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에 시집온 칭기즈칸의 딸들 표정있는 역사 3
이한수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신문기자가 썼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전문적이고 깊이가 있다.
야사류로 흐르지 않고 기록에 충실하면서도 상상력을 발휘하여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몽골 속국 시대를 그려낸다.
느닷없이 등장한 충~왕이라는 시호가 낯설기 그지없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기 때문에 이 시대는 항상 모호했었다.
그러다가 드라마로 공민왕 시대가 다루어지면서 약간의 감을 갖게 됐다.
워낙 인기가 없었던 드라마라 초반에 잠깐 봤던 게 전부인데 (손창민이 신돈으로 나와 이상한 헛웃음만 화제가 됐었다) 그 때 공민왕의 어머니인 명덕태후 홍씨, 형이었던 충혜왕, 형수 덕령공주, 조카 충목왕과 충정왕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지금 생각하니 좀 열심히 봤더라면 어느 정도 고려 후기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었을텐데 아쉬운 부분이다.
아무리 드라마가 역사 왜곡을 한다고 해도 사극은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관심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순기능이 있는 것 같다. 

무신정권을 끝내고 강화도에서 나와 원에 복속했던 24대 왕 원종은 직접 중국까지 건너가 당시 세력 다툼 중이던 쿠빌라이에게 항복 의사를 밝힌다.
아직 전체 권력을 손에 잡지 못했던 쿠빌라이는 이 고려의 젊은 왕세자를 기특하게 생각하여 훗날 황제가 된 뒤 자신의 유일한 딸을 시집보낸다.
원나라의 부마가 된 것은 역사책에 나오는 치욕스러운 분위기라기 보다는, 고려의 위상이 단번에 올라가는 대단한 사건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태종 때 명나라 사신이 왔을 때 양녕대군과 명 황제의 딸을 결혼시키자는 말이 돌았다고 했다.
물론 명 황실에서는 감히 전혀 생각지도 않던 일로써 태종에게 잘 보이기 위한 아랫사람들의 농간이었다.
당나라에서 유목민 왕에게 공주를 시집 보내는 예가 있긴 하지만 , 우리는 중국과 조공의 관계를 맺어왔으나 원나라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결혼이 이뤄진 적이 없다.
원나라의 부마국이 된 것은 정말 이 책에 나온 바대로 황제와 고려 국왕의 개인적인 은혜 관계 때문에 특혜를 입은 것인지 궁금하다. 

하여튼 멀리 익주까지 쫓아가서 쿠빌라이를 영접한 충렬왕은 쿠빌라이게 황제위에 오른 후 그녀의 외동딸 제국대장공주와 결혼한다.
이번에 안 사실인데 대장공주란 황제의 고모를 뜻하고 장공주는 황제의 형제, 공주는 딸을 뜻한다고 한다.
또 제국대장공주네, 노국공주네 할 때 앞의 이름은 분봉받은 땅의 이름이라고 한다.
마치 황후, 태황후, 태상태후 하듯 격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제국대장공주는 시집 올 당시 겨우 열 대 여섯 살이었고 남편 충선왕은 스물 네 살로 당연히 아내와 아들까지 있었다.
황제의 적녀인 공주는 어린 나이임에도 남편과 고려 왕실을 꽉 쥐고 흔들 만큼 위세가 대단했고, 아들까지 낳는다.
이 아들이 충선왕이다.
어머니의 위상이 원 황실에서 상당했던 만큼 충선왕 역시 세자 시절부터 아버지를 능가할 만큼 대단했다고 한다.
결국 어머니가 젊은 나이에 갑자기 죽자 충선왕은 무고 사건의 전모를 밝힌다는 명분하에 아버지의 총비는 물론 지지세력까지 처형하고 원으로부터 새 국왕으로 선포된다.
어머니가 죽기 전 쿠빌라이의 손자였던 진왕 카밀라의 딸 보탑실련, 즉 계국대장공주와 혼인했다.
그 역시 다른 아내가 있었으나 정식 왕비가 아니었기에 문제되지 않는다.
불행히도 충선왕 역시 아내와 사이가 좋지 못했고 급기야 아내와의 불화가 원황실에까지 알려져 소환당한 후 왕위를 뺏기기까지 한다.
충선왕은 여러 여자들과 관계를 맺었는데 그 중에서도 원에 있을 당시 관계한 몽골 여자에게서 아들을 둘이나 얻는데 그 중 둘째가 충숙왕이다.
원의 공주가 무서웠기 때문일까?
아들을 둘이나 낳아 준 몽골 여인을 끝내 고려로 데려오지 못했고 아들인 충숙왕이 왕위에 오르자 의비로 추숭된다. 

