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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교과서 한국을 말하다
이길상 지음 / 푸른숲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서점에서 발견한 후 나름 기대를 많이 했던 책인데 솔직히 실망스럽다.
학문적인 접근보다는 수필류의 필력을 보인다.
저자는 교육학 교수인 것 같은데 역시 전공이 아니다 보니 두리뭉실 하게 넘어가는 수준에 그친다.
대한민국을 제대로 알리자는 애국성 발언만 눈에 띈다.
그리고 교수란 사람이 어떻게 네루다를 모를 수가 있는지 이 부분도 솔직히 충격이었다.
얼마나 유명한 시인이고 또 영화로도 나오고 소설 주인공으로도 등장하는데...
하긴 뭐 나도 그 사람 시를 잘 아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시사성만으로도 충분히 유명한 사람인데 말이다.
독도나 동해 표기 문제 등은 미국 사람들이 멕시코만에 대해 별다른 감흥을 보이지 않듯 우리도 태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독도는 영토가 걸린 문제이니 뭐라고 말을 못하는데 동해는 저자 말마따나 각국에 동해라는 명칭이 넘쳐나는 실정이고 독도처럼 영토 주권 이런 문제도 아닌데 이렇게 피를 토하며 전세계에 동해로 바꿔 달라 해야 하는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미국과 멕시코는 워낙 국력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멕시코만이라 부르면 어떠냐, 어차피 우리 주권이 미치는 곳인데, 이렇게 넘어갈 수 있겠으나 극일에 대해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으로서는 일본해라고 하면 치를 떠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오히려 그런 것보다는 잘못 알려진 우리 역사에 대해 좀 더 홍보를 했으면 좋겠다.
외국에서는 한반도에 국가가 세워진 시기를 4세기 정도로 잡고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고구려가 한사군을 멸망시킨 이후부터를 비로소 독립 왕국의 시작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니 고조선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2천년 역사가 아니라 겨우 천 년 왕국 정도로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임나일본부설도 상당히 신뢰성 있게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우리는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설사 있었다 하더라도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기 보다는, 무역 중계소 등의 거점 도시 정도로 이해하는데 일본의 입김이 세기 때문인가? 미국 등의 역사 교과서에는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소개된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알면 반미감정 완전히 악화될 얘기다.
고대의 조상이 훌륭했다고 해서 현재 우리가 훌륭한 것인가?
고대 조상들이 속국민이었다고 부끄러워 해야 하는가?
있는 그대로의 역사, 현재 관점이 아닌 당시 관점으로서의 역사, 다만 진실을 알고 싶을 따름이다.
고대사에 대해 좀 더 유연한 시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자랑스러운" 조상들의 역사를 너무 추구하다 보면 결국은 패권주의로 흐르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공동 역사 교과서 발행 노력은 무척 바람직하게 보이며, 일본이 독일처럼 2차 대전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제발 그 천황 무슨 주의 좀 버리고 이웃 국가들과 평화로운 외교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다.
한국 사람들의 지나친 반일 감정도 늘 불편하지만 (그러면서도 일본 문화 무지하게 따라하고 동경하고 좋아하고 아닌 척 하고) 일본의 말도 안 되는 민족주의나 패권주의, 역사왜곡, 침략 전쟁의 정당화, 천황주의 등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경제대국이면 대국답게 좀 통크게 생각하면 안 될까?
잘 살면서 뭘 그렇게 남 못 눌러서 안달인지...
중국인들의 중화주의도 역시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위태롭게 한다.
중국 문명은, 한자 문화권에 사는 나로서는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고 같은 문화권의 일원으로서 늘 자랑스러워 하지 않을 수 없다.
수천년간 전제 왕권을 이어오면서 단절없는 역사를 만들어 온 중국 문화가 정말로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것이 현재 중국인들의 근거없는 자존심과 연결되는 건 참 위험하게 느껴진다.
특히 혐한론이 꽤나 퍼진 요즘, 과거에는 속국이었던 주제에 좀 산다고 재는 거냐, 이런 식의 발상 정말 수준 이하다.
아, 정말 역사는 당대인의 시각에 좌우될 수 밖에 없단 말인가?
왜 우리 모두가 자랑스러워 해야 할 공통의 문명 자산들이 현대인들의 패권주의에 이용되야 하는가?
대만이나 중국, 홍콩 교과서 등에 실린 한국의 역사나 현대사 등을 읽을 때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소중화를 자처한 우리 조상들을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러니 우리 역시 과거의 역사를 부정하고 중국과 대등한 나라였다, 형식상의 조공에 불과했다, 국제 무역기구에 가입한 거다 (정말 코메디 같다) 이런 소리를 할 수 밖에.
과거 신라나 고려, 조선 등이 중화 문명권에 있었던 것은 내정 간섭을 받는 중국의 속국이었냐 아니냐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설사 속국이었다 해도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일본 식민 치하처럼 최근의 현대사도 아닌 그저 과거의 역사일 뿐인데. 그리고 외국에서는 병자호란 이후를 청의 속국으로 보고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문명권 안에서 발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마치 우리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에 동참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오히려 중국 대륙 끝에 붙어 있으면서도 그 거대한 문명권에 흡수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독립을 지켜내고 우리 고유의 문화를 일궈온 조상들이 정말 자랑스럽다.
사대주의를 왜 부끄러워 해야 하는가?
제발 현재의 그 패권주의 좀 버렸으면 좋겠다.
각국 교과서에 나온 한국에 대한 기술이 상당히 부정확한 걸 보면서 바로 잡으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우리 역시 각 나라에 대한 기술의 정확도에 신경을 써야 함을 느낀다.
아마 모르긴 해도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들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국가에 대해 대충대충 넘어갔을 것이다.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찬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를 보면 라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등에 대해 잘못된 기술들이 많이 나온다.
그나마 세계사가 중요 과목이 아니다 보니 아예 배우지도 않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을 거다.
세계화가 영어만 배운다고 될 일이 아니라 세계 시민으로서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세계의 정세에 관심을 갖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그런 배경 지식과 가치관을 학교에서 좀 가르쳤으면 좋겠다.
더불어 한국의 문화를 알릴 수 있는 문화 체험이나 교류도 많이 시행되길 바란다.
아무래도 한류가 많은 공험을 할 것 같다.
정부가 나서서 하는 공식적인 행사도 좋지만 자발적인 문화 교류야 말로 자연스럽게 한국을 알리는 통로가 될 것이다.
마치 내가 체코를 드보르작과 카프카의 나라로 기억하고, 파블로 네루다를 통해 칠레를 알게 되며, 쇼팽을 들을 때 폴란드를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