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 1
이우상 지음, 최진연 사진 / 다할미디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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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얼마 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유네스코 등재 문화유산전에서 조선 왕릉 사진을 보고 감탄하여 관심을 갖게 됐다.
요즘에는 답사가 꽤 일반화 되어 왕릉도 훌륭한 답사 코스로 인지되고 있는지라 관련 책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일단 사진이 훌륭하고 잘 몰랐던 왕이나 왕비들, 이를테면 단명한 예종이나 장순왕후, 헌종이나 효현왕후 등에 대해 조금이나마 능을 통해 정보를 얻게 되어 기쁘다.
저자가 꽤나 꼼꼼하게 자료 조사를 한 것 같다.
그러나 책의 가치를 깍아 먹는 것은 저자의 집필 태도다.
소설식 에피소드 삽입, 혹은 저자의 지나친 감정 노출이야 말로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가르는 분기점이라고 생각한다.
학술적이지 못하고 흥미 위주로 지면을 메우는 모습이 간간히 눈에 띄어 책의 가치를 깍아 먹는다.
그러고 보면 해당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의 책은, 그 주장이 옳든 그르든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상당히 정밀하게 논지를 전개하는 것 같다.
아마추어 저술가들이 유의해야 할 점이다. 

사실 왕릉은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보지 못한 주제라 동9릉이나 서5릉이니 하는 용어들이 생소했다.
조선의 역사는 근대사이기 때문에 고려나 신라에 비해 많이 알려진 편이라 굳이 외우지 않아도 어디에 왕릉이 있는지를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는 사극도 도움이 된다.
역사 왜곡이나 어쩌니 하지만 대중에게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만으로도 사극의 역할은 꽤 크다고 생각한다.
당장 성종의 원비 공혜왕후도 워낙 빨리 죽었고 계비인 폐비 윤씨 사건 때문에 거의 조명을 못 받는 인물이다.
그런데 구혜선 나온 사극에서 꽤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려져 일반인들에게 공혜왕후라는 인물을 알리게 됐다.
그녀는 세도가 한명회의 넷째딸로 언니가 바로 예종의 원비인 장순왕후다.
이 둘은 열 두 살 차이가 나는데 한명회가 마흔 하나에 얻은 딸이다.
재혼도 아니고 정실 부인에게서 얻은 적녀이니 조선 시대에 마흔 이후의 노산도 꽤 많았던 것 같다.
당장 엄귀비만 해도 마흔 셋에 영친왕을 낳았다.
아이 낳다가 죽는 일이 다반사였던 당시 의료 수준을 생각해 보면 타고난 건강체들이었던 것 같다.
한명회의 셋째딸은 열 다섯 살에 세자빈으로 책봉되어 예종에게 시집간다.
그런데 나이차가 꽤 난다.
(이 책의 나이는 전부 만으로 나온다)
신랑 예종은 열 살에 불과했고 신부가 다섯이나 위다.
보통 세자빈이 열 살 전후에 책봉되는 걸 보면 세도가 한명회의 입김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여튼 시집오자 마자 임신을 해서 다음해 인성대군을 낳지만 불행히 산후병으로 곧 죽고 만다.
이 불쌍한 아들 역시 세 살 때 죽는다.
<왕과 비>에서 죽은 손자를 않고 오열하던 세조와 한명회의 모습이 떠오른다.
정말 사극의 효과는 대단하다!!
겨우 열 한 살에 아버지가 되다니, 놀랍다.
예종이 열 아홉에 사망했는데 이 아들이 살아 있었다면 당연히 대통을 이었을 것이다.
또다른 사위 성종이 왕이 되긴 했지만 한명회로서는 아쉬운 대목일 것 같다. 

