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텍 - 고대 문명의 역사와 보물 세계 10대 문명 5
다비데 도메니치 지음, 김원옥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잉카전>을 보고 나서 아메리카 문화에 대해 관심이 생겨 빌리게 됐다.
이 시리즈는 중국과 이집트 편을 읽었는데 도판 위주라 텍스트가 약하다는 생각이 들어 크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아스텍 편은 얼마 전 박물관에서 봤던 안데스 고대 문명의 유물들에 대한 인상이 강렬해서인지 비슷한 느낌의 아스텍 유물들 도판 역시 굉장히 멋지고 인상깊었다.
잉카전에서 봤던 유물들과 느낌이 아주 유사하다.
아메리카가 어떻게 보면 유럽이나 아시아와도 같은 하나의 거대한 대륙인데 이렇게 유사한 문화와 전설, 관습을 공유했다는 게 무척 신기하다.
문양이나 토기 모양 등이 굉장히 비슷해 보인다.
무엇보다 인신공희의 관습을 공유했다는 게 가장 놀랍다.
큐레이터와의 대화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심청전이나 에밀레 종의 전설처럼 고대에는 인신공희가 있었을 거란 말을 듣긴 했는데 과연 이런 관습이 유럽인들이 쳐들어 올 때까지 광범위하게 행해졌던 이유가 무엇인지 무척 궁금하다.
멜 깁슨의 영화 <아포칼립토>에서 전쟁에서 잡은 포로를 신전 꼭대기에서 심장을 도려내 제물로 바치는 장면을 봤을 때만 해도 일부러 자극적인 설정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전적으로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는 걸 알게 됐다.
<잉카전>에서도 심장을 도려 내는 투미라는 도끼 비슷한 칼이 있었고, 이 책에서도 흑요석으로 살아 있는 사람의 심장을 제단 위에서 꺼내는 장면을 묘사한 아스텍의 벽화가 실렸다.
따지고 보면 당시 유럽에서 만행하던 화형도 비슷하게 끔찍하긴 하지만, 처벌의 목적이 아니라 종교적 관습으로 산 사람의 심장을 바치는 일이 일상적으로 행해졌다는 게 놀랍다. 

다른 책에서도 읽은 바지만 아스텍이라고 알려진 이 민족의 본이름은 멕시카족이라고 한다.
아스틀란에 거주한다는 뜻의 아즈텍은, 이미 이주를 시작해 오랜 기간의 방랑 끝에 멕시코 계곡에 정착 후 자신들의 이름을 멕시카라 부르기로 했으니 정확한 용어가 아닌 셈이다.
오늘날 멕시코라는 국명도 여기서 비롯됐다고 한다.
막역히 고대 아스텍 문명은 금속이 도입되기 전의 석기 시대 문명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구대륙의 발전 단계에 맞추기는 너무 도식적인 설명이 아닐까 싶다.
돌을 이용한 놀라운 건축물들을 보면서 구대륙과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나간 신대륙의 문화를 느낄 수 있다.
그들이 사용한 언어도 그렇고 벽화나 장식 패턴들을 보면 구대륙과는 전혀 다른 굉장히 독창적이고 개성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아프리카의 부족 문화 양식과 비슷한 느낌도 들고, 어찌 보면 금속 시대에 접어들기 이전의 보편적인 양식인가 싶기도 하다.
하여튼 굉장히 개성적이고 독특한 아메리카 고대 문화에 많은 관심과 애정이 생긴다.
<잉카전>에서도 느낀 바지만 역시 메스티소가 주를 이루는 나라들이라 그런지 페루나 멕시코 모두 유럽인 침입 이전의 고대 문화를 자국의 정체성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신대륙, 미지의 땅 발견, 이런 식의 용어는 쓰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말이 너무 어려워 쉽게 입에 익지가 않아 눈에 얼른 들어오지가 않지만 자꾸 접하다 보면 인지가 될 거라 생각하고 다른 관련 책을 읽어 봐야겠다.
가 보고 싶은 곳이 또 생겼다.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문화에 많은 관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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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고인이 된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영상물.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이게 제일 유명한 아이다 공연물이라고 한다.
이번에 메가박스에서 아이다를 관람한 후 다시 보려고 빌렸다.
