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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회화의 탄생
국립중앙박물관 엮음 / 국립중앙박물관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처음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봤던 전시회다.
생각보다 박물관이 커서 하루에 볼 엄두가 안 나서 차라리 기획전부터 보자는 마음으로 중국 고대회화전에 들어갔다.
솔직히 처음에는 대체 뭘 얘기하는 건지 어리둥절했다.
화상석의 탁본을 떠 왔다는데 형체도 불분명하고 색체감도 전혀 없어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고개지가 그린 낙신부도라는 수폭의 비단 그림만 그저 기억에 남을 뿐이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서 탁본 아래 설명을 읽어 보니 이게 전부 중국의 역사고사들이었다.
흔히 알고 있는 도원결의처럼 역사적 배경을 지닌 고사성어들을 무덤이나 사당의 벽에 조각해 놓은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정말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70이 넘어서도 부모 앞에서는 색동 저고리를 입고 춤을 춘다는 고사성어도 중국에서 유래됐다는 걸 처음 알았고, 남편 죽은 미망인이 왕의 유혹을 거절하기 위해 자기 코를 베는 끔찍한 이야기도 절의고사로 새겨져 있었다.
화상석 외에도 청동기 시대 토우나 술병, 청동 거울 등도 흥미로웠다.
당나라 시대의 화려한 당삼채 인형도 볼 만 했다.
박물관을 나오면서 도록을 살까 했는데 의외로 비싸서 다음 기회에 다시 봐야지, 하고 미뤄두고 있었던 차에 뜻밖에도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눈이 확 뜨이는 순간이었다.
도서관에서 설마 박물관 기획 전시실의 도록까지 구입해 줄 줄은 몰랐는데 너무 의외였다.
역시 도록을 보니까 도움이 많이 됐다.
특히 각 시대별로 중국 회화의 발전 양식을 기술한 앞부분이 많은 도움이 됐다.
역시 박물관에서 출간한 책답게 전문성이 엿보이는 훌륭한 기술이었다.
중국이 한 민족으로서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은 유명한 진시황의 통일 이후라고 한다.
그 전에 은나라와 주나라는 화북 평원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오늘날의 쓰촨성은 파, 촉, 양자강의 허난성 주변은 초 등의 이민족 문화가 발달했다.
진시황의 통일을 계기로 한족으로 편입된 후 서한 동한 시대를 거치면서 비로서 정체성을 갖게 됐다고 본다.
그런데 중국의 회화는 바로 이 양자강 이남의 촉이나 초나라 문화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기원전 5세기 무렵을 회화의 시작으로 잡는다.
단순히 청동 그릇에 장식적인 문양을 새기는 수준을 넘어서 붓과 물감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게 된 시기가 바로 기원전 5세기라는 것이다.
중국은 워낙 역사가 오래된 나라라 처음부터 그냥 한족으로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중국 역시 오랜 역사 시대를 거쳐 비로소 하나의 민족으로 통합됐다는 걸 알게 됐다.
특히 무덤 양식을 중심으로 발달한 회화 양식의 변천사는 무척 흥미로웠다.
무덤 벽화 외에는 전승되기 어려웠던 탓도 있겠지만, 죽은 사람의 무덤을 위해 이렇게도 예술적인 재능을 바치고 엄청난 부장품을 묻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정말 종교적 심성은 본능적인 것일까?
진시황의 그 거대한 토용들도 실은 순장 풍습에서 발전한 것이고 벽화나 묘에 함께 묻는 비단 그림 등으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일종이 인권 발전이라고 할까?
다소 전문적인 내용들이 있어 살짝 지루한 면도 없지 않지만, 고대 중국의 회화 변천사를 볼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고 시간이 된다면 다시 한 번 박물관을 방문해서 관람하고 싶다.
고구려의 전형적인 도상으로 알려진 삼족오나 두꺼비 등이 고대 중국에서 비롯됐고, 동수묘 등의 벽화 양식도 역시 중국에서 건너왔다는 걸 이 책을 통해 확인하면서 역시 문화란 역동적인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몀 국수주의나 민족주의는 얼마나 편협한 시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