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이야기
야나기 무네요시 지음, 이목 옮김 / 산처럼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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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니 무네요시라면 일제 시대, 한국의 미를 고졸하다고 평했던 사람으로 알고 있다.
광화문 철거할 때도 신문사에 반대 칼럼을 썼던 사람으로 나름 한국 문화에 대해 일가견이 있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수집이라는 매니아적인 취향에 대한 칼럼 모음집이라길래, 제목에 끌려 저자의 이력에 끌려 읽게 됐다.
솔직히 문체는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나는 조지 오웰 식의 풍자화된, 치고 빠지는 유머있는, 약간 비꼬는 듯한 그런 문장을 좋아하는데 (알라딘 서재의 나귀님 같은) 이 사람의 글쓰는 스타일은 너무 고식적이고 점잖고 일본 사람 특유의 사소함 내지는 세밀함이 보여 지루했다.
이를테면 하루키 식의 가벼운 문제와 대조적이라고 할까?
시대적 한계라는 생각도 들고 원래 이 사람 자체가 점잖은 스타일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수집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 혹은 예술에 대한 태도 등에 적잖이 공감했고 많은 도움이 됐다.
사실 책 읽는 것도 그렇지만 미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만의 안목으로 사물을 대할 수 있느냐일 것 같다.
저자도 강조하는 바지만 이름에 함몰되지 말고 상인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나만의 관점으로 작품을 평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용감한 리뷰어처럼 고전이 무슨 소용이냐, 그저 이름뿐인 지루한 책 아니냐 라고 대범하게 감상문을 쓸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 말하는 자기만의 관점은, 그런 수준 이하의 평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작가라고 해서 모든 작품이 다 훌륭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피카소 작품이라고 전부 보존할 가치가 있는 걸까?
혹은 유명한 작가의 소설이라고 다 감동적이고 훌륭할까?
좀 더 쉽게, 대중들이 열광하는 영화가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다르게 봤다, 내가 보기에는 별로다.
그렇다면 자기 나름의 감상을 자신있게 피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들의 평론을 무조건 무시하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하여튼 그들의 관점에 함몰되지 말고 (더욱 위험한 것은 그 분야에 안목을 키운 전문가가 아닌 대중들의 환호에 좌지우지 되지 말고) 나만의 관점으로 예술품을 대할 수 있어야 한다.
수집할 때야 말로 이런 안목이 빛을 발할 것이다.
상인들의 말에 휘둘려 값이 오를 것이라는 말을 믿고, 혹은 경쟁 심리에 무리하게 사들여 창고 속에 처박아 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저자는 일부러 유명하지 않은 작품을 위주로 수집했다고 한다.
특히 실제로 쓰임새가 있는 공예품을 중심으로 수집해서 민예관을 건립했다.
다른 박물관과 차별되는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서구에서는 개인 수집가들이 공공의 목적으로 수집품을 기증하는 예가 많은데 일본에서는 거의 없다고 한탄한다.
이번에 중앙박물관에 가서 느낀 바지만, 평생 모은 수집품의 기증이야 말로 자신의 수집품을 가장 가치있게 보존하는 길인 것 같다.
나는 이런 수집벽은 없지만 하여튼 이런 안목있는 수집가들의 매니아적인 열정은 언제나 흥미롭고 존경스럽다.
가끔 미술관에 갔다가 아, 저 그림은 꼭 내 방에 걸어 놓고 싶다는 욕구를 느낄 때가 있다.
아마 돈이 좀 있으면 구입을 하게 될 것 같다.
저자의 말처럼 돈이 많다고 훌륭한 수집가가 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기본적인 자금이 있어야 비로소 수집이 가능한 일이니.
중앙박물관의 기증자 약력을 봐도 다들 자기 분야에서 기반을 쌓은 인물들이었다.
리움 미술관에 갔을 때 처음으로 이병철이라는 삼성 건립자에 대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전에는 삼성이라는 기업에 대해 정말 아무런 감정이 없었고, 해외에서 삼성 휴대폰을 봐도 애국심 같은 건 전혀 안 생겼는데 (오히려 재벌이라는 약간의 거부감만 있었다) 리움 미술관의 그 아름다운 소장품들을 보면서 한 인간의 재력이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할 수도 있구나 싶어 감탄했다.
