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설 - 상 Mr. Know 세계문학 48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송태욱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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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정말 너무너무 재밌다는 말로 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 책.
일본 소설은 왠지 조잡스러운 느낌이 들어 (이를테면 요시모토 바나나처럼) 잘 안 읽게 되는데 일단 표지가 예쁘고, 일본의 대표적 작가라고 하고, 리뷰가 좋아서 빌리게 됐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간만에 정말 몰두해서 빠져들고 있다.
사실 분량이 꽤 되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다.
작가의 말대로 쉬운 문체로 되어 있으면서도 격이 떨어지지 않는 정말 괜찮은 소설이다.
마치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을 보는 것 같다.
그 책은 19세기 영국 상류층 관습에 너무 무지해 공감이 영 안 됐는데 오히려 <세설>은 가까운 일본의 풍속을 그린 소설이라 그런지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간혹 반도의 부인들 이야기가 나와 식민 치하의 조선 백성들이 생각나 소설 내용과는 상관없이 콧망울이 시큰해질 때도 있긴 했다.
괜한 비교가 되곤 했다.
20세기 초의 일본은 이렇게 잘 사는데, 이렇게 여유있게 문명의 혜택을 누리면서 온갖 문화적 기술적 혜택을 누리고 사는데 한반도의 조선인들은 식민 치하의 통치에 시달리며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았던가.
소설에서 딱히 식민지 현실을 언급하는 것도 아닌데 가끔 등장하는 반도인들 이야기가, 부유한 상류층인 주인공들의 삶과 비교되어 괜시리 마음이 아팠다.
나는 민족주의자가 아니라고 늘 생각하는데도 이런 부분에서 울컥 한다.
일본에 대한 적개심, 반발심 이런 건 없는데도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고 뒤쳐져서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 우리 조상들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이광수 등이 쓴 신소설을 읽어보면 20세기 초의 우리 옛 모습이 이렇게 잘 그려졌을까?
워낙 소설을 안 읽는 편이라 우리 근대 소설도 거의 못 봤는데 문득 <무정>이나 <유정> 같은 소설들이 보고 싶어진다.
풍속소설이 이렇게도 재밌는지 처음 알았다.
얼마 전에 읽은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정말 힘들게 의무감으로 읽었는데, 이 소설은 일반 대중에게 전혀 어렵지 않으면서도 소설의 품격은 매우 고상하다.
쉬운 문체로도 훌륭한 글을 쓸 수 있음을 보여 준다고 할까?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같은 소설도 꼭 읽어 봐야겠다. 

