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특이해서 일단 영화로 먼저 봤고 손예진의 매력에 풍덩 빠져 책까지 읽게 됐다.
대체 얼마만에 읽은 소설이란 말인가!
요즘 소설이 트렌드는 역시 발랄한 문체와 재미인 것 같다.
지극히 현대적인 문체와 서술방식에 푹 빠져 정말 재밌게 읽고 있다.
이런 책에 비하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대체 얼마나 무겁단 말인가! 

영화가 책을 압도하기가 어려운 까닭은 긴 분량을 자랑하는 책에 비해 짧은 시간에 압축적으로 사건이나 주인공들의 심리 변화를 묘사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그 압축성을 관람객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인지가 성공의 관건이다.
결국 영화는 장면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심리변화나 사건의 전개를 따라가기 보다는, 관람객들의 시선을 한 번에 사로잡을 수 있는 임팩티브한 영상을 제공하는 것, 이것이 영화의 승부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이 책 역시 영화보다 소설이 더 재밌다.
시시각각 변하는 남자 주인공 덕훈의 심리변화와 속마음을 따라갈 수 있어 정말 재밌다.
축구와 연결지어 남녀간의 사랑과 결혼 등을 기술하는 기법이 신선하다.
흥미유지에 도움이 된다. 

나는 늘 인아처럼 결혼 안 하고 연애만 하는 삶을 꿈꿔왔다.
언젠가 나도 지금의 남자친구에게 연애는 나랑 하고 결혼은 착한 여자와 하라는 소리도 했다.
나는 결혼제도가 너무 싫었고 어쩔 수 없이 시댁에 들어가는 한국의 가부장적인 문화가 못마땅했다.
여기 나온 인아의 대서처럼 나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안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혼을 하더라도 결국 이혼하게 될 거라는 두려움에 아예 처음부터 나는 결혼은 안 하겠다 선언을 하고 연애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나이가 들어 생각해 보니 사회의 일반적인 제도에서 비껴 가려면 상당한 베짱과 능력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걸 그 때는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나 시몬느 드 보부아르처럼 살 수 있겠는가?
그런 지성과 사회적 위치와 능력이 안 되는데 표준적인 라이프 스타일에서 혼자 떨어져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몰랐다.
나는 책에서 접하는 멋진 독신 여성들을 나와 동일시 했고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이 책 속의 인아도 보통 사람과는 좀 다른, 강단있고 무엇보다 섹스를 즐길 줄 아는, 정말로 술과 연애를 사랑하는 멋진 여자다.
영화 속의 손예진을 본다면 저 정도 여자라면 남편 둘 데리고 살아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그 매력에 반할 것이다.
나는 손예진처럼 매력있는 여자도 아니고, 보부아르처럼 능력있는 지성인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소시민일 뿐인데 왜 그렇게 일반적인 룰을 싫어하고 거부했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특별한 용기와 결심 없이도 결혼을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왔으면 하는 것이다.
골드 미스들이 늘고 있고 독신 가구도 증가한다지만 여전히 결혼을 거부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결혼과 출산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을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사회가 온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나는 아무래도 한 30여 년 후에나 태어났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인아의 연애관과는 조금 다르다.
인아는 남자처럼 섹스를 즐길 줄 아는 여자이고 그래서 사랑과 섹스가 별개임을 충분히 이해하고 독점적인 관계를 고집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사랑이야 말로 지극히 독점적이고 소유욕이 강하며 사랑할수록 집착하게 되고 특히 육체적 관계는 매우 배타적이라고 믿는다.
정말로 상대방의 다른 성관계에 대해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쿨한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돈을 주고 성을 사는 행위조차도 파트너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인데 하물며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야!
다양한 결혼의 형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마음에 들지만, 인아처럼 진정한 의미의 자유연애주의자는 내 입장에서는 불가능하다.
다만 모든 사랑의 완성이 꼭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안정적으로 끝을 맺는지는 의문이다.
서로의 생활 공간을 유지하면서 독립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것이 내 소망이다.
동거도 한 공간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나는 별로 탐탁치 않다.
그래서 주말부부처럼 가끔 만나는 사이도 괜찮을 것 같다. 