아마도 돈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 중 하나가 이런 예술에 대한 투자일지도 모르겠다. 

얇은 책이라 지하철에서 편하게 읽을 수 있었고 나는 도자기나 공예품에 대한 특별한 안목도 없고 관심도 적은 편이지만 기회가 된다면 이 분이 설립한 민예관에 가 보고 싶다.
공예품만 전시했다는 빅토리아 앤 앤 앨버트 박물관에도 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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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역사 3 - 전란의 시대 : 고려후기편
임용한 지음 / 혜안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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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던 책인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이고 애독하던 시리즈다.
사실 나는 전쟁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 시리즈 보다는, <조선국왕이야기> 시리즈를 더 좋아한다.
하지만 <전쟁과 역사> 역시 역사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해 준 명저라고 자신한다.
이 책과 더불어 이희진씨의 <전쟁의 발견>도 무척 재밌게 읽은 책이다.
두 책 모두 저자들의 성실한 사료 분석이 돋보이고 기록의 문자에 함몰되지 않고 입체적으로 당시 상황을 분석해 낸 역작들이다.
특히 임용한씨의 책은, 단순히 옛 기록만 붙들고 있는 게 아니라 직접 현장답사를 꼼꼼하게 시행함으로써 기록에 남기지 못한 당시 정황들을 유추해 낸다는 장점이 있다.
이 책 역시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들을 발로 뛰어다니며 열심히 답사한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덕분에 관심이 적었던 고려사에 대해 많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됐다.
얼마 전에 읽은 <고려시대사의 길잡이>와 함께 고려사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전권과는 다르게 화려한 도판들을 많이 실어 볼거리가 풍부하다.
전쟁무기들의 사진도 이해에 도움이 많이 됐다.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기본적으로 지도를 볼 줄 알아야 하고 지리나 지명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야 함을 새삼 느낀다.
세계지도나 지구본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전도를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이 나온지 얼마 안 됐지만 저자가 좀 더 힘을 내서 우리나라 전쟁사의 최대 관심사인 임진왜란에 대해 책을 내주길 바란다.
이 분 블로그에 들어가 보면 이덕일씨처럼 유명한 저술가는 아니지만 열혈팬들이 꽤 있음을 발견한다.
나는 이 분의 책이 마음에 드는 게, 현실을 보는 정확한 관점 때문이다.
이덕일씨처럼 과도한 당위나 명분에 함몰되지 않고 현실적인 입장에서 당시 상황을 평가한다는 게 참 마음에 들고 신뢰가 간다.
사대주의 외교는 거창한 무슨 주의나 명분 이런 게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외교 정책이었다는 간결한 표현에서, 벌써 이 저자의 기본적인 역사 인식을 읽을 수 있다. 

이 책에서도 김부식을 지극히 현실적이고 능력있는 관료로 평가한다.
묘청은 서경파의 얼굴 마담에 불과했기 때문에 서경군이 포위되자마자 즉시 목이 베어져 정부군에게 보내졌고 서경군과의 전투는 실상 그 이후부터였음을 이번에 알게 됐다.
신채호의 역사인식은 당시 일본 식민지 치하에서 민족의 기상을 높혔다는 데 의의가 있긴 하나, 저자의 지적대로 역시 당시 그가 처했던 현실에서의 역사인식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서경파의 칭제건원은 자주국으로서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또 당시 정부의 사대외교가 주체성 상실이라기 보다는 관료들로서는 당연한 현실인식이었고, 서경파는 인종에게 놀아나다가 버려진 것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이자겸의 난을 제압하고 왕권을 지킨 인종은 한 마디로 이 세력 저 세력을 적당히 위무하다가 어느 선에서 통제 불능으로 가 버린 것이다.
서경에 대화궁을 짓고 천도할 것처럼 언질을 주긴 했으나 실상 정말 옮기고 싶은 마음은 없었고 결국 참는대도 한계가 있다고 서경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모든 쿠데타는 일단 수도를 점령해야 하고 신속하게 진행되야 한다.
지나치게 많은 가정들을 염두에 뒀던 서경파는 결국 김부식의 정부군에 괴멸당했는데, 김부식이라는 사령관의 탁월함도 돋보였다.
신라 왕족이라 가문의 힘을 믿고 높은 지위에 올랐다는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저자는 그가 실력으로 그 자리까지 갔음을 지적한다.
