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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 ㅣ Art Classic 10
유스투스 뮐러 호프스테데. 콘스탄티노 포르쿠 지음, 이지영 옮김 / 예경 / 2009년 1월
평점 :
예경에서 나온 아트 클래식 시리즈가 마로니에북스의 베이직 아트 보다 더 나은 것 같다.
덜 현학적이고 작가의 생애를 앞부분에 배치하고 뒷쪽에 유명 작품 설명을 따로 하는 구성이 마음에 든다.
이 시리즈로 다른 예술가들도 읽어 볼 생각이다.
루벤스는 원래 좋아하는 화가였는데 루벤스, 바로크 걸작전에서 보고 더욱 좋아하게 됐다.
뒤러와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다.
책에서 정의한 루벤스 그림의 특징이 내 기질과 잘 맞는다.
인체의 역동성, 큰 화면, 극적인 주제, 화려한 색채, 신화와 고전에 대한 풍부한 지식, 풍요로운 화가의 삶 등이 매력적이다.
어쩐지 나는 고흐나 렘브란트처럼 당대에 인정을 못받고 죽도록 고생하다가 불우하게 죽어간 화가보다는, 피카소나 마티스처럼 절정의 인생을 누린 화가들이 더 끌린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라고 해야 할까?
루벤스의 아버지는 판사였는데 공주의 법률 고문을 하다가 간통죄로 기소되어 시골 마을에 유배되고 거기서 루벤스가 태어난다.
10세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는 다시 고향인 안트베르펜으로 돌아와 형 필립에게는 인문주의 교육을 시키고 동생 피터는 가난 때문에 귀족의 시종으로 들어가 있었는데 미술에 대한 재능을 알아보고 공방에 보낸다.
홀어머니로서는 대단한 교육적 투자였던 셈이다.
37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형에 대한 루벤스의 마음은 무척이나 애틋하여 여러 점의 초상화를 남긴다.
루벤스는 당대 유명한 화가들의 공방에서 견습생으로 수년을 일한 뒤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다.
여기서 8년 동안 머무는데 만토바의 곤차자 공작의 눈에 들어 그의 궁정화가로 일하면서 유명한 마리 드 메디치와 앙리 4세의 대리 결혼식에도 참석한다.
20년 후 대가가 되어 마리에게 직접 생애 연작을 의뢰받았으니 대단한 인연이라 할 것이다.
당시 그림이라면 로마 외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화가들에게 이탈리아 유학은 필수 코스였고 루벤스 역시 8년간 머무르면서 티치아노와 틴토레토 등의 선배 작품들을 수도 없이 모사했고 동시대인인 카라바조의 작품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틴토레토와 카바라조에게서 명암 대비와 빛의 극적 효과 등을 배우는데 양치기 목동의 경배 등을 보면 확실히 키아스쿠로의 분위기가 난다.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루벤스는 곤차가 가문으로부터 벗어나 안트베르펜으로 돌아온다.
이 때 안트베르펜 대성당의 그 유명한 작품, <십자가에 올려짐> 과 <십자가에서 내려짐> 등을 그린다.
<플란다즈의 개>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그림이다.
(갑자기 돈이 없어 대가들의 그림조차 마음대로 보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죽어간 이 가엾은 꼬마 화가 때문에 울컥해진다.
그러고 보면 이건 동화라고 하기엔 너무 비극적이다.
일단 개가 우유 마차를 끈다는 것부터가 너무 힘들어 보이잖아)
결혼을 하면서 그는 더욱 풍요로운 인생을 사는데 첫 아내 이사벨라 브란트와 두번째 아내 헬레나 푸르망 모두에게 매우 충실한 남편이었다.
성실한 성격 때문이겠지만 무엇보다 운이 좋았던 남자였던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을 그것도 두 번씩이나 아내로 맞는다는 게 얼마나 엄청난 행운인가!
젊었을 때 절정기의 기량과 부유함을 뽐내면서 그린 인동초 덩굴 아래의 부부 자화상은 인물이 배경에 꽉 들어차는 구도다.
50대에 결혼한 겨우 열 여섯 살의 어린 아내 헬레나 푸르망을 그린 그림들도 유명하다.
특히 <모피를 두르고 있는 헬레나 푸르망> 이나 그녀의 언니 <스잔 푸르망> 등이 초상화는 그가 얼마나 놀라운 화가였는지 여실히 보여줄 뿐더러 두 자매의 뛰어난 미모도 확인해 볼 수 있다.
헬레나는 부유한 상인의 무려 열 한 번째 딸이었다고 한다.
이 어린 아내와의 사이에서도 다섯 명의 아이들을 낳고 막내딸은 그가 죽고 며칠 후에 태어났다고 한다.
첫 아내 이사벨라와의 사이에서 낳은 큰 딸의 초상화는 발그레한 빰의 사랑스러운 여자아이다.
열 두 살의 어린 나이에 죽고 만 이 딸을 그릴 때 아버지가 얼마나 행복했을지 짐작이 가는, 사랑스러운 초상화다.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인생의 절정을 누리던 시절의 화려한 역사화도 좋지만, 스텐성으로 은퇴한 후 아내 헬레나와 자식들과 편안한 일생을 보내던 시절의 풍경화도 인상적이다.
후기로 갈수록 색채나 구도가 더 명상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정원 그림이나 농민들의 축제 그림 같은 경우는 루벤스가 풍경화가로서도 뛰어났음을 보여준다.
통풍에 걸려 오른손을 쓰지 못했던 몇 년 간 화가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그래서인지 말년에 그린 자화상에서 오른손은 장갑으로 가려져 있다.
말년의 자화상은 렘브란트의 자화상처럼 숙연한 느낌이 든다.
루벤스의 대표작들은 거의 다 실려 있는 것 같다.
공방에서 합동 작업을 많이 했기 때문에 2000점이 넘는 엄청난 작품을 생산했고 워낙 수가 많다 보니 미술 시장에서 가치가 아주 높지 않다는 평론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인물을 주로 그렸기 때문에 얀 브뤼겔에게 풍경을 맡기고 본인은 인물을 그리는 식으로 나눠서 한 작품도 많다.
영국 대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작품 중 전적으로 자신이 그린 것, 공방에서 나눠 그린 것, 자신이 손질을 한 것 등을 꼼꼼히 나눠 보냈고 동판화에 원작을 새겨 위조 방지를 했다는 걸 보면 탁월한 사업가였다는 생각도 든다.
이 매력적인 화가에게 더 빠지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