극장에서 보는데 전날 당직 서느라 너무 피곤해서 1,2 막는 많이 졸았고 3막 때 아이다가 사랑과 조국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분에서 감정이 폭발해 굉장히 많이 울었다.
이번 영상물에서도 3막이 나는 제일 슬프고 클라이막스처럼 보였다.
귀에 익은 개선행진곡과 <이기고 돌아오라> <청아한 아이다> 가 나오는 1,2 막도 좋지만 3막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아이다에게 너무 많이 공감했다.
나는 아직도 오페라를 볼 때 음악의 좋고 나쁨 보다는 일단 스토리와 배역에 공감이 가야 집중을 한다.
여전히 오페라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고 할까?
왜 오페라가 처음에는 비극에서 시작했는지 알 것 같다.
나이가 드니까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그려지는 죽음이 굉장히 실감나게 다가와 예전에는 에이, 또 죽네 이랬는데 요즘에는 죽음에 이르는 그 고통과 슬픔의 시간들에 너무나 많이 공감하고 있다.
지난 번 토스카를 볼 때도 죽음으로 끝나는 두 연인의 운명이 무척이나 안타까웠는데 이번 오페라 역시 조국과 연인 사이에서 또 명예와 사랑 사이에서 고통받는 두 주인공의 운명이 안타까워 가슴이 뭉클했다.
국가의 중요성이 갈수록 떨어지는 시대에 살아서 그런지, 조국, 민족, 애국심 이런 거 운운하는 아이다의 아버지에게 잘 공감이 안 갔다.
딸의 사랑을 이용해 조국을 재건해 보려는 아디아의 아버지에게 분노했다.
갑자기 낙랑 공주가 생각났다.
아이다는 자명고를 찢지 못하고 라다메스를 파멸로 이끌고 만다.
그러나 그녀는 진실한 사랑이 이용당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결국 라다메스가 갇힌 석관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다.
진짜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사랑을 배반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것이다.
라다메스 역시 명예와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고 암네리스의 손길을 뿌리치고 죽음의 길을 걸어간다.
현대적으로 해석을 한다면 암네리스의 질투심과 고통에 초점을 맞춰도 인상적이지 않을까 싶다.
냉정하게 암네리스를 거부하는 라다메스가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을 끝까지 거부하고 죽음의 길로 가는 라다메스를 구하지 못하고 질투와 집착적인 사랑을 원망하는 암네리스가 나는 너무나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이 오페라는 단순히 사랑 얘기가 아니라 조국과 사랑, 민족과 개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캐릭터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나 싶다.
베르디의 심오한 철학이 느껴진다. 

아이다로 나온 마리아 키아라라는 소프라노의 카리스마가 굉장해서 불쌍한 노예처럼 보이지 않는다.
의상도 암네리스 못지 않게 화려하고.
메가박스에서 봤던 아이다는 뚱뚱한 암네리스 가수에게 완전히 밀리는 느낌이었는데.
비주얼은 이번 공연물이 훨씬 낫다.
사실 메가박스의 배역들은 처음 보는 오페라인데 다들 너무 뚱뚱해 몰입에 방해가 됐다,
역시 영상의 시대인가.
무대 셋트도 무척 화려하고 고향인 이탈리아에서 선 무대라 그런지 관객들의 환호성도 대단하다.
이미 고인이 된 저 유명한 파바로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눈시울이 시큰해진다.
삶과 죽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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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등정의 발자취 - 개정판
제이콥 브로노우스키 지음, 김은국. 김현숙 옮김, 송상용 감수 / 바다출판사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는 걸 알라딘을 통해 알게 됐다.
가격도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지고 보급판으로 나온 건가?
서점에서 한 번 확인해 봐야겠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아마도 한 4년 전인 것 같다.
분명히 읽고 감상문도 썼던 것 같은데 그 때는 알라딘 서재를 이용하지 않았는지 내 리뷰를 찾아보니까 안 올라와 있다.
한창 반신욕에 맛을 들일 때라 욕조에 들어가 물 튈까 조심조심 하면서 이 두꺼운 책을 넘겼던 기억이 난다.
