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미스테리 - [초특가판]
기타 (DVD)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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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이런 기록물이 있을 줄이야...
아빠가 추천해 준 DVD 목록 중 하나인데 평소 좋아하던 화가라 아무 생각없이 틀었다가 형식에 깜짝 놀랬다.
설명없이 계속 피카소의 그림을 창작 과정부터 쭉 보여준다.
그리고 놀랍게도 피카소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워낙 오래 살았으니 20세기 후반부에도 그의 모습을 당연히 볼 수 있었겠지만 그 명성이 너무 대단해 굉장히 오래 전 사람일 거라는 느낌이 든다.
책에서 보던 것과 똑같은 사람이 붓을 들고 캔버스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너무 신비로워 한참을 멍하게 들여다 봤다.
어쩜 이런 영화를 만들 생각을 다 했을까.
56년 깐느 영화제 특별상 수상작이다.
천재 음악가가 어떻게 음악을 만들었는지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천재 화가는 그 손끝을 보면 된다는 첫 멘트가 인상적이다.
대체 무슨 궤변인가 했더니 놀랍게도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보여 준다.
존 버거의 책에서 봤던 미녀 앞의 난쟁이 그림이 있어 반가웠다.
책에서는 흑백 도판으로만 봤는데 색이 칠해진 원본은 훨씬 매력적이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여백과 색감에 있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을 하나하나 보여주다 보니, 안 돼, 그만, 그걸로도 충분해 자꾸 이런 소리가 나왔다.
동양화 같으면 여백으로 남겨 뒀을 것 같은데 계속 덧칠하고 형태를 채워 넣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래서 더 강렬하고 입체적인 느낌을 주지만.
인물을 그릴 때도 단순히 한 번에 쭉 그리는데 아니라 일단 정교하게 데생을 한 다음에 두꺼운 붓으로 형태를 따라 그리는 걸 보고 감탄했다.
역시 쉬워 보이는 그림도 쓱 대충 문지른 게 아니었다.
작업 과정을 보여 주니까 무척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그 색감!
그리고 기발한 구상과 배치!
어쩌면 현대의 천재 화가란 바로 그 절묘한 공간 구성과 색감에 있지 않나 싶다.
실제와 똑같은 그림은 너무 오랫동안 봐 와서 이제 대중들은 시시해진 거다.
미의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신선한 뭔가를 원하는 거다.
그리는 과정을 보면서 작품의 창조 과정을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고 카메라가 도는데도 몇 시간 만에 뚝딱 하고 한 편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그 속도감에 깜짝 놀랬다.
무엇보다 실물의 피카소를 직접 본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나는 피카소가 90이 넘게 장수하고 죽기 직전까지 명성을 놓치지 않은 점을, 말하자면 그 엄청난 세속적 성공 때문에 화가에게 매력을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드는 생각은 피카소처럼 강렬하고 자극적인 색감과 구도의 그런 스타일을 내가 선호하는 것 같다.
렘브란트의 명상적 그림 보다는 루벤스나 뒤러의 화려하고 정교한, 역동적인 그림을 선호하듯, 현대 회화에서는 단순하면서도 힘이 있고 무엇보다 강렬한 원색 계열의 색감을 좋아한다.
피카소 그림은 실제로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꼭 보고 싶다.
워낙 열정적인 인물이고 장수하다 보니 작품도 엄청날 거다.
참 인상적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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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찰 현판 2 한국의 사찰 현판 2
신대현 지음 / 혜안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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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보다 더 재밌다. 
1편에서 기본적인 주제를 충분히 인지했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게 2편을 읽을 수 있었다.
시간이 없어서 가운데 1/5 정도는 못 읽어서 무척 아쉽다.
워낙 안 알려진 책이라 경기도 사이버 도서관의 상호대출 서비스가 없었다면 못 읽었을 것이다.
경기도 내의 도서관끼리 책을 빌려 주는 시스템인데 정말 놀라운 서비스다. 

여기 소개된 절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절이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따지고 보면 관광갈 때 놀이공원 빼면 죄다 이런 절들이다.
