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콩을 들다 (2DISC)
박건용 감독, 이범수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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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극장에서 보려고 했다가 놓친 영화 중 하나.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감동적이고 재밌다.
도입부는 좀 억지스럽고, 무엇보다 전라도 사람인 내 귀에 배우들의 사투리가 어찌나 어색하게 들리는지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다른 나라 말도 아니고 같은 한국어인데도 사투리의 억양을 제대로 구사한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새삼 느꼈다.
그렇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점점 영화에 빠져 들었고 학생들이 선생님의 지도로 드디어 번쩍 하고 역기를 들어 올렸을 때 영화 속의 배우들처럼 나도 기쁨에 겨워 울고 말았다.
스포츠가 주는 감동이란,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진부한 말이 정말 잘 들어 맞는 것 같다.
수천 억원의 돈을 받는 프로 선수들 보다 눈물어린 빵이라는 고달프고 서러운 아마추어 종목, 그 중에서도 특히 자신과 경쟁해야 하는 이런 기록 경기가 더욱 가슴을 친다.
억지스런 감동 대신 가난한 아이들의 재능을 꽃피워 주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잘 풀어낸 영화다.
<국가대표> 볼 때도 극장에서 펑펑 울고 말았는데 이번 영화도 비록 CG 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마음 속 깊은 곳의 감동을 끌어낸다.
세상은 왜 항상 나쁜 놈이 이기고 착하고 우직한 사람들의 진실된 마음을 외면하는 것일까?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위하여 합숙소를 만들어 주고 직접 지도해 주는 이지봉 선생과 교장이 성희롱 죄로 교육위원회에 회부되어 결국 합숙소가 폐쇄되고 마는 장면은, 세상의 불의를 보는 것 같아 참 안타까웠다.
성희롱의 위협으로부터 학생을 구해 내겠다던 교육위원회는 결국 갈 곳 없는 영자를 체육관으로 몰아 넣고 말았다.
일괄적인 행정 처리가 실제의 삶에서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 준다.
무식한 후배 감독의 폭력...
어른이 아니기 때문에, 지켜 주는 부모가 없기 때문에 무식하게 맞고 막 대해지는 가엾은 아이들.
아이들을 지켜 주는 선생님은 오히려 국가로부터 성폭력자로 몰려 분리되어지고 아이들은 무지막지한 감독에게 맡겨지고.
세상은 왜 늘 이 모양으로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이범수의 연기가 좋았다.
잘 생긴 얼굴이 아닌데도 서민적인 연기를 참 잘 한다.
왠지 이 배우는 짠한 역할을 잘 하는 것 같다.
협심증이 얼마나 무서운지, 가슴이 죄어 오는 통증이 얼마나 끔찍한지 실감나게 보여준다.
비인기 종목의 서러움, 금메달리스트가 아닌 자의 비애, 부상당해서 버려진 이의 슬픔.
이제 역도도 장미란 선수처럼 밝은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조안은 여중생으로 나와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어려 보인다.
섬세한 디테일은 좀 부족하지만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충분히 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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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9-10-22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 영화 기억해둬야 겠어요.
이범수, 정말 얼굴은 별로인데도 (머리도 크고..) 연기를 참 잘하는 것 같아요.
맑은 (선한) 눈빛도 참 매력적이구요..

marine 2009-10-23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차우차우님 반가워요^^
이범수는 정말 갈수록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영조를 만든 경종의 그늘 - 정치적 암투 속에 피어난 형제애
이종호 지음 / 글항아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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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그냥 못 지나치고 집어든 책.
제목이 왠지 자극적이고 인위적인 냄새가 나서 지나칠까 하다가 그래도 저자 약력을 보니 사학 전공하신 분이라 읽기로 했다.
지나치게 영조와 경종의 우애 이 쪽으로 포커스를 마주려다 보니 무리한 전개가 곳곳에 보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혀지기 쉬운 경종 시대를 조명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고, 암살설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임을 명확히 밝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겠다.
