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가난으로부터 구할 것인가
피터 싱어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제프리 삭스의 <빈곤의 종말>과 주제는 같은데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다.
<빈곤의 종말> 같은 경우 두께도 상당하고 책상에 앉아 정독했던 것에 비해 이 책은 지하철에서 정말 가볍게 읽었다.
의외로 어렵지 않고 소설처럼 한 번에 술술 넘어간다.
역시 부유한 나라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도 다른 것 같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문화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마저 다 누리고 나면 이제는 슬슬 타인의 고통으로도 눈을 돌릴 여유가 생기는 모양이다.
기부는 그저 개인의 선행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시민의 의무로 여겨질 수 있는 건지 미처 몰랐다.
우리나라도 연예인들 중심으로 슬슬 기부 문화가 표면에 드러나고 있지만 솔직히 아직까지는 과연 기부를 일종의 십일조처럼 의무로 여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히려 연예인들의 기부를 이미지 관리로 여기고 몰래 할 것이지 알리고 한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말이다.
이 책에도 그런 비난의 색안경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이기적인데 왜 아무 댓가도 없이 남을 돕는단 말인가?
마치 미국이 가난한 나라에 상품을 강매하기 위해 조건을 걸어 놓고 (이를테면 미국 농산물만 수입하라던가, 수입하더라도 미국 배만 이용하라는 식으로) 원조를 하는 것처럼, 기부하는 사람들도 다 목적이 있고 실제적인 이익이 없다면 하다못해 자기만족을 위해서라도 하는 것이니 순수한 의미에서의 선행은 없다는 식이다.
이런 삐딱한 시선이 기부 문화 확산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것은 이미 누누히 지적해 왔다.
지만원 같은 사람은 문근영이 기부하는 게 외할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거 숨기려고 한다고 비난하지 않았던가!
또 이런 사람도 있다.
아프리카 난민 구제할 돈 있으면 우리나라 애들이나 돌봐라.
정작 자기는 아프리카는 커녕 어디에도 기부라고는 해 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선행은 스스로의 도덕적 양심 때문에 하는 것이지 그것을 자랑할 필요도 없고 또 안 했다고 해서 비난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그건 개인적인 관계에서 그렇다는 거고, 저자의 지적처럼 사회적인 차원에서 보면 부자들의 지나친 소비 행태는 일종의 도덕적 원칙이나 사회적 공감대 같은 기준에서 약간의 제재는 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몇 억씩 하는 요트를 사서 자랑하면 부러워 하기 보다는, 사회에서 얻은 부를 전혀 나눠 갖지 않는 이들의 이기심을 비난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 책에도 나온 말이지만 부자가 순전히 자기 힘만으로 재산을 모으지는 못한다.
법률 서비스가 이뤄지고 사회간접자본이 형성되어 작은 돈으로 이용할 수 있고 무엇보다 신용이 확립되어 굳이 내가 나서서 다 조사하지 않아도 안심하고 거래를 할 수 있고 혹시 불합리한 대우를 받으면 언제든지 법에 호소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나는 안심하고 투자를 할 수 있다.
이런 여건을 사회가 만들어 준 만큼 거기서 큰 이득을 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어느 정도는 사회에 내 놓아햐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회적 환원이 법으로 제정된 게 바로 소득세나 상속세 같은 거고, 한 사회의 집단 내에서 암묵적으로 합의된 게 바로 기부 문화가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자들의 소비 행태를 무조건 부러워 할 게 아니라 그들에게 자선을 베풀라고 도덕적으로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기부 문화가 인간의 당연한 도리로 인식될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
기부 문화는 차치하고라도 적어도 과소비가 최고의 가치가 되지만 않더라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이질 것 같다.
특히 교육 분야에서 그렇다.
책에도 누누히 나오지만 자기 아이를 최고로 키우기 위해 교육비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 것이 반드시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은 아니다.
심지어 여기 나온 기부자들은 자식의 생명과 굶주리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생명마저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면서 혹시 내 아이에게만 지나친 애정을 보이고 있지 않은지 괴로워 한다.
우리나라 엄마들이 이 책을 읽으면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뒤로 넘어갈 것이다.
세상에 내 아이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딨냐면서 말이다.
대한민국 출산율이 아무리 정책적으로 지원을 해도 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는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교육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애 키우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드니까 하나만 낳은 거다.
정말 애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잘 먹고 잘 살려면 아예 낳지를 않을텐데 어떤 부부든 아이는 꼭 낳으려고 한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처럼 대를 잇는 걸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나라에서 왜 애를 딱 하나만 낳겠는가?
애들 교육비에 너무 많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
잘 키우는 건 고사하고 남들만큼만 키우려고 해도 노후 대책을 못 만들 만큼 허리가 휜다.
나 혼자 돈 안들이고 공교육에 맡겨 키우려고 해도 환경이 나와 아이를 압박해 오니 시골 가서 공동체 만들고 대안 교육 하지 않는 이상 이 미친 사교육 열풍에 휘말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해결책은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아이들의 교육 환경에도 과소비 개념을 도입해서 자기 아이에게 최상의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그 한계가 있어야 하고 지나칠 때는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명품 열풍도 마찬가지다.
싸구려 백 들고 다니면 무시하고 연예인들이 몇 백씩 하는 가방 들고 나오면 열광하는 이 분위기가 바뀌어야 기부 문화가 확산될 수 있다.
저 연예인은 몇 백 하는 신발 신고 가방 들었다, 와 대단하다, 부럽다, 이게 아니라 쟤는 저렇게 돈을 많이 벌면서 어떻게 하나도 기부를 안 할 수가 있냐, 정말 뻔뻔하고 이기적이구나 이런 문화가 형성되야 남들 눈 무서워서라도 돈을 좀 낼 게 아닌가. 

