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스터디 - 미국대학 교양교육 핵심과정과 한국에서의 인문학 공부안내
마크 C. 헨리 지음, 강유원 외 편역 / 라티오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한 권의 책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겨우 150여 페이지에 지나지 않는 이 얇은 분량의 책조차 겨우 절반이나, 혹은 1/3이나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내 감상문이 진정한 리뷰가 아닌, 인상스케치에 지나지 않는 것도, 결국은 나의 조급함, 책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 때문일 것이고 필연적으로 나는 어설픈 딜레탕트에 지나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얇은 책이지만 비교적 만족스럽게 읽었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 줬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여기 언급된 참고도서들 중 몇 권은 읽은 책들이라 무척 반가웠다.
<신구약 중간사> <중세의 기술과 사회 변화> <성경 왜곡의 역사>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 등이 읽은 책이다.
다시 읽고 싶은 책 목록에 몇 권은 끼워 넣었다.
그래도 언급할 가치가 있는 책을 읽고 있다는 위안을 받았다.
원전은 사실 거의 읽은 게 없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기본적으로 내 독서는, 관심사에 대해 개론서 수준으로 읽기 편하게 쓰여진 책 위주인 것 같다.
좀 더 진지하고 원전에 가까운, 본격적인 책은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편역자들의 말대로 단지 읽기만 하면 제대로 인문학을 공부한다고 말할 수 없고, 노트에 정리하고 더 나아가 내 생각을 밝힌 한 편의 글을 (감상문이 아닌 소논문 수준으로) 쓸 때 비로소 제대로 공부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데 나는 아직도 그저 인문학에 좀 관심이 있는 얼치기 독자가 아닌가 싶어 한숨이 나온다.
<지적 즐거움> 에서도 저자가 강조한 바지만, 여러 분야를 맛보기만 하려다 보면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는 그저 어설픈 아마추어 혹은 딜레탕트에 불과하다고 했다.
진정한 교양인이 아닌 "어설픈" 교양인, 그저 지적 허영심에 찌들어 교양인 흉내만 내는 얼치기!
아, 정말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은데...
그러나 본격적으로 인문학을 공부하려고 하면 그 때부터는 노력과 집중을 요하기 때문에 흥미가 반감되고 특히 어떤 성과물을 내려고 하면 부담이 되서 대체 내가 전공도 아니고 직업도 아닌 이런 일을 왜 하나 싶은 회의감에 사로잡힌다.
내 한계는, 그저 좋아서, 재미로, 취미삼아 관심분야 서적들을 들춰 보는 딱 거기까지인 것 같다.
정말 직업적으로 인문학 전공 안 하길 다행이다.
나는 진정으로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하여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얼치기 흉내쟁이 교양인에 불과할지라도 나는 책 읽는 게 너무 좋기 때문에 내 수준에 맞춰 독서 생활은 계속 하고자 한다.
좋은 직장에 다니는 친구, 부잣집에 시집간 친구, 뚜껑 열린 차를 타고 다니는 동료 등을 보면 배가 아프고 자괴감에 빠지고 급 우울해지다가도 책을 읽으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고요해지며 심지어 돈이나 사치스러움, 사회적 인정, 지위 이런 게 없다 할지라도 남들이 인정하든 말든 나는 한없이 행복하고 부자가 된 것 같은 충만감을 느끼게 된다.
책이 주는 완벽한 행복, 잠깐이지만 완전히 충족된 일체감, 포만감 같은 그런 느낌이 너무 좋다.
왠지 인생의 본질을 찾은 것 같은 그런 완벽감은, 비록 항구적이지 않고 너무나 잠깐이긴 하지만 인생을 버텨 나가는데 가장 큰 힘 같다.
마치 종교인이 신에게 의지하는 것처럼 나는 좀 다른 범주이긴 하지만 책을 읽을 때 세상에서 가장 큰 위안을 얻는다. 

