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회화의 이해
안휘준 지음 / 시공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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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너무 바빠서 그런지 아님 슬슬 지치지 시작했는지 (일종의 매너리즘이랄까?) 한 권의 책을 진득하게 못 읽는다.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읽을 시간은 늘 부족하고 그나마 남는 시간에 해야 할 일들이 워낙 많아 독서라는 걸 제대로 못하고 있다.
독서가  TV와 다른 건 TV는 컨디션이 좀 나빠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데 비해 책읽기는 고도의 정신력을 요하기 때문에 기분이 우울하거나 몸이 피곤하면 절대로 제대로 된 독서를 할 수 없다.
특히 인문학이나 자연과학 쪽 책은 더욱 그렇다.
소설과는 달리 일정한 줄거리나 캐릭터 같은 게 없기 때문에 한 번에 쭉 읽으려면 꽤나 집중해야 한다.
하여튼 이번에도 2/3 정도 이 책을 읽었다.
좋은 책이고 수준도 훌륭하다.
역시 전공자, 학자는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전통 그림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우리 회화의 흐름에 대해 체계적인 지식을 갖게 해 주는 책이다.
김정희에 대해 19세기 조선 화단을 이끈 엄청난 공적과 영향력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도 지나치게 우상화 되는 요즘의 경향을 경계하고 남종화에 너무 많은 가치를 부여했다고 지적한다.
추사 김정희의 제자 중에 조희룡이라는 여항문인이 있었는데 화려한 매화 그림이 맘에 꼭 들었다.
그런데 김정희의 평은 문기가 부족하고 지나치게 현란해서 품격이 없다고 평했다.
내가 읽은 책에서는, 김정희는 사대부였고 조희룡은 중인 출신이기 때문에 신분적 한계가 작용했다는 해설이 들어 있었고 나도 공감했던 부분이다.
아마도 이 책의 저자 역시 추사의 지나친 남종화 추종을 비판한 것 같다.
쓰다 보니 김정희라는 대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설프게 지껄였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튼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절대적으로 옳거나 훌륭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품격과 수준을 갖춘 비판은 허용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산수화 그림이나 매화도, 초상화 등은 무척 마음에 들고 보면 뭔가 울컥 하는 게 있는데 솔직히 소나 말, 개 등이 등장하는 영모도는 아직까지는 그 참맛을 모르겠다.
뒤러의 정밀한 토끼나 코끼리 그림에 감탄하는 나에게, 전통 회화의 영모도는 왠지 어설퍼 보인다.
이암이 그린 강아지 그림이나 김시의 소 그림이 따뜻하고 정감이 가면서도 어쩐지 정교한 묘사를 한 르네상스 화가들에 비해 한 수 아래로 느껴진다.
아마추어 느낌이랄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말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윤두서가 말을 굉장히 잘 그렸다고 하는데도 그의 초상화나 기타 산수화에 비해서 <유하백마도>는 어설픈 느낌을 받았다.
보는 관점의 차이인가?
아마도 내가 동양화의 포인트를 잘못 짚어서일 것 같기는 한데 하여튼 아직까지는 초상화나 산수화에 비해 영모도는 관심이 덜 간다.
대신 초상화는 기운생동이라는 기치 아래, 그 사람의 정신세계까지 그린다는 전신사조의 화풍이 서양의 인물화와는 매우 다른 강렬한 느낌을 준다.
사실 우리나라의 초상화는 얼굴에 주로 신경을 쓰기 때문에 손을 대충 그린다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부분도 서양의 인물화와는 구별되는 특징일 것 같다.
김은호가 그린 고종의 초상화에 감탄하면서도 손이 너무 대충 그려져 좀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하여튼 윤두서 등의 자화상도 그렇고 조선 선비들의 초상화를 보면 정말 뭔가 그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는 강렬한 느낌을 받는다.
