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傳 2 - '인물'로 만나는 또 하나의 역사 한국사傳 2
KBS 한국사傳 제작팀 엮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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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스페셜의 후속편으로 두 명의 MC가 나와서 진행하는 <한국사전>이라는 프로그램을 가끔 본 적이 있다.
영상을 통해 역사를 접하게 되면 보다 입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와 닿는다는 점에서 좋기도 하지만 비전문가들의 한계라고 할까? 혹은 시청률 때문에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방향으로 이끄는 것 같아 가끔 거부감이 들 때가 있어 특별히 챙겨 보지는 않았다.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박물관에서 삼국 시대의 묘지 조성법을 영상으로 본 후부터다.
책에서 문자나 그림으로 이해하는 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날 만큼 머리에 각인이 됐다.
페르시아전에서도 고대 유적들을 화려한 영상으로 복원시켜 놨는데 정말 페르시아가 얼마나 위대한 왕국이었는지 실감이 났다.
(그 전에는 기껏해야 민주정인 그리스에 패한 바보같은 독재가 다리우스의 나라, 이 정도로 밖에 몰랐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역사 스페셜이나 한국사전을 DVD로 관람할까 하고 마침 책이 나왔길래 읽게 됐다.
사건이 아닌 인물을 중심으로 구성했다는 게 특징이다.
덜 알려진 인물들을 발굴해 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을 것 같고 빈약한 자료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해 역사적 진실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점은 늘 경계해야 할 것 같다. 

무인의 이미지를 가진 정조는 새로운 시각이라 흥미로웠다.
사실 그는 책에 나온대로 암살의 위협에 시달린 만큼 친위부대인 장용영을 설립했고 무예도보통지 같은 병법서를 편찬했으니 충분히 무술에 관심이 많았을 것이다.
<만천명월주인옹>이라는 도장을 새길만큼 신하들을 압도하는 전인적인 군주가 되고자 했으니 유학 뿐 아니라 군사력 장악에도 힘을 썼을 것 같다.
따지고 보면 노론 벽파의 암살 위협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았으니 아들 정조의 복수는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과연 영조가 올바른 판단을 한 것인지 의심스럽고 만약 사도세자 외의 다른 왕자가 있었으면 왕위를 잇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이복형이었던 죽은 효장세자에게 양자로 입적한 것은 영조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조완벽이라는 사람이 임진왜란 때 포로로 끌려가 베트남까지 다녀왔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주인이 베트남과도 무역을 했는데 조완벽이 한자에 밝은 유생이었기 때문에 쓸모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일본이 얼마나 국제적인 무역 루트를 가지고 있었는지 이해가 된다.
확실히 일본은 성리학의 나라인 조선과는 사회 체제가 판이했을 것 같다.
조완벽은 놀랍게도 베트남에서 이수광의 시가 유행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비록 그는 스무 살 때 일본으로 끌려가 이수광의 명성을 알지 못했으나 나중에 조선으로 귀환된 후 그 에피소드를 들려 주고 덕분에 이수광이 직접 조완벽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게 된다.
이수광이 연경에 갔을 때 베트남 사신을 만나 한자로 문답을 나누는 과정에서 그의 시를 베트남에 가져갔는데 그게 거기서 유명세를 탔던 것이다.
어쩌면 고대 세계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교류가 빈번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또 베트남 역시 유교 문화권임을 확인했다.
한 가지 재밌는 시각의 차이는, 조완벽이 조선 정부의 포로 석방 노력으로 풀려난 것을 높이 샀는데 내가 읽은 어떤 책에서는 당시 정부가 포로 석방에 별로 뜻이 없어 실질적인 성과는 거의 없었고 도망쳐 온 사람들도 정부를 비방할까 봐 제대로 대접하지 않고 노비는 본래 주인에게 돌려 보내고 심지어 양민도 노비로 귀속시켰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시각의 차이일 수 있겠으나 내가 보기에는 제작팀에서 단지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우리 선조들은 역시 인간적이었다, 이런 식으로 가볍게 결론을 내린 게 아닐까 싶다. 

세자빈 강빈과 소현세자의 죽음은 아직까지 드라마로 만들어지지 않아 사건의 극적인 성격에 비하면 덜 알려진 것 같다.