그의 형제들은 모두 과거에 급제한 실력자들이었고 의외로 그의 선대는 높은 벼슬을 하지 못했다.
윤관 역시 마찬가지인데 의외로 고려나 조선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 일류 가문 대열에 들어선 사람들을 보면 개인의 능력이 탁월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학식이 있었기 때문에 삼국사기를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전에 읽은 <조선선비와 한국유교 2천년>에서는 최씨 정권을 새로운 변화의 시작으로 보고 대몽골 항쟁도 외세의 침입에 맞선 자주적인 대응이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사실 이 부분에서는 선뜻 동의할 수 없었는데 <전쟁과 역사>를 읽으면서 임용한씨 역시 비슷한 시각임을 알 수 있었다.
과연 몽골이 고려를 직접 지배하려고 했을까?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듯 고려 왕조를 멸망시키고 직접 통치를 하려고 들었을까?
강화도로 피난해 세금만 꼬박꼬박 받아 먹는 최씨 정권의 행태는 결국 백성들은 적군에 손에 방치하고 정권 유지에만 골몰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몽골 항쟁 동안 40여 년의 계엄 체계가 유지된 셈이다.
당시 향리 계층이 일종의 지방 무사 계층으로 유사시에 지역 수비를 담당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다.
후기로 갈수록 이들은 과거준비생으로 변모하고 홍건적이나 왜구의 공격에 형편없이 당하는 원인이 된다.
고려 시대는 철저하게 지방을 통제했던 조선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던 것 같다.
세조에 대한 임용한씨의 평가를 봐도 그렇고 최씨 정권에 대한 평가도 그렇고, 아마도 저자는 비정상적인 경로로 이루어진 권력 집단에 대해 부정적인 것 같다.
세조는 말할 것도 없고, 최씨 정권마저도 요즘에는 문치주의 분위기 때문에 저평가 됐다고 옹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시기이고 보면 저자의 부정적인 인식은 다소 원칙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나 역시 저자의 입장에 동의하는 까닭은 단순히 저자가 사육신들처럼 무슨 명분론에 입각해 권력의 정통성을 찾는 게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정권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양산된 무수한 특권층들이 사회 발전을 저해한다고 지적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최씨 정권이 이성계처럼 새 나라를 건국했다면 그들이 일으킨 새바람, 이를테면 시골 향리에 불과했던 이규보 같은 인사가 재상의 자리에 오른 것 같은 혁신이 의미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들은 철저히 가문의 정권 유지에 골몰했고 사회 체제의 근본적인 개혁에 기여하지 못했다.
세조의 정권 찬탈을 비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태종의 등극도 마찬가지지만 쿠데타가 반복될수록 공신층은 계속 양산되고 비정상적인 특권층이 늘어간다.
사회체제가 점차 무너져 가는 것이다.
어쩌면 유학자들이 이른바 명분론을 찾아 정당한 왕위 계승을 외친 것도 안정적인, 원칙적인 사회 유지를 원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공민왕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다.
요즘 히트치고 있는 <쌍화점>의 주인공이기도 해서 흥미롭게 읽었다.
공민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친위 세력을 양성한답시고 계속해서 주변 세력을 숙청하고 바꾸는 변덕스러운 태도였다.
처음에는 김양, 안우, 정세운 등의 4인방이었고 그들을 죽이고 나자 이번에 등장하는 이가 바로 신돈, 또 그를 숙청하고 나자 자제위를 양성하는데 결국 홍륜이라는 자에 의해 암살당한다.
그 이전에도 암살 시도가 또 있었던 모양이다.
하여튼 왕의 암살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다는 것 자체가 말기 왕조 징후라 하겠다.
홍륜이 바로 조인성이 열연한 홍님이라는 캐릭터인데, 얼마나 끔찍하게 죽였으면 골수가 튀어 사방에 뿌려지고 시신은 피범벅이었다고 한다.
재밌게도 이 홍륜은 공민왕의 사촌인 홍언적의 손자라고 한다. 
천산대렵도라는 멋진 그림을 남긴 예술적 재능이 풍부한 왕의 말로가 안타깝다.
송의 휘종도 그렇지만 최고 통치자는 아무래도 이런 낭만성이나 예술성 보다는 태종처럼 냉정하고 빠른 두뇌회전이 우선인 것 같다. 

