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의 미술문화
이성미 지음 / 대원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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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미술에 대해서는 사실 큰 관심이 없었다.
서양의 화려한 미술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개성적인 일본 미술에 비해서도 내세울게 별로 없는, 그저 중국 미술의 아류 정도로만 생각했다.
먹과 묵으로 된 자연 풍경은 사실적이지도 않고 아무런 감동도 주지 않았다.
화려하고 정교한 르네상스 그림을 동경하는 내 취향에 산수화나 수묵화는 도무지 맞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우리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영산회상도를 처음 보고 나서부터다.
일단 그렇게 어마어마한 크기의 그림이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10m는 충분히 넘었을 거다) 천여명에 가까운 인물들을 그린 솜씨가 예사롭지 않고 그림은 본다기 보다는 그 뜻을 읽을 수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즐긴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 후로 불교 미술 뿐 아니라 우리 그림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그저 화가라고 하면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알면 알수록 놀라운 솜씨의 화가들이 많다는 것에 놀랐고 특히 강세황처럼 문인화가들이 격조높은 시와 함께 우아한 필선으로 그린 그림들이 많다는 걸 알고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깨달았다.
산수화가 시시했던 것도 내가 거기에 나오는 중국 고사들을 잘 몰랐기 때문에 뭘 그린 건지 이해가 안 갔던 것이다.
마치 르네상스 그림을 알려면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성경에 대한 기초 지식이 있어야 하듯 말이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주최한 <왕의 글이 있는 그림전>은 조선 시대 국왕들의 미술 취향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장희빈과 인현왕후 사이에서 방황한 국왕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숙종이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는 걸 알고 나니 마치 역사 속의 박제화된 인물이 살아 숨쉬는 생동감 있는 인간으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이 책에도 자세히 나오지만 헌종 역시 세도 정치에 휘둘린 임금이었다는 게 내 지식의 전부인데 사실 그는 서화에 아주 관심이 많았고 그의 후원을 받아 왕실 미술이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치 송나라의 휘종이 훌륭한 화가에 뛰어난 감식안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정치에 무능했듯 헌종 역시 비록 정치에서는 별 업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인간적으로는 시서화를 사랑하는 꽤나 매력적인 국왕이었던 것 같다.
전혀 관심도 없던 헌종 시대가 눈에 잡히듯 가깝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결국 인간의 감수성은 시대와 민족을 초월해 보편성을 갖는다는 걸 느낀다.
서양의 화려한 미술의 역사를 보면서 내심 부럽고 왜 우리는 저런 미술 문화가 없었을까 아쉬웠는데 다만 우리는 그 전통을 제대로 이어오지 못했을 뿐 역시 우리도 왕실에서 미술을 후원하고 예술을 즐기는 귀족 계층들이 있었다.
예전에 러시아전을 관람한 후 러시아 미술의 위대함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것처럼 이번에는 조선의 최상류층이 즐기던 미술 문화에 눈을 뜨게 됐다.
따지고 보면 문인화는 단지 그림을 전문으로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공부를 하고 나라일을 보는 학자이자 관료들이 여기로 자신들의 시에 그림을 덧붙이는 것이니 조선 시대의 선비들은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아하고 격조 높은 계층이었을 것 같다.
특히 강세황의 그림을 보면 전문적인 화원도 아닌데 어쩜 저렇게도 잘 그릴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정조와 김홍도의 관계도 책에 자세히 묘사된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신윤복의 얘기는 기록에 없던 탓인지 안 나오지만 대신 그 아버지 신한평은 어진화사로 일할 만큼 당대의 뛰어난 화가였다고 한다.
왜 그런 훌륭한 그림들이 많이 전해지지 않는 것인지 그 점이 참 안타깝다.
정조란 인물은 예전부터 르네상스를 일으킨 훌륭한 중흥의 군주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알면 알수록 정말로 매력적이고 대단한 사람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 역시 비명에 가지 않았다면 역사의 한 페이지를 멋지게 장식하지 않았을까 아쉽다.
정조는 신하들을 휘어잡을 만큼 뛰어난 정치력과 대담한 베짱을 가지고 있었으나 개인적으로도 수많은 문집을 남기고 무인 기질도 출중하고 그림과 글씨에도 능한 팔방미인이었던 것 같다.
정말 박현모씨 의견대로 40대에 과로사를 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다방면에 출중했던 것 같다.
조선 후기의 풍속화나 진경 산수화도 정조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활성화 될 수 있었음을 알게 됐다.
그 자신도 괜찮은 화가였던 것 같다.
비록 동양화를 평할 능력은 안 되지만 그가 남긴 그림들을 보면 그의 우아하고 격조 높은 그림에 대한 취향이 눈에 보인다. 