게장과 감이 상극인데 영조가 둘을 진상해서 경종이 먹고 급체해서 죽었으니까 독살이라는 어떻게 보면 코메디 같은 얘기를 지금도 버젓히 학설입네 주장하는 이덕일 같은 사람들이 있는 이 시점에서 더욱 의의가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의 설명처럼 차라리 몸이 허한데 평소 즐겨 찾던 음식이 나와 간만에 기력 회복하고자 무리해서 먹다가 탈났다는 게 더 현실적으로 들린다.
문제가 되는 인삼차도 저자의 설명처럼 영조가 훗날에도 두고두고 애용하던 나름의 보양식이었으니 형 경종에게 권했다고 해서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이미 즉위 당시부터 세제로 책봉되어 차기 대권 주자로 인정받았고 대비나 노론 세력의 지지도 있으며 경종 역시 오늘 내일 하고 있는 이 마당에 독살이라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무리수란 말인가.
오히려 경종의 죽음을 계기로 몰락한 소론측에서 흘린 일종의 음모론이라 봐야 맞을 것 같다.
특별한 증거도 없이 게장과 감이 상극이네 하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암살당했다고 하는 얼치기 사학자들이 문제다. 

경종은 강팍했던 어머니 장희빈과는 달리 유순하고 소심한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하나뿐인 동생 영조를 아끼고 집권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냈으니 과연 형제간의 우애가 남달랐으리라.
불같은 성격의 아버지 숙종은 형 경종보다는 오히려 동생 영조가 더 닮았던 것 같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80을 넘긴 것도 그렇고, 큰 아들을 낳아 준 여자를 죽은 것처럼 영조도 하나 뿐인 친아들을 죽였으니 과연 비슷한 구석이 많다.
경종이 말을 더듬어 심리적 충격에 의한 실어증이라 해석한 것은 좀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어쨌든 열 네 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서도 국정을 꽉 장악했던 아버지 숙종과는 달리 신하들에게 끌려 다니고 만만해 보이는 면이 없지 않았던 것 같기는 하다.
책의 설명처럼 경종이 유약한 성격이 아니었다면 즉위 첫 해에 벌써 세제 책봉론이 나올 수가 없다.
서른 중반에 사망할 때까지도 자식이 없었던 걸 보면 확실히 경종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형수가 되는 어대비는 시동생 영조를 증오했다고 하는데 이 책에는 오히려 사이가 좋은 걸로 나와 약간 의아했다.
연산군처럼 왕위에 오른 후 어머니의 복수를 할 수도 있었을텐데 신원 회복은 커녕 오히려 신하들에게 그 문제로 공박을 당할 정도였으니 카리스마 있는 왕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재위 4년만에 죽은 건 당시 조선의 상황으로 봐도 차라리 잘 된 일 같기도 하다.
정종을 윽박질러 2년 만에 퇴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태종도 있는데, 영조는 본인의 힘으로 세제가 된 것이 아니어서일까? 책의 내용으로 봐서는 오히려 권력의 자리를 극구 사양하고 목숨을 부지하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군사력을 장악했던 왕조 초기와는 많이 다른 상황이었던 것 같다. 

관심이 덜 가는 경종 시대를 조명해 줬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책이고 비교적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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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치니 : 투란도트
푸치니 외 / Warner Classics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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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 오페라 보는 재미에 빠져 산다.
박종호씨 책을 읽으면서 오페라라는 것에 관심이 생겼는데 아무리 설명을 잘 해 줘도 좋은지 어떤지 감이 안 잡혀 직접 보러 다니기로 했다.
유명 오페라단의 내한 공연 같은 건 너무 비싸 엄두가 안 나고, 대신 국내 오페라단의 할인된 티켓을 단체구매 해서 보고 있다.
의외로 관심있는 분들이 많아서 동호회가 많이 활성화 되어 있어 도움이 많이 된다.
역시 직접 공연장에 가서 보고 나면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이해가 안 가던 것들이 한번에 확 느껴진다.
특히 유명 아리아를 직접 극중에서 들을 때 기쁨이란! 
