 뿐 아니라 주제 자체도 책의 흥미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가 보다.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제목이 너무 하품나와 저자가 주경철씨가 아니었다면 아마 안 읽었을 것이다.
좀 더 매력적인 제목을 찾았다면 좋았을텐데 너무 지루하다.
책의 내용 역시 익히 알려진 소설 등에서 당시 사회배경과 사건들을 찾겠다고 하는데 이솝 우화에서 노예와 그리스 민주정, 이런 식으로 평면적이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기술하는 정도라 깊이가 상당히 얕다.
본격적인 저술이라기 보다는 서문에 쓰인대로 학생들과 문학 공부를 하면서 가볍게 당시 배경도 살펴 본 일련의 시간들을 정리하는 그런 에세이 같다는 느낌도 든다.
<분노의 포도> 라든가 <파리대왕> 같은 유명 작품들의 시대 배경을 살펴 보는 건 재밌었다.
내가 원하는 깊이의 설명이 아니라 기대치에 못 미쳐 실망한 것 같다.
차라리 평론가가 본격적으로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파고 들면서 소설의 사회적 맥락을 설명하면 어떨까 싶다. 

몇 가지 인상적인 부분들.
신밧드의 모험 같은 아랍 세계의 구전을 보면 확실히 이슬람 세계가 상업을 굉장히 중시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전 세계를 누빈 이슬람 상인들의 모험담은, 상업이라고 하면 허생전 밖에 생각이 안 나는 우리 전통과 매우 달라 보인다.
이렇게 일찍 상업에 눈 뜬 이슬람 세계는 유럽에 몰락하고 말았을까?
종교의 망령이 지금도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는 되지 않을까?
오히려 본격적인 산업화와 세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종교의 도그마가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아닐까?  

일본의 무사도에 대한 편견.
한국 사람이면 일본 문화를 우월하게 본다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식민 지배의 역사가 여전히 당대의 일이고 보면 말이다.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쳐 충성하는 것은, 조선 시대 충효 논리와 전혀 다를 게 없고 자신을 희생하여 대의를 지킨다는 점에서 칭송받아야 마땅한 전근대 사회의 미덕일진대 비단 일본의 무사도만 가지고 제국주의의 원형이네 어쩌네 하는 건 불편해 보인다.
어떤 사회의 가치관을 타 문화권 사람이 옳다 그르다 재단하는 건, 넓게 보면 결국 이것도 자민족 우월논리, 문명과 야만 이런 것의 일종이 아닐까? 

18세기 말의 프랑스 대혁명은 생각할수록 놀랍고 대단하다.
프랑스 대혁명을 계기로 시대가 구분됨은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1789년이면 조선으로 따지면 정조 시대가 아닌가.
왕을 몰아내고 다른 왕을 세우는 역성혁명은 가능했을지라도 왕 자체를 없앤다는 발상은 참으로 놀랍고 급진적이다.
시민 사회의 성장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발상의 전환이다.
지리상의 발견으로 원거리 무역을 통해 이미 부르주아 계층이 귀족을 능가하는 경제력을 갖게 됐고, 계몽주의 등으로 시민사회가 의식적으로 성숙했기 때문에 비로소 왕을 처형하고 공화정이라는 놀라운 제도를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혁명 이후 공화정의 혼란과 10년 만에 다시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한 것은 시대적 한계를 생각한다면 너무도 당연한 혼란이고 제정 복귀였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프랑스가 공화국의 전통에 자부심을 갖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책에서는 당시 여류작가였던 스탈 부인의 작품, <코리나> 를 통해 프랑스 혁명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그리고 있다.
처음 듣는 인물과 작품이라 인터넷에 검색해 봤더니 2002년에 처음으로 번역됐다고 한다. 

보물섬이 제국주의의 팽창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보물이 있는 섬을 찾아 떠나는 낭만적인 모험담!
이것도 결국은 지리상의 발견으로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가능해진 이야기일 것이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는 전부터 꼭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여기 소개된 걸 보니 정말로 흥미가 생긴다.
대공황 시대의 노동 계층의 비극을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낸 매력적인 작품이다.
땅을 은행에 뺏기고 캘리포니아 농장으로 품팔이를 떠나는 미국의 노동자들.
캘리포니아 농장은 수확물이 넘쳐 나지만 가격 경쟁력을 위해 농장주들은 땅에 썩힌다.
썩어가는 수확물의 냄새를 맡으면서 굶어 죽어가는 노동자들.
자본주의란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먹고 성장하는 시스템임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제일 인상깊었던 부분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애매모호한 비판이었다.
아예 홀로코스트 자체가 없었다, 날조된 유대인의 쇼다, 이런 주장도 들어본 만큼 상당히 경계하면서 읽게 됐는데 적어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바다.
여기 소개된 만화 <쥐>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나치 독일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이 미국으로 건너가 이번에는 흑인을 차별하는 것이다.
아들과 며느리가 나치에게 박해받은 아버지가 어떻게 그런 편견을 가질 수 있냐고 하자 아버지는 화를 내며 응수한다.
유대인과 흑인이 어떻게 같냐!
유대인은 특별하다는 이런 인식, 혹은 흑인은 열등하다는 인종적 편견이야 말로 홀로코스트의 진정한 의의를 더럽히는 가장 나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저자의 말마따나 점령지의 주둔군은 늘 잔인했고 수백 년간 계속된 흑인 차별과 노예제도를 생각하면 홀로코스트만이 인류 최대의 비극이고 재앙이라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어쩌면 같은 백인을, 유럽인을, 함께 살아오던 똑같은 우월한 백인이자 유럽인을 하루 아침에 수용소로 보내버렸다는 사실이 서구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준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홀로코스트에 인류의 양심이 어쩌고 지상 최대의 범죄이고 분노하려면 노예제도나 인디언 말살 정책이야말로 정말 통분을 금치 못할 엄청난 재앙이 아니겠는가.
나치의 인종청소가 히틀러가 아니라면 생각하기도 힘든 놀랍도록 잔인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임이 분명하지만, 홀로코스트 역시 인간이 저질러온 끔찍한 범죄 중 하나라는, 말하자면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특별히 신성시 될 수는 없음을 분명히 하고 싶다. 

300 페이지가 채 안 되는 가벼운 분량의 책으로 내용도 부담없이 쭉 읽을 수 있다.
군데군데 관련 명화들이 등장해 반가웠다.
이 정도라면 서점에서 서서 읽어도 될 것 같다.
주경철 교수의 본격적인 저술인 <대항해 시대>를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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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2010-02-09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책에서 저자는 탁월한 에세이스트임을 보여주지요. 그런데 저자의 내공이 없다면 그렇게 글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는지...깊이가 얕다고 평가하신 것은 깊이있게 음미하며 읽지 않으신 게 아닌지요...지나가는 객이 한 말씀 드림~

marine 2010-02-09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탁월한 에세이스트라고 해서 모든 책을 다 잘 쓰는 건 아니지요. 다작이 되면 수작과 범작은 있게 마련. 훌륭한 작가라고 해서 모든 책이 다 훌륭한 건 아닙니다. <문화로 읽는 세계사> 에 비하면 확실히 가볍죠. 자기가 좋아하는 책 평가가 좋지 않으면 제대로 독서를 못한 것이라는 그 편견부터 버리셔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