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Discovery!
브라이언 M. 페이건 지음, 이희준 옮김 / 사회평론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이 막 나왔을 때 서점에서 비닐에 싸여진 책을 보고 너무 읽고 싶어 도서관에 신청했던 생각이 난다.
신간이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았는데도 바빠서 읽어야지, 벼르고만 있다가 막상 도서관에 가면 너무 큰 사이즈 때문에 빌리기를 주저하다가 드디어 대출을 하고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사진이 굉장히 화려하고 최근 발굴 성과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또 실제로 발굴을 지도한 학자들이 직접 한 챕터씩 기술을 해서 생생한 발굴 현장 이야기를 최신으로 들을 수 있다.
흥미진진한 고고학적 성과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낭만적 고고학 산책> 같은 옛 탐사 이야기 보다 소재 면에서는 더 흥미로운 것 같다.
다만 국내에 덜 알려진 이야기들은 생소함 때문에 처음부터 집중이 잘 되지는 않았다.
관심사가 적은 부분은 아무래도 쉽게 빠지지가 못했는데 (영국의 고대 도시나 켈트 유적지 같은 것) 대신 인터넷을 이용해 기사를 검색하니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고 배경지식이 쌓이니까 금방 흥미를 찾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18세기 말 바운티 호의 반란을 해결하기 위해 출항한 판도라 호가 좌초되어 호주 박물팀에 의해 인양된 얘기가 있는데 바운티 호가 대체 뭔지를 모르니 이 배 발견이 왜 이슈가 되는지도 모르는 식이다.
그런데 인터넷을 찾아 보니 서양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사건으로, 아카데미 영화로도 만들어져 작품상을 받는 등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라고 한다.
그래서 판도라 호 발굴팀은 이 배의 인양을 계기로 마치 신안 해저선 발굴 때처럼 박물관까지 지을 계획이라고 한다.
남북전쟁 최초의 침몰 잠수함인 헌리호 발굴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사람들에게는 이슈이겠으나 나는 남북전쟁 때 잠수함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처음 알아서, 대체 이게 왜 유명한 사건이 되는지 몰랐다.
역시 인터넷을 찾아 보니 영화로 만들어졌을 만큼 대단한 사건이었고 남측 잠수함인데 어뢰 공격을 성공시킨 후 배에 문제가 생겨 여덟 명의 선원이 전원 사망했다고 한다.
이래서 인터넷이 좋은 것 같다.
특히 구글을 참조하면 어지간한 정보는 다 얻을 수 있고, 한글 대신 영어를 입력하면 더욱 다양한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그래서 번역책들은 꼭 고유명사의 원어 표기를 꼭 해 주면 좋겠다.
이것저것 인터넷에서 찾다 보면 집중도가 떨어져 진도가 잘 안 나가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이 책처럼 배경지식이 약한 경우는 흥미 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
영국의 스톤헨지는 오히려 인터넷에서 더 최신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2009년 9월 기사가 있었다.
이 책에는 스톤헨지처럼 거석이 빙 둘러 있으면서 주위로 도랑을 판 헨지가 있는 스탠튼 드루를 소개한다.
이 발굴을 주도한 교수팀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스톤헨지는 종교적 제의의 장소가 아니라 부족장의 무덤이라고 한다.
책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신전이다, 태양의 움직임을 측정하기 위한 천문학적 장치다 의견이 분분했는데 스톤헨지 주변에서 마을 유적지가 발굴되고 스톤헨지에서 유골이 여러 점 수습됐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스톤헨지는 고인돌과 같은 맥락에 속하는 모양이다.
지금으로부터 5000여 년 전의 무덤으로 60여 톤이 넘는 이 거대한 청석은, 무려 240km 나 떨어진 곳에서 끌고 왔다고 하니, 부족장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짐작이 간다.
해양 고고학의 발굴도 도굴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의미가 크다.
곳디오라는 프랑스의 학자가 주도한 팀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부근에 침몰된 고대 도시, 헤라클레이온과 카노포스 등을 발굴했다.
이 기사 역시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집트에서는 이 해저 도시 발굴을 기념하여 박물관을 짓고 바닷속에서 끌어 올린 거대한 석상들을 순회 전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비잔틴 제국의 주화가 다량 발견된 것으로 보아 적어도 9세기 말까지는 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재밌는 것은 이 도시가 이집트 역사에 특별히 기록되지 않고 다만 그리스 여행기에만 등장했기 때문에 전설상의 도시로 치부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헤라클레스에게 봉헌된 이 고대 도시는 바다 밑에서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를 보여 준다.
