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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쉴레, 클림트의 표현주의 ㅣ The Great Couples 3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김광우씨 책은 쉽고 한번에 쑥 읽힌다.
어느 정도 수준의 교양을 특별히 어렵게 꼬지 않고 한 번에 쭉 풀어 쓰는 스타일이라 나같은 어중간한 수준의 독자들에게 쉽게 읽힌다.
처음에는 두 사람의 화가를 비교하는 게 억지스럽지 않을까 우려했으나 모네와 마네 편도 재밌게 읽었고 이번 책도 만족스럽다.
지나치게 세 사람의 인연을 엮으려고 하지 않고 각자의 생애와 작품들을 소개하고 자연스럽게 서로의 영향력을 기술하는 독립적인 서술이 마음에 든다.
오히려 그렇게 세 인물을 독자적으로 소개해 줘서 대체 표현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이해한 느낌이 든다.
상징주의는 알겠는데 대체 표현주의는 무엇인지, 분리파는 또 뭔지 항상 모호한 느낌이었는데 이제서야 정확히 알 것 같다.
표현주의는 달리 말하면 주관주의와 사실주의나 자연주의에 반대되고 회화는 자연이나 대상의 모방이 아니라, 자연의 표현, 감성의 표현, 사고의 발현 등 내 느낌과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러므로 신체 왜곡이나 비현실적인 구도, 색상의 사용도 모두 허용되고 오히려 권장된다.
대상을 그대로 묘사하는 기술력 보다 자유로운 상상력, 사고력, 감정의 발산이 훨씬 더 중요해진 것이다.
나는 회화란 그레상스 그림처럼 현실의 충실한 묘사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똑같이 그리느냐, 얼마나 이상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라파엘로야 말로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화가다.
그런데 요 몇 년 동안 실제로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전시회를 통해 직접 접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칸딘스키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감동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책에서 인쇄된 도판으로 볼 때는 이게 무슨 대작이냐, 왠 리듬감? 음악성? 말 장난 하지마, 이랬는데 정말 칸디스키의 그림을 내 눈으로 보니 진짜 음악적인 그림이라는 말이 딱 들어 맞았다.
춤추듯 리드미컬 하고 발랄한 색체가 종이 위에 흩날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림이 감동을 준다.
아, 고흐의 해바라기를 처음 봤을 때 그 강렬한 울림, 난 정말 그림 보고 가슴이 먹먹하고 울컥해진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림이 감동을 줄 수 있다니, 음악도 아닌 그저 눈에 보이는 그림이!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스타일은 르네상스의 고전적인 정교한 그림도 좋지만 그보다는 강렬한 색체의 대비가 뚜렷한 인상파나 표현주의 양식임을 새삼 깨닫는다.
마티스의 야수파 그림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놀라운 색체감각은 정말 그가 색의 대가였다는 게 실감이 난다.
클림트의 장식성은 또 얼마나 기가 막힌가!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클림트 전에 감동받았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클림트 그림들이 전시회에 많이 소개되서 읽을 때 도움이 됐다.
반면 뭉크나 쉴레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역시 그냥 유명세를 얻는 건 아니구나 싶을 만큼 이 두 화가에게도 빠져 들었다.
어쩌면 위대한 화가란 뛰어난 데생 실력과 색체 감각 외에도 개성과 상상력을 갖춘 사람을 일컫는지도 모르겠다.
기술이나 솜씨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사물을 대하는 창의적인 시선이 아닐까?
뭉크도 그렇고 에곤 쉴레는 더더군다나 다른 어떤 화가와도 달라 보인다.
진부하지 않고 전형적이지 않아서 좋다.
클림트의 화려하고 따뜻하며 관능적인 애욕주의가 내 스타일이지만 쉴레의 그 풍부한 인물 표정, 캐리커쳐 같은 순식간의 특징을 잡아내는 드로잉과 과감한 포즈도 나는 너무 좋다.
뭉크의 그림은 또 어떤가!
절규나 마돈나 같은 유명한 그림도 좋지만 그의 풍경화나 인물화도 정말 가슴이 섬뜩할 만큼 impressive 했다.
색체의 강렬한 대비, 죽음이나 어두움이 그림 위에 떠다니는 듯한 풍부한 감성, 정말 느낌이 한 번에 확 온다.
