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으로 빚어낸 조선의 마음, 백자 테마 한국문화사 1
방병선 지음 / 돌베개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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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한국사 시리즈는 한가지 주제를 정하여 풍부한 도판과 함께 전문적인 해설을 싣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은 책 중 하나다.
가능하면 전권을 다 읽어 보려고 하고 있다.
그 중 하나인 조선 백자 편을 골라든 까닭은, 요즘 한창 도자기에 마음을 뺏겼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리움 미술관에서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원없기 감상하고 나서 좀 더 알고 싶다는 마음에 이 책을 빌렸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내용도 풍부하고 문장도 쉽게 쓰여져 읽기 편했고 다양한 백자들을 도판으로 만나볼 수 있어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박물관에서 느낀 바는, 어쩐지 고려청자는 하나같이 최상품으로 품격과 격식이 느껴지는데 반해, 조선백자는 대충 만들어진듯 한 분청사기를 포함하여 격이 좀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청자가 워낙 귀하기 때문에 왕실 진상품만 만들어져서일까?
조선 시대로 들어오면서 자기 만드는 기술이 널리 퍼져 사대부 집안에서도 백자를 이용할 수 있었던 대중성 탓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청자보다 백자가 더 마음에 든다.
언젠가 미술관의 해설사 말이, 일본 사람들이 분청사기를 그렇게 좋아한다면서 자기의 좋고 나쁘고는 품질보다 개개인의 취향에 달렸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나 역시 분청사기의 해학저이면서 추상적인 문양이 어쩐지 현대적으로 세련되게 느껴져 마음에 들고, 청화백자나 철화백자의 그 산수화 같은 시원한 문양들이 좋다.
용준 같은 경우는 왕실 행사 때 종이꽃을 장식하는 화준으로 쓰이거나 혹은 술을 담아놓는 항아리였을텐데, 그렇다면 좀 더 작은 매병류는 무슨 용도로 사용했을지 궁금하다.
우리나라는 생화보다 조화가 주를 이뤘기 때문에 화병으로 쓰였을 것 같지는 않고 위로 높은 모양새가 술을 담기에도 불안정해 보이는데 아쉽게도 이 책에서 역시 의문점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그냥 바라보는 완상용으로도 충분히 훌륭하고 쓰임새가 있어 보인다.
도판들이 너무나 생생하고 선명해 보는 내내 정말 즐거웠다. 

얼마 전에 열린 국립중앙박물관의 백주년 기념전에서 철화백자포도문항아리가 전시되어 본 적이 있다.
바로 옆에는 명문에 쓰여진 홍치이년명 청화백자송죽문항아리가 나란히 전시됐다.
둘 다 대학박물관에서 대여해 온 작품들이고 국보다.
그러고 보니 이 책에서는 국보나 보물 표시가 안 돼 있어서 아쉬웠다.
하여튼 그 두 유물이 무척 마음에 들었고 특히 넓은 도자기의 윗쪽만 철화 안료로 포도넝쿨을 배치한 철화백자포도문항아리가 마음에 꼭 들었는데 책으로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여백의 미를 제대로 살린 도자기라고나 할까? 
바로 아래의 작품이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점은, 무조건 우리 도자기가 최고다, 라는 식의 자화자찬으로 흐르지 않고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와 비교하여 조선백자의 위상을 정립하고 당시 자기 생산의 흐름을 설명했다는 점이다.
청나라를 본받아야 한다는 북학 운동이 일어나면서 화려하게 장식한 중국 자기에 비해 조선 백자의 기술적 미흡함을 질타한 여러 책의 소개도 신선했다.
임진란 이후 조선의 도공들이 일본으로 붙잡혀 가면서 주로 자기를 수입하는 쪽이었던 일본에서 비로소 자기 생산이 가능해졌고 좋은 태토의 발견으로 17세기 이후에는 수출까지 할 수 있었다는 설명에서 우리 도공들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성리학의 전파와 더불어 이런 걸 보면 우리 입장에서는 임진왜란이 문화전쟁인데 과연 일본에서는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현재 국가의 자존심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이런 도공들의 희생은 가치있게 온당한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국력이 쇠약해지면서 결국 국가에서 운영하는 관요도 망하게 되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후 조선자기의 명맥도 끊겨 일본이나 서양자기를 수입해야 하는 처지가 된 현실이 안타깝다.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자기를 생산했던 우리의 훌륭한 전통이 이렇게 사그러져 갔다는 게 참 서글프다.
민속박물관에 갔을 때 도자기를 굽는 영상을 한 20여 분 동안 차분히 본 적이 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자기를 굽는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을 요하는지 새삼 느꼈으며 저런 게 바로 장인 정신이구나 감탄했었다.
자기 만드는 장인들이 좀 더 사회적으로 높은 대우를 받았다면 또 상업화에 성공했다면 공예 문화가 지금보다 훨씬 발달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200 페이지가 조금 넘는 알맞은 분량에 쉽고 재밌게 또 볼거리가 풍부하게 쓰여진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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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그림값
김재준 지음 / 자음과모음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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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고른 책.
지금으로부터 벌써 10년도 더 전에 출간된 책이라 그런지 표지가 촌스럽고 시의에 뒤떨어진 부분도 보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
아마추어 작가의 성실함과 꾸미지 않은 순박함이 돋보이는 책이다.
진정한 컬렉터의 열정이 느껴진다고 할까?
나는 수집에 별 관심이 없다.
책을 닥치는대로 읽기는 좋아해도 모으지는 않는다.
그래서 도서관을 애용한다.
그렇긴 하지만 수집하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여 관련 책들을 종종 읽곤 한다.
인간은 태초부터 컬렉터였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어린아이들의 우표수집부터 시작해 오늘늘 도서관과 미술관을 봐도 그렇지 않은가. 

