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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의 삶 - 격동의 시대에 열정적으로 맞섰던 사람들
시어도어 래브 지음, 김일수 옮김 / 안티쿠스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신문의 북리뷰를 보고 신청한 책인데 막상 빌리고 보니, 썩 끌리지가 않았다.
서구의 생활양식, 특히나 르네상스라는 한참 떨어진 시대의 생활양식을 워낙 모르기 때문에 조선 선비들의 일상을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고 배경을 워낙 모르기 때문에 쉽게 공감이 안 갔다.
그래서 처음에는 꽤 지루하게 읽었고 반납 날짜에 쫓겨 그냥 반납해 버릴까 하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화가 뒤러가 나왔길래 이 부분만 읽자고 손에 잡은 것이, 그제서야 비로소 책의 매력을 발견하고 12시까지 완독했다.
항상 느끼는 바지만, 좋은 책인데 지루함을 느낄 때는 내가 배경지식이 부족하고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어려운 책일 경우 일단 초벌독서를 쓱 한 다음에 모르는 단어나 시대배경은 사전과 인터넷을 이용해 찾아 보면서 재독을 하면 책이 주는 매력에 금방 빠져들게 된다.
항상 처음 시작이 문제다.
그래서 어떤 일본의 독서가는, 모든 책은 첫 50페이지가 중요하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열 다섯 명의 르네상스인들을 내세워 저자는 당시 시대상을 구성한다.
14세기 말부터 17세기 중반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다.
첫 장은 이탈리아 문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페트라르카와 신앙의 독립을 부르짖으며 화형당한 얀 후스의 이야기다.
역사책에서 잠깐 이름만 들었을 뿐이지 실제로 이 사람들이 어디 출신인지 무슨 업적을 남겼는지 전혀 몰랐었는데 읽어보니 꽤 흥미롭다.
특히 미사 때 신도들에게 나눠주는 포도주가 얀 후스의 순교가 있고서야 비로소 가능해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카톨릭 성당에 가면 성찬식 때 밀병을 포도주에 찍어 준다.
그런데 중세까지만 해도 빵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나눠 주면서 포도주는 사제만 마실 수 있었다고 한다.
비신자의 입장에서 보면 빵만 주나 포도주까지 주나 의미만 통하면 됐지 뭔 상관이냐 싶겠으나 이것은 지극히 비성서적인 해석으로 평신도와 사제간의 위계질서를 세우려는 차별적이고 권위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겠다.
보헤미아 지방의 출중한 학생이었던 후스는 프라하의 대학으로 진출한 뒤 총장까지 지내며 체코 전 지역에 유명해졌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위클리프의 저작들을 읽으면서 교회 안의 비성서적 관행에 분개하기 시작했고 교황청의 교리에서 벗어나, 지극히 성경적인 해석을 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명예와 권력이 보장되는 자리에 있던 사람이 양심에 눈을 뜨면서 불의에 맞서기 시작했고 결국 그는 갈릴레이와는 달리 해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화형에 처해졌다.
나중에 좀 더 유연한 태도로 적과 타협하면서 개혁의 기치를 올린 사람이 바로 루터다.
박해로부터 일어선 기독교가 이단을 정죄한다는 명목으로 다시 사람들을 불에 태운다는 것은 참으로 모순적이고 인간의 잔인한 본성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언제나 자신감 넘치고 정교하고 세밀한 회화를 선보인 나의 사랑하는 화가 뒤러는, 자신처럼 베네치아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귀족의 영예까지 얻은 티치아노와 함께 실렸다.
저자는 뒤러야 말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화가라고 평한다.
그의 아버지는 뉘른베르크의 부유한 금세공업자였고 처음에 뒤러는 아버지의 공방에서 도제로 일한다.
그러나 곧 아버지보다 더 돈을 많이 벌고 특별한 기술 (판화)을 소유한 사람의 공방으로 옮겨 삽화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뒤러는 판화가로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유명세를 탄다.
그가 찍어낸 요한묵시록에 등장하는 <네 명의 기사> 를 보면 정말 생생하고 음울한 종말의 세계를 몸으로 실감할 수 있을만큼 잘 그려냈다.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 새로 시작한 인문주의의 영향을 흠뻑 받고 온다.
그의 아내 아그네스도 상업적 감각이 탁월해 남편의 작품들을 잘 관리했지만 둘 사이에는 아기도 없고 심지어 뒤러는 절친이었던 피크르하이머와 동성애 관계라는 소문까지 떠돌았다고 한다.
그가 스케치한 아내의 얼굴을 보면 우아한 귀족 스타일의 뒤러가 좋아하기에는 너무 평범하고 시골 아나처럼 생겼다.