이번에도 투란도트 공연을 보면서 까페 후기에는 불만이 많았지만, 나는 칼라프의 그 유명한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 를 듣다가 너무 좋아 나도 모르게 손뼉을 막 치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투란도트는 등장 인물들이 많아 합창이 웅장하다.
공연을 본 후 dvd가 마침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길래 대여해서 보게 됐다.
아마 DVD 를 먼저 봤으면 지난 번 카르멘 볼 때처럼 졸았을텐데, 공연을 보고 난 후의 감동이 합쳐져서인지 정말 재밌게 관람했다.
솔직히 지금은 누가 잘 부르고 못 부르고 이런 건 아직 모르겠다.
그렇지만 오페라 자체가 좋다, 나쁘다, 감동적이다, 아니다 이 정도의 기본적인 평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용이 알고 있던 것 보다 훨씬 비극적이고 또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다.
지난 번 <라 보엠> 도 정말 재밌게 봤다.
푸치니의 팬이 될 것 같다.
얼음공주 투란도트의 사랑을 얻기 위한 칼라프의 목숨을 건 도전.
그리고 멀리서 그를 지켜보면서 사랑을 키운 류, 결국 그는 칼라프의 사랑을 위해서 죽고 만다.
오페라가 이렇게 섬세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 줄 처음 알았다.
고문을 받다가 자기도 모르게 칼라프의 이름이 튀어나올까 봐 자진을 택한 류!
공연장에서도 류의 죽음이 너무 슬프고 애절했는데 영상물로 보니까 더욱 안타까웠다.
비록 다들 너무 뚱뚱해 처음에는 감정이입이 살짝 안 됐지만.
사랑을 위해서 죽는다는 게 정말 가능할까?
얼마나 사랑하면 그 사람을 위해서 죽을 수 있을까?
공연을 보면서도 줄곧 류의 희생에 대해 생각했는데 dvd 보면서도 죽음으로 승화된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아들의 목숨을 건 도전을 지켜 보는 아버지 티무르의 연기나 노래도 정말 애절하고 안타까웠다.
당신을 불타 오르게 하는 얼음은 무엇이냐는 수수께끼의 답은 바로 투란도트, 당신이다! 라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영상물로 만들어진 만큼 굉장히 규모가 크고 무대 장치도 훌륭했다.
오페라는 뚱뚱한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라는 말이 딱 맞을 만큼 칼라프를 비롯해 투란도트 공주와 류 역시 다들 한 덩치 했다.
핑, 퐁, 팡 세 사람의 노래도 무척 흥겨웠다.
공연장에서는 이 세 사람 나올 때 졸았는데 DVD로 가까이 보니까 무척 유쾌한 장면이었다.
한국어 자막이 달린 dvd 가 의외로 많지 않아 좀 놀랬다.
익숙해지면 굳이 자막이 없어도 될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변역물이 좀 많이 나와서 쉽게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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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나비처럼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대학원 수업이 연기됐는데 나만 모르고 청량리까지 꾸역꾸역 갔다가 허망하게 돌아오는 길에 본 영화다.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명동 CGV에서 극장 찾느라 헤매다가 정말 우여곡절 끝에 봤다.
디지털이라 그런가 화면이 생생하고 색감이 좋았다.
조승우와 수애의 모습도 무척 예쁘고.
그러나...
결정적으로 시나리오가 너무 약하다.
참, 어떻게 저런 걸 시나리오라고 썼을까 싶을 정도로 유치찬란하고 개연성도 없고 애틋한 러브 스토리도 없고 정말 실망스럽다.
조승우는 여전히 매력적인 웃음을 날리고 있지만, 대체 뭐가 아쉬워 이런 영화에 출연했는지 모르겠다 싶을 만큼 완성도가 떨어졌다.
민비로 나오는 수애는, 단아하고 고운 얼굴이 잘 어울리기 했지만, 영화 속에서 비중이 너무 작아 과연 주인공인가 싶을 정도다.
임오군란 때 민비를 업고 충주까지 달린 무장이 있는데, 이 사람과의 로맨스가 드라마 <명성황후>에서도 나온 바 있다.
아마도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다.