조선 왕실의 미술 문화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책이고 무엇보다 그림들이 많이 실려 있어 도움이 많이 됐다.
이성미라는 노교수의 정년 퇴임 기념으로 제자들이 출간한 책인 모양이다.
스승에게 훌륭한 선물이 될 것 같다.
무능하게만 느껴졌던 조선 왕실이, 궁궐과 그림에 관심이 생기면서 새롭게 와닿는 기분이다.
결국 선조들에 대한 자긍심은 전통의 연계를 통해서 지금도 우리가 그 문화를 향유하고 있을 때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 같다.
조선 시대 그림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 볼 생각이다.
유익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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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나라 한국유학 2천년 교양 교양인 시리즈 1
강재언 지음, 하우봉 옮김 / 한길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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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을 배회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
가끔 이렇게 우연히 집어든 책이 명저인 경우가 있다. 
횡재한 기분이랄까?
한국 유학의 특징을 고조선 시대로부터 일제 시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면면히 서술해 나간다.
저자는 재일 사학자라고 한다.
이 책 역시 한국인에 의해 번역되었다.
그러나 번역서라고 보기에는 문장이 너무나 매끄럽고 자연스러워 처음에는 당연히 한국어로 쓰여진 책인줄 알았다.
아마 저자가 재일교포라 기본적으로 한국어의 단어 선택이 적절했을 것이고 덕분에 옮기기도 쉬웠을 것 같다.
이 책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3년 동안 일본의 잡지에 연재된 칼럼을 엮은 것이라고 하는데, 연재물로 보기에는 그 통일성이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다.
마치 한 권의 저술을 위해 한번에 쓴 책 같다. 
일단 저자의 깊은 역사 인식과 전문성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며, 내가 동의하는 바와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의견을 밝히겠다. 

먼저 고조선의 실체가 고고학적 발굴을 토대로 기원전 5세기 경부터 있었을 것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 역시 당연히 인정되는 한국의 역사이고 백제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도래인이 되어 일본 문화에 획을 그은 것처럼 고대 중국인들 역시 한반도로 건너와 선진문화를 전해 주고 정착했을 것이다.
백제가 일본에 문화를 전해준 것은 당연하고 기자나 위만 등이 한반도에 건너와 선진문화를 전해준 것은 부정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
<총균쇠>의 저자가 주장한 것처럼 문화는 높은데서 낮은데로 흐르고 전파는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도 은나라의 현인인 기자가 조선으로 건너와 나라를 세우고 문화를 전해준 것을 소중화의 근원으로 삼을 만큼 자랑스러워 했다. 
오늘날 한국인의 입장이 선조들과 같을 수는 없겠으나 그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조광조 등이 지나치게 엄격한 도학정치를 추구해 중종이 그만 그들에게 질리고 말아 내쳤다는 의견에도 동의하는 바다.
사실 현량과라는 것도 객관적인 평가가 아닌 추천에 의한 것이니 그 기준이 얼마나 애매모호하겠는가?
조광조라는 학자의 인격과 지식은 정치적 평가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후대로 갈수록 주자학 제일주의의 경직화와 사상독재는 결국 근대화를 가로막고 조선을 망국의 길로 이끈 장본인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책에서는 예송논쟁이 고도로 발달한 한국 학문과 철학 사상의 우아한 격론의 장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는데 나는 저자의 의견대로 그것은 실제적인 것으로부터 지극히 멀어져 추상적인 것에 목을 맨 한심한 작태라고 생각한다.
사상 논쟁이 한 당파를 몰살시키는 돌격대장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게 오히려 한국 사상사와 정치사의 불행이다. 

