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와트, 월남가다 - 하 - 조선인의 아시아 문명탐험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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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만 해도, 도올의 해박한 앙코르 와트 지식에 감탄했고 그래서 이번에 다시 일독하게 됐다.
그러나 처음의 좋았던 인상과는 다르게 두 번째 읽는 책은, 지식적인 면에서는 수확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거부감을 많이 느꼈다.
아래 리뷰처럼 자신에 대한 자만심이 너무 지나친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든다.
부조를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기존의 인문학적 지식과 엮어서 설명하는 것은 역시 수준이 높다, 칭찬할 만 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나가는 것, 이를테면 승려가 어린 소녀의 처녀막을 손으로 파괴시키는 관습에 대해 우주적 생산력이 어쩌고, 여성의 순결 이데올로기를 깨부수고, 이런 식의 과대해석에 동의할 수도 없을 뿐더러 매우 불편했다.
어떤 사회든 나름의 관습이 있고 또 오래 지속되었다면 그 사회만이 갖는 독특한 가치체계나 유용성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한 문명의 관습을 소개할 때 그것이 갖는 의의를 설명하는 정도에서 그쳐야지 너무 나가서 관념론적 의미 부여를 한다거나, 반대로 미개하다느니 잔혹하다느니 이런 식으로 평가를 내리는 것은 지극히 필자가 갖는 편견이고 주제넘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가치관에 빗대어 고대 문명이나 관습 등을 비하는 것도 문제지만 관념적 언어 유희를 끌어다 붙여 자신의 사상을 입증하는 도구로 쓰고 썰을 푸는 건 수준 낮은 짓이다. 

기행문을 선택한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동을 주는 기행문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일종의 행운이 아닐까?
개인 블로그에나 올려야 할 수준의 잡문들을 버젓이 책이랍시고 출판하는 일종의 출판공해물들은 언급할 가치고 못 느끼고 개인의 감상에만 치우쳐 여행지에 대한 정보 소개를 소홀히 한다면 그것도 내용적인 면에서는 부족할 것 같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사실 전달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진 역시 필수는 아니더라도 좋은 기행문을 만드는 충분조건 정도는 된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기행문의 기본 조건은, 어떤 글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일단 문장력이 좋아야 한다.
적어도 비문은 없는 올바른 문장을 구사해야 하고, 글에 유머와 품격이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또 적어도 책으로 출판한다면 여행지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 수준의 지식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왕이면 좋은 사진도 추가되면 금상첨화일 것이고. 

좋은 기행문을 만난다는 게 이렇게도 힘든 일인가 새삼 느낀다.
덧붙이자면 이번 앙코르와트 여행 때 가이드가 도올 선생 얘기를 몇 번 했었는데 이제 보니 이 책을 읽었던 듯 하다.
설명하는 포인트나 심지어 비판하는 점까지도 책의 내용과 일치해서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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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 400년 푸생에서 마티스까지 - 大도록
다비드 리오 외 지음 / 지엔씨미디어(GNCmedia)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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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해남에 있을 때 이 전시회가 개최됐던 것 같다.
막 미술에 관심이 생겨 가 봐야지 하면서도 이거 보려고 서울까지 올라가기가 쉽지가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못 보고 말았던 생각이 난다.
도서관에서 이 도록을 발견하고 너무 반가워 빌리게 됐다.
선과 색채로 대비되는 서양 미술사를 잘 조명했다는 생각이 들고 좋은 전시회를 놓친 것 같아 무척 아쉽다.
서양미술 400년을 조망하겠다는 제목은 좀 과한 것 같긴 하지만 작품들이 다 마음에 든다.
특히 앞쪽에 실린 드로잉과 색채 중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는 관점이나, 물감의 재료에 따른 분류 등의 이야기도 무척 유용했다.
한 가지 새로운 발견은, 나는 루벤스를 역사화를 잘 그리고 화려한 색채감을 뽐냈다는 점에서 어쩐지 다비드와 같은 부류일 거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오히려 낭만주의자의 대표 기수인 들라크루와가 루벤스를 추앙했고 드로잉을 중시하는 다비드나 앵그르 등은 플랑드르 지역의 세밀화 기법을 평가절하 했다고 한다.