책에는 대부호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부자들은 워낙 돈이 많으니까 수입의 10%는 써야 하고 대부호는 아니더라도 상위 1% 안에 낄 수 있는 사람들은 5%, 그리고 중산층 이상의 부자라면 (대충 상위 10% 내외) 1%는 기부하라고 권고한다.
심지어 어떤 회사에서는 내가 기부를 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지 않는 이상 내 월급의 1%는 기부금으로 나간다고 한다.
마치 세금을 떼듯 말이다.
이슬람교에는 구빈세라는 게 있고 기독교인도 십일조를 하지 않은가.
10분의 1도 아니고 100분의 1인데 정말 우리 모두 좀 더 의무감을 가지고 진지하게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책에도 나온 바지만 기부금을 받는 단체들은 반드시 어디에 이 돈이 들어가고 어떻게 쓰이는지 명확한 데이터를 보여 줘야 한다.
<히말라야 도서관>의 저자는 MS 출신인 만큼 모든 성과를 가시적으로 숫자를 이용해 보여준다.
만약 내가 기부한 10만원이 어떤 아프리카 아이의 교육비로 들어갔다고 알 수 있다면 나는 다음 달에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10만원을 또 기부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도 나오지 않은가.
제목은 생각이 안 나는데 잭 니콜슨이 아내가 죽은 후 혼자 여행을 하면서 자신이 후원하고 있는 아프리카 소녀에게 편지를 쓴다.
내가 어떤 어린이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보다 더 보람있게 돈을 쓰지는 못할 것 같다.
이런 책이 나올 정도면 미국에는 기부 문화가 상당한 공감대를 얻고 퍼져 있고 그래서 <히말라야 도서관>의 저자도 그저 평범한 직장인에 불과함에도 단체를 설립하고 아시아 곳곳에 도서관과 학교를 지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제프리 삭스의 책을 읽고 절대빈곤은 나라도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노력하면 충분히 얼마든지 없앨 수 있는 과젱미을 배웠다. 
마치 우리가 천연두를 박멸한 것처럼 말이다.
이번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부가 시민의 의무이고, 내 가족, 우리나라 국민만이 내 이웃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 아이들까지도 내 공동체의 일원임을 배웠다.
그러므로 아프고 병들어 최저 생활마저 누리지 못하는 그들의 비참한 삶에 나도 일정 부분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말 내가 내는 돈은 너무 작고 보잘 것 없지만 이런 작은 돈들이 모여 대부호들이 내는 엄청난 기부금과 합해져 세상을 조금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단체에 어떻게 기부를 할지 고민해 봐야겠다. 
무엇보다 소시민들의 기부금은 비록 작지만 여러 사람이 한다면 기부 문화 형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내가 가진 기술을 이용해 육체적으로 봉사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책에는 이른 나이에 출산해 질과 항문 사이에 누공이 생긴 아프리카 여성들을 수술해 주는 산부인과 의사도 나오고, 눈을 수술해 주는 안과 의사도 나온다.
이런 일이라면 나도 큰 돈은 못 내더라도 내 기술을 이용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내가 공동체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다.
새삼 김장훈이나 신애라 같은 연예인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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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
    from 木筆 2009-09-01 14:27 
    >> 접힌 부분 펼치기 >>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피터싱어,1996, 세종서적 궁극적인 선택 ultimate choice  1. 윤리와 이기주의가 충돌할 때 우리는 궁극적인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선
 