다시 한 번 꼭 읽어야지, 너무 좋은 책이다 감탄했던 터라 늘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엊그제 <Discovery>에서 인간 진화에 대한 글을 읽고 흥미가 생겨 도서관에서 빌리게 됐다.
그런데 역시 두 번째는 감동이 옅어지는 모양이다.
굉장히 과학적이고 인간 진보의 역사를 연대기별로 잘 서술한 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열어보니 상당히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냄새가 많이 난다.
저자 서문에서 인간의 창의적인 정신, 도전정신, 상상력 등에 대한 것을 밝히고 싶다고 분명히 기술했고 TV에 방송됐다는 점이 쉽게 접근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깊이가 얕다는 느낌도 줬다.
대신 사진이 무척 화려하다.
맨 앞에 나오는 인간 진화에 관한 내용도 70년대 출판이라는 한계를 보여주듯, 업데이트가 부족하다.
다소 관념적이고 사변적이라는 느낌 때문에 계속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다.
다윈의 그 유명한 책, The Descent of Man, 인간의 기원을 패러디 하여 The Ascent of Man 인간의 등정, 어디까지 올라가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는 작명 센스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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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전을 찾아서 - 한국의 사상과 문화의 뿌리 이상의 도서관 1
임형택 지음 / 한길사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오래 전에 보관함에 담아뒀던 책인데 드디어 읽게 됐다.
마이리스트에 보고 싶은 책을 정리해 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알라딘 서재에 늘 고맙다.
잊고 있다가도 어느날 문득 리스트를 들여다 보면 좋은 책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반갑다.
이 책 역시 한참만에 읽게 된 책인데 안 읽고 지나쳤으면 정말 서운했을 뻔 하다.
700 페이지가 넘는 상당히 두꺼운 책이라 한번에 쭉 읽지는 못했지만 어려운 한자 부분은 넘어가면서 발췌독을 했더니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일이 워낙 많기 때문에 솔직히 지금은 정독을 어느 정도는 포기했다.
옛날에는 서문 한 글자라도 빼먹으면 책을 읽지 않은 기분이 들어 정말 책날개 광고까지 꼼꼼하게 다 읽었지만, 지금은 삶이 워낙 바쁘다 보니 욕심을 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대한다.
여러 방면에 호기심이 많고 다양한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부족한 시간과 맞물려 이제는 발췌독을 해도 마음이 편하고 그 책이 주는 지적 만족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됐다.
물론 아쉽긴 하다.
100% 인 책의 매력을 70% 정도만 느낀다고 할까?
나이가 든다는 건 어쩌면 삶의 많은 부분들을 포기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과를 선택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바로 한자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문과를 가서 공무원 시험을 봤더라면 훨씬 적성에 맞았을텐데 고등학교 때는 한자가 그렇게 싫었다.
그래서 복잡한 법전이나 행정법 읽는 시험 공부는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한자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부터일 것이다.
한자로 표기를 하면 뜻이 정확해지고 그 어원을 알 수 있어서 단어의 의미가 더욱 풍부해진다.
한자가 주는 조형미도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져 서예에도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최소한 생활한자라도 읽고 쓸 수 있게 되자고 옥편을 열심히 찾긴 하지만 사실 일상생활에서 크게 쓸 일이 없어서인지 잘 늘지가 않는다.
그래도 책을 보면서 익히게 되는 소득이 크다.
특히 이런 고전을 볼 때 도움을 많이 받는다.
한문에 좀 밝다면 한시의 매력에 빠질 수 있을텐데 그 점이 참 아쉽다.
한글로 풀어써 놓은 걸로는 그 시가 주는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끼기 어려운 듯 하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서구화로 생활이 바뀌면서 우리의 전통문화가 기억 속으로 사그러졌고 특히 한문학은 더더욱 찬밥 신세가 된 듯 해 안타깝다.
저자 역시 우리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고문학이 골동품 등에 비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함을 애닯아 하면서 옛 고전을 발굴해 내서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이렇게도 많은 책들이 전해져 내려왔나 싶을 만큼 정말 다양한 고전들이 많았다.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책이 대부분이라 생소하고 낯선 인물들과 제목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고 보면 조선왕조는 의궤와 실록으로 대표될 만큼 기록문화에 한 획을 그은 시대였는데 그 안에서 수많은 저작들이 꽃피웠음은 너무 당연하다.
