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공간 문학의 창으로 본 조선의 궁중문화 1
정은임 지음 / 채륜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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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까 말까 하다가 그래도 계축일기나 인현왕후전 같은 고소설에서 발견하는 궁중 문화라면 뭔가 자세하고 몰랐던 점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도서관에 신간 신청을 했던 책이다.
결과는 그런대로 만족스럽다.
일단 저자가 대충 알고 있는 지식 주어담아 쓴 가벼운 책이 아니라 전공자로서의 전문성과 꼼꼼함이 돋보이는 성실한 책이다.
그리고 궁궐의 각 전각들을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공간과 연결지어 설명한 점이 마음에 든다.
이를테면 창덕궁의 경춘전은 한중록에서 혜경궁 홍씨가 처음 간택되어 입궁했던 장소라는 식으로 말이다.
저자는 이 세 기록들을 궁정문학실기라고 명명한다.
계축일기와 한중록은 에세이에 속하고 인현왕후전은 후대에 전문적인 남성 작가에 의해 기승전결의 완결 구조를 갖는 고소설로 분류되나 전체적으로는 궁정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소재로 삼았기 때문에 실기로 묶을 수 있겠다.
계축일기나 인현왕후전은 좀 전형적이랄까? 상투적인 느낌이 들어 별로 재미가 없는데 (권선징악의 강조) 한중록은 정말 재밌게 읽었던 책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그것도 왕이 장성한 세자를 뒤주에 가둬 굶겨 죽인 전대미문의 사건이라는 게 벌써 소재부터 흥미진진 하고 그것을 직접 당사자의 입장에서 겪은 사람이 기록한 것이라 일개 궁인도 아니고 궁궐 안의 일을 제대로 모르는 신하가 쓴 것도 아닌 세자빈의 기술이라는 점에서 벌써 작가부터 신뢰가 간다.
60이 넘은 나이에 처음 궁에 들어올 때부터 끔찍한 남편의 죽음을 겪기까지 과정을 단순히 권선징악적 구조에 의존하지 않고 생생한 필체로 써 내려간 그녀의 문학성에 감탄할 뿐이다.
이 책에서도 각 작품들의 많은 부분을 소개한다.
기왕이면 현대어로 번역해서 이해하기 쉽게 했으면 좋았을텐데 고어가 많아 좀 아쉬웠다.
실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장소들이라고 생각하니 궁궐의 각 전각들이 훨씬 더 생생하게 와 닿는다. 
한자를 병행하고 각 전각 이름의 유래와 뜻을 설명해 줘서 궁궐의 이해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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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 신경과의사 올리버 색스의 병상 일기
올리버 색스 지음, 한창호 옮김 / 소소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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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환자되기에 관한 에세이.
기대했던 바에 비하면 별로였다.
너무 오래 전에 쓰여진 에세이라 그런지 시의성도 없고 얻을 만한 정보도 별로 그다지 썩 와 닿지가 않았다.
1970년대 영국 병원과 재활원 제도를 알게 된 게 수확이랄까?
대퇴사두근과 인대가 파열되어 다시 걷게 되기까지 근 두 어 달에 걸친 병원 투병기인데 저자가 신경과 의사이다 보니 의사가 아닌 환자의 입장에서, 특히 다친 다리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현상을 직업과 관련지어 자세히 분석한다.
의사나 병원이 얼마나 권위적인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개인적인 관심과 배려를 해 주기 힘든 구조인지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이 책 보다는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에 훨씬 더 잘 기술되어 있다.
대장암에 걸린 형을 돌보는 의사 동생의 심정이, 보통 환자를 대할 때 가졌던 무덤덤과 무감정이 얼마나 안타깝게 바뀔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cast를 오래 대면 근육이 위축될 뿐 아니라 그 쪽의 감각마저 상실되어 뇌의 이미지가 재편성된다.
즉 없는 다리로 인식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리를 절단한 사람이 여전히 다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환지통과도 비슷한 원리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뇌는 불변의 고정된 영상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적응하고 새로 설계된 가변의 설명서를 만들기 때문에 안 쓰면 지워진다.
그래서 요즘에는 부러진 다리를 고정시킬 때도 심지어 walking cast를 대서 즉시 보행 연습을 시킨다고 한다.
사실 정형외과 병동에 가 보면 스크루 등으로 부서진 뼈를 고정시킨 장기 환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데 보통 한 두 달은 기본으로 휠체어 신세를 진다.
과연 이들 대부분이 다리가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하는지 궁금하다.
정형외과 의사는 다리뼈가 잘 붙었는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 환자가 다리가 없는 것 같아요, 이런 말에는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자꾸 그런 소리를 하면 정신과에 컨설트를 낼 것이다.
사실 정형외과 의사는 뼈에 관해 전문가일 뿐 신체 이미지가 왜곡된다거나 사라지는 것 같은 현상에 대해서는 일반인과 크게 다를 바가 없으니 차라리 빨리 정신과나 신경과 의사에게 자문을 구하는 게 옳을 것이다. 