가끔 전시회에 가면 마음을 확 끄는 그림들이 있다.
저자처럼 화랑을 열심히 들낙거릴 만큼 그림을 열심히 보지는 않아서 주로 대가들의 작품이 방한하거나 아니면 미술관에서 유명 그림들을 보게 되는데 교과서에 나오는 작가라고 해서 그림이 다 좋은 건 절대 아니고, 내 마음을 끄는 나만의 작품이 가끔 눈에 띈다.
그럴 때면 차마 작품을 구입할 수는 없으니 인쇄된 엽서나 나무 패널로 사곤 한다.
재밌는 건 그렇게 사 놓고 집에 걸어 두면 또 얼마 안 가 감흥이 식어 버린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영감을 주는 그림은 그야말로 내 인생의 그림이 아닐까 싶다.
저자의 말대로 비싼 쇼파로 인테리어를 하는 것보다 심플한 가구 위에 걸어 둘 멋진 그림을 찾는 게 훨씬 더 의미있는 인테리어가 되지 않을까 싶다.
훌륭한 작가의 작품을 사면 시간이 지나도 제 값을 받을 수 있는 게 그림 구매의 매력이라고 했다.
사실 아직까지는 그림을 사고 파는 이런 경제적인 시스템이 낯설고 예술 역시 먹고 사는 문제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어 약간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다만 예술도 하나의 산업이 되어야 창의적인 발전을 가능한다는 생각 정도로 정리하고 있어 이런 미술계의 돈 얘기는 생소하고 낯설기만 하다. 

