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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제국 1616~1799 - 100만의 만주족은 어떻게 1억의 한족을 지배하였을까?
이시바시 다카오 지음, 홍성구 옮김 / 휴머니스트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300쪽이 조금 넘는 분량의 재밌는 책이다.
저자의 말대로 야사와 정사의 중간쯤 되는, 그러나 교양서로서 손색이 없을 만큼 재미와 지식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편견일수도 있겠으나 일본인이 쓴 책은 유럽에서 발간된 책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
정통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고 해야 할까?
<말과 황하와 장성의 중국사> 를 읽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같은 주제로 영국인이 쓴 <장성, 중국사를 말하다> 가 학구적이고 교과서적인 느낌을 준 반면, 앞의 일본 책은 신문의 칼럼에 연재될 것 같았다.
일본 특유의 저술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저자는 무려 3대에 걸쳐 청조사를 연구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책에도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논문이 자주 등장한다.
상업으로 가업을 잇는 경우는 많이 봤어도 학문적으로 같은 분야를 3대가 이어서 연구하는 경우는 드물 것 같다.
집안 내력을 내심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에둘러 말하는 겸손이 느껴져 빙긋 웃었다.
할아버지는 한 살 때 돌아가셔 기억도 없고, 아버지는 학문적 스승이라기 보다는 검도 사범이었으며 자신은 음악과 기타를 좋아하는
사실 청나라는 근대화에 실패하고 서구 열강에게 잡아 먹힌 별 볼 일 없는 이민족의 국가라고만 생각했다.
현재 한족에게 밀려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고 중국 사회의 지배층에서 비껴서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될 것 같다.
중국을 지배했던 만주족이 고유의 정체성을 잃고 동화되어 버린 반면 한국은 중국문명의 그늘 속에서도 오늘날까지 꿋꿋하게 독자적인 문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상한 자부심도 만주족을 한 수 아래로 깔보게 된 원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책에서도 분명히 밝히는 것처럼 만주족의 청나라는 현재 중국의 바로 앞 시대였던 것처럼 조선이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만큼이나 엄청나게 큰 영향력을 여전히 중국 사회에 끼치고 있다.
만한전석이나 치파오, 교자만두 등의 문화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일단 이 거대한 중국의 영토부터가 건륭제 때 비로소 완성된 것이고 몽골족, 위구르족, 만주족, 티벳족, 한족의 오족중화 개념도 청나라 때 생긴 것이다.
청나라가 중국에 끼친 영향은 결코 과소평가 될 수 없고 만주족이 사라졌다느니 한족의 나라라느니 하는 생각은 수정되야 할 것 같다.
저자는 끊임없이 중국이 다민족국가임을 강조한다.
나는 언제나 중국의 그 유구한 역사와 거대한 문명에 감탄해 왔지만 대부분의 역사책에서 한족은 오랑캐들과 싸우면서 성장해 왔다고 읽어 왔다.
일단 오랑캐, 이민족, 유목민이라는 단어 자체가 문명인 한족에 비해 한 수 아래로 느껴진다.
그러나 이 거대한 중국 문명은 현재 중국 사회를 이루는 90%의 한족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주변의 여러 민족들을 통합해 가는 과정 속에서 성장해 왔다.
유목민이 중국 역사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유목민과 한족을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관점이 중국사의 제대로 된 이해를 방해한다는 생각도 든다.
<장성, 중국사를 말하다>와 비슷한 관점이다.
중국은 유목민들에 의해 더욱 광대하고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게 됐고 오늘날 그들이 끼친 영향력은 역사에서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중국이 안고 있는 소수민족들과의 분쟁은 태생적인 문제임을 분명히 느꼈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티벳이나 위구르 등의 독립 투쟁을 좌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흔히 청나라는 강희, 옹정, 건륭의 세 황제를 거론하는데 60여년을 지배한 강희제나 건륭제에 비해 옹정제는 비교적 덜 관심을 가졌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일단 옹정제는 그 즉위부터가 45세라는 파격적인 나이다.