먹으로 그렇게 섬세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일본에 건너간 수문과 문청이라는 화가에 관한 이야기였다.
처음 안 사실이다.
일본 학계에서는 정말 이 두 사람을 조선에서 건너간 화공이라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르겠는데 저자의 설명으로는 당시 조선 화풍과 너무나 일치하기 때문에 도일한 조선 출신 화공이라고 추측했다.
한일 교류의 새로운 예가 아닐 수 없다.
역시 중국의 문화권 아래에 있다 보니 중국 화풍이나 화가들이 많이 등장했다.
관심의 폭이 넓어져 이제 중국 회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긴다.
또 우리나라 그림 역시 중국의 고사성어를 소재로 한 그림이 많다 보니 같이 알아 두면 이해의 폭이 깊어질 것 같다. 

유익한 책이었고 도판도 훌륭하고 무엇보다 전문적이지만 어렵지 않게 쓰여져 한국 회화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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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잉~ 2011-12-14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있잖아염~ 제가 원하는 것은 이게 아니고 어느 강아지그림인데... 제발여~~ ㅜㅜㅜㅜㅜㅜ
 
전쟁세계사 - 지금의 세계지도와 역사를 결정한 59가지 전쟁 이야기
김성남 지음, 진선규 그림 / 뜨인돌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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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뜨인돌이라는 출판사에서 삽화가 많이 첨부된 가벼운 소재의 말랑말랑한 역사서들을 많이 출판하는 것 같다.
역사의 대중화라는 관점에서, 혹은 청소년들에게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면서도, 필자진이 전문 학자들이 아니라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노출한다.
가끔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데, 역사에 관심이 있다거나 혹은 전공한 사람들과 본격적인 역사학자의 차이는 뭘까, 재야 사학자들과 강단 사학자의 차이는? 인터넷에 수준있는 글을 올리는 일반인들과 교수의 차이는?
명확한 답변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막연하게나마 느낀 점을 써보자면 한 주제에 대해 연구하는 이른바 학자들은, 역사철학이 있고 시대를 조망하는 눈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한 사실의 나열보다는, 그 사건이 역사 발전에 미친 영향이나 결과 등을 보다 유기적으로 분석하고 지나친 확대 해석을 자제하고 주장에 끼워 맞추지 않고 보다 합리적인 해석을 한다고 해야 할까?
적어도 자기 주장에 책임있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무리한 주장은 하질 않는다.
이덕일 같은 사람도 역사를 전공한 이른바 학자인 걸 보면 이 말이 모두다에게 해당하는 건 아니지만 하여튼 지금까지 내가 읽은 역사서들에 비춰 볼 때 아마추어와 전문 학자들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 책은 전쟁을 소재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풀어낸다.
비교적 재밌게 읽었고 유용한 내용도 많은 편이지만 우리나라 이야기가 나오면 너무 민족주의적으로 해석하는 모습을 보여 아쉽다.
광개토대왕이 정말 CEO 형 군주였을까?
과거의 인물을 현재의 관점에 맞춰 해석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하다.
그 때부터는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단지 이미지화 된 캐릭터에 불과하다.
내가 잘 모르는 동로마 제국의 위인들을 소개받아서 흥미진진했지만, 한편으로는 역시 전후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미화되고 전형화된 에피소드 중심으로만 인지하고 있지는 않는지 걱정스럽다.
이를테면 책에 소개된 광개토대왕이나 이순신 같은 인물편에서는 저자의 오버나 자니친 확대해석을 비교적 명확하게 짚어낼 수 있었지만 잘 모르는 서양사의 경우 이게 저자의 오버인지 제대로 된 평가인지 구분을 못하겠다.
그러므로 어떤 주제에 대해 자신이 정말 전문가라고 확신할 수 없다면 너무 지나치게 극단적인 언어는 자제해야 할 것 같다.
(네티즌들의 그 과격하고 격렬한 언어들을 볼 때마다 어쩜 그렇게 자기 말을 맹신할 수 있는지 신기할 뿐이다.) 