취미의 공유, 그것도 열렬히 좋아하는 축구 같은 취미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여자가 이렇게 축구 좋아하기는 어려운 일인데 정말 덕훈의 입장에서는 인아가 너무 사랑스러울 것 같다.
내 경우에 빗대어 보자면 인문학 서적에 열정을 가진 사람, 도서관이나 서점 가는 걸 최고의 기분전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한 달에 책을 몇 권 읽었는지를 보람으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파트너로써 완벽할 것 같다.
삼엽충에 관한 책을 읽은 뒤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고대의 지배자를 모르고 살았다니 어쩜 이럴 수가 있을까요! 라고 감탄하면서 서로 이야기 할 수 있다면!
사랑은 반드시 비슷한 사람끼리 이뤄지는 건 아니지만 기왕이면 취미와 취향을 공유할 수 있다면 더욱 행복할 것 같다.
난 정말 리처드 포티가 쓴 <삼엽충>을 읽고 나서 내가 그동안 이 존재를 모르고 살았다는 게 너무 기막히고 황당해서 탄식이 나왔는데 남자친구는 삼엽충이 뭔 벌레냐? 이런 어이없는 반응을 보여 좌절한 적이 있다.
삼엽충과 내 인생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다고 이렇게 흥분을 하는지.
그런데 또 이런 지식의 확장이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행복감을 느끼게 하니 더욱 열심히 책을 읽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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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제국 1616~1799 - 100만의 만주족은 어떻게 1억의 한족을 지배하였을까?
이시바시 다카오 지음, 홍성구 옮김 / 휴머니스트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300쪽이 조금 넘는 분량의 재밌는 책이다.
저자의 말대로 야사와 정사의 중간쯤 되는, 그러나 교양서로서 손색이 없을 만큼 재미와 지식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편견일수도 있겠으나 일본인이 쓴 책은 유럽에서 발간된 책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
정통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고 해야 할까?
<말과 황하와 장성의 중국사> 를 읽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같은 주제로 영국인이 쓴 <장성, 중국사를 말하다> 가 학구적이고 교과서적인 느낌을 준 반면, 앞의 일본 책은 신문의 칼럼에 연재될 것 같았다.
일본 특유의 저술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저자는 무려 3대에 걸쳐 청조사를 연구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책에도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논문이 자주 등장한다.
상업으로 가업을 잇는 경우는 많이 봤어도 학문적으로 같은 분야를 3대가 이어서 연구하는 경우는 드물 것 같다.
집안 내력을 내심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에둘러 말하는 겸손이 느껴져 빙긋 웃었다.
할아버지는 한 살 때 돌아가셔 기억도 없고, 아버지는 학문적 스승이라기 보다는 검도 사범이었으며 자신은 음악과 기타를 좋아하는  