우리나라처럼 산이 많은 곳에 거기 세워진 절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조선 시대 숭유억불 정책 때문에 또 현대에는 미국의 영향령에 따른 기독교 위세에 눌려 왠지 쇠락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4세기 무렵 고구려 땅에 불교가 전해진 이래 160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온 사찰의 역사는 참으로 놀랍다.
서양 문화를 알려면 기독교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역설하는 기독교인들이 대체 왜 한국 전통 문화의 근간이 되는 불교에 대해서는 이토록 적대적이고 무지한지 알 수가 없다.
몽골 침입이나 임진왜란 등의 전란이 없었다면 신라, 고려 때 불교가 융성하던 시절의 절이나 불상들이 훨씬 더 많이 전해질텐데 참으로 아쉽다.
현대사 직전의 전통 왕조가 불교를 배척하는 바람에 고급 문화로 편입하지 못하고 민간에서 근근히 명맥을 이어온 불교의 실정은 이런 현판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저자의 한탄처럼 절의 연혁을 밝히는 현판들이 역사적으로도 충분히 연구할 가치가 있을텐데 버려지고 누가 관심도 갖지 않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요즘 일상사 연구가 유행을 타면서 각 문중에 보관하던 고문서들이 빛을 발하는 만큼 절의 현판에도 관심을 가져 활발하게 연구가 이뤄지면 좋겠다. 

현판의 어려운 한문을 능숙하게 해석하는 저자의 실력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한 사람의 작가로서 글쓰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간간히 불교의 쇠락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지나치게 의미 부여를 하는 모습이 보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매끄러운 글솜씨와 흥미진진한 이야기꾼으로서 재능을 보여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
내가 한문을 좀 알면 더 재밌게 읽었을텐데 워낙 지식이 전무해 해석한 것만 읽었다.
나중에 절에 가면 이제 현판도 눈여겨 보고 절의 연원을 설명하는 해설문도 꼼꼼히 읽어볼 것이다.
올 초에 놀러갔던 부여의 부소산에 있던 고란사는 고란초가 많이 나서 절 이름도 그렇게 붙였다고 한다.
휙 보고 지나갔는데 백제 때부터 있던 절이라니, 좀 유심히 볼 걸 아쉽다.
남해군에 있는 용문사는 원래 원효대사가 보광사를 지었는데 조선시대 유생들이 남해 향교와 마주보는 자리에 있다고 옮기라고 시위하여 어쩔 수 없이 절을 옮긴 후 다시 지어진 이름이다.
신라 시대 때부터 있어 왔던 천 년 역사의 절을 이제 갓 지어진 향교하고 마주 본다는 이유로 옮기라니, 당시 스님들이 느꼈을 분노와 좌절감이 얼마나 컸을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조선 시대 불교가 왕실의 비호를 받고 유생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종교로써 의의를 갖고 있었으므로 그 명맥을 이어가긴 했으나 이런 비화를 들을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 없다.
여주에 있는 신륵사는 세종대왕의 묘인 영릉의 원찰로 지정되어 왕실의 후원을 받았다고 한다.
뒤로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여강이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이고 오늘날에는 절을 한 바퀴 도는 여강 보트 투어도 하고 있다니 한 번 가 보고 싶다.
예종이 재위 1년만에 죽고 장지가 할아버지 세종대왕의 바로 옆으로 결정되자 어머니 정희왕후가 세조의 뜻을 받들어 시아버지의 묘를 여주로 옮겨 크게 단장하고 그 원찰로 신륵사를 지정했다고 한다.
이 때 절이 크게 중건됐다.
영릉에 갈 때 같이 들려 보고 싶다.
이 사찰에는 조선 후기 세도가인 김병기의 현판이 걸려 있다.
김병기는 순원왕후의 아버지인 김조순의 손자로, 당시 세도가였던 김좌근의 양자로 들어간다.