소재 면에서만 비슷했을 뿐 따지고 보면 루벤스의 화풍과 다비드의 신고전주의 화풍은 완전히 다른 것 같다.
루벤스는 화려하고 역동적이고 따뜻하다.
반면 다비드나 앵그르는 색조가 가라앉아 있고 엄숙한 느낌이 든다.
다만 둘 다 엄청난 화면 크기나 역사나 신화에서 소재를 찾는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것 같다.
회화의 본질은 형태가 아닌 색 그 자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형태를 무시한 추상화가 등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의 기본적인 자질은 바로 소묘, 데생 능력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할까?
놀랄만큼 화려하고 세밀한 장식화를 선보인 클림트의 데생을 보면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정교하고 인체의 특성을 잘 잡아낸다.
그래서 나는 대가들의 데생 작품들도 즐겨 본다.
전시회장에 가서 직접 그림을 보면 인쇄된 종이에서 보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준다.
도판으로 보는 게 나을 때도 있고 실제 볼 때 감동적인 것도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직접 명작들을 내 눈으로 느끼고 싶은데 외국에 나가기가 쉽지 않아 아쉬운대로 국내의 전시회로 만족하곤 한다.
정말 여유가 된다면 미술관 순례를 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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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결혼문화와 젠더
엄익란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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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인데 경기도사이버도서관의 도움으로 드디어 읽게 됐다.
일단 여성차별의 대표적 문화권인 이슬람의 결혼문화를 여성학자의 눈으로 짚어 봤다는 시도가 마음에 든다.
아무리 이슬람 문화가 평화를 사랑하네 인본주의네 어쩌네 해도 명예살인이나 여성할례로 대표되는 잔혹한 여성 억압의 문화가 존재하는 한, 절대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인종차별과도 같고, 오히려 문화 상대주의나 종교적 관용 차원에서 교묘히 은폐된다는 점에서 더 질이 나쁘다.
적어도 이런 명백한 차별과 억압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서구 사회가 기독교로부터 독립되어 심지어 예수가 막달라 마이라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는 신성모독의 영화로 백만장자가 되는 이 시대에, 예언자를 희화화 했다는 이유만으로 살해 위협을 느낀다는 것은 여전히 이슬람 사회가 종교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억압당하고 있다고 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기대했던 내용은,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의 실제적인 위치와 역할 등이었는데 처음에는 그런 식으로 나가는 것 같더니 뒤로 갈수록 결혼 풍속을 서술하는데 중점을 둬서 여성에 대한 책이라기 보다는 문화 풍속지 같다는 느낌을 줘서 어쩐지 용두사미가 되버린 것 같다.
소득이라면, 이슬람 사회도 역시 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에 일방적인 여성학대나 복종만이 강요되는 곳은 아니고 실제로 푸코가 말하는 미시권력 차원에서 여성 역시 은밀하게 그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다만 밖으로 드러낼 때는 남자를 통해 대신 할 뿐이고, 개방이라는 세계화 물결 속에 노출된 이상 많은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은 똑같다고 해야 할까?
그러고 보면 학자들이 단지 문헌과 통계 자료에 의존해 한 사회를 분석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직접 그 사회에 뛰어들어 생생한 현장 체험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단지 말을 위한 말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서구 학자들의 이슬람 문화나 아시아 문화 분석은 한계가 있어 보이고 그 문화권에서 자문화를 분석하는 이론과 학자들이 많이 나와야 할 것 같다.
이슬람 사회에서도 이제 서서히 여성 학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길 기대한다. 

이슬람 사회와 유교 문화권의 결혼 문화는 많은 점에서 비슷하다.
지금은 많이 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성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로써 선택이 아닌 거의 필수에 가깝다.
적정 연령이 되면 결혼에 대한 사회적 압력을 받게 되고 배우자 선택에 있어 부모의 영향력이 크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자발적인 독신이란 불가능한 것으로써 심지어 사제들도 전부 결혼을 한다고 한다.