 
 
박정근의 고고학 박물관 - 선사시대를 이해하는 42가지 열쇠
박정근 지음 / 다른세상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확실히 나는 발굴 보다는 문헌 자료가 더 재밌다.
고고학은 막연히 상상할 때의 흥미로움과는 달리 실제적으로 파고 들면 너무 어렵고 머리에서 쥐가 날 것 같다.
번역된 여러 고고학 책들도 재밌게 본 책이 거의 없고 이 책 역시 나에게는 상당히 지루했다.
아무래도 과학적인 분석 과정이 많이 들어가서 금방 지루하게 느끼는 것 같다.
300 페이지 남짓 되는 짧은 분량이고 내용도 아주 전문적이지는 않다.
저자가 나름대로 구석기 시대를 상상하느라 구석기인의 일상 같은 챕터를 넣기도 했는데 역시 작가가 아닌 이상 상상력이나 묘사력은 매우 빈곤해서 차라리 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구석기인의 생활상을 소설로 알고 싶다면 차라리 이문열이 쓴 <들소>라는 단편을 권한다.
이게 훨씬 더 생생하고 구석기 시대 그리는데 도움이 된다. 

읽으면서 의문점이 몇 가지 들었다.
한반도에 인류가 정착한 때는 언제인가?
저자에 따르면 중기 구석기 이전의 유물은 발굴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다른 책에서는 연천 전곡리 유적이 유럽의 아슐리안 석기와 같다고 했던 것 같다.
아슐리안 석기는 전기 구석기 시대가 아닌가?
좀 더 알아봐야겠다.
또 저자는 한반도인의 도래 경로를 시베리아 쪽의 유목민 계통과, 남방 계통으로 나누는데 어떤 쪽에 더 무게가 실리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마지막에 청동기 문화의 발달을 한반도 자체적인 자생 문화로 보지 못할 이유가 뭐냐는 식의 기술은 좀 황당했다.
어떤 문화든 상호교류를 통해서 발전하는 법이고 자생적으로 발생했다고 해서 더 창의적이고 위대하고 전해 받았다고 해서 열등한 것은 절대 아니다.
왜 맥락에 안 맞는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다.
북한의 탄소연대법 주장을 신뢰하는 눈치인데 북한에 따르면 기원전 30세기, 그러니가 5000년 전의 청동기도 발견됐다고 한다.
그러면 정말 고조선의 건국 시기가 반 만 년 전?
너무 앞서가는 주장 같다.
미국 교과서에는 한반도의 역사 시대가 1세기 전후로 나온다는데 정작 우리들은 그 보다 5000년을 더 앞으로 잡고 있으니 격차가 커도 너무 크다. 

비파형 동검이 고조선의 강역을 나타내는 표지 유물이 되는지의 문제는 좀 더 신중해야 할 것이다.
또 어찌 보면 고조선이라는 국가와 민족 자체가 고대에는 현대의 국가 개념과 전혀 달랐을 것이니 반드시 그들이 우리의 직계 자손인가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중국이 워낙 말도 안 되는 소리로 고구려를 지방 정권화 시키려고 하는 통에 우리 역시 너무 예민하게 고대사를 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앞부분에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는 챕터는 개념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됐다.
인간이 불을 사용하게 된 것은 호모 에렉투스 때부터인데 불씨를 얻게 되자 추위를 이기고 음식도 구워 먹을 수 있게 되자 이들은 용감하게 아프리카를 빠져 나가 아시아로 건너 간다.
이들이 바로 자바 원인과 북경 원인들이다.
호미니드 족속이 왜 직립 보행을 하게 됐는지에 대한 여러 가설이 나오는데 요즘에는 환경 변화로 숲이 사라지고 초원이 확대되면서 우리 조상들도 어쩔 수 없이 나무에서 내려와 걷기 시작했다는 설이 유력하지 않나 싶다.
그러고 보면 저자의 지적대로 구석기가 끝날 무렵 해빙기가 오고 해수면이 높아져 육지가 대륙붕으로 변하자 해양 생물들도 많아지고 자연히 어로 생활도 활발해졌을 것이다.
강수량이 많아지지 농사를 짓게 되고 인구가 늘기 시작했을 것이다.
또 거대한 털짐승들이 사라지고 사슴 등과 같은 날쌔고 조그만 짐승들이 숲에 나타나자 이들을 잡기 위해 둔탁한 무기 대신 날카롭게 갈아 만든 간석기로 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요컨대 신석기로의 변화는 해빙기라는 자연 요소가 결정적이었음을 지적한다. 

