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치머만의 세계사 - 인간이 알아야 할 세계 역사의 모든 것
마르틴 치머만 지음, 김지영 외 옮김 / 살림Friends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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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고 어려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쉽게 잘 넘어간다.
독일에서 출판된 책은 미국에서 나온 책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이고 그래서 종종 이질적인 느낌 때문에 독서에 몰입하기가 어려운데 이 책은 쉽게 잘 써졌다.
세계사에 처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입문서로 접하기 좋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인류의 시작부터 21세기까지 한 번에 쭉 가는 통사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중간중간 지루한 느낌은 피하기 힘들다.
그래도 어려운 내용이 없고 일반인이 받아들이기 쉬운 수준에서 서술하기 때문에 막히는 부분은 없다.
깊이가 얕아진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단점. 

세계사를 읽으면서 요즘 드는 생각은, 중세라고 하면 우리나라는 고려 시대를 생각하고 고대라고 하면 삼국 시대를 떠올리는데 막상 연대 비교를 해 보면 상당히 차이가 난다.
로마가 멸망하고 게르만 족이 프랑크 왕국 등을 건설하여 카롤로스 대제 등이 활약한 중세가 한국으로 치면 신라가 통일도 하기 전인 삼국시대다.
로마가 포에니 전쟁 등을 일으키고 영역을 넓혀 가던 고대는 아직 국가 정립도 안 되서 마한, 진한, 변한 같은 소국들이 연맹을 형성하던 시대가 아닌가.
르네상스가 시작되어 근대의 문을 연 시기도 고려 시대이고, 지리상의 발견을 시작한 것도 임진왜란 이전이니 한국의 역사 구분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카이사르나 카를로스 대제 등이 얼마나 먼 고대의 인물인지 조금은 실감이 난다.
우리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이 전부인데 당시 그리스나 로마의 역사를 <로마인 이야기> 등의 에세이를 구성할 수 있을 만큼 자료가 풍부하다는 게 정말 놀랍다.
또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지중해 등에 얼마나 인류의 역사가 빨리 시작됐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스 민주정에 대해 읽으면서 과연 이것이 귀족정과 무엇이 다른지 의문스러웠다.
조선 역시 양반들이 정치를 하는 일종의 귀족정 아니었을까?
민회라는 개념이 왕정과의 차이일까?
그리스는 작은 도시국가, 일종의 마을들이 연합한 어찌 보면 강력한 왕정을 이루기 전 단계가 아니었을까?
현대적인 의미의 민주주의를 과연 적용할 수 있을지, 용어 사용에 의한 이미지 혼란은 아닐지 궁금하다.
또 그리스나 로마 등은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장갑보병들이 큰 역할을 하면서 평민들의 발언권이 강해지고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얻었다고 했는데, 같은 시대에 전 병력 동원 체제에 끌려다닌 춘추 전국 시대의 중국 백성들은 권리를 얻기는 커녕, 진시황의 강력한 통제에 제압당했을까?
중국과 그리스 로마 사회의 발전 양상이 왜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됐는지, 어떤 정치 사회 환경 때문이었는지 궁금하다. 

상대적으로 중국이나 일본 등의 아시아 역사는 소략하고 전문성도 떨어지는 것 같아 아쉬웠다.
서양 중심으로 세계사를 구성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요즘에는 많이 느낀다.
예전에는 유럽 사회가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유럽 중심으로 역사가 구성된다고 생각했는데 역사에 대해 알게 될수록 지리상의 발견 이후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기 이전에는 각자 자신들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한 쪽이 절대적인 중요도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서구 역사가 기록이 많고 발굴이나 연구도 많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의의를 많이 부여받는 게 아닐까 싶다.
따지고 보면 아프리카나 중남미 아메리카의 고대 문명들이 여전히 낮은 위치를 차지하는 것도 세계 무대에서 그들의 발언권이 약하고 자국인들에 의한 발굴과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아시아는 그래도 서구 역사가들에 의해 약간의 자리라도 얻는데, 아프리카 역사는 노예 공급처였다는 게 기록의 전부다.
아프리카의 국력이 신장되고 세계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면 인류의 발원지인 이 위대한 대륙의 역사도 지금보다 더 생생하게 구성될 수 있지 않을까?
여기 나온 책에 따르면 유럽이나 이슬람 상인들에 의한 노예 사냥은 물론이고 심지어 대륙 내에서도 동아프리카 해안의 사람들이 서아프리카로 노예화 되어 매매됐다고 한다.
노예 매매가 금지된 19세기 후반에는 오히려 대륙 내의 노예 산업이 더욱 활발해졌다고 하니 대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얼만큼의 규모로 이루어졌는지 알아보고 싶다. 

