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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 알기 쉽게 간추린 완당평전
유홍준 지음 / 학고재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정말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이상하게 우선순위가 밀렸던 책인데 드디어 빌렸다.
너무 신화화 돼있지 않나 이런 거부감 때문에 처음에는 일부러 관심을 안 가지려고 했었다.
그런데 책의 저자 유홍준씨가 쓴 <화인열전>을 읽고 나서 우리 옛 그림과 문인화에 대한 관심이 확 생겼고 필자에 대한 신뢰감 때문에 이 책을 선택하게 됐다.
얼핏 생각나는 것이, 원래 세 권으로 된 완당평전이었는데 오류가 있어 과오표가 따로 나오고 결국은 절판시켰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내 입장에서는 세 권을 한 권으로 줄였으니 일단 접하기는 쉬웠다.
또 처음에 겁먹었던 것과는 다르게 책의 서술이 무척 평이하다.
전문적이라기 보다는, 지극히 좋아하는 사람의 전기를 썼다고 할까?
말그대로 편하게 한 사람의 일생을 조망하는 평전이라고 생각된다.
완당을 너무 사모한 나머지 지극한 존경과 사랑을 뛰어넘어 적절한 비판까지 가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른 것 같다.
그래서 입체적으로 완당 선생의 일생을 그려내는데 성공했다는 생각이 든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비평 같은 건 내 수준에서는 모르겠고, 다만 조선 후기의 위대한 서예가의 일생을 이렇게 대중적인 책으로 돌아볼 수 있어서 기쁘다.
위인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
조선시대 하면 성리학이 모든 학문의 근본이 된 어찌 보면 교조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위인들의 업적은 이순신 같은 무관이 아닌 이상 학문적 성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완당은 학문보다는 오히려 뛰어난 감식안과 글씨, 그림으로 한 시대를 아우르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 그 점에서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김홍도나 정선 등이 조선 회화사에 길이 남을 화가이면서도 사대부들 사이에서는 역시 한 수 아래로 치부됐던 느낌이, 김정희에게서는 느껴지지가 않는다.
노론 명문대가의 자손이었고 같은 처지였던 박지원과는 또다르게 대과에 급제해 참판 벼슬까지 했던 고위 관료였기 때문일까?
혹은 금석학이나 고증학이 실제 사대부들 사이에서 주류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일까?
어쩐지 이 분은 비주류였던 조선 시대 예술가들과는 다르게 주류로 인정을 받았다는 느낌이 든다.
북학파와는 또다른 느낌이 든다.
김정희의 집안을 살펴보면, 정순왕후와 같은 경주김씨 일문으로 증조부가 영조의 사위되는 월성위 김한신이다.
월성위라면 영조가 사도세자와 더불어 매우 미워했다는 정빈 이씨 소생 화순옹주의 부마가 아닌가.
얼마나 싫어했으면 남편이 죽고 나자 열흘간 곡기를 끊고 순절했는데도 아비 먼저 간 효를 모르는 자식이라고 정려비도 세워주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이 가엾은 옹주의 정려비는 조카 정조가 세워줬다.
자식도 없이 죽은 월성위의 봉사손이 바로 김정희다.
김정희의 아버지 김노경은 벼슬이 육판서와 지방 관찰사 등을 두루 거쳤을만큼 잘 나가는 고위관료였다.
이 아버지를 따라 스물 네 살의 김정희는 연행길에 오른다.
이 곳에서 약 40일간 머무르면서 당대의 석학들과 교분을 맺는데 그의 일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연경행이었으나 이 때의 인연을 죽을 때까지 이어가고 장차 학문의 방향을 잡는데 큰 기여를 한다.
연경에서 만난 가장 중요한 이가 옹방장과 완원이다.
옹방장은 사고전서 편찬에도 관여했던 당대의 학자이자 최고의 감식안을 가진 컬렉터로 까마득하게 어린 이국의 청년을 애지중지 하여 평생 교류하였고 스승의 호인 담계를 보배롭게 받드는 집이라는 뜻으로 보담재라는 당호를 사용했을 정도로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옹방강의 손자 옹인달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김정희를 의부로까지 생각했다고 하니 그들의 교류가 얼마나 지극했는지 알 수 있다.
완원은 김정희에게 완당이라는 호를 하사한 학자이다.
김정희는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청나라의 최신 학문를 접하고 또 조선의 비문이나 고적들을 전해 준다.
아직 발간도 되지 않는 책을 먼 제주도 땅에 유배되어 있으면서도 사신행에 부쳐 달라고 부탁할만큼 김정희의 학문에 대한 욕심은 대단했다고 한다.
전화도 없고 자유롭게 왕래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보니 이들의 교류는 편지를 통해서 인편으로 전해졌는데 이를 매개한 이가 그의 제자들인 역관들이다.
특히 우선 이상적의 경우는 평생 열 세 번이나 연경행을 다니면서 스승의 편지를 전하고 필요한 책과 비문 등을 가져다 줬다.
제주도 유배 시절 제자의 지극한 정성에 감복하여 그려준 그림이 바로 그 유명한 세한도이다.