아들을 죽인 영조나, 혹은 아들을 의심한 선조 못지 않게 인조 역시 볼모로 끌려간 아들에게 극단적인 경계심을 품었으니 과연 권력 앞에서는 부자간의 천륜도 소용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정조의 죽음을 실록에 나온대로 혹은 박현모씨의 의견대로 당연히 과로사로 생각하고 있는데 과연 소현세자의 죽음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궁금하다.
이덕일 같은 대중용 사학자 말고 제대로 된 학자가 소현세자의 죽음을 풀어 줬으면 좋겠다.
시신이 검게 변하고 온 구멍에서 피가 흘렀다고 하는데 이것이 당시 죽음을 기록하는 일반적인 서술이었는지 혹은 당시에 사람을 즉사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독이 존재했는지 인조와 소현세자의 관계는 아버지가 아들을 몰래 죽일 만큼 극단적으로 악화됐는지 역사적인 의견을 듣고 싶다.
며느리와 손자들까지 죽인 걸 보면 확실히 인조는 아들에게 굉장한 분노와 의심을 샀던 것 같기는 하다. 

척화비를 쓴 사람이 이경석이라는 인물인지도 처음 알았다.
이 사람은 그 비문을 작성했다는 이유로 송시열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는데 저자의 말대로 명분론자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흔히 쓰는 수법이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자행한 만행을 생각하면 충분히 분노하고 망하게 됐을 때 오히려 잘 됐다고 원군 요청 따위는 무시했어야 할 일이지만 성리학이 지배하는 대의명분의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인식의 전환이란 말처럼 쉬운 게 아니고 당시 성리학의 교조주의가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방증한다.
그런데 그 당시 입장에서 보면 나라를 침범한 오랑캐들, 그것도 자신들이 우습게 보던 짐승같은 여진족들에게 머리를 조아린 일이 엄청난 상처가 됐을 것이다.
당시 사대부들에게 이경석은 요즘으로 치자면 을사오적처럼 청에 아부하고 영의정까지 되서 현종에게 궤장을 하사받은 한 마디로 사리사욕만 채우는 인물이 아니었을까?
효종 대신 청에게 죄를 지고 귀양을 갔다고 했으니 자기 욕심만 챙기는 뻔뻔한 탐욕주의자는 아니었을 것 같다.
그리고 군중들이 화가 나서 쓰러뜨린 삼전도비를 일제가 다시 세웠다고 조선을 짖밟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비난하는데, 일제가 조선을 생각해서 세웠리는 없겠지만 삼전도비 역시 역사적 유물이 아닌가.
당시 정부였던 일제로서는 세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대체 왜 이런 간단한 행정상의 절차를 놓고도 쓸데없는 분노를 하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최근에 삼전도비에 페인트로 <철>이라고 써 놓은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더 비난해야 하지 않을까?
한자도 아니고 붉은 페인트로 한글로 철, 이라고 크게 낙서를 하다니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말이 안 나온다.
마치 이슬람 교리에 어긋난다고 그 엄청난 석굴을 파괴시킨 탈레반을 보는 것 같다. 

이 밖에도 단원 김홍도나 몽골 장수 살리타를 활로 쏘아 죽인 김윤후, 사대주의자로 비난받는 김춘추, 과학적 수사를 했다는 흠흠신서의 저자 정약용 등이 등장한다.
김춘추의 외교술이야 당시 신라의 입장에서 보면 탁월한 전술이었으니 사대주의자라는 비난은 지극히 오늘날의 말도 안 되는 시선에 불과한 것이고, 오히려 책에 나온대로 신라 귀족들이 백제의 침략에 손놓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정말 영웅적이다라고 할 만큼 고구려, 당나라, 심지어 일본까지 다녀왔으니 신라로서는 김춘추야 말로 나라를 살린 최고의 영웅이었을 것이다.
신라 입장으로서는 당연히 왕으로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행동하는 지도자였을 것이다.
흠흠신서에 나온 정약용의 판결은 다른 책에서도 본 적이 있다.
두 사람이 칼로 장난을 치다가 하필 종기 부위를 맞아서 고름이 터지는 바람에 한 달 만에 죽어 버린 사건이 생긴다.
죽은 사람의 미망인이 복수를 하기 위해 찌른 사람의 집에 찾아가 그 아들 부부를 묶고 방망이로 때려 죽인다.
정말 무시무시한 복수극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흉기가 있었다고 하나 여자가 남자를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정말 대단한 여장부다.
