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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과 박물관
존 H. 포크 외 지음, 이보아 옮김 / 북코리아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제목이 책의 주제를 압축해서 보여 주긴 하지만 impressive 하지 못해서 아쉽다.
책 내용은 정말 괜찮다.
나처럼 박물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 하다.
나도 박물관을 꽤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나오는 사람들처럼 아주 열성적이지는 않다.
1년에 40회 이상 박물관에 가다니, 허걱 놀랬다.
그렇긴 해도 나 역시 열성 관람객에 속한다.
저자는 관람객을 세 집단으로 나눴다.
아예 한 번도 안 가는 사람, 1년에 2~3회 가는 사람, 4회 이상 가는 사람.
나는 1년에 10여 회 전후로 가는 것 같다.
보통 자주 가는 사람들을 위주로 정책을 짜지만, 21세기 박물관의 화두가 교육기능인 만큼 저자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박물관으로 끌고 올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단순히 자기 주장이나 직관적인 말만 늘어 놓는 게 아니라 (특히 자기 계발서들, 아무런 근거도 연구도 없고 그저 말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마치 자기가 신이라도 된 것처럼 훈계를 늘어 놓는 이 썩을 놈의 책들!!) 수많은 연구와 분석, 데이터들을 통해 관람객의 행동 유형과 전시 행태 등을 분석해서 신뢰가 가고 그만큼 재밌다.
저자는 박물관에 가는 것을 개인적 맥락, 사회적 맥락, 물리적 맥락으로 나눴다.
개인적 맥락이란 가고 싶은 욕구나 동기를 말한다.
나처럼 역사나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가게 될 것이다.
사회적인 맥락은 학교의 현장학습처럼 단체관람을 가거나 입소문을 듣고 그 전시 대단하더라, 안 보면 왕따 될 것 같으니까 가게 되는 것, 즉 사회적인 의미에서 방문하는 경우다.
물리적 맥락이란 박물관까지 가는 교통편이나 시간 소모, 접근성, 편의성 이런 것들이다.
박물관이 여가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인지, 뮤지엄 샵이 훌륭한지, 식당 음식은 괜찮은지, 주차는 가능한지, 직장이 끝는 후에도 방문할 수 있는지 그런 주변적인 것들 말이다.
사실 이 물리적 맥락은 간과되기 쉽지만 반복관람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변수가 된다.
책에 나온 바대로 시간이 지나면 museum fatigue가 온다.
1시간 정도 지나면 다리가 아프고 배가 고프고 전시물에 압도당해 신경이 무뎌진다.
육체적 피로 뿐 아니라 정신적 피로가 쌓이는 것이다.
그래서 적절한 휴식 공간이 필수이고 뮤지엄 샵이나 식당, 카페테리아 등도 잘 갖춰져야 한다.
내 경우는 영상실에서 휴식을 취한다.
박물관에서 20분 전후의 짧은 영상물을 틀어 주는데 이게 의외로 재밌고 앉아서 휴식도 취할 수 있어서 자주 이용한다.
아니면 샵에 가서 예쁜 엽서나 관련 책들을 들춰 본다.
실제로 아이들이 현장학습을 나가면 뮤지엄 샵에서 뭘 살 수 있을까 기대가 크다고 한다.
박물관의 전시물을 보는 것보다 버스를 타고 학교 밖으로 나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친구들과 신나게 얘기하고 갖고 싶은 물건을 사는 그런 부수적인 것들에 더 큰 괌심을 보인다고 한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학습 효과를 얻으려면 이런 주변적인 것들까지 세심하게 배려하고 신경써야 한다.
1인 평균 박물관 이용 횟수는 한국인이 미국인의 1/65 이라고 한다.
미국인들에게 박물관이란 작은 비용으로 가족들이 여가를 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로 인식되어 있다.
영화에서도 아이들을 데리고 자연사 박물관 등에 가는 모습이 흔히 등장한다.
우리나라도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오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사실 아이들을 통제하지 않는 부모들 때문에 관람에 방해되는 경우가 정말 많기는 한데 아이들 덕분에 어른들이 관람하는 게 현실이고 보면, 또 어린 시절 박물관에 자주 가면 커서도 자연스럽게 방문하게 되므로 일정 부분은 이해해 줘야 할 것 같다.
미국에서도 박물관은 교육 수준이 높고 경제적 사정이 좋은 백인들이 주로 이용한다고 한다.
특히 동물원에 비해 미술관 이용객은 사회경제적 수준 격차가 가장 크다고 한다.
경제 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 바로 교육 수준이다.