충선왕은 원나라의 황위다툼 때 줄을 잘 서서 그가 지지한 무종이 황위에 오르자 곧 복위된다.
간단히 원 역사를 짚어 보자면, 쿠빌라이가 원 5대 황제 세조로 등극한 후 80세의 나이로 죽자 (와, 정말 오래 살았다) 황태자는 이미 죽었고 그 아들이 6대 성종으로 즉위한다.
그런데 이 성종의 황태자가 요절하자 황위 다툼이 벌어지고 조카인 무종, 인종이 차례로 황제에 등극한다.
이 두 사람의 어머니인 다기는 남편이 죽자 동생인 성종의 아내가 되는데 아들들이 황제가 되자 함께 권력을 향유한다.
충선왕이 지지했던 사람이 바로 인종이다.
충선왕은 원의 명령에 따라 등극도 하고 폐위도 되는 경험을 한 만큼 다시 고려 국왕으로 복위한 후에도 원을 떠나지 않고 만권당이라는 일종의 연구소를 차려 놓은 후 막간에서는 고려를 지배하고 원에서는 자신의 정치 세력을 키운다.
왕위에 오른 의비의 아들 27대 충숙왕으로서는 실원을 놓지 않은 아버지가 매우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충숙왕은 복국장공주와 결혼한다.
그러나 충숙왕 역시 몽골 왕비와 사이가 좋지 않고 대신 홍문계의 딸인 덕비만 총애하여 두 아들을 낳는데 큰 아들이 28대 충혜왕이고 15년 후에 낳은 늦둥이가 바로 그 유명한 31대 공민왕이다.
재밌는 것은 충선왕도 홍문계의 딸을 후궁으로 맞아 결국 아버지와 아들이 동서 지간이 된 셈이다.
확실히 고려는 족내혼이 성행하여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조선 시대 유학자들이 보면 정말 허걱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일례로 충선왕은 어머니 제국대장공주가 사망하자 무고 사건의 전모를 밝힌다는 명분으로 아버지 충렬왕이 총애하던 무비를 처형한다.
그리고서 적적함을 달래 준다고 과부 김씨를 아버지의 후궁으로 들이는데 나중에 아버지가 죽가 이번에는 자신의 부인으로 삼아 숙비에 봉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자를 취하다니, 놀라운 일이다.
이런 분위기였기 때문에 충혜왕이 아버지의 정비이자 몽골의 공주인 백안홀도 공주를 강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첩과는 위치와 격이 다른, 명백히 법적인 어머니인데도 감히 겁탈을 한 것이다.
물론 이 일로 충혜왕은 원에 소환되어 폐위당한 후 유배를 떠나다 죽는다. 

충선왕은 아들 충숙왕 외에도 이복형의 아들인 고를 사랑해 양자로 삼는다.
무종과 인종의 등극을 도운 공으로 심양이라는 작위를 받은 충선왕은 이 자리를 고에게 넘겨 주고 10대 태정제의 친조카인 눌륜공주와 결혼까지 시켜 충숙왕과 경쟁시킨다.
충숙왕이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간다.
더군다나 그는 몽골 왕비들과의 관계도 나빠서 첫번째 아내인 복국장공주는 심지어 남편에게 맞아 죽고 만다.
이 일로 충숙왕은 4년간 원에 끌려가 억류된다.
이 때 국왕 노릇을 한 것이 바로 심왕이다.
그는 인종의 아들인 9대 영종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영종이 쿠데타로 살해당하자 충선왕의 처남인 태정제가 즉위하면서 사정은 급변한다.
충숙왕은 금동 공주 혹은 조국장공주와 재혼하면서 국왕으로 복귀한다.
그러나 열 일곱 살의 나이로 서른 한 살의 충숙왕에게 시집온 금동공주는 애를 낳다가 사망하고, 그 아들 역시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열 일곱의 나이로 요절한다.
그는 다시 세 번째 아내를 맞는데 이 여자가 바로 아들격인 충혜왕에게 겁탈당하는 불행한 백안홀도공주이다. 