한문학이 더이상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지나간 것으로 취급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문학들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본 바탕이 된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고전들은 보다 활발하게 연구가 되어야 하고, 또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교훈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책을 읽으면서 늘 부정적으로만 인식되었던 사대부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받게 됐다.
비록 사변적이고 교조적으로 변해 결국 새 시대의 사상으로 변모하는데는 실패했지만, 그저 당파싸움이나 일삼는 명분론자들로 치부하기에는 사대부들의 교양과 학식, 마음가짐, 도덕성 등이 너무나 크고 적어도 전통사회에서는 국난을 극복하고 왕조를 유지할 만큼 역량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탄력적 대응이 매우 아쉽기는 하지만 말이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면 관리가 곧 학자였고, 독서와 자기수양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던 시대이니 어찌보면 상당히 이상화 된 사회가 아니었을까?
비록 그것이 실제 생활이 생산력이나 사민평등 의식 등과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하여튼 이론적으로는 매우 이상적으로 보인다. 

다산 정약용만 문집을 많이 남긴 줄 알았는데 글깨나 한다는 학자들은 개인 문집을 꽤 많이 발간했던 것 같다.
후손들이 글을 모아 사후에 출간한 책들이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후기로 갈수록 영남 남인들이 정권에서 배제되면서 과거의 꿈을 접고 학문에 진력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이율곡이 구도장원을 했다고 해서 과거 합격하기가 쉬운 줄 알았더니 정말 이런 바늘 구멍이 없다.
일단 3년에 한 번 열린다는 것도 그렇고 (물론 이런저런 명목으로 많은 과거가 치뤄졌지만) 양반 사대부는 모두다 과거를 준비하는데 합격자는 단 서른 세 명이었으니 거기다가 후대로 올수록 서울의 권문세가 자제들만 합격하는 실정이었으니 얼마나 좁은 문이었을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임금이 내린 어사화를 꽂고 거리를 삼일 동안 유가한다는 전통이 왜 생겼는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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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2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marine 2009-12-22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적성에 안 맞게 그 쪽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정말 ㅇ님도 공대?? 역시 너무 뜻밖이네요^^
 
김정희 - 알기 쉽게 간추린 완당평전
유홍준 지음 / 학고재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정말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이상하게 우선순위가 밀렸던 책인데 드디어 빌렸다.
너무 신화화 돼있지 않나 이런 거부감 때문에 처음에는 일부러 관심을 안 가지려고 했었다.
그런데 책의 저자 유홍준씨가 쓴 <화인열전>을 읽고 나서 우리 옛 그림과 문인화에 대한 관심이 확 생겼고 필자에 대한 신뢰감 때문에 이 책을 선택하게 됐다.
얼핏 생각나는 것이, 원래 세 권으로 된 완당평전이었는데 오류가 있어 과오표가 따로 나오고 결국은 절판시켰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내 입장에서는 세 권을 한 권으로 줄였으니 일단 접하기는 쉬웠다.
또 처음에 겁먹었던 것과는 다르게 책의 서술이 무척 평이하다.
전문적이라기 보다는, 지극히 좋아하는 사람의 전기를 썼다고 할까?
말그대로 편하게 한 사람의 일생을 조망하는 평전이라고 생각된다.
완당을 너무 사모한 나머지 지극한 존경과 사랑을 뛰어넘어 적절한 비판까지 가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른 것 같다.
그래서 입체적으로 완당 선생의 일생을 그려내는데 성공했다는 생각이 든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비평 같은 건 내 수준에서는 모르겠고, 다만 조선 후기의 위대한 서예가의 일생을 이렇게 대중적인 책으로 돌아볼 수 있어서 기쁘다.
위인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 

조선시대 하면 성리학이 모든 학문의 근본이 된 어찌 보면 교조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위인들의 업적은 이순신 같은 무관이 아닌 이상 학문적 성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완당은 학문보다는 오히려 뛰어난 감식안과 글씨, 그림으로 한 시대를 아우르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 그 점에서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김홍도나 정선 등이 조선 회화사에 길이 남을 화가이면서도 사대부들 사이에서는 역시 한 수 아래로 치부됐던 느낌이, 김정희에게서는 느껴지지가 않는다.