사실 청나라는 근대화에 실패하고 서구 열강에게 잡아 먹힌 별 볼 일 없는 이민족의 국가라고만 생각했다.
현재 한족에게 밀려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고 중국 사회의 지배층에서 비껴서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될 것 같다.
중국을 지배했던 만주족이 고유의 정체성을 잃고 동화되어 버린 반면 한국은 중국문명의 그늘 속에서도 오늘날까지 꿋꿋하게 독자적인 문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상한 자부심도 만주족을 한 수 아래로 깔보게 된 원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책에서도 분명히 밝히는 것처럼 만주족의 청나라는 현재 중국의 바로 앞 시대였던 것처럼 조선이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만큼이나 엄청나게 큰 영향력을 여전히 중국 사회에 끼치고 있다.
만한전석이나 치파오, 교자만두 등의 문화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일단 이 거대한 중국의 영토부터가 건륭제 때 비로소 완성된 것이고 몽골족, 위구르족, 만주족, 티벳족, 한족의 오족중화 개념도 청나라 때 생긴 것이다.
청나라가 중국에 끼친 영향은 결코 과소평가 될 수 없고 만주족이 사라졌다느니 한족의 나라라느니 하는 생각은 수정되야 할 것 같다.
저자는 끊임없이 중국이 다민족국가임을 강조한다.
나는 언제나 중국의 그 유구한 역사와 거대한 문명에 감탄해 왔지만 대부분의 역사책에서 한족은 오랑캐들과 싸우면서 성장해 왔다고 읽어 왔다.
일단 오랑캐, 이민족, 유목민이라는 단어 자체가 문명인 한족에 비해 한 수 아래로 느껴진다.
그러나 이 거대한 중국 문명은 현재 중국 사회를 이루는 90%의 한족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주변의 여러 민족들을 통합해 가는 과정 속에서 성장해 왔다.
유목민이 중국 역사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유목민과 한족을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관점이 중국사의 제대로 된 이해를 방해한다는 생각도 든다.
<장성, 중국사를 말하다>와 비슷한 관점이다.
중국은 유목민들에 의해 더욱 광대하고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게 됐고 오늘날 그들이 끼친 영향력은 역사에서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중국이 안고 있는 소수민족들과의 분쟁은 태생적인 문제임을 분명히 느꼈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티벳이나 위구르 등의 독립 투쟁을 좌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흔히 청나라는 강희, 옹정, 건륭의 세 황제를 거론하는데 60여년을 지배한 강희제나 건륭제에 비해 옹정제는 비교적 덜 관심을 가졌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일단 옹정제는 그 즉위부터가 45세라는 파격적인 나이다.
그는 또 청나라의 전통적인 왕의 개념, 즉 여러 친왕들의 연합 회의 수장 정도라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 내치에 정성을 쏟았고 후계자를 미리 지목했을 경우의 혼란을 막기 위해 죽은 후에 후계자를 공개하는 저위밀건법을 만들었다. 
사실 예전에는 이 제도가 정말 이해가 안 갔다.
미리 후계자를 정해 놔야 후계자 수업도 받고 왕위 다툼도 없고 안정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대체 왜 죽은 후에야 비로소 후계자가 공개되는 이런 밀건법이 왕위 다툼을 없앤단 말인가? 
그것은 전통적인 황제독제 체제와 유목민 사회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단 한 명의 독재자에게 모든 권한을 밀어 주는 것이 비해 몽골이나 만주족 등의 유목민 사회에서 왕이란 그저 여러 부족의 대표자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왕이 죽고 나면 쿠릴타이 등의 대표자 회의를 통해 다음 왕을 선출한다.
몽골이나 만주족 등이 중국을 지배하게 되면서 미리 후계자를 세우는 것은 여러 부족들의 반발을 사게 된다.
어찌 보면 청나라의 황제들은 중국의 전통적인 1인 독재 체제로 바꾸기 위해 (즉 황제권 강화를 위해) 자신의 부족들과 끊임없이 투쟁해 왔다.
강희제는 미리 후계자를 정하는 바람에 여러 부족의 반발을 사서 아끼는 아들을을 내치게 되고 결국 45세의 옹정제가 황위에 오른다.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 옹정제는 죽은 후에 후계자를 공개함으로써 다음 후계자가 되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펼치게 하여 정국을 안정시킨다.
정말 만주족의 특성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면 무조건 장자 계승이 원칙인 조선에 비해 중국 황실은 반드시 정후의 첫째 아들이 황제위에 오른 것은 아닌 듯 싶다.
적서 차별은 한국에만 있었다는 말이 실감난다. 

