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 마네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24
질 네레 지음, 엄미정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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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 샵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좋아하는 화가들을 시리즈로 연이어 읽어 봐야겠다 마음 먹고 있던 차에 도서관에서 발견한 후 첫 타자로 마네를 골랐다.
가장 근대적인 화가, 도시적이고 인상파의 시작을 알리며 무엇보다 색체 그 자체로 말하는 강렬한 평면성과 명암 대비의 일인자!
검은 색이 주는 놀라운 신비로움을 이렇게도 명확하게 보여주는 화가가 또 있을까.
마네는 정말로 딱 내 스타일의 화가다.
한가람 미술관에서 작년에 열렸던 인상파 展 에서 봤던 <피리부는 소년>의 감동이 잊혀지지 않는다.
오르셰 미술관이 하필 휴관일일 때 파리에 가는 바람에 위대한 프랑스의 근대 화가들을 보지 못했던 게 그 때처럼 아쉬울 때가 또 있었을까. 

이 책은 프랑스인 큐레이터가 직접 쓴 책이라 그런지 막연한 찬양과 에피소드 대신 정말 작품 위주의 간결한 논평으로 구성됐다.
자잘한 에피소드 대신 정말 작품에 대한 해설을 위주로 설명하기 때문에 약간 현학적이라는 느낌도 들고 지루한 부분도 있었으나 일단 분량이 워낙 짧기 때문에 집중해서 금방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도판이 너무 아름답다.
덜 알려진 그림들도 많이 실려서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괜찮은 시리즈 같고 다른 관심있는 화가들도 읽어 봐야겠다.
한 가지 궁금했던 점은 마네와도 친했던 여류화가 베르트 모리조가 많은 구혼자를 물리치고 외젠 마네와 결혼했다는데 그녀는 정략적 결혼이라 여겨 불행했다고 한다.
이 깊고 그윽한 눈을 가진 우아한 여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테라스에서 햇빛을 받으며 눈부시게 하얀 원피스를 입고 앉아 있는 그녀의 초상화는 정말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마네는 수정도 별로 하지 않고 한번에 쓱 붓 가는대로 그렸다는데 나중에 그의 제자가 된 에바 곤잘레스는 수백번을 고쳐 그리고 또 그렸다고 한다.
그는 말 잘 듣는 에바를 총애하여 베르트가 질투했다고 하는데 그림의 분위기로 봐서는 감히 베르트와는 비교가 안 된다.
크게 확대해서 본 그림 속의 베르트는 정말로 우수 가득한 눈망울을 가졌고 때이른 죽음과 연관되어 더욱 비극적이고 슬퍼 보인다.
나는 그녀의 초상화들이 정말 마음에 든다. 

 마네의 아버지는 직위가 높은 판사였고 어머니는 외교관 딸이었다고 한다.
성공한 부르주아 상류층 계급이었던 셈.
해군 학교를 가려고 했으나 낙방하는 바람에 재능을 보이던 미술로 돌아섰고 올랭피아 등으로 화단에 충격을 주면서 살롱에 입선하는 대신 원하지 않던 인상파의 우두머리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당대의 댄디이자 멋쟁이 신사였다는 저자의 표현이 마네의 이미지와 딱 들어맞는다.
시골 풍경을 그리기 좋아했던 모네와는 달리 (이름도 비슷해 마네는 불쾌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마네는 철저하게 도시인이었고 풍경은 그저 인물을 드러내기 위한 배경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또 인물 주변에 있는 정물화에 매우 공을 들여 또다른 미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가 자신에게 우호적이었던 에밀 졸라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함께 묘사한 방의 집기들은 놀랄 만큼 세밀하고 그가 정물화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나중에는 모네에게 이끌려 아르장퇴유 같은 곳으로 장소를 옮겨 배를 타고 본격적으로 외광회화를 시작한다.