해저에서 잠수부가 거대한 석상과 마주하는 사진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은 맨 첫 장인 인류의 기원이다.
대체 인간은 어떻게 진화해 왔을까?
창조론자들은 잃어버린 고리 운운하며 인간의 진화를 부정하는데 현대 발굴 성과를 보면 그 고리들을 찾아 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 부분은 감이 잘 안 잡혀 이해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
인간의 조상은 막연히 루시라고 대표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 여성 유골은 370만년 전 쯤 존재했던 호미닌으로, 약 450만년 전에 직립보행을 했던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가 발굴되면서 더 윗대 조상이 밝혀졌다.
1994년에 에티오피아에서 발굴된 이 얇은 턱뼈는 머리를 앞으로 내민 유인원과는 달리, 척추 위에 머리를 곧추 세운 형태였고 15년의 연구 끝에 공식적으로 발표되어 올해 최고의 과학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역시 인터넷에서 알게 된 기사다.
루시, 즉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와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를 연결하는 고리가 바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나멘시스다.
약 430만년 전에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르디피테쿠스에 속하는 더 오래된 종인 카답파는 약 580만년 전에 살았다고 한다.
그 외에 다른 호미닌으로는, 600만년 전의 오로린 투게넨시스, 700만년 전의 사엘란트로푸스 차덴시스 등이 있다.
막연히 인간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 하빌리스, 에렉투스를 거쳐 사피엔스로 진화했다고 생각했는데 진화의 계보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여러 계통을 거쳐 오늘날의 현생 인류가 탄생했다.
그러니까 침팬지와 인간의 공통 조상, 그 다음에 침팬지, 인간 이게 아니라 현생 인류가 태어나기까지 네안데르탈인 등이 사라져 가는 등 많은 수의 다양한 종이 나타나고 사라짐을 반복했던 것이다.
우리 인간의 계통수는, 영장목 호미니드과, 호미닌족, 호모속 인간종이다.
사실 이 族 이라는 분류는 처음 알았다.
내가 생물학 배울 때는 못 듣던 용어 같은데.
침팬지는 영장목 호미니드과 팬속 침팬지종이고, 고릴라나 오랑우탄은 모두 호미닌족에 속하지 않는다. 호미니드과에서 각각 다른 길을 걸었는데 책에서는 그 시기를 약 1200~900만년 전으로 보고 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아프리카 단일기원설에 대한 의문이다.
이 사실 역시 책에 실린 그루지야의 드마니시 발굴팀이 최근 발표한 내용을 인터넷에서 알게 됐다.
91년에 드마니시라는 곳에서 뼈무덤이 발견됐는데 여기서 나온 두개골이 호모 에렉투스의 가장 이른 형태를 띠고 약 180만년 전의 연대를 갖는다고 한다.
이 두개골은 아프리카의 호모 에렉투스 보다 더 이른 시기의 것으로 그 윗대인 호모 하빌리스와도 비슷해 하빌리스와 에렉투스를 잇는 고리로 여겨진다.
책에서는 여전히 아프리카 단일 기원설을 지지하고 있지만, 최근 이 팀이 발표한 것에 따르면 200만년 전에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에서 발생해 150만년 전에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는 통설과는 달리, 이들은 유럽과 아시아 등지에서 각자 진화했고 나중에 다시 아프리카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다기원설의 증거가 된 셈이다.
정말 놀라운 사실들이 아닌가.
내가 죽을 때쯤 되면 인간의 진화 과정이 좀 더 정교하게 서술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신문도 열심히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외에도 잉카나 마야의 인신제의 장소인 달의 피라미드, 그 안의 냉동 미라들, 아리시아 왕비들의 무덤, 이집트 황금 계곡의 1만여 미이라들, 피라미드 옆의 인부들 숙소 등 흥미로운 발굴들이 펼쳐진다.
특히 페루의 안데스 지역 모체 문영이나 잉카 문명 등은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전시회를 다녀와서인지 더 재밌었다.
도시화로 유적들이 손상되고 도굴품이 마치 마약 밀거래처럼 성황을 이루고 있지만 (저자는 특히 이라크 박물관 약탈을 가슴아파 한다) 과학의 발달로 고고학도 이제 최첨단의 분석 기술을 적용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작은 유물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런 만큼 유물의 보존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