그러나 일부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는 저자와 생각이 다르다.
세조의 경우 저자는 훈구대신들로부터 정권을 유린당한 조선을 구해낸 수성의 군주라고 평했으나 나는 세조의 계유정난이 공신층을 양산해 내고 국왕 전제정치로 흐른 바람직하지 못한 사건이었다는 쪽에 더 마음이 간다.
저자는 훈구대신들이 사상적으로 자유롭고 다양한 방면의 학문에 업적을 남겼다고 매우 긍정적인 방향으로 평했으나 그들의 어두운 점, 이를테면 심각한 토지 소유와 관직 독점, 특권층화 된 것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또 광해군의 경우도 실각할 수 밖에 없었던 전후 사정에 대해 너무 가볍게 넘어가 마치 명분주의자들에 의해 억울하게 폐위된 현명한 군주라는 식의 인상을 주는데 궁궐 영건 사업으로 민심이 피폐해지고 서자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나치게 왕권 확보에 골몰한 나머지 유림들을 적으로 돌린 정책상의 실수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한명기씨 의견에 동의하는 바다.
무신정권에 대해서도 신분 질서가 흔들리고 문벌 귀족이 아닌 사람들도 관직에 진출했다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으나 과연 사회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보다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것 같다.
결국 최씨 가문이 60여년의 전제 독재를 행한 것이니, 훗날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와 다를 게 무엇인가?
강화도에 틀어박혀 몽골에 저항했다고 하지만 국토는 유린됐는데 집권 가문만 섬에 처박혀 버티면 자주 독립이 유지되는 건가?
오히려 전통적인 사대외교의 대상을 바꿔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한 가지 의문은 중국은 고래로부터 한반도를 직접 지배하기 보다는 책봉과 조공 등을 통해 간접 지배하는 형식을 택했는데 몽골이 고려를 처음부터 멸망시킬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최씨 정권이 강화도에서 30년을 버틴 덕분에 고려가 자주 독립국으로 남을 수 있었다고 했는데 과연 이것이 올바른 평가인지 다른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싶다.
청이 조선을 항복시켰으나 역시 조선은 다만 사대의 대상만 바뀌었을 뿐 계속 독립국으로 남았다.
청과 몽골의 기본적인 정책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 궁금하다.
또 한명기도 지적한 바지만 인조반정 후 조선의 대외정책이 숭명반청으로 급격히 바뀐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기조는 청을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화친 외교를 계속 해 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만 앞에 내세우는 명분론적 입장이 약간 다를 뿐 서인정권 역시 완전히 미치지 않고서야 엄청난 군사력을 자랑하는 청과 정면으로 맞서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지해야 할 사실은 광해군 때만 해도 청은 아직 명을 복속시키지 전이었기 때문에 조선에게 동맹국으로서의 화친 정도를 요구했으나 인조가 즉위한 다음부터는 노골적으로 주종관계를 강요했기 때문에 아마 광해군이 계속 왕위에 있었더라도 그 요구를 수용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만 대응에 있어서 좀 더 유화책을 쓰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다.
당시 중국 사정에 대해 저자가 너무 가볍게 지나친 것 같아 아쉽다.
저자는 인조 반정 후 서인정권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도발했다고 하는데 이 점은 중국사를 자세히 연구한 한명기의 분석이 훨씬 유효하다. 