강렬한 태양빛에 반사된 새파란 바다색은 당시 기준으로 보면 너무나 직설적이고 천박했을 것 같지만 21세기의 관객에게는 가슴이 뛰는 색체의 美를 선사한다.
초기의 얌전한 인물화들도 좋지만 후기로 가면서 더욱 대담해진 색채 감각과 거친 붓질은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같은 명작을 남긴다.
그가 매독으로 다리를 절단한 후 그 해에 죽었다는 사실은 90 가까이 산 모네나 르느와르, 피카소, 마티즈 등에 비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명성을 얻으면서 주변에 여자가 많았다고 한다.
마네의 아내는 동생과 자신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던 네덜란드인 과외 선생, 수잔 렌호프였는데 오랜 시간 동안 동거를 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결혼했다는 얘기를 다른 책에서 봤었다.
무척 아름답고 착하고 교양있는 여인이었다는데 큰 아들이 사생아로 마네의 아들로 알려졌으나 확실치 않다고 한다.
그 아들이 등장하는 그림도 그가 입고 있는 검은 양복과 대비되어 무척 인상적이었다.
렌호프와의 결혼 얘기가 책에 안 나와 아쉬웠다.
얼마 전에 재밌게 읽었던 김광우씨의 모네와 마네를 비교한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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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찾아서 - 노벨상을 수상한 위대한 천재 과학자 에릭 캔델의 삶을 통해 보는 뇌와 기억의 과학
에릭 R. 캔델 지음, 전대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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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고 있는 책이다.
500페이지 정도 되는데 앞부분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소설처럼 기술해서 정말 재밌게 읽었고 수정의 밤에 가해진 나치의 테러 부분에서는 눈시울을 붉혔다.
자서전과 전공 내용이 잘 어울어진 책이다.
2000년도에 기억의 과정을 세포 수준으로 밝혀 내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유대인이라는 민족성과 문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에서는 워낙 유대인들이 큰 권력을 갖고 있고 그 영향으로 한국에서도 유대인을 대단시 하고 부러워 하지만 유럽에서 유대인의 위상은 상당히 낮을 뿐더러 일종의 집단적인 시기 질투를 받는 느낌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자의 표현대로 세계의 수도와도 같았던 최고의 지성과 문화를 자랑하던 빈의 시민들이 어떻게 한 순간에 한 미치광이 독재자의 충동질에 놀아나 끔찍한 집단 폭력자로 바뀌었겠는가.
그러고 보면 미국은 이민자들에게 비교적 많은 기회를 주고 열려 있는 사회였기 때문에 신생 국가였는데도 오늘날과 같은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 같다.
제국의 수도였던 빈에 대한 향수는 오늘날의 몰락과 비교되어 안타깝고 애잔했다.
또 우상시 했던 형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어려워진 가정 경제를 돕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인쇄공으로 진로를 바꾼 점도 엄청난 저자의 성공과 대비되어 무척이나 슬펐다.
우리나라로 치면 일종의 장남 컴플렉스가 아니었을까 싶다.
막내였던 저자는 쉬는 날 하루 없이 칫솔 공장과 좌판대에서 일한 부모와, 일찍이 생활전선에 뛰어든 형의 희생 덕분에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에 들어갔고, 뉴욕대에서 의학 공부를 마친다.
거기서 만난 드니스와 결혼하여 정신과 수련을 받는데 돈 보다는 지적 성취를 격려하는 아내의 후원에 힘입어 진료소를 여는 대신 실험실에 들어가 기억의 과정을 세포 수준에서 밝히는 연구에 돌입한다. 

마치 하나의 잘 쓰여진 자서전 같으면서도 중간 중간에 자신의 연구 과정과 성과를 생물학 교과서처럼 논리정연 하게 밝힌다.
어찌 보면 학습이란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하느냐의 문제인 만큼 나도 기억에 대해 관심이 많다.
특히 어빙하우스가 제시한 망각 곡선을 실제 학습에 이용해 효율성을 높힐 수 있을지 궁금하다.