전쟁을 일반 병사의 입장에서 그린 챕터는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전쟁을 직접 수행해 내는 최하층의 병졸들에게 전쟁은 얼마나 끔찍하고 두려운 일이었을까?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동서양의 군인은 대부분 둔전병이었다.
군에서 지급한 농토에다 농사를 짓고 살다가 출동 명령이 떨어지면 군인으로 변신하여 낫 대신 창을 집어드는 식이다.
이들은 무장도 알아서 해야했고 이동 경비도 스스로 충당해야 했다.
반면 로마 군인은 직업 군인으로 월급을 받고 은퇴하면 연금도 받았으며 군대 내에서 최고의 의료진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무장도 군대에서 지급해 준다.
일종의 상비군 개념이었다고 해야 할까?
로마가 끊임없이 팽창하는 국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 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로마는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나라다.
대체 학익진이 뭔지를 한니발의 칸나에 전투를 통해 알게 된 점도 기록할 만 하다.
학익진과 칸나에 전투의 초승달 대형은 같은 원리인데 중앙에서 적군을 유인해 한 곳으로 몰면 양 옆으로 기병대가 나타나 적군을 에워싸는 것이다.
학이 날개를 펴는 것과 같다고 해서 학익진 전법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니발도 이런 방법으로 칸나에 전투에서 로마군을 몰살시킨다.
말의 등장은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었지만 처음에는 말의 몸집이 작아 사람을 태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대신 전차를 끄는 운송용으로 이용했다.
벤허의 화려한 전차 경주와는 다르게 실제로 전차를 주무기로 이용한다기 보다는, 상대의 대열을 깨는 역할을 주로 했다.
일단 전차로 돌진한 후 대열이 흩어지면 그 때 보병들이 달려들어 공격하는 것이다.
말이 개량되어 사람을 태울 만큼 튼튼해지자 이동에 제한이 많은 전차는 사라졌다.
신립이 조총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알았다.
여진족들도 조총을 사용했기 때문에 북방에서 활약한 신립은 이미 조총의 존재와 한계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점은 다른 책에서 다시 살펴 봐야 할 것 같다.
조총은 점화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조총만으로는 싸우기 어렵고 주변에 사수들이 도와 줘야 하는데 조총이 임진왜란 당시 얼만큼의 역할을 했는지는 더 살펴 볼 문제다. 

비교적 흥미롭게 읽은 책이고 삽화도 많아 지루하지 않았다.
다만 책의 수준이 아주 높은 편은 아니라 가볍게 일독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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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만들어진 신화
송호정 지음 / 산처럼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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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띄엄띄엄 읽어서 쓰기가 좀 민망하다.
지하철에서 대충 읽고 다시 보려고 했는데 한 번 본 부분을 다시 보려니 집중이 안 돼서 결국 재독은 포기했다.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저자도 이 책을 본격적인 학술서라기 보다는 가벼운 에세이 정도로 기술한 것 같아 재독이 어렵기도 했다.
저자의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한 때 이덕일이 쓴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 어쩌고 한 책을 그래도 나름 고대사에 대한 의견 개진이라고 경청하면서 읽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 정조 편지 발굴 때 보여준 그 억지스러운 태도에 질려서 이제 나는 이덕일을 역사학자로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진정한 역사학자라면 자기 주장과 다른 증거가 나왔을 때 최소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다는 태도 정도는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닐까?
전면적으로 내가 틀렸다, 라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곤혹스러워 하는 모습 정도는 보여 줘야 하는데, 오히려 그 편지 때문에 더더욱 심환지가 정조를 암살했을 거라면서, 암살은 최측근에서 일어난다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보면서 정말 한숨이 나왔다.
