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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나라 한국유학 2천년 ㅣ 교양 교양인 시리즈 1
강재언 지음, 하우봉 옮김 / 한길사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알라딘을 배회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
가끔 이렇게 우연히 집어든 책이 명저인 경우가 있다.
횡재한 기분이랄까?
한국 유학의 특징을 고조선 시대로부터 일제 시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면면히 서술해 나간다.
저자는 재일 사학자라고 한다.
이 책 역시 한국인에 의해 번역되었다.
그러나 번역서라고 보기에는 문장이 너무나 매끄럽고 자연스러워 처음에는 당연히 한국어로 쓰여진 책인줄 알았다.
아마 저자가 재일교포라 기본적으로 한국어의 단어 선택이 적절했을 것이고 덕분에 옮기기도 쉬웠을 것 같다.
이 책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3년 동안 일본의 잡지에 연재된 칼럼을 엮은 것이라고 하는데, 연재물로 보기에는 그 통일성이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다.
마치 한 권의 저술을 위해 한번에 쓴 책 같다.
일단 저자의 깊은 역사 인식과 전문성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며, 내가 동의하는 바와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의견을 밝히겠다.
먼저 고조선의 실체가 고고학적 발굴을 토대로 기원전 5세기 경부터 있었을 것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 역시 당연히 인정되는 한국의 역사이고 백제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도래인이 되어 일본 문화에 획을 그은 것처럼 고대 중국인들 역시 한반도로 건너와 선진문화를 전해 주고 정착했을 것이다.
백제가 일본에 문화를 전해준 것은 당연하고 기자나 위만 등이 한반도에 건너와 선진문화를 전해준 것은 부정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
<총균쇠>의 저자가 주장한 것처럼 문화는 높은데서 낮은데로 흐르고 전파는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도 은나라의 현인인 기자가 조선으로 건너와 나라를 세우고 문화를 전해준 것을 소중화의 근원으로 삼을 만큼 자랑스러워 했다.
오늘날 한국인의 입장이 선조들과 같을 수는 없겠으나 그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조광조 등이 지나치게 엄격한 도학정치를 추구해 중종이 그만 그들에게 질리고 말아 내쳤다는 의견에도 동의하는 바다.
사실 현량과라는 것도 객관적인 평가가 아닌 추천에 의한 것이니 그 기준이 얼마나 애매모호하겠는가?
조광조라는 학자의 인격과 지식은 정치적 평가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후대로 갈수록 주자학 제일주의의 경직화와 사상독재는 결국 근대화를 가로막고 조선을 망국의 길로 이끈 장본인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책에서는 예송논쟁이 고도로 발달한 한국 학문과 철학 사상의 우아한 격론의 장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는데 나는 저자의 의견대로 그것은 실제적인 것으로부터 지극히 멀어져 추상적인 것에 목을 맨 한심한 작태라고 생각한다.
사상 논쟁이 한 당파를 몰살시키는 돌격대장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게 오히려 한국 사상사와 정치사의 불행이다.
그러나 일부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는 저자와 생각이 다르다.
세조의 경우 저자는 훈구대신들로부터 정권을 유린당한 조선을 구해낸 수성의 군주라고 평했으나 나는 세조의 계유정난이 공신층을 양산해 내고 국왕 전제정치로 흐른 바람직하지 못한 사건이었다는 쪽에 더 마음이 간다.
저자는 훈구대신들이 사상적으로 자유롭고 다양한 방면의 학문에 업적을 남겼다고 매우 긍정적인 방향으로 평했으나 그들의 어두운 점, 이를테면 심각한 토지 소유와 관직 독점, 특권층화 된 것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또 광해군의 경우도 실각할 수 밖에 없었던 전후 사정에 대해 너무 가볍게 넘어가 마치 명분주의자들에 의해 억울하게 폐위된 현명한 군주라는 식의 인상을 주는데 궁궐 영건 사업으로 민심이 피폐해지고 서자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나치게 왕권 확보에 골몰한 나머지 유림들을 적으로 돌린 정책상의 실수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한명기씨 의견에 동의하는 바다.
무신정권에 대해서도 신분 질서가 흔들리고 문벌 귀족이 아닌 사람들도 관직에 진출했다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으나 과연 사회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보다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것 같다.
결국 최씨 가문이 60여년의 전제 독재를 행한 것이니, 훗날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와 다를 게 무엇인가?
강화도에 틀어박혀 몽골에 저항했다고 하지만 국토는 유린됐는데 집권 가문만 섬에 처박혀 버티면 자주 독립이 유지되는 건가?
오히려 전통적인 사대외교의 대상을 바꿔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한 가지 의문은 중국은 고래로부터 한반도를 직접 지배하기 보다는 책봉과 조공 등을 통해 간접 지배하는 형식을 택했는데 몽골이 고려를 처음부터 멸망시킬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최씨 정권이 강화도에서 30년을 버틴 덕분에 고려가 자주 독립국으로 남을 수 있었다고 했는데 과연 이것이 올바른 평가인지 다른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싶다.
청이 조선을 항복시켰으나 역시 조선은 다만 사대의 대상만 바뀌었을 뿐 계속 독립국으로 남았다.
청과 몽골의 기본적인 정책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 궁금하다.
또 한명기도 지적한 바지만 인조반정 후 조선의 대외정책이 숭명반청으로 급격히 바뀐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기조는 청을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화친 외교를 계속 해 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만 앞에 내세우는 명분론적 입장이 약간 다를 뿐 서인정권 역시 완전히 미치지 않고서야 엄청난 군사력을 자랑하는 청과 정면으로 맞서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지해야 할 사실은 광해군 때만 해도 청은 아직 명을 복속시키지 전이었기 때문에 조선에게 동맹국으로서의 화친 정도를 요구했으나 인조가 즉위한 다음부터는 노골적으로 주종관계를 강요했기 때문에 아마 광해군이 계속 왕위에 있었더라도 그 요구를 수용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만 대응에 있어서 좀 더 유화책을 쓰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다.
당시 중국 사정에 대해 저자가 너무 가볍게 지나친 것 같아 아쉽다.
저자는 인조 반정 후 서인정권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도발했다고 하는데 이 점은 중국사를 자세히 연구한 한명기의 분석이 훨씬 유효하다.
전반적으로 매우 훌륭한 책이고 한국 유학의 발전 과정과 문제점, 역사 속에서의 역할 등에 대해 잘 풀어 쓴 책이다.
무엇보다 읽기에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이야기책을 읽듯 너무나 재밌게 술술 넘어간다.
몇 가지 의문점과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으나 관점의 차이이기 때문에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다.
오히려 다른 관점에서 비교해 봄으로써 내 역사적 관점이 더 선명해지는 느낌들 갖게 됐다.
정말 재밌게 읽은 책이고 비록 유학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을 잃어 가고 있으나 여전히 한국인의 문화와 일상을 책임지는 기본적인 가치관이자 세계관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냉정한 비판을 통해 보다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단순히 공자는 죽었다라는 식의 맥빠진 선언이 아니라 2천 여년을 이어온 우리의 문화와 가치관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를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
서구 문명이 기독교와 그리스 로마 전통 아래서 기반을 다지고 있듯 한국 문화도 유교의 뿌리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