돈을 많이 번다면 그림 대신 책을 모으겠다는 생각은 해 본다.
원체 나는 활자 중독이라 그림보다 글씨가 더 좋다.
그래서 사진 많은 책보다 글씨 많은 책이 더 마음을 끈다.
정말 돈이 많다면 작품의 환금 여부는 상관하지 않고 마치 백화점에서 옷을 사듯 내 취향대로 화랑에서 느낌이 오는 그림을 척 하고 사면 얼마나 좋을까!
최근에 발간된 그림 구매 관련 책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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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피치 미술관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8
엘레나 지난네스키 지음, 임동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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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에 읽고 있는 미술관 시리즈.
저자들이 달라 책의 수준도 각각이다.
보티첼리의 표지 그림에서도 보듯, 우피치 미술관은 르네상스 시대를 이끈 피렌체 화가들의 작품이 主 를 이룬다.
이 미술관의 매력이라면 역시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을 꼽아야 할 것이다.
초기 르네상스 시대이지 후기 고딕 시대를 대표하는 치마부에와 두초, 그리고 조토에 이르는 초기 거장들의 회화를 보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13세기 말에 그려진 그림들은 원근법이 발명되기 전이라 그런지 평면적이고 러시아의 이콘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평면에서 입체로의 발전, 이것이 회화의 기법상 발전 방향이었던 건 틀림없다.
이 평면화들은 현대 회화의 평면성과는 또 다르다.
도식적이고 전형적인 느낌, 형식적이고 딱딱한 종교화답다는 생각이 든다.
경배하기 위해 신과 천사들을 그렸으니 당연하다 싶기도 하다.
뒤로 갈수록 인물들은 훨씬 자연스러워지고,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
라파엘로나 티치아노에 이르면 사실성을 넘어서 이상화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을 묘사한 것처럼 보인다.
정교함이나 미적 쾌락은, 르네상스 시대가 최고 정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보티첼리의 그림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어쩐지 인물들이 딱딱해 보이고, 살아 숨쉰다기 보다는 장식미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외에도 교과서에 나올 법한 유명 그림들이 많이 등장해 읽기 편했다.
이를테면 원근법의 상징과도 같은 우첼로의 <산 로마노의 전투> 라든가,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의 <동방박사의 경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우르비노 공작 부부 초상> 등등 한 번쯤 봤다 싶은 그림들이 수두룩하다.
유럽 여행 갔을 때 로마와 베네치아만 들르고 피렌체는 못 갔는데 (솔직히 뭐가 유명한지도 몰랐다) 정말 아쉽다.
베네치아의 대가 티치아노의 초상화는 초기 작품이 두 점 실렸는데 하나는 검은 배경의 <말타 기사의 초상>과 아름다운 여성 <플로라> 다.
둘 다 빼어나게 아름답고 특히 인물의 내적 영성을 드러낸 매우 이상화된 초상화이지만, 에르미타슈 미술관 편에서 봤던 후기의 <성 세바스티아노> 처럼 윤곽선 대신 붓질로 문지른 느낌의 작품이 더 매혹적으로 느껴진다.
이런 그림들은 감탄하리만큼 아름답긴 하지만 어쩐지 개성이 없어 보인다.
전형적이랄까?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비슷한 시기의 동양화와의 비교다.
누가 이런 비교 작품론을 썼으면 좋겠다.
교류가 없던 시절이니 각자 독립적으로 발전된 사정은 알겠으나 하여튼 한쪽은 화려하고 정교한 색체 위주로 또 한쪽은 먹을 이용한 관념적인 산수화 위주로 나갔다는 점이 굉장히 신기하게 느껴진다.
먹을 이용한 수묵화가 직업적인 화원들의 작품이라기 보다는 선비들의 우아한 교양처럼 느껴지고 심지어 화원들 역시 선비정신을 추구했던 것처럼 보이는데, 반면 서양화가들은 정말 말 그대로 전문가들 같다.
오히려 회화적 기술과 안목을 바탕으로 신분 상승을 이루었다고 할까?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뒤러를 비롯해 귀족 칭호까지 받은 티치아노나 벨라스케스처럼 말이다. 

책의 장점은,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에 비해 그래도 저자의 설명이 더 유기적으로 잘 엮어졌고, 무엇보다 역자가 각주를 열심히 다는 등 성실하게 번역한 티가 많이 나서 읽기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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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미타슈 미술관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10
알레산드라 프레골렌트 지음, 최병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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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미술사에 관심이 생기면서 덩달아 미술관에도 흥미가 생겨 빌리게 되었다.
이 미술관 시리즈는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바로 내가 찾던 책이라고 흥분하면서 읽었는데 몇 권 읽다 보니 글의 유기성이 부족하고 그냥 대표작 몇 점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어 중간에 시리즈 읽기를 포기했었다.
그렇지만 최근 다시 미술관의 유명 작품이 뭘까 궁금증이 생겨 새로 읽기 시작했다.
아쉬운 점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설명하는 게 아니라 그냥 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을 두서없이 쓰다 보니 글이 하나의 주제로 수렴하는 게 아니라 따로 논다는 생각이 든다.
이 에르미타슈 미술관 편도 현학적이고 그림에 대한 설명이 너무 단편적이라 아쉬운 점이 많았다.
좋은 점을 들자면 그림을 부분으로 확대한 컷이 많아 자세히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역시 그림책의 생명은 도판이다.
도판이 생생하다는 장점이 다른 모든 단점들을 상쇄해 준다. 