간단히 말해서 시간차를 두고 반복할수록 장기 기억으로 저장이 된다는 논리인데 저자는 이것을 세포 수준에서 증명해 낸다.
단순히 그럴 것이다라고 관념적으로 추론하는 게 아니라 에너지 대사 과정을 분자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듯 단기 기억이 어떻게 장기 기억으로 변하게 되는지를 이온 채널과 cAMP 등의 분자를 가지고 설명한다.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상당히 지루하고 조금은 어려웠다.
맨 처음 시작 단계에서 이온 채널이나 활동 전위 같은 얘기는 학교 다닐 때 워낙 많이 들었던 얘기라 쉽게 이해가 갔는데 기억이라는 세부적인 단계로 들어가니 상당히 복잡하고 진도가 쉽게 나가지 않았다.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단기 기억은 시냅스의 세기가 증가하는 것이고 장기 기억은 구조 변화가 생겨 시냅스 말단이 늘어나는 것이다.
또 이 때 늘어난 말단을 유지하기 위해서 CPEB라는 단백질이 prion처럼 DNA의 전사가 없이도 혼자서 자가증식을 한다.
단기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바뀔 때 신호가 되는 전달 물질이 바로 serotonin 이다.
한 권의 교과서를 읽는 것처럼 논리정연하게 쓰여진 기억의 과정을 읽으면서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어 있다는 오랜 관념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다시 한 번 깨달았고 인간이 영혼을 가진 특별한 존재라는 것도 그저 인간 위주의 자아도취에 불과함을 느꼈다.
정말 생물학에 대해 더 많은 진보가 이뤄진다면 기억을 강화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물질을 집어 넣는 시술도 이뤄지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머리 좋아지는 약이라고 ADHD 때 쓰는 dopamin을 먹이는 강남 엄마들도 있다고 하는데 당뇨 환자에게 인슐린을 투여하듯 모든 기억의 메커니즘이 밝혀져서 실제로 우리가 학습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인슐인 얘기가 잠깐 나오는데 요즘처럼 대량 생산이 가능한 이유는, DNA 재조합 기술의 발달 덕분이다.
인슐린을 생산하는 유전자를 박테리아처럼 분열이 빠른 균류의 핵에 끼워 넣고 배양하면 무한한 양의 인슐린을 얻을 수 있다.
정말 놀라운 생명공학의 결실이 아닐 수 없다.
워낙 인슐린이 보편화 되서 아무 생각없이 쓰고 있지만 곰곰히 따져보면 소름끼칠 정도로 대단한 혁명이 아닌가 싶다.
어떻게 몸에서 만들어 내는 호르몬을 인간이 직접 생산해 낸다는 말인가?
이렇게 최첨단의 과학 시대에 살면서도 여전히 신을 찾고 정신이나 관념 운운하면서 음양오행설, 기 같은 말로 사람을 현혹시키는 게 통한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다.
칼 세이건이 한탄한 대로 우리는 현대 문명의 이기를 너무나 많이 누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현대의 과학 연구가 한 사람의 독자적인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함을 새삼 느낀 것이, 책에 굉장히 많은 동료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는 노벨상을 받은 사람도 많아 미국이 얼마나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 과학적 발전이 단지 알고자 하는 욕구, 궁금해 하는 호기심 같은 순수한 동기 뿐 아니라, 동료 집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남보다 잘나고 싶은 욕망 등이 합쳐져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수한 집단에 속해 끊임없이 토론하고 자극받는 것은 창의적인 연구 수행에 필수인 것 같다.
때이른 죽음으로 젊은 나이에 사망한 동료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절절히 묻어난다.
천상 과학자일 수 밖에 없는 저자의 우직함과 성실함도 잘 묘사되어 있다. 

기억이 단순히 외우는 어떤 과정이 아니라 뇌에서 일어나는 정교한 작업 시스템임을 새롭게 배웠고 내 학습에 적용해 보고 싶다.