사실 고려 시대에 대해서는 조선에 비해 덜 알려졌고 사극의 소재로도 많이 이용되지 않기 때문에 관심이 적었다.
하지만 요즘 <무인시대> 나 <제국의 아침> <천추태후> 등의 사극들이 만들어지면서 고려 시대에 대해 새로운 관심이 생겼다.
드라마에서 얼핏 봤던 인물들이 책에 나오니 친근감이 생기고 이해가 빠르다.
14세기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은 왕이 피난을 밥먹듯 할 정도로 전국에 걸쳐 끔찍했고 조선이 성립된 의의를 알 수 있었다.
최영과 이성계가 얼마나 대단한 무공을 떨친 장수인지도 실감했다.
몽골군 치하에서 영주 노릇을 하던 아버지가 고려로 귀화한 후 그 아들이 나라를 개창하기까지의 이야기는 정말 한 편의 드라마다.
보통 조선 건국 무렵은 자세히 안 다뤄지는데 이성계를 중심으로 그 시대를 조명해도 재밌을 것 같다.
황산전투 이야기는 정말로 재밌게 읽었다. 

지명이나 지리에 약하기 때문에 저자가 묘사하는 당시 전쟁 상황을 100%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당시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할 수 있게 됐다.
저자의 역사관에도 적극 동의하지만 무엇보다 서술하는 솜씨가 남다르다.
아무리 훌륭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어도 글이 재미가 없으면 읽기 싫어지는 법인데 내가 보기에 임용한씨는 필력도 꽤나 괜찮다.
다음 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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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 표정있는 역사 7
호사카 유지 지음 / 김영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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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이 무척 화려하고 책 분량은 작지만 내용은 알차다.
한국인으로 귀화한 일본인이라는 특이한 이력 때문에 한국어로 글을 쓰면서도 일본의 역사나 전통 문화, 혹은 자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감성 등을 잘 풀어썼다.
그러나 지나치게 한국인이라는 것을 의식한 탓인지 엄격한 비판이나 비교 보다는 가능하면 조선 선비의 유학 정신을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고 애쓴 모습이 눈에 띄어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귀화인이기 때문에 더욱 진정성을 가지고 한국의 전통 문화나 정신에 대해 관대함을 갖는다는 느낌이 든다.
차라리 우리와 별 이해 관계가 없는 미국인 학자가 쓴 <현대 일본을 찾아서> 라는 책이 훨씬 더 객관적이고 실제적으로 일본 사무라이의 모습을 전해 준다는 생각이 든다.
곧 미국 학자가 쓴 유교 문화에 대해 읽어 볼 생각이라 이 책과 비교하면 재밌을 것 같다.
재일 사학자 강재언씨가 쓴 <선비의 나라 한국 유학 2천년>에서는 유교를 상당히 부정적으로 봤는데 이 책에서는 굉장히 긍정적인 쪽으로 바라본다.
관점의 차이가 결과 해석을 얼마나 다르게 할 수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일본 무사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니토베 이나조가 쓴 <무사도>를 읽은 후 부터다.
사무라이는 그저 칼들고 싸우는 무식한 칼잡이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서양의 기사처럼 기사도 정신을 가진 일종의 교양인이라는 느낌을 가졌다.
더군다나 가장 끔찍하게 생각했던 할복마저도 배꼽이 몸의 정기가 모이는 정중앙이라는 관념 때문에 가장 신성한 곳을 칼로 자른다는 해석이 뭔가 숭고하게 들렸다.
또 탐 크루즈가 출연한 <라스트 사무라이>를 보면 무너져 가는 전통 왕조의 존왕양이 사상을 지키기 위해 신식 대포 앞에서 허망하게 스러져 가는 사무라이들의 모습이, 신념을 위해 죽어가는 비장한 영웅처럼 느껴져 사무라이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게 됐다.
이 책의 저자 호사카 유지 씨의 주장에 따르면 니토베 이나조가 정의한 무사도란 바로 조선의 선비 정신이라는 것이다.
원래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무식해서 최고 통지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마저 한자를 몰랐다고 한다.
일본 문화 수준이 이 정도였으니 선조나 조선 관료들 입장에서는 감히 조선을 침범하고 그것도 모자라 명나라까지 쳐들어 가겠다는 도요토미의 장담이 현실적으로 들리지 않았을 것 같다.
