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중국, 중국인 이야기 - 비행기에서 끝내는
정광호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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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안에서 끝내는> 이라는 제목에 자극받아 고른 책이다.
북경 여행을 앞두고 중국 문화에 대해 대충 감이라도 잡아야 할 것 같아서 역사서와 가벼운 문화 관련 서적들을 읽고 있다.
일단 책의 판형은 정말 비행기 탈 때 배낭에 넣어도 좋을 만큼 아담하고 가벼워서 좋다.
이런 아담 사이즈의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내용 면에서는 평균 정도의 점수를 줄 수 있겠다.
중국의 역사와 사회 문화 현상을 적당히 잘 버무렸다는 느낌이 든다.
깊이 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수박 겉핥기라는 생각이 들지만 전문적인 학자가 아닌 이상 더 많은 걸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중국은 항상 나에게 경외심을 불러 일으키는 유구한 문명의 나라다.
동아시아 문화권의 일원으로서 이 오래된 나라의 장구한 역사와 전통의 깊이는 서구인들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한다.
최근 들어 한자에 관심이 생기면서 더더욱 중화 문명에 깊은 애정을 갖게 됐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중국이 발전 지향적으로 나가면서 민족주의에 이런 역사를 지나치게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동북공정 문제도 그렇고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식으로 한국인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려는 태도도 그렇다.
일본도 마찬가지지만 중국이 동아시아의 리더가 되려면 (세계의 리더는 차치하고서라도) 보다 대국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주변 문화권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일본의 근대화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놀라운 발전상과 혁명적인 개혁에 감탄하며서도 군국주의로 함몰되는 과정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보편적이 못한 한계를 느끼곤 한다.
미국 혹은 서유럽에 대해 동경심을 갖는 것은 비단 그들이 먼저 이룩한 부유함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 부를 바탕으로 이룩한 인권의식, 환경보호, 관용정신, 개방성 이런 인류 보편적인 가치 때문이다.
정말 팍스 아메리카의 본모습이 단지 경제적 부 때문이고 중국처럼 인권을 가볍게 취급하고 통제하는 국가라면 혹은 일본처럼 천황주의가 여전히 맹위를 떨친다면 절대로 부러워 하지 않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중국이 얼마나 발전되고 있는지를 실감했는데 이런 경제력을 바탕으로 사회적인 성숙도 같이 이루어 가길 바란다.
중국 문화에 대한 찬탄이 그들의 우월감을 북돋고 주변 국가들을 무시하는 근거없는 자만감으로 이어진다면 선조들이 이룩한 업적을 스스로 버리는 꼴이 될 것이다.
<장성, 중국사를 말하다> 에서 느낀 바지만 중국의 역사야 말로 유목민과 농경민의 문화가 어우러진 집합체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한대로 한국인 역시 중국이라는 거대한 문명권에 우리의 지분을 요구할 수 있을 만큼 서로 기여하면서 발전해 왔다고 생각한다.
어떤 문화든 일방적일 수만은 없으니까.
먼저 읽은 중국 역사 관련 서적들이 겹쳐지면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상대적으로 음식 문화나 현대 중국인의 생활상 등은 흥미도가 좀 떨어졌다.
너무 가벼운 스케치였다고 해야 할까?
내가 관심을 갖는 분야가 현대의 중국이라기 보다는 기나긴 중국의 역사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 나라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한 일 같다.
문화적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왜 그들은 우리와 다르게 발전했는가, 어떤 갈등이 있어왔고 어떻게 대처해 왔는가 등등 재밌는 주제들이 많다.
여행을 계기로 중국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많이 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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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보는 중국사 - 세계전쟁사 002
크리스 피어스 지음, 황보종우 옮김 / 수막새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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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역사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했었다.
나름 식견이 있다고 말이다.
그렇지만 관련 서적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진짜 수준이 매우 낮은 평범한 독자에 불과함을 느낀다.
가벼운 대중 교양서 조차도 조금만 자세히 배경을 설명하면 그 때부터는 대체 이게 뭔 소리야, 하면서 자신이 없어진다.