노벨상에 대한 목마름이 워낙 큰 사회에서 살고 있어서 그런지 반작용으로 거부감마저 들었는데 역시 세계적인 석학이나 대가는 일반인과는 다른 위대함을 가지고 있음을 느꼈다.
더불어 워낙 글을 잘 써서 과학자란 단순히 실험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연구 결과는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남들에게 보여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인문주의자 못지 않게 글 솜씨가 훌륭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너무 재밌게 보고 있어서 다음에 노벨상 관련 서적을 추가로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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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이야기 - 개정판
권동희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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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나는 공간 개념이 약하다.
공간을 기술하는 것보다는 역사나 사회 같은 인문학 이야기가 훨씬 읽기 편하다.
가벼운 내용인데 집중을 쉽게 못하고 자꾸 뒷장을 들썩였다.
책을 읽을 때 제일 행복한 것은, 딴 생각이 안 들 만큼 완전히 빠져드는 것인데 (그래서 심지어 내가 여태까지 이런 것도 모르고 어떻게 살았을까 한탄할 정도로) 이 책은 대체 내가 왜 시간을 내서 이걸 읽고 있어야 할까 의문스러울 만큼 집중을 못했다.
인문학적인 지리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앞부분은 자연과학적인 설명이 많다.
사진도 많고 개정판이라 그런지 디자인도 비교적 잘 되어 있는 편인데도 아주 흥미롭게 읽지는 못했다.
그러나 다른 관련 서적을 읽는다면 그 때는 이 책에서 얻은 지식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지리 변화가 문명의 흥망성쇠를 이끌었다는 가설이다.
따지고 보면 고대 문명이 큰 강 주변에서 일어난 것이나 곡식의 북방 한계선이 유목과 농경 사회 여부를 결정하는 것 등 주변 환경이 인간의 생활상을 결정해 왔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대륙과 해양 세력 중간에 낀 반도 국가의 숙명론 얘기가 나오지 않는가.
그런데 한 가지 재밌는 건 고대 4대 문명이 5500년 전에 일괄적으로 일어난 이유가 갑자기 불어닥친 한랭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갑자기 추워지니까 강수량이 줄어들고 주변이 건조화 되면서 농경지를 잃게 되니까 큰 강 주변으로 몰려 들었다.
이미 정착해서 살고 있던 집단은 새로운 유랑민들과 합심하여 국가를 이루었고 이들의 노동력으로 피라미드 같은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한랭화와 고대 문명의 기원설은 좀 색다른 접근 같다.
크레타 문명이 3000 여년 전에 느닷없이 붕괴된 것도 갑작스런 화산 폭발 때문인데 이 때 화산재가 홍해까지 미쳐 모세가 이집트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이 일어났다는 학설도 제기한다.
모세의 출애굽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최소설을 지지하는 내 입장에서는 끼워 맞추기식 해석 같지만 하여튼 지리 변화가 문명의 흥망성쇠를 이끈다는 이론은 공감이 간다. 

풍수에 대해서도 과학적으로 접근한다.
항상 헷갈렸던 좌청룡 우백호나 배산임수 등의 개념이 서울을 중심으로 찬찬히 설명하니까 약간 감이 잡힌다.
서울은 북쪽으로 주산인 백악산을 두고 동으로는 좌청룡 격인 낙산, 서로는 우백호 격인 인왕산, 앞으로는 안산인 남산을 두르고 있는 일종의 분지이다.
남산 바깥 쪽으로 한강이 동에서 서로 흘러 들어 안쪽으로 서울을 휘감아 다시 서에서 동으로 청계천이 흘러 나가는데 이 때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청계천이 바로 명당수다.
한양이 당시 어떻게 도읍으로 채택됐는지 이해가 된다.
경복궁이 풍수지리로 보면 탁월한 명당임을 알겠다. 