마지막에 조승우가 쓰러지지 않기 위해 칼을 자신의 발에 박고 말뚝처럼 서 있는 장면은, 왕비를 지키려는 충성심과 애정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아무리 총을 맞아도 쓰러지지 않는 모습이 코믹하기까지 했다.
이런 영화에 비하면 <쌍화점>은 오히려 완성도가 높은 영화다.
대원군으로 나온 천호진은 내가 좋아하는 배우라 스크린에서 얼굴을 보니 반가웠다.
맨날 유동근만 보다가 다른 사람이 연기하는 대원군을 보니, 신선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대원군이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쳐들오 오는 장면은, 진짜 코메디 같았다.
예전에 <황후화> 볼 때 중국놈들, 진짜 뻥도 세다, 아무리 영화라 해도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어야지 싶었는데 우리가 딱 그 짝이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대충 그리면 영화가 되는 건 아닌데 말이다.
을미사변 때 대원군의 수하가 처음에는 일본 앞잡이가 됐다가 무명이 궁전 앞을 홀로 지키고 있는 걸 보고, 칼 끝을 돌려 일본군에게 휘두르다 죽는 장면은 가슴이 절절했다.
민비가 시해당하지 않았으면 아마도 나라 망하게 한 요부로 기록됐을 것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대의 나이에 왕비의 몸으로 칼맞아 죽었다는 사실은 너무나 비극적이다.
어쩌면 임오군란 때 잡혔더라도 성난 폭도들에게 그런 꼴을 당했을지도 모르지만. 
<스캔들> 처럼 화려한 볼거리라도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순전히 컴퓨터 그래픽에만 의존하고 너무 돈을 안 썼다.
진정 재밌는 영화란 이렇게도 귀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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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 3 - 러시아의 세기
브라이언 모이나한 지음, 애너벨 메럴로.세러 잭슨 사진편집, 김남섭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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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사진 보다는 글을 더 좋아하는지라 이런 포토집은 썩 내키지가 않는다.
사진이 많으면 상대적으로 텍스트가 소홀해져 전체적인 글의 내용이 빈약해진다.
이 시리즈 중 처음에 나온 중국 편을 사 놓고도 선뜻 못 읽었던 것도 그런 이유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현대사를 밝히는 드문 사진들이라는 점에서, 특히 중국이나 러시아, 독일처럼 현대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국가들의 사진이라는 점에서 한 번은 읽어야 할 것 같았다.
표지로 실린 저 스탈린의 가족 사진을 봐도 흥미가 솔솔 생긴다. 
결과적으로 러시아 편은 아주 만족스럽다.
러시아의 20세기를 큼직큼직한 사진들과 충실한 본문으로 대강의 개요를 잡아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번역의 문제인지 아니면 저자 자신이 비유를 많이 써서인지 의미 전달이나 표현이 명확하지 않은 느낌이 많았다.
역주를 보니 영국 출신의 저널리스트라 하던데 기자 출신이라 어떤 현상을 정면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압축해서 우화 등을 통해 좋게 말하면 촌철살인 식으로 짧고 강한 표현을 쓰는 것 같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스탈린이 얼마나 나쁜 놈이고 소련 체제가 얼마나 크게 실패를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가는데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비꼬고 조롱한다는 느낌을 피할 수가 없었는데 역시나 번역하는 사람도 그 점을 지적했다.
결국 모든 것은 결과로 말하는 것인가.
스탈린의 잔인한 숙청은 피해망상자에, 히틀러 보다 더 나쁜 놈이라는 분노가 들끓면서도 너무 희화화 시키고 극적인 표현을 많이 써서 약간의 반동이 일기도 했다.
그 뒤를 잇는 흐루스쵸프나 브레주네프, 고르바쵸프, 옐친 등의 러시아 현대사도 정말 재밌게 읽었다.
특히 고르바쵸프 시대가 나오자 개혁, 개방으로 대표된 놀라운 소련의 변신, 혹은 거대한 연방의 해체, 몰락 등을 90년대부터 내가 직접 뉴스로 보고 들었던지라 더욱 생생한 느낌이 들었다.