스물 아홉에 문과에 급제했는데 보통 장원급제를 해도 종 6품 벼슬에 임명됐던 것에 비해 (얼마나 영광스러웠으면 出六 이라는 명칭까지 있었다고 한다) 첫 벼슬을 사옹원도정이라는 정 3품으로 시작했으니, 그 가문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만 하다.
헌종 때 세도 정치를 하던 순원왕후가 고모인데, 불심이 깊으셨는지 김병기에게 명하여 송광사 중건을 후원했다고 한다.
현판에 쓰여진 이런 역사적 사실들이 무척 흥미진진하다.
저자가 해박한 지식으로 역사적 인물과의 관련성을 설명해 주니 책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순천 송광사는 2000 칸이 넘는 대찰인데 당시 충청도 관찰사였던 홍석주의 현판이 걸려 있다.
송광사는 삼보사찰 중 열 여섯 분의 국사를 배출한 승보사찰로 잘 알려졌다.
홍석주는 풍산 홍씨로 혜경궁 홍씨의 일문이고 그 동생 홍현주가 정조의 외동딸인 숙선옹주의 남편 영명위다.
정승을 지내고 학식도 높아 당대의 거물 정치인이었는데 충청도 관찰사로 있을 때 송광사를 방문하고 그 풍경과 절 규모에 감탄하여 현판을 남겼다.
이 때 마중나온 승려가 200명이 넘었다고 하니 얼마나 큰 절인지 알 만 하다.
현판이 보다 전문적으로 연구된다면 이런 역사적 사실들이 더 많이 발굴되고 조선 후기의 시대상을 더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김정희가 쓴 현판 이야기도 나온다.
양산 통도사에 화악 스님의 진영도가 있는데 그 분을 모신 곳에 현판을 썼다.
그 중 당나라 어떤 스님이 추워서 목불을 땔감으로 쓴 걸 두고 허상 대신 실제를 구하라는 고사가 등장한다.
어렸을 때는 이 말이 맞다 생각했으나 나이 들어 다시 생각해 보니, 像 도 하나의 실체일 뿐 굳이 허상이네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정말 모든 상징을 다 무의미 하다 배격하고 보이지 않는 실체를 찾아라 하는 것도 말을 위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문적 깊이가 깊은 대학자만이 평할 수 있는 말 같다.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을 책이고 많이 알려져 우리 절의 내력에 대해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갖길 바란다.
기왕이면 컬러 사진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전통문화로서의 불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대접받고 연구되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불교 관련 서적들을 더 많이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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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 중국문화 16
천팅여우 지음, 최지선 옮김 / 대가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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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워낙 글씨를 못쓰기  때문에 워드 프로세서가 개발된 게 너무 고마운 사람으로써 서예는 단순한 붓글씨가 아니라 일종의 예술로 느껴진다.
예로부터 서예는 글을 전달하기 위한 문자 이상의 의미를 넘어서 마음을 가다듬고 글씨 자체를 즐기는 예술의 하나로 인지되어 왔고 심지어 이 책에서는 모든 과학 분야의 기본 언어와도 같은 수학으로 비유한다.
서예는 모든 예술 분야의 수학과도 같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어떻게 좋은지는 모르겠다.
특히 행서나 초서 같은 경우는 말 그대로 너무 흘려 쓰기 때문에 무슨 글자인지도 모르겠고 어떤 게 잘 된 건지, 뭘 감상하라는 건지 포인트도 못 잡겠다.
다만 해서 같은 경우 부드럽게 쓰여진 조맹부체는 참 예쁘다, 유하다는 느낌은 든다.
<조선 왕실의 묵향> 이라는 우리나라 서예책에서 문종의 글씨가 정말 유려하고 둥글둥글한 느낌이 무척 아름답다는 생각은 했었다.
반대로 수양대군은 같은 조맹부체라도 힘이 있고 반듯반듯 해서 정말 그 사람의 성격과 기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이 정도 수준을 넘어가면 사실 나에게는 언어 유희로 밖에는 안 들린다.
저자는 서예의 미학적 의의를 추상성에 뒀는데 충분히 이해되는 바다.