노론 명문대가의 자손이었고 같은 처지였던 박지원과는 또다르게 대과에 급제해 참판 벼슬까지 했던 고위 관료였기 때문일까?
혹은 금석학이나 고증학이 실제 사대부들 사이에서 주류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일까?
어쩐지 이 분은 비주류였던 조선 시대 예술가들과는 다르게 주류로 인정을 받았다는 느낌이 든다.
북학파와는 또다른 느낌이 든다. 

김정희의 집안을 살펴보면, 정순왕후와 같은 경주김씨 일문으로 증조부가 영조의 사위되는 월성위 김한신이다.
월성위라면 영조가 사도세자와 더불어 매우 미워했다는 정빈 이씨 소생 화순옹주의 부마가 아닌가.
얼마나 싫어했으면 남편이 죽고 나자 열흘간 곡기를 끊고 순절했는데도 아비 먼저 간 효를 모르는 자식이라고 정려비도 세워주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이 가엾은 옹주의 정려비는 조카 정조가 세워줬다.
자식도 없이 죽은 월성위의 봉사손이 바로 김정희다.
김정희의 아버지 김노경은 벼슬이 육판서와 지방 관찰사 등을 두루 거쳤을만큼 잘 나가는 고위관료였다.
이 아버지를 따라 스물 네 살의 김정희는 연행길에 오른다.
이 곳에서 약 40일간 머무르면서 당대의 석학들과 교분을 맺는데 그의 일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연경행이었으나 이 때의 인연을 죽을 때까지 이어가고 장차 학문의 방향을 잡는데 큰 기여를 한다.
연경에서 만난 가장 중요한 이가 옹방장과 완원이다.
옹방장은 사고전서 편찬에도 관여했던 당대의 학자이자 최고의 감식안을 가진 컬렉터로 까마득하게 어린 이국의 청년을 애지중지 하여 평생 교류하였고 스승의 호인 담계를 보배롭게 받드는 집이라는 뜻으로 보담재라는 당호를 사용했을 정도로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옹방강의 손자 옹인달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김정희를 의부로까지 생각했다고 하니 그들의 교류가 얼마나 지극했는지 알 수 있다.
완원은 김정희에게 완당이라는 호를 하사한 학자이다.
김정희는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청나라의 최신 학문를 접하고 또 조선의 비문이나 고적들을 전해 준다.
아직 발간도 되지 않는 책을 먼 제주도 땅에 유배되어 있으면서도 사신행에 부쳐 달라고 부탁할만큼 김정희의 학문에 대한 욕심은 대단했다고 한다.
전화도 없고 자유롭게 왕래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보니 이들의 교류는 편지를 통해서 인편으로 전해졌는데 이를 매개한 이가 그의 제자들인 역관들이다.
특히 우선 이상적의 경우는 평생 열 세 번이나 연경행을 다니면서 스승의 편지를 전하고 필요한 책과 비문 등을 가져다 줬다.
제주도 유배 시절 제자의 지극한 정성에 감복하여 그려준 그림이 바로 그 유명한 세한도이다.
세한도를 받자 이상적은 다음 행차 때 중국으로 가져가 당대 청나라 학자들의 찬을 받아와 첩본으로 엮었다고 하니, 김정희의 명성이 과연 청나라에도 자자했구나 싶다. 

사실 저자는 입에 침이 마르게 그의 서체를 극찬하지만 글씨에 대해 문외한인 내 입장에서는 어떤 점이 특별한 것인지 제대로 감상하기가 어렵다.
다만 매우 개성적이라는 생각은 든다.
저자도 김정희 서체의 특성을 怪 라고 정의했다.
개성적이고 도발적이며 조형미가 느껴지는 글씨, 자유분방 하지만 그 속에서 안정감이 있고 품격이 높은 글씨, 전형적이지 않고 멋스러운 어찌 보면 매우 현대적인 느낌의 글씨?
서예 하면 그저 정자로 바르게 쓴 해서체가 제일 좋은 줄 아는 내 수준에서 김정희의 글씨를 논한다는 건 정말 어불성설이고 다만, 독창적이고 한자의 조형미를 잘 살렸다는 느낌은 든다.