이 책은 인문학을 크게 네 범주로 구분했다.
흔히 얘기하는 문.사.철 에다가 신학을 더했다.
문학에는 예술이 들어가고 철학에는 법학이나 국가론 같은 분야도 포함된다.
신학의 경우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는 중세 격언이 정말 실감나게 설명됐다.
<성경 왜곡의 역사> 등을 통해 성경은 절대적인 경전이 아님을 이해했으나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신학은 근본주의자들이 일획일점도 틀리지 않은 완벽한 경전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인간과 천지만물의 본성을 이해하는, 어찌 보면 우주의 본질을, 그 시작과 끝을 논하는 지극히 이성적이고 철학적이며 사유적인 위대한 사고체계에 대해 논하고 있다.
역사비평가, 혹은 해체주의자들에 의해 성경은 그 권위가 떨어지다 못해 심지어 다빈치 코드 등에서 보여준 코메디 수준까지 내려왔지만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와이프라는!) 인간의 기원과 한계, 죽음, 우주의 생성원리, 본질 등을 설명하는 이 위대한 사유의 체계를 더욱 진지하게 본질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성경이 서구 문화의 근본임을 인식하고 있고 내가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열심히 읽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온 과학에 대한 상대주의 관점에는 분명하게 반대한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이 이룩한 업적과 승리를 부정할 만큼 멍청한 사람은 없기 때문에 지극히 온건한 어투로 과학의 한계를 규명하고 있으나, 과학은 명백히 인문학과는 다른 분야라고 생각한다.
다윈의 진화론을 역사학적 관점에서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을까?
과학이 말하는 진리와 기타 다른 인문학이 말하는 진리는 전혀 다르고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오류가 생긴다고 본다.
과학사와 과학은 명백히 다르다.
과학과 비과학의 차이를 단순히 패러다임의 선택 유무, 해석의 차이 정도로 본다면 과학만능주의니, 모든 걸 과학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느니 하는 우스꽝스러운 주장이 나온다.
과학은 사물의 본질을 밝혀가는 진정한 의미의 "진리" 혹은 "사실" 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인문학에서 말하는 도덕, 자유나 평등 등으 가치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그러므로 성경은 과학이라는 말도 코메디에 불과하고 오히려 성경은 철학이다, 등으로 말한다면 인간의 가치체계, 사유방식, 인식의 과정 등을 보여주는 놀라운 역작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 

참고도서들 중 좀 쉬운 것부터 읽어 볼 생각이다.
대충 관심있는 몇 권만 적었는데도 벌써 70 권이 넘는다.
항상 관심과 의욕은 앞서고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누구말처럼 한 500년 정도 살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삶이 고달프고 힘들어 죽어 버릴까 싶다가도, 못 읽은 책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눈을 감을 수 없어 힘이 불끈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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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기술
모티머 J.애들러 외 지음, 민병덕 옮김 / 범우사 / 1993년 3월
평점 :
품절


지금까지 내가 읽은 독서법 관련 책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정말 탁월한 책이다.
신촌에 갔다가 홍익문고가 보이길래 들어가서 고른 책이다.
신촌 근방에는 유일한 서점이라고 하는데 무척 작아서 대형서점만 다니던 나에게는 좀 놀라웠다.
그런데 사람이 퍽 많았고 나름 책 배열도 알차다는 생각이 든다.
1990년대에 출간된 책이라 값도 7천 얼마였던 것 같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작가의 이름은 종종 들어왔지만 뻔한 얘기일 것 같아 여지까지 미뤄왔던 차에 우연히 집어 들고 무척이나 만족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책에 소개된 대로 내가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서를 열심히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는 말이 딱 맞은 셈이다.
모든 책을 다 분석적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특히 소설처럼 줄거리가 있는 책은 단어나 문장의 의미를 꼼꼼히 분석하기 보다는, 흐름을 놓치지 않고 한 번에 쭉 통독하는 편이 몰입하기에 좋다.
다른 책에서 본 스킬인데, 첫 50페이지를 열심히 읽으면 전체 사건의 개요를 파악하게 되서 소설에 쉽게 빠져 들 수 있다고 한다.
나 역시 이 기술에 동의한다.
<오만과 편견> <폭풍의 언덕> 을 읽을 때 처음에 너무 재미가 없어서 읽다 말다 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노트에 등장인물이나 관계도를 그리면서 읽었더니 곧 집중하게 되고 쓰지 않아도 눈으로 문장을 따라가면서 재밌게 읽울 수 있었다. 

분석적 독서는 나처럼 인문사회적 책을 읽는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특히 독서의 가장 고차원적 기술인 신토피칼 독서법에 적당하다.
내 경우는, 어떤 책을 읽고 나서 그 주제에 관심이 생기면 비슷한 주제로 된 다른 책들을 섭렵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라고 할까?
이를테면 고구려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그러면 고구려의 역사에 대해 쓴 책을 관점이 다른 저자별로 읽어 본다든가 아니면 역사 대신 문화적인 면에서 쓴 책을 읽는다거나, 방향을 좀 틀어서 박물관에 가서 고구려 관련 유물을 살펴 본다든가 이런 식으로 관심의 폭을 넓혀 가는 것이다.
더 좋은 방법은 책에 소개된 대로 하나의 주제로 여러 책을 읽은 후 관점을 저자별로 정리하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책도 쓸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이 단계까지는 못 가겠다.
상당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하지 않으면 자칫 지루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흥미가 떨어지면 그 때부터 독서는 놀이나 취미가 아닌 노동이 되버린다.
취미로서의 독서, 놀이로서의 독서!
이것이야 말로 내가 추구하는 독서의 본질이다. 