그러나 하여튼 이 부부는 공방을 운영하면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고 뒤에 나오는 티치아노와 더불어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를 올리는데 큰 일조를 하게 된다.
심지어 티치아노는 스페인의 카를 5세의 전속화가가 되면서 귀족 작위까지 받게 된다.
사실 티치아노 그림은 좀 전형적이라고 할까? 어쩐지 독창적인 느낌이 부족한 것 같아 아주 좋아하지는 않는데 로마 교황청에서 같이 일한 바 있는 미켈란젤로에 따르면 그의 색채감각에 소묘만 덧붙인다면 최고의 화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천사를 그려도 울퉁불퉁한 근육질로 표현하는 미켈란젤로가 보기에 확실히 티치아노의 그림은 전체적인 색감은 실제의 색감보다 더 아름답고 관능적이었으나 전체를 아우르는 힘은 좀 부족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90 가까이 긴 수명을 누렸던 티치아노의 말년 자화상 등을 보면 단지 예쁘고 곱게만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붓으로 쓱쓱 문지르기만 하면서도 멀리서 보면 외형이 제대로 잡힌, 무엇보다 심상을 잡아내는 날카로움과 여유가 느껴진다.
어쩐지 현대적인 느낌이 든다.
마지막에 나오는 함부르크의 유대인 여성 가장이었던 그뤼켈의 이야기도 재밌었다.
어떻게 해서 유대인이 오늘날 금융업을 장악하게 됐는지 서양의 상업혁명은 어덯게 시작됐는지를 한 여인의 일기를 통해 잘 보여준다.
오늘날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오히려 기득권층으로서 온갖 도덕적인 칭찬을 다 듣지만 (유대인의 교육법은 남다르다, 그들은 금전 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시킨다, 머리가 좋은 민족이다 등등) 기본적으로 유대인은 유럽 세계에서 철저한 이방인이었고 스페인의 1490년 집단 학살 때처럼 느닷없는 추방과 몰수에 익숙해져 있었다.
유대인이 돈놀이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땅을 소유할 수 없고 기독교인들처럼 법의 보호를 받지도 못해 언제 모든 것을 내놓고 쫓겨나야 할지 모르므로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현금, 귀금속 등을 거래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세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 에 나오는 샤일록을 돈 밖에 모르는 유대인 상인으로 설정했음을 지적하면서 이것이 막 태동하기 시작했던 상업혁명의 가장 선두에 유대인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당시 사업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죽음을 각오하고 온 유럽을 왕래해야 했고 왕이나 귀족 같은 높으신 채무자들은 대단히 불성실했으며 느닷없는 파산도 흔했다.
오늘날처럼 결코 무너지지 않은 견고한 성을 쌓은 자본주의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뤼켈은 남편이 죽은 후 직접 귀금속을 거래하였고 50대 때 재혼하여 금융업도 같이 한다.
수년 후 재혼한 남편마저 파산 후 죽어서 결국 그녀는 사위네 집에 얹혀 사는 신세가 됐으나 여자 혼자의 몸으로 아이들을 키워낼 수 있었던 당시 상업의 활발한 현실을 일기에 잘 그려냈다.
수절이라는 사회적 족쇄에 묶여 평생을 혼자 살아야 했던 조선의 여자들 보다는, 그래도 재혼이 자유로웠던 유럽 여인들이 더 나은 처지였던 것 같다.
그 외에도 최초의 에세이스트라고 불리는 몽테뉴나 용병 대장이었던 발렌슈타인, 개인의 자유를 주장한 위대한 시인 밀턴, 천체의 운동을 관측한 갈릴레이 등 흥미로운 위인들이 많이 나왔고 단순히 위대함을 역설하는 게 아니라 당시 시대인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흥미진진하다.
사실 여전히 르네상스 시대라는 특정 시기의 가치관이나 사회 모습, 정치체제, 분위기 등을 제대로 모르긴 하지만 이런 책들을 통해 좀 더 흥미를 가지고 더 알아보고 싶다는 호기심은 왕성하게 생긴다.
역사책에서 한 두 줄로 간단한 업적만 듣고 넘어가는 것보다는 이런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훨씬 더 재밌고 즐겁다.
원래 이 책은 미국의 방송국에서 교양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던 것을 책으로 발간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 영상으로 봤다면 훨씬 더 재밌었을 것 같다.
우리나라도 이런 다큐멘터리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역사스페셜 같은 게 재밌긴 하지만 꼭 뭔가 교훈을 주려고 하고 특히 우리 민족은 이렇게 위대했다느니 조상들의 인권의식이 이렇게 성숙했다느니 등 지나치게 과거를 현대의 가치관에 맞춰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어 가끔은 부담스러운데 보다 실제적인 시각을 가지고 접근하는 프로그램이 많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안 읽고 그냥 반납했으면 무척 서운했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