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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ㅣ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35
폴크마 에서스 지음, 김병화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에 봤던 퐁피두 센터 전시회에서 마티스 작품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됐다.
사실 그 전에 도판으로 볼 때만 해도 대체 왜 그렇게 추앙받는 건지 의아했다.
대충 그린 듯한 드로잉이나 막 칠한 것 같은 색채감에 거부감을 느꼈고 전혀 감동이 오질 않았다.
오히려 반발심만 생길 지경이었다.
그런데 막상 진품을 직접 눈으로 보니까 그가 왜 색채의 대가였는지, 왜 야수파라는 별명을 얻게 됐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이 꽤 많이 왔었다.
역시 대가의 명성에 함부로 도전할 일이 아닌 것 같다.
한 번 읽어야지 하면서도 늘 다른 책의 우선순위에 밀리던 차에 드디어 결심을 하고 읽게 됐다.
화려하고 다양한 도판을 보는 건 좋은데 솔직히 내용은 좀 어려웠다.
100페이지가 안 되는 작은 분량이라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용이 상당히 추상적이고 현학적인 문장들이 많아 쉽게 넘어가지지 않았다.
화가 개인의 일생 보다는 작품이나 스타일의 변화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번역이 난해함도 한 몫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은 대충 읽고 재독할 때는 꼼꼼히 봤더니 이해가 좀 된다.
<마티스 명작 400선> 이라는 책을 보고 싶다.
현대화가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점은, 르네상스나 바로크 미술에 비해 정교함이 떨어지고 대충 그렸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라파엘로나 앵그로가 그린 그림은 누가 봐도 잘 그렸다고 감탄할 만 하고 시각적 즐거움이 있는데 인상파 그림은 그냥 막 칠한 것 같아 굳이 숙련된 화가가 아니라 할지라도 색채에 대한 감각만 있으면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반감이 사라진 것은 영국의 내셔널 갤러리에 가서 고흐의 해바라기를 직접 봤을 때다.
루브르 미술관에 갔을 때만 해도 정말 별 감정이 없었는데 (모나리자 보고 실망한 생각만 난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유리창 안에 들어 있는 해바라기를 보면서 눈물이 막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마음 한 구석이 싸해지면서 울컥 하는 느낌이랄까?
두터운 붓질, 격렬하고 숨이 막힐 것 같은 강렬한 색채감!
어쩐지 화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바를 마음으로 이해한 느낌이 들었다.
평면성이 주는 강렬한 느낌에 완전히 빠져든 것이다.
왜 인상파 화가들이 일본의 다색 목판화인 우키요에에 열광했는지 알 것 같다.
요컨대 19세기 근대의 화가들은 르네상스 이래로 규범이 된 사실주의, 입체성, 원근법 등으로부터 탈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평면으로의 회귀, 형태보다 더 중요한 색채.
그림의 주제는 중요하지 않다.
화가가 어떻게 느끼는지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지 그게 핵심인 것이다.
인상파들이 왜 19세기 화단에서 비웃음을 샀는지, 또 어떻게 20세기 현대미술의 선구자가 됐는지 이해가 된다.
그들이야 말로 기술자에서 진정한 예술가로 변모한 이들이 아닐까 싶다.
마티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선드로잉을 꽤 열심히 했다.
그가 그린 드로잉을 보면 인물의 특징을 잘 잡아내는 유능한 화가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입체감을 주는 섬세한 채색 대신 강렬한 색채의 대비를 통해 어떤 느낌을 전달하고자 했다.
사실주의를 일부러 포기한 것이다.
공간감을 버리는 것, 추상으로 나아가는 것.
그도 나중에는 추상과 구상의 결합을 시도했고 형태보다는 다양한 색채들의 대비를 통한 긴장감을 중시했다.
대체 저런 색이 어떻게 같이 쓰일까 하나하나 뜯어보면 황당할 정도인데 전체를 보면 그림에 긴장감이 생기도 묘한 조화를 느낄 수 있다.
타고난 색채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색채에만 함몰되지 않고 강렬한 윤곽선을 통해 인물을 강조하고 주변 사물에 곡선을 넣어 장식미를 더한 점이 더욱 작품을 돋보이게 한다.
작품에 리듬감이 있고 무겁지 않고 발랄한 느낌이 든다.
그가 말년에 했던 오려 붙이기나 스테인글라스 등도 무척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사실 이 책은 나에게는 좀 어려웠고 의무감이 강해서 다른 책을 좀 더 읽어 볼 생각이다.
특정 시리즈를 골라 가능하면 다 읽어 보는 게 올해의 목표다.
화가들에 대해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생기니까 작품 자체에 대해 논하는 이런 종류의 책이 훨씬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