옹정제는 또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화이사상을 깨뜨리기 위해 대의각미록이라는 책을 저술한다.
큰 뜻을 깨닫게 하고 미혹에서 벗어나게 하는 기록이라는 뜻으로 중화론자인 증정의 재판기록이라고 한다.
옹정제는 증정이 스스로 중화와 오랑캐의 구분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결론을 끌어내도록 자아비판하게 만든다.
예와 의를 지키는 것이 중화이지 민족의 구분이 아니며, 중국은 여러 민족을 통합해 가면서 성장해 왔다는 것을 강조한다.
어찌 보면 조선의 소중화 의식과도 비슷한데 끝까지 만주족에게 마음으로는 복종하지 않는다는 조선 지배층과는 또 대립되기도 한다.
어찌 됐든 사상 초유의 거대한 국가로 발전해 가는 위대한 청나라를 보면서 한족 지식인들 역시 스스로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대의각미록의 일부가 실렸는데 옹정제의 논리를 따라가면 굉장히 매력적이고 주체적으로 보인다.
아마도 강력한 왕국을 이룩한 통치자의 자신감이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변발이나 문자의 옥 등을 통해 한족을 강압하기도 하고 만주문자 병용, 팔기군 유지, 번역과 실시 등 고유의 문화지키기도 하면서 중국의 유교 문화를 받아들이고 통합해 간 청나라는 오늘날의 중국을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다.
아편전쟁이나 서태후, 마지막 황제 부의 등으로 희화화 되기에는 너무나 엄청나고 거대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만주족이나 청나라를 우습게 보는 것도 한국인의 소중화 의식 탓이라는 생각도 든다.
유목민이 중국 역사에 끼친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또 현재 중국은 다민족국가이며 이들이 중국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구성요소인지 새삼 느꼈고 이 매력적인 전통 왕조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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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그 거대한 행보 - 레이 황의 거시중국사
레이 황 지음, 홍광훈. 홍순도 옮김 / 경당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1988년 무렵 출간된 책이니 벌써 20여년 전의 책이다.
시의성에서 약간 떨어질 수도 있겠으나 지금까지 읽은 중국 관련 책 중에서 가장 재밌게 읽고 있다.
거시중국사라는 독특한 관점이 마음에 들어 대체 어떤 내용일지 무척 궁금했었는데 왠지 긴 중국 역사를 한꺼번에 조망한다는 게 부담스러워 계속 미뤄왔던 책이기도 하다.
일본 관련 역사서 중에서 제일 인상깊고 재밌게 읽었던 책이 <현대 일본을 찾아서> 인데 이 책이 비교적 학술적인 느낌을 풍겼다면 이 책은 교양서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그만큼 읽기도 쉽고 굉장히 재밌다.
저자가 재미 중국인인 만큼 중국의 역사에 정통하고 이해하기 쉽게 미국의 예에 빗대서 설명하는 것도 흥미를 배가시켰다.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에 건너가서 영어로 한국 통사를 쓴다면 미국인이 쓰는 한국사 보다 세부적인 면에서 더 자세하고 번역에서 오는 어색함도 줄어드는 것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마음에 든 것은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당시 제도의 세세한 부분이나 단편적인 사실의 전달에 치중하지 않고 그 제도나 사건이 역사의 발전에 끼친 영향력은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유구한 중국의 역사를 읽는데도 지루하지 않고 성큼성큼 뛰어넘으면서 독서를 진행할 수 있었다.
같은 저자가 출간한 책,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 하다> 와 <아무 일도 없었던 해> 등을 같이 읽어 볼 생각이다. 