또 재밌는 것은 폐비 윤씨의 나이다.
성종과 무려 열 두 살 차이다.
<왕과 나> 에서는 구혜선과 고주원이 각각 역할을 맡았는데 실은 굉장히 연상이었던 셈이다.
소년왕의 마음을 어떻게 훔쳤을지 흥미롭다.
윤씨는 양반이었던 윤기견의 딸로 28세 때 숙의에 책봉되고 공혜왕후가 죽은 후 왕비에 오른다.
성종이 왕이 된 게 열 두 살이었으니 나이로 봐서 후궁으로 들어온 게 아니라 궁인으로 있다가 승은을 입었던 것 같다.
보통 중인이 궁녀가 된다고 생각했는데 몰락 양반도 궁녀로 들어왔는지 궁금하다.
하여튼 정사대로 하면 <왕과 나>에서 보여주던 그런 애틋한 로맨스가 아니라 꽤 육감있는 자극적인 스토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서울의 지명도 바로 이런 능에서 유래된 곳이 많다는 걸 알았다.
수시로 들락날락 하는 삼성역 근처의 선릉이 바로 성종과 정현왕후의 묘라고 한다.
서울 시립 미술관이 있는 정릉 역시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묘고 선수촌으로 유명한 태릉은 바로 그 유명한 문정왕후의 묘라고 하니 유래를 알면 역사가 보인다.
그냥 지나치기 쉬웠던 작은 에피소드들이 숨어져 있는 능 이야기, 무척 재밌게 읽었고 실제로 답사를 한 번 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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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0-01-06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옆지기가 역사체험학습을 하는 지라 이 책을 집에서 본적은 있지만 읽지는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읽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려보겠습니다. ㅋㅋ

marine 2010-01-08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그런 게 있군요. 좀 자극적인 상상력에 근거한 일화 삽입이라든가 독살설 운운하는 역사의식이 다소 불편하긴 하지만 자료 조사를 무척 많이 한 책이라 얻는 게 많았어요.

박혜연 2011-09-02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특히 영친왕의 친어머니 순원황귀비 엄씨는 대단한여자라고 할수있어요! 다른 궁녀들과 비교할때 얼굴도 못생기고 더군다나 체격도 남자같고 성격도 걸걸함에도 불구하고 고종임금의 승은을 받아 마흔셋이라는 너무 늦은나이에 첫아이를 낳았잖습니까?
 
구스타프 클림트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8
질 네레 지음, 최재혁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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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군더더기 없는 베이직 아트 시리즈.
현학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는데 클림트는 워낙 이해하기 쉬운 작가라 그런지 읽기도 편했다.
작년에 한가람 미술관에서 개최했던 클림트展 작품들이 많이 등장해 무척 반가웠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베토벤 프리즈도 실려서 더 좋았다.
직전에 마티스를 읽었는데 다소 난해했던 그에 비해 클림트는 너무 쉽고 편안하다.
보편적인 시각적 아름다움에 호소하기 때문일까?
지금 봐서는 도저히 외설스럽다고 할 수 없는 편안한 에로틱인데 19세기 말의 비엔나 교양인들에게는 상당히 충격이었나 보다.
하긴 올랭피아를 보고 외설이라고 했던 사람들이니.
사실 전시회에서 봤던 그의 드로잉은 좀 충격적이긴 했다.
책을 보니 초상화를 그릴 때도 모델을 벗겨놓은 뒤 나중에 채색을 한다고 한다.
에곤 실레 역시 꽤나 자극적인 드로잉을 많이 남겼는데 클림트에 비하면 오히려 건조하고 삭막하다는 느낌이 든다.
모델에게 이런 낯뜨거운 포즈를 어떻게 취하라고 했을지 참...
남녀의 성행위 보다는 여성 모델 혼자 성감대를 만지면서 흥분하는 그런 드로잉이 대부분이다.
사실 인체의 드로잉에 있어서는 마티스 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클림트의 그림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 화려한 장식미를 생각한다면 탐미주의 이런 생각이 든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마티스를 강렬한 색채 때문에 야수파라고 부르는데 클림트는 도저히 그런 우왁스러운 단어를 쓸 수가 없다.
정교하고 섬세한 표현.
어쩜 저렇게 세심하게 색감을 표현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유딧도 충격적이긴 하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논개 정도의 성스러운 위인을 입 헤 벌린 창녀 정도로 묘사했으니 당시 그의 후원자였던 유대인들이 굳이 유딧을 살로메로 표기했다는 일화가 이해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조차 논쟁의 여지가 충분한 시도였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대학에서 의뢰했던 벽화 역시 돈을 돌려 주고 철수하는 걸로 결론이 난다.
법학, 철학, 의학 등 성스러운 학문의 위대함을 표현해 주라 했더니, 오히려 악에 의해 패배하는 지극히 자극적인 주제를 그렸다.
굉장히 도발적이고 신비로운 스타일이었던데 남아 있었더라면 굉장한 이슈가 됐을 작품이다.
그를 후원하던 유대인 재벌에게 팔렸는데 2차 대전 때 히틀러에 의해 소각됐다고 한다.
이래서 전체주의가 무서운 거다. 