쓰루코와 사치코, 유키코, 다에코 네 자매의 이야기가 밑의 두 자매의 혼담과 맞물려 펼쳐진다.
특이한 것은 양자 제도였다.
딸만 넷인 아버지는 큰 사위와 작은 사위를 양자로 들여 가문을 이어간다.
양자라고 하면 성을 바꾸는 것일텐데 사위들이 그것도 두 명이나 양자로 간다는 게 신선한 풍속이었다.
몰락한 상류층으로 나오긴 하지만 가문의 전통이나 품격은 가지고 있는 이 집안의 네 자매들의 생활방식이 참 흥미진진하다.
마치 사라져 버린 우리 양반 가문을 보는 느낌이랄까?
집에 애 보는 식모와 밥 하는 하인들이 따로 있는 것도 신기하고 신분제가 폐쇄됐는데도 여전히 도련님, 아가씨 하는 계급 시대의 유산도 보인다.
가부키가 굉장히 중요한 문화 행사로 나온다.
막내 다에코가 가장 다이나믹한 여성인데, 인형 제작에 흥미가 있고 전통춤도 잘 추며, 양재일로 직업까지 가지려고 한다.
직업부인이 되는 것은 가난한 여자들이나 하는 천박한 일로 취급하는 분위기에서 시대를 느낄 수가 있었다.
다에코는 놀랍게도 신분이 다른 사진사와 결혼을 하려고 한다.
원래 그녀는 비슷한 신분의 오쿠바타케와 도망을 쳐서 지역신문에 날 정도였는데, 오쿠바타케네 집 하인이었던 이타쿠라를 좋아하게 된다.
물난리가 났을 때 사진사였던 이타쿠라가 그녀를 구해 준 것이 계기가 되어, 부잣집 도련님이지만 게이샤와의 사이에서 애까지 낳은 난봉꾼에다가 멋만 부릴 줄 알지 생활 능력은 없는 오쿠바타게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미국까지 가서 사진 기술을 배워 온 믿음직한 이타쿠라와 결혼하려고 결심하는 모습에서 다에코의 현대성을 느낀다.
언니 유키고는 나이가 서른이 넘었지만 가문에 걸맞는 남자를 찾기 위해 아직도 선을 보러 다니는데 동생 다에코는 직접 인형 제작으로 전시회도 열고 돈도 벌고 심지어 프랑스까지 양재 기술을 배우러 갈 계획도 세울 만큼 대찬 구석이 있다.
두 자매의 가치관과 행동들이 비교되어 무척 흥미롭다.
뜻밖에도 신분의 차를 넘어 결혼을 결심한 다에코 때문에 집안은 난리가 나는데서 1권이 끝난다.
지하철에서 조금씩 읽고 있는데 너무 재밌어 내릴 곳을 잊곤 한다.
잠깐 본 하권의 첫 장에서 이타쿠라가 유양돌기염 수술을 하다가 정신을 잃는 것으로 나와 급하게 다에코가 도쿄를 떠나는 걸로 되어 있던데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유키코는 좋은 혼처를 찾을 수 있을까?
유산했던 사치코는 다시 애를 가질 수 있을까? 
일일 드라마로 만들어져도 굉장히 재밌을 것 같다. 

더 인상깊었던 것은 오사카의 지방 문화였다.
여기 나온 간사이 지방이 어디인지 잘 모르겠지만 수도 도쿄와는 전혀 다른 지역색이 강한 곳 같다.
모든 게 수도 중심인 나라에 살다 보니, 지방색 강한 이런 문화는 낯설고 신선해 보인다.
자매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간사이 지방을 굉장히 사랑하고 저자 역시 애정어린 눈으로 간사이 문화를 기술한다.
남자면서도 어쩜 이렇게 여성들의 이야기를 오밀조밀하게 풀어 쓰는지.
일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보다는 훨씬 더 재밌게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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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의 그림과 생애
야콥 부르크하르트 지음, 최승규 옮김 / 한명출판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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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화가, 루벤스.
뒤러처럼 정교하고 세밀한 화풍도 좋지만, 루벤스처럼 격정적이고 화려한 색감도 정말 좋아한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렘브란트의 명상적이고 고요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바로크의 대가.
도서관에서 다른 책을 찾다가 우연히 눈에 띄어서 읽게 됐다.
계획에 없던 책들은 한 번 지나치면 그만이기 때문에 벌써 읽고 싶은 책들이 많이 밀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당장 빌리게 됐다.
그러고 보니 역자의 서문대로 루벤스에 대한 본격적인 평전은 못 본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솔직히 번역이 실망스럽다.
앞에 역자 서문은 거창하게 써놓고서 어쩌면 이렇게 성의없는 번역을 했는지...
맞춤법이 틀린 건 기본이고 고유명사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용어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직역했다는 느낌을 받아 독자에게 불친절하게 느껴졌다.
이를테면 mannerist 를 만네리스트, 이런 식으로 번역한 것이다.
그럴 거면 원어를 써 주던가.
그리고 수많은 그림 제목들이 등장하는데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같은 책에서 다른 말로 번역이 되어 있다.
적어도 도판에 실린 그림들이라도 영어 제목을 써 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책에 실리지 않은 그림들이 워낙 많아서 구글에서 좀 찾아볼까 했는데 중구난방식의 한글 제목으로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정말 좋아하는 화가이고 루벤스의 그림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는데 아쉽기 짝이 없다.
사실 이 책의 성격도 독자에게 썩 친절하지는 않다.
본격적인 학술서라기 보다는 서문에 밝힌대로 좋아하는 화가에 대한 담론 수준이기 때문에 화가의 그림에 대한 저자의 감상들을 특별한 차례없이 편하게 언급하는 방식을 썼기 때문에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저자 역시 생전에 출간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또 저자는 본격적인 미술사학자라기 보다는 르네상스 시대 전문가였다고 한다.
제일 문제는 엄청나게 많은 제목들이 등장하는데 (루벤스의 중요한 그림들은 거의 다 나오는 것 같다) 도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어떤 그림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는데 그 그림이 뭔지를 모르니 구도나 명암 처리 등을 순전히 말로 상상해야 한다.
요즘은 인터넷이 워낙 발달해서 제대로 된 원어 제목만 첨가를 해 줬더라도 검색해서 보면 됐을텐데 역자의 성의가 참 아쉽다.
품절이 된 것 같은데 다른 출판사에서 꼼꼼한 역자가 도판 추가를 좀 더 많이 해서 재출간 하면 어떨까 싶다.
어차피 루벤스에 대한 연구서가 많지도 않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 스타일과 시대상황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게 된 좋은 시간이었다.
특히 수직 구도나 이등변 삼각형 구도 같은 건 지금까지 미술 서적들을 읽으면서 한번도 꼼꼼하게 본 적이 없었는데 저자의 세밀한 설명을 들으면서 비로소 구도에 눈을 뜬 느낌이 든다.
루벤스가 추구하고자 했던 대칭 구도, 명암대비, 빛 처리 등을 보면 정말 서술화의 대가구나 싶다.
표지에도 나오며는 그림이지만 <레우키포스 딸의 납치> 를 보면 제우스의 두 아들들에게 납치당하는 그 찰나의 순간을 어쩌면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역동적으로 잘 잡아냈는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두 여인은 서로 다른 부위를 보여줌으로써 완벽한 대칭구도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다른 책에서도 많이 소개된 루벤스의 대표작 중 하나다.
역시 많이 알려진 첫번째 아내와의 초상화가 있는데 뜻밖에도 이 그림은 루벤스의 작품이 아니라 동료인 코르넬리스 데 보스의 작품이라고 한다. 