사건과는 별개로 아내라면 이 정도는 해야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시 도덕 관념으로 보면 복수극은 의리로써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아내의 행동은 마땅이 남편에 대한 의리를 지킨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남편이 칼에 맞은지 한 달이나 지나서 사망을 했기 때문에 칼에 의해 죽은 게 아니라 종기가 터진 걸 제대로 치료를 못해서 죽었다는 것이다.
친절하게 법의학자의 설명이 이어진다.
직접사인은 패혈증, 중간 선행사인은 세균 감염, 선행사인이 바로 칼에 의한 상처니 남편은 살해당한 게 아니다.
그러므로 아내의 살인은 복수로 인정받을 수 없게 돼 버렸다.
그리하여 아내는 옥에 갇히고, 아내를 도와 죽은 자의 아들 부부를 감금했던 이들도 살인 동조죄로 갇힌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정약용은 황당하게도 아들 부부마저 아버지의 죽음을 방조했다고 체포한다.
이 점은 현대인인 나로서는 동의하기 힘든 부분인데, 아들 부부 역시 자기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겠는가?
오히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위로해야 정상이지 않을까?
아버지가 방망이에 맞아 죽었는데 (그것도 억울하게!) 그 끔찍한 광경을 지켜 본 아들 부부마저 살인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불효했다고 체포되는 건 이치에 맞지가 않다.
저자는 정약용의 이 판결을 과학적 수사의 표본이라고 하는데 어쩐지 인용이 잘못된 느낌이 든다.
흠흠신서 등을 써서 법률적 교육을 받은 적이 없던 당시 관료들을 각성시킨 점은 평가받아 마땅하지만 위인은 무조건 훌륭하다는 대전제는 왠지 교조주의의 냄새가 난다.
전기를 쓸 때 항상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하여튼 비교적 재밌게 읽은 책이고 역사적으로 덜 유명한 사람들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롭다.
나머지 책도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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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범의 파워 클래식 1 -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고 아무도 시도하지 못했던 신 클래식 강의
조윤범 지음 / 살림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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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클래식에 관한 책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저자는 박종호씨다.
의사는 원래 글쓰기와 거리가 먼 직업인데 특이한 이력 때문에 책을 낸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기우로 만들만큼 참 글을 잘 썼다.
이 책은 현악4중주단인 콰르텟엑스를 이끄는 바이올린 주자가 쓴 책이라 전문성 면에서는 믿음이 갔지만 글솜씨도 과연 읽을 만 할지 걱정을 했던 책이다.
문장력이 아주 좋은 건 아니지만 비문이 없고 비교적 편안하게 쓰는 편이고 무엇보다 교향곡에 비해 덜 알려진 훌륭한 현악 4중주 곡을 많이 소개해 준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고 싶다.
더불어 실내악단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이 생겼다.
웅장한 교향곡 공연 외에도 실내악단의 공연도 자주 가 보고 싶다.
대체 누가 클래식을 가식덩어리, 교양인인 척 하는 위선자, 한 물 간 고리타분한 음악이라고 비난했던가?
이 책을 읽어 보면 고전은 유명하지만 아무도 안 읽는 혹은 안 듣는 책이나 음악이 아니라 시간의 무게를 이겨내고 여전히 현대에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훌륭한 예술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클래식에 별 관심이 없을 때는 모차르트나 베토벤 등 유명한 음악가들의 음악만 듣곤 했는데 음악에 대한 관심이 커지다 보니 현대 음악에도 호기심이 생긴다.
현대 음악가도 대체 누가 누군지 인식이 잘 안 됐는데 자꾸 접하다 보니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고 음악도 듣고 싶어진다.
좋은 곡들을, 특히 현악 4중주 곡들을 많이 소개받아 메모를 했는데 언제 다 들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관심을 쏟다 보면 언젠가 다른 장소에서 듣게 됐을 때 아, 그 음악이구나 하고 반갑게 조우할지도 모르니 헛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읽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나> 와 <올 댓 클래식>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하나의 주제를 여러 책으로 읽다 보면 개념이 잡히고 무조건 읽었던 앞의 책들도 다시 보면 훨씬 재밌고 쉽게 느껴진다.
정말 독서는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가장 훌륭한 간접 체험이 아닌가 싶다. 