전시회에 가 보면 실제 그림이 더 멋진 경우도 있고 반대로 인쇄된 도판이 더 좋은 경우도 있다.
둘 다 일치하면 더 좋고.
그래서 여기 나온 그림들을 직접 보고 싶다는 소망이 강렬해진다.
전시회에 다녀온 후 꼭 도록을 사는 이유도 그림에서 받은 내 느낌을 다시 한 번 끄집어 내서 기록하고 싶기 때문이다.
책에 소개된 그림들이 본문 내용과 꼭 일치하게 정말 잘 배치되어 있고 도판도 화려하고 수도 많다.
글 뿐만 아니라 편집도 훌륭한 책이다.
클림트의 경우 젊은 시절에 그린 초상화를 보면 마치 앵그르의 초상화처럼 정말 놀랍기 그지없는 데생 솜씨를 선보이는데 진부한 낡은 화가로 치부되지 않고 20세기를 여는 선구자로써 오늘날까지 높이 평가되는 것은, 그가 가진 혁신, 창의성, 독창성 등에 있을 것이다.
그의 미술에 드러나는 그 장식성, 인물은 아름답고 고혹적으로 섬세하게 그리면서 배경은 단순하게 장식적으로 처리하는 솜씨 등은 정말 개성적이고 그를 시대의 선구자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특히 베토벤 프리지는 이번 전시회 때 따라 왔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책에 나온데로 철거 예정이라 값싼 재료로 대충 만든 것 같지만 멀리서 전체를 조망하면 정말 환상적이고 초인이 (결국은 예술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주제가 명확하게 환상적으로 드러난 아름다운 조형물이다.
비엔나 대학에서 퇴짜를 맞았다는 의학, 법학, 철학 시리즈도 무식한 히틀러가 외설적이다고 불태웠다지만, 그 도안은 신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했다는 말이 딱 맞는, 정말 개성적이고 몽환적이며 상상력이 넘쳐나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미술학교 나왔다는 정치인의 생각이 어쩌면 그렇게도 고루할 수 있는 것인지!
느낌이 오는 그림, 주위의 평가에 상관없이 특히 화가의 명성과는 무관하게 정말 내가 좋다고 생각되는 그림,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울컥 하는 감동을 맛보게 하는 그림, 그런 그림이 좋고 알팍한 교양주의가 아닌 진정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의 그 깊은 미학적 울림을 맛보기 위해 책을 읽는다.
예전에는 평론가들이 좋다고 하면 좋은가 보다, 아니면 아닌가 보다 했는데 이제는 정말 내가 좋은 그림에 대해 당당하게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전시회장에 가서 한참이나 와, 하고 감탄하면서 입 벌리고 서 있는 그림이 늘어가고 있다.
이번에도 이 책을 통해 뭉크와 쉴레라는 위대한 화가들에 대해 알게 됐고 정말 기회가 된다면 직접 내 눈으로 감상해 보고 싶다.
쉴레는 겨우 스물 여덟의 나이로 스페인 독감에 걸려 사망했는데 너무 이른 나이의 요절이지만 클림트나 기타 후원자들에게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아 비록 클림트처럼 부와 영예를 완전히 누리지는 못했으나 그 재능을 어느 정도 꽃피울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오히려 평생을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던 뭉크와 80이 넘어서까지 장수한 게 참 아리어니컬 하다.
뭉크는 문학적 재능도 풍부했던 것 같다.
그가 쓴 일기를 읽는 즐거움도 상당하다.
아카데미를 박차고 나온 이들 젊은 화가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은 얼마나 위대한가!
전통에 대한 반발, 혁신, 자유로움 그런 것들이 현대 회화를 이끌었을 것이다.
이제라도 고흐의 그림이 그 위대함을 인정받아 최고의 가격으로 거래되는 걸 보면 지하에라도 조금의 위안이 되지 않을까...
정말 중요한 것은 창의성, 상상력, 생각의 전환임을 새롭게 느꼈다.
그러나 역시 기본이 되는 것은 데생 실력, 색에 대한 감각, 사물을 정확히 묘사할 수 있는 솜씨임은 물론이다.
대충 그리는 것 같은 쉴레나 뭉크, 클림트 등의 젊은 시절 전통적인 방식의 초상화 등은 또 얼마나 훌륭한지!
쉴레와 뭉크에 대한 다른 책을 좀 더 읽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