 

검색을 해 보니 루벤스 작품으로 나오는데 말이다.
도판이 더 밝은 톤으로 실려 훨씬 매혹적이다.
젊은 시절의 잘 나가던 최고의 예술가와, 그의 아름다운 첫번째 아내 이사벨라 브란트의 호화로운 옷장식이 인상적이다.
만년의 자화상도 무척 인상깊다. 

 

대가다운 아우라가 느껴지고 자화상이라 그런지 렘브란트의 자화상처럼 어딘지 모르게 엄숙하고 자신의 예술혼을 경건하게 표현한 느낌이 든다.
오른손의 장갑은 통풍이 있어 가리기 위해 낀 것이라고 한다.
말년에 이 통풍이 심장으로까지 퍼져 사망했다고 하는데 의학적인 설명은 아닌 것 같아 나중에 찾아 볼 생각이다. 
그의 축복받은 생을 서술할 때 빠질 수 없는 두 번째 아내 헬레나 푸르망의 초상화도 매혹적이다. 

 

50대의 나이에 17세의 헬레나 푸르망과 결혼한 이 복많은 화가는, 첫 아내의 유언 때문에 헨드리케와 정식 혼례를 올리지 못하고 동거 상태로 지내야 했던 불운한 렘브란트와는 달리, 영국의 찰스 1세에게 기사 작위도 받고 외교관으로 종횡무진 하면서 재산도 지키고 어린 아내와의 사이엑 아들딸도 낳아 행복한 말년을 보낸다.
렘브란트의 불운한 말년과 비교하는 건 어쩐지 점잖지 못한 호사가들의 행동같아 썩 내키지는 않지만, 적어도 두 화가의 극명한 화풍의 차이는 삶과도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무엇보다 저자가 지적한대로 루벤스는 말년으로 갈수록 원숙미가 더해져 창작력의 후퇴가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티치아노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도 70대의 노년에 그린 자화상과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 같은 후기작들을 보면서 역시 대가답다, 말년으로 갈수록 더욱 원숙해지는구나 감탄했었는데 루벤스 역시 그렇다.
잘 알려진 마리 드 메디치의 연작은 워낙 구성이 다이나믹하고 화려해서 약간은 거부감이 들기도 하는데 덕분에 이 유명한 여인은 미술사에서도 불멸의 명성을 얻게 된 듯 하다. 