독서를 할 때 제일 아쉬운 점은 내가 책을 사지 않고 빌린다는 데 있다.
솔직히 책을 사도 그 책을 두 번 읽을 때는 거의 없다.
항상 관심의 폭은 넓고 시간은 부족하기 때문에 신간들에 눈이 돌아가 재독을 하기 어렵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 빌려 보는데 내 책이라면 좀 더 효율적이고 집중적인 독서를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줄도 치고 메모도 하고 여백에 주제 같은 것도 쓰면서 말이다.
책값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돈도 돈이지만 공간 문제도 만만치 않은 골칫거리다.
벌써 나는 큰 책장 두 개를 가득 채웠기 때문에 또 한 번 산 책은 마치 자식 같아서 도저히 버릴 수가 없기 때문에 책을 살 때마다 공간 문제로 고민을 하게 된다.
전자책이 활성화 되면 좀 나아질까 싶으면서도 정작 책이라는 물질 자체가 주는 기쁨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아마도 종이책은 영원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된 독서의 기술을 습득한다면 공부할 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좋은 책은 재독, 삼독 할수록 새롭게 발견되는 맛이 있다.
나도 남독 대신 한 권이라도 꼼꼼히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할텐데 성격이 너무 급하고 욕심이 많다 보니 빨리빨리 얕게 읽게 된다.
하여튼 내 독서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검증을 하게 되서 무척 기쁘고 이 책에 나온 기술들을 현실에서 더 많이 적용시켜 보고 싶다.
논문을 쓸 때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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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영원으로 - 상 - Mr. Know 세계문학 57 Mr. Know 세계문학 57
제임스 존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영화로 먼저 접한 책.
어렸을 때 주말의 명화로 본 후, 얼마 전 DVD로 다시 봤고, 감독이 뭘 말하고 싶었는지 잘 몰라서 책으로 읽기로 했다.
보통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데 이 책은 특별히 표지가 예뻐서 구입했다.
친구가 사당 반디 앤 루니스에서 사 줬던 기억이 난다.
열린책들의 <미스터 Know> 시리즈는 일단 가방에 넣기 편하고 표지가 화사해서 읽고 싶은 충동이 새록새록 생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이 시리즈로 읽었다. 
분량은 무려 세 권!
각 페이지가 500 쪽 이상이니 상당히 양이 많은 편이다.
그렇지만 묘사력은 정말 탁월해서, 역시 현대 소설은 고전과 다르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된다.
미국 사람들이 읽는다면 가슴 절절하게 감동하면서 읽을 것 같다. 
그렇지만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특히 속어의 어설픈 번역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너무나 재밌게 또 감탄하면서 읽고 있다.
보통 소설은 줄거리나 사건의 전개를 따라 대강 빠른 속도로 읽곤 하는데 이 책은 문장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읽고 있다.
이문열의 소설을 읽을 때처럼 문장을 음미하게 된다.
폴 오스터의 문체와는 또다른,  무미건조하면서도 정곡을 콕콕 찌르는 기막힌 묘사력! 
역시 영화는 소설의 적수가 못 되는 것 같다.
영화에서의 분위기와 전혀 다르다.
그렇지만 영화를 봐서 책 속의 인물들을 상상할 때 훨씬 생생한 느낌이었다.
특히 소설의 거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워든이 영화 속 배우와 이미지가 거의 일치한다.
인상착의도 비슷한 느낌이 든다.
소설에서도 그렇고 영화에서도 나는 주인공 프리윗 보다 워든이 훨씬 더 매력적이고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소설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프리윗의 삶이 애잔하고 허망하게 느껴진다.
워든은 대체 왜 장교 진급을 거부하는지, 카렌과의 관계 발전은 어떻게 이뤄질지 궁금한 게 무척 많다.
아, 정말 탁월한 소설가이고 감탄할 만한 문장력을 가졌다.
지하철에서 조금씩 읽는 바람에 연속성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오랜만에 소설다운 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로 거론되는 워든과 카렌의 파도 속 키스 장면은, 소설에서는 어처구니 없게도 카렌이 추워 하는 바람에 엉망이 된 첫 데이트로 묘사된다.
웃음이 나왔다. 