세한도를 받자 이상적은 다음 행차 때 중국으로 가져가 당대 청나라 학자들의 찬을 받아와 첩본으로 엮었다고 하니, 김정희의 명성이 과연 청나라에도 자자했구나 싶다.
사실 저자는 입에 침이 마르게 그의 서체를 극찬하지만 글씨에 대해 문외한인 내 입장에서는 어떤 점이 특별한 것인지 제대로 감상하기가 어렵다.
다만 매우 개성적이라는 생각은 든다.
저자도 김정희 서체의 특성을 怪 라고 정의했다.
개성적이고 도발적이며 조형미가 느껴지는 글씨, 자유분방 하지만 그 속에서 안정감이 있고 품격이 높은 글씨, 전형적이지 않고 멋스러운 어찌 보면 매우 현대적인 느낌의 글씨?
서예 하면 그저 정자로 바르게 쓴 해서체가 제일 좋은 줄 아는 내 수준에서 김정희의 글씨를 논한다는 건 정말 어불성설이고 다만, 독창적이고 한자의 조형미를 잘 살렸다는 느낌은 든다.
이런 게 글씨를 보는 맛인가?
너무 반듯하게만 쓴 글씨는 재미가 없다.
김정희는 전한 시대의 비문에서 글씨의 원류를 찾았고 그래서 전서나 예서체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도장 파는 것도 좋아했던 모양이다.
못쓴 글씨는 다 김정희체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만큼 추사의 글씨는 매우 독특하고 개성적이라고 한다.
오히려 현대에 와서 더욱 평가받을 수 있지 않나 싶다.
나는 김정희가 심하게 비판했다는 원교 이광사의 반듯하면서도 부드럽게 쓰여진 글씨체가 보기 편하다.
워낙 글씨를 못쓰기 때문에 잘 쓴 글씨, 특히 붓으로 쓴 글씨에 대한 무한한 동경은 늘 갖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자신의 감정과 예술의 품격을 서체로 표현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해 보인다.
아무래도 붓글씨를 좀 써 봐야 서예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으려나 보다.
저자는 당의 구양순, 송의 소동파, 원의 조맹부, 명의 동기창에 이어 청을 대표하는 서예가로 김정희를 꼽고 있는데 과연 중국에서도 그렇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저자는 한국사 이래로 김정희 만큼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그 진가를 인정받은 학자가 없었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이 쓴 김정희론을 좀 더 읽어봐야겠다.
알기 쉽게 요즘의 정명훈이나 백남준 등에 비유를 하니 과연 국제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었구나 확실히 실감이 난다.
정치적으로는 매우 불행해서 9년간 제주도 땅에서 귀양살이를 했고, 60 노구를 이끌고 북청에서도 1년의 유배생활을 했다.
순원왕후의 대리청정이 시작되면서 안동김씨의 공격으로 너무 잘 나갔던 아버지 김노경과 아들 김정희 부자가 정치적 공격을 받았던 것이다.
정말 긴 세월이다.
제주도에 있을 때는 문 밖을 나가지 못하는 위리안치 신세라 제주도 기행 한 번 못해 봤다고 한다.
그도 다산처럼 제주도에 유배되어 글씨에 일가견을 이룬다.
저자의 말대로 누가 부탁해서도 아니고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온전히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제자복이 많아 유배 시절에도 이상적이나 소치 허련, 소당 김석준, 요선 유치전 등이 스승을 모셔 완당 학파라는 거대한 학맥을 만들 수 있었다.
71세에 사망했으니 오늘날 기준으로 봐도 천수를 누린 셈이다.
첫번째 부인과는 열 다섯 살에 혼인했으나 스무 살에 사별하고, 재혼한 아내와는 매우 사이가 좋아 유배 기간에 주고받은 한글 편지들이 좋은 자료로 남아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자식은 없고 제주도에 귀양가 있는 동안 두 번째 아내마저 잃고 만다.
후세에도 부부의 연을 맺어 천리 떨어진 곳에서 내가 먼저 죽어 당신이 이 슬픔이 얼마나 큰지 느껴보라는 시가 가슴절절하다.
젊은 시절 관찰사로 나간 아버지에게 가 있으면서 집에 있는 아내가 답장이 없자 부끄러워서 못 보낸 거냐는 편지가 무척이나 정감어린다.
서자가 하나 있었는데 하나뿐인 혈육을 위해 동몽선습을 직접 써서 가르치기도 했다니 감식안이 뛰어난 만큼 마음씀도 퍽 애틋하고 정감있는 분이었을 것 같다.
제자였던 소치 허련과 희원 이한철이 그린 초상화를 보면 온화하고 넉넉해 보여 까다로운 예술가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귀하게 자라 세상풍파는 전혀 모를 것 같은 여유가 느껴지는 인상이다.
정치적 격변에 휩쓸린 장년 이후가 무척 안타깝고, 연경행 사신으로 발탁된 직후 탄핵을 받아 제주도로 유배됐을 때 연경에 가지 못함이 얼마나 안타까웠을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저자가 애정을 듬뿍 담아 쉽게 쓴 평전이라 마치 소설을 읽듯 한번에 쭉 읽었다.
김정희의 예술혼이나 학문적 성취 등을 논하기에는 내 주제가 함량미달이지만 인간적으로도 무척 매력있는 분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