다만 서양의 추상주의 미술 같은 경우는, 형태가 주는 의미 보다는 색감에서 오는 감흥이 크기 때문에 먹의 통일된 검정색 대신 쓰여진 형태에서 미의식을 찾는 서예와는 감상 포인트가 좀 다르지 않나 싶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대체 뭘 즐기라는 건지, 심지어 글씨체가 어떻게 다른지도 잘 몰랐는데 찬찬히 짚어주니까 약간은 이해가 된다.
아마 내가 직접 붓글씨를 써 봐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초등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몇 번 써 본 게 전부인 나로써는,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그 진짜 미학을 느끼기에는 역부족이다.
그 때도 정말 어렵고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작게 쓰는 펜글씨도 잘 못 쓰는데 큰 붓을 들고 정자체로 화선지에 쓰는 붓글씨는 생각만 해도 어렵다.
워낙 글씨를 못 쓰기 때문에 서예는 감히 엄두가 안 난다.
다만 동양만의 독특한 예술 분야인 서예를 지금보다 더 잘 감상할 수 있는 눈이 길러지길 바랄 뿐이다. 

생각해 보면 중국의 한자는 참으로 놀랍다.
저자의 설명대로 비슷한 시기에 생긴 이집트 문자나 수메르 문자, 마야 문자 등이 전부 과거의 기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여전히 중국의 한자는 실생활에서 쓰이고 심지어 예술로까지 승화되었다.
갑골문에서 시작해 오늘날 중국 대륙을 넘어 동아시아에까지 전파된 한자의 위대함에 새삼 놀란다.
뒷부분에 한국과 일본의 서예 전통이 첨부되어 무척 반가웠다.
말로만 듣던 신라의 김생은 중국에까지 이름이 퍼질 정도로 유명했던 모양이다.
書聖 으로 일컫어지는 왕희지의 어릴 적 스승이 위부인이라는 여성이었다는 점이 신기하다.
왕희지의 아들 왕헌지 역시 서예의 대가였는데 심지어 아버지 보다 자기 글씨가 낫다고 자신할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보통 유교적 효 개념 때문에 아무리 잘해도 부모보다 자신을 낮추기 마련인데 자신의 글씨에 대한 자신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만 하다.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인 측천무후 역시 글씨를 무척 잘 썼다고 한다.
당 태종 이세민도 명필이었다는 걸 보면 역시 영웅호걸들은 재주도 남다르다. 
각주에 보면 측천무후는 고종의 아내로써 지위이기 때문에 15년 간이나 황제위에 오른 이력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무측천, 측천여황이라 칭한다는 걸 새롭게 알았다.
그러고 보니 중간에 국명을 바꾸고 명실상부한 황제가 됐으니 정당한 명칭으로 불러 주는 게 맞을 것 같다.
얼굴도 예쁘고 글씨도 잘 쓰고 배포도 컸으니 과연 고종이 아버지의 후궁이었으나 황후로 맞은 이유를 알겠다. 

약간 현학적인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 서예라는 예술 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는 감이 잡히는 기분이다.
책을 많이 읽기 보다는 아무래도 직접 붓글씨를 써 보고 작품을 많이 감상해야 눈이 좀 떠질 것 같다.
수천 년 전의 문자가 현대 사회에서도 그 힘을 잃지 않고 오히려 예술로 승화되어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랍고, 그 문화를 지켜온 중국 문명의 유구함에 대해 다시 한 번 감탄하는 바다.
오늘날 미국 위주로 세계화가 이루어져 학문이든 예술이든 일단 미국으로 건너가 그 문화를 흡수해 오면 가장 앞서가는 사람으로 대접받듯, 그 옛날 다른 세계와의 교류가 일체 없던 시절 중국 문화에 대한 선망과 동경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가끔 조선 시대 선비들의 사대주의 사상을 접하면 괜시리 주체적이지 못한 것 같아 화도 나고 우리 역사에서도 유난히 중국을 대등하게 보려고 많은 시도를 하지만, 당시 관점에서 중국이 얼마나 거대하고 압도적이었을지를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그 엄청난 문명 속에 함몰되지 않고 우리만의 독자성을 오늘날까지 지켜왔다는 사실이 평가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동북공정 때문에 중국과 껄끄러운 관계지만 대국으로서의 자신감을 회복해 패권주의를 버리고 보다 큰 동양 문화적 틀에서 타 문화를 감싸안는 넉넉함을 보이길 기대한다.