소련이 무너지다니, 이른바 냉전 시대의 학생이었던 나로서는 굉장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미국과의 군사 경쟁 때문에 실생활의 수요를 희생하여 군수품에 투자할 수밖에 없었던 소비에트 연방의 딜레마.
계획경제가 그 거대한 나라를 제대로 돌아가게 만든다는 목표 자체가 어쩌면 불가능 했을지도 모르겠다.
제정 시대로 아니고 이렇게 급변하는 최첨단 자본주의 시대에 말이다.
지금의 북한처럼 결국은 비효율적인 생산 시스템과 무리한 군수업체 투자가 거대 연방의 몰락을 가져왔고 형제애가 사라진 대신 각 지역의 민족주의와 인종주의가 발흥하여 체첸이나 그루지야 등의 소요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러시아에서도 마약이나 마피아, 포르노 산업 등의 어두운 분야가 활개를 치고 보드카에 불행한 삶을 맡기며 출산율과 평균수명은 계속 떨어져 가고 있다.
차라리 기강이 잡힌 스탈린 시대가 낫겠다는 푸념이 섬뜩하면서도 불행한 러시아의 현실을 정확히 보여주는 기분이 든다. 

영화 <프라하의 봄>에서 보여준 동유럽의 반란이 브레주네프 시대였고, 파스테르나크가 노벨상을 거부하고 유리 가가린이 우주 비행에 성공한 것이 흐루시초프 시대였다는 것 등의 에피소드가 독서의 흥미를 돋웠다.
유리 가가린의 자서전을 읽었을 때의 내 감동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도 가가린의 성공은 부르주아 귀족 계급에 대한 노동자 층의 승리라고 묘사되어 있다.
이제 평범한 강철 공장의 노동자 아들도 최고의 교육을 받고 러시아의 영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만큼 세상은 평등해졌다.
흐루스초프 시대의 특징은 잔인한 스탈린 시대의 숙청을 청산하고 공포로부터 해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뒤를 잇는 브레주네프는 당의 고위 간부들의 일상적인 부패, 특권 의식 등으로 대표된다.
흥청망청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시베리아 등지에서 개발된 금광과 석유 덕분이다.
국가의 발전 대신 또다른 특권층을 양산해 부패 공화국으로 전락한 소련의 몰락이 안타깝다.
뒤를 이은 고르바쵸프 역시 개혁과 개방을 통한 체질 개선을, 연방의 해체 없이 순탄하게 끌고 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뉴스에서 고르비의 몰락을 듣고 정말 의아했는데 책에서 쿠데타와 그것을 진압하고 정권을 잡은 옐친의 이야기가 간략하게 나온다.
그 후에 푸틴 시대는 실리지 않았다.
어쨌든 역자의 말대로 제정 러시아에서 시작된 20세기는 공산주의라는 전대미문의 거대한 실험을 거쳐 결국은 실패로 끝났고 21세기를 맞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에 소련이 이룩한 평등이나 복지제도 등의 성과는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바지선을 끄는 인간 짐말이라 표현된 노동자들의 표정은, 정말로 레핀이 묘사한 딱 그 표정이었다.
<쿠르스크 현의 십자가 행렬> 역시 신앙에 특별한 복종심과 존경심을 갖고 있는 러시아 민중의 모습을 너무도 잘 표현했다.
이런 위대한 그림들이 여전히 덜 알려지고 명성이 덜 한 걸 보면, 서방 세계에서도 러시아는 변방이라는 느낌이 든다.
러시아에 대한 관심이 새록새록 생긴다.
러시아정교라는 독특한 신앙심과 사회주의 체체야 말로 러시아를 이해하는데 필수 요소가 아닐까 싶다.
이 흥미로운 거대한 나라에 대해 좀 더 많이 알아보고 싶다.
다큐 포토 세계사의 다른 시리즈도 봐야겠다.
러시아 못지 않은 전제주의 국가 중국 편도 흥미롭고 히틀러의 나라 독일 편도 괜찮을 것 같다.
감자 대기근으로 대표되는 아일랜드 편도 뭔가 찡한 사연들이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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