혜경궁 홍씨를 남편 죽인 비정한 여인네로 몰면서, 한중록을 죄다 거짓말이라고 몰아 세우고 정조 독살설을 유포시켜 엄청난 인세를 긁어 모으더니만, 이제 그 위치가 어떻게 추락할지 정말 기대된다.
이런 학자가 쓴 고조선 대륙 지배설은 도저히 신뢰할 수가 없다. 

저자는 아마도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혹은 매우 드문, 고조선 전공자인 것 같다.
비파형 동검이 발견됐다고 해서 다 고조선 영토냐,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 대한 논증은 이미 다른 사람의 책을 통해 충분히 인지했던 바이고, 고대에 넓은 영토를 지배했다고 해서 우리 민족의 우월성이 높아지는가는 정말 생각해 볼 문제다.
저자의 말대로 남만주 일대와 서북한 지역에 걸쳐 비슷한 문화권을 지닌 집단이 살고 있었고 끊임없는 유입을 통해 고조선이라는 국가로 성장해 나갔을 것이다.
신석기 시대부터 제국이 생겼다는 가정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덕일이 쓴 책에서는 왜 신석기 시대에 국가 형성이 불가능하냐고 반문하는데, 그렇다면 북한학계의 주장대로 세계 4대 문명에 덧붙여 대동강 문화도 끼워 넣어야 할 것이다.
역사 스폐설이 좋은 프로그램이라 생각하면서도 그 어설픈 논리 전개에 거부감을 가질 때가 많았는데 고조선 문제에 대해서도 저자는 분명히 억지 논증을 지적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책에서 읽은 건데, 백제의 고을명이 중국에도 있다는 이유로 백제의 영토가 산둥 반도에 이르렀을 거라는 역사스페셜의 추리를 비판했다.
이 책에서도 단지 방어 시설 몇 개가 발굴됐다고 해서 고조선의 도성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한다.
국가가 형성되기 전에도 지역민들끼리 철책 등을 세운 방어촌락이 있었다고 한다.
고대사에 대해 현실적으로 추론하면 식민주의자라느니,민족 정신이 부족하다느니 하는 비판도 이제는 그만해야 할 것 같다.
오히려 이런 국수적인 태도가 중국의 동북 공정처럼 대외 관계를 어렵게 하지 않을까?
어떤 역사학 까페에서 본 글인데 일본이나 중국 네티즌들이 한국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무조건 한국 기원설이라고 우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뭐든 오래된 거, 최초는 죄다 한국 꺼라고 한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중국의 동북 공정 비판하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도 지적한 바지만, 백제인들이 일본 건너가서 문화 전달해 준 것은 자랑하면서 왜 연나라 등에서 철기 문화 들여온 것은 인정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생겼다고 주장하는가?
오히려 이런 국수적인 태도야 말로 문화 발전을 저해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읽으면서 별 무리가 없었고 에세이 성격이 강해서 보다 아쉬운 점이 있었다.
같은 저자가 쓴 <역사 속의 고대사>를 읽어 볼 생각이다.
도서관에서 누가 훔쳐 갔는지 분실했는지 자리에 없는 걸로 나와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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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맨을 위한 아티스트 웨이
줄리아 카메론 외 지음, 원은주 옮김 / 웅진윙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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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얼마만에 읽은 자기 계발서인가! 
나는 이렇게 성공했다, 혹은 이렇게 돈 벌었다는 책은, 바로 당신이 그 책을 사 주기 때문에 저자가 돈을 벌고 성공하는 거라는 시니컬한 문장을 읽은 후부터 자기 계발서에 대한 관심이 뚝 끊겼다.
그럴싸한 말로 사람을 현혹시킨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 최고의 책이라 할 수 있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Flow> 이후, 더 이상의 자기계발서는 없다고 생각하고 그 후로는 거의 손을 안 댔었다.
그러다가 어떤 분의 블로그에서 이 책을 추천받고 집어 들게 됐다.
모닝 페이퍼라는 아이디어가 신선하게 들렸다.