나이가 좀 들어서 읽은 탓인지 성과 여자, 섹스 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책에 나온 말인데 식욕과도 같은 본능 때문에 죄를 받아야 한다는 건 부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유교 문화권에서 살아서인지 내가 여자여서인지 혹은 기독교 영향 탓인지 섹스는 왠지 불결하고 더럽고 어둡다는 생각을 했었다.
키스까지는 아름다운데 손을 잡고 모텔로 들어가 옷을 홀라당 벗고 신음하는 것은 아무리 미화를 해도 그저 포르노, 배설 등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성욕이야 말로 인간에게 너무나 기본적이고 중요한 욕구이기 때문에 과부의 재가를 금한 유교 논리라든가 섹스를 금한 천주교의 사제나 수녀 제도 등은 어쩐지 부자연스럽고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군인과 여자, 혹은 군인과 섹스, 너무나도 밀접하고 잘 어울리는 단어의 조합이다.
아마도 창녀촌은 인류 역사에서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마치 음식점처럼 말이다.
아무리 섹스를 좋아하는 여자도, 처음부터 무조건 들이대지는 않는다는 워든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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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9-03-15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조만간 읽으려고 생각중이에요. 꼭 읽어봐야겠어요. 훌륭한 리뷰 감사~

노이에자이트 2009-03-15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윤기 번역본으로 읽었는데 하도 오래되어 가물가물하네요.데보라 카와 버트 랭카스터의 키스 장면이 정말 멋있는 영화였죠.마지막에 파도에 꽃 뿌리는 장면도...
 
100편의 명화로 읽는 성인
자크 뒤켄.프랑수아 르브레트 지음, 노은정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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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을 주제로 했다는 점에서 호기심이 일어 집어든 책이다.
한 면을 도판으로 배치하고 다른 면은 한 페이지에 국한해 간략하게 관련 성인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주제는 흥미롭지만 그림에 대한 이해가 너무 피상적이고 대충 짜집기 했다는 느낌이 들어 만족스럽지 못한 독서였지만 가톨릭에서 숭배받는 다양한 성인들에 대해 알게 된 점은 소득이다.
프랑스 작가가 쓴 만큼 프랑스 역사 속에서 전설화 된 성인들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사자와 함께 등장하는 히에로니무스나, 화살을 맞고 죽어가는 성 세바스티아노 등은 뒤러나 만테냐 등의 명화로써 널리 알려져 있지만 책에서는 가능하면 덜 알려지고 덜 대중적인 성인들을 대상으로 그림을 소개한다.
성당에 열심히 나갈 때만 해도 순교자들이 대단하게 느껴지고 그들의 믿음에 감동하곤 했는데 처참한 고문 장면과 함께 그려진 그림들을 보고 있으려니, 인간의 집요함과 가학성, 고집불통, 극단성 등에 대한 묘한 반발심이 생긴다.
내세나 영혼 등을 믿지 않는 지금으로서는, 과연 신이라는 무형의 존재를 위해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죽어갈 필요가 있었을까 의문스럽다.
신과의 교감을 통해 황홀감을 느꼈다는 성녀 빙엔 힐데가르트 등은 혹시 상상 속의 섹스를 한 건 아닌지, 하는 불경한 생각마저 든다.
하여튼 그들의 믿음에 이제는 더 이상 동의할 수 없고 주류의 것과 다른 것을 믿는다는 이유로 잔혹하게 죽여도 좋다는 허락을 해 준 과거 사회도 너무 끔찍하다.
아무리 다문화주의를 존중한다 해도 여전히 종교의 자유가 없는 이슬람 사회를 곱게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슷한 그림들이 반복되나 보니, 유명한 그림은 다 거기서 거기구나 느낀 적도 있었지만, 내 짧은 소견이었고 세상에는 정말 다양하고 많은 그림들이 있는 것 같다. 
이런 그림들이 소장되어 있는 곳을 찾아 여행을 해도 참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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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nger and Me