전반적으로 매우 훌륭한 책이고 한국 유학의 발전 과정과 문제점, 역사 속에서의 역할 등에 대해 잘 풀어 쓴 책이다.
무엇보다 읽기에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이야기책을 읽듯 너무나 재밌게 술술 넘어간다.
몇 가지 의문점과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으나 관점의 차이이기 때문에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다. 
오히려 다른 관점에서 비교해 봄으로써 내 역사적 관점이 더 선명해지는 느낌들 갖게 됐다.
정말 재밌게 읽은 책이고 비록 유학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을 잃어 가고 있으나 여전히 한국인의 문화와 일상을 책임지는 기본적인 가치관이자 세계관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냉정한 비판을 통해 보다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단순히 공자는 죽었다라는 식의 맥빠진 선언이 아니라 2천 여년을 이어온 우리의 문화와 가치관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를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
서구 문명이 기독교와 그리스 로마 전통 아래서 기반을 다지고 있듯 한국 문화도 유교의 뿌리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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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사의 길잡이
박용운 지음 / 일지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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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후 읽고 싶었던 책이다.
이런 우연한 발견이 주는 짜릿함 때문에 서점 나들이를 즐기게 되는 것 같다.
제목만 봐서는 인터넷 서점에서는 도저히 흥미를 가지기 어려운 책이지만 서점에서 직접 표지를 열어 보니 내용이 너무나 알차다.
박용운이라는 저자가 아마도 고려 시대사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학자이신 모양이다.
제자들이 정년 퇴직을 기념해 이런 책을 발간해 준 걸 보면 말이다.
<고려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류의 가벼운 교양서도 좋지만, 전문가들이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일반 저술가들 보다는 조금 더 전문적이고 높은 수준의 책을 많이 출간해 주면 좋겠다.
얼핏 보면 교과서 같기도 하지만 내용이 알차고 지루하지 않으며 고려 시대를 여러 분야로 나눠 각각의 전공자들이 기술했기 때문에 고려 시대의 조감이라는 큰 주제에 잘 수렴한다.
통일성 면에서도 훌륭하다는 평가를 하고 싶다.
조선에 비해 고려는 시대적으로도 상당히 앞서고 유교가 아닌 불교 국가였기 때문에 오늘날의 문화와도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여 덜 알려진 게 사실이다.
다행히 사극 열풍을 타고 고려 시대가 조금씩 조명되고 있긴 하지만, 더 많은 책들이 나와 관심을 환기시켰으면 한다.
사실 나도 고려 하면 불교 외에는 특별히 떠오르는 게 없고 기껏해야 왕건의 국가 수립이나 이성계의 조선 건국 정도의 시대적 배경 밖에는 없었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서 고려가 유교 국가인 조선과는 굉장히 다른 배경을 가졌고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는 사대부들의 나라인 조선과는 지배 계층이 판이하게 차이나는 문벌 귀족의 사회였음을 분명히 인식했다.
조선에도 음서 제도라는 게 있어 과거 합격 없이도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으나 승진에 제한이 있고 무엇보다 주변에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리 권세있는 가문 출신이라도 과거에 목을 맸던 반면, 고려의 음서 제도는 오히려 좋은 가문임을 증명하는 일종의 자격증과도 같았기 때문에 과거가 활성화 되지 못했고 관직이나 신분이 세습되는 문벌 귀족 사회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역시 조선이 좀 더 열린 사회가 아니었을까 싶다.
세도 정치로의 변질과는 별개의 문제로 말이다. 

고려 시대는 확실히 불교 국가였기 때문에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신라처럼 완전히 폐쇄된 골품제의 나라는 아니라서 여왕이 등장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과부의 재가 자체를 금지하고 재산 분배에 차이를 둔 조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였다.
드라마에도 나오지만 귀부인들도 재혼이 가능했고 남자가 여자의 집에 들어가 살림을 차리는 풍속도 흔했다.
재산도 당연히 균등 상속됐고 왕의 딸들도 음서제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점을 봐도 성리학은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시키는 학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의 여성 지위가 종속적으로 변해 가고 무엇보다 교조주의에 함몰되어 전쟁 포로로 귀환한 여성들마저 남편에 대한 절의가 손상됐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점이 참으로 안타깝다. 

무신 정권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부분은 처음 듣는 관점이다.
문치주의 나라였기 때문에 국방 문제는 사대외교를 통해 해결했다는 지적은 일리있는 말이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무신 정권으로 국가가 혼란에 빠지고 몽골 항쟁도 정권 유지를 위한 차원이었다.
그러나 40여년을 버틴 덕분에 몽골은 고려에 대한 예속 수준을 낮춰 사대 외교를 맺는 걸로 끝났다는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은 전통적으로 한반도는 중국과 관계에 있어서 직접 지배를 받지 않고 책봉을 받고 조공을 바치는 사대 외교를 맺어 왔는데 과연 몽골이 고려를 완전히 없애 버리고 직접 지배를 하려고 했을까 하는 점이다.
무신 정권이 강화도에 틀어 박혀 저항했다는 점이 고려라는 큰 틀로 봤을 때 과연 바람직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까?
그 부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
대신 무신 정권 시기에는 신분 이동이 활발해진 점은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쨌든 한 가문의 전제정권은 보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봐야 한다. 