마침 도서관에 있길래 호기심을 갖고 집어 들었는데 판형이나 디자인이 괜찮다.
역시 아이디어는 바로 그 핵심 단어, 모닝 페이퍼로 요약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른바 자유연상 기법을 활용했다고 할까?
정신과 치료 때 이 자유연상 기법을 이용해 맥락이나 목적, 주제 같은 거 생각하지 않고 생각나는대로 마음 내키는대로 종이에 적어가면 그 사람의 무의식에 억눌려 있던 것들이 튀어나오면서 긴장감이나 갈등이 해소된다고 배웠던 것 같다.
저자는 그런 면에서 이 모닝 페이퍼가 일정한 주제를 갖는 일기와 다르고, 또 컴퓨터 대신 반드시 손으로 노트에 적어야 한다고 했다.
그 점에 동의하는 것이, 확실히 컴퓨터로 일기를 쓰게 되면 자꾸 문장을 만들려고 하고 자유롭게 쓰기가 어려워진다.
하나의 주제로 글이 모이기 때문에 주제에서 벗어난 얘기는 스스로 걸러 버린다.
또 가능하면 좋은 얘기만 쓰려고 하기 때문에 나중에 내가 쓴 일기를 읽어 보면 진짜 내 마음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어 보인다.
뭐랄까, 좀 그럴듯 하게 보이려고 약간의 위장을 한다고 할까?
나 혼자 읽는 일기인데도 말이다.
옛날에 전여옥이 정치에 입문하기 전 나름 그녀의 에세이에 자극을 받을 때 (지금은 정말 너무 싫지만) 자기는 아침에 출근해서 일기를 쓴다는 말이 있었다.
저녁 때 일기를 쓰면 감상적으로 흐르기 쉬워서 아침에 출근해서 잠깐 전날 있었던 일과 하루를 시작할 때 마음가짐을 정리한다는 것이다.
나름 일리가 있어 보여 해 보려고 했는데 항상 바쁘고 정신없는지라 실천을 못했었다.
<아티스트 웨이>를 읽고 나서 바로 오늘 한 시간 정도 빨리 일어나 모닝 페이퍼를 써 보려고 했다.
그런데 이 놈의 노트가 준비가 안 된 것이다.
뭘 좀 해 보려고 해도 기본적인 것들부터 준비가 안 되어 있으니 할 수가 있나?
괜히 금쪽 같은 아침 시간에 빨리 일어나 방황하다가 다시 잘 수도 없어서, 대충 A4 용지에 끄적여 봤다.
어제 직장에서 스트레스 받았던 일들이 마구잡이로 튀어 나왔고 약간의 위로도 받은 느낌이었다.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은 정말 만고의 진리이고 어쩌면 지극히 이기적인 존재인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명언인데도 막상 현실에서는 실천하기 어렵다는 걸 종종 느낀다.
특히 나처럼 이른바 "희생자 정서" 를 가진 사람은 더더욱 말이다.
어떤 집단에서든 일종의 역할이라는 게 있는데 나는 주로 남을 돕고 내가 손해보는 희생자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특히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내가 남을 위해 뭔가 했을 때 얻는 뿌듯함, 혹은 사람들의 칭찬, 쟤 정말 착하다, 이런 말을 들을 때 행복감을 느끼는데 문제는 이게 지나쳐 나중에는 약간의 자기비하로 나가는 것이다.
물론 실제의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만, 남과의 관계에서는 항상 내가 손해보는 쪽을 택하고 남을 치켜 세워주면서 나 자신은 낮추는 그런 제스춰를 취한다.
하여튼 이 책에 따르면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남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한다.
간단한 예로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 화장도 안 하고 옷도 심란하게 입는 아내와 엄마가 고마우면서도 남들에게 내놓기는 부끄럽고 창피한 그런 가족들의 심리라고 할까?
