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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영원으로 - 중 - Mr. Know 세계문학 58 ㅣ Mr. Know 세계문학 58
제임스 존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읽은 소설이 있던가?
워낙 남독과 속독을 하는 스타일이라 특히 소설의 경우 마치 1.5배속의 영화를 보듯 대충 줄거리만 이해하고 넘어가곤 하는데 이번에는 정말로 한 문장 한 문장을 음미하면서 꼼꼼히 읽고 있다.
소설이 주는 맛, 작가가 그려내는 캐릭터와 풍경의 묘사, 나는 그 깊은 맛에 완전히 빠져 버렸다.
대충 읽어 치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시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현대 소설은 확실히 고전과 다른 뭔가가 있다.
좀 더 내면을 파고들고 각 인물들이 느끼는 고통과 부조리,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반응 등등 인간에 대해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동안 그 시대를 지배하는 정신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을 때는 도저히 베르테르나 로테에게 공감할 수가 없었는데 (그래서 대체 왜 그가 죽음에 이르렀는지, 또 이 소설은 왜 당대를 풍미했는지 이해불가했으나) <지상에서 영원으로>를 읽으면서는 완전히 주인공들에게 몰입하고 있다.
나는 프루가 되고 마지오가 되고 워든이 된다.
나는 그들의 고뇌와 부조리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괴로워 하고 갈등한다.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갈등과 상황에 대해 120% 이해하고 있다.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으면서 참 묘사력 뛰어나고 재밌는 훌륭한 소설가라고 생각했는데 제임스 존스에 비하면 그저 대중 작가에 불과한 것 같다.
열린책들에서 표지도 예쁘고 들고 다니기도 편하게 잘 만들었다.
번역도 비교적 매끄럽다.
속어가 너무나 진부하고 시시하게 번역됐으나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밑바닥 계층의 이야기일수록 자국어로 된 소설을 읽어야 하는데, 아쉬운 점이다.
어쩌면 프루는 작가가 꿈꾸는 이상적인 인물이 아닐까?
취사병으로 들어와 부사관들의 기합으로부터 벗어나라는 스타크의 현실적인 조언에 대해, 프루가 거절하면서 나눈 대화들이 정말로 가슴을 친다.
두 세 장에 달하는 대화를 죄다 옮겨 적었다.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인간답게 살 권리, 부유하고 호화롭게 살겠다는 게 아니라 원하는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권리,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그 권리를 프루는 주장한다.
프루라는 인물은 대체 어디서 그 엄청난 자신감과 당당함을 얻었을까?
어찌 보면 대단한 꼴통 같기도 한데 안젤로 마지오 역시 체격이나 싸움 실력은 프루에 뒤지지만 깡 하나만은 만만치 않은 인물이고 그래서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그리고 둘은 결국 세상의 부적응자가 되서 젊은 나이에 죽음으로 세상과 이별한다.
권투로 부사관이 된 블룸은 유대인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평생 짐으로 생각하고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그 노력이 오히려 자신을 더욱더 비열한 인간으로 만든다.
그는 진급하기 위해 권투를 하므로 링 위에 올라가면 두려워 한다.
타고난 체격 조건 때문에 챔피언이 되지만 그는 권투를 즐기지 않고 그에게 권투란 그저 진급의 수단일 뿐이다.
반면 프루는 권투 경기가 주는 스릴과 긴장감을 즐긴다.
프루는 또 나팔을 사랑한다.
보병이라는 직업도 사랑한다.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즐기는 일을 위해 살고, 그것이 부당하게 거부됐을 때 과감하게 그것을 버림으로써 자존심을 지킨다.
대체 나는 왜 프루와 같은 깡, 자부심, 자존심이 없는 건가?
마지오와 프루 모두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만큼 제일 좋은 예는 워든이 될 것 같다.
인사계 상사로 근무하면서 홈스 대위의 부대를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남자.
체격도 크고 무엇 하나 두려울 게 없는 남자.
프루처럼 자존심을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완전 꼴통도 아니면서 진정으로 자기만의 삶을 살아내는 현명한 자!
워든과 카렌의 사랑 얘기는 하권에 나와 아직 안 읽어 봤다.
영화에서는 워든과 카렌의 애정 전선에만 초점을 맞춰 워든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제대로 그려지지가 않아 아쉽다.
프루 역시 그저 자기 손에 실명된 전우 때문에 권투는 죽어도 다시 안 하겠다는 양심적인 인물 이상으로는 그려지지 않았다.
짧은 시간에 화면으로 많은 것을 보여줘야 하는 영화의 한계가 아닐 수 없다.
중권에서 마지오가 먼저 감옥에 가고 프루가 그 뒤를 따라가는 것으로 끝났다.
영화에서는 마지오만 영창 가는 걸로 나온다.
한 가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호모에 관한 부분이다.
호모는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마땅한 존재로 나오는데 5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에 가능한 얘기가 아닐까 싶다.
동성애자들이 사회로부터 인정받기까지 얼마나 험한 시간을 견뎌 왔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호모를 벗겨먹는다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성적 취향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이라 굉장히 불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