 

루벤스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육체가 풍만하고 살결이 곱고 금발 머리다.
역동적인 제스쳐에 걸맞는 풍만한 몸매를 자랑한다.
그러고 보니 데이빗 호크니가 쓴 <명화의 비밀>을 보면 앵그르 등은 도구를 이용해 정교한 드로잉을 했던 반면 루벤스는 도구의 도움없이 순전히 자신의 눈에 의존해 인물을 묘사했다고 한다.
그 책을 보고 나서 더욱 루벤스를 좋아하게 됐었던 기억이 난다. 

이 놀라운 앤트로프의 화가는 정말 많은 작품들을 남겼고 63세에 사망하긴 했지만 당시로 보면 아주 이른 죽음은 아니었으며 외교관 등으로 여러 왕실 사람들과 교제하는 유명인사였고 가정사적으로도 행복했으니 부러울 것 없는 삶이었다고 생각된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역동적이고 삶의 의지가 넘치는 힘있는 분위기는 축복받은 삶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과장되고 격정적인 양식인 바로크 시대와 작가의 스타일이 맞아 떨어져 최고의 에너지를 발산한 게 아니었을까.
이 책은 나에게는 다소 어려웠던지라 100% 다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루벤스의 작품들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저자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다.
찬찬히 하나의 작품을 설명해 주는 책들을 좀 더 읽어 본 다음에 다시 한 번 시도해 보고 싶다.
어쨌든 바로크의 위대한 화가의 작품 세계를 밀도있게 보여 준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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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그들 역사의 이방인들 - 섞임과 넘나듦 그 공존의 민족사 너머의 역사책 1
이희근 지음 / 너머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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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확실히 다문화주의가 대세인 모양이다.
외국인 노동자들과 국제결혼으로 인해 외국인 비율이 전체 인구의 2%를 넘었다고 한다.
더 이상 단일민족국가라는 말을 써서는 안 되는 상황이 왔다.
단일민족국가라는 말은 차별적인 언어가 돼버렸다.
저자는 우리 역사에서 타 민족과의 동화가 결코 낯설지 않은 오래된 전통이었음을 보여준다.
대륙의 끝자락에 붙어 상당히 고립된 생활을 유지해 왔기 때문에 순혈주의가 가능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상식을 깨는 사례들이 의외로 많았다.
이를테면 여진인이나 거란인, 몽골인들이 고려 시대 이래로 귀화하면서 백정 계층으로 편입됐다는 예가 그렇다.
그러고 보면 거란이나 여진인은 북쪽 국경을 맞닿으면서 유목 생활을 했던 민족이니 고래로 교류가 활발했고 특히 여진 같은 경우는 조선 건국 때 이성계를 도와 종묘의 배향공신으로까지 책봉될 만큼 큰 공을 세운 이지란으로 대표되는 친위 세력이 있었고, 몽골인 역시 원의 간섭기 때 고려의 다섯 국왕이 몽골인 공주들을 아내로 맞았으니 함께 들어온 몽골인 집단이 상당했을 것이다.
이들은 유랑 생활의 생활방식을 고수하여 농토에 정착하지 못하고 도축업을 하는 백정이나, 가죽을 손질하는 갖바치, 기예를 파는 재인 등으로 분류되어졌다.
그러고 보면 같은 평민 계층에서까지 백안시 됐던 백정의 기원이 타민족, 일종의 오랑캐였다는 게 이해가 된다. 