그의 장기는 초상화였다.
온갖 화려한 옷으로 장식한 이 우아한 초상화 스타일에 빈의 귀부인들이 다투어 주문을 해서 국가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명성을 이어갈 수 있었다.
빈 배경을 남겨두지 않고 온갖 문양으로 꽉꽉 채우는 화려한 스타일이 마음에 든다.
후배인 에곤 실레나 코코슈카 등에 밀려 구닥다리 취급을 받게 될까 봐 어두운 스타일의 표현주의 초상화도 그렸는데 피카소처럼 클림트 역시 뭘 그려도 시각적으로 훌륭한 확실히 천재답다.
그가 그린 풍경화도 무척 마음에 든다.
신인상파 스타일대로 색을 분할해 점묘법처럼 그리기도 했는데 그러나 여전히 클림트는 빛과 날씨 이런 것보다 장식적인 색채 사용이 훨씬 중요했다.
그래서 더욱 개성적이고 확연한 구별점을 준다. 

작품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다 보니 에밀리 플뢰게에 대한 언급이 겨우 한 두 줄이라 아쉽다.
피카소 못지 않게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하고 이복자녀들도 꽤 많았던 것 같은데 점잖은 마티스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클림트 작품들은 보는 즐거움이 대단하다.
전시회에 가길 정말 잘했다.
만약 가서 직접 보지 않았다면 그렇고 그런 화가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클림트에 대해서는 블로그에서 추천받은 몇 권의 화집을 더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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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10-01-06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홍규님의 클림트 평전도 함께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오히려 논쟁이 되면 좋을텐데. 그렇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아쉬워하고 있죠. 저도 챙겨 봐야겠네요.

marine 2010-01-08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박홍규씨는 안 건드리는 주제가 없군요.
 
앙리 마티스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35
폴크마 에서스 지음, 김병화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에 봤던 퐁피두 센터 전시회에서 마티스 작품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됐다.
사실 그 전에 도판으로 볼 때만 해도 대체 왜 그렇게 추앙받는 건지 의아했다.
대충 그린 듯한 드로잉이나 막 칠한 것 같은 색채감에 거부감을 느꼈고 전혀 감동이 오질 않았다.
오히려 반발심만 생길 지경이었다.
그런데 막상 진품을 직접 눈으로 보니까 그가 왜 색채의 대가였는지, 왜 야수파라는 별명을 얻게 됐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이 꽤 많이 왔었다.
역시 대가의 명성에 함부로 도전할 일이 아닌 것 같다.
한 번 읽어야지 하면서도 늘 다른 책의 우선순위에 밀리던 차에 드디어 결심을 하고 읽게 됐다.
화려하고 다양한 도판을 보는 건 좋은데 솔직히 내용은 좀 어려웠다.
100페이지가 안 되는 작은 분량이라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용이 상당히 추상적이고 현학적인 문장들이 많아 쉽게 넘어가지지 않았다.
화가 개인의 일생 보다는 작품이나 스타일의 변화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번역이 난해함도 한 몫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은 대충 읽고 재독할 때는 꼼꼼히 봤더니 이해가 좀 된다.
<마티스 명작 400선> 이라는 책을 보고 싶다. 