하여튼 이런 일본이 문화적으로 성숙한 계기가 바로 임진왜란이었고 이 때 이황이나 이이, 성혼의 저작들이 많이 건너갔고 포로로 끌려간 강항이 후지와라 세이가에게 성리학을 전파함으로써 비로소 막부 정권이 유학을 관학으로 숭상했다는 것이다.
에도 막부 270년의 평화가 바로 이 조선의 성리학 전파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조선의 성리학이 에도 막부나 일본의 학풍에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쳤는지는 다른 책을 통해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처음에는 지나치게 한국 위주로 서술한 부분이 객관성을 잃는 것 같아 불편했지만 뒤로 갈수록 일본 역사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서 퍽 재밌게 읽었다.
특히 막부란 도대체 뭔가, 막부의 역사는 어떻게 됐나, 임나일본부설은 왜 나와게 됐나, 그 배경은 무엇인가 등등 평소 궁금하게 생각했던 부분들이 한 번에 쭉 풀리게 돼서 기쁘다.
일본 관련 서적은 그 어려운 이름 때문에 쉽게 와 닿지가 않았는데 자꾸 접하다 보니 조금씩 익숙해지고 일본 역사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에도 막부 형성부터 20세기 일본의 경제성장까지를 다룬 명작 <현대 일본을 찾아서>를 읽은 후부터 일본 역사에 관심이 생겼는데 그 이전 시대, 일본 고대사와 중세사에 대해 알아 보고 싶다.
저자의 표현대로 과거에는 화이사상 때문에 중국을 숭앙하고 일본을 무시했는데 마찬가지로 지금은 미국이나 서양을 숭배하고 대신 일본이나 기타 다른 문화들을 역시 한 수 아래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선진 문화에 대한 욕구나 모방 심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이 지나쳐 다른 문화에 대한 경시 풍조로 이어진다면 경계해야 마땅한 일이다.
일본의 저력과 우수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특히 문화적 측면에 있어서) 어쩌면 저자의 말마따나 과거의 화이사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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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충돌
이종욱 지음 / 김영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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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알라딘에 감상문 쓰려고 들어 왔다가 절판인 거 알고 깜짝 놀랬다.
2003년도에 출간된 책인데 벌써 절판이라니!
비교적 괜찮은 수준의 책인데 이렇게 빨리 절판되다니 정말 놀랍다.
좋은 책들은 빨리빨리 사 놔야 할 것 같다.
아니면 도서관에서 가능하면 많은 신간들을 구입해 주던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인데 저자의 이름에 신뢰성을 두고 읽게 됐다.
저자의 다른 책인 <고구려의 역사>를 재밌게 읽은 까닭이다.
서강대학교 교수라고 하는데 서울대 학자들과 대립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역사충돌이라는 제목부터 뭔가 기존 학설에 크게 반대하는 느낌을 주지만, 꼼꼼히 읽은 결과 크게 반대되는 내용은 없고 제목의 느낌과는 다르게 고구려는 천자의 나라였다, 이런 식의 재야 사학 쪽 주장도 아니다.
저자의 기술 태도가 좀 공격적이고 약간 삐딱한 듯한 느낌이라 눈에 거슬릴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한 학문 태도와 근거를 가지고 합리적으로 생각한 가설들에 대해 많이 동의하는 바다. 

현 국사학계와 가장 대립되는 의견은 아마도 부체제설일 것이다.
이 부체제설은 <고구려의 역사>에서 충분히 들었던 이야기다.
국사학계에서는 삼국 시대 초기에 각각의 부가 연합하여 왕을 내세웠고 왕도 부의 수장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하지만, 저자는 이미 삼국 초기부터 왕은 신하와 다른 존재였고 갈수록 왕권이 강해졌다는 입장이다.
왕의 권한이나 위상을 어디까지 보느냐로 주장이 갈린다고 할 수 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크게 보면 비슷한 얘기 같다.
처음에 시작은 여러 집단의 우두머리들이 연합을 했을 것이고 그 중에 힘이 센 집단의 리더를 대표격인 왕으로 세웠을 것이고 점차 왕권은 강력해졌을 것이다.
오히려 이슈는 발해를 한국사에 넣을 것인지, 고조선이 은나라의 후예들이 건너와 세운 이주민의 나라인지 이런 내용일 것 같다.