이들 외에도 명청 교체기 때 가도에 진을 친 모문룡을 따라 수십만의 중국인들이 난민으로 몰려 왔고, 임진왜란 때 일본 군사들도 많이 귀화했다고 한다.
또 신라 시대 아랍인들과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흥덕왕 무덤 주위에 호종하는 무인상으로 서역인들이 세워질만큼 무슬림들의 정착도 활발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이들의 인구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또 전통 사회에 얼만큼의 영향력을 가졌는지는 모두 추정치로 일종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 면도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훨씬 더 전통 사회가 외부에 대해 열려 있었고 교류와 이주가 활발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비주류의 이야기들도 발굴하면 흥미진진할 것 같고 우리 역사가 보다 풍부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서문의 저자 이야기가 제일 인상적이었다.
로마 제국이나 당, 미국 등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타민족에 대한 관용적인 태도로 꼽고 있다.
패권주의의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 다문화와 관용 정신은 시대를 아우를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라고 믿는다.
요즘 같은 다원화 시대에 시의적절하게 역사의 한 단면을 짚어낸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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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현대미술의 기원
김영나 지음 / 시공사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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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 책을 알게 됐을까?
1990년대에 나온 책이니 벌써 10년도 더 된 옛날 책인데 말이다.
알라딘에서 표지만 보다가 막상 도서관에 가서 실제 책을 대하니, 너무 오래된 책 같아 고를까 말까 한참 망설였었다.
그렇지만 꾸미지 않고 직설적으로 책의 내용을 압축하는 단도직입적인 제목에 믿음이 생겨 빌리게 됐다.
결과는 대만족이다.
아직까지 절판되지 않아 너무 기쁘고 편집을 새로 해서 재출간 돼도 좋을 것 같다.
저자가 여성분이시고 이름도 독특해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미술사학가도 참 멋진 직업 같다.
오래된 책이고 쫙 벌어지게끔 책이 엮여있어 안타깝게도 서론 몇 장이 분실되어 있었다.
거기다가 어떤 분이 참 열심히도 보셨는지 밑줄을 어찌나 많이 그어 놨던지 욕 나와서 혼났다.
심지어 드로잉까지 그려놨다.
그렇게 정성을 기울일 책 같으면 자기 돈 내고 사서 볼 일이지... 

표지가 된 그림은 입체파로 알려진 브라크의 야수파 시절 작품인 <집 뒤의 나무들>이다.
브라크가 처음에는 마티스 등과 같은 유파에 속해 저런 그림을 그렸다니, 처음 알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의 내용을 100% 다 소화하지는 못했다.
내용이 특별히 어렵거나 난해하지는 않다.
오히려 일반인이 읽기 쉽도록 편안한 문체로 쓰여 있으면서도 상당히 깊이있는 내용을 전달하는 좋은 문장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워낙 미술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이론적인 설명 부분에서는 아, 그렇구나 이 정도로 고개를 끄덕이는 선에서 끝났지 이걸 내 문장으로 요약하기는 아직 무리인 것 같다.
그저 쓱 하고 지나가는 인상비평 정도가 내 수준인 것 같다.
그렇지만 희망을 갖고 있는 점은, 비슷한 주제를 반복해서 여러 책으로 읽다 보면 어느 정도 윤곽선이 잡히면서 내 나름의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당장 이 책의 주제인 현대 미술만 해도 그렇다.
막 그림에 눈을 떴을 때는 르네상스나 바로크, 신고전주의 같은 놀라울만큼 정교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완벽한 재현작들이 좋았다.
현대미술은 거부감이 들었고 말장난 같았으며 현학적으로 보여져 가짜 같았다.
사변적이고 갖다 붙이기 나름이고 특히 다다이즘이나 팝아트는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전시장에 가 보고 관심을 가지고 관련 책들을 접하다 보니 오늘날 현대 미술이 자연의 모방에서 순수회화 언어로 어떻게 전환하게 됐는지 이해하게 됐고 점점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
지금은 정교한 고전 시대의 그림도 물론 좋지만 인상파 그림은 물론 야수파나 입체파, 표현주의, 상징주의 등등 20세기 화풍에도 열광한다.
그만큼 감상의 폭과 인식의 지평이 넓어졌다고 할까? 