그는 또 청나라의 전통적인 왕의 개념, 즉 여러 친왕들의 연합 회의 수장 정도라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 내치에 정성을 쏟았고 후계자를 미리 지목했을 경우의 혼란을 막기 위해 죽은 후에 후계자를 공개하는 저위밀건법을 만들었다.
사실 예전에는 이 제도가 정말 이해가 안 갔다.
미리 후계자를 정해 놔야 후계자 수업도 받고 왕위 다툼도 없고 안정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대체 왜 죽은 후에야 비로소 후계자가 공개되는 이런 밀건법이 왕위 다툼을 없앤단 말인가?
그것은 전통적인 황제독제 체제와 유목민 사회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단 한 명의 독재자에게 모든 권한을 밀어 주는 것이 비해 몽골이나 만주족 등의 유목민 사회에서 왕이란 그저 여러 부족의 대표자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왕이 죽고 나면 쿠릴타이 등의 대표자 회의를 통해 다음 왕을 선출한다.
몽골이나 만주족 등이 중국을 지배하게 되면서 미리 후계자를 세우는 것은 여러 부족들의 반발을 사게 된다.
어찌 보면 청나라의 황제들은 중국의 전통적인 1인 독재 체제로 바꾸기 위해 (즉 황제권 강화를 위해) 자신의 부족들과 끊임없이 투쟁해 왔다.
강희제는 미리 후계자를 정하는 바람에 여러 부족의 반발을 사서 아끼는 아들을을 내치게 되고 결국 45세의 옹정제가 황위에 오른다.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 옹정제는 죽은 후에 후계자를 공개함으로써 다음 후계자가 되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펼치게 하여 정국을 안정시킨다.
정말 만주족의 특성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면 무조건 장자 계승이 원칙인 조선에 비해 중국 황실은 반드시 정후의 첫째 아들이 황제위에 오른 것은 아닌 듯 싶다.
적서 차별은 한국에만 있었다는 말이 실감난다.
옹정제는 또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화이사상을 깨뜨리기 위해 대의각미록이라는 책을 저술한다.
큰 뜻을 깨닫게 하고 미혹에서 벗어나게 하는 기록이라는 뜻으로 중화론자인 증정의 재판기록이라고 한다.
옹정제는 증정이 스스로 중화와 오랑캐의 구분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결론을 끌어내도록 자아비판하게 만든다.
예와 의를 지키는 것이 중화이지 민족의 구분이 아니며, 중국은 여러 민족을 통합해 가면서 성장해 왔다는 것을 강조한다.
어찌 보면 조선의 소중화 의식과도 비슷한데 끝까지 만주족에게 마음으로는 복종하지 않는다는 조선 지배층과는 또 대립되기도 한다.
어찌 됐든 사상 초유의 거대한 국가로 발전해 가는 위대한 청나라를 보면서 한족 지식인들 역시 스스로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대의각미록의 일부가 실렸는데 옹정제의 논리를 따라가면 굉장히 매력적이고 주체적으로 보인다.
아마도 강력한 왕국을 이룩한 통치자의 자신감이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변발이나 문자의 옥 등을 통해 한족을 강압하기도 하고 만주문자 병용, 팔기군 유지, 번역과 실시 등 고유의 문화지키기도 하면서 중국의 유교 문화를 받아들이고 통합해 간 청나라는 오늘날의 중국을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다.
아편전쟁이나 서태후, 마지막 황제 부의 등으로 희화화 되기에는 너무나 엄청나고 거대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만주족이나 청나라를 우습게 보는 것도 한국인의 소중화 의식 탓이라는 생각도 든다.
유목민이 중국 역사에 끼친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또 현재 중국은 다민족국가이며 이들이 중국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구성요소인지 새삼 느꼈고 이 매력적인 전통 왕조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