부록으로 실린 지도는 굉장히 화려하고 보기도 좋은데 아쉬운 점은 본문 내용과 매치가 안 된다는 것이다.
기왕이면 각주 등으로 같이 표시됐으면 이해하기 편했을 것 같다.
혹시 개정판이 나온다면 참조해 줬으면 좋겠다.
짧은 시간에 재밌게 읽은 책이고 다음에는 좀 더 세부적인 주제로 쓰여진 역사서를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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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이야기
경기도박물관 / 경인문화사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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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정확히 맞은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이미지가 없으니 그냥 여기에다가 쓴다.
이번에 용인시에 있는 경기도 박물관에 갔다 오면서 뮤지엄 샵에서 하이라이트 도록을 구매했다.
곧 내부 수리를 들어갈 예정이라 그런지 뮤지엄 샵이 너무 작고 차마 서점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민망할 지경이었다.
하여튼 가격의 압박 때문에 일부 유물만 나온 하이라이트 도록을 구입했는데 사진이나 설명은 비교적 만족스럽고 책 판형도 가지고 다니기 편하게 포켓 사이즈였다.
박물관 자체는 다른 지방 박물관에 비하면 규모가 있는 편이지만 안의 전시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비하면 상당히 작다.
전시품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당 부분은 모형으로 대치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구석기, 신석기 시대 생활상의 마을 모형은 꽤나 실감났다. 

역시 우리나라 문화재의 하이라이트는 도자기 같다.
석기 시대의 토기들부터 시작해 고열로 구운 자기들, 각종 청자, 백자, 분청사기 등의 화려한 향연이 이어진다.
어디 박물관을 가든 아름다운 도자기들이 정말 많다.
이 책에도 도자기의 아름다움이 사진 속에서 잘 드러난다.
이름 붙이는 법도 익숙하고 이제 한자도 잘 읽을 수 있다.
옛날에는 도자기 모양이 다 뻔하고 아무 느낌도 없었는데 조금씩 알게 되니까 이제 그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온다. 

경기도 박물관의 특성은 지역 박물관이다 보니 그 지방의 문물을 보여 주려고 애쓴다는 점이다.
고려 시대 이후 중앙 귀족들이 거주하면서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했고 조선 시대 때는 한양을 감싸는 지역으로서 선비 문화를 꽃피웠다.
공신 책록된 후 일종의 부상으로 받은 초상화가 많고 대부분 보물로 지정됐다.
조선 시대 초상화는 전신사조라고 하여 터럭 한 올 틀리지 않게 그리고 그 정신까지 전수한다고 하지만, 모든 초상화가 너무 도식적이라 여러 점 보다 보면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가끔 어떤 초상화들은 인물의 표정과 성격을 잘 잡아내 감탄할 때가 있는데 여기 실린 조영복 초상화나, 이중로, 유하 등의 초상화가 그랬다.
이런 유명 초상화들은 화가의 이름이 명기됐고 어진화사 등에 참여한 당대 수준급 화가들이었다.
같이 실린 찬문 등도 그림의 격조를 높힌다.
인상적이었던 그림으로는 조석진이 그린 10가지 동물 병풍이었다.
짐승의 특징을 잡아낸 모사 솜씨나 전체적인 색감이 훌륭하다. 

책을 읽으면서 어려웠던 점은 역시 한자다.
기본적인 한자도 모르기 때문에 옥편을 찾다 보면 시간이 한정없이 늘어져 금방 지루해진다.
그나마 도자기에 쓰는 한자들은 같은 말이 반복되고 요즘에 관심있어 자주 찾다 보니 이제는 옥편없이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조선시대 문서들에 쓰인 한자를 읽기가 어렵다.
그러고 보면 당시 사대부들이 한문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을지 짐작이 간다.
특히 서예를 보면 붓끝에 힘이 넘치고 개성있는 글씨들이 많아 세간에 알려진 무능하고 공리공론만 일삼는 선비 이미지와는 달리 상당히 교양있고 문화적이고 학식이 풍부한 품위있는 귀족이 생각난다.
선조가 난리통에 함경도에 있는 신하 송언신에게 자식들 찾아달라고 보낸 밀찰을 보면 전쟁 중 피난간 국왕이 겪었을 비애가 흠뻑 느껴져 안타깝다.
또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아버지의 애타는 심정도 잘 드러난다.
선조나 순조 등의 글씨첩도 봤는데 역시 조선 시대 왕들은 시서화에 일가견이 있는 우아한 선비들이었던 것 같다. 