글을 쓰는 필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블로그를 돌아다디다 보면 내공 깊은 독자들이 대체 왜 이렇게 많은 것인지, 그들이 쓴 감상문을 읽다 보면 내가 쓴 리뷰는 그저 혼자 끄적이는 낙서에 불과하다는 자괴감이 든다.
책 내는 건 고사하고 단지 리뷰 하나를 쓰는 것 조차 이렇게 수준 차이가 나다니 정말 뭔가를 잘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싫어하는 건 민족주의적인 해석, 음모론, 이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을 마치 진짜 역사라도 되는 듯 쓰는 과장법 등이다.
이를테면 딱 이덕일씨 같은 저술가들이다.
고구려가 천자의 나라였다느니, 환인국을 찾았다느니, 정조가 독살됐다느니, 효명세자가 안 죽고 집권했으면 조선의 운명은 달라졌을 거라느니, 뭐 이런 관심 끌 만한 주제들 있지 않은가.
기본적인 역사 인식 자체가 극명하게 다른 이런 책 외에는 솔직히 다른 역사서에 대해서는 내가 과연 옳고 그름을 따질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워 이제는 이런 리뷰 쓰는 것도 너무 조심스럽다.
어설픈 지식으로 전문가들의 역작을 함부로 평가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책에 대한 칭찬을 할 때도 내가 제대로 알고 좋다고 하는 건지 자신이 없다. 
전문가는 못 되더라도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딜레탕트라도 되고 싶었는데 그 관심 독자 수준도 유지하기가 힘들 만큼 정말 세상에는 똑똑하고 내공 있는 아마추어들이 널려 있는 것 같다. 

각설하고, 이 책은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인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 중국 여행을 계기로 읽게 됐다.
같은 시리즈인 <지도로 보는 한국사> 가 지도를 많이 넣다 보니 상대적으로 그와 관련된 역사 부분의 기술에 너무 소홀한 것 같아 실망을 했던지라 아무래도 손이 안 갔던 책이다.
막상 읽어 보니 앞의 한국사와는 내공이 다른, force가 느껴지는 책이라는 느낌이다.
앞의 책이 지도만 나열했던 것에 비해 이 책은 중국의 전반적인 역사를 아우르고 주제에 맞게끔 군사제도와 무기, 전략 등의 세밀한 부분까지 잘 짚어내고 있다.
중국사라는 주제 자체가 워낙 광범위 하기 때문에 대표적인 사실들만 압축해서 기술하는 게 더 이해가 빨라서인지도 모르겠다.
실제 병사들의 복장이나 무기를 보여 주는 삽화들은 신선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정확히 이해하기는 힘들었고 서양인이 그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서구적인 느낌이 들어 약간 어색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 자신이 무기류나 전술적인 면에는 매우 약하기 때문에 대충 넘어간 면도 없지 않다.
오히려 나는 이런 시각적인 부분 보다는 중국 역사를 아우르는 저자의 기술 솜씨에 점수를 주고 싶다.
그 동안의 독서가 밑바닥에 쌓여 있기 때문이겠으나 복잡한 중국 역사가 한 눈에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워낙 많은 나라가 난립하여 항상 헷갈렸던 위진남북조 시대라든가 춘추전국시대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기분이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성장하게 됐는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수나라와 당나라 편에서 고구려가 등장해 반갑기도 했다. 
특히 이슬람 세력과 맞붙은 탈라스 전투에서 고선지가 고구려 유민이었다고 기술해서 무척 흐뭇했다.
서양 역사가들에게 고구려가 하나의 나라로 인식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느낌이 들어서다.
중앙아시아 부분은 늘 모호한 느낌이 드는 부분이라 인터넷에서 관련 영역을 찾아 보기도 했는데 아직은 감이 잘 안 잡힌다. 
아마 많이 접하질 못해서 그럴 것이다.
관련 서적을 좀 더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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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에 길을 찾다 - 새로운 시대를 꿈꾼 13인과 그들의 선택
임용한 지음 / 시공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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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아하는 저자의 신간이 출간됐다.
<전쟁과 역사> 시리즈의 애독자이기 때문에 다음 권은 당연히 임진왜란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서점에 좀 느닷없는 듯한 주제인 "개혁" 을 화두로 신간이 출시된 걸 보고 놀랬다.