환자가 된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 엄청나게 두려운 일이다.
병원에 입원해 본 사람만이 그 공포를 알 것이고, 그들조차도 가망이 없는 불치병, 이를테면 말기암 환자나 평생 장애를 갖게 될 장애자의 절망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프면 일단 통증에 시달리게 되고 그것이 해결되면 제대로 모든 기능이 회복될 수 있을지 두려워 한다.
재활치료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예전처럼 잘 걸을 수 있을까 등등.
그러나 정말 영구히 불구가 되어 버린다면, 노력해도 바꿀 수 없다는 판결을 받게 되면, 아 그 절망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건강이 왜 가장 우선인지 새삼 느꼈다.
건강한 신체, 아프지 않게 섬세하게 자신을 돌보기.
정말 저자의 표현대로 회복이란 단순히 병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재탄생이라 해도 좋을 만큼 엄청난 사건이다. 

신경과학은 인간의 뇌를 다룬다는 점에서 다른 어떤 의학 분야보다도 더 흥미롭고 신비하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인지장애를 겪는 환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다음에는 <뮤지코필리아>를 읽어 볼 생각이다.
유쾌한 문체와 해박한 지식이 돋보이는 괜찮은 에세이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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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7 아무일도 없었던 해
황런위 지음, 박상이 옮김 / 가지않은길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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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이 절판이라니, 좀 놀랍다.
읽어 볼 만 하고 상당히 재밌는데 말이다.
의외로 책들이 쉽게 절판되는 것 같다. 

거시중국사를 너무 재밌게 읽어 저자의 전공 분야인 만력제 당대에 관한 책을 읽게 됐다.
지난 번 책 보다는 좀 못하는 느낌이다.
중국사 전체를 조망하는 방식을 한 시대로 축소시켜 적용하려다 보니 지루하고 지엽적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만력제라는 인물에 대해, 그리고 명나라 말엽의 시대 상황에 대해 더 정확하게는 근대 사회로 접어들지 못한 전통 농경사회의 몰락에 대해 제대로 이해한 기분이다.
만력제는 재위 기간이 50여년에 달하고 조선에 원병을 보내줘 조선 사대부들에게 큰 은인처럼 인식되는 황제라 이 책에 서술된 이미지가 사실 좀 낯설었다.
독재적이고 거드름 피우고 권력에 집착하는 무능력한 말기 왕조의 황제라는 이미지였는데 책에서 만력제는 어린 나이에 즉위해 장거정이라는 신하와 그 모후에 의해 좌지우지 되면서 자신의 발언권을 얻지 못하고 장거정 사후에는 결국 태업으로 국정을 낭비한 무능력한 가엾은 황제로 나온다.
황제가 정사를 거부하는 파업을 자행하다니, 황제 1인 독재국가에서 전제왕조에서 이 무슨 기막힌 일이었을까?
영국처럼 입헌전제국가도 아니면서 말이다.
관료제의 관성에 의해 어찌어찌 흘러 가기는 했으나 당시 명나라의 상황이 어떠했을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중국은 정식 왕비가 아니라 할지라도 아들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 태후로 격상시켜 주는 제도가 있나 보다.
유명한 서태후만 해도 그렇고.
만력제의 어머니 역시 아들이 황제가 된 덕분에 태후가 되어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효라는 절대적인 가치 때문인가? 어찌 됐든 후궁에 불과한 어머니가 어린 황제에게 이렇게 절대적으로 군림할 수 있는 것인지, 심지어 제위를 뺏겠다는 발언까지 할 수 있는지 좀 의아하다.
정말 중국의 황태후에게 이런 권한이 부여된 것인가? 