띄엄띄엄 대충 훑어 본 책이라 제대로 못 읽은 것 같아 아쉽지만 다른 관련 서적으로 지리 이야기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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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역사 다이제스트 100 다이제스트 100 시리즈 1
이강혁 지음 / 가람기획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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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나 책 표지가 왠지 전문가스러운 냄새를 풍겨서 읽고 싶은 목록에 올려 놓고도 쉽게 손이 안 갔던 책인데 막상 열어 보니 굉장히 쉽고 재밌다.
기술 수준이 상당히 평이해서 고등학생들도 교양 정도로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본격적인 학술서는 아니고 정말 가벼운 교양서 정도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런 책에 비하면 <히스패닉 세계>는 얼마나 전문가스러운가! 

아직 초반부 밖에 못 읽었는데 앞쪽은 라틴아메리카에 처음으로 인구가 유입되어 문명이 시작된 시점부터 유럽의 식민지로 전락해 대농장이나 광산의 노동자로 전락하는 불행한 역사가 기술됐다.
읽기가 편했던 점은 지나치게 원주민 입장에서만 서술하지 않고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의 식민주의자 역시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를 이루는 한 축으로 상당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술하기 때문에 덜 부담스러웠다.
특히 예수회 선교사들이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원주민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국왕의 반대편에서 싸우면서 라틴 아메리카인의 정체성과 독립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 이채롭다.
막연하게 선교사들은 다 십자가를 앞세우고 원주민을 착취한 위선자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일종의 편견이 아닌가 싶다.
잉카 제국을 멸망시킨 피사로나 아즈텍을 멸망시킨 코르테스 뿐 아니라 반란을 일으켜 본국으로부터 처형당한 그의 일가들 이야기도 나온다.
영국과 프라스인들이 이주한 북아메리카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 라틴 아메리키만의 문화적 특징과 혼혈로 이루어진 인구 구성 등을 보면서 왜 다르게 발전했는지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다.
현재의 문화 차이는 북아메리카가 여전히 백인들의 천국인 것에 비해 혼혈이 다수를 이루는 라틴 아메리카의 인구 구성을 봐도 단박에 알 수가 있다.
또 스페인의 영향으로 개신교가 주류를 이루는 북아메리카와는 달리 카톨릭, 그것도 토착화된 검은 피부의 성모 마리아 등으로 대표되는 토착주의 기독교 등도 중요한 문화 요소가 될 것이다.
다음 장에서 이들이 어떻게 본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됐는지가 기술된다.  

뒷쪽으로 가면서는 상당히 지루했다.
라틴 아메리카가 아무리 같은 역사와 비슷한 문화 환경을 갖는다 해도 20여 개국의 독립국들로 이루어졌는데 한 권의 책으로 근현대사를 전부 다룬다는 건 무리한 시도였던 것 같다.
저자도 서문에서 여러 나라를 한꺼번에 기술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밝히고 있다.
대체적인 공통점을 들자면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략으로 스페인 왕실이 무너지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식민지들은 그에 대한 반발로 독립을 추구하게 된다.
어찌 보면 나폴레옹이 유럽 뿐 아니라 신대륙에게까지 독립을 전파한 셈.
대농장 지주였던 식민지 출생 백인들, 즉 크리오요들은 본토인인 페니술라레스에 비해 정치적 위상에서 차별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중심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대한 독립 투쟁이 진행됐고 마치 중국의 군벌처럼 사병과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현대사의 독재 풍토를 만들어냈다.
끊임없는 쿠데타와 1당 독재 내지는 1인 독재 시스템이 빈곤층을 양산하고 외국 자본에 종속되며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왔다.
민주주의를 확립해 가는 미국이나 캐나다와 매우 대조적인 발전 시스템이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에서는 민주주의를 행했을지 모르나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서는 종속적인 경제 시스템을 강요하고 독재 정권을 지지했으며 특히 멕시코와의 전쟁에서는 국토의 절반을 뺏아갈 정도로 큰 타격을 입힌다.