제목은 너무 전형적인 느낌이 들어 재기발랄한 제목을 붙였더라면 보다 많이 홍보가 되지 않았을까 아쉽다.
내용은 물론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내용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저자의 문장력을 중시하는데 이 분은 기본적인 역사 인식도 나와 비슷하지만 무엇보다 글을 참 맛깔나게 잘 쓴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학문의 깊이와는 또다른 차원의 문제 같다.
외국의 유명 학자들이 쓴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자기 전공 분야에서 최고의 석학임은 물론, 문장력 또한 탁월하다는 사실이다.
검증된 책만 번역이 되서 그런 것 같은데 책의 내용도 훌륭하지만 정말 글을 잘 쓴다.
번역된 책이 이 정도라면 직접 원어로 읽으면 얼마나 훌륭할까 싶다.
하여튼 임용한 씨의 글도 비문이 없고 위트가 있어 가독성이 뛰어난 편이다. 

자신의 시대를 개혁하고자 했던, 그러나 좌절된 13인의 개혁가들이 등장한다.
서문에 나온 것처럼 너무 잘 알려진 개혁가, 이를테면 정조나 세종, 정약용 대신 윤치호나 황현처럼 덜 알려진 인물들을 택한 점도 무척 신선하다.
조광조의 순진무구한 도학 정치의 허실은 이미 <조선국왕이야기> 편에서 충분히 읽은 바 있고 소현세자의 좌절이나 궁예의 몰락도 비교적 잘 알려진 이야기라 큰 감흥은 없었다.
오히려 근대의 개혁가에 속하는 윤치호와 황현, 이익이나 정약용에 비해 덜 알려진 실학가 유형원, 박제가 등이 흥미로웠다.
흥선대원군 편에서는 명성황후가 고종의 어머니와 같은 항렬이라 어렸을 때 안국동 이모라 불렀다는 에피소드가 신선했다.
고종의 리더쉽 부재, 권위와 재물에 대한 집착, 안목 결핍 등은 평화로운 시기였으면 그저 그런 군주로 기록됐을 터이나 급변하는 19세기 말의 통치자로는 함량 미달이었음은 익히 알려진 바다.
오히려 신선했던 점은 명성황후와 아버지에게 휘둘린 나약한 임금이었다기 보다는, 민씨와 같은 탐욕과 야욕을 가졌기 때문에
협공을 폈다는 시선이다.
지도자로서는 비전과 추진력을 지닌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더 적합했겠으나 그 역시 왕조 국가 이후의 식견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결국은 실패한 개혁가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윤치호가 답답해 했던 심정이 이해된다.
일본처럼 극적인 개혁을 이루기에는 당시 조선 사회가 너무 닫혀 있었고 지도층 역시 혁명이나 개혁 의지가 너무 부족했다.
매천야록을 쓴 황현 역시 자기 수양을 통해 국가의 나아갈 바를 제시하는 애국지사였고 을사늑약 때 자결했으나 결국 위정척사파에 지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그런 면에서는 나중에 친일파로 변신하는 윤치호가 훨씬 더 개방적이고 현실 인식에 탁월했음을 보여준다.
개혁안을 제시한 유형원 역시 성리학이라는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그러고 보면 산업화와 세계화의 거대한 물결을 맞기 전 시대의 성리학자들인 이제현이나 정몽주 등의 개혁가들은 자신의 개혁 의지가 아직은 성리학적 틀이 안전한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조선 후기의 실학자나 말기의 위정척사가들과는 다르게 평가받아야 하는 것 같다.
결국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현실적인지, 시대적 인식의 깊이가 있는지, 미래를 내다보는 탁견인지 이런 내용이 중요한 것 같다.
명분론에 대한 집착이야 말로 여전히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 하는 힘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하여튼 제대로 된 개혁을 한다는 건 퍽이나 어려운 일이다. 

흥미롭게 읽은 책이고 임용한 씨의 신간들이 많이 발간됐으면 좋겠다.