장거정이라는 인물은 이름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책에서는 전통적인 자영농 관료집단 안에서 개혁을 추구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 책의 장점을 들자면 도덕주의나 명분론에 함몰되지 않고 비교적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어찌 보면 유물론적 관점에서) 사건과 인물을 분석했다는 것이다.
장거정은 판을 뒤집는 대신 안정을 추구하는 전통 관료제 안에서 나름의 혁신을 이루려고 애쓰지만 개인적으로 여자를 밝히고 재산을 치부하는 등 탐욕적인 면도 같이 보여 결국 죽고 나서 모든 관직이 삭탈된다.
당시 명나라의 관료는 월급이 너무 적어 지방관으로 파견되야 백성들의 수탈을 통해 비로소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수령의 수탈은 광범위하고 구조적으로 이루어진 관행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관료제 사회였기 때문에 중앙과 지방은 인맥으로 얽혀 있어 윗선에 선물을 바치는 것도 당연한 관례였다.
하급 관료의 경우 부유한 상인의 후원을 받거나 돈을 빌리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울 지경이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옹정제 때 수탈을 막기 위해 아예 양렴은이라는 세원을 만들어 줬을까?
그런데 가끔 정말로 공익만을 추구하고 사적인 이기심을 엄단하려는 극단적인 도덕주의자 관료가 등장한다.
전형적인 예가 바로 해서다.
마치 판관 포청천 같은 이미지인데 그는 쥐꼬리 만한 월급으로 생활하고 조금이라도 백성에게 뺏으려고 하는 관리는 심지어 사형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동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명성 때문에 관직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오랜 세월 가난하게 살아야 했고 중앙 무대에서 크게 활약하지 못했다.
보통 이런 도덕주의자는 대부분의 책에서 부정부패와 싸우는 도덕적인 관료의 현신으로 추켜 세워지는데 저자는 당시 명나라 정치 구조로 봤을 때 매우 극단적인 이상주의자라고 평한다.
한마디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모르고 혼자 여기저기 휘젓고 다니는 꼴이랄까?
그래서 역사는 도덕적인 관점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 모양이다.
개인으로서는 청렴결백하고 칭송받아 마땅하나 전체로 봤을 때 반드시 그것이 선인지는 또다른 문제다. 

기본적으로 명나라는 자영농에 의해 유지되는 농업 국가였고 정교한 법 발달 대신 도덕적 원칙에 의해 통치되는 느슨한 국가였다.
너무나 빠른 시기에 이룩한 너무나 엄청난 인구와 국토의 중앙집권제는 교통과 통신 시설의 부족, 통계 처리의 미숙함 등으로 처음부터 현대 국가처럼 관리될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므로 중앙의 정책을 세울 때 벌써 조사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대충 책상머리에서 세워진 정책은 각 지방의 특성을 무시한 채 일괄적으로 강제 집행되어 당연히 실무 현장에서는 이상향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거대한 전통국가가 수천년 동안 단일한 정치 체계를 유지해 왔던 원동력은 법이 아닌 도덕적 명분에 의한 자기 절제, 상호 감시 시스템이었다.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는 대신 관리들은 소규모 자영농을 지배하고 향촌 사회에서 사대부 계층이 (명대에는 신사층) 관리와 협력하여 공동체 내의 자체적 기율을 잡는다.
일괄 부담된 세금은 각 지방의 형평을 고려하지 않았으나 어찌 됐든 구색은 맞춰서 보내져야 한다.
당연히 수탈되고 억울하게 거둬지는 예가 많았을 것이다.
명대의 기본 구조는 안정, 평균적인 생활 유지였기 때문에 혁신이나 강력한 군사 제도는 운영되기 어려웠다.
척계광의 예에서도 나오지만 그가 남쪽의 지원병을 받아 조련시켜 북경을 지키게 한 것은 충정심의 발로라기 보다는 사병화 되는 군사 집단으로 보이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누르하치의 여진족과는 기본적으로 명은 다른 시스템의 국가였다.
그러므로 몽골족이나 여진족 등의 유목민이 기세를 떨쳐 진격해 오면 수비해 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어쩔 수 없이 확장해 나가는 공격적 체제가 아닌 안정 지향의 농업 국가인 중국은 유목민과의 투쟁사를 겪어 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명의 군대는 질보다는 숫자로 승부하는 대규모 병력에 있었기 때문에 보급 체제를 효율적으로 유지하기 힘들었고 방어보다는 농민반란을 막는 것이 진짜 목적이었다.
중국과 같은 시스템인 조선이 명에 사대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이 이해된다. 