박물관에 가면 각 박물관에서 펴낸 책들을 구입하는 게 참 즐겁다.
이런 책들은 서점에서 구하지도 못하고 그 곳에 직접 가야 볼 수 있기 때문에 더 의의가 있는 것 같다.
사진들이 훌륭하고 설명도 충실하다.
다만 가격의 압박 때문에 원하는 만큼 구입하지는 못하지만. 
각 지방의 문화를 보여주는 이런 지방 박물관들이 많이 설립되서 지방 문화 보존과 융성에 이바지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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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 - 과학과 역사를 통해 파헤친 1,500년 기후 변동주기론
프레드 싱거.데니스 에이버리 지음, 김민정 옮김 / 동아시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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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도 비슷한 논조의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어쨌든 나는 헤게모니 장악을 위해 명분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혐오하기 때문에 환경을 빌미로 3세계의 공업화를 막는 것은 절대 반대다.
어쩌면 저자의 말대로 일정 수준의 경제력에 도달해야 비로소 환경 보호를 시작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아프리카 기아 문제는 좀 더 많은 기부를 하고 NGO 들이 노력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서 해방되는 분명한 가시적 성과가 있기 때문에 지지하지만, 내가 지구 온난화에 대해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는 것은 이 책에 나온대로 정말로 화석연료의 사용이 기후 변동을 일으켜 해안선을 상승시키고 빙하를 녹게 하며 야생 동물을 멸종시키는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논쟁할 만한 근거를 완벽하게 갖추진 못했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환경 보호라는 명분 때문에 3세계의 산업 발전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거야 말로 정말 사다리 걷어차기가 아닐까 싶다.
유기농법을 쓰면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줄어들고 60억이나 되는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더 많은 개간지가 필요하다.
개간지의 확충은 야생 동물의 터전을 뺏고 삼림을 계속 줄인다.
살충제와 화학비료, 관개농법, 심지어 유전자 변형 작물들이 전 세계의 기아를 해결해 왔음은 너무 당연한 일인데 특정 명분을 위해 명백한 이득을 별 거 아닌 것으로, 혹은 잃어버린 것을 지나치게 확대시켜 과장하는 주장은 경계해야 한다.
농약 안 친 유기농이 훨씬 비싸고 (정말 유기농인지 어디까지를 유기농법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호하지만) 부자들만 사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 봐도 일부 환경보호론자들의 극단적인 주장은 회의적인 눈으로 봐야 한다. 