이 분은 저술가로써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전문 필자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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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비열전 - 조선왕조실록에 의한
임중웅 지음 / 선영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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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한 사람의 책이 아니라 걱정이 되면서도 조선왕조실록에 근거했다는 문구에 혹해서, 또 왕비에 관한 기록이 워낙 적기 때문에 호기심 때문에 읽게 됐다.
다분히 자극적이고 상상력을 동원한 기술들이 마치 사실인양 기술된 부분도 많았지만 그래도 나름 실록을 꼼꼼하게 읽었다는 느낌이 든다.
완전히 실패한 선택은 아니었다.
역사학자가 쓰더라도 획기적인 자료를 찾아내지 않는 이상 역사적 사실 부분에 있어서는 이 책과 대동소이 할 것 같다.
마치 고대사 연구에 있어 워낙 자료가 적어 어쩔 수 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는 것처럼, 왕비들에 관한 기록 역시 너무 적어 자칫하면 야사류로 빠지게 되는 오류를 피하기가 힘든 것 같다. 

한 가지 소득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왕비들에 대해 단편적인 사실이나마 지식을 획득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세도정치 하의 무능한 왕 정도로만 알려진 헌종의 경우 두 왕비들 역시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그나마 최근에 박물관에 다니다 보니 헌종이 도장에 관심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의외로 문화적인 취향이 고상하고 보소당인존 같은 책을 펴냈다는 걸 알게 됐다.
창덕궁 답사를 통해서 낙선재가 바로 헌종의 후궁이었던 경빈을 위해 지어졌다는 것도 알게 됐다.
바로 그 헌종의 첫 왕비가 효현왕후 김씨다.
겨우 8세에 왕위에 오른 헌종은 김조근의 딸과 가례를 치룬다.
10세에 왕비에 책봉된 이 소녀는 불행히도 16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만다.
헌종은 14세의 소녀를 계비로 맞는데 이 사람이 바로 드라마 명성황후에 등장하는 효정왕후 홍씨다.
이 분은 헌종보다 네 살 아래였는데 헌종이 겨우 23세의 나이로 요절한 것에 비해, 73세까지 천수를 누린다.
헌종이 낙선재를 지어줄 만큼 사랑했던 여인 경빈 김씨는 다른 책에서는 삼간택에서 탈락해 후궁으로 들였다고 본 것 같은데 이 책에서는 순원왕후가 계비인 홍씨를 탐탁치 않게 여겨 자신의 일족인 김씨를 후궁으로 들였다고 했다.
그녀는 비록 2년 후 헌종이 젊은 나이에 사망해 과부가 되지만 1907년까지 생존했고 고종이 그녀의 죽음을 애통해 하여 순화궁이라는 궁호까지 내려 줬다고 한다.
77세까지 살았으니 헌종의 어머니인 신정왕후 조씨를 (83세) 포함해서 구한말에는 여성들이 장수했던 것 같다. 

철종의 가계도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알게 됐다.
사도세자의 후손들이 조선 후기 왕위를 이어갔다는 건 대충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정리가 된 기분이다.
드라마로 워낙 많이 만들어져 사도세자의 자손들에 대해서는 익숙한 느낌이 든다.
사도세자는 숙빈 임씨에게서 은언군과 은신군을 낳고, 빙애 (경빈 박씨)에게서 은전군을 낳는다.
은언군의 손자가 원경과 원범인데 원경은 역모 사건으로 죽고 은언군 역시 아내와 며느리가 천주교도라 신유박해 때 사형당한다.
부모 잃고 강화도에서 불행하게 자라던 원범이 순원왕후에게 간택되어 궁으로 들어가자 사약 먹고 죽은 은언군은 신원된다.
살아서는 비참했으나 아들 덕분에 죽어서는 존귀해지는 대반전이 아닐 수 없다.
은언군의 아들이 바로 홍국영이 죽은 누이 원빈의 양자로 들이려 했던 상계군이다.
은언군의 3남이 철종의 아버지 되는 전계군이다.
사도세자의 둘째 아들 은신군은 자식이 없어 양자를 들이는데 바로 이 사람이 흥선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이다.
그러므로 고종은 은신군의 현손이고 사도세자의 5대손이 되는 셈이다.