현대화가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점은, 르네상스나 바로크 미술에 비해 정교함이 떨어지고 대충 그렸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라파엘로나 앵그로가 그린 그림은 누가 봐도 잘 그렸다고 감탄할 만 하고 시각적 즐거움이 있는데 인상파 그림은 그냥 막 칠한 것 같아 굳이 숙련된 화가가 아니라 할지라도 색채에 대한 감각만 있으면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반감이 사라진 것은 영국의 내셔널 갤러리에 가서 고흐의 해바라기를 직접 봤을 때다.
루브르 미술관에 갔을 때만 해도 정말 별 감정이 없었는데 (모나리자 보고 실망한 생각만 난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유리창 안에 들어 있는 해바라기를 보면서 눈물이 막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마음 한 구석이 싸해지면서 울컥 하는 느낌이랄까?
두터운 붓질, 격렬하고 숨이 막힐 것 같은 강렬한 색채감!
어쩐지 화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바를 마음으로 이해한 느낌이 들었다.
평면성이 주는 강렬한 느낌에 완전히 빠져든 것이다.
왜 인상파 화가들이 일본의 다색 목판화인 우키요에에 열광했는지 알 것 같다.
요컨대 19세기 근대의 화가들은 르네상스 이래로 규범이 된 사실주의, 입체성, 원근법 등으로부터 탈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평면으로의 회귀, 형태보다 더 중요한 색채.
그림의 주제는 중요하지 않다.
화가가 어떻게 느끼는지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지 그게 핵심인 것이다.
인상파들이 왜 19세기 화단에서 비웃음을 샀는지, 또 어떻게 20세기 현대미술의 선구자가 됐는지 이해가 된다.
그들이야 말로 기술자에서 진정한 예술가로 변모한 이들이 아닐까 싶다. 

마티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선드로잉을 꽤 열심히 했다.
그가 그린 드로잉을 보면 인물의 특징을 잘 잡아내는 유능한 화가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입체감을 주는 섬세한 채색 대신 강렬한 색채의 대비를 통해 어떤 느낌을 전달하고자 했다.
사실주의를 일부러 포기한 것이다.
공간감을 버리는 것, 추상으로 나아가는 것.
그도 나중에는 추상과 구상의 결합을 시도했고 형태보다는 다양한 색채들의 대비를 통한 긴장감을 중시했다.
대체 저런 색이 어떻게 같이 쓰일까 하나하나 뜯어보면 황당할 정도인데 전체를 보면 그림에 긴장감이 생기도 묘한 조화를 느낄 수 있다.
타고난 색채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색채에만 함몰되지 않고 강렬한 윤곽선을 통해 인물을 강조하고 주변 사물에 곡선을 넣어 장식미를 더한 점이 더욱 작품을 돋보이게 한다.
작품에 리듬감이 있고 무겁지 않고 발랄한 느낌이 든다.
그가 말년에 했던 오려 붙이기나 스테인글라스 등도 무척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사실 이 책은 나에게는 좀 어려웠고 의무감이 강해서 다른 책을 좀 더 읽어 볼 생각이다.
특정 시리즈를 골라 가능하면 다 읽어 보는 게 올해의 목표다.
화가들에 대해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생기니까 작품 자체에 대해 논하는 이런 종류의 책이 훨씬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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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티소의 나라들
고혜선 / 단국대학교출판부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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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잉카전에 갔다가 뮤지엄샵에 전시된 책 중 하나다.
처음 보는 책들이라 제목들만 대충 적어 와서 도서관에서 하나씩 대출해서 보고 있다.
그런데 너무 옛날 책들이라 2000년대 이후 정치 경제 상황이 업데이트가 안 되어 있다.
이 책 역시 90년대 후반에 출판됐고 2006년도인가 개정판으로 나온 것 같은데 안의 내용은 거의 그대로이다.
멕시코 대통령은 아직도 94년도에 당선된 세디요로 되어 있다.
개정판 냈다고 서문만 새로 쓸 게 아니라 구체적인 본문 내용도 업데이트를 해 줬으면 좋겠다. 

