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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 제례 ㅣ 빛깔있는책들 - 민속 10
임돈희 / 대원사 / 1990년 4월
평점 :
빛깔있는 책들은 표지가 왠지 촌스러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박물관에 가서 조선시대 사랑방의 목공예품을 보다가 그 아름다움에 반해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집어들게 됐다.
가격도 도판이 많은 것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고 무엇보다 수준이 나름 전문적이라 읽어 볼 만 한 것 같다.
기회가 되면 다양하게 시리즈를 섭렵해 보고 싶다.
사실 나는 제사가 사려져 가는 풍습이고 유교 문화의 잔재라고 생각했다.
여자는 제사에 참석하지도 못하고 지극히 가부장적인 인습이라고 생각했다.
제사만 아니면 남아선호사상이 이렇게까지 심할까 싶었으니까.
아들이 없으면 제삿밥 못 얻어먹는다고 심지어 양자를 들여서까지 죽은 후 제사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어리석게 보였다.
그런데 우리 전통문화에 관심이 생기면서 조선시대의 유교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다 나름의 의미와 의의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이런 제례 풍습도 관심이 생기고 애정도 생겼다.
현재의 관점으로 당시를 평가하는 것도 올바르지 못할 뿐더러, 현재의 문제점을 지금 우리가 해결하려고 애쓰는 대신 무조건 전통 탓이다, 인습이 문제다 이런 식으로 조상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은 왠지 비겁해 보이고 현실적이지도 못하다.
10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을 읽으면서 제사가 갖는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이걸 21세기에도 여전히 계승하자는 것은 또다른 문제지만 적어도 우리의 전통에 대해 보다 올바른 이해와 애정을 가져야 함은 분명하다.
요즘은 종가가 워낙 귀해서 그런지 새롭게 조명되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아마 경제력이나 국력이 신장하면서 이제 좀 여유가 생기니 우리 것을, 문화를 돌아볼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민족주의, 국수주의로만 흐르지 않는다면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런 전통과 문화야 말로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겠는가?
환갑을 중요하게 치루는 까닭은, 그 때부터 실권을 놓고 죽음에 가까워지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라는 저자의 해석이 새롭다.
유교에서 조상숭배와 제사가 중요하게 치뤄지는 까닭은 죽음으로 끝이 아니라 죽은 후에도 여전히 자손들과 이어져 계속 살아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당에 신주를 모셔 놓고 마치 어른이 계속 살아 계시는 것처럼 집안의 중요한 일이 있으면 먼저 인사를 하고 아뢴다.
조상의 육신은 떠났으나 그 혼은 여전히 집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러니 부모의 신주를 태운 정조 시대의 천주교인 윤지상 등이 사형을 당한 것은 너무 당연하다.
일종의 부모 살해로 해석했을 것이다.
4대조가 지나면 그 위의 조상은 사당에서 나가 묘소로 돌아간다.
이제부터는 매년 기일에 지내는 기제사 대신 일년에 한 번 시제로 대신한다.
한 대를 25년으로 잡으면 대략 100여년을 자손들과 함께 한 집에 살고 있는 셈이니 어떻게 보면 삶이 100년 동안 더 지속된다고 할까?
보통 있는 집에서는 사당을 세우고 그 안에 신주를 모시며 제사 때마다 꺼내 오지만 없는 집에서는 지방으로 대신한다.
이 지방은 제사가 끝나면 태워 버린다.
지난 번 종묘를 방문했을 때 자원봉사자의 해설을 들으면서 제사의 기본적인 절차와 의미를 알게 되서 큰 도움이 됐다.
문제는 제사가 고래로부터 양반이었다는 일종의 신분 증명이다 보니, 제대로 된 격식을 차리자면 부담이 끝도 없다는 데 있다.
4대조까지 기제사를 지내야 하니 기본적으로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 각각 여덟 차례의 제사가 있고 설, 추석 등의 명절에는 차례를 지내고 한식과 중추절 등에 시제를 지내며, 종가의 경우 사당에 머무는 유명 조상들의 불천위제까지 있으니 한 달에 두 차례 이상 지내는 경우도 생긴다.
제사는 1년 열 두달 치루는 월례 행사인 셈이다.
그러니 요즘 같이 바쁜 시대에 또 전통적인 집락촌 개념이 파괴되고 친척간의 유대 관계가 약해진 시대에 이 많은 조상들의 제사를 어떻게 매달 챙기겠는가?
더군다나 이런 제사는 여자쪽 친척은 아예 배제되고 있으니 오히려 처가와 더 가까운 요즘 추세와는 맞지 않다.
그래도 제사라는 명분 때문에 1년에 몇 차례는 장남집에 모이곤 하니 아직까지는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으나 과연 얼마나 이게 유지될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제사를 지내면 제수 장만도 장난이 아니고 각 손님들에게 음복례를 하고 음식을 싸서 보내야 하니 여자들의 노동이 만만치 않다.
하회마을 류씨 문중의 제사 장면이 실렸는데 한 눈에 봐도 음식 만드는 종부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말 유명한 선조들의 시제 같은 건 전통문화 보호 차원에서 국가가 지원해 줘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예전에는 위토등이 있어서 제사 비용을 댔으나 요즘에는 이런 위토 자체가 법적으로 금지되고 있고 관심도 너무 줄어 한 가문에서 시제를 계속 이어가기는 참 힘들 것 같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운 향수 때문일까?
예전에는 그렇게도 싫었던 가부장제 문화, 제사, 남아선호사상, 유교 등이 이제는 그 힘을 잃어서인지 적대적으로 보이기 보다는 그냥 이해와 애정을 필요로 하는 우리 문화로 보인다.
우리 문화를 조명한는 빛깔있는 책들을 더 많이 읽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