도판이 너무나 생생하고 화려해서 보는 내내 감탄했다.
그동안 몰랐던 그림들이 너무 많다.
고갱은 고흐의 열정적이고 원색적인 화풍에 비해 별 매력을 못 느꼈는데 유명한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의 작품을 인상적으로 보게 됐다.
원시주의라고 일컫어지는 고갱의 독특한 소재와 화풍이 인상적이다.
<설교 후의 환영> 이라는 그림도 새롭게 보인다.
고흐의 격정적인 붓질과는 다르게 견고하고 단단해 보인다.
함께 실린 베르나르의 <호밀 추수>라는 그림도 기억에 남는다.
이런 기법은 윤곽선을 두껍게 그린 후 마치 스테인드 글라스를 채워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클르와조니즘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림의 양식과 기법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많이 배웠다.
뭔가 나에게 느낌이 오는데 그걸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하는지를 몰라 그냥 멋있다, 인상적이다, 이렇게 밖에 안 나와 답답했는데 이런 부분들이 많이 해소됐다.
붓질을 여러번 해서 색을 분할하던 점묘법의 신인상주의와는 구별되는, 평면 색면과 강한 윤곽선이 특징이라고 한다.
그래서 고흐의 그림과는 또다르게 굉장히 강렬해 보인다. 

인상파가 광선에 집중하면서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키자 아카데미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으나 그 분위기는 받아들이고자 했던 유파가 바로 모로나 르동, 샤반느 등으로 대표되는 상징주의다.
바로 나같은 변화에 거부감을 느끼던 당시 관객들에게 적당한 그림이었을 것이다.
에콜 드 보자레의 교수이기도 했던 모로는 형태를 정교하게 묘사한 아카데미즘적 기법으로 살해된 올레푸스의 머리나 살로메에게 환영으로 보이는 요한의 머리 같은 환상적인 작품들을 남긴다.
신고전주의 같은 정교한 기법으로 환상적인 세계를 표현한다, 무척 매력적으로 들린다.
모로는 제자들에게 자유로운 화풍을 추구하도록 격려했고 그 제자들 중 하나가 마티스라니, 놀랍다.
마티스는 피카소와 늘 비교되지만 나는 여태껏 별다른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 책에 소개된 작품들을 보면서 마티스의 매력에 새롭게 빠져들게 됐다.
특히 <모자를 쓴 여인> 이나 <초록색의 선> 같은 작품을 보면 색의 대비를 통한 입체감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마티스와 더불어 야수파를 이끌었던 드렝은 사실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화가다.
그 중에서 특히 이 그림이 마음에 든다.  

 

구글에서 찾아 붙인 그림인데 책에는 더 선명한 도판으로 실려 훨씬 매력적이다.
설명에 따르면 <기하학적 색면 구조와 단순화되고 각이 지는 인체의 윤곽선> 에 관심을 가졌다는데 정말 입체적이고 매혹적인 그림이다.
어쩌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화풍이 바로 이런 야수파의 그림이 아닐까 싶을 만큼 많은 매력을 느꼈다.
이런 강렬한 채색과 뚜렷한 윤곽선이 주는 뚜렷한 인상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정말 알면 알수록 회화의 세계는 깊고 넓다.
보치오니로 대표되는 이탈리아의 미래주의도 새롭게 발견한 수작들이다. 


<일어나는 도시>
역동적이고 강렬하다.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다.
무려 3m나 되는 대작이라고 한다.
또 한 작품, <대회랑의 폭동> 

 

위의 그림은 분할주의 기법으로 그려졌고 개인의 감정 표현보다는 집단의 의지나 운동감을 표현한 미래주의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윗쪽으로 비치는 빛쪽으로 사람들이 몰려가는 그림 속에서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의 격앙이 느껴진다.
단지 테크놀로지가 가져다 줄 유토피아를 추구했다는 몇 마디 문장으로만 알고 있던 미래주의 화파의 작품들을 직접 대하니 역시 회화는 이론이 아닌 작품으로 말함을 새삼 느낄 수 있다.
너무나 인상적이었던 그림, 들로네의 <에펠탑>도 빼 놓을 수가 없다. 