배우자 선택은 전적으로 부모에게 달렸고 특히 여자가 청혼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결혼 의사는 가족 중 남자에 의해 대리되야 한다.
그래서 데이트라는 개념도 없다고 한다.
개인 대 개인의 만남이라기 보다는 집안끼리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결혼 문화와 유사하다.
단 이슬람 사회에서는 사촌혼을 선호한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동성동본이라는 이유로 생판 모르는 남과의 결혼까지도 강력하게 금지되어 왔는데 말이다.
체면을 중요시 하기 때문에 결혼식을 성대하게 거행하고 예물과 혼수로 신부의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것도 비슷하다.
남자는 여자를 부양할 경제적 능력으로, 여자는 순결과 외모로써 가치를 평가받는다는 것도 똑같다. 
그래서 집도 남자가 장만하고 심지어 혼납금, 즉 마흐르를 신부 집에 지불하고 이혼할 경우 떼 줄 재산을 미리 결혼계약서에 명시한다.
이 점은 좀 다른 것 같다.
우리는 오히려 지참금을 가지고 가는 문화인데 말이다.
여성의 사회 활동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이혼을 당했을 경우 경제적 자립을 위해 마련된 제도가 바로 이 후불 혼납금이다.
재밌는 것은 서구 사회에서 결혼이 신과의 성스러운 맹세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이혼도 불가능하지만, 이슬람 사회에서 결혼이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계약으로써 증인이 필요하고 혼수품이나 혼납금 등을 모두 계약서에 기재하며 계약이 파기되면 이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찌 보면 좀 더 현실적인 것 같기도 하다. 

이슬람 사회에서 명예란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 의해 평가받는 타인의 잣대다.
남자의 명예는 여성을 보호하고 부양하는 등의 의무를 지킬 때 가능하다.
반대로 여자의 명예는 몸에 의해 가능하다.
즉, 순결과 정조를 지키면 명예로운 것이고 반대로 한 번이라도 순결을 잃게 되면 회복 불가능하기 때문에 죽어야 한다.
왜적과 손이 닿았다는 이유만으로 순결을 잃었다고 자결했다는 우리 민담이 생각나는 시점이다.
여성의 명예는 왜 여성의 육체로써만 대표되는가?
명예를 잃으면 그녀는 죽음으로써 그 값을 치뤄야 하고 개인은 집단과 동일시 되기 때문에 가족 내 여성이 명예를 잃으면 집안 남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이게 바로 명예살인이다.
이슬람 사회에서는 서구의 성문화를 문란하다고 비난하고 자신들이 순결하다고 도덕적 우월감을 느낀다는데 오히려 그들이 훨씬 더 육체에 집착하고 성에 예속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처녀막 재생 수술이 행해진다는 현실도 한국 사회와 비슷하다.
하긴 요즘에 설마 첫날 밤에 처녀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혼한다는 미친 놈이 있을까 싶긴 하지만...
신부가 처녀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여성이 들어와 손가락으로 처녀막을 뚫고 그 혈흔을 사람들에게 보여 줬다는 전통을 듣고 있자면 한숨이 나온다.
언제쯤 종교와 사회 관습이라는 명목의 이런 억압들이 사라질까?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써 나를 정의할 수 있는 것, 집단에 함몰되지 않고 전적으로 내 결정과 자유를 존중받을 수 있는 것, 이것이 내가 바라는 가치이고 이상이다.
이런 점에서 어쩔 수 없이 나는 개인주의자이고 여전히 한국 사회의 집단 문화가 불편하다.
다만 어떤 사회의 문화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다양성의 측면에서 봐야 할 것을 단지 경제력을 이유로 문화의 서열을 나누는 행태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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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도록 - 일반용
국립중앙박물관 엮음 / 솔출판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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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 책을 읽었다.
박물관에 갈 때마다 뮤지엄샵에서 이걸 사야 돼, 말아야 돼 항상 고민했는데 값이 비싸서 맨날 군침만 흘리다 돌아섰는데 뜻밖에도 도서관에서 발견을 하고 너무 반가워 냉큼 빌렸다.