지난 번 <대청제국>에서는 중국의 역사가 단지 한족만의 역사가 아니라, 몽골족, 티벳족, 만주족, 위구르족 등이 더해진 오족의 중화임을 깨달았다면 이번 책에서는 중국이 어떻게 자본주의 국가로 전환할 것인지, 왜 중국은 자본주의화에 실패했는지 전통적인 중국 농업사회와 전제왕권의 배경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
일견에서는 지나치게 자본주의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했다는 비판도 받는다고 한다.
확실히 중국은 (한국 같은 개방 이전의 동양 사회도 마찬가지겠지만) 르네상스나 대항해 등을 기점으로 자본주의 사회로 전환된 서양과는 전혀 다른 전통적인 농업 전제 국가였다.
그것은 덩샤오핑의 개방 이전까지도 계속 지속되어 온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서와 고증으로 확인된 상나라로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수천년 동안 지켜온 단일한 중앙집권제가 가능했던 이유도 바로 그 농업전제왕권의 안정성일 것이다.
변화와 혁신을 통해 성장하는 서구의 자본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스템이다.
산업혁명이나 대항해 시대 이전의 전통사회에서는 농업을 바탕으로 민중을 먹여살리고 강력한 왕권으로 (특히 잔인한 형법으로) 백성들을 통제했던 중국의 시스템이 무척 안정적이고 효율적이었을 것 같다.
책의 표현대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요구조건을 충족시켜 줌으로써 기층 사회를 안정시켰고 관료제로써 그것을 통제했으나 변화와 혁신을 바탕으로 성장해 가는 자본주의 시대에는 전혀 맞지 않는 시스템이다.
동양 사회가 근대화에 실패한 것은 어찌 보면 전혀 다른 체제로의 전환이 쉽지 않았음이 당연해 보인다.
또 그것은 전통 사회에서 서양에 비해 안정적인 사회를 유지했던 중국이 서구보다 왜 더 잘 살았는지를 설명해 준다.
특히 서구 사회가 중세를 지나면서 도시에서 상인들이 영주로부터 권리를 빼앗아 오고 시민계급의 권리가 점차 기층민들에게까지 퍼져 가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발전이었던 것에 비해 중국 사회는 관료제의 발달로 언제나 관료는 상인들보다 우월했고 도시민들을 완벽하게 제압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나 인권의 발달은 불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책에서도 본 것처럼 정조나 맹자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민주주의나 인권 등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서양에서 말하는 자결의 의미가 아니라 단순한 소민보호주의, 측은지심이나 인의 발로 등이라는 뜻이다.
근본적으로 중국 사회에서 황제는 소규모 자영농들을 세금과 병역의 징수 단위로 삼았기 때문에 호족들의 토지 겸병이 늘어날수록 국가의 이득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중국은 토지 면적보다는 호수를 기준으로 세금을 징수했기 때문에 호족들의 노비가 늘어나고 기근으로 아사자나 도망자가 늘면 남아 있는 백성들에게 부과되는 양은 더욱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전통사회의 통계 기법으로는 시시각각 변하는 농촌 사회의 토지 변동 사항을 정확히 측정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황제는 지주 계급의 확산을 저지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언제나 소규모 자영농의 보호, 이른바 소민보호주의, 민중에 대한 측은지심의 유지 이런 것이 기본적인 정치 기조였고 균전법이나 한전법, 점전법 등의 토지 소유 제한도 이런 취지에서 나왔다.
국가의 이러한 세금 확보 방법이 사회의 안정에 기여한 반면 최대의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쪽은 당연히 아니었을 것이다.
심지어 상업도 국가에서 균수법이나 전매법, 평준법 등을 통해 통제하고 그 이익을 취하려고 했기 때문에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동양 사회에서 서양의 도시처럼 자발적으로 발전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동안 지주 계급, 대상인 등의 계층은 민중의 고혈을 빨아먹는 흡혈귀, 통제해야 하는 대상 이런 식으로만 생각했는데 윤리 등의 관점 대신 역사의 발전 방향의 축에서 보면 다른 의미도 가능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송나라 때 왕안석의 신법이 사회 시스템상 성공하기 힘들었고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어느 역사가의 평가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또 동양사회에서 자본주의의 맹아가 싹텄고 서구의 침입이 없었다면 저절로 자본주의가 발전했을 것이라는 그 맹아론에도 의문이 생긴다.
자본주의가 역사가 나아가야 할 사표가 아닌 이상 모든 사회가 다 자본주의로 나아가야 하는 것도 아닌 만큼, 오히려 그런 관점이야 말로 (전통사회에서 자본주의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그래서 저자는 두 가지 관점을 비교한다.
첫째는 전통적인 사람들의 인식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삼국지연의에서 보여주는 조조에 대한 미움, 관우나 유비 등을 추앙하는 분위기 등인데 역사학자들도 이런 윤리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한다.
이른바 소전통인데 조조는 한나라를 배반하고 황제를 억압해 나라를 세웠으니 나쁜 놈이고 유비는 한나라의 지키려고 했으니 착한 사람이다, 이것이 기본적인 역사 인식의 틀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가들 사이에서 보이는 이른바 대전통인데 공자나 주희 등이 주장한 춘추기법일 것이다.
정사의 구별, 의인과 악인의 대비, 칭찬과 비난의 확연한 구분으로 역사를 이분법적으로 분명하게 대비되도록 기술한다.
나라가 번창할 때의 황제들은 언제나 성군이고 망할 때는 항상 혼군인 것처럼 말이다.
개개인의 도덕심이나 윤리 의식 등이 역사 발전을 망치고 흥하게 한다기 보다는 사회 구조나 시스템의 변화가 역사의 흥망성쇠를 가져온다.
어찌 보면 지나치게 이분법적이고 단순화된 관점인데 지금도 기본적인 마인드는 선인과 악인의 구별, 윤리의식의 투영 등인 것 같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바라 본 저자의 이 거시중국사가 흥미진진 하다.
기존의 당위적인 전통적 관점에서 조금 비껴섰기 때문에 신선하고, 색다른 관점에서 역사를 볼 수 있게 된다. 