계모를 겁탈할 정도였으니 대신들이나 친척 여인들도 부지기수로 건들 만큼 횡음무도했고 국정도 피폐해졌다.
큰어머니를 겁탈했다고 왕위까지 뺏긴 연산군 보다 몇 수 위였던 것 같다.
결국 그는 원나라에 압송되어 유배를 떠나다 죽고 만다.
왕위는 몽골 왕비였던 덕령공주의 8세 된 아들 충목왕이 잇는다.
이 때부터 덕령공주의 섭정이 시작된다.
그 아들이 12세의 어린 나이로 죽자 이번에는 충혜왕의 후궁이었던 희빈 윤씨의 아들 충정왕이 30대 왕으로 등극하여 역시 덕령공주가 권력을 휘두른다.
내 기억에 드라마 <신돈>에서는 김여진이 덕령공주 역을 맡았는데 남편이 죽고 아들마저 요절하자 충정왕이 왕위에 오른 후로는 뒷방으로 물러나 쓸쓸히 여생을 보내다가 원나라로 돌아가는 걸로 처리됐던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충정왕 때까지 섭정을 하면서 고려의 개혁을 저지했고 잠자리를 함께 하는 대신들도 몇 있었다고 한다.
공민왕이 왕위에 오른 후로는 왕태후와 같은 대우를 받으며 조용히 20여 년을 살다가 고려에 묻혔다.
충정왕은 12세에 왕위에 올라 14세에 폐위되는데 왜 그랬는지는 자세히 기술이 안 되어 있다.
어머니가 고려인이라 세력이 부족했나?
하여튼 왕위는 고종사촌 격인 보탑실리, 즉 노국대장공주와 결혼한 공민왕에게 돌아간다.
아버지 충숙왕의 두 번째 왕비였던 금동공주의 오빠인 위왕의 딸과 결혼한 것이다.
그는 폐위된 열 네 살의 조카를 독살함으로써 잔혹한 군주의 모습을 드러낸다. 

공민왕 하면 예술을 사랑하고 아내 노국공주를 끔찍히 아꼈던 유한 군주처럼 보인다.
드라마에서 정보석이 맡았던 이미지도 부드러웠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영화 <쌍화점>을 보면 잔치 석상에서 권신들을 몰살한 잔혹한 군주로 나온다.
영화가 오버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니 공민왕은 과연 반원 정책을 추진하고 권력을 줬던 신돈을 일시에 죽여버릴 만큼 충분히 잔인한 군주였다.
그는 연경에서 10년을 수행했던 장군들을 자기들끼리의 세력다툼을 이용해 살해하고, 홍건적의 난 때문에 안동까지 피신해 있을 때 개경을 수복한 장군들 마저 함정에 빠뜨려 죽이고 만다.
노국공주가 죽고 난 후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보이던 그는 결국 주변에 친위 세력 하나 못 만들 만큼 모두를 적으로 돌린 채 자제위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형 충혜왕 못지 않게 극단적인 구석이 강했던 것 같다. 
기철 일당을 처형하다가 원의 공격을 받아 충선왕의 서자인 덕흥군에게 왕위를 뺏길 뻔 하기도 했으나 최영과 이성계의 강력한 대응으로 무마시킬 수 있었다.
여자 대신 동성애에 관심이 많았던 공민왕은 신돈의 애첩인 반야에게서 모니노, 즉 우왕을 얻었으나 고려사에서는 이가 신돈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책에서도 이 의견에 무게를 싣고 있다.
그는 여자에 관심이 없고 대신 관음증이나 동성애에 몰두했기 때문에 홍륜 등에게 자신의 후궁인 익비와 관계하도록 종용했다.
나중에 그녀가 임신을 하자 공민왕은 이들을 죽일 계획을 세웠고 정신착란 상태에서 환관 최만생에게 이를 미리 발설하다가 역으로 죽임을 당하고 만다.
<쌍화점>에서 그대로 차용된 내용이다.
유학이 지배한 조선 시대에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파격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다. 