저자의 주장은 간단하다.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인한 이산화탄소의 배출은 기후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현재의 지구 온난화는 대략 1500년의 주기를 가지고 변하는 자연적인 기온 상승이며, 더 중요한 것은 지구가 따뜻해지면 한랭기 보다 생물이 번성하기가 더 낫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얼어 죽는 사람이 더워 죽는 사람보다 많다는 얘기다.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식물들의 광합성도 훨씬 쉬워지고 농작물의 생육 가능 위도도 올라간다.
생물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의 범위도 커진다.
가뭄은 비단 온난기에만 오는 게 아니라 한랭기 때도 잦으며 오히려 소빙하기 때 날씨가 추워지면서 강수량이 부족해 가뭄으로 대흉년이 왔고 추워서 집단으로 모여 있다 보면 페스트 같은 전염병도 창궐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로마나 고대 중국의 번영은 1500년 전의 온난화 덕택이고, 중세 온난화 이후 소빙하기 때 농업 생산량이 급감하고 마야인들도 도시를 버리고 정글로 들어갔다고 설명한다.
미국이 교토 의정서에 서명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 온실효과 이론의 헛점 때문임을 이해하겠다.
저자에 따르면 오히려 기후 변화는 태양의 흑점 변화 등에 좌우된다.
많이 비치면 기온이 올라가고 적게 비치면 우주 광선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막이 줄어들기 때문에 구름층 형성이 많아져 기온이 내려간다는 것이다.
날씨 변화를 아직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는 걸 보면, 미래의 기후가 어떻게 바뀔지를 너무 앞서서 내다보는 것도 크게 신뢰가 안 가기는 한다.
저자는 기후 변화 모델 자체가 엄청난 변수들을 다 수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환경론자들은 이산화탄소 배출 때문에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자고 하지만 정작 이산화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원자력 발전소 건설은 또 반대한다.
풍력이나 태양력 같은 대체 에너지는 효율성이 너무 떨어지고 엄청난 돈이 들 뿐더러 현대의 편리한 생활을 유지할 만큼 충분한 에너지를 생산해 내지도 못한다.
저자의 직접적인 표현대로 지구 보호를 위해 이틀에 한 번씩만 차를 타자고 하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참할 수 있을 것인가?
과소비를 줄이는 것과 기술 발전으로 인한 편리한 생활을 포기하는 것은 명백한 차이가 있다.
또 환경 보호를 위해 유해한 배기가스 등을 줄이는 것과 화석연료 사용 자체를 죄악시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저자는 온실가스 이론 때문에 기후학자들이 엄청난 연구 기금을 타내고 있고 해양학자들은 반대로 온난화로 인해 해류 변동이 생기면 급격한 한랭화가 올 것이니 대비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달라고 요구한다고 지적한다.
환경단체와 언론 역시 이 명분을 위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발언권을 높이고 많은 자금을 운영한다.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에서 읽은 바대로 자선단체들은 성과를 명백하게 보여 줘야 한다.
환경단체 역시 가시적인 성과를 시민들 앞에 보여 줘야 하고 제약을 가했을 경우 반대로 그것 때문에 피해를 볼 수 있는 더 가난한 이들을 위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막연한 공포를 조장해서는 안 되고 정말 과학자들이 공개적인 토론을 거쳐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냉정하게 따져서 이득이 되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
100% 다 좋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환경단체들은 전문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좀 더 귀기울여야 하고, 확실치 않은 미래의 일에 지나치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야 한다.
정말 지구와 가난한 이들을 사랑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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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음악 기행 - 유럽 문화 예술 기행 4
귄터 엥글러 지음, 이수영 옮김 / 백의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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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좋은 점, 절판된 책도 얼마든지 쉽게 구해 읽을 수 있다는 점.
그런 거 생각하면 가능하면 많은 책들을 도서관에서 구매해 줘야 할 것 같다.
베스트셀러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책들이 생각보다 빨리 절판되는 걸 보고 놀랄 때가 많다.
이 책도 벌써 절판이라니, 아쉽다.
어떤 분의 서재에서 리뷰를 읽고 고른 책인데 아쉽게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커버가 다 벗겨져 저 아름다운 표지 그림은 못 봤다.
왜 도서관 책들은 하나같이 표지를 벗겨 놓는 것일까?
책 판형은 정말 작고 예쁘다.
문고판과는 또 다른 매력이다.
핸드백 속에 쏙 들어간다.
무척 잘 만든 책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내용은 아주 흥미롭게 읽지 못했다.
일단 내가 워낙 음악 쪽에 문외한이고 오스트리아는 유럽 여행 때 잠깐 쇤부른 궁정 구경하고 온 게 전부라서 여기 나온 지명들이 어디 붙어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오스트리아에 대해, 혹은 음악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 본다면 정말 괜찮은 책이 될 것 같다.
사실 음악 기행문은 음악과 도시에 대해 사진 몇 장 실어 놓고 적당히 짬뽕해 놓은, 전문적이지 않은 어설픈 책이 되기 십상인데 적어도 이 책은 그런 면에서는 균형을 잘 취했다.
사실 빈은 합스부르크의 영광이 다 사라져 버리고 이제는 중립국으로 전락한 조그만 나라 오스트리아의 수도라는 이미지 때문에 파리나 런던 등에 비해 별 거 없는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번에 노벨상 받은 에릭 킨델의 자서전을 읽고 빈이 얼마나 예술적으로 풍요로웠고 20세기 초에 세계의 문화 수도 역할을 했는지 알게 됐다.
한 권의 책이 주는 영향력이 이렇게 큰지 새삼 느꼈던 부분이다.
더불어 클림트, 쉴레, 코코슈카 등으로 대표되는 표현주의의 산실이 또 빈이 아닌가.
빈의 영광과 몰락을 안타까워 하는 노과학자의 심정이 너무 절절하게 잘 배어 있어 나도 모르게 빈에 대해 애정을 품게 됐다.
이 책은 그 빈의 아름다운 역사가 음악과 어울어져 잘 드러나고 있다.
<모던 타임즈>도 읽어 볼 생각이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아니라서 살갑게 와 닿지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문화권이 다르기 때문에 오는 어쩔 수 없는 한계 같다.
마치 우리나라 예술계 동향을 외국인이 번역해서 읽을 때 지명이나 장소 등이 생소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세계적인 문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동을 주기 때문에 그 보편성과 초월성을 획득하는 것이리라.
여기 소개된 음악들을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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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 Black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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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블랙, 재밌다는 얘길 듣고 기대를 했는데 정말 실망시키지 않았다.  
시간이 안 맞아서 볼까 말까 하다가 봤는데 정말 보길 잘했다.
지난 번 <슬럼독 밀리어네어>도 정말 재밌었다.
헐리우드와는 다른 스타일, 빠른 전개, 강렬한 음악과 영상.
사실 인도 영화는 제대로 보지도 않았으면서 막연하게 수준이 낮아도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몇 편을 보고 나니까 정말 헐라우드 영화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무엇보다 영화와 음악의 어우러짐이 정말 환상적이다.
이번 영화에서도 음악을 어쩌면 그렇게 잘 표현했는지,  큰 극장에서 스테레오 빵빵 틀어 놓고 보는 맛이 났다.
실화라고 알려졌는데 알고 봤더니 헬렌 켈러와 앤 셜리번 선생의 이야기를 각색한 거라고 한다.
헬렌 켈러는 그냥 막연히 장애를 극복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단순히 대단하다, 이런 선에서 끝날 사람이 아니었다.
어둠의 세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깜깜한 블랙의 세계.
나처럼 활자 중독인 사람에게 볼 수 없다는 건 어떻게 상상을 해 볼 수 조차 없는 그런 세상일 것이다. 