아마도 정통 사학계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리라 본다.
재야 사학계 내지는 일반 독자들과의 대립이 예상되는 문제들이다. 

발해 이야기 역시 <고구려의 역사>에서 얼핏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 책에서는 보다 강력하게 발해가 말갈족의 나라임을 분명히 밝힌다.
만주 땅이 원래 말갈족의 고향이고 고구려는 마치 제후국 형식으로 이들을 다스렸기 때문에 고구려가 멸망한 후 대조영을 구당서에서 고구려의 별종이라고 한 것도 고구려인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고구려인들 밑에서 장군 노릇을 하던 말갈인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신당서에는 당연히 대조영을 말갈인으로 표현했다.
발해를 말갈로 구분한 근거 중 하나로 구당서의 민족 분류를 든다.
동이족은 고구려, 신라, 백제이고 북적은 발해, 흑수말갈이라고 분류한다.
옛 고구려 땅에서 일어났지만 발해는 명백히 말갈족의 나라이고 현재 발해인은 모두 사라졌지만 그 지배 영역은 중국땅에 있으므로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소수민족 정권으로 연구해야 맞다는 입장이다.
우리가 발해의 역사를 우리 것이라고 우기는 것은 마치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신들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동북공정과 다를 게 없다는 논리다.
아마 이런 글이 일간지 같은 유명 매체에 기고되면 이 사람, 다음 아고라 같은 데서 테러당할지도 모르겠다.
고조선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를 편다.
촌장사회에서 소국으로 발전하는 단계는 이주민의 개입이 선행된다.
부여는 고리국에서 온 동명집단, 고구려는 부여에서 넘어온 주몽집단, 백제는 고구려에서 건너온 온조집단, 신라와 가야 역시 외부에서 들어온 혁거세와 수로집단에 의해 형성됐고, 고조선 역시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기존의 촌락 사회에 우수한 문화를 가지고 들어온 이주민들이 바로 환인과 환웅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환인 집단을 은나라가 망하고 건너온 이주민들로 생각한다.
고조선이 은나라의 후예들이 세운 나라라니, 아마 재야사학계에서 거품물고 쓰러질 것 같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저자의 말대로 백제의 이주민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황실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처럼 (이성시의 책을 보면 천황의 조상 중에 백제계가 있었다는 것도 다 허구라고 하지만) 한반도 역시 중국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여 보다 발전된 정치체제로 나아가는 게 당연한 수순 아닐까?
저자는 위만 역시 연나라가 망하면서 들어온 명백한 연나라 사람으로 단정짓지만 그가 연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위만조선이 연나라의 식민지라는 말인가? 그건 아니라는 얘기다.
조상들이 큰 땅을 차지하고 여러 나라를 점령하면 자랑스럽고 선진문화를 전파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쪽이면 부끄러운가?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관점에 맞춰 해석하거나 지금의 자부심이나 자신감과 연결지어 뭔가 그럴듯한 과거로 포장하는 게 더 문제라고 본다.
민족주의 사학자는 역사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고구려는 천자의 나라가 아니라 할지라도 여전히 자랑스러운 우리의 선조다.
장수왕이 북위에게 책봉을 받고 조공 무역을 했다고 해서 부끄러운 게 전혀 아니다.
오히려 대외 외교 정책을 잘 수행해 냈다고 볼 수 있다.
명백히 역사서에 장수왕의 책봉 이력이 있는데 그것을 중국 위주의 역사니 믿을 수 없다, 당시의 정황을 보면 말이 안 된다, 형식에 불과하다 등등으로 격하시키고 심지어 어떤 책에서는 장수왕이 오히려 북위의 우위에 있었다는 황당한 글도 읽은 적이 있다.
일본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백제인들이 문화를 전파했다고 강조하면서 왜 우리가 중국 문화를 받아들인 것은 인정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정말 저자의 표현대로 한국은 이미 강건한 국가이고 일제 시대의 식민지도 아닌 만큼 제발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자부심을 표현하려는 시도는 그만 했으면 좋겠다.  

김춘추에 대한 평가 역시 마찬가지다.
왜 김춘추가 사대주의에 매국노인가?
저자의 평가대로 당시 신라의 관점으로 보면 김유신은 탁월한 외교관이었고 다른 귀족들이 손놓고 있을 때 일본과 고구려, 당나라까지 오가면서 신라를 위기에서 구해낸 진정한 영웅이었을 것이다.