중국 문화를 소개하는 이 시리즈는 가능하면 다 읽어 볼 생각이다.
책 분량도 많지 않고 사진이 많아 보기 편하고 무엇보다 중국 학자들이 직접 쓴 책이라 전문성 면에서 믿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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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세계사 - 우리가 해결해야 할 전 지구적 이슈와 쟁점들 르몽드 세계사 1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지음, 권지현 옮김 / 휴머니스트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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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래전부터 읽어야지 벼르고만 있다가 드디어 집어 들었다.
일전에 봤던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 과 비슷한 포맷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세계 문제에 관심이 많은 건지 그 쪽 책만 번역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하여튼 지도와 간단한 본문이 결합되어 시각적으로 읽기 좋다.
다만 내가 지도와 도표에 워낙 약하기 때문에 아주 몰입하지는 못하고 있다.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 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정말 세계는 넓고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다.
세계화라고 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의 세계는 중국과 일본, 미국 정도인 것 같다.
미국의 헤게모니 장악이 갈수록 약해지는 지금, 대한민국도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 시야를 좀 더 넓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미국이 특별히 한국을 우호적인 국가로 생각하는 것 같지도 않고 반미 감정도 악화되는 이 마당에 세계화 하면 미국화로 착각하는 지금 분위기도 반전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중국도 다른 아시아 국가나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맺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하여튼 미국 일변도에서 좀 벗어나야 한다.
가깝고도 먼 나라인 중국, 일본과의 협력 관계 정립도 매우 중요할 것 같고.
현재 같은 반일 감정 혹은 동북공정, 혐한 분위기는 3개국 모두에게 전혀 득이 될 것 같지 않다. 

첫 장에 언급된 지구온난화는 일단 화석연료 배출에 의한 일종의 환경오염이라는 학설에 대해서는 나는 반대한다.
그러므로 생산성이 매우 낮은 대체에너지 확산이라는 해결책에도 반대하고 그렇다면 차라리 온실가스 배출이 아예 없는 원자력 발전의 비율을 높이자는 쪽에 찬성할 것이다.
한국은 6대 원자력 생산국에 든다고 한다.
자국내 원자력 비율이 가장 큰 곳은 프랑스로, 무려 75%를 원자력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문제는 이 원자력이 핵무기에도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인데 핵폐기물 처리와 함께 핵무기 확산은 해결해야 할 숙제다.
북한의 핵무기에 대해 오히려 한민족이 핵을 갖게 됐다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는 실정이니, 이런 식으로 핵무기를 자국 방위력 확장으로 인식한다면 핵전쟁이라는 공포도 커질 것 같다.
대한민국은 물 부족 국가라는 TV 광고에 대해 아니다, 음모론이다, 이런 네티즌 의견도 몇 번 봤는데 이 책에 따르면 물 부족 국가 맞다.
해수의 담수화 기술이 아직은 요원한 시점에서 수도 산업의 민영화가 가격 상승에 따른 소비 감소를 기대할 수 있는 방안일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가난한 사람들의 물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으니 이래저래 쉬운 문제가 없다.
에너지 부족에 대해서도 원유 값을 올리면 극빈국에서는 기본적인 수요량에도 미치지 못하게 되므로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반면 원자재 값의 하락이 원료를 수출하는 극빈국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다는 측면도 있다.
특히 선진국의 농업 보조금이 3세계의 농산물 수출 경쟁력에 큰 타격을 입히고 있다.