비교적 평이한 내용들이 쉽게 읽을 수 있었고 고고학에 대해 좀 더 기초 지식을 쌓고 다른 책에 도전하고 싶다.
한반도의 시작에 대한 다른 사람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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麗輝 2009-09-07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슐리앙은 중기가 맞을 겁니다. 아마도. 그나저나 이문열의『들소』라는 책 저도 읽어봐야 겠습니다. 추천 감사드립니다. ^^ 혹시 인류학이나 인류의 기원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제레드 다이아몬드의『제3의 침팬지』를 한번 읽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아직 서평은 안 썼지만...읽어보면 좋아하실 것 같네요. ^^

marine 2009-09-08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제가 얼핏 봐서 착각했나 봐요. 제레드 다이아먼드 책이라면 <총균쇠>를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이 책도 재밌을 것 같네요. 맞아요, 저 이 저자 무지하게 좋아해요. 제 취향을 벌써 파악하셨네요^^

marine 2009-09-12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요, 조유전씨가 쓴 한국사 미스테리에 보니 아슐리앙 석기는 150만 년 전부터 쓰인 석기이고, 전곡리의 유적은 루시를 발견한 클라크 등에 의해 27~30만 년 전 유적이라고 나와 있어요. 그걸 근거로 저자는 그 책에서 전기 구석기 유적이라고 했는데 혹시 학설이 바뀌었나요?
 
중국의 고대건축
러우칭시 지음, 한동수 옮김 / 혜안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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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밌게 읽은 책.
어떤 분 서재에서 좋은 책이라고 칭찬을 많이 했길래 기대를 하고 읽은 책인데 실망시키지 않았다.
아니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진이 흑백이라 생생한 맛이 조금 떨어지고 부분사진이 많아 전체를 보여주는데 미흡하다는 것 뿐.
그렇지만 사진의 절대적인 양이 많고 정말 잘 찍었다.
컬러였다면 훨씬 생생하지 않았을까 싶다.
분량 자체가 200 페이지 밖에 안 되는데 그 중 절반이 다 사진이다.
몇 컷을 제외하고는 저자가 직접 촬영했다고 하는데 정말 멋지다.
난 원래 건축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고 문외한인 사람인데 이번에 중국 여행을 갔다 오면서부터 건물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었다.
특히 명13릉의 구조는 내가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무덤의 규모가 아니라 무척 감탄했고 언젠가는 관련 서적을 읽어 보리라 생각했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중국 황제의 무덤은 단지 시신을 매장하는 장소가 아니라 현세의 영광이 내세에까지 이어지는 연속성을 가진 곳이므로 일종의 궁전과도 같다.
무덤이 있는 지하의 지궁 혹은 침궁과 봉분이 있는 지상은 하나의 완전한 건축물을 이룬다.
능묘건축이라는 양식이 생긴 이유를 알 것 같다.
진시황의 거대한 지하 궁전이 가능했던 것도 중국의 바로 이런 고분 전통 때문이다.
아마 이번에 중국 가서 직접 명13릉을 보지 않았다면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시황의 병마용을 보면 더 까무러칠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본 명 황제 만력제의 묘실은 상상을 초월하게 거대했고 정말 일종의 궁전 같았다.
책에서 보니 다양한 건축물들이 주변에 세워졌고 산을 아예 무덤의 봉분으로 삼을 만큼 스케일 자체가 벌써 우리하고 완전히 다르다.
이런 중국 황제들에 비하면 조선 임금의 무덤은 얼마나 소박한지! 