차라리 신라를 의지도 없었던 <통일신라> 대신 저자의 표현대로 국토와 인민이 넓어졌으니 <대신라>라고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나라를 당에 팔아먹었다는 억울한 말이라도 안 들을 게 아닌가?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유용한 내용들이 많았고 다소 과격한 표현이 걸리지만 전반적인 주장에는 동의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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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011-08-15 0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당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신라 또한 보잘것 없는 나라였습니다. 중국의 관점에서 쓰여진 역사서를 우리나라가 수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종욱 교수는 그 이전의 자신의 저서에서는 우리나라측의 문헌 자료를 신뢰하고 중국측의 자료를 비판하는 입장이다가 여기서 태도를 바꾸는군요... 일본이든, 중국이든, 한국이든... 자국의 역사를 좋게 서술하려 하고 남의 역사를 되도록 깎으려 하는 식입니다. 거기에 깔려있는 것이 민족주의고요... 발해가 중국의 말 대로 말갈족이 맞다는 주장이 있다면 그에 반대되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들은 전적으로 틀렸고 이 주장만 맞다고 하는 것은 편협한 시각입니다. 다양한 주장이 받아들여 져야 한다면서 기존 이론에 덧보탬이 아닌 비판을 하고 새 이론을 주장한다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는 일입니다.
 
시 속의 그림, 그림 속의 시 - 문인화 2 보림한국미술관 11
김현권 지음 / 보림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글솜씨 자체가 아주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유용하고 재밌게 본 책이다.
특히 책의 판형이 크기 때문에 실린 도판들도 큼직큼직하고 시원스럽다.
덜 유명한 그림들을 위주로 실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접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선비화가들의 그림이다 보니 화려한 맛은 적지만 품격있고 우아한 고졸한 맛이 있다.
특히 압권은 강세황이었는데 지상편이라는 백거이의 시를 표현한 <지상편도>라는 그림이 너무 마음이 든다.
나는 강세황의 그림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 <지상편도>는 옅게 채색을 해서 마치 산뜻한 수채화를 보는 기분이 든다.
전문 화가도 아니었다는데 단순히 기품을 표현한 문인화가들과는  수준이 다른 묘사력과 색채감을 선보이는 느낌이 든다.
윤제홍의 지두화는 이른바 핑거페인팅인데 수묵으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쓴다는 게 무척 신선했다.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흔히 접했던 그림인데도 저자의 설명을 듣고 보니 정말 먹으로 힘차게 뻗어 내려간 필선이 담대하고 기존의 관념산수화와는 다른 느낌이 든다.
역시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은 매화서옥이었다.
선비화가들과는 약간 차이가 있는 전기나 조희룡 같은 중인 계층, 이른바 위항문인들이 그린 매화서옥류의 그림은 색체감이 화려하고 한 편의 멋진 풍경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김정희가 조희룡의 그림을 두고 기술에 비중을 둬서 품격을 잃었다고 평했는데 그의 <세한도>를 보면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는지 이해가 간다.
이 책에는 19세기 화가인 김수철의 매화 그림, <설죽한매> 가 실렸다.
권신 김안로의 아들이 화가였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이름이 김시인데 혼인하는 날 의금부에 끌려갔다고 하니, 그 후에 아들의 삶이 얼마나 척박했을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여인천하>에서 김안로의 몰락을 재밌게 지켜봤는데 벼슬길이 막힌 아들의 입장에서 보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런 배경 때문인지 김시의 그림은 왠지 먹먹한 느낌을 준다. 

우리 그림이 이렇게도 많고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고 있는지 정말 몰랐다.
언제나 인상주의 그림에 감탄하고 화가들의 풍성한 이야기를 부러워 했는데 이제서야 마치 내 것을 찾은 기분이 든다.
아무리 내가 서양문화를 잘 이해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피상적이고 제한적이라는 한계를 느꼈었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 보니 예술을 대하는 관점 역시 다를 수 밖에 없음을 느꼈다.
그렇지만 우리 문화는 내가 한국인이고 한국어를 쓰고 여기서 자라왔기 때문에 다른 어떤 외국인 보다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가슴절절하게 감동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정말 아름다운 우리 문화들이 많이 발굴되어 우리의 일상이 풍요로워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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