 

아폴리네르가 레제와 피카비아, 뒤샹, 들로네 등을 가리켜 음악과 유사하게 자연으로부터 독립된 순수미술의 가능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오르피스트라고 이름 붙였다고 하는데 정말 이 에펠탑 그림을 보면서 리드미컬 하고 위로 치켜 올라갈 것 같은 역동감을 느꼈다.
전통적인 원근법은 사라졌고 공간이 휘어지면서 공간과 대상의 완전한 통합을 보여 준다고 한다.
멀리서, 가까이서, 위에서, 아래에서 등등 각기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다시점의 작품이고 그래서 리듬감이 생긴다.
파편화라는 입체주의가 추구하는 바를 대략적이나마 알 것 같다. 

이 책을 읽고나서 가장 큰 소득이라면 대체 입체주의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약간이나마 감을 잡았다는 것이다.
솔직히 여태껏 나는 대체 왜 세잔이 현대미술의 시작점인지 이해를 못했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생 빅투아르 산 연작이나 사과만 계속 그린 정물화가 대체 왜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일까 늘 의아했었다.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세잔이 추구했던 것, 자연의 재현을 벗어나 대상을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기하학적 형태를 추구했다는 점, 물체가 지니는 내적 속성, 양감과 깊이감을 추구했던 것, 공간을 비어있게 내버려 두지 않고 대상과 공간의 조화를 꾀하면서 공간도 대상만큼 중요하게 취급한 점, 바로 공간의 물질화, 견고한 공간을 추구했다는 것을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대상이었고 그것의 완벽한 묘사였다.
그러나 사진이 등장하면서, 자본주의 경제 체제로 바뀌면서 수요층이 변하면서 더 이상 자연의 완벽한 모방은 흥미를 잃게 된다.
자연의 재현이 아닌, 색체와 구성만으로 객관성이 아닌, 주관성의 추구, 내면의 표현, 감정과 욕구의 분출, 무엇보다 회화 자체의 조형미가 중요시된 현대미술의 시작, 바로 거기에 세잔이 있었다.
인상파 화가들은 공간에 광선이 주는 느낌을 표현했다.
그리고 세잔은 수평과 수직의 붓작업을 통해 견고한 조형적 공간을 추구했다.
이제 입체파는 다시점을 통해 파편화된 공간을 통해 대상만큼이나 공간을 중요시 했고 새로운 공간의 물질화를 이룩했다.
회화는 단순히 기법과 양식의 변화를 통해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 사회 환경의 변화를 반영하며 화가들의 끊임없는 도전의식과 회의를 통해 의식과 함께 성장함을 다시 한 번 깊이 느끼게 됐다. 