한 가지 기록하고 싶은 것은, 일본의 유명 클래식 만화인 노다메 칸타빌레 얘기가 종종 등장한다.
아마 저자가 집필할 때는 베토벤 바이러스가 안 나왔던 것 같다.
사극이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듯 클래식 역시 드라마를 통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피아니스트>란 영화를 보고 쇼팽의 발라드에 반한 것처럼 혹은 <Love of Siberia>를 보고 모차르트의 오페라에 빠져든 것처럼 말이다.
클래식 드라마가 많이 나와서 좋은 음악들을 많이 접할 수 있길 바라고 공연 문화도 보다 활성화 되서 영화관을 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연주회를 갈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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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9-01-20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전 솔직히 아직까지는 연주자에 따른 차이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어떤 곡을 들으면 너무 좋다, 느낌이 온다, 이 정도?? 님이 추천하신 번슈타인의 베토벤 9번 교향곡은 챙겨서 들어 보겠습니다. 정말 공연이 좀 더 일반화 되서 티켓에 대한 부담이 줄어 들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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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속의 한국사 - 유물로 읽는 우리 역사 이야기
최형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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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런대로 재밌게 읽은 책.
기자인데도 학예사 시험에 합격했을 정도로 나름 전문성을 과시한다.
그러나 우리 문화를 너무 사랑하다 보니 곳곳에서 민족주의 냄새가 나고 지나친 자긍심으로 타 문화와의 우열을 가리는 유치한 행태를 간간히 보여준다.
문화란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이원복씨의 말이 생각난다.
한국인의 문화가 소중하다면 타 문화 역시 그 문화가 속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이끄는 힘이 될 것이다.
결국은 전 세계인들이 가꾸어 가야 할 우리 모두의 유산이고 소중한 보물이 아니겠는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을 지정하는 것도 함께 지켜 나가자는 뜻으로 알고 있다.
한국의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우수하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자민족중심주의에 지나지 않고 오히려 우리 문화의 독특함과 정체성을 깍아 먹는다는 생각이 든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그대로 아름다운 것이고, 경주에서 발굴된 수막새의 신라인 미소는 또 그대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꼭 그런 식으로 유치한 비교를 해야 할까?
모나리자 미소보다 훨씬 신비롭고 우아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내가 이원복씨의 글을 좋아하는 까닭은 문화재 전문가로써의 그 안목과 전문성도 높히 사지만 무엇보다 우리 문화만이 최고다라는 식의 편견이나 아집에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 사람의 마음을 넉넉하게 하는 여유가 있고 겸손함이 곳곳에서 배어 나온다.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세계 문화, 이런 보편적이고 대범한 시각을 견지할 수는 없는 것일까? 

책의 장점을 들자면 국보 위주의 소개에 그치지 않고 각 지방 박물관의 소장품도 빠짐없이 조명했다는 점이다.
한국이 심각한 수도중심주의다 보니 지방 문화는 낙후되고 관심 밖이기 십상인데 지방 박물관들이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가 ㅣ방 문화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 소개된 춘천 박물관의 김우명 상여는 춘천을 방문했을 때 본 기억이 있다.
지방 박물관에 별 볼 것이 있겠어, 라는 건방진 생각으로 들렸는데 내 시각을 완전히 교정해 준 전시품이었다.
상여는 죽음과 관련된 것이라 처음에는 전시관에 전시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조선 왕실의 장례 문화를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의의있는 전시품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김우명이라고 하면 숙종의 외할아버지이나 명성왕후의 아버지로 중앙 정계의 거물이지 않았던가?
고향이 광주지만 한 번도 광주 박물관을 구경해 본 적이 없다.
그저 야외에서 사진이나 몇 장 찍었을 뿐이다.
신안 앞바다에서 발굴된 고려 청자를 비롯한 유물들이 대거 전시되어 있다고 하니 나중에 집에 내려가면 꼭 들여야겠다.
백제의 옛 수도인 공주와 부여 박물관은 가족 여행을 하면서 들렸던 기억이 난다.
경주 박물관도 친구들과 1박 2일 동안 머무르면서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관람했었고 불국사나 석굴암, 남산 등도 돌아 봤는데 지금 생각하니 아주 소중한 기회였던 것 같다.
국립 중앙 박물관은 요새 열심히 다니고 있다.
저자의 서문에 밝힌 대로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한 두 시간 지나면 관람 피로 때문에 곧 지치고 만다.