유교가 전통 사회에 미친 영향, 그리고 근대 국가로 전환할 수 없었던 그 한계점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
자본주의의 싹이 자라고 있었다는 해석이야 말로 현대적 관점에서 당시를 보려는 억지스러운 역사 인식 같다.
조선 출병에 관한 얘기가 같이 나왔으면 좋았을텐데 아쉽고 대신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반대했던 당시 명나라의 사정을 알게 되서 반갑다.
만력제는 첫째 아들 대신 좋아하는 후궁에서 난 셋째 아들을 황태자로 삼고 싶어 관료들과 대립 중이었던 차라, 장남이 아닌 차남 광해군의 세자 책봉도 쉽게 승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던 이 불행한 첫째 아들은 만력제의 오랜 제위 기간 끝에 황제의 자리에 오르긴 했으나 한 달 만에 사망하고 만다.
인생이란 또 역사란 참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저자의 현실적인 관점이 무척 마음에 들고 다른 책도 같이 탐독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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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 Haeunda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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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하마터면 자리 없어서 못 볼 뻔 했다.
거의 30분 간격으로 계속 상영해 주는데도 매진이라 같이 간 사람과 떨어져 앉아서 봤다.
달리 볼 영화가 없다는 것도 문제지만 일단 한국형 블록버스터, 그것도 재난 영화라는 게 먹힌 것 같다.
설경구는 참 연기를 잘 하는데도 송강호나 최민식처럼 해외 영화제에 왜 못 나가나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대중적인 작품들을 골라서 그런 것 같다는 결론을 이번 영화 보면서 내렸다.
의외로 어깨 근육도 있고 몸이 좋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역시 무난하게 잘 한다.
박중훈이나 엄정화는 조연 배역이고 엄정화에 대해서는 별로 기대하는 게 없어서 평할 게 없고 박중훈이 이런 역으로 출연한 게 의외였다.
역시 그는 코믹 연기가 어울린다.
마지막에 쓰나미 오는데 둘이 안고 죽는 건 딱 <딥 임팩트> 끝장면이었다.
패러디 한 건가? 아니면 대놓고 따라하기?
타이타닉과 기타 다른 재난 영화를 적당히 섞어 놓은 느낌, 그래서인지 마지막의 쓰나미 덮치는 장면 보다는 그 앞의 사랑 얘기가 더 아기자기 하고 재밌었다.
좀 긴 느낌은 있지만.
부쩍 성숙해진 하지원.
처음 나왔을 때는 상당히 떡대가 있고 연기도 오버스럽다 생각했는데 (특히 김하늘과 언니 동생으로 나왔던 김민종 사이에 두고 싸우는 무슨 비밀인가 하는 드라마) 노력을 많이 했는지 살도 많이 빠지고 연기도 좋아지고 하여튼 괜찮다. 

소방대원의 죽음은 너무 코믹하게만 처리해서 그런지 직업 의식에 대한 사명감이나 숭고미는 전혀 느껴지지 않고 완전 개죽임이라는 생각 밖에 안 들고 눈물 코드를 잘못 짚었다 싶다.
그래도 그 소방대원 신선했다.
이대생이 소방대원 하고 사귀면 말도 안 되는 얘기냐?
요즘 이대 입학 성적을 알고나 하는 소린지, 아니면 감독이 옛날 명성 왜, 그거 있잖아, 나, 이대 나온 여자예요, 이거 생각없이 따온건지 좀 웃겼다.
소방대원들이 항의 안 하려나 몰라, 9급 공무원도 다 4년제 대학 나온 사람들이 서로 들어가려고 박터지게 공부하는 이 판국에. 