미셸이 처음으로 단어의 의미를 깨달았을 때 이건 정말 온 우주가 진동하고 광명이 찾아온 천지가 개벽한 날이었을 것이다.
입모양을 흉내내서 드디어 엄마와 아빠를 인식하고 발음했을 때 부모가 그녀를 끌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순간은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던가.
모성애는 정말 아무리 찬양을 해도 부족한 것 같다.
오직 장애아 딸만을 위해 살아온 어머니, 배우의 연기도 정말 뛰어났다.
여태까지 인도 사람들에 대해 경제력이 낮다고 한 수 아래로 생각했던 점, 정말 후회한다.
영화를 통해 이렇게 문화적 편견이 수정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미셸이나 선생님 역을 맡은 배우는 인도 최고의 배우라는데 정말 연기 잘 한다.
그 선생님 역의 배우가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주인공이 싸인을 받으려고 했던 바로 그 배우라고 한다.
인도인들에게 영화배우의 위상은 대단하다고 한다. 

2시간에 걸친 상영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고 기승전결도 정말 잘 만들어졌고 최근에 안 졸고 본 드문 영화가 됐다.
어떤 영화평에서 이것보다 <오아시스>가 났다고 하는데 영화를 이끌어 가는 서사 구조의 힘은 오히려 <블랙>이 훨씬 위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대학을 졸업하면서 미셸이 했던 수화 연설은 정말 최고였다.
어둠에 함몰되지 않고 빛의 세계로, 지식의 세계로 세상과 대화하면서 신이 주신 삶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고 사는 그녀.
한 가지 안타까웠던 점은, 미셸이 여자로서 사랑의 욕구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선생과 제자의 사랑은 불가능한 것일까?
네티즌 평을 보니 이 부분이 오버라고 지적한 사람들이 많던데, 장애아도 충분히 욕구를 느낄 수 있고 그 부분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건드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별 결론없이 선생님이 떠나는 걸로 처리해서 아쉬웠다. 

또 하나 꼭 기록하고 싶은 것은 미셸 집의 그 엄청난 부유함이다.
저택이 얼마나 크고 화려한지 정말 감탄했다.
영화 내용과는 별개로 저렇게 크고 화려한 집을 가지려면 대체 얼마나 돈을 벌어야 하나 감이 안 잡힌다.
<어둠 속의 댄서> 라는 영화에서는 한 여공이 시력을 잃어가면서 그나마 있던 사회적 지위와 재산마저 다 뺏기는 처참한 과정이 그려진다.
미셸은 비록 태어나면서부터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지만 부모의 경제력 때문에 장애를 극복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자신을 지켜 줄 완벽한 부모와 재산이 있다는 사실이 장애와는 별개로 얼마나 큰 축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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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09-09-06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을 보면서,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 집안이 부유하지 않았다면, 저런 헌신적인 선생님을 만날 기회조차 못 잡지

않았을까 해서....

marine 2009-09-09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일단 돈이 있어야 선생님을 모셔 오든지 말든지 하죠. 어쩔 수 없이 돈이 핵심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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