어쩜 좋아요.
얼마 전에 안락사한 우리 똘이 생각이 미친 듯이 나네요.
저도 요즘 똘이가 뭔가 문제가 있는 일종의 환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똘이는 요크셔테리어인데 남들이 왠지 잡종 같다 했던 귀도 안 서고 털도 까만 그런 강아지였는데요, 언제나 감정이 불안정한 상태였어요.
전 정말 <말리와 나> 읽으면서 세상에 똘이보다 더 심한 개도 있구나 하고 그나마 다행이다 안심했을 정도라니까요.
똘이는 대소변을 꼭 자기 화장실 바로 아래에다 쌌어요.
이상하게 화장실 위로 못 올라가고 올려 주면 으르렁 거리다가 금방 내려와 버렸어요.
오줌을 아무대나 지리는 것도 아니고 꼭 화장실 바로 옆에다가만 쌌어요.
배변통이 문제가 있어서 그런가 바꾼 것만 해도 수십개!
똘이는 항상 화가 난 것처럼 짖어댔고 심지어 우리 엄마까지 피가 날 정도로 물어서 밤에 응급실에 갔을 정도였답니다.
그 조그마한 요크셔가 말이죠.
아빠를 미친 듯이 좋아하고 (아빠가 밥 주고 화장실 치워 주는 사람이었음) 아빠와 친한 사람에게는 굉장히 적대적이었는데 (그래서 엄마를 아주 싫어했음. 아빠가 엄마랑 안방에 자러 들어가면 그 문 앞에서 지치지도 않고 계속 칭얼대서 급기야는 아빠가 똘이를 데리고 따로 자게 됐음) 문제는 아빠에게도 절대 복종하지 않고 공격적일 때가 많았어요.
가끔 우릴 똘이를 보면서 공격성 인격장애, 혹은 ADHD 뭐 이런 병명이 떠올랐답니다.
하여튼 6년을 키웠는데 언제나 거의 모든 사람에게 공격적이고 심지어 식구들도 물 정도로 꽤 거친 편이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했던 우리 똘이는, 아빠가 정말 헌신적으로 키웠음에도 불구하고 행동은 전혀 교정되지 않고 날로 심해졌는데 엄마가 위암에 걸려 수술을 받게 되면서 아빠가 엄마 때문에 똘이를 안락사 시켰어요.
엄마가 아프니까 똘이가 더욱더! 공격적이 됐거든요.
아, 정말 눈물이 날 것 같네요.
아빠가 너무 괴로워 해서 정말로 절에 가서 똘이 명복을 빌었대요.
지금 생각하면 똘이도 어딘가 몸과 마음이 아픈 환자였을 수 있었는데 돌봐 줘야 할 환자로 생각하지 않고 우리 똘이는 이상한 개야, 이렇게 생각했던 게 너무 미안해요.
지금도 똘이 생각을 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고, 아빠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아빠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게 이해도 되지만...
하여튼 마음이 너무 안 좋아요.
이런 생각도 다 인간 위주의 사고방식이겠지만, 정말 우리 똘이는 천국에 가서 행복하게  뛰어 놀고 있을까요?
거세 수술 시킨 것도 너무 미안하고 (남자애였음) 친구 하나 없이 집에 혼자 놔 둔 것도 정말 미안하고 아픈 거 이해 못해 준 것도 정말 정말 미안해요.
똘아, 너 저 세상에서 여자 친구랑 신나게 뛰어 놀고 있니?
관절염 있어서 수술 두 번이나 하고, 다리 부러져서 또 수술하고 그래서 높은 데 잘 못 뛰었잖아.
지금은 잘 뛰고 있지?
(개도 관절염 약 먹는다는 거 처음 알았음)
우리가 잘 돌봐 준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외로웠을 우리 똘이, 똘아 너 때문에 너무너무 행복했고 너무 보고싶고 정말로 다른 생이 있다면 그 때는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같은 종으로 태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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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4 0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9-02-24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말리와나,를 보고 전 개와의 그렇게까지의 친밀감을 나눈 경험이 없었는데도
안락사하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어요. 똘이 이야기를 읽어보니 마음에 병이 있었던 아이
맞는 것 같네요. 참 많이 괴로워셨겠다 싶어요. 눈물 나는 페이퍼입니다...

marine 2009-02-24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저 새벽에 이 글 쓰면서 엄청 울었어요. 똘이 안락사 시켰을 때는 덤덤했는데 (제가 서울로 이사오는 바람에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봤었거든요) 어제는 정말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정말 많이 생각했답니다.
ㅊ님, 공감해 주셔서 고마워요. 저도 말리와 나,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영화도 꼭 보려구요.

라로 2009-02-28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글에 먼댓글을 다셔서 똘이 이야기 쓰신거 이제야 알았어요~.
먼댓글을 쓰시는 분들이 드물어서요~.^^;;;
똘이의 이야길 읽으니 참 뭐라 위로를 드려야 할지....
추천으로 대신하렵니다. 가슴이 먹먹하네요~.

개인주의 2010-02-01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같은 건물의 무법자녀석들을 막 욕 하다가도 문득.
지들도 이런 좁은 데 갇혀서 지내고 싶진 않을텐데
예뻐해주는 듯 하다가 아침이면 나가버리고 밤 늦게 오는
주인 땜에 외로워서 짖나..
그런 생각을 가끔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