1910년의 멕시코 혁명을 보면 미국의 발전된 사회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애절하고 안타까운 농민군의 느낌을 풍긴다.
그 혁명 덕분에 비록 1당 독재를 71년 동안이나 해 왔지만 6년 단임제를 지켜 오고 있다.
그러고 보면 라틴 아메리카는 상당히 사회주의적인 냄새가 풍긴다.
시몬 볼리바르가 라틴 대륙을 독립시킬 때도 단일한 국가를 꿈꾸었고 베네수엘라의 현 대통령인 차베스도 공동체를 추구한다고 한다.
그러나 유럽 연합처럼 관세를 철폐하고 정치적인 통합까지 가려면 각 국가간의 격차와 정치 상황을 좁히기가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 각 국가의 사회 시스템이 안정되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워지며 민주적인 정치 전통이 확립되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이 국가들이 하나의 공동체로써 단결하여 한 목소리를 낸다면 거대한 미국에 맞서는 또 하나의 강력한 세력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실제로 가장 큰 위상을 가지는 브라질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고 있고 G8에 명예 회원으로 참석한다고 한다. 

말로만 듣던 차베스나 룰라, 아옌데, 페론, 카스트로 등 현대 라틴 아메리카 정치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게 되서 기쁘다.
중간 부분에 각 국가의 정치 상황을 일률적으로 기술하는 부분에서 좀 지루하긴 했으나 그래도 대체 라틴 아메리카가 어떤 나라인지 어떤 전통과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발전해 왔는지 어느 정도는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관련 서적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더불어 라틴 아메리카의 사회주의 개혁이 성공하길 바라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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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규방문화
허동화 지음 / 현암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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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컸건만 실망스럽다.
책의 표지나 사진 등은 참 예쁘고 잘 만들어진 것 같은데 안의 내용이 그저 그렇다.
항상 느끼는 바지만 글을 잘 쓴다는 건 일종의 타고난 재능이고 기술인 것 같다.
학식이 높다고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고 전문가라고 해서 반드시 그 주제에 대해 잘 풀어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닌 듯 하다.
문장력, 소재를 풀어 나가는 솜씨 등은 정말 타고난 작가들이 따로 있는 것 같다. 

이런 자수나 보자기, 노리개 같은 건 고리타분 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박물관에서 실제로 전시된 우리 전통 작품들을 보면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너무나 곱고 단아한 게, 대체 왜 이런 걸 모르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정말 아름답고 예뻤다.
급격한 세계화나 식민지화를 겪지 않고 자연스럽게 현대화의 길을 걸었다면 전통 문화가 좀 더 현대적으로 수용되서 지금도 그 멋과 맛을 누릴 수 있었지 않았을까 참 아쉽다.
저자의 한탄대로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 자수 문화가 이제는 서구의 퀼트나 십자수 같은 것에 밀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고리타분한 죽은 문화가 돼 버렸다는 사실이 정말 안타깝다.
내가 그동안 노리개나 가락지, 버선 같은 것을 지루하게 생각했던 것도 주변에서 접할 기회가 없고 할머니들이나 관심 있는 걸로 여겼기 때문이다.
즉 실제로 그 문화를 접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막연하게 전통은 지루학 촌스러운 것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국력과 위상도 나날이 드높혀지는 만큼 이런 전통문화들이 많이 알려져 박물관이나 머릿속에서만 민족의 자랑스러운 전통 운운하면서 관념적으로 남아있는 게 아니라 실생활에서 향유하고 누릴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이 분이 운영하는 자수박물관에 대한 기사를 신문에서 보고 한 번 가 봐야겠다 생각하는데 아쉽게도 평일에만 문을 연다.
개인이 운영하는 박물관이라 그런가 보다.
기회가 되면 꼭 가서 직접 구경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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