이 농업 보조금은 다른 책에서도 폐지되야 한다는 비판을 읽은 적이 있는데 과연 관세 폐지하고 보조금 없애면 분신 자살하겠다고 시위하는 자국 농민들의 불만은 어떻게 잠재울 것인지.
문득 드는 생각이, 선진국의 인구 감소가 심각한 이 마당에 이민이 활발해지면 어느 정도 균형이 맞지 않을까 싶다.
아프리카나 아시아는 인구가 넘쳐나지만 먹고 살 길이 없고, 대신 선진국은 부는 충분한데 일할 노동력이 없으니 3세계에서 선진국으로 인구 이동을 늘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그렇게 외치던 세계 평등, 빈곤 퇴치에 큰 일조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정작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는 갈수록 이민을 제한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한국 역시 출산률이 심각하게 줄어들고 일선의 노동력이 부족한 실정이니 외국에 노동 시장 개방하는 걸 보다 적극적으로 실시해야지 않을까?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수순이고 또 그래야 보다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미국의 인종차별만 비난했지 정작 한국 내의 인종차별은 무심한 편인데 이제 우리도 우리의 편견에 눈을 떠야 할 때다. 

산업폐기물을 3세계에서 처리한다는 말은 <W> 나 <지식e> 에서도 봤었다.
인도나 중국 노동자들이 낡은 전자제품들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카드뮴, 수은 등에 노출되어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는 것이다.
하여튼 잘 살고 볼 일이다.
3세계에서는 의료 이용도 어려운 실정인데 잘 사는 나라 쓰레기 처리하다가 질병에 노출된다는 현실이 참 비참하고 서글프다.
대한민국도 6.25 등의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오늘날 잘 사는 나라 대열에 합류하여 큰 소리 치고 있지만 떵떵거리는 만큼 어려운 나라에 대해서 원조를 늘려야 할 것이다.
아직도 국제 난민 돕고 아이들 후원한다고 하면 우리나라 고아나 돌봐라, 라는 식으로 어처구니 없는 비아냥이 돌아오는 속좁은 사회이고 보면 국가적인 차원의 3세계 원조 운운하면 다들 거품 물고 쓰러질 것 같다.
하지만 정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대한민국은 전쟁 이후 국제 사회의 원조에 의해 경제 성장을 이룬 대표적인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받은 만큼 베풀어야 할 게 아닌가.
아니면 잘난 척을 말든가.
여전히 아프리카 등에서는 기아나 빈곤,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서구 사회가 18세기 이래 식민지 정책에 의해 오늘날의 부를 이룬 만큼 책임감을 갖고 세계의 빈곤 문제에 대해 보다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임해야 할 것이다.
NGO 마저 자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지원 여부가 결정되는 게 현실이고 보면 미국식 민주주의의 확산이 과연 현지 사정에 얼마나 적합한지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이나 어쨌든 아무 것도 안 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단체가 후원을 빌미로 선교랍시고 종교를 퍼뜨리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는 정말 의문이지만 하여튼 가만 있는 것보다는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
이슬람 파시즘이라는 단어가 현재 원리주의의 문제점을 잘 표현하는 것 같다.
문제는 이 원리주의가 이슬람에만 있는 게 아니라 미국 등지의 개신교 광신도들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이다.
왜 부시 같은 근본주의자 성향의 인물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나라의 대통령이 됐는지 모르겠다.
책에 지적한 바대로 에이즈 지원책이 낙태금지와 맞물려 있다는 것도 동기가 순수하지 못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오바마 당선 이후로는 미국 내 분위기가 좀 나아지려나?
미국이 유럽보다 경제적으로 앞서가긴 하지만 복지 정책 등에서 뒤지고 사회 분위기도 덜 진보적인 것은 어쩌면 이 놈의 기독교 근본주의에 원인이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러니 이라크 전쟁 같은 걸 지지하고 악의 축 운운하고 9.11 테러 같은 극단적인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겠는가.
이슬람 국가 같은 신정주의 체제는 아니라 하더라도 일정 부분은 광신도적 느낌이 든다. 