에르미타슈 미술관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이나 파리의 루브르에 필적하는 대형 미술관일 뿐더러 소장품의 질도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의 해설 부분을 읽어 보니 대부분이 예카테리나 2세 때 기반을 잡았다.
러시아의 서구화를 주도한 표트르 대제 때는 그의 개인적인 관심사인 플랑드르 미술품을 주로 수집했고 그의 손부인 예카테리나 2세 때 디드로 등의 백과사전파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프랑스 고전주의 그림들이 많이 추가됐으며 혁명 이후 미술관들이 통폐합 되는 과정에서 피카소나 마티스 등의 현대 회화들을 갖추게 되서 명실상부한 최고의 컬렉션을 구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도판들을 살펴보면 눈이 황홀하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만큼 대단한 명작들이 많다.
특히 나는 빛이 투명한 대기를 잘 표현한 피테르 드 호흐 같은 플랑드르의 도시 풍경화를 좋아해 더욱 내 마음에 꼭 든다. 

렘브란트가 아내 사스키아를 꽃의 여신 플로라에 비교한 그림은, 이게 늘 명상적이고 어둡다고 느꼈던 렘브란트의 작품인가 싶을 정도로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이 인상적이다.
돌아온 탕자를 맞는 눈 먼 아버지의 그림은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덧붙일 찬사도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로크 시대의 거장 루벤스의 작품도 훌륭하다.
안드로메다를 메두사로부터 구해 주는 페르세우스과 그의 애마 페가수스의 그림은 역동적이고 감각적이며 격정적이다.
같은 주제로 신고전주의 화파의 맹스가 그린 작품은 시대적 차이를 잘 드러낸다.
마치 다비드나 앵그르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대리석 같은 인체의 투명한 질감이 인상적이다.
이른바 도시 경관화라고 불리는 베네치아의 대운하를 그렸던 카날레토의 작품도 빼놓을 수 없다.
한가람 미술관에서 했던 어떤 전시회에서 카날레토 그림을 처음 본 후 도시를 아우르는 그 거대한 풍경에 압도당한 나는 이 화가의 열렬한 팬이 됐다. 

책을 읽으면서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다.
티에폴로가 그린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교양 예술을 설명하는 발주자> 라는 작품이 나오는데 해설을 읽어 봐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안 가 인터넷을 뒤져 봤더니 전혀 다른 얘기가 나온다.
아우구스투스에게는 교양이나 예술에 대해 조언하는 Maecenas 라는 조언자가 있었고 이 사람을 프랑스어로 발음한 게 바로 기업예술후원의 원조가 된 메세나 (Mecenat) 라고 한다.
대체 왜 발주자라고 번역을 했는지 모르겠다.
교양 예술도 다른 번역인 자유 학예가 훨씬 더 와 닿는다.
내가 찾아 본 바로는 영어 제목이 "Maecenas presenting the liberal arts to Emperor Augustus" 이다.
이게 훨씬 더 잘 이해된다.
그림에서는 회화, 건축, 조각을 대표하는 세 여인이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있다.
번역자의 약력을 보니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던데 좀 더 친절하게 각주를 붙여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메세나라는 단어의 어원을 알게 되서 기쁘다. 

또 한 사람 빼 놓을 수 없는 화가가 바로 스페인의 위대한 거장 프란시스 고야이다.
앞선 시대의 벨라스케스와 함께 거론되는 이 거장의 초상화는 정말 너무나 매혹적이고 아름답다.
반 다이크나 게이즈버러처럼 초상화를 잘 그리는 화가들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야의 초상화에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여배우 안토니오 다 자라테를 그린 이 초상화는 설명에 따르면 고야의 절정기에 그려진 것으로 서른 여섯에 죽기 직전 모습이라고 한다.
어쩐지 우수에 차 있고 슬퍼 보이는 게 정말 죽음을 앞두었다는 게 실감난다.
역시나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화가, 카라바조의 <류트 연주자>도 인상적이다.
강렬한 명암 대비와 빛의 효과로 유명한 카라바조는 내가 좋아하는 화가 중 한 명이다.
이 화가의 작품은 에르미타슈에 딱 이것 뿐이라고 한다.
단 한 점이지만 역시 카라바조의 대표작에서 빠질 수 없다.
류트의 정교한 형상은 말할 것도 없고, 바로 옆에 그려진 꽃병의 꽃은 한 편의 훌륭한 정물화를 보는 것 같으며, 무엇보다 류트를 연주하는 손의 섬세함은 정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대체 저런 색감과 형태를 어떻게 이토록 완벽하게 묘사해 낼 수 있을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화가다.
또 한 사람, 베네치아의 거장 티치아노의 작품 <성 세바스티아노> 도 너무나 매력적이다.
특히 이 그림은 티치아노의 말년에 정교한 소묘 대신 뭉뚱그리는 색으로 형태를 표현해서 미완성 작품으로까지 여겨졌다고 한다.
윤곽선을 세밀하게 그리는 것 보다 두터운 양감으로 형상을 만든 이런 방식이 훨씬 매혹적이고 또 현대적으로 느껴진다.
마치 인상파의 그림을 보는 느낌이다.
벨라스케스가 붓질 몇 번으로 멀리서 보면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인물을 표현했던 것처럼 말이다.
과연 색의 대가구나 싶을 만큼, 선 대신 면으로 화살을 맞고 순교한 성인 세바스티아노를 훌륭하게 표현했다. 

