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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 신이 만든 영혼의 도시
서규석 지음, (주)시지웨이브 사진 / 수막새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원래는 앙코르와트 가기 전에 읽으려고 했는데 바빠서 미루다가 못 읽고 비행기 안에 가지고 탔다.
비행기야 말로 흔들리지도 않고 스튜어디스가 계속 커피를 갖다 주는 최고의 독서 장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적기를 탔더니 신문이 종류별로 너무 많아 이것저것 읽다 보니 5시간이 훌쩍 지나가 못 읽은 신문은 호텔까지 가지고 가는 바람에 정작 이 책은 읽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여행 다녀와서 읽으니 가기 전에 읽었던 것과는 또다른 느낌이 든다.
내가 직접 앙코르와트를 보지 않았다면 여기 실린 사진이나 설명들이 이렇게 살갑게 와 닿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일단 이 책은 사진이 훌륭하다.
또 한국인 저자가 쓰다 보니 아무래도 서양인이 쓴 책 보다는 정서적으로도 읽기 편하고 번역체가 아니라서 문장도 매끄럽다.
앙코르 왕국이라고 하면 공식적으로는 자야바르만 2세가 푸남과 진랍을 통일하고 왕위에 오른 802년부터 아유티야 왕국에게 멸망당한 1431년까지를 일컫는다.
그는 캄보디아의 거대한 호수인 톤레 삽 근처의 평원에 정착해 도읍을 세웠고 힌두 문화를 받아들여 시바신 비슈누 등을 위한 여러 사원을 세웠다.
후계자인 수리야바르만 2세는 비슈누를 모시기 위한 앙코르 와트를 세웠고, 여행 내내 들었던 가장 유명한 왕인 자야바르만 7세가 앙코르 톰을 건립했다.
그는 또 어머니를 위해 타 프롬을, 아버지를 위해 프레아 칸을 세워 관세음보살을 모셨으며 앙코르 톰 한 가운데 바욘 사원을 건립했다.
목조로 된 건물들은 다 소실되어 버린 것인지, 죄다 석조 건물인 것이 이채롭다.
특히 바욘 사원 같은 경우는 4면불 수십 개가 우뚝 솟아 있어 무척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자야바르만 7세는 대승불교를 받아들여 자신을 관세음보살과 동일시 했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앙코르 왕국에서는 데바라쟈 즉 신이 곧 왕이라는 사상이 통용되었다.
일종의 제정일치 사회인가?
작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인도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 이야기를 접했는데 앙코르의 부조에도 이 이야기들이 조각되어 있다.
인도전에서 처음 접할 때만 해도 내용이 너무 방대해 감이 안 잡혔는데 두 번째 보니까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다.
가이드가 현지에서 쉽게 설명해 준 것도 도움이 됐다.
이런 설명 때문에 패키지 투어를 선택하게 된다.
마하바라타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장님왕인 드리타라슈트라의 자식들인 카우라바 형제들과, 이복동생인 판두왕의 판다바 형제들이 쿠루 평원에서 18일 간 전투를 벌여 선의 상징인 판다바 형제의 첫째 유디스티라가 왕위에 오른다는 내용이다.
라마야나는, 비슈누의 화신인 라마가 왕자로 태어나 왕위에 오르려고 할 때 계모의 음모에 휘말려 아내 시타와 동생 락슈마나와 함께 숲으로 쫓겨나 고행을 하던 중, 악마 라바나가 시타를 랑카섬으로 납치해 가자 원숭이 왕인 수그리바와 하누만의 도움으로 랑카섬 전투에서 이겨 시타를 찾아 왕궁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안타까운 것은, 라마가 정작 시타를 구출해 놓고 정절을 의심했다는 것이다.
마치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 간 환향녀들처럼 말이다.
시타는 불에 뛰어들어 정절을 증명하는 불의 시혐을 거쳐 비로소 순결함을 입중한다.
참, 고대 사회 남자들의 속좁음과 잔인함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똑같은 모양이다.
앙코르의 여러 사원들에는 쿠루 평원의 전투와, 랑카섬 전투가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사실 조각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더군다나 부조는 제대로 알아 먹지도 못해 직접 눈으로 보면서 설명을 듣는데도 솔직히 큰 감흥은 없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오늘날까지도 널리 퍼져 있는 매우 유명한 이야기로, 당시 사람들이 부조를 보는 심정은 매우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조각하기 쉬운 재질의 사암을 이용해 지었기 때문에 이런 화려한 조각들로 사원을 장식하였고, 그리스나 이집트 문화 등과는 구별되는 또 하나의 독창적인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앙코르 문명은 인도 문명의 직접적인 수혜자이다.
당장 힌두교 신앙이나 위에서 인용한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 신화만 봐도 알 수 있다.
앙코르와트를 가기 전까지만 해도 캄보디아의 문화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저 킬링 필드로 대표되는 가난한 나라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직접 가서 그 문명의 위대함을 접하고 나니 내 식견이 얼마나 편협한지, 서구 중심주의적 시각이 얼마나 위험하고 좁은지 새삼 느꼈다.
이래서 여행은 좋은 건가 보다.
기회가 된다면 부조가 설명된 이런 책들을 들고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