<장미빛 인생>에서 최진실이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살았는데 막상 가족은 그를 부끄러워 하고 남편은 예쁜 여자를 찾아 떠나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약간의 사치를 부리라고 조언한다.
아티스트 웨이라는 제목도 이것과 같은 맥락인데, 일상의 미의식을 높힐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다.
기왕이면 하다못해 머그컵 하나도 예쁜 걸로 사고, 목욕할 때도 향비누로 하고, 커피도 좀 맛있는 걸로 먹고, 뭐 이런 자질구레한 사치들 말이다.
아니면 좀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던가, 혹은 뮤지컬을 보러 가던가 하는 문화생활 같은 것도 해당된다. 
큰 돈 들이지 않아도 삶을 조금 더 그럴듯 하게 만드는 소소한 방법들이 많이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직장에서 열정을 잃지 않는 것이리라.
우리는 모두 경제적 인간이고 돈 없이는 못 사니까.
앞서 말한 그 사치도 결국 삶의 활력을 잃지 않고 감정이 고양되야 직장에서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다는 말과 통한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노는 것, 이게 정답일 것 같다.
하여튼 책에서 말하는 대로 앞으로 12주 동안 열심히 모닝 페이퍼를 써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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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역사 2 -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읽은 신라와 신라인 이야기
이종욱 지음 / 김영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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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은 <역사충돌> 때문에 신라 하대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됐고 같은 저자의 책인 <신라의 역사>를 읽게 됐다.
화랑세기는 아직 진위 여부가 밝혀지지 않아 역사서로 받아들이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했는데 저자는 화랑세기를 신뢰한다고 했다.
<환단고기>류와는 좀 다른 대접을 받는 것 같다.
제일 인상 깊었던 부분은, 왕족들이 부인을 맞을 때 두 가지 계통이 있었는데 하나는 진골정통, 또 하나는 대원신통이라고 했다.
이른바 姻統 이라는 게 있어 딸들을 통해 전해지고 아들은 1대만 전승된다고 했다.
흔히 김유신의 아버지인 김서현과 만명부인의 결혼을 그녀의 아버지인 숙흘종이 반대한 이유가, 김서현이 몰락한 가야계였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데 화랑세기에 따르면 김서현은 진골정통 계열인 진흥왕의 딸 아양공주의 아들이고, 만명부인은 대원신통인 만호의 딸이기 때문에 서로 인통이 달라서라고 한다.
전혀 새로운 개념이라 흥미롭기도 하고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화랑세기를 바탕으로 썼다는 <신라의 역사>를 집어들었는데 화랑세기는 참조를 하는 정도이고 정통 사학자답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위주로 서술했다.
그러고 보니 상대를 기술한 1권은 몇 년 전에 읽었었다.
도서관에서 두 권 모두 빌렸다가 1권만 읽고 반납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2권에서 그린 신라 하대가, 워낙 암살 등으로 얼룩져 복잡했기 때문에 신라 왕실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는 터에 이 왕 저 왕 무더기로 등장하니까 흥미를 잃고 독서를 포기했던 것 같다.
약간의 배경지식이 있는 지금 다시 읽으니 정리도 잘 되고 흥미롭게 읽었다.
다소 복잡하긴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38대 원성왕계가 하대의 왕위 쟁탈전을 벌인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다 친척 관계라는 걸 알 수 있다.
저자는 이 점을 중요시 여겨, 신라 하대는 왕권이 약해지면서 귀족들이 왕위 쟁탈전을 벌인 게 아니라, 왕권은 여전히 강했고 대신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왕족의 범위가 넓어져 힘있는 사람이 왕위를 뺏는 내분이 자주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상대에서도 마찬가지지고 고구려의 역사를 서술할 때도 그랬지만, 저자는 일관되게 삼국시대의 왕권은 다른 가문이 감히 도전할 수 없을만큼 강력했다고 주장한다.