여섯 살의 어린 나이로 등극해 24살에 요절하고 만 청의 3대 황제 순치제는 그 어린 나이 때부터 자신의 무덤을 조성하는데 힘을 다한다.
이제 겨우 10대 꼬마가 자기 죽으면 묻힐 무덤을 만들다니,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종묘에 다녀와서도 느낀 바지만 유교는 기독교처럼 절대자를 믿는 신앙은 아니라 할지라도 조상신을 숭배하는 일종의 종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죽은 후에도 현재처럼 다음 삶을 이어갈 거라는 확신이 없다면 무덤을 이렇게 젊어서부터 치장하고 정성을 쏟을 리가 없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하나도 다를 게 없다.
2대에 걸쳐 섭정을 했던 자희태후 역시 서양과 전쟁을 치루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능묘 건설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청 황제들 역시 명 13릉처럼 집단으로 모여 있는데 동서로 나뉘어졌기 때문에 청동릉, 청서릉이라고 부른다.
북경 근교에 있다고 하는데 이번 여행 때 못 봐서 아쉽다.
한대의 화상석도 묘실의 벽을 채우던 벽돌에 그려진 일종의 고분벽화이다.
고구려의 벽화와 같은 개념이 아닐까 싶다. 

뒷편은 사원건축에 대해 나온다.
중국의 종교는 크게 불교, 도교, 이슬람교로 나뉘고 각각의 사원들이 곳곳에 지어졌다.
이번 여행 때는 북경만 가서 절은 못 가 봤는데 석굴 같은 곳을 가면 정말 대단할 것 같다.
역시 땅덩어리가 커서 그런지 절의 규모도 억 소리가 날 만큼 크고 거대하다.
또 얼마나 화려한지 정말 고졸하고 담백한 맛을 풍기는 한국 문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새롭게 안 사실은, 위진 남북조 시대 때 많이 만들어진 석굴들이 대부분 인공 석굴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석굴암에 대한 책을 읽을 때 중국의 석굴은 자연적이지만 한국의 석굴암은 독특하게도 인공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 가치가 더 크다는 내용을 분명히 봤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며서 무조건 우리에게 유리하게 생각하는 자가당착적인 자세를 보는 것 같아 씁쓰름 하다. 

이슬람 사원은 형상을 그리지 못하기 때문에 대신 기하학적 문양으로 장식을 하는데 그 화려한 장식미가 정말 놀랍다.
어쩌면 저런 독특하고 개성있는, 아름다운 문양을 만들어 냈을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하루에도 다섯 번 예배를 드리고 금요일에는 단체로 모여 청진사 혹은 예배사라고 불리는 사원에서 함께 의식을 행한다.
중국에서 메카는 서쪽에 있기 때문에 중국의 이슬람 서원들은 항상 동쪽으로 입구를 낸다고 한다. 

사진도 많고 안의 내용도 정말 훌륭하다.
지루하지 않고 설명이 전문적이면서도 쉽고 재밌다.
역시 중국 사람이 직접 자기 나라에 대해 서술하기 때문인지 책의 깊이가 다르다.
중국의 문화에 대한 다른 책도 읽어 봐야겠다.
또 한 가지 느낀 점은, 서양 문화가 기독교이듯, 동양 문화도 불교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불교에 대해 좀 더 공부를 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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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화 5 : 복식 중국문화 5
화메이 지음, 김성심 옮김 / 대가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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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이나 사진도 훌륭하고 설명도 좋았지만 불행히도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의식주에 관한 내용은 영상으로 보는 게 훨씬 이해가 빠를 것 같다.
가끔 중국 사극에 나오는 옷들을 보면서 우리와 다른 그네들의 옷차림을 제대로 알아보자는 욕심이 생겨 고른 책인데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
그림과 설명만으로는 지식 전달이 어려운 게 바로 이 의복과 음식인 것 같다.
한 가지 얻은 점은, 심의라는 게 조선 선비들만 입는 옷인 줄 알았더니 예기에 나오는 유학자의 복장이라고 한다.
통천으로 위아래가 이어져 있고 몸을 깊이 감싼다 하여 깊을 深  자를 써서 심의라고 한단다.
옷차림 하나를 가지고도 예를 논하고 우주의 이치를 따진 고대 중국인들의 학문 세계가 놀랍게 느껴진다.
그만큼 명분론적이고 공리공론이 많았다는 뜻도 될 것이다.
단순히 고대의 옷은 신분의 상징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런 철학적인 심오한 뜻이 담겨져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가끔 해외 토픽에 나오는 중국 아이들의 밑이 터진 바지는 알고 봤더니 꽤나 역사가 깊은 옷이었다.
단지 아이들의 용변을 쉽게 해결하기 위해 아래를 터 놓은 걸로 알았는데 고대 중국인들도 이런 바지를 입고 대신 허리에 패슬 등을 차서 가렸다고 한다.
그래서 다리를 쭉 벌리는 것은 예의에 어긋났다고 한다.
알면 알수록 심오하고 재밌는 생활사의 역사다.
유래가 어디서 왔는지를 따져 보는 것도 퍽 흥미로운 일 같다. 