부르디외가 말하는 문화 자본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여러서부터 인문학 교육을 시키고 자주 박물관에 데려가고 예술 작품을 접할 수 있게 학교가 유도한다면 빈부격차가 정말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나 같은 경우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같이 가는 걸 싫어한다.
옆사람 때문에 제대로 감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열성 관람객들은 나처럼 혼자 가던지 일행이 있어도 타인과의 교류 보다는 혼자 즐기는 쪽을 택한다고 한다.
나는 레이블을 전부 꼼꼼히 읽는 스타일이라 중앙박물관의 경우 하루에 한 전시실 밖에 못 본다.
그래서 동행이 있으면 신경이 쓰여 제대로 보기가 어렵다.
반면 가끔 이용하는 관람객들은 전시물 보다는 함께 간 사람과의 교류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야생고양이 표본을 보고 학교에서 일어난 고양이 사건을 서로 얘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도시를 방문할 때도 나는 제일 먼저 그 지역의 박물관에 간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외국이 아닌 이상 박물관 가자고 말하기가 껄끄럽다.
영화관은 자연스럽게 가는데 왜 박물관 가는 건 이렇게 힘든 걸까?
그런 걸 생각하면 일반 대중들이 더 쉽게 박물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좀 더 문턱을 낮추고 홍보를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뒷부분은 지하철에서 서서 다 읽었다.
뒤로 갈수록 동어 반복이 많아 좀 지루했다.
제일 큰 수확은 학습의 개념에 대해 알게 된 점.
학습이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지식이나 개념 등을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과 통합하여 나중에 비슷한 일을 겪으면 적용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수학 시간에 새로운 수학 문제 하나 더 푸는 게 학습이 아니라, 기존에 자기가 갖고 있던 지식과 개념, 감성 등에 덧붙여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내 머릿속에서 맥락화 되면 나중에 다른 일이 생겼을 때 그것을 내가 적용시키는 것, 일종의 내제화, 변형이라고 할까?
수업시간에 무조건 암기하는 게 학습의 본질이 아니다.
학생이 수업을 들을 때 어떤 감정 상태였는지 어떤 환경에서 배웠는지 누구와 함께 했는지, 교실 환경은 어땠는지 등 사회적, 물리적 맥락도 모두 학습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니 어휘 10,000 개 뭐 이런 식의 암기가 오래 기억될 리가 없지.
개인적 맥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기다.
하고자 하는 의지, 욕구, 갈망 이런 게 있어야 비로소 머리 속에 저장이 가능하고 회로가 형성되어 기존의 지식과 통합된다.
flow 로 유명한 칙센트미하일 교수가 인용되는데, 제대로 된 학습효과를 얻으려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야 한다.
먼저 자기 실력에 맞는 학습이어야 하고 (너무 쉬워도 어려워도 안 된다) 목표가 분명해야 하며 피드백이 이뤄져야 한다.
학습 후 반복 강화를 통해 자주 써 먹어야 자기 것으로 내제화 될 수 있다.
그런데 단지 반복해서 외우는 게 다가 아니라, 자기 생활에서 끄집어 내서 노출 빈도를 높혀야 한다.
박물관을 예로 들자면 관람을 한 후 가족들과 느낀 점을 얘기하고 학교 가서 친구들과 또 얘기하고 TV로 관련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책이나 잡지에서 또 읽고 이런 식으로 반복해서 생활에 노출시켜야 비로소 기존의 지식들과 통합이 가능하다.
내 경우 선행학습을 할 경우 흥미가 떨어져 복습을 위주로 하는 편인데 앞으로는 가벼운 지식은 먼저 습득하고 관람해야겠다.
관람이 끝난 후 뮤지엄 샵에 들려 도록을 산다거나 서점에서 관련 책들을 읽으면 기억을 강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감상문을 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여튼 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단순한 유물의 보존과 전시가 아니라 교육에 있지만 관람객들은 배우는 것보다 재미를 더 우선시 하므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여가 시간을 끌어 올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니까 박물관은 스포츠 경기장, 영화관, 쇼핑 센터 등과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와 고고함을 위해 방문하는 관람객들도 있지만 역시 본질은 즐거움이다.
심미적 즐거움을 위해 박물관의 건물 양식에도 신경을 써야 하고 접근성, 편의성도 고려해야 하며 흥미를 끌어 당기기 위해 홍보도 많이 해야 한다.
뮤지엄 샵을 쇼핑 센터처럼 구매욕을 자극하도록 품질좋고 디자인 좋게 꾸미는 것도 중요하다.
도슨트나 오디오 가이드, 해설사 등을 배치하여 관람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도 필요하다.
홈페이지에서 자료를 다운받을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도 심적 접근성을 높히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