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페르시아 문화 ㅣ 살림지식총서 144
신규섭 지음 / 살림 / 2004년 12월
평점 :
알라딘의 서재에서 리뷰가 워낙 좋길래 보게 된 책.
살림 총서는 분량이 너무 작아 주제가 클 경우 맛배기 밖에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요즘에는 잘 안 본다.
그렇지만 반대로 짧은 분량에 압축해서 주제를 섬세하게 보여 주기도 하는데 이 책은 페르시아 문화에 대해 훌륭한 소개서가 되고 있다.
페르시아라고 하면 막연히 아테네에게 패한 다리우스 왕의 나라 정도로 밖에 생각이 안 난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게, 이원복씨가 그린 만화세계사라는 계몽사에서 나온 전집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지극히 서구적인 관점으로 페르시아와 아테네의 전쟁을 그렸다.
아테네의 승리는 군주정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이고, 패배한 다리우스는 굉장히 희화화 됐었다.
과연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을 현대의 민주주의와 동일 선상에서 놓을 수 있는지 의문이며, 고대 페르시아 제국이 한 변의 패배로 우스꽝스러운 독재 국가로 묘사될 수 있는지 지금은 매우 의문이다.
지난 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페르시아展 을 보면서 페르시아 제국이 얼마나 위대하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는지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고, 헤로도토스의 페르시아 전쟁사를 읽으면서 이 위대한 제국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이슬람 문화를 이루는 두 축, 아랍 문화와 페르시아 문화를 구분해서 설명한다.
막연히 페르시아는 고대 이란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등이 문화권에 속하고 아직도 페르시아어를 쓴다고 한다.
서역 문화의 첨병 역할을 한 소그드어도 바로 고대 페르이사어의 갈래이기 때문에 소그드 상인들과 그들이 신봉한 마니교 역시 페르시아 문화로 봐야 한다고 한다.
돈황에 한자가 많은 것은 페르시아 승려들이 불경을 한자로 번역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새로운 시각이다.
이 책에서는 페르시아 문화가 현대에 미친 영향 중 하나로 키아로스타미를 들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내 친구의 어디인가> 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서사적이지 않은 구조 때문에 이해를 제대로 못하고 중간에 껐지만.
여기 소개된 <올리브 나무 사이로>를 봐야겠다.
그노시스, 신비주의, 영적인 것의 추구, 명상 등으로 대표되는 페르시아 문화를 잘 표현한다고 한다.
이 영화 보다는 신발이 없어 동생과 돌려가면서 신는 <천국의 아이들>을 훨씬 재밌게 봤는데 그 때는 막연히 이란이 가난하구나라는 생각만 했다.
역시 그 나라의 문화를 알아야 비로소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유구한 역사와 힘이 보인다.
경제력만으로 한 나라를 평가한다는 것은 너무나 천박하고 표면적인 일임을 느낀다.
이란이 이슬람 세계에서는 소수에 속하는 쉬아파를 선택한 것도 아랍 문화와 대비되는 페르시아 문화의 독창성 때문이라는 설명이 이채롭다.
솔직히 이란 하면 부시가 악의 축으로 지목한 이래, 호메이니의 신정정치가 자행되는, 여성 인권의 사각지대라고만 생각해 왔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란 고원의 원주민들이 메소포타미아 평원으로 내려와 이룩한 문명이 바로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이고 보면, 또 이들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건너가 인더스 문명을 이룩하고 남쪽에서 엘람을 건설했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장구한 페르시아 문명을 이룩했는데 왜 국제 사회에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안타깝다.
어쩌면 이슬람교라는 종교로부터 더 자유로워져야 비로소 이 찬란하고 아름다운 문명을 이룩한 이란인들의 진정한 힘이 비로소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페르시아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좋은 책이고 짧지만 알찬 내용이 돋보인다.
이슬람과 페르시아를 어느 정도 구별할 수 있게 됐다.
좀 더 자세히 페르시아 문화에 대해 알아 보고 싶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인식의 지평을 넓힐 뿐 아니라,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후진국이고 종교가 지배하는, 핵무기나 만드는 형편없는 나라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것이 얼마나 지엽적이고 단순한 생각이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이란과 그들의 페르시아 문명이 국제 사회에서 보다 더 올바르게 평가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