우리나라의 옷은 아무래도 익숙해서인지 설명만 들어도 감이 잡히는데 중국의 옷은 책 가지고는 도저히 이미지가 떠오르지가 않는다.
단편적인 지식만 얻고 말아서 많이 아쉽다.
기회가 되면 영상물로 중국의 복식 문화를 다시 살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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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벽화로 본 고구려 이야기
전호태 지음 / 풀빛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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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 서재를 둘러 보다가 건진 책.
뜻밖의 좋은 책을 발견할 때마다 알라딘 서재질의 묘미를 느끼게 된다.
나에게 알라딘 서재는 신문 리뷰와 책 뒷편의 참고 도서에 이어 세 번째로 책을 추천받는 통로다. 

고구려 벽화는 말로만 들었지 사실 제대로 감상한 적은 거의 없다.
아마 중국와 북한 땅에 실물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접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벽화를 생생한 사진으로 보여준다.
기왕이면 직접 답사하면 훨씬 좋을텐데 사진으로만 이 훌륭한 그림들을 만족해야 하다니 아쉬운 일이다.
특히 1930년대에 찍은 사진과 90년대에 찍은 사진을 비교해 보면 상당히 많은 부분이 지워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수 백 년의 세월도 견뎌 왔는데 공개된 후 수십 년도 채 지나지 않아 벌써 훼손되고 있으니 아직 제대로 연구도 못한 실정에서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다.
솔직히 설명이 없다면 그림만 봐서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무용총 그림처럼 춤추거나 사냥하는 확실한 장면들도 있지만 천상의 세계를 그린 신화적인 내용들은 학자들이 하나하나 짚어 주니까 그런가 보다 하지 그냥 내 눈으로 봐서는 구별이 안 된다.
처음 그려졌을 때는 정말 하나의 화보를 보는 것처럼 생생했을텐데 세월의 무게를 힘겹게 이겨내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아쉽다.
그래서 일반인들도 쉽게 알아 볼 수 있게끔 3D 영상으로 재현하면 어떨가 생각해 본다.
지난 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페르시아전 때 폐허가 된 궁전에 컴퓨터 작업을 해서 살아 움직이는 화려한 궁전으로 재현시켜 놓은 영상을 봤었다.
어찌나 생생한지 대제국 페르시아의 위용을 한 눈에 실감할 수 있었다.
민속박물관에 갔더니 고구려 벅화들을 이런 컴퓨터 작업을 통해 하나하나 살아 움직이는 영상으로 바꿔 놓았는데 이것 역시 무척 실감났다.
이런 작업들이 많이 이루어져 보다 생생하게 고구려 벽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제일 신기한 것은 고구려의 신화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만 대단한 줄 알았지 우리 고대 신화가 이렇게 풍성한 줄은 미처 몰랐다.
안타깝게도 그림만 남아 있을 뿐 문헌으로 직접 전하는 내용이 없어 겨우 윤곽만 잡고 있다.
한자를 쓰고 역사서까지 편찬했다는데 멸망과 함께 그 문헌들도 죄다 사라져 버려 고구려의 찬란한 문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게 정말 아쉽다.
그러나 고분 벽화라는 드문 양식을 통해 그 형태라도 전해지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신라나 백제와는 달리 무덤에 그림 그일 생각을 어떻게 한 건지 정말 궁금하다.
한대에 화상석이 유행이었다고 하는데 그 영향을 받은 걸까?
토끼가 달에서 방아 찧는 모습은 고구려 시대부터 있었던 전설인 모양이다.
사람의 얼굴을 한 새, 소의 얼굴을 한 신 등 신비롭고 환상적인 내용들이 이야기는 없고 형태만 남아 고구려인들이 꿈꾸던 세계관을 들려준다. 

사진의 질이 아주 좋은 편이고 설명도 간략하면서도 핵심만 짚어 준다.
그래서 양도 많이 않다.
앞장에 실린 지도 그림도 고구려의 지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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