현대로 넘어 오면 클로드 모네의 <정원의 여인>이 기다리고 있다.
모네의 유명한 수련 연작보다 대중적으로 더 인기있고 매력적인 그림이다.
스물 여섯 젊은 시절을 보냈던 르 아브르 항구의 중심가를 그렸다고 한다.
하얀 양산을 들고 있는 흰 원피스의 여인, 그리고 그녀가 산책하고 있는 태양이 작렬하는 화려한 정원!
정말 이 그림을 보면 모네가 표현하고자 했던 대기의 인상, 외광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다.
같이 실린 세잔이나 마티스 작품은 솔직히 내 취향이 아니라 좋은지 모르겠고 대신 내가 좋아하는 피카소의 작품은 역시 내 마음을 흔든다.
청색 시대에 그린 <압생트를 마시는 여인> 이나 큐비즘 시기에 그린 <부채를 들고 있는 여인> 은 과연 독창적이고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화가구나 싶다.
사진이 발명되고 놀랄 만큼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이상 똑같이 그린다는 것은 별 흥미가 없는 일이 되버렸다.
현대 미술은 시대적 특성상 기법과 양식의 혁신, 발랄한 상상력이 중심이 될 수 밖에 없음을 느낀다.
피카소가 시대를 아우르는 위대한 천재로 추앙받는 이유도 바로 이런 혁신성에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 가면에서 영감을 얻은 이 그림은 갈색과 붉은 색을 사용해 양감을 통합하였고, 신체를 여러 부분으로 나눠 큐비즘을 보여 준다.
마티스의 그림은 지난 번에 시립 미술관에서 열렸던 <퐁피두 미술관 전> 에서 직접 보니 굉장히 발랄하고 마음을 확 뺏는 매혹적인 색채들이 인상적이었는데 도판으로는 솔직히 그 매력을 잘 모르겠다. 