철종도 33세의 나이로 요절하는데 자식이 없어서 불임인가 했는데, 가계도를 보니 다들 아기 때 죽었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가 영혜옹주로 박영효에게 시집간다. 

세자빈이나 중전으로 간택되는 나이는 겨우 10여세 전후인데 특히 놀라웠던 인물이 바로 순종의 계비인 순정효황후다.
그녀는 겨우 아홉 살 때 무려 스무 살이나 많은 순종의 세자빈으로 책봉된다.
영조가 66세에 15세의 정순왕후와 혼인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겨우 아홉 살 짜리 꼬마 아이를 스물 아홉의 세자에게 짝지워 줄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아마도 정치적인 고려 때문이 아니었을까?
보통 고종이나 민비에 대해서는 왕조 말기의 불행한 통치자들로 연민의 정을 갖고 서술되기 마련인데 저자는 이들에 대해서도 꽤 비판적이다.
민비가 무당이나 굿에 엄청난 재화를 낭비했던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인데 고종이 자동차를 사기 위해 운산 금광의 채굴권을 넘겨 줬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
왕조국가의 군주를 현재의 눈으로 비판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어쨌든 고종이나 민비 모두 난세를 헤쳐나갈 지도자감은 못 되는 것 같다.
차라리 고지식 하더라도 자기만의 비전을 확고히 가진 흥선대원군이 지도자로서 더 자질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나름 재밌게 읽었고 왕비나 후궁들에 대한 기록이 너무 적어 무척 아쉽다.
얼핏 듣기로 왕비실록 이런 책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왜 실록처럼 공식적인 기록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좀 더 많은 발굴이 이루어져 조선 왕실 가족의 인간적인 면이 많이 알려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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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으로 읽는 중국 역사
이은상 지음 / 시공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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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대 그림과 당대의 역사를 잘 버무린 새로운 시도의 책이다.
동양화는 서양화에 비해 편하게 감상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던 터라, 본격적인 동양화 해설서 보다는, 오히려 역사학자가 설명한 그림이 부수적인 이런 책이 읽기가 더 편했다.
그러나 역시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인지 그림 해석에 있어서 지나치게 전형적이고 도식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또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저자의 글솜씨가 썩 훌륭한 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좋은 책의 조건은 두 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일단 깊이가 있어야 하고 (적어도 그 주제에 대해 논문을 써서 학위를 받을 정도의 전문성) 문장력이 갖춰져야 한다.
비문이 없어야 읽기 편하고 쉽고 위트있게 풀어써야 흡인력이 생겨 술술 넘어가게 된다.
훌륭한 내용인데도 정작 서술하는 힘이 떨어져 꾸벅꾸벅 졸면 읽은 보람이 없으니 어쩌면 이런 교양서에는 책의 깊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문장력인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시도는 신선했으나 문장력 면에서는 평이한 수준이라 아주 재밌게 읽지는 못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예전에는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정교한 묘사와 화려한 색체감각이 돋보이는 서양화가 마음에 들었다.
한편으로는 동양화가 서양화에 비해 답보적이고 발전이 덜 된, 한 수 아래의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맨날 수염 기른 노인들이 폭포수 아래 앉아 바둑이나 두고 있고 색체 감각도 전혀 없는 바위산이나 먹으로 그리고 도무지 와 닿지가 않았다.
일단 서양화에 비해 색의 사용이 너무 제한적이고 평면성을 벗어나지 못하며 무엇보다 묘사력이 너무 떨어져 도대체 비교를 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마치 러시아의 이콘화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우리 그림, 산수화, 수묵화 등에 관심이 생기게 됐다.
어쩌면 너무 자주 접하다 보니 색채와 묘사 위주의 화려한 서양화에 조금씩 싫증이 났는지도 모른다.
한시의 매력에 빠져 들고 한자가 주는 아름다움과 철학에 취하고 거대한 중국의 역사에 반하면서 나도 모르게 동양 문화에 마음을 열게 됐다.
정말 우리 것이, 전통 문화가, 동아시아의 문명이 너무 좋았다.