정말 너무 재밌게 유익하게 읽은 책이고 현대미술이 추구하는 바에 대해 조금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좀 더 많은 책을 읽어봐야겠다.
회화가 이렇게 철학적이고 혁명적이며 사회적인지 미처 몰랐다.
정교한 기술을 바탕으로 대상을 재현한 고전시대의 화가들과 현대 화가들은 어쩐지 다른 부류의 사람들 같다.
장인과 예술가의 차이라고 할까?
누가 더 위대하다는 이런 유치한 비교가 아니라 시대를 살면서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서로 다른 유형의 인물들 같다.
맨 마지막에 대중과 유리되어 이해받지 못하는 작품들을 만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전위의식과, 국제화된 미술 시장의 확대로 새로운 고소득층으로 등장한 현재 화가들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저자의 우려는 새겨 들을만 하다.
아직 평가가 끝나지 않은 우리 시대의 미술인 만큼 옥석은 시간의 흐름이 가려주리라 믿는다.
하여튼 추상미술은 자율성의 최고치이고, 무엇보다 독창성과 혁신성에 있어서 가장 상상력이 풍부한 예술의 분야가 아닐까 싶다.
얼마나 파격적이냐, 충격적이냐, 신선하냐, 독창적이냐 등으로 판단되는 현대미술은 기법과 주제의 변화무쌍함이 끝이 없어 보인다.
문득 드는 생각이 나도 그림을 배워 보면 어떨까 싶다.
정말 그림에는 전혀 재주가 없지만, 기본적인 드로잉이나 붓질하는 법을 익히면 감상하는 안목도 좀 더 깊어지고 무엇보다 내면의 충동이나 감정을 글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면 그만큼 내 삶이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현대미술은 기술의 출중함 보다 표현의 자유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니, 어쩐지 나도 취미삼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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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유교건축 한국 미의 재발견 12
이상해 지음 / 솔출판사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건축에 대한 책은 워낙 공간 개념이 없어서 그다지 관심이 없는데 단 하나, 우리 궁궐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
사실 궁궐 역시 내 관심 영역 밖이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창덕궁 관람을 해설사와 함께 한 뒤부터 우리 궁궐, 더 나아가 전통문화라는 것에 대해 많은 관심이 생겼다.
그 뒤로 궁궐에 대한 여러 책을 보게 되었고 조금이나마 궁궐에 대한 지식이 생기고 어느 정도 개념이 잡혀 관련 서적을 읽을 때 속도가 꽤 빨라졌다.
처음 궁궐에 대한 책을 읽을 때만 해도 명칭부터가 생소해 꽤 고생을 했지만 이제 각 전각의 이름이 갖는 유래나 한자까지 읽을 수 있을 만큼 익숙해졌다.
궁궐의 각 전각 이름과 거기에 걸린 대련 등의 한자를 익히는 책도 나왔던데 이 책으로 본격적인 한자 공부를 해볼까 생각 중이다. 

궁궐에 관한 책이 대부분 그렇지만 이 책 역시 사진이 무척이나 생생하고 아름답다.
일반인이 카메라 들고 가서 찍는 사진과는 비교가 안 되게 궁궐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항공사진 같은 높은 전경의 사진이 많아 보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또 영역을 확장하여 항교와 서원까지 담아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지방 건축 문화까지 조명하고 있어서 보는 재미가 배가됐다.
언젠가 안동 하회 마을에 갔을 때 유성룡 고택을 둘러 보고 인근의 도산서원까지 구경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굉장히 유적지인데도 너무 대충 둘러 보고 온 것 같아 아쉽다.
그러고 보면 전국 각지에 문화재와 유적지가 산재해 있어 답사가기 참 좋다.
빨리 통일이 되서 고구려나 고려의 옛 수도 개경의 유적지도 가 보고 싶다.
주5일제로 인해 여가 생활의 기회가 넓어지면서 더불어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사도 급등한 것 같아 기분이 훈훈하다. 

종묘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유교가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서양 중세의 기독교처럼 일종의 종교였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
제물을 바치고 조상에게 기원하는 일종의 조상신 숭배가 아니었을까 싶다.
공자는 귀신의 일은 모른다고 하여 유교 하면 현세적인 정치 철학 내지는 이념 정도로 알고 있지만 여러 제사 의식 등을 통해 느낀 바로는 그 숭배 정도는 약하지만 오랫동안 동아시아에서 전승되어 온 넓은 의미의 종교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 불교를 더욱 배척했을 것 같다.
단지 불교가 사치스럽고 국가의 기강을 해이하게 한다는 이유에서라기 보다는, 시대가 바뀌면서 지배 종교가 바뀌었기 때문에 중세 시대에 다른 종교를 탄압했듯 불교를 억눌렀던 게 아닐까?
전국 각지에 산재한 서원에 모셔진 유학 성현들의 위패를 보면 조상신 숭배가 사대부들에게 얼마나 강력한 종교적 심성을 갖게 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서원들을 일거에 철폐했으니 과연 대원군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고, 대단한 야망과 포부를 지녔던 정치가였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이 많고 설명도 어렵지 않게 핵심을 잘 짚어 적당한 분량으로 갈무리 되어 있어 읽기 편했다.
부록으로 실린 연표나 용어 설명 등도 큰 도움이 됐다.
한국의 美 시리즈는 일반인이 읽기 쉽게 잘 편집된 양질의 도서라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전권을 다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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