항상 모호하기만 했던 고려 후반기에 대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는 기분이다.
아무 관심도 없었던 몽골인 왕비들이 고려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도 알게 됐고 후진국이라고 무시하는 몽골인들이 우리와 얼마나 가까운 혈족인지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200 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책이지만 왕과 왕비의 세보도 정확히 나왔고 더불어 원나라 황실까지 자세히 그려줘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을 살려 잘 묘사했기 때문에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다.
이제 고려 시대사를 좀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리, 세상을 날다
전국지리교사모임 지음 / 서해문집 / 200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자층을 중고등학생으로 잡은 걸까?
대학생 이상이 읽기에는 너무 수준이 떨어진다.
차라리 얼마 전에 읽은 <지리이야기>를 추천한다.
학교 선생님들이라 학생들이 읽기 쉬운 책을 쓴 모양이다.
차라리 고등학교 지리 교과서가 이 책보다는 더 많은 지식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내용이 너무 가볍고 피상적이라 지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기 보다는 관심을 환기시키는 정도에 멈춘다.
요즘은 중고생 대상으로 나온 책들도 굉장히 수준이 높고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감탄할 때가 많은데 이 책은 준비가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에 너무 혹해서 읽은 것 같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의 사회주의 정권에 대한 부분은 너무 낙관적으로 스케치 하듯 써 놔서, 얼마 전에 읽은 <라틴 아메리카 역사 다이제스티브 100> 의 현실과는 너무 다르다.
좀 더 공부를 하셔서 깊이 있는 책을 출판하길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도의 경전들 - 베다 본집에서 마누 법전까지 살림지식총서 311
이재숙 지음 / 살림 / 200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앙박물관의 아시아실에서 인도 미술품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베트남전은 베트남 현지인이 직접 한 시간 동안 설명해 주는 안내를 받을 수 있어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지만, 인도 미술전은 아쉽게도 해설이 없어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했다.
짧게 설명문이 달려 있긴 하지만 추상적인 말이 많고 구체적으로 뭘 가르키는지도 몰랐다.
특히 그림들은 도무지 뭐가 뭔지 이해가 안 갔다.
인도 문화나 경전, 민간전승 등에 대해 내가 너무 무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한 번 알아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던 차에 알라딘의 어떤 서재에서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읽고 마침 100 페이지가 안되는 가벼운 살림총서이길래 얼른 집어 들었다.
그 분의 서평처럼 짧은 분량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다 보니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그래도 아쉬운대로 대체 인도 경전이라는 게 뭔지 약간의 맛은 볼 수 있었다.
특히 박물관에서 봤던 그림에 대한 두 서사시, 라마야나와 마하바라따에 대해서는 인터넷까지 참조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라마야나는 라마의 여행기라는 뜻으로 이 때 라마는 비슈누 신의 화신이다.
어느 왕국의 아들로 태어난 라마는 계모의 모략에 의해 왕위를 뺏기고 유배를 간다.
이 때 아름다운 아내 시타도 따라나선다.
숲 속에서 나쁜 왕 라와나에게 아내를 뺏긴 라마는 원숭이 장군인 하누만 등의 도움을 받아 라와나를 죽이고 시타를 되찾아 다시 왕위에 오른다.
그러나 불행히도 라마는 시타의 정절을 의심한다.
그녀는 자신의 정절을 증명하기 위해 불타는 장작더미 속으로 뛰어들고 이것이 과부들의 순장 풍습인 사티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그 때 신들이 나타나 그녀가 사실은 비슈누의 아내인 락슈미 여신이라고 알려주면서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내가 박물관에서 봤던 그림은, 라마가 라와나를 물리치고 왕위에 오르는 장면이었다. 

다음, 라마야나 보다 네 배나 길다는 마하바라따.
마하트마가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이듯, 마하바라따는 위대한 바라따 왕조의 이야기라고 한다.
바라따의 후손들이 다스리는 하스띠나뿌라 왕국에 어머니가 다른 두 형제들 간의 왕위 다툼이 벌어진다.
까우라바 형제들의 맏형인 듀르요다나는 빤다바형제들을 유배보내고 이들간의 전투가 벌어진다.
이 때 셋째인 아르주나가 형제들과 피를 흘리고 싸워야 할지를 고민하자 그의 전차를 모는 친구 크리슈나가 전사로서의 의무를 강조하는데 이 문답집이 바로 유명한 바가와드 기따라고 한다.
크리슈나는 비슈누 신의 화신이기도 하다.
빤다바형제가 이기기는 하나 결국 모두 다 죽는 대참사로 끝이 나고 이 형제들은 나중에 천국으로 들어간다.
사실 내용이 너무 복잡해 간신히 기둥 줄거리만 대충 감을 잡았다.
내가 박물관에서 봤던 그림은 까우라바 형제들과 빤다바 형제들이 전쟁터에서 맞선 장면이었다.
이 서사시는 워낙 내용이 방대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합한 것의 열 배 분량이라고 한다.
인도인들은 이런 서사시를 통해 지켜야 할 인간의 도리와 삶의 의미, 여러 규범들을 습득했다고 한다.
인도 문화가 좀 더 세계화 되고 일반화 된다면 라마야나와 마하바라따는 굉장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할 것 같다.
무엇보다 현대에까지 전승되어 여전히 인도인들의 삶을 이루는 살아있는 문화라는 게 중요하다. 