내 경우 중앙 박물관의 역사실 한 곳만 보는데 네댓 시간이 걸렸다.
전체를 하루에 다 본다는 건 엄두도 못 내고 한 번에 한 전시실을 보고 있다.
박물관에서 봤던 유물들이 책에 소개되면 이해하기도 쉽고 친근감이 느껴져 무척 반가웠다.
특히 백제금동대향로는 처음 보는 순간 (비록 모조품이었지만) 너무 감탄해 나오는 길에 엽서까지 샀던 유물이다.
과연 이 책에서도 그 아름다움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지만 책에서만 봤다면 혹은 가이드의 도움 없이 혼자 봤다면 제대로 아름다움을 느끼기 힘들었을 것이다.
박물관의 안내 프로그램을 따라 돌았는데 가이드 역시 이 향로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었고 덕분에 꼼꼼히 살펴볼 수 있었다.
금령총에서 발굴된 기마인물토기나 가야의 오리모양토기 등도 감탄했던 유물 중 하나다.
창원 다호리 유적지에 대한 얘기나 나오는데 얼마 전 중앙 박물관의 발굴 기록전을 다녀와서 더욱 반가웠다.
가야가 철기 생산의 중심지였음을 밝히는 유적지라고 한다.
박물관에서 통나무관을 만드는 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줘 책을 읽을 때 이해하기 쉬웠다. 

여러 의문점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실은 고려에서 전수됐다는 설이 제기됐고 구텐베르크 박물관장도 인정했다는 말이 언급됐는데 과연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얘기인지 궁금하다.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독서의 역사에 대한 번역서에서 금속활자술과 유사한 기술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발명됐었는데 구텐베르크가 올리브 압착술을 이용해 최종적으로 상업적 이용에 성공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단지 구텐베르크 혼자 그 기술을 발명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는 상업적 이용을 가능하게 만든 사업가라는 식의 서술이었다.
동양 어디서 건너갔다는 뉘앙스는 전혀 없었고 당시 관련된 무수한 발명들이 선행되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과연 서구인들이 고려에서 금속활자가 전래됐다는 주장을 얼마나 믿어줄지 의문이다.
그가 금세공사였다는 이유만으로 발명을 못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고려에서 전해진 기술? 이런 식의 추론은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어쨌든 활자 문화가 조선 시대의 성리학을 널리 퍼지게 한 것은 분명하다. 

박물관의 이용과 가치를 조명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시도였고 특히 지방 박물관에도 포커스를 맞췄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지나친 자민족중심주의와 타문화와의 우열을 가리려는 시도는 책의 단점으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기자가 쓴 책 치고는 발굴 뒷얘기로 흐르지 않고 나름대로 식견을 갖고 역사적 사실과 함께 거론했다는 점에서 괜찮은 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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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핀란드에 있다 - 국가 경쟁력 1위의 비밀
리차드 루이스 지음, 박미준 옮김 / 살림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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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대했던 것 보다는 다소 실망스러운 책.
에세이가 갖는 한계 같다.
아마도 나는 핀란드의 역사나 경제 구조 등에 대해 보다 분석적으로 기술한 책을 원했던 같다.
핀란드 사람들의 기질이나 성향에 대해 개인적인 느낌을 서술한 부분이 주를 이루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주관화의 오류를 갖게 된다.
차라리 우리나라의 공무원들이 스웨덴을 방문해 복지 정책의 실제에 대해 분석한 책이 훨씬 현실적으로 와 닿는다.