<고구려의 역사>에서도 충분히 읽은 바지만, 부체제 같은 연립 정권은 애초부터 없었고 신라 하대 역시 귀족들이 왕위를 다툰 게 아니라, 원성왕계가 정부 주요 조직을 독차지 하다 보니 자기들끼리 내분이 일어나 살육전이 벌어졌다고 본다.
경덕왕대에 이르러 아예 쟁탈전 자체가 없어진 까닭은 호족들이 봉기하면서 신라의 세력권이 워낙 줄어들어 왕위를 뺏고 말 가치조차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미 신라는 여러 군웅들 틈에 낀 옛 왕실에 불과하게 몰락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후삼국 시대를 중국의 전국시대에 빗대어 표현했고 신라 왕실은 마치 주 왕실처럼 종주국으로서의 명분만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실제로 왕를 칭하고 제도를 정비한 나라는 후백제와 궁예의 태봉 정도이니 (나머지는 저자도 인정한 것처럼 군도 무리나 세력있는 지방 호족들이니) 후삼국 시대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삼국 시대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없었으니 고구려와 백제는 한민족이 아니라 그저 적국일 따름이었고 그러므로 현재 통일신라라는 명칭은 어울리지 않고 차라리 토지와 인민이 증가한 점을 들어 대신라라 부르자는 저자의 제안이 색다르다.
그렇다면 적어도 당에 민족을 팔아먹었다는 오명은 듣지 않아도 되니 어쩌면 그것이 신라인들의 명예를 위해 더 나은 건지도 모르겠다.
신라가 강건하게 뻗어 나가고 있었음이 분명한 것은, 당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신라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도독부를 설치하여 지배의 야욕을 보이자 신라인 스스로가 이들을 몰아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신라가 중국의 지배에 굴복하지 않고 한반도의 독립을 지켜냈다고 평가할 만한 하다.
저자의 가정대로 정말 고구려가 삼한을 통일하고 중국과 대립했다면 여전히 우리가 만주땅까지 지배했을지도 모르겠으나 반대로 중국에 의해 멸망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은 팽창하는 제국이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대립하는 이민족을 내버려 두지 않았을 거라는 저자의 지적도 나름 일리가 있다.
사대외교가 지극히 현실적인 정책이었음은 고구려의 멸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고 하겠다.
결국은 연개소문의 독재와 잘못된 외교정책이 고구려를 멸망의 길로 이끌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어쨌든 후대에도 중국에는 수당에 맞서 싸운 대단한 민족으로 알려졌다고 하니 과연 고구려인들의 기상은 남달랐던 것 같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구원병을 보내면서 명나라 대신들이 그 대단한 고구려의 후예들이 어쩌다 이렇게 됐냐고 한탄했다고 한다.) 
연개소문 같은 독재자 대신 좀 더 정통성을 가진 왕이 등장해 난세를 이끌어 갔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운 부분이다.
발해에 대해서는 아예 속말말갈의 나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발해 유민이 고려로 투항한 것도 저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또 신라 하대의 농민 반란 역시 먹고 살기 힘든 백성들이 유랑하면서 도둑떼가 된 것에 불과하므로 내제적 발전론 어쩌고 하면서 계급 투쟁으로 보는 시각을 비판한다.
역시 현대의 시각으로 당시를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하겠다. 

태종 무열왕을 중심으로 한 신라 중대에 비해 하대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는데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개념이 잡혔다.
화랑세기에 대해 쓴 다른 책을 읽어 볼 예정이다.
이번에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이 발견돼서 그 놈의 말도 안 되는 독살설이 잠재워진 것처럼, 고대사에 대해서도 애매한 부분들을 새롭게 정리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발굴이 이뤄지길 바란다.
얼마 전에 미륵사지터 발굴을 통해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 공주의 결혼이 전설에 불과하다는 것도 밝혀진 것처럼 (완전한 정설은 아니지만) 보다 다양한 경로의 연구가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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