설명은 불만족스럽고 현학적이며 어쩐지 대충 썼다는 느낌마저 들지만, 대신 도판이 훌륭하고 무엇보다 에르미타슈 미술관의 소장품들이 워낙 훌륭해 정말 재밌게 읽었다.
어느 시절에 직접 이런 훌륭한 미술관을 방문하게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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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의 나날들, 조선의 일상사 - 무관 노상추의 일기와 조선후기의 삶 너머의 역사책 2
문숙자 지음 / 너머북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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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책을 두 권 읽고 있다.
이 책에 앞서 르네상스 시대인들의 삶을 돌아봤고 이번에는 조금 뒷 시기이긴 하지만 역시 일기 같은 사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구성해 본 조선 후기 무인의 삶이다.
앞서 읽은 <르네상스 시대의 삶> 을 보면 그뤼켈이라는 여인이 나오고 그녀 역시 죽는 날까지 방대한 일기를 남겼다.
우리나라로 치면 장사를 하는 중인 계층 정도 되는데 남편이 죽은 후 50대 때 재혼을 했고 직접 귀금속 등을 거래하기 위해 온 유럽을 돌아다녔다.
그녀가 남긴 일기에는 개인적인 감회가 굉장히 많은 반면, 이 책의 주인공 노상추의 일기는 사대부라서 그런지 감상은 매우 적다.
그래서 저자는 일기라기 보다는 오히려 한 가문의 기록에 가깝다고 평한다.
노상추는 20대 때 벌써 두 아내를 사별하고 세 번째 결혼을 하지만, 반대로 그의 누이는 시집간지 5년 만에 청상이 되서 80 평생을 수절하고 역시 일찍 죽은 형이나 동생의 아내들도 노씨 집안에서 수십 년을 수절하며 심지어 그의 며느리는 남편이 죽자 따라 죽기까지 하여 가문의 명예를 드높인다.
일반적인 비교는 위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꽉 닫혀 있는 조선 사회의 경직성이 자연스레 비교되어 숨이 막힐 것 같다.
여자가 혼자 경제 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남편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도 과부들은 평생을 혼자 살았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도덕률이었다.
그뤼켈처럼 경제 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남편이 죽고 나면 그 가문에 기대어 외롭게 살아 갔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슬람 국가의 명예살인이나 부브카 등을 비난하지만 조선의 현실 역시 여성을 압박하는 면에서는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노상추는 18세기 영정조 시대를 살다 간 무인이다.
벌써 노론이 정권을 장악하고 후기로 갈수록 일당 독재를 넘어서 급기야는 한 집안이 정권을 대물림 하는 세도정치가 득실거릴 때니 과거 합격하기가 얼마나 어려웠으며 관직에 진출하기는 또 얼마나 치열했을까? 
노상추는 무인이라 외직을 떠돌아 당파 얘기는 많이 안 나오지만, 자신이 영남 출신이라 관직 진출에서 소외감을 느낀다는 인식은 분명하게 하고 있다.
시골 양반이 과거에 합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돈이 들고 또 얼마나 긴 세월이 필요한지 정말 눈물나게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아홉 살 때 첫 장원이 된 이래 무려 아홉 번을 장원했다는 율곡 이이 선생은 얼마나 놀라운 천재였을지 조금은 짐작이 간다.
노상추네 집안은 무인이었지만 다들 처음에는 문과 시험을 시작한다.
전국에서 3년 만에 겨우 서른 세 명을 뽑을 정도로 좁은 문인 과거가 그나마 세도정치나 일당독재 등으로 얼룩져 시골 양반들에게는 점점 더 들어가기 힘든 바늘구멍이 됐을 것이다.
노상추는 문과를 포기하고 할아버지처럼 무과를 도전하는데 이것 역시 10년이 넘게 고생을 하다가 겨우 합격이 됐으나 이번에는 또 발령이 안 나 몇 년을 기다린다.
그 뿐만 아니라 동생이나 아들 역시 십 년 과거 공부는 기본이고 심지어 아들은 훈련주부라는 벼슬에 무려 열 아홉 번이나 후보에 올랐다가 떨어지는 이력까지 있다.
아마도 노상추네 집안이 중앙 정계에 특별한 세도가 없었기 때문에 쉽게 인사가 안 났던 것 같다.
그렇지만 할아버지 죽월공 노계정은 무인으로써 꽤 높은 벼슬을 했을 뿐 아니라 나중에 손자 노상철이 관직 생활을 할 때 왕이 친히 기억해 준 덕분에 무려 당상관직에 파격 승진을 하기까지 한다.
이 때 그는 심한 질시를 받았다고 기록한다. 

역사책은 주로 승자 위주라 중앙 정계에 진출해 활발하게 관직 활동을 하고 많은 문집을 남긴 이른바 잘 나갔던 사람들 얘기만 듣다가 시골에서 고군분투 했던 평범한 선비들의 이야기를 듣자니 가슴이 아프고 우리네 서민들의 삶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상인이나 노비 계층은 아예 글을 남길 수 조차 없었으니 이들의 잊혀진 삶은 누가 기억해 준단 말인가.
조선 후기 시골양반이었던 황윤석의 문집 이재난고를 중심으로 살펴 본 책과 비슷한 포맷이면서도 읽기는 더 쉽다.
일단 무인과 문인의 차이 때문인지 황윤석은 활발한 글쓰기를 통해 방대한 문집을 남겼고 그래서 어려운 한자가 많아 읽기도 힘들었다.
일상사 보다는 학문적 얘기가 많았던 것 같다.
반면 노상추는 문집 대신 개인적인 기록인 일기를 남겼고 얘기도 주로 일상생활이다.
그래서 더 쉽게 다가오고 작가 역시 당시 생활상을 흥미롭게 재구성하여 보여 준다.
황윤석은 당대 그 지방에서는 꽤 유명했으나 역시 중앙 정계에 진출하지 못했다.
노상추는 비록 과거에 급제하여 수 십 년 동안 비록 외직이나마 관료로 일했으나 부유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고 당시 정국을 흔들었던 크고 작은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얘기가 별로 없었던 걸로 보아 역시 중심에서 소외됐던 걸로 보인다.
두 사람 모두 지방에서 양반으로 인정받기 위해 제사 모시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고 형식적 체면차리기에 소홀함이 없도록 많은 돈을 썼다.
노비들을 데리고 농사를 지어 소득을 올리고 대가족을 먹여 살렸다. 