같이 본 사람은 쓰나미 덮치는 게 CG 티가 너무 난다고 했지만 내 막눈에는 그런대로 실감났고 오히려 지난 번 동남아 쓰나미 때 신혼여행 가서 죽은 사람들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서 막 혼자 울었다.
제일 연기 잘 하고 자연스러운 분은 역시 관록있는 배우, 설경구 엄마로 나온 분이다.
박중훈 딸로 나온 여자애도 귀엽고.
타이타닉 보면서 펑펑 울던 생각이 나 옛날 생각에 젖었다.
이 영화, 대박 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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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쉴레, 클림트의 표현주의 The Great Couples 3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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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광우씨 책은 쉽고 한번에 쑥 읽힌다.
어느 정도 수준의 교양을 특별히 어렵게 꼬지 않고 한 번에 쭉 풀어 쓰는 스타일이라 나같은 어중간한 수준의 독자들에게 쉽게 읽힌다.
처음에는 두 사람의 화가를 비교하는 게 억지스럽지 않을까 우려했으나 모네와 마네 편도 재밌게 읽었고 이번 책도 만족스럽다.
지나치게 세 사람의 인연을 엮으려고 하지 않고 각자의 생애와 작품들을 소개하고 자연스럽게 서로의 영향력을 기술하는 독립적인 서술이 마음에 든다.
오히려 그렇게 세 인물을 독자적으로 소개해 줘서 대체 표현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이해한 느낌이 든다.
상징주의는 알겠는데 대체 표현주의는 무엇인지, 분리파는 또 뭔지 항상 모호한 느낌이었는데 이제서야 정확히 알 것 같다.
표현주의는 달리 말하면 주관주의와 사실주의나 자연주의에 반대되고 회화는 자연이나 대상의 모방이 아니라, 자연의 표현, 감성의 표현, 사고의 발현 등 내 느낌과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러므로 신체 왜곡이나 비현실적인 구도, 색상의 사용도 모두 허용되고 오히려 권장된다.
대상을 그대로 묘사하는 기술력 보다 자유로운 상상력, 사고력, 감정의 발산이 훨씬 더 중요해진 것이다. 

나는 회화란 그레상스 그림처럼 현실의 충실한 묘사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똑같이 그리느냐, 얼마나 이상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라파엘로야 말로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화가다.
그런데 요 몇 년 동안 실제로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전시회를 통해 직접 접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칸딘스키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감동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책에서 인쇄된 도판으로 볼 때는 이게 무슨 대작이냐, 왠 리듬감? 음악성? 말 장난 하지마, 이랬는데 정말 칸디스키의 그림을 내 눈으로 보니 진짜 음악적인 그림이라는 말이 딱 들어 맞았다.
춤추듯 리드미컬 하고 발랄한 색체가 종이 위에 흩날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림이 감동을 준다.
아, 고흐의 해바라기를 처음 봤을 때 그 강렬한 울림, 난 정말 그림 보고 가슴이 먹먹하고 울컥해진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림이 감동을 줄 수 있다니, 음악도 아닌 그저 눈에 보이는 그림이!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스타일은 르네상스의 고전적인 정교한 그림도 좋지만 그보다는 강렬한 색체의 대비가 뚜렷한 인상파나 표현주의 양식임을 새삼 깨닫는다.
마티스의 야수파 그림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놀라운 색체감각은 정말 그가 색의 대가였다는 게 실감이 난다.
클림트의 장식성은 또 얼마나 기가 막힌가!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클림트 전에 감동받았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클림트 그림들이 전시회에 많이 소개되서 읽을 때 도움이 됐다.
반면 뭉크나 쉴레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역시 그냥 유명세를 얻는 건 아니구나 싶을 만큼 이 두 화가에게도 빠져 들었다.
어쩌면 위대한 화가란 뛰어난 데생 실력과 색체 감각 외에도 개성과 상상력을 갖춘 사람을 일컫는지도 모르겠다.
기술이나 솜씨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사물을 대하는 창의적인 시선이 아닐까?
뭉크도 그렇고 에곤 쉴레는 더더군다나 다른 어떤 화가와도 달라 보인다.
진부하지 않고 전형적이지 않아서 좋다.
클림트의 화려하고 따뜻하며 관능적인 애욕주의가 내 스타일이지만 쉴레의 그 풍부한 인물 표정, 캐리커쳐 같은 순식간의 특징을 잡아내는 드로잉과 과감한 포즈도 나는 너무 좋다.
뭉크의 그림은 또 어떤가!
절규나 마돈나 같은 유명한 그림도 좋지만 그의 풍경화나 인물화도 정말 가슴이 섬뜩할 만큼 impressive 했다.
색체의 강렬한 대비, 죽음이나 어두움이 그림 위에 떠다니는 듯한 풍부한 감성, 정말 느낌이 한 번에 확 온다.
전시회에 가 보면 실제 그림이 더 멋진 경우도 있고 반대로 인쇄된 도판이 더 좋은 경우도 있다.
둘 다 일치하면 더 좋고.
그래서 여기 나온 그림들을 직접 보고 싶다는 소망이 강렬해진다.
전시회에 다녀온 후 꼭 도록을 사는 이유도 그림에서 받은 내 느낌을 다시 한 번 끄집어 내서 기록하고 싶기 때문이다. 