냉전이 해소된 후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력한 억압 세력이 없어지니 잠들어 있던 각 지역의 분쟁들이 터져 나와 곳곳에서 내전이 터지고 있다.
전쟁 없는 시대가 없었던 걸 상기해 보면 오늘날의 내전도 비단 우리 시대만의 문제도 아니고, 세계평화 따위는 인류가 멸망하는 날까지 절대로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핵무기가 자국 방위력 향상이라고 믿는 민족주의 세력이 늘어나면 정말 무시무시한 세계대전이 벌어질 것이다.
기존의 전쟁과는 비교도 안 되게 그 피해가 엄청날 것이다.
터졌다 하면 규모나 피해가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클 것이므로 분쟁 완화를 위해 국제 사회의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또 무엇보다 빈곤 퇴치를 위해 전지구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말 그대로 지구촌이고 세계 경제가 하나의 단위로 묶여 있으니 문제점도 같이 해결해야 할 것이 아닌가.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이 실물 이익 보다 금융 이익이 훨씬 크다는데 있다는 역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어쩌면 주식이나 펀드로 떼부자가 되고 땅값 상승으로 하룻밤 사이에 벼락부자가 되는 것과도 비슷한 현상일 것 같다.
실제적인 생산물을 내놓지 못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결과로 엄청난 이득을 획득하는 현재의 시스템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갈수록 커지는 빈부격차의 이 엄청난 간극도 결국 신자유주의가 확산될수록 자본주의가 고도화 될수록 계속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들 문제네 하면서도 정작 기득권을 갖고 있는 집단이 포기하려고 하지 않으니 앞으로의 인류 미래도 대책없이 낙관적이지만은 않을 것 같다.
가끔 시민단체나 사회운동가들의 공상적이고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을 접하면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명분론자들로 느껴져 짜증이 나다가도, 그나마 이런 비판이나 자성의 목소리조차 없으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막다른 골목으로 마구 달려갈 것 같아 의식있는 시민들의 자각이 더욱 필요함을 느낀다.
하여튼 모르면 당할 수 밖에 없으니 많이 배우고 이런 세계 문제나 경제에 대해서도 교육을 해야 한다.
왜 교육 문제가 당면한 심각한 현안인지 알 것 같다. 

여러가지 세계 문제점들에 대해 잘 설명된 좋은 책이고 다소 난잡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이런 비판의 목소리들이 많이 나와 우리 사회의 건전한 대안이 되길 바란다.
국내에서는 <W>나 <지식e> 등이 출간됐는데 에피소드 식의 나열을 넘어서 보다 분석적이고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바라본 세계화, 지구촌 문제점 등이 많이 출간되길 기대한다.
그래야 좀 더 열린 사회가 되고 세계화란 것에 대해 발맞춰 나가지 않겠는가.
세계화가 곧 미국화라는 편견에서도 좀 벗어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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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Goya - 고야가 말하는 고야의 삶과 예술 I, 시리즈 2
다크마어 페겔름 지음, 김영선 옮김 / 예경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일단 나에게는 어려웠다.
가끔 미술에 관한 번역책을 읽을 때 저자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이해가 잘 안 될 때가 있는데 이 책이 딱 그렇다.
적어도 미술에 관해서라면 국내 저자가 쓴 책이 더 와 닿는다.
이를테면 김광우씨 책처럼 말이다.
글 쓰는 스타일의 차이인지 아니면 내가 좀 전문적인 서적을 읽어서인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며칠 전에 봤던 <생각의 나무>에서 나온 고흐 화집이 너무 좋아 역시 큰 도판으로 봐야겠구나, 싶어 평소 관심있던 고야의 화집을 골랐는데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도판은 훌륭하다.
역시 큼직큼직하게 확대되어 그림 감상하기는 좋았다.
하지만 본문 내용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친절하지 않은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좀 더 쉽게 써진 고야 관련 서적을 읽어봐야겠다. 

19세기 에스파냐의 분위기가 그래서인가?
미신적인 것, 종교재판, 자학적인 고행, 마녀사냥, 전제정치...