첫 장에서 서술한 바대로 핀란드인은 이렇다, 라고 정의하는 게 상당히 주관적이고 전형적인 것 같으면서도 결국 문화란 것 자체가 집단적으로 프로그래밍 된 학습화이고 보면 아주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슷한 가치관과 특성을 공유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집단 단위의 분석은 분명히 의의가 있고 강준만이 쓴 한국인의 특성 같은 책을 읽을 때도 많이 공감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외국인의 눈으로 본 한 민족이나 사회는 어쩔 수 없이 수박 겉핥기 식의 피상적 관찰이라는 한계를 갖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스웨덴에서 1년 정도를 지낸 공무원이 쓴 책을 읽었는데 이 책처럼 스웨덴인은 이렇더라, 라는 식의 가벼운 묘사가 전부다 보니 스웨덴에 대한 지식이 생겼다기 보다는 그저 덜 알려진 나라를 방문한 사람의 감상기를 읽은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짧은 기간이라도 복지 정책을 주관하는 공무원들이 직접 스웨덴 시청을 방문해 그들이 실시하고 있는 복지정책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견학한 것을 보고서 형식으로 쓴 책이 훨씬 더 스웨덴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고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차라리 이 책 보다는 핀란드의 역사와 경제 구조, 정치사 등을 객관적으로 서술한 책이 핀란드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의 필력은 비교적 고른 편이고 동양인이 북구의 나라를 보는 것 보다는 아무래도 좀 더 친숙하게 접근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핀란드어나 민족이 주변 국가들과는 굉장히 다르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강대국인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서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굴하지 않고 오늘날의 복지 강국을 이룩한 핀란드인의 투지에 박수를 보내는 바다.
다만 핀란드인의 특성이 장점으로 부각될 수 있는 힘은 오늘날의 경제 수준과 복지 정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들이 유럽에서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면 저자가 입이 마르게 칭찬하는 그 장점들이 오히려 단점으로 거론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집단을 칭찬하거나 비난할  때는 현재의 결과에 비춰서 해석하는 결과론적인 판단임을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여전히 유럽적인 편견을 느낄 수 있었던 점을 지적한다면 과거에 핀란드인은 언어 때문에 아시아 계통이라고 생각됐으나 오늘날에는 고대부터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살았던 토종 유럽인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고 다행스러워 한다.
유럽에 속한 사람들이라 기원이 못 사는 아시아 보다는 유럽 인종이라는 게 자부심의 근원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아시아 하면 역시 중국과 일본이 독자적인 문화권으로 항상 언급되는 가운데 기쁘게도 한국은 딱 한 번이지만 핀란드 보다 높은 교육열을 지닌 유일한 국가로 등장한다.
한국인의 교육열은 정말 세계적인 것 같다.
핀란드의 문자 해독율이 99%라고 하는데 한국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우리의 교육열 역시 학벌주의나 사교육, 기러기 아빠 등으로 망국병처럼 거론되다가도 가끔은 오늘날의 무역 10위권 국가로 이끈 인적 자본의 근원이라고 정반대로 얘기되는 걸 보면 결국 어떤 기질이나 특성이 좋고 나쁘냐는 전적으로 현재의 결과, 즉 경제력이나 인권 수준, 복지 정도에 달린 게 아닌가 싶다. 

앞부분의 핀란드 역사 등은 비교적 재밌게 읽었고 여자로써 부러운 점은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인 평등성과 모성 보호 등이다.
사실 이 부분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자세히 소개받은 적이 있어 평소에도 부러워 하던 점이었다.
사진에 등장한 여성 총리도 다큐멘터리에서 봐서 낯익다.
그녀는 총리 관저에서 일을 하다가 점심 시간에 전통 시장에 나가서 저녁 식거리를 사고 있었다.
연출된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자연스러워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이 주변 경호원과 취재진을 대동해 재래 시장에 시끌벅적하게 등장하는 것과는 굉장히 다른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졌다고 해도 여전히 회사의 고위직이나 정치 참여 부분에서는 밑바닥인 게 한국의 현실이고 보면 평등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건 몰라도 교육시키는 건 아들딸 가리지 않고 기를 써서 최고로 만들려고 하는 한국의 부모들이 있으니 한국 여성들도 언젠가는 세계인들이 부러워 하는 권리와 위치를 얻게 되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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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궁궐기행 -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 경희궁 종묘의 건축과 역사읽기
이덕수 글 사진 / 대원사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어떤 책을 완벽하게 소화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기도 하다는 걸 깨닫게 만든 책.
6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과 큰 판형이, 무수한 사진들과 함께 정말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서문에서 밝힌 각오가 부끄럽지 않은 책이다.
다만 너무 자세히 쓰려다 보니 지엽적인 부분까지 파고들어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기가 좀 힘들다는 점이 아쉽다.
우리 궁궐에 대한 저자의 무한한 애정이 잘 녹아난 책이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인데 대출이 되는 건 참 다행이지만 (어떤 도서관에서는 대출 불가) 워낙 판형이 크다 보니 책 훼손이 삼한 상태라 안타깝다.