국가의 개념이나 토지제도, 교육제도, 관직 등 고려 시대의 전반적인 모습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알려 주고 여러 저자가 썼지만 통일성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고려가 대체 어떤 나라였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기꺼이 일독을 권한다.
담긴 내용은 상당히 수준이 있지만 일반인들이 읽기에도 전혀 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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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궐도 - Donggwoldo, Painting of Eastern Palace
한영우 지음, 김대벽 사진 / 효형출판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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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박물관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한 후 살까 말까 망설였던 책이다.
동궐도의 그 상세함과 방대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던 차에, 아예 지도를 구입하면 좋을 것 같았고 책의 판형이나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지만 역시 가격 때문에 만지작 거리다가 내려 놓았다.
설마 이런 책도 있을까 싶어 도서관에서 검색을 했는데 마침 있길래 기쁜 마음으로 빌려서 읽었는데 안 사길 잘했구나 싶을 만큼 내용이 너무 간략하다.
외국인들을 위해 간단한 해설 아래 영어로 번역을 해 놨다.
역시 표지나 속지의 인쇄 상태는 훌륭한 편이지만 내용이 너무 소략되어 있고 무엇보다 전체를 조감할 수 있는 지도가 없어서 아쉽다.
오히려 <우리궁궐이야기>에서 부록으로 끼워져 있던 동궐도 한 장이 더 유용하다.
외국인에게 우리 궁궐을 소개하는 책자로서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궁궐에 관심이 많은 한국인이 보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같은 저자의 책인 <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 를 축약시킨 것 같다.
실린 사진도 똑같고 설명도 당연히 똑같다.
한 가지 마음에 든 점은 책의 인쇄 상태다.
올 컬러로 인쇄되고 페이지가 두꺼운 종이라 오래 보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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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9-01-22 0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이 책은 설명이 좀 가벼운 편이고요, <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 가 사진이나 설명 면에서 더 낫습니다. 기회가 되면 읽어 보세요 ^^
 
전략적 책읽기 - 지식을 경영하는
스티브 레빈 지음, 송승하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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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 중 괜찮은 걸 만나기는 쉽지 않은데 이 책이 딱 그렇다.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가벼운 책인데 그런대로 재밌게 읽었다.
그렇지만 이런 독서 관련 책은 이제 그만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워낙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책을 읽는지 궁금증을 참지 못해 독서 관련 책은 거의 다 읽는 편이다.
독서법이란 결국 다 거기서 거기일까?
너무 많이 읽어서인가?
어떤 책을 읽어도 기발하다, 나도 해 봐야겠다 싶은 획기적인 발상은 찾기 어렵다.
여기 나온 내용들도 익히 알고 있는 방법들이고 나 역시 실천에 옮기고 있다.
그 동안 읽은 독서 관련 책들 중 유용했던 책으로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가 가장 도움이 많이 됐고 최근에 읽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 등이다.
독서 에세이로는 표정훈씨 책이 재밌었다. 
이 책도 가볍게 일독하기에는 괜찮다.
특히 독서에 막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라면 일종의 길잡이 역할을 할 것 같다. 

책값 아끼지 마라, 하나의 주제에 대해 여러 권의 책을 사라, 완독하려고 애쓰지 마라, 읽다가 재미없으면 던져 버려도 된다, 나중에 다시 읽어 봐라, 읽고 나서 감상문 써라, 읽을 때 저자와 대화하는 습관을 가져라, 책에 메모하는 거 무서워 하지 마라, 고전이나 서평에 주눅들 거 없다 등등 널리 알려진 독서법이 등장한다.
좀 특이했던 점은 미국의 독서클럽 문화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을 중심으로 동호회 등이 형성됐지만 아직까지는 오프라인에서 많이 활성화 되지 않은 것 같아 내심 부러웠다.
나도 기회가 된다면 취향이나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과 친교를 나누면서 같은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고 싶다.
물론 결국 책은 혼자 읽고 소화해 내는 것이지만 읽는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감정들을 나누면 훨씬 흥미로운 체험이 될 것 같다.
결국 이런 싸이트에 공개적으로 감상문을 올리는 것도 교류하고 싶은 욕구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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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9-01-19 0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안 읽어 보셨으면 가볍게 읽어 볼 만한 책입니다. 실용적인 조언법이 많아요.
그리고 위에서 추천한 두 책도 안 읽으셨다면 한 번쯤 읽어 볼 만 합니다.
다치바나의 속독과 다독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수도 있지만 하여튼 탁월한 독서가임은 분명하거든요.

마늘빵 2009-01-19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린님 보면 예나 지금이나 주제를 잡고 물고 물리는 독서를 하고 계신 듯 해요. 이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출판사와 알라딘에 '빚'진게 있어서 나오질 못하고 있네요. ^^ 저도 예전에 이런 식으로 읽었는데, 어느 순간 그렇게 읽어야 할 책들은 쌓여가고, 다른 책들을 손에 쥐고 있습니다.

marine 2009-01-20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참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알라딘에서 여전히 "논객"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일견 동의하는 부분도 있었는데 워낙 논쟁이 시끄러워 따로 댓글 달지는 않았습니다. 열정을 잃지 않고 끝까지 서재활동 열심히 하시길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