브라만 계급의 특권을 수호하는 카스트 제도의 근간이 되는 마누 법전 등도 마치 유대인들의 탈무드처럼 중요한 관습법의 모체라고 한다.
최고의 경전은 하늘의 소리를 기록했다고 믿어지는 베다 모음집인데 모두 네 가지로 나뉜다.
리그 베다, 사마 베다, 야주르 베다 등은 제사 의식을 설명하거나 찬가 등을 기록한 것이고 아타르와 베다는 인간의 소망을 비는 주술서라고 한다.
모두 제사를 주관하는 브라만을 위한 경전이다.
이 경전을 해석한 것이 전승서로 알려진 브라흐마나, 아란야까, 우파니샤드이다.
브라흐마나가 주로 제사와 같은 의식적인 내용이라면 아란야까는 수행에 관한 내용이고, 우파니샤드는 더 발전해 해탈과 존재의 이유, 사유 등 인도 철학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운문으로 된 베다와 달리 산문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 내세나 윤회, 업 등의 개념이 나온다.
또 인간의 네 가지 목적이 있는데 첫째는 까마, 즉 성애, 기쁨이고 둘째는 아르타, 유무형의 가치나 실제적인 재물을 의미하며, 셋째는 다르마, 인간이 해야 할 의무, 도리, 규범 등이고 마지막이 목샤, 해탈이나 자유라고 한다.
이들은 인생의 단계마다 성취해야 할 이상인데 마지막이 바로 해탈의 단계인 목샤이다.
갈등이나 집착이 없는 단계, 최고의 행복, 깨달음이나 열반, 혹은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구원 같은 것인가?
창조의 신은 브라흐만이고 이는 곧 궁극자로 알려져 있다.
그것을 파괴하는 신은 쉬와이고 이들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비슈누이다.
신의 위계는 하늘, 중간, 땅으로 나눠져 있는데 보통 하늘 영역의 신은 비슈누 등의 태양신이고 중간 영역의 신이 바람의 신인 바야, 천둥번개의 신인 인드라 등이다.
이는 전쟁의 신이기도 하고 드라비다인을 점령한 아리아인을 의미하기도 한다.
땅의 영역에 속하는 신은 불의 신인 아그니, 대지의 신 쁘리트위 등이 있다. 

워낙 인도 종교에 무지하기 때문에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래도 약간의 감은 잡히는 기분이다.
상대적으로 인도 문화는 유럽의 신화에 비해 덜 알려졌으나 그 엄청난 인구와 화려한 전통에 비춰 볼 때 절대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큰 영향력을 가진,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현재적인 문화라고 생각한다.
라마야나나 마하바라따 같은 서사시들이 좀 더 많이 알려져서 인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세계문화유산이 더 풍부하고 깊어지길 바란다.
얼마 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인도현대미술전에 다녀오기도 했는데 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인도 문화가 좀 더 가깝게 와 닿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히말라야 도서관 - 세계 오지에 3천 개의 도서관, 백만 권의 희망을 전한 한 사나이 이야기
존 우드 지음, 이명혜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도 예쁘고 내용도 좋고 지하철에서 흥미롭게 읽고 있다.
문장력은 평이하지만 뜻이 너무 좋아 혼자 지하철에서 울컥 할 때도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특히 책, 그리고 그것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인 도서관에 집중하는 게 너무 좋았다.
그 점이 저자를 일반 자선 사업가와 다르게 만들어 주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우연히 휴가차 히말라야 트래킹을 갔다가 만난 네팔인 교장 선생님 때문에 학교를 방문하고 도움을 주기로 약속한 저자는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잘 나가는 회사까지 그만둔다.
지금은 이렇게 책까지 내고 유명한 사람이 됐으니 MS에 다닐 때보다 훨씬 잘 된 일이지만, 결심을 하고 실천에 옮기기까지 많은 갈등과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후원해 준 점이 인상적이었다.
70대의 나이 때문에 네팔 방문이 어렵지 않을까 걱정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대공황과 2차 대전 때도 살아남았다고 큰소리 친다.
그 장면에 또 울컥 해서 우리 윗세대들이 얼마나 힘든 세월을 견뎌 왔는지 그리고 평화의 시대에 사는 지금 세대가 얼마나 행복한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전에 TV에서 본 한비야 씨가 생각나기도 했다.
아직도 전 지구상의 70%가 문맹이고 그 중 2/3가 여성이라고 한다.
저자의 표현대로 나 역시 글자를 모르는 삶이란 정말 상상할 수 조차 없다.
단순히 끔찍하다 이런 개념이 아니라 글을 모르면 사회에서 가장 약하고 힘없는 하층민이 되는 것이다.
책에도 나오지만 영어만 할 줄 알아도 네팔에서는 가이드로 현지인 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책이 주는 무한한 기쁨, 삶의 확장, 경험해 보지 못한 또다른 세상, 정말 책이 없는 삶이란, 글자를 읽을 수 없는 삶이란 활자 중독인 나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이런 당연한 혜택을 전 지구상의 2/3가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니, 안타깝다.
한국인만 교육열이 넘치는 게 아니라 네팔 사람들 역시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지만 경제적 현실이 장벽이 된다고 했다.
먹고 사는 문제 뿐 아니라 아이들의 교육 문제도 전지구적인 관심이 필요한 부분이다. 