건축 전공자답게 전통 가옥의 건축 양식을 자세히 기술했고 따로 한 장을 할애하여 기본적인 건축 지식도 기술했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솔직히 나는 좀 어려웠다.
워낙 건축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기 때문에 건축 부분이 나오면 대충 넘어가고 역사적인 부분이 나오면 열심히 읽었다.
그렇지만 반복되다 보니 어느 정도 감이 잡히고 덕분에 전통 가옥의 건축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지식이 생겼다.
우리 궁궐에 대한 책들은 모두 마찬가지지만, 사진이 정말 아름답다.
특히 이 책의 사진들은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들인데 전문 사진사 못지 않게 훌륭한 영상을 선보인다.
얼마나 저자가 애를 썼는지 세심한 배려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안타까운 것은 역시 일제에 의한 의도적인 궁궐 훼손이다.
이런 걸 보면 당시의 일본 역시 문화재 보존에 대해 상당히 무지했고 보편적인 세계 문화 보전이라는 큰 틀에서 생각하기에는 아직 국가의 역량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프랑스에서는 이집트 원정을 계기로 이집트학이 생겨나고, 인도차이나 점령을 계기로 앙코르 와트 등의 탐사가 활발해졌다고 하는데 야나기 무네요시 등의 일부 학자들이 있긴 하지만 일제의 우리 문화 훼손은 문화에 대한 무지함을 여실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황실 복원 운동이라는 기사가 신문에 나면 왠 시대착오적인 발상인가 했는데 요즘 궁에 관심을 갖다 보니 전통 문화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심정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종묘제례를 지내려 가는 행렬에 황실의 후손인 이구씨가 왕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진이 실렸다.
왠지 가슴이 먹먹해지고 만약 황실이 보존됐다면 지키는 사람들이 있으니 우리의 왕실 문화가 훨씬 더 섬세하게 지켜지지 않았을까 싶다.
민주화라는 큰 대의에 비춰보면 특권층의 소멸은 너무나 당연한 명제이지만, 전통 문화의 보존, 역사의 연속성이라는 점에서 생각해 보면 현대 사회에서도 왕실의 존재 의의는 여전히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식민지 경험이 없는 일본이나 영국, 태국 등이 여전히 왕실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까닭이 비로소 이해되는 기분이다.
결국 왕실은 문화의 연속성, 전통의 이어짐을 대표하는 게 아닐까? 

비록 광해군과 흥선대원군은 창덕궁과 경복궁 중건으로 정권을 뺏길 만큼 치명타를 입었으나 그들의 노력 덕분에 두 궁궐이 비교적 온전히 보존되고 있어서 무척 다행스럽다.
반정이 일어나고 권좌에서 쫓겨날 만큼 당시의 궁궐 영건 사업은 보통 일이 아니었구나 싶다.
아관파천 후 고종이 경운궁으로 이어하여 덕분에 경운궁도 어느 정도는 궁궐로써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경희궁은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져 책에서도 별로 소개되지 못했다.
너무 많이 파괴되어 복원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동궐도라는 훌륭한 도첩이 남아 있어 당시 궁궐 모습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복원도 가능케 한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주자학이라는 교조주의에 물들어 결국은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점에서 비판적이 되다가도, 이런 놀라운 기록 문화를 볼 때마다 500년을 지속해 온 힘의 근원을 발견하고 감탄하게 된다.
어떤 책에서는 조선이 임진왜란 후 망했어야 한다고 비난하기도 했지만, 왜란과 호란을 이겨내고 20세기 초까지 굳건히 버텨온 것은 절대로 그 체제가 호락호락하지 않았음을 대변한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가지 못한 지나친 주자학의 교조주의가 안타깝고, 순조 이후 등장한 세도정치와 왕다운 왕이 없었다는 점이 슬플 따름이다.
왜 효명세자의 요절을 안타까워 하는지 이해가 된다.
망국의 책임은 누구보다 당시 정치를 대표하는 고종에게 있다고 생각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망해 가는 나라를 지켜 봐야 했던 마지막 임금의 비애가 절절히 느껴지는 것 같아 고종에게도 면죄부를 주고 싶어진다. 

재밌게 읽은 책이고 100% 다 소화하지는 못했지만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다음번에는 한영우씨가 쓴 <동궐도>를 읽을 생각이고 다시 한 번 궁궐 답사를 나가 봐야겠다.
봄에는 종묘제례도 구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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