분량이 많지 않아 한 번에 쭉 읽을 수 있는 반면 단점으로는 역시 너무 소략됐다는 점을 들겠다.
뒷쪽의 현대사 부분은 짧은 분량으로도 어지간한 사건들은 언급을 하고 지나가진 하는데 식민지 시대 부분은 상당히 소략돼서 아쉬운 점이 많다.
직전에 읽었던 <라틴 아메리카, 마야 잉까로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와 문화> 가 많은 도움이 됐다.
위의 책이 훨씬 자세하고 분량이나 기술적인 부분에서 더 성실하다.
까치글방에서 나온 라틴 아메리카사를 다시 읽어 봐야겠다.
사실 라틴 아메리카는 미국에 비해 관심이 덜하기 때문에 알려진 바도 적을 뿐더러 33개국이나 되는 거대한 대륙을 늘 한꺼번에 뭉뚱그려 기술하기 때문에 대략적인 느낌만 있을 뿐 실제적인 현실은 아무래도 그냥 지나친다는 생각이 든다.
한중일도 서구에서 보면 다같은 유교 문화권에 한자권이지만, 실제로 들여다 보면 상당히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콜롬버스의 상륙 이전에는 구대륙과의 문화 교류 없이 독자적으로 발전했다는 점, 이베리아 반도의 지배를 받았다는 점, 덕분에 언어적으로 통일됐고 가톨릭과 스페인 문화를 받아들였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특히 언어적인 면에서는 거대한 스페인어권을 형성하기 때문에 (포르투갈어도 스페인어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한다) 문학 작품이 세계적으로 통용되기 쉽고 그래서인지 노벨 문학상 수상자도 무척 많은 것 같다. 

라틴 아메리카 지도를 보면 대체 어디가 어딘지 늘 헷갈렸는데 (가장 국토가 큰 브라질만 겨우 식별함) 책 몇 권 읽었더니 지도를 그릴 수도 있게 됐다.
각 나라의 발전사를 이해하다 보니 자연스레 머리에 인지가 된 것이다.
특히 중미 7개국을 개별 국가로 인지하게 된 게 무척 기쁘다.
원래도 독립 당시는 중미 5개국의 연방 체제를 유지했을 만큼 공통의 역사를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정적을 상어밥으로 빠뜨린 게 소모사인가, 로메로 신부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 피노체트는 어디 독재자더라, 페론은 또 어느 나라? 이런 식으로 헷갈렸는데 이제는 확실히 구분할 수 있다.
앞으로는 라틴 아메리카 관련 뉴스가 나오면 반갑게 경청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다 여러 전시회 덕분이다.
작년에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렸던 보떼로展 이나 중앙박물관의 잉까展 덕분에 라틴 아메리카에 관심을 갖게 됐다.
박물관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바로 지역간 교류라는 말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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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38
클라우스 호네프 지음, 최성욱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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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나 공연은, 더 크게 말하자면 어떤 특정한 경험은 독서처럼 인식의 폭을 넓혀 준다.
전혀 관심이 없거나 혹은 싫어했던 것, 편견을 가진 것들에 대해서 호의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바꿔 준다.
그래서 책 읽는 게 좋고 공연이나 전시회 보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지적 자극이라고 해야 하나? 