당시 양반들이 왜 이렇게 결혼을 많이 하는가 했더니 출산시 사망이라는 무서운 현실이 숨겨져 있었다.
지금도 애 낳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의료 환경의 발달로 산모가 사망하는 일은 드물다.
수술적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당시에는 출산이라는 것이 죽음을 무릅쓴 엄청난 사건이었을 것이다.
노상추의 할머니와 어머니, 자신의 아내들, 며느리들까지 모두 난산 끝에 사망한다.
산모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태어난 아이들 역시 건강하지 못해 일찍 죽는 바람에 다들 급히 재혼을 한다.
심지어 노상추는 두 번째 아내가 죽었을 때는 삼년상을 기다리지도 못하고 5개월 후에 바로 삼혼을 한다.
대를 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커서 한시라도 빨리 자식을 낳아야 했던 것이다.
당연히 남자의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여자는 아이를 가질 수 있을 만큼 젊고 건강해야 하고, 초혼이어야 했다.
노상추의 할아버지는 50대의 나이에 10대 처녀와 삼혼을 하기도 한다.
이러니 영조가 무려 51세 차이가 나는 정순왕후와 재혼한 것이 당시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또 외직을 떠돌았기 때문에 아내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처지라 노상추는 수청기들과 관계를 맺기도 하고 정식으로 첩을 들이기도 한다.
없는 살림에 일찍 죽은 형네 자식들과 형수들,  노비들에 첩과 서출들까지 챙겼어야 하니 과연 왠만한 재력이 아니고서는 헉헉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수청기가 아이를 낳으면 첩으로 들어 앉지 못하고 왜 헤어져야 하나 했더니, 이 기생들은 관아 소속이라 관에서 놓아주질 않았다고 한다.
아이만 데리고 가자니 어미 품에서 떼낼 수도 없고 마땅히 데리고 올라가도 키워 줄 사람이 없을 뿐더러 기생의 자식이니 천출이라 대접도 못 받을 것이다.
더군다나 겨우 1년여 있다가 옮기는 이직이 심한 시대라 어쩔 수 없이 변방에서 맺은 인연은 떠나면 그것으로 끝일 뿐이다.
양반의 자식을 낳아도 아버지에게 자신과 아이가 한꺼번에 버림받는 신세이니 춘향이와 월매의 신세가 얼마나 처량했을지 알겠다.
그러고 보면 남원 부사의 아들과 사랑에 빠져 그가 어사가 되어 죽게 생긴 춘향이를 구하러 온다는 춘향전의 내용은 당시 서민들에게는 정말 신데렐라 못지 않은 동화 같은 로맨스였을 것 같다. 

문장이 무척 평이하고 입체적으로 구성되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보통 지하철에서는 소설 말고는 집중이 안 되서 잘 안 보는데 이 책은 지하철에서 조금씩 끊어서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다.
책도 무척 가벼워 가지고 다니기 편하다.
정말 요즘은 거시적 역사 보다는 이런 일상사들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 같다.
고문서들을 연구하다 보면 당시의 시대상이 보다 섬세하고 정교하게 묘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당대인들의 가치관이나 생활 양식, 기본적인 사고 방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가 역사적 사건을 보는 눈도 한층 성숙해지리라 믿는다.
오늘부터는 나도 일기를 성실하게 써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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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2011-08-24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봤습니다^^
그런데 혹시 조선 후기 여성의 삶을
잘 이해 할 수 있는 사진 자료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