사실 내용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별로였다.
도판이 화려하고 좋긴 한데 어쩐지 사진이 많이 실린 역사책을 읽는 것 같아 전시회 도록과는 또다른 느낌이었다.
오히려 박물관 유물들은 수요일마다 열리는 큐레이터와의 대화에 참석해 학예사들로부터 직접 유물의 의미를 듣는 편이 훨씬 나아 보인다.
하지만 도록을 한 번 읽었다는데 의의를 두고 싶다.
DVD도 구입했는데 살짝 지루한 느낌이 들어 아직 못 보고 있다.
빨리 봐야지.
처음에 박물관 100 주년 기념행사로 관람비 무료화 사업을 할 때만 해도 그깟 2000원 주면 뭐하고 안 주면 뭐해 왠 생색? 이랬는데 입장료를 안 받으니까 확실히 더 많이 가게 된다.
유지 차원에서 보면 당연히 입장료를 징수해야 하겠지만 외국인들을 위해서라도 무료화 기간이 좀 더 연장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박물관이야 말로 도심 속의 최고의 놀이터가 아닐까 싶다.
유물은 그림과는 달리 유물 자체만으로 큰 감동이 있다기 보다는, 그 유물이 갖는 의미 때문에 감동을 얻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설명이 중요하다.
일례로, 작년에 열린 100 주년 기념전에서 신라에서 발견된 호우명 그릇이 전시됐는데 그릇 자체로 보면 특별할 게 없지만, 이 명문이 새겨진 그릇으로 인해 광개토대왕이 신라에 군대를 보냈던 것이 증명됐다고 생각하니 정말 감개무량했다.
난 원래 감동을 잘 하는 성격이라 콧날이 시큰할 정도였다.
그래서 도록도 열심히 보려고 한다.
알면 더 많이 감동할 수 있으니까.
다른 박물관에서 출판된 도록들도 읽어 볼 생각이다.
어떤 도시를 방문하면 먼저 그 도시의 박물관부터 찾는, 그런 문화가 당연시 되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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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
비토리오 로베다 지음, 윤길순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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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좀 어려웠다.
프랑스 학자가 본격적으로 쓴 앙코르와트 책이라 굉장히 자세하고 꼼꼼했다.
앞서 읽은 기행문 형식의 책과는 수준이 달랐다.
부조 내용이 워낙 상세하게 설명되어 이 책을 들고 앙코르와트로 떠나도 좋을 것 같다.
처음에 읽을 때는 지루하고 재미도 없었는데 앙코르와트 여행 다녀와서 읽으니 새삼 감회가 새롭고, 다른 책에서 읽은 배경지식이 있어 두 번째는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즐긴다는 것은 어디서나 진리인 것 같다. 

간단히 캄보디아 역사를 정리해 보면, 인도 문화가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기원전 2세기 무렵 해상무역을 주로 하는 푸난국이 남부에 세워졌고 첸라국 등이 후에 등장하는 등, 1세기부터 8세기까지를 앙코르 이전 시대로 본다.
자야바르만 2세가 즉위하면서 이들을 통일했고 9세기부터 15세기까지를 앙코르 시대로 본다.
앙코르란 도시라는 뜻이라고 한다.
일몰로 유명한 해발 60m의 산에 세워진 프놈 바켕은 야소바르만 1세 때, 여성의 사원이라고 일컫어지는 분홍빛 사원 반테이 스레이는 자야바르만 5세 때, 그리고 그 유명한 앙코르와트는 수리야바르만 2세 때 건립됐다.
일단 석조건물이라는 게 독특하고 부조가 무척이나 화려하며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건물들이 죄다 신을 모시는 사원이었다는 게 신기하다. 
인간의 종교심은 얼마나 놀라운 힘을 가졌는가! 

아쉬운 점은 앙코르와트에 대한 설명만 있어 캄보디아 전반적인 문화나 역사를 알기에는 미흡했다.
도울 선생의 책을 다시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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