앤디 워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싫어하기까지 했다.
팝 아트라는 걸 솔직히 경멸했었다.
진지하지 못하고 말장난 같고 대중예술, 혹은 상업예술이라고 생각했다.
순수예술에 대한 하위장르, 미디어가 만들어낸 허상, 이런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앤디 워홀展을 보고 나니 생각이 완전히 바뀌는 거다.
굉장히 감각적이고 인상적이며 창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느낌이 확 온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앤디 워홀은 그 자신의 말대로 예술로 사업을 할 수 있는 정말로 영리한 예술가였는지도 모르겠다.
워홀에 대해 팝아트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욕구 때문에 관련 책을 찾아 봤는데 의외로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 예술서적처럼 많이 나와 있지는 않았다.
마로니에북스에서 나온 타쉔 시리즈는 도판이 풍부하고 100 페이지 남짓한 분량으로 부담이 없어 가능하면 시리즈를 전부 읽을 생각이라 이 책을 골랐다.
다소 전문적인 느낌도 들고 설명이 자상하지는 않지만 짧은 분량으로 압축해 그가 추구한 예술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역자가 각주를 좀 더 붙였으면 어땠을까 싶다.
미국 현대미술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하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작가나 유파를 찾아 가면서 읽었더니 도움이 많이 됐다.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는 필라델피아 미술관展에서 애쉬 캔 파라는 미국 현대 화파가 나오는데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몰랐다.
찾아 봤더니 쓰레기통이라는 단어였다.
더 웃긴 건 애쉬캔파의 지도자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바로 로버트 헨리라고 하길래 파격적인 스타일의 화가인가 했다.
막상 작품을 찾아 봤더니 정말 전통적으로 잘 그리는 화가였다.
양식이나 재료의 파격성 보다는 소재의 파격성을 추구했고 (예쁘고 아름다운 주제 대신 미국 대도시의 노동자 계급 같은 소재) 그래서인지 애쉬캔파는 조지프 오키프의 남편인 스티글리츠가 주도한 유럽 현대미술 작가들의 전시회 이후 화단에서 밀려났다고 한다.
인상주의 느낌이 든다.
워홀에게 영향을 줬다는 팝아트의 선구자격인 스튜어트 데이비스와 찰스 쉴러의 그림을 찾아 봤는데 앤디 워홀처럼 대중적인 이미지의 사진 조합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스튜어트 데이비스는 원색의 구성주의 그림 같았고 (오히려 칸딘스키 느낌이랄까?) 사진작가이기도 했던 찰스 쉴러는 정밀한 사실주의 풍경화를 선보였다.
인터넷을 찾아 보지 않았다면 전혀 몰랐을 부분이다.
이래서 배경지식이 중요한가 보다.
심지어 나는 재스퍼 존스 역시 이름 때문에 여자인 줄 알았다.
팝아트로 분류되는 재스퍼 존스나 라우셴버그 역시 앤디 워홀의 느낌과는 매우 다르고 만화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리히텐슈타인 정도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원본의 유일성을 파괴했지만 독창성은 포기하지 않은 앤디 워홀의 팩토리!
사진의 변형이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작업한 그의 방식은 누가 따라한다면 역시나 식상하지 않을까?
워홀이 처음에는 만화에서 이미지를 차용하다가 그 분야의 선두주자인 리히텐슈타인을 보고 2인자는 필요없다는 걸 느끼고 다른 길로 바꿨다는 일화는 의미심장하다.
진정으로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것은 창의성, 혁신성, "최초" 가 아닐까 싶다.
본인 스스로 스타가 되길 원했다는 점에서 어쩐지 진정성 보다는 상업성이 물씬 풍기는 것 같지만 덕분에 미술이 대중 속으로 파고들고 무엇보다 미디어라는 매체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혁신성이 돋보인다.
체코의 이민자 아들이었던 워홀이야 말로 진정한 미국 문화의 수혜자가 아닐까 싶다.
상업예술과 순수예술의 갈림길은 어디일까?
캐릭터로 만들어지는 일본의 팝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 같은 작가를 보면, 심지어 낸시 랭마저도 팝 아티스트라고 자신을 지칭하니 대체 어디까지를 "진짜" 예술가라 불러야 할지 모호하다.
정말 시간이 모든 걸 가려 주려나?
다음에는 팝 아트에 관한 책을 읽어 봐야겠다.
1950년대의 진지한 관념주의자들인 마크 로스코나 잭슨 폴록 등이 오히려 진짜 예술가답고 예술로써 이해하기 더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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