책에 소개된 그림들이 본문 내용과 꼭 일치하게 정말 잘 배치되어 있고 도판도 화려하고 수도 많다.
글 뿐만 아니라 편집도 훌륭한 책이다.
클림트의 경우 젊은 시절에 그린 초상화를 보면 마치 앵그르의 초상화처럼 정말 놀랍기 그지없는 데생 솜씨를 선보이는데 진부한 낡은 화가로 치부되지 않고 20세기를 여는 선구자로써 오늘날까지 높이 평가되는 것은, 그가 가진 혁신, 창의성, 독창성 등에 있을 것이다.
그의 미술에 드러나는 그 장식성, 인물은 아름답고 고혹적으로 섬세하게 그리면서 배경은 단순하게 장식적으로 처리하는 솜씨 등은 정말 개성적이고 그를 시대의 선구자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특히 베토벤 프리지는 이번 전시회 때 따라 왔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책에 나온데로 철거 예정이라 값싼 재료로 대충 만든 것 같지만 멀리서 전체를 조망하면 정말 환상적이고 초인이 (결국은 예술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주제가 명확하게 환상적으로 드러난 아름다운 조형물이다.
비엔나 대학에서 퇴짜를 맞았다는 의학, 법학, 철학 시리즈도 무식한 히틀러가 외설적이다고 불태웠다지만, 그 도안은 신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했다는 말이 딱 맞는, 정말 개성적이고 몽환적이며 상상력이 넘쳐나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미술학교 나왔다는 정치인의 생각이 어쩌면 그렇게도 고루할 수 있는 것인지! 

느낌이 오는 그림, 주위의 평가에 상관없이 특히 화가의 명성과는 무관하게 정말 내가 좋다고 생각되는 그림,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울컥 하는 감동을 맛보게 하는 그림, 그런 그림이 좋고 알팍한 교양주의가 아닌 진정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의 그 깊은 미학적 울림을 맛보기 위해 책을 읽는다.
예전에는 평론가들이 좋다고 하면 좋은가 보다, 아니면 아닌가 보다 했는데 이제는 정말 내가 좋은 그림에 대해 당당하게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전시회장에 가서 한참이나 와, 하고 감탄하면서 입 벌리고 서 있는 그림이 늘어가고 있다.
이번에도 이 책을 통해 뭉크와 쉴레라는 위대한 화가들에 대해 알게 됐고 정말 기회가 된다면 직접 내 눈으로 감상해 보고 싶다.
쉴레는 겨우 스물 여덟의 나이로 스페인 독감에 걸려 사망했는데 너무 이른 나이의 요절이지만 클림트나 기타 후원자들에게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아 비록 클림트처럼 부와 영예를 완전히 누리지는 못했으나 그 재능을 어느 정도 꽃피울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오히려 평생을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던 뭉크와 80이 넘어서까지 장수한 게 참 아리어니컬 하다.
뭉크는 문학적 재능도 풍부했던 것 같다.
그가 쓴 일기를 읽는 즐거움도 상당하다.
아카데미를 박차고 나온 이들 젊은 화가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은 얼마나 위대한가!
전통에 대한 반발, 혁신, 자유로움 그런 것들이 현대 회화를 이끌었을 것이다.
이제라도 고흐의 그림이 그 위대함을 인정받아 최고의 가격으로 거래되는 걸 보면 지하에라도 조금의 위안이 되지 않을까...
정말 중요한 것은 창의성, 상상력, 생각의 전환임을 새롭게 느꼈다.
그러나 역시 기본이 되는 것은 데생 실력, 색에 대한 감각, 사물을 정확히 묘사할 수 있는 솜씨임은 물론이다.
대충 그리는 것 같은 쉴레나 뭉크, 클림트 등의 젊은 시절 전통적인 방식의 초상화 등은 또 얼마나 훌륭한지! 

쉴레와 뭉크에 대한 다른 책을 좀 더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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