궁궐 답사를 다니고 박물관에 들락거리고 한자 공부를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잘 몰랐기 때문에 그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정말 문화란 우열의 차이가 아니라 다양성의 문제, 세계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의 차이 같다.
우리 것이 최고가 아니라 우리 문화도 훌륭하고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도 호기심과 궁금증을 갖는 것, 그것이야 말로 인식의 창을 넓히고 정말로 즐길 줄 아는 자세가 아닐까 싶다.
국수주의나 왜곡된 민족주의가 왜 편협할 수 밖에 없는지 알 수 있다. 

왜 동양화는 서양화에 비해 정교한 묘사가 부족한 것일까?
왜 동양화는 꼭 제문이 함께 있는 것일까?
동양화는 그림 자체가 목적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철학이나 인격, 포부 등을 밖으로 드러내는 하나의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러시아의 이콘화가 신앙심의 표현인 것처럼 말이다.
혹은 이집트 미술이 일부러 평면적인 그림을 추구한 것처럼 각 문화권의 그림 양식은 그 문화를 지배하는 가치관이 담겨져 있어 서로 상이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원근법의 발명이나 여러 미술 기법 만을 가지고 서양화의 우위를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동양화의 매력을 제대로 알려면 유교나 한자 문화에 익숙해야 하고 시와 그림의 연관성을 잘 파악해야 한다.
사실 이 책에서 지나치게 도식화 해서 당시 시대 상황에만 맞춰 해석한다는 느낌도 들지만 그림이 인용한 고사와 옆의 한시를 해석해 줘서 어느 정도 기본적인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얼마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무량사의 화상석 탁본을 본 것과, 조식의 낙신부도 모사본을 본 것이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화상석 탁본은 솔직히 형체 구별도 잘 안 되서 한참동안 공을 들여 설명문을 읽고 나중에 도록까지 따로 읽었을 만큼 공을 들였던지라 이제 어느 정도는 그림들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에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실제로 그 그림을 보고 읽는 것과 막연하게 사진만 본 것은 느끼는 감동의 강도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
조식이 낙수에 갔다가 그 곳 여신인 복비를 만나고 온다는 내용의 시, 낙신부를 고개지가 그린 그림이 낙신부도다.
두루마리 형태로 되어 있는데 이 조식이 바로 조조의 둘째 아들이자 조비의 동생이고 그가 만난 여인은 죽은 형수 견부인이라고 한다.
견부인은 조조, 조비, 조식 이 삼부자가 모두 사랑했던 여인으로 조비의 아내가 되지만 조식과 사랑하는 사이라 결국 남편의 질투심에 목숨을 잃고 만다.
형에게 불려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낙수에서 죽은 연인을 만나는 내용이니 참으로 환상적이고 애절하며 또 슬프다.
박물관에서 볼 때는 대체 이게 뭔 그림이냐 했는데 찬찬히 내용을 알고 나니 가슴이 찡하다. 

송 휘종이 그린 서학도도 궁궐의 지붕 위에 내려앉은 스무 마리의 학들이 참으로 화려하고 아름답다.
나는 아무래도 이런 장식적인 그림을 좋아하는 것 같다.
밤에 꽃이 지는 것을 두려워 하여 낮처럼 촛불을 환하게 켜 놓는다는 병촉야유도도 마음에 든다.
사실 고개지의 여사잠도나 낙신부도는 묘사력이 썩 훌륭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시대가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시절이라고 하니 그 선구적인 앞섬을 생각하면 가히 놀랄만하다.
송 휘종의 매제인 왕선이 그린 안개 낀 강가와 첩첩의 산 그림, 연강첩장도는 전형적인 평원화 그림이고 북송 시인인 소식의 친구였다고 한다.
항상 유럽이나 미국의 미술관에만 목말라 했는데 이제는 중국 미술관에 가 보고 싶다.
이런 명화들을 직접 볼 수 있다면!
책의 도판이 너무 작아 작가가 설명하는 부분이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
좀 더 도판을 크게 넣던지 아니면 부분 확대를 해 놓던지 할 것이지. 

중국의 역사와 명화에 대해 함께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이번 중국 여행에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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