이런 게 글씨를 보는 맛인가?
너무 반듯하게만 쓴 글씨는 재미가 없다.
김정희는 전한 시대의 비문에서 글씨의 원류를 찾았고 그래서 전서나 예서체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도장 파는 것도 좋아했던 모양이다.
못쓴 글씨는 다 김정희체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만큼 추사의 글씨는 매우 독특하고 개성적이라고 한다.
오히려 현대에 와서 더욱 평가받을 수 있지 않나 싶다.
나는 김정희가 심하게 비판했다는 원교 이광사의 반듯하면서도 부드럽게 쓰여진 글씨체가 보기 편하다.
워낙 글씨를 못쓰기 때문에 잘 쓴 글씨, 특히 붓으로 쓴 글씨에 대한 무한한 동경은 늘 갖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자신의 감정과 예술의 품격을 서체로 표현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해 보인다.
아무래도 붓글씨를 좀 써 봐야 서예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으려나 보다.
저자는 당의 구양순, 송의 소동파, 원의 조맹부,  명의 동기창에 이어 청을 대표하는 서예가로 김정희를 꼽고 있는데 과연 중국에서도 그렇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저자는 한국사 이래로 김정희 만큼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그 진가를 인정받은 학자가 없었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이 쓴 김정희론을 좀 더 읽어봐야겠다.
알기 쉽게 요즘의 정명훈이나 백남준 등에 비유를 하니 과연 국제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었구나 확실히 실감이 난다. 

정치적으로는 매우 불행해서 9년간 제주도 땅에서 귀양살이를 했고, 60 노구를 이끌고 북청에서도 1년의 유배생활을 했다.
순원왕후의 대리청정이 시작되면서 안동김씨의 공격으로 너무 잘 나갔던 아버지 김노경과 아들 김정희 부자가 정치적 공격을 받았던 것이다.
정말 긴 세월이다.
제주도에 있을 때는 문 밖을 나가지 못하는 위리안치 신세라 제주도 기행 한 번 못해 봤다고 한다.
그도 다산처럼 제주도에 유배되어 글씨에 일가견을 이룬다.
저자의 말대로 누가 부탁해서도 아니고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온전히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제자복이 많아 유배 시절에도 이상적이나 소치 허련, 소당 김석준, 요선 유치전 등이 스승을 모셔 완당 학파라는 거대한 학맥을 만들 수 있었다.
71세에 사망했으니 오늘날 기준으로 봐도 천수를 누린 셈이다.
첫번째 부인과는 열 다섯 살에 혼인했으나 스무 살에 사별하고, 재혼한 아내와는 매우 사이가 좋아 유배 기간에 주고받은 한글 편지들이 좋은 자료로 남아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자식은 없고 제주도에 귀양가 있는 동안 두 번째 아내마저 잃고 만다.
후세에도 부부의 연을 맺어 천리 떨어진 곳에서 내가 먼저 죽어 당신이 이 슬픔이 얼마나 큰지 느껴보라는 시가 가슴절절하다.
젊은 시절 관찰사로 나간 아버지에게 가 있으면서 집에 있는 아내가 답장이 없자 부끄러워서 못 보낸 거냐는 편지가 무척이나 정감어린다.
서자가 하나 있었는데 하나뿐인 혈육을 위해 동몽선습을 직접 써서 가르치기도 했다니 감식안이 뛰어난 만큼 마음씀도 퍽 애틋하고 정감있는 분이었을 것 같다.
제자였던 소치 허련과 희원 이한철이 그린 초상화를 보면 온화하고 넉넉해 보여 까다로운 예술가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귀하게 자라 세상풍파는 전혀 모를 것 같은 여유가 느껴지는 인상이다.
정치적 격변에 휩쓸린 장년 이후가 무척 안타깝고, 연경행 사신으로 발탁된 직후 탄핵을 받아 제주도로 유배됐을 때 연경에 가지 못함이 얼마나 안타까웠을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저자가 애정을 듬뿍 담아 쉽게 쓴 평전이라 마치 소설을 읽듯 한번에 쭉 읽었다.
김정희의 예술혼이나 학문적 성취 등을 논하기에는 내 주제가 함량미달이지만 인간적으로도 무척 매력있는 분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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