모처럼 재밌게 읽고 있는 책이고 한자를 많이 표기해 줘서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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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 - Harry Potter and the Half-Blood Princ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일종의 의무감을 가지고 보는 영화.
환타지를 싫어하는데 이 영화는 꼬마들이 지팡이 들고 주문 외우는 게 앙증맞아 개봉할 때마다 봤다.
그런데 이제 너무 커서 도저히 애라고 볼 수 없고, 누구 말대로 호그와트 대학교라 해야 할 것 같다.
해리 포터는 원래 잘 생긴 얼굴이 아니라 귀염성 없어지니 별로고, 차라리 개성있는 론 위슬리가 더 맘에 든다.
사랑의 묘약을 먹고 헤롱거리는 모습은 정말 귀여웠다.
역시 제일 멋지게 변한 사람은 헤르미온느.
늘씬한 숙녀가 되어 아름답게 변신했다.
초반에 시작하면서 마치 3D 입체 영상이라도 되는 듯 쑥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순간이동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혼혈왕자가 대체 왜 스네이프일까?
스네이프가 볼드모트와 대적하려고 일부러 그 쪽 편에 선 건가?
책도 안 보고 졸면서 봐서  (무려 3시간에 달하는 상영시간! 영화 보다 화장실 간 건 또 처음이네) 제대로 이해를 못했다.
말포이는 볼드모트에게 선택받아 누구 말대로 나쁜 놈에서 악한 놈으로 바뀌고 그래도 괴로워 한다.
덤블도어 교수가 스네이프에게 죽는 건 일종의 반전 같았다.
아, 난 제대로 이 시리즈를 이해하고 있는 걸까? 

이제 학교를 떠나 진정한 악과 대항하러 떠나는 해리 포터.
다음 편에서도 이 커다란 대학생이 귀여운 해리 포터 역을 맡는단 말인가?
언제 시간나면 책을 읽던지 시리즈를 제대로 한 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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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가이드북 - 역사적 숨결과 문화의 힘이 생동하는, Official Guide to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국립중앙박물관 엮음 / 안그라픽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작년에 한창 박물관 관람에 열을 올릴 때 도서관에 신간 신청해서 읽었던 책이다.
막상 받아서 읽어 보니 지루한 느낌이 들어 대충 훑어 보고 말았는데 올해 다시 펼쳐 봤더니 그 때보다는 훨씬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아마 그동안 열심히 박물관 구경한 덕분에 유물들이 눈에 익었기 때문일 것이다.
판형은 가지고 다니기 좋게 문고판 형식으로 되어 있고 사진이 화려하다.
유물 사진에 설명을 다는 식이라 체계적이지 못한 점이 흠이지만 말 그대로 박물관 갔을 때 가이드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각 전시관의 대표 유물들을 화려한 도판과 함께 보여 준다. 

박물관에 관심이 생기면서 다른 도시에 가면 제일 먼저 그 도시의 대표 박물관을 방문하게 됐는데 역시 지방은 서울에 비해 많이 열악하다는 것을 느꼈다.
춘천이나 부여, 공주 등은 도시가 작아서 그렇다 치더라도 대구 박물관의 빈약함에는 정말 깜짝 놀랬다.
중앙박물관의 규모가 세계 6위라고 하니, 비교하는 게 무리인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지방 박물관에도 좀 더 많은 투자를 해서 각 지방의 대표적인 문화센터 내지는 관광명소로 자리잡았으면 한다. 

선사시대 유물들은 워낙 고대의 것들이라 대체 어떤 식으로 어디에 이용됐는지 감이 잘 안 잡혔던지라 설명을 자세히 읽었다.
박물관에서 상영되는 짧은 영상물들이 도움이 됐다.
대구박물관에 가 보면 당시 무덤 속을 재현해 놓은 모형이 있는데 실제 느낌을 아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삼국시대를 지나 고려시대로 넘어오면 그 때부터는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정말 미의식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예술품들이 즐비하다.
특히 도자기의 아름다움은 책에서 사진으로만 봐서는 제대로 느끼기 힘들 것이다.
엄청난 크기의 괘불도 직접 박물관에서 실물을 보지 못했다면 크기가 주는 위압감과 웅장함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박물관은 지식 습득의 공간일 뿐 아니라, 대중들이 손쉽게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심미적 공간이기도 하다.
내 경우도 고고관 보다는 미술관에서 훨씬 더 감동을 받는다. 

박물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입문서로서 읽어 볼 만 하다.
중앙박물관에서 발간하는 책들은 전문적이면서도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뮤지업 샵에서 이 책들을 고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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