미국에서 도서관이 발달한 이유는 이민자들이 도서관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도서관에서 정보를 얻고 아이들은 상상의 나래를 편다.
도서관이야 말로 가장 대표적인 공교육의 현장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학원 대신 도서관에 보내자는 바람이 불고 있다.
나 역시 아이를 낳으면 방과후 학습으로 학원 말고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싶다.
네팔 아이들이 당나귀가 실고 온 책을 보고 환호하는 장면들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울컥 해서 금방이라도 기부금을 보내고 싶어졌다.
이 나라에서는 영어를 국어와 함께 가르치기 때문에 영어책을 읽는데 부담이 없는 것 같다.
사실 지난 번에 중국에 갔을 때도 천 원, 천 원 외치는 행상들이 많아 다 사 주지 못해서 마음이 무거웠었다.
처음에는 죄다 짝퉁이다, 길거리에서 저런 거 사 먹으면 배탈난다, 이런 식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했는데 관광객들의 호의를 바라는 행상들을 너무 야멸차게 거절해 버린 건 아닐까 마음이 무척 불편했다.
나에게 천 원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돈인데 말이다.
풍족함은 만족이 없을 것이다.
아무리 돈을 많이 써도 충분하다는 느낌은 받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의 절제가 있어야 하고, 나 이외의 주변에도 조금은 나눠 줄 수 있는 여유가 보다 삶을 풍요롭게 아름답게 만들 것이다.
정말 내가 의미있게 생각하는 곳에 나도 기부라는 걸 해 보고 싶고 이런 운동들이 보다 대중적으로 확산되서 우리 사회를 이루는 건전한 풍토가 되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취향 - 미술, 패션, 인테리어 취향에 대한 내밀한 탐구
박상미 지음 / 마음산책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녀의 다른 책, <뉴요커>를 재밌게 본 나로서는 소재부터 신선하기 그지없는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이 무척 컸다.
그러나 솔직히 너무 실망스럽다.
너무 뻔한 내용이랄까?
취향이라는 고급스러운 소재에 대해 어쩌면 이렇게도 시시하고 뻔한 소리만 읊어대는지...
어쩌면 전작인 <뉴요커>에서 내가 흥미롭게 읽은 것은 그녀의 글솜씨라기 보다는, 어린 마음에 뉴욕에 대한 동경이 컸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미국 사람과 결혼해서 마라톤을 취미로 삼고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는 모습이 너무나 멋지게 보였다.
지금은 오히려 뉴요커 운운하는 게 훨씬 촌스럽게 들릴 만큼 흔해 빠진 클리쎄로 느껴진다.
내가 그만큼 나이를 먹고 또 우리나라 역시 첨단의 끝을 달리고 있으니 오히려 우리문화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취향이나 감수성, 예술 작품을 보는 안목 같은 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결정짓는 정체성에 있어서 돈 보다 더 결정적인 부분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로 부르디외가 인문학 교양을 강조하는 것이리라.
좀 더 세련되게 겉멋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를 구별해 주는 것, 내가 가지고 있는 수준높은 감식안, 이런 철학적인 문제를 일상의 소재를 가지고 녹여 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히려 취향에 관해서라면 이런 노골적인 제목의 책보다는 차라리 하루키가 쓴 마라톤 에세이가 훨씬 더 와 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