뭔가 음울하고 광기어린, 낙후된 무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투우 경기도 축제 같은 전통으로만 생각했는데 책을 보면서 느낀 것이, 왠지 이것도 살육을 통한 피의 분출이라는 느낌이 든다.
하나의 편견일까? 아니면 정말 당시 사회가 그랬을까?
<고야의 유령>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도 이런 무시무시한 종교적 광기와 전근대적 관습이 성행하는 에스파냐의 사회상이 잘 드러난다.
정말 고야의 암울한 그림과 딱 어울린다.
특히 에칭 판화들이 무시무시하다.
뭔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무서운 느낌이 든다.
후반부로 갈수록 청력 상실이라는 장애가 더해져 더욱 내면으로 침잠하고 더 무서워진 것 같다.
이를테면 이런 것, <날아다니는 마녀들> 같은 작품, 악령들이 귀신들린 사람을 들고 올라가는 장면인데 설명에는 미신에 대한 계몽주의 지식인들의 거부감과 매혹을 동시에 보여 준다고 되어 있지만, 내가 보기엔 음침하고 무시무시해서 정말 이런 그림이 당시 유행이었다면 사회 분위기에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동시대에 그려진 다른 작품들도 같이 공부해 보고 싶다.
엘 그레코의 그 기괴한 그림들이 에스파냐에서 그려진 이유를 알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옷을 입은 마야> <옷을 벗은 마야> <알바 공작부인> 같은 색감 좋은 초상화들이 좋다.
보기에 편안하다.
고야 역시 초상화가로써 이름을 날렸고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한다.
특히 <오수나 공작의 가족> <마누엘 오소리오> 등의 초상화가 너무 마음에 든다.
18세기 말 정도 되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김홍도 등이 활동할 시기인데 먹으로 그린 한국의 초상화 전통과는 확실히 보는 관점이 매우 다름을 느낀다.
특히 한국의 전통 초상화는 손을 감춘 반면 서양의 초상화는 손의 묘사가 탁월하다.
입체적이고 정교한 느낌, 손에 만져질 듯한 자연스러운 색상들.
인물의 얼굴 묘사에 집중한 한국의 초상화와 매우 다른 느낌이다. 
또 김홍도나 정선 등이 흥겨운 풍속이나 수려한 자연 경관을 그린 것에 비해 고야의 작품들은 너무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게 많아 비교가 된다.
피학적인 당시 기독교적 관습 때문일까?
어찌 보면 십자가상도 고통받는 죽기 직전의 모습이니 섬뜩한 그림이라 할 수 있겠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같은 고전주의 작품이 감상하기에 참 편안하다.
어두운 배경 아래 고통받은 예수의 십자가상은 주제 자체로 보면 솔직히 매우 피학적이지만, 그 경건하고 정교한 인체 묘사가 탁월하다.
그런데 정작 고야는 이런 고전주의를 거부했다고 한다.
보다 앞서 가는 스타일이었던 것일까?
창조적으로 파격적이었던 화가.
어떤 평론가의 지적처럼 애스파냐의 옛 풍속을 기록하기 위해 태어난 화가.
<양산> 같은 그림에서 보여 준 화사한 색감이 정말 좋은데 어쩐지 고야 자신은 이런 그림은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렸을 것 같고 그 자신은 매우 음울하고 격정적인 그림을 선호했을 것 같다.
유럽 여행 때 에스파냐는 못 가봤던 게 무척 아쉽다.
기회가 되면 프라도 미술관에 꼭 가고 싶다.
고야에 관한 다른 책을 읽어봐야겠다.
누가 한국의 수묵화와 서양화 혹은 비슷한 시대의 동서양 화가들을 비교한 책을 써 줬으면 좋겠다.
무척 흥미로울 것 같다.
서로 교류가 없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19세기만 해도 일본의 우키요에가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데 조선의 산수화나 풍속화 등도 서양에 소개됐다면 혹은 서양화가 조